======18:1
모세가 돌려 보내었던 - 모세가 언제, 어디서, 그의 처와 두 아들을 되돌려 보내었는지는 성경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지 않다. 단지 추측컨대, 하나님께로부터 소명을 받고 신적 권위를 위임받은 모세가 그의 처와 더불어 두아들을 데리고 애굽으로 귀환하던 중 아들의 할례 문제로 인하여 하나님에 의해 죽을 뻔한 위험을 당하자(4:24-26),다시 그들을 미디안 땅의 이드로에게 보낸 것같다(L. Wood). 즉 자신의 생명에 대한위험을 당한 모세는 그의 처와 아들들의 생명마저 염려한 나머지 그들을 안전한 처가로 되돌려 보내었던 것이다. 십보라<2:21>
======18:3,4
하나의 이름은 게르솜이라...엘리에셀이라 - 모세의 두 아들은 이름의 뜻 그대로과거의 삶에 대한 모세의 진솔한 신앙 고백이었다. 모세는 두 아들의 이름을 통하여과거 바로의 추격을 피해 도망치던 비참했던 시절의 자신의 모습을 뒤돌아 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럼에도 자신을 끝까지 도와 주셨던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기억할 수있었다(2:11-25). 게르솜<2:22>. 엘리에셀 - '나의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이란 뜻으로, 애굽 귀환시 할례를 받은 모세의 둘째 아들이다<4:25>. 후일 솔로몬 시대에 이르러 그의 후손은 크게 번창했다(대상 23:15-17). 나를 도우사 - 여기서 '돕다'에 해당하는 '아자르'(* )는 '둘러싸다', '방어하다'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전후 좌우로 감싸시듯 빈틈없이 보호하며 도우시는 것을가리킨다.
======18:5
하나님의 산에 진 친 곳이라 - 본래 '하나님의 산'이란 일명 시내 산으로 불리우는호렙 산을 가리킨다<17:6>. 그런데 이를 특별히 '하나님의 산'이라 칭하는 까닭은 훗날 모세가 이 산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았기 때문이다<3:1>. 그러나 여기서 의미하는'하나님의 산'이란 호렙 산 자체를 뜻하지 아니하고, 호렙 산에 인접해 있는 르비딤을가리키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앞서 이곳에 장막을 쳤었다(17:1).
======18:6
그가 모세에게 전언하되 - 이드로는 모세가 백성들과 함께 진을 치고 있는 곳에 가까이 이르러서는 먼저 모세에게 사람을 보내어 자기가 왔음을 전하였다. 이드로의 이러한 처사는 아마도 자신의 급작스런 방문으로 인해 모세가 경황 망조(驚惶罔措)하거나 혹은 백성의 지도자로서 모세가 급한 공무를 처리하지 못하는 등과 같은 일을 방지하기 위한 세심한 배려였을 것이다(Lange).
======18:7
모세가...절하고 - 200만 이스라엘의 지도자라는 자신의 지위에 아랑곳없이 모세는장인 이드로를 맞이하는데 있어 최대의 친절과 경의 및 기쁨을 표했다.대개 사람은 높은 지위에 오르면 교만하여지기 십상이고 그리하여 연장자에 대한 인간 본연의 공경심마저 잃어버리기 쉽다. 그러나 이처럼 겸손을 잃지 않은 모세의 자세에서 우리는 그의올바른 도덕성과 윤리관을 엿볼 수 있다. 그에게 입맞추고 - 반가움을 표시하는 인사로서 고대 근동 지방에 흔히 있었던 풍속이었다(창 29:13;33:4;삼하 19:39). 문안하고(* , 샤알 샬롬) - '샤알'은 '묻다', '문의하다', '간구하다', '빌다'는 뜻이다. 그리고 '샬롬'은 '평화', '행복'을 뜻한다. 따라서 이 말은'평안을 빌다'라는 뜻이다<창 33:1-11 강해, 구약 시대의 인사법>.
======18:8
여호와께서 그들을 구원하신 일 - 요약하면 애굽에 임한 여호와의 10대 재앙(7:14-12:30), 홍해 도하 사건(14장). 쓴 물을 달게 만든 말라 사건(15:22-26). 광야의 음식 만나와 메추라기 공급 사건(16장), 반석을 쳐서 물이 나게 만든 르비딤 사건(17:1-7), 아말렉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사건(17:8-16)등이다. 실로 당신의 백성을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생생한 기적의 연속이었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 삶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기적들로 섭리하고 계심을 성도는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한편 70인역은 '여호와께서'란 말 다음에 '바로의 손과 애굽 사람들의 손으로 부터'란 말을 첨가하였다. 다 그 장인에게 고하매 - 모세는 그의 장인 이드로를 만난 후 가정의 사사로운 일이나 개인 신변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스라엘에게 행하신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밝히 간증하였다. 모세의 이런 자세는 그가 지닌 신앙 인격의한 면을 보여 주는데, 즉 그는 무슨 일이든지 자신의 명예나 영광을 나타내기 보다는먼저 하나님을 높이고 그에게 찬양을 돌렸던 것이다. 구약 시대나 신약 시대를 막론하고 이처럼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하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자, 그의백성들이 힘써 실천해야 할 사명이기도 하다.
======18:9
이드로가...기뻐하여 - 모세의 간증을 들은 이드로가 이방신앙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귀의하였음을 시사한다. 그는 이방 제사장으로서 범신(凡神)을 섬기고 있었을때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신 역사를 듣고 단순한 지적 호기심의 대상으로 여겼을것이다(1절).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구원 행동에 대한 모세의 생생한 간증을 듣고그의 가슴은 뜨거운 기쁨으로 타올랐다. 즉 하나님을 지식적으로만 아는 단계에서 벗어나, 이제는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벅찬 기쁨(감정)을경험하게 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카일(Keil)은 이드로를 가리켜 '이방인 중 살아계신 하나님을 찾은 첫 개종자'라 하였다.
======18:10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 '찬송하다'에 해당하는 '바라크'(* )는 '무릎끓다', '송축하다'는 뜻으로 하나님께 겸손한 마음으로 찬양과 영광돌리는 것을 가리킨다. 이처럼 이방 제사장이었던 이드로가 처음으로 이스라엘의 언약 하나님의 '여호와'를 부르며 찬양한 것은 이제 그가 여호와 하나님만이 이세상에서 유일하신 지존자이심을 깨달았다는 증거이다. 한편 이드로의 이와 같은 행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바다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받은 후, 하나님을 찬양한 것과 동일한 성격의 것이기도 하다(15:1-21). 너희를...건지셨도다 - 이스라엘 하나님께 대한 이드로의 믿음을 고백하는 구절이다. 이드로는 자신이 직접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체험하지는 못했지만, 그에 대한 모세의 생생한 간증을 듣고 과거에 자신이 소문으로만 들었던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이제는 확신에 찬 입술로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그의 신앙과 믿음의 확신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한편, 이드로가 이토록 쉽게 여호와 신앙을가질 수 있었던 것은 과거 모세와 지냈던 40년 동안 부지 불식간에 모세로부터 많은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L. Wood). 따라서 일부 자유주의 학자들의 견해처럼(H.H. Rowley, The Redisovery of the Old Testament), 모세가 40년 동안 이드로에게서여호와 신앙을 가르침 받았다는 주장은 터무니 없다.
======18:11
이제 내가 알았도다 - '이제'란 말의 히브리어는 '아타'(* )로서 '지금에야','방금에야'란 뜻이다. 따라서 이것은 현재를 시점으로해서 과거와 미래의 인생관이 전적으로 변화되었음을 암시한다. 또한 '내가 알았도다'란 말은 히브리어의 '야다에티'(* )로서 '내가 깨달았다.' 또는 '내가 알아차렸다'라는 의미의 현재형 동사이다. 이것은 과거에는 몰랐던 사실을 이제 비로소 분명히 깨닫고 있음을 보여 주는말이다.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시므로 - 이드로는 여기서 다른 모든 이방신, 즉 자기가섬기던 신을 포함하여 애굽의 모든 여러 신들이나 다른 부족들의 신들보다 여호와의능력이 더 위대함을 증거하였다. 그런데 이 표현을 다른 신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즉다신교(多神敎) 사상의 표현이라고 볼 수는 없다. 단지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의 위대함을 다른 이방인들이 섬기는 신들과 비교하여 수사학적으로 강조한 것 뿐이다. 즉 이것은 홍해 바다에서 구원받은 후 이스라엘이 올렸던 찬양이나(15:11), 시편의 노래 가운데 자주 나타나는(시 136:2,3) 표현과 같은 것이다.
======18:12
번제물과 희생 - 문자적으로는 '번제용 제물과 그 외 다른 제사들을 위해 드릴 여러가지 희생 제물들'이란 뜻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드로가 번제 뿐만이 아니라, 다른감사 제사도 함께 드렸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여기서 '번제'는 제물을 온전히 태워서드리는 제사로서<레 1:3-9 강해, 번제에 대하여>, 드리는 자의 전적 헌신을 상징한다.따라서 번제는 이스라엘 초기 역사 때부터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예표하는 희생 제사로 간주되어 왔다(10:25;창 4:3, 4;8:20;22:2-13). 하나님 앞에서 떡을 먹으니라 - 모세와 아론 및 장로들이 이드로의 제사에 참석하고, 그 음식으로 그와 함께 친교의 공동 식사를 나눴다는것은 이드로가 드린 제사의합법성, 즉 그가 드린 제사가 하나님께 합당한 것이었음을 인정하는 행위였다. 여기서우리는 이드로가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그가 새로운 여호와 신앙을 가짐으로써 이제하나님과 교제함에 있어서 아무런 결격 사유가 없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중대한 예표론적 의미를 지니는데, 곧 오늘날 유대인과 이방인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이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생명의 자리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요 6:35).
======18:13
모세가 백성을 재판하느라고 앉았고 - 당시 모세는 분화(分化)되지 못한 행정 조직 때문에 종교적인 일은 물론 사사로운 민사 소송까지 처리해야만 하는 격무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달리고 있었다.
======18:14
어찌하여 그대는 홀로 앉았고 - 당시 이스라엘의 인구는 여자와 어린아이를 제외하고도 장정만 60만 가량이었다(12:37). 따라서 이러한 거대 집단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사소한 것들을 차치하고라도 무수히 많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관리하기 위하여서는 당연히 분화된 행정 조직이 필요하였는데 미처 모세는 이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드로는 모세에게 조언해 줄 필요성을 느꼈을 터인데, 이에 그는 먼저 모세의 비능률적이고도 불합리한 행정 처리 방식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18:15
하나님께 물으려고 내게로 옮이라 - 여기서 '묻다'에 해당하는 '다라쉬(* )는 원래 '따르다', '밟다', '찾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뜻을 좇으려고 묻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와같이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하여 백성들이 모세에게로 나아왔다는것은 곧 모세의 판결이 신탁재판이었음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을 당신의뜻대로 통치하시기 위하여 모세를 대리자로 세우셨으며 그에게 지혜와 성신의 감동을덧입히셨던 것이다(4:12). 이러한 역할은 모세 사후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이 담당하였는데,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계시를 받아 이를 백성들에게 증거하는 일을 하였다.그러나 오늘날에는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 신구약 성경 66권에 총체화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데 더이상 특별한 중재자가 필요하지 않다. 따라서우리는 날마다 성경을 상고할 뿐 아니라(행 17:11)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전심 전력해야 할 것이다(살전 4:3-8).
======18:16
일 - '명령하다', '선언하다'는 뜻의 '다바르'(* )에서 온 말로 재판상 판결을 필요로 하는 사건이나 소송을 가리킨다. 율례와 법도를 알게 하나이다 - 당시는 율법이 주어지기전 상황이었으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른 모세의 판례 원칙이 곧 백성들이 믿고 따라야 할 유일한 하나님의 불문율(不文律)이 되었다. 그러나 시내산에서 성문법(成文法)이 주어진 이후에는 지도자들이 이 법을 각 경우에 잘 적용하기만 하면 되었다(20절).
======18:17
그대의 하는 것이 선하지 못하도다 - 이드로가 모세를 향해 '선하지 못하다'고 말한 것은 모세의 행위가 윤리적으로 악하다는 것이아니라, 비능률적이라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이는 '선하지 못하다'에 해당하는 '로 토브'(* - )가 '좋지 못하다'는 의미란 점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Gipsen).
======18:18
그대와...기력이 쇠하리니 - 여기에서 '기력이 쇠하다'란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나벧'(* )은 '시들다', '떨어지다', '실신하다'는 뜻이다. 모세가 비록 하나님의 일에 충성된 자이며(히 3:5), 그의 성품이 세상의 모든 사람보다 더 온유하다(민12:3) 할지라도 그가 하나님 보시기에 지혜롭지 못한 방법으로 일을 처리한다면 오래가지 못해 육체적인 연약함으로 인하여 기진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일을 행할 때에 인간적인 차원의 모든 지혜와 경험을 선하게 활용하여야 한다.인간 능력의 한계점에 다다를 만큼 이모저모로 최선을 다했을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은은혜의 빛을 발하여 우리를 위하여 역사하실 것이다(마 10:16;딤전 4:15). 그리스도께서도 지상 사역시 12제자 선정 훈련, 2인 1조의 70전도의 파송(눅 10:1)등 조직적으로사역하셨음을 볼 수 있다. 그대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 -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반드시 공동 사역의 원리(롬 12:4-8)가 적용되어야 함을 시사하는 말이다. 이 원리는 신적 기원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도 창조 사역과 구속 사역을 삼위(三位)의 아름답고도, 완벽한 협력으로 공동 사역하셨기 때문이다(창 1:26). 동시에 이 원리는 믿는 자의 공동체원리(엡 4:4)및 지체(肢體) 원리(고전 12:27-30)와 맥을 같이 한다.
======18:19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있어서 -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 서서 중재 사역을 하는 모세의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소송을 하나님께 베풀며 - 백성들이 가져오는 문제나 사건들의 옳고 그름을 판별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로 아뢴다는 의미이다. 이드로는 모세가 중재자로서 백성을위하여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그들의 문제를 스스로 판단하거나, 그들에게 진리를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먼저 백성들의 모든 문제들을 하나님앞에 아뢰는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18:20
율례와 법도 - 율례와 법도의 차이는 분명치 않지만, 보통 '율례'(* , 호크)는종교법, '법도'(* , 토라)는 시민 생활에 관계된 일반법을 뜻한다. 그러나 대개는 '하나님의 온 율법'을 강조하는 중언법적(重言法的)의미로 쓰인다(신 5:1).
======18:21
재덕이 겸전한 자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안쉐 하일'(* - )은 '힘이 있는 자들' 또는 '능력이 있는 자들'을 말한다. 그런데 신앙의 지도자는 그 능력의원천이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기 때문에, 이드로는 그 능력의 조건을 다음 세 가지로제시한다. 즉 (1)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2) 거짓됨이 없는 진실한 자 (3) 재물에 청렴 결백한 자이다. 진실 무망 하며(* ,아쉐 에메트)- '진실한 사람들' 또는 '진리의 사람들'을 뜻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꾼들을 세우실 때 무엇보다 당신의 진리의 말씀을 준행하며 따르기 원하는 진실된 자들만을 원하신다. 왜냐하면 이런 자들만이 환경과 형편을 초월한 채 하나님을 향한 굳센 믿음 위에서 백성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잘인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 - '불의한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베차'(* )는'약탈하다'를 뜻하는 '바차'에서 유래하였다. 따라서 그 의미는 '불의를 행함으로 얻은 이익'을 말한다. 그런데 하나님에 의해 세움을 받는 지도자는 이러한 개인적인 탐욕을 버리고 물질에 대하여 청렴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돈을 사랑함은 일만악(一萬惡)의 뿌리가 되며(딤전 6:10),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기 때문이다(약 1:15).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 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 이러한 행정 조직의 특색은 언제라도 군사 체제로 전환시킬 수 있는 준(準)군사 체제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즉이 부장 제도는 오늘날의 분대, 소대, 중대, 대대라는 군사 체제를 쉽게 연상시켜 준다. 아마 모세가 이스라엘의 행정 조직을 이처럼 정비한 까닭은 이스라엘이 현재 가나안 정복 전쟁을 앞두고 민족 이동 중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신 1:13,15).
=======18:22
때를 따라...재판하게 하라 - '때를 따라'란 '시종 어느 때나'. '항상'을 뜻한다.과거에 모세는 그때그때 재판 날을 정하여 홀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백성들의 문제를판결하였다. 따라서 약 200만의 백성들이 임시 재판 날에만 와야 했기 때문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줄을 서서 기다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각 지파 안에 세워진 지도자들에게 언제라도 재판을 받을 수가 있게 되었다. 여하튼 이번의행정 조직 확립으로 인하여 사법(司法)에 관계되는 일 뿐만 아니라 보다 효율적인 전투 수행, 보고 상달, 지시 사항 하달 등이 용이하게 되었다.
======18:23
하나님께서도...인가하시면 - 하나님앞에 겸손한 이드로의 신앙 모습을 잘 보여 준다. 즉 그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세우는 인간의 계획이나 지혜, 방법, 수단 등이 비록 아무리 훌륭하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이를 허락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역에 백해무익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서, 먼저 모세에게 하나님으로부터 부장(夫長) 제도에 대한재가를 얻도록 권면한 것이다.
======18:24,25
장인의 말을 듣고...삼으매 - 신명기의 기록에 근거하면(신 1:13-15), 이때 모세는지도자들을 자신의 지혜에 따라 선택한 것이 아니라, 각 지파들에게 근본 취지를 알리어 동의를 얻은 후(신 1:13, 14),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지파에서 지혜와 지식이 있는 유명한 자들을 스스로 선택하게 하였다(신 1:13, 15). 이러한 사실은 당시 모세가얼마나 신중한 인물이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실례가 된다. 백성의 두목 - 이드로의 충고를 받아들여 세워진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십부장'들은 단순한 재판관이 아니라, 그들에게 맡겨진 조직의 '우두머리'로서 행군시에는 그들의 앞장에 서서 행군하며, 전쟁시에는 '군대 장관'이 되었다(민 31:14).
======18:26
쉬운 일은 자단하더라 - 당시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들은 모세처럼 하나님과 교제 속에서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충분히, 명확하게 감지할 수는 없었다.따라서 그들은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은 후 그것에 따라 지혜롭게 백성들의 문제를 판별하기 전까지는 상식선에서 다룰 수 있는 쉬운 문제들만을 처리하였던 것이다.
전장에서 우리는 르비딤 반석의 생수 사건과 이스라엘이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사건을 살펴보았었다. 그런데 이제 본장에는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 세를 방문하는 기사(1-12절)와 이드로의 조언으로 이스라엘 행정, 재판 체계를 정비한 사건(13-27절)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이러한 본장 전체에서 우리가 확연히 느낄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안정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고난의 길로 표현되는 광야 생활에서 이스라엘이 이토록 활기찬 모습으로 묘사된 곳은 퍽 드물다. 이는 아말렉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17장) 전능자 여호와를 향한 신앙심과 모세의 지도권에 대한 신뢰가 싹텄기 때문이다. 이 평온한 시기에 모세의 장인(丈人)이며, 미디안의 사제인 이드로가 이 광야 공동체를 방문한다. 이드로의 체류 기간은 이틀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모세 개인적으 로는 그리운 사람들을 만난 기쁨의 순간이었으며 이스라엘 전체에게는 새로운 조직 체제를 정비하심으로써 활력찬 사회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상에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두드러진 것은 다음 다 가지이다. 첫째, 이드로를 만난 모세의 기쁨에서 성도의 참된 교 제의 전형을 발견하게 된다. 믿음으로 사는 자들은 그간에 이루어졌던 은혜의 체험을 공유함으로써 더욱더 하나님 앞에 하나가 될 수 있다. 이는 전 성경 역 사에 드러나는 것으로 다윗과 요나단의 재회(삼상 24:16-18), 디모데에게 보낸 바울의 서신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둘째, 시내 산에서 하나님과 계약을 맺기 전, 스스로 자신들의 내면 세계를 정비한 이스라엘의 모습을 통해서 은총이 역 사에 동참하는 모든 인간은 하나님 나라 건설에 앞서 해야 할 일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한 준비과정으로서의 철저한 회 개와 이를 통한 전인격적인 변화이다. 이는 예수께서 사역하시기 바로 직전에 그분의 길을 예비키 위해 세례 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 3:2)고 외친 사실에서 다시 한번 더 확인할 수 있다. 즉 새 포두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이, 구원을 얻은 모든 자들은 새로운 마음으로 새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1. 재회(再會)의 기쁨과 감사의 교제(18:1-12)
본문은 본장의 서론이자 도입부로 모세의 장인인 제사장 이드로가 모세의 처자들을 데리고 모세를 방문하는 기사가 언급되고 있다. 출애굽의 사역을 담당하기 위해 가족과 헤어져야 했던 모세가(4:18) 이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하나님의 인도에 의해 가족들과 만났다(1-7절). 망명 시절 은혜를 베푼 장인과 망명의 아픔을 이름 속에 넣어 고통을 현재화한 편린(片鱗)인 자식들과의 만남 , 하나님께서 이들을 재회하게 하신 것은 출애굽 이후 모세에게 주신 최대의 선물이다. 그런데 헤어진 가족과의 상봉은 인간의 어떠한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 는 감격적인 것이지만, 본문에는 이러한 가족 상봉의 기쁨이 극도로 간략히 표 현되어 있다. 대신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기리고 있는 모세의 모습 이 크게 부각되어 있다. 즉 모세는 자신의 인간적인 정리와 회포를 풀기에 앞서 자신의 삶을 지켜 주신 하나님, 이스라엘 민족의 전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 님을 증거하기에 여념이 없는 것이다(8절). 또한 이드로 역시 이방인이라고 무 시할 존재가 아니다. 그는 미디안의 사제로 하나님(El)의 존재를 믿어 왔으며, 결국 모세의 간증을 통해 그 하나님이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임을 알았고, 그 구원하심을 찬양하였다(9-12절). 특히 그가 놀라와 한 것은 당대의 최강국 애 굽을 굴복시킨 여호와의 능력이었다. 아무도 애굽의 강압적 통치에서 벗어난 민족이 없었고, 노예의 사슬에서 자유인으로 해방의 기쁨을 쟁취(爭取)한 역사 없었다. 그렇기에 이길 수 없는 강대한 적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의 승리(삼상 17:1-58)처럼 불가능을 실현한 하나님의 능력에 그는 단지 놀랄 뿐이었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되는 일, 그것은 대화가 있고 내면의 교제가 흐르는 삶이 다. 인간 개개인은 서로의 체험 속에 공유(共有)적 부분을 발견하고 그 경험을 나눌 때 비로서 참된 만남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모세와 이드로는 서로의 공통 점을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서 찾았다. 예배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감사와 찬양, 동시에 신자와 신자를 연결시키는 최상의 끈이다. 그러기 에 적어도 모세와 이드로와 백성들 간에는 서로를 불신할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 사역자와 가정의 역할.
주의 부름을 받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 사역자로 서 가장 끊기 어려운 것은 가정에 대한 책임이다. 모세는 피 할례 사건 이후 자신의 사역지에 가기 예상할 때, 가정으로 인한 결단력 부족을 피하기 위한 당연한 조치였다. 이처럼 사역자들은 모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부름에 나설 때 결연(決然)한 행동을 취해야 할 때가 종종 있다(마 18:29). 그러나 모 세의 이러한 결단이 곧 가족과의 모든 관계를 완전히 청산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별거는 잠시 동안이며 사역을 마쳤을 때, 하나님의 은혜 로 다시 결합하게 된다. 결합은 인륜의 법이며 하나님의 또 다른 명령이다(벧전 3:7).
하나님은 단지 가정이라는 사사로운 인간적 정분(情分)때문에 하나님 나라의 대의(大義)를 그르치는 점을 염려하실 뿐이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은 결코 인 간의 희생을 원치 않으신다. 즉 인간의 행복을 파괴하거나 맹목적 헌신을 강요 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사역자에게 따뜻한 위로의 장소로서 가정을 허락하시며, 이 가정을 통해 삶의 의욕을 오히려 사역자에게 따뜻한 위로의 장소로서 가정 을 허락하시며, 이 가정을 통해 삶의 의욕을 주시고 일을 성취해 나가는 목적을 부여하신다. 뿐만 아니라 가정의 행복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기쁨이 얼마나 지대할 것인지를 암시적으로 보여 주신다.
* 성도의 교제와 친목.
모세와 이드로의 만남에서 나타난 아름다운 모습을 그 리스도인의 참다운 교제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 주는 좋은 예이다. 세속 사 회에서 인간의 교제는 우정(友情)이라는 아름다운 매개체가 있음에도 진실한 만남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더욱이 모든 가치를 척도를 돈으로 환산하려는 황금 만능주의가 판치는 현대 사회의 경우 더욱 그렇다. 참된 교제에의 정도를 흐려 놓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성도들 중에도 보다 적극적으로 불신자들이 취하는 이해 득실이라는 관계의 틀에서 모든 것을 판단, 행동하려는 자들이 중심에 그리스도를 중개자로 한 사랑의 교제가 이루어지는 것을 방해한다. 그리고 범속한 세계의 가치관을 대화의 주제로 삼게 함으로써 진실한 만남을 차단시 킨다. 그러나 모세는 이드로 앞에서 결코 세속적 가치 기준인 명예와 자신의 출세에 대해 자랑치 않았다. 오직 사랑 안에서 교제를 나누었다. 따라서 이 둘의 만남은 장인과 사위라는 혈연적 차원을 초월하여 초대 교회 성도들처럼 하나님 안에서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힘쓰는(행 2:40-42) 아름다운 만남이었다. 이처럼 성도간의 교제는 성령 안에서 하나되는 영적인 교제가 우선 되어야 한다.
2. 이스라엘 행정 체계의 정비(18:13-27)
본문은 모세를 방문한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조언에 의해 이스라엘의 행정, 사법 조직이 체계적으로 정비되는 장면이다. 모세의 직무를 지켜 본 이드로는 그가 무리한 일을 집행하고 있다고 였다(13-16절). 그리하여 그는 모세에게 부장 제도를 확립할 것을 조언하였다(17-23절). 이에 모세는 그 조언의 타당성 을 인정하고 쾌히 받아들임으로써 행정 체계가 정비된다(24-27절). 이상과 같은 이드로의 판단은 옳은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더 이상 야곱의 가족으로 머물러 있지 않았다. 즉 하나의 민족 국가를 형성할 수 있는 거대한 집단이었다. 소그룹은 지도자의 개인적 능력 여하에 따라 그 앞날이 좌우되지만, 한 국가는 개인의 능력으로 이끌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이스라엘은 마치 확대된 가부장적 사회와 같았다. 격무에 시달린 모세나, 그의 지도력이 미치지 못하는 백성들 모두에게는 불만이 깃들 수밖에 없었다. 변화된 사회를 수용하지 못하는 사회 체제는 반드시 무너진다는 것을 역사의 순리(順理)다. 이스라엘 역시 이러한 위기의 순간이 다가왔으며, 이러한 위기를 포착한 이드로의 통찰력은 정확한 것이었다.
한편 이러한 시점에서 모세는 이드로의 제안을 수용하여 이스라엘 행정 체계의 정비라는 일대 개혁을 단행한다. 여기서 우리는 자신의 힘의 한계를 인정하 고 겸손히 양보할 줄 아는 모세의 포용성과 겸손의 정신을 발견할 수 있다. 또 한 변화의 시점을 바로 깨달아 이를 수용, 적극적으로 대처할 줄 아는 치자적( 治者的) 기지(氣志)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이에 반해 오늘의 교회가 폐쇄 된 세계관 속에 답보(踏步)하는 이유는 변화된 세계에 복음의 문을 닫아 버리려는 독단적 순백주의 때문이다. 에쎄네(Essenes)파나 은둔주의자들이 그들의 경건성에도 불구하고 그 영향력을 사회에 전하지 못한 것은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구시대적 관습에 머물려 했기 때문이다. 새 시대에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기 원하는 자라면, 자신의 몸을 낡은 구습(舊習)에서 변화시켜야 한 다. 모세는 과겅에 연연하지 않고 새로운 조직 체제를 구성함으로써 장차 가나 안에서의 생활을 위한 체제 정비를 꾀하는 한편 앞으로의 험난한 광야 여정에 대한 순조로운 준비를 하였던 것이다.
* 진정한 조언(助言)과 수용 자세.
한 사회에서 노인이 우대받아야 하는 이유 는 그가 과거에 사회를 위해 공헌했기 때문이 아니라, 과거 경험을 풍부히 갖고 있는 산 증인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우리가 익히 알다시티 노인들은 실패와 성공의 원인을 경험해 왔고 인생을 객관적 위치에서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서 있다. 이드로의 조언이 모세에 의해 수용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장인아라는 인척(姻戚)관계에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처럼 경험에서 우러난 충고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현시점에서 볼 때 지극히 당연하고 합리적이며 시효 적절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충고에는 사욕이 없었다. 인간 관계에서 이루어 지는 허다한 대화가 자신의 이익을 반영하는 것들임에 반해 이드로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선을 이루어 나갈 수 있는 참다운 길을 제시했을 뿐이다. 이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사심없이 서로를 격려하는 것은 하나님 안에서 화목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한편 여기서 우리가 기억하여야 할 또 한가지 사실인 이러한 충고를 받아들인 모세의 자세는 우리에게 더 큰 감동과 교훈을 준다. 모세는 하나님과 직접 교통할 수 있는 영력이 뛰어난 자요, 200만의 백성을 치리하 는 권세 있는 자요, 목동에서 통치자로 출세한 자였다. 따라서 졸부(拙富)의 재산이 그를 교만에 빠뜨리듯이 모세의 성공은 그를 교만에 빠뜨릴 충분한 소지를 안고 있었다. 그러나 모세는 이러한 모든 여건에도 불구하고 세속적 기준에 흔들림이 없이 장인 이드로의 제안을 받아들여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 이처럼 위대한 용단을 내릴 수 있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인지를 물어보라는 이드로의 자세(23절)나, 그 말을 실천한 모세의 행동(24- 26절)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본받아야 할 올바른 충고와 그 수용 태도이다.
* 직무의 분배와 협력의 자세.
근대 산업 혁명의 놀라운 성과는 생산성의 향상이었고, 그 기반은 노동의 분업화였다. 물론 이러한 분업화의 논리는 그 자체 안에 많은 모순점을 이스라엘 민족의 내부 문제 해결에는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이스라엘을 치리하는 모세의 사역은 혼자 서 감당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비능률적인 일로서 모세에게는 견딜 수 없는 육체적 과로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불평 불만을 안겨줄 수밖에 없었다. 따라 서 모세는 자신의 직무를 분담할 대리자들을 선정함으로써 이 문제들을 동시에 해결하였던 것이다. 한편 이와 같은 직무 분담의 원리는 현대 교회 체계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즉 현대 교회가 목회자에게 과중한 업무를 짊어지게 하 는 것은 비능률적이라 할 수 있다. 행정과 목회는 분리되어야 한다. 역으로 목회자가 재정 업무까지 손댔다면 교회 내에 불협화음이 발생한 소지가 많다. 따라서 목사는 성도들을 말씀으로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고 재정 업무는 장로나 회계 집사가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스스로 이 루어 나가시지만, 교회를 통하여 명하시기를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빌 1:27) 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세임을 알리셨다. 초 대 공동체가 재덕을 겸한 자에게 하나님의 일을 맡겼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 날에도 이러한 직무 분담은 필요하다. 따라서 현대 교회도 목회와 행정의 분리 를 통하여 교회내에서 일어날 수 있는 마찰의 소지를 미연에 방지하고 오직 복 음 전과 사역과 대 사회적으로 빛과 소금의 사역을 감당키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