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1절
이스라엘 - 45:28 이어 계속해서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표기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즉 이는 야곱의 애굽 이주가 단순히 개인적으로 기근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장차 형성될 언약백성(28:10-14) 대표자로 이주하는 것임을 시사해 준다.
발행하여(* 나사) - (장막말뚝을) '뽑다'. (여행을) '출발하다', '행진하다'는 뜻이다. 이는 곧 야곱이 오랫동안 거주하던 장막을 걷고 헤브론(37:14)에서 떠나는 것을 가리킨다.
브엘세바에 이르러 ...희생을 드리니 - 브엘세바는 야곱의 조부 아브라함(21:33)과 아버지 이삭(26:25)이 상당 기간 동안 머물면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던곳이다. 그런데 야곱이 애굽으로 이주하는 도중 이곳에 이르러 제단을 쌓은 까닭은언약의땅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이주하는 것이 정녕 하나님의 뜻인지 재삼 확인하기 위하여서였을 것이다(Rosenmuller).
====46:2절
이상 중에 - 성경에는 밤에 이상을 보는 일이 여러번 기술되어 있다 (유4:13 ;20:8;33:15;단 2:19등). 이것은 단순한 꿈을 가리키는데도 사용되었으나 ( 사29:7)대부분의 경우에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게시전달 방법의 한 방편으로 이용되었다(37:5). 야곱아 야곱아 - 하나님께서 야곱을 부르시되 '이스라엘아' 하시지 않고 굳이 '야곱아'라고 하신데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곧 이스라엘로 칭함 받기이전의 야곱 시절에도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고 권념하셨던 것처럼 앞으로도그가 어디로 가든지 여전히 함께 하실 것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28:15). 그리고 연거푸 그의 이름을 부른 것은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의 확실성을 강조하기위함이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 하나님의 부르심은 항상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위치를확인케 한다(22:1 ;삼상 3:10).
====46:3절
나는 ....네 아비의 하나님이니 - 하나님은 야곱에게 계시를 주시기 전에먼저 당신이 누구이신가를 밝히셨다. 특히 여기서 하나님은 그의 명칭 중 '엘'과'엘로힘'이란 명칭을 반복시킴으로써 '자신의 전능하심'을 강조하고있다. 즉 자신은 천지를 창조한 분이시며 동시에 그의 조상들을 지켜 주시고 언약을 주신 유일한 하나님임을 보인 것이다(1: 1 ;출 3장, 하나님의 이름).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 - 야곱이 애굽 이주를 두려워한 이유는 향후미지의 땅에서 전개될 새 생활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기도 하지만 보다 주된 이유는① 조부아브라함이 애굽에서 큰 위험에 빠질 뻔한 일이 있었고(12:14-20) ②부친 이삭에게는 애굽이주가 금지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26:2).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 벧엘 언약(28:14)이후 거듭 주어지고 있는 약속(35:11)으로 반드시 약속하신 바를 이루어 주리라는 확약이자 비준의 의미를지닌다.
====46:4절
너와 함께...내려가겠고 - 무소 부재(無所不在)하신 하나님께서 야곱이 어디에우거하며 어디로 이동하든 늘 함께 하시며 지켜 주시겠다는 뜻이다.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 이 약속은 두 가지 측면에서 온전히 성취되었다. 첫째 개인적으로 야곱 사후 그의 뼈가 아들들에 의해 가나안 땅에 돌아와묻힌것(50:13)이다. 둘째, 민족적으로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도자 모세의 인솔하에 출애굽한 후 가나안 땅으로 귀환한 것이다(수28:3, 4). 요셉이...네 눈을 감기리라 - 요셉이 지켜보는 가운데 야곱이 임종하게 되리라는 뜻인데 이처럼 사랑하는 가족들이 둘러선 가운데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가장 복되고도 평안한 죽음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은 훗날 요셉에 의하여 그대로 성취되었다(49:33-50:3).
===46:5절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발행할새 - 야곱이 브엘세바에 머문 시간은 그리 긴 것 같지 않다. 고작 하룻밤이었거나 이삼 일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브엘세바에 도착하였을 때와 지금 떠날 때의 상태는 완전히 다르다. 즉 그는 두려운 마음으로 도착했으나 이제 떠날 때는 하나님의 분명한 뜻과 약속을 받고서 담대하게 애굽으로 향하게 된 것이다.
====46:6,7절
야곱...애굽으로 갔더라 - 이때 야곱의 나이는 130세로(47:9)아브라함이 소명을 받은지 215년 후인 B.C. 1876년경이다. 이러한 야곱의 애굽 이주는 곧 이스라엘 민족이 400년간 애굽에서 종 노릇하리라는 예언(14:13)성취의 전조가 되는데 400년 후에는 다시금 약속대로 출애굽하게 될 것이다<4절>.
===46:8절-27절
애굽으로 이주한 야곱 가족의 명단이다. 그런데 이들의 총수가 우연찮게 70명인 점은 중요한 영적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70은 7x10으로 구성된 수로서 히브리인들의 숫자 개념에 의하면 7은 하나님의 신성을 상징하며, 10은 완전수 또는 만수를 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애굽으로 이주한 야곱의 가족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부름받아 그분의 권속이된 모든 성도들을 예표하는 총수임을 알 수 있다.
====46:9절
르우벤의 아들 하녹 - '시작'이란 뜻으로 그로 말미암아 르우벤 가문의 제2대가 비롯되는 것을 의미하는 이름이다.
====46:10절
가나안 여인 - 당시 야곱의 아들은 일반적으로 메소포타미아 여인을 취하여 아내로 삼은 것 같다. 여기서 '가나안' 여인이라고 특별히 밝힌 것은 그러한 일반적인 사례와는 다른 경우였기 때문일 것이다.
====46:12절
베레스와 세라 - 유다가 며느리 다말과 관계하여 낳은 아들들로 이 중 베레스는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 조상이 되었다<38:29,30>.
===46:13절
욥 - '원하다'는 뜻인데 민 26:24; 대상 7:1에는 '야숩'으로 나와 있다.
===46:15절
레아가...낳은 자손들이라 - 이처럼 야곱의 후손들이 모계(母系)를 따라 언급된 까닭은 야곱의 열 두 아들들이 각각 네 명의 어머니로부터 출생한 이복 형제들일뿐 아니라 어머니의 지위에 따라 어느정도 서열에 구분이 있었기 때문이다(29:31-30:24;35:16-18).
===46:17절
이스와와 이스위 - 아마 이들은 쌍동이였던 것 같다.
===46:20절
므낫세와 에브라임 - 41:50-52에서 이미 상세히 언급되었는데 그 이름의 뜻은 각각 '잊어버림'과 '풍성함'이다.
===46:23절
후심 - 민 26:42에 나오는 '수함'과 동일 인물인 것으로 추정된다.
===46:26,27절
애굽에 이른자 - 본절에 의하면 야곱의 가족으로서 애굽에 이주한 자의 총수는 야곱 자신과 이미 애굽에 거주하던 요셉 및 그의 두 아들을 제외할 경우 66명, 그들을 모두 포함시킬 경우 70명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행 7:14에 의하면 이와는 달리총 75명으로 나와 있다. 따라서 일부 성급한 사람들은 이를 성경 자체내의 모순으로 단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75명이란 숫자는 70명의 숫자에 요셉의 다섯 손자들(50:23)을 더한 수일 뿐이다. 따라서 구약과 신약의 기록간에는 전혀 모순이 존재하지 않는다(Pulpit).
===46:28절
야곱이 유다를 요셉에게 미리 보내어 - 2차 애굽 방문 때의 공적(44:18-34)으로 인해 야곱은 유다를 매우 신임하였으므로 가족을 대표하여 그를 요셉에게 보낸것 같다.
===46:29절
보이고(* ,라아) - '증명해 보이다', '인지시키다', '제시하다'는 뜻으로자신이 요셉임을 야곱에게 눈으로 확인시키는 것을 가리킨다. 목을 어긋맞겨 안고 얼마 동안 울매 - 22년 만의 부자간의 상봉, 그것도 이미죽은 지 오랜 줄로 알았던 아들과 아버지 간의 극적인 만남에 따르는 감격과 기쁨은눈물과 울음 외에는 달리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46:30절
지금 죽어도 가하도다 - 요셉 사건(37:31-35)으로 인해 평소 야곱의 가슴속에 얼마만큼 뿌리 깊은 한이 어려 있었는지를 잘 보여 주는 말이다. 따라서 그와 같은 한이 풀린 지금에서는 이제 죽어도 좋을 만큼 여한이 없게 된 것이다. 루터는 이 구절을 '이제 나는 기쁘게 죽을 것이다'(Ich will nun gerne sterben)라고 번역하였다.
====46:31절
그 형들과 아비의 권속 - 여기서 '권속'에 해당하는 '바이트'(* )는'집', '가족'을 뜻한다. '그의 형들'은 마땅히 '아비의 권속'의 일부이지만 그럼에도'그의 형들'을 따로 부각시킨 것은 그들의 개체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46:32절
업(* , 마아세) - '행위' 혹은 '일'(work)을 뜻한다. 47:3에서는 '생업'으로 번역되어 있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니 - 애굽인들이 목축업을 가증히 여기는 이유는 (1)전통적으로 농경민이었던 애굽인들이 다른 직업에 대해 지녔던 이질감 및 배타 심리(Keil)
(2)목자들은 교양 없고 거칠며 야만적이라는 강한 편견(Hengstenberg)
(3)역사 초기에 유목 민족에게 침공당한 뼈저린 경험에서 기인된 피해 의식(Rosenmuller)
(4)자신들이 신성시하는 짐승들을 죽이는데 대한 깊은 경멸감(Aalders)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하튼 하나님은 애굽인들의이러한 풍조까지 이용하여 당신의 백성들이 구별된 삶을 살도록 섭리하셨다. 한편여기서 '가증히'에 해당하는 '토에바'(* )는 '구역질 나는 것', '혐오','몹시 싫어함'을 뜻한다.
본장은 족장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겨 오던 믿음의 후손들이 이제 커다란 민족으로 성장하기 위하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장면이다. 이것은 횃불 언약(15:13-17)중 '이방에서 객이 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인 동시에 장차 정화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될 출애굽 사건의 시작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야곱 일가의 애굽 이주(移住)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시작됨과 아울러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는 분임을 증거한다.
여호와께서 언약을 성취하시는 분임을 강하게 증거하는 근거(根據)는 본장에서 족장 이름이 야곱이라는 실명(實名)대신 이스라엘이라는 언약의 명칭(32:28)으로 계속 불리어졌다는 점(1,2,5,8,29,30절)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이러한 본문은 크게 3부분
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7절은 애굽 이주에 대하여 일말의 두려움을 지니고 있던 야곱에게 하나님이 분명한 뜻을 계시해 주는 부분이다. 그리고 8-27절은 야곱을 따라 애굽으로 이주한 선민(選民)이스라엘의 명단이다. 마지막으로 28-34절은 야곱과 요셉의 극적인 재회와 야곱 일행이 고센 땅에 정착하기 위한 준비 과정을 다루고 있는 부분이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 하나님은 틀림없이 언약을 지키시지만 유한(有限)한 인간은 하나님의 원대하신 계획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상황이 변화될 때마다 두려워한다.즉 야곱은 아들 요셉의 소식을 듣고 고조된 감정 가운데 애굽 이주를 결정했으나,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기에 두려워했던 것이다. 하지만 두려움에 사로 잡힌 인간이 하나님앞에 나아갈 때(1절), 하나님은 언약에 기초하여 따뜻한 위로를 베풀어 주신다(3절).
오늘날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을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셨다(요 3:16).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나 다 그 초청에 응답해야 할 것이다. 만약 하나님의 원대한 뜻을 알지 못하기에 그리스도께 나아가기를 주저하는 자라면, 겸손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야곱의 희생 제사는 바로 자신의 망설임에 사로잡히지 않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겸허한 자세를 갖추었음을 의미한다(1절). 따라서 우리도 그리할 때 언약에 근거한 하나님의 위로와 아울러 명백한 하나님의 뜻이 임할 것이다.
1. 야곱의 머뭇거림과 하나님의 명령(46:1-7)
본문은 애굽 이주길에 오른 야곱이 중도에 하나님의 뜻을 묻자(1절), 하나님이 이상 중에 나타나셔서 안심하고 애굽으로 내려가라고 지시하시는(2-5절) 부분이며, 이에 야곱이 힘을 얻어 애굽으로 길을 떠나는 장면이다(6,7절). 이러한 본문은 우리들에게 몇가지 사실을 생각하게 하고 교훈을 얻게 해주는데 곧 다음과 같다. 첫째, 야곱이 잃었던 아들을 생전에 다시 보게 된다는 감격 때문에 애굽 이주 결정을 아주 쉽게 내렸다는 점이다. 그러나 인간은 격한 감정이나 흥분이 가라앉게 되면 냉정해지듯, 야곱도 여행 도중 자신의 결정이 경솔함을 깨달았다. 즉 야곱은 하나님께서 선조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은 가나안이며(15:18), 반대로 애굽은 아브라함에게 곤경을 준 땅이요(12:14-20), 부친 이삭에게는 하나님의 '거주 금지 명령'이 내려진 땅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26:2) 심한 갈등을 겪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야곱이 애굽 이주 결정을 하기 전에 하나님께 이 문제를 물었다면, 이러한 고뇌는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아마 하나님께 삶의 이정표(里程標)를 보여 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데서 오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고뇌도 다 이와 같은 것이리라 여겨진다.
둘째, 야곱은 뒤늦게나마 이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하나님께 애굽 이주의 뜻을 물었다는 점이다. 야곱이 희생 제단을 쌓은 브엘세바는 가나안 땅의 남쪽 경계선으로 그가 고민에 가득 찬 행진 끝에 가나안을 벗어나기 직전 하나님 앞에 자기의 삶을 드렸음을 보여 준다. 대부분의 성도들 역시 자신의 고뇌로 인한 생의 방황을 겪을 대로 겪은 후에야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푸근한 이유는 이러한 인간의 고민을 모두 받아 주시고 그 문제를 친히 해결해 주신다는 데에 있다.
세째, 야곱에게 계시하신 하나님의 응답은 즉각적인 것이었다는 점이다. 주님은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시지 않으신다(암3:7).사실 야곱의 고민도 선조들에게 내린 언약을 신앙 안에서 깊숙히 생각했더라면 충분히 해결될 수 있는 것이었다. 성숙한 성도들 역시 상황 속에서 부딪치는 고민을 말씀 속에서 깊이 상고한다면 그 상황을 통해 역사하시는 원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 야곱에게 주어진 네 가지 약속. 경황 중에 애굽 이주 결정을 내린 야곱은 이 경솔한 판단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걱정하며 하나님께 기도드린 바, 주께서는 그의 간절한 기도에 네 가지 구체적인 약속을 하셨다.
첫째,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이는 먼 미래에 대한 약속이다. 야곱의 후손은 애굽인에게 비할 수 없는 연약한 자들이나, 이미 아브라함(12:2 ;13:16)과 이삭(26:4)에게 약속하신대로, 그리고 벧엘(28:14 ;35:11)에서 말씀하신대로 훗날 애굽 족속을 능가할 만큼의 큰 민족을 이루게 되었다(출1:7-9). 둘째,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인간이 어디를 가든지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그의 삶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소유해야 한다. 이스라엘이 강대한 민족들의 틈바구니에서 끝까지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째, '정녕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이는 가나안 땅에 대한 언약이 변치 않을 것임을 의미한다.어느 때이건 간에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의 대전제는 변하지 않으며 다만 그에 따른 구체적 상황만이 변할 뿐이다. 네째, '요셉이 그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이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15:5)이라는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대로 야곱도 그러한 축복을 받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50:1,2).
2. 애굽으로 이주한 이스라엘의 가족들(46:8-27)
본문은 애굽으로 이주한 이스라엘의 명단이 열 두 아들을 중심으로 모계에 따라 기록되어 있는 부분이다. 이 애굽 이주 가족수는 기록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26절에는 66명(야곱과 애굽에 있던 요셉, 그리고 그의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제외)으로, 출 1:5과 신 10:22에는 70명으로, 행 7:14에는 75명(요셉의 다섯 후손들을 부가한 듯 보임)으로 제시되었다. 이처럼 각 기록마다 숫자가 서로 일치하지는 않으나, 이 주축 인물들을 기록한 의도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이스라엘 선민 공동체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보여 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특히 본문에는 하나님의 완전한 계획의 실현이라는 의미로 70인이 강조되었는데, 7이 상징하는 바 '하나님','승리','안식'이라는 숫자와 10이라는 '완전'수가 합쳐진 '70'은 야곱 가족들이 하나님의 완전하신 섭리 아래 애굽으로 이주하였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족장들과 맺은 언약에 근거하여(12:2 ;26:4 ;28:14),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거룩하게 인(印)친 표시인 동시에 충만한 번영과 완전한 구원을 예표한 것이다.
3.야곱과 요셉의 재회(46:28-34)
이별의 말 한마디도 못한 채 헤어진 요셉과 야곱(37:12-35)이 드디어 20여년 만에 다시금 극적으로 재회하는 장면이다. 이러한 본문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먼저 28-30절은 애굽 땅 고센에 이르른 야곱의 가족과 요셉이 감격적인 상봉을 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31-34절은 야곱이 바로로부터 무사히 고센 정착 허가를 얻어 낼 수 있게끔 요셉이 조언을 주고 있는 부분이다. 진정 요셉은 다시 만난 가족과 헤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모든 역량을 발휘해 그들을 애굽에 정착시키려 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총리의 일족(一族)에게 애굽 정착을 허락한 바로(Pharaoh)이지만, 야곱 가문의 정확한 생업을 안다면 애굽 내에 같이 거주하는 것을 거절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종족 간에 있어 문화의 차이는 종종 심각한 대립 양상을 가져오는 것이 보편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특히 애굽인들은 유목민을 아주 싫어하며 야만족으로 여기는데, 그 이유는 자신들이 신성시하는 염소,양,소 등을 목자들이 거칠게 다루기 때문이다. 더욱이 농경 민족인 자기네들의 정착 생활과는 달리, 방랑하는 유목민에 대한 우월감과 이민족(異民族)에 대한 배타심도 작용하였을 것이다(43:32). 이러한 종족간의 문화적, 종교적 차이를 극복하고서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요셉은 본문에서 애굽인들과 동떨어진 고센 땅에 거할 것을 전제하고, 야곱에게 자신들의 직업에 대해 숨김없이 바로 앞에 고하도록 권면하였을 것이다. 더군다나 고센 땅은 애굽의 국경 지대로서 비옥하기도 하지만, 훗날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가기에 유리한 조건을 갖춘 곳이었으니, 여기서도 하나님의 언약을 잊지 아니하는 요셉의 신앙을 엿볼 수 있다(15:16).
* 선민 이스라엘의 구별된 삶.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요일 3:13). 특히 본문 중 애굽은 오늘날의 전형적인 세상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요셉은 애굽인들이 유목민들을 멸시하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형제들이 자기 직업을 사실대로 밝히기를 원했다. 그것은 될 수 있는 대로 이방 우상을 섬기는 애굽인들과 떨어져 살아감으로써, 여호와 종교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데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 속에서 자기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거기에 적응하기 위하여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러한 세상의 조류는 그리스도인에게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여 많은 경우 세상적 조류에 동화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세상 사람들의 멸시와 핍박을 받게 하고 있다. 또한 그럴 때에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살아가는 것을 지혜있는 삶으로 미화해 버리는 그리스도인들도 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나약성은 바로 세상에 속하려는 삶의 자세에서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 원하시는 삶은 자신의 크리스챤됨을 떳떳히 밝히는 것이다(막 8:38 ;눅 9:26). 그리하여 성도들은 애굽으로 상징된 세상의 삶을 지양(止揚)하고 고센으로 상징된 하나님 편의 삶을 지향해야 한다(엡 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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