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태초에 - ( ,베레쉬트). 70인역은 이 말을 요 1:1과 같이 '영원부터'란 뜻을 지닌 '엔 아르케'( )로 번역했으나 원래의 뜻은 하나님이 천지 창조를 개시(開始)함로써 시작된 역사적 '시간의 출발점'을 가리킨다. 이는 창세기가 영원 전 사건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우주 및 인류가 탄생하는 시점으로부터 시작되는 태고사(太古史)에 관한 서술임을 암시한다. 한편 공동 번역은 이 말을'한 처음에'라고 번역했는데 여기서 '한'은 천지 창조의 단회성을, '처음'은 만물의 출발점을 각각 강조하는 말이다.
하나님 -( ,엘로힘).'두려워하다'( ,알라) 혹은 '강하다'( ,울)란 뜻에서 파생된 말로 곧 '두려워해야 할 강하고 능력있는 자', '경외해야 할 최고 존재'란 의미이다. '여호와'란 명칭이 '언약을 지키시는 자', '택한 백성을 구속하자'란 의미로 쓰였다면(출 6:3) 이 '엘로힘'이란 명칭은 성경에서 주로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강조할 때 쓰였다(출 20:1; 신 6:4; 삼하 22:32).한편 일부 학자는 '엘로힘'이 '엘로하'의 복수형인 점을 들어 이를 다신론적(多神論的) 사상의 반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비록 형태는 복수형이나 실질적으로는 단수로 취급되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이를 삼위(三位)이시나 일체(一體)이신 하나님의 존재 양식에 대한 암시로 볼 수 있다(26절). 또한 존귀하거나 장엄한 것을 표현할 때 복수형을 쓰는 히브리인의 독특한 관습에 따라 이를 장엄 복수형으로 볼 수도 있다.
천지 - 문자적으로는 '하늘과 땅' 곧 지구를 뜻하나 여기서는 지구를 포함하여 은하계가 자리잡고 있는 전우주를 가리킨다(2:1).
창조하시니라( , 바라) - 구약에는 '창조하다'란 뜻의 단어가 세 종류 나온다. 첫째 여기서 사용된 '바라'는 무에서 유에로의 완전한 신적 창조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순수한 의미의 창조를 가리킨다. 그러나 때로는 특수한 목적으로 여러 재료를 사용하여 건축하거나 만드는 것을 가리킬 때도 사용되 었다. 둘째, '아사'( )는 이미 창조된 물질을 재료로 더욱더 나은 물체를 만드는 것을 가리킨다(16, 25, 26절). 세째, '야찰'( )은 '아사'와 비슷하나 특별한 목적에 따라 기존사물을 새로 완벽히 조성하는것을 가리킨다(2:7.9).한편 천지창조를 주제로 하는 본장에서 '바라'.'아사','야찰' 등 이 세 단어는 정확한 뜻에 따라 해당 귀절에서 사용되었음 알 수 있다. 그 예로 '바라'는 (1)무에서 유에로의 존재 창조를 가리키는 1절 (2)생물에게 생명의 근원을 주시는 창조 행위를 가리키는 21절 (3)그전까지 전혀 없었던 영적 존재의 창조를 가리키는 27절에서만 사용되었음을 확인할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책인 성경은 정확무오한 단어가 구별되어 사용된 그야말로 일점 일획도 오류가 없는 책임을 새삼 인지할 수 있다(마 5:18). 즉 우리는 '바라'뿐 아니라 모든 성경 원어를 분석, 연구할 때마다 성경은 단어 하나에 이르기까지 영감된 책임을 새롭게 깨닫는 것이다(성경 총론,성경의 영감).이제 이처럼 중요한 단어인 '창조하다'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의미와 그 기사의 정확성을 간추려 보자. (1)하나님의 창조 활동은 그분의 자유로운 의지에서 기인한 단독 사역이며 (2)하나님의 창조능력은 제한적이거나 부차적이지 않고 완전한 무에시 유에로의 창조를 가능케하는 새롭고 신비한 성격의 것이다.그리고 (3)절대적이고 초월적인 존재인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의 주인으로서 그 모든 것을 자신의 기쁘신 뜻에 따라 말씀에 의해 만드셨다(시33:6-9; 렘10:12). (4)또한 이는 성경기록이 비논리적이거나 비과학적이라는 주장을 일소시켜 준다. '창조'라는 개념조차도 무에서 유에로의 창조와 기존물질을 변형하여 새롭게 제작하는 것과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을 정도로 성경은 합리적인 것이다. 한편 이 '바라'라는 단어는 사 40-66장에도 약 20번이나 언급되면서 인간에게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가를 명확히 드러내 주고 있다.
즉 (1)하나님은 우주의 창조자이시며(사42:5;45:7-9) (2)언약 공동체인 이스라엘의 창조자이시고(사43:1,15) (3)새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분이심과(사 65:17) (4)인류 구원의 주도권을 가지신 분이심(사 42:5-9:49:5,6)을 밝혀 주고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다윗의 참회시에도 볼 수있듯 하나님은 죄인을 중생케 하시는 새 창조의 근원이심(시 51:10; 고후 5:17)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1:2
땅 - 접속사( ,웨)와 정관사( , 하)가 붙어 있어 직역하면 '그런데 그 땅' 이다. 여기서는 '지구'를 가리킨다.
혼돈하고 -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지구에 생명체가 살수 있을 정도로 아직은 정돈된 상태가 아님을 보여 주는 말이다. 즉 '혼돈'에 해당하는 원어 '토후'( )는 '공허', '헛된 것'(삼상 12:21;사 40:17) 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데 전혀 형체가 없거나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상태를 의미한다.
공허하며- 원어 '보후'( )는 사 34:11; 렘 4:23에서 '공허한'(void)으로 번역되었는데 이것 역시 '토우'와 마찬가지로 미처 아무것도 갖춰지지 않는 적막한 상태, 무가치한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혼돈하고 공허하였다'란 의미는 지구가 아직 조화된 모습을 갖추고 있지 있지 않고,따라서 아무런 생명체도 살고 있지 않은 무질서하고 텅빈 상태였다란 뜻이다. 한편 본절의 하고...하며는 카오스적인 존재(存在,was) 상태를 뜻하는 말이지 일부 학자들의 주장처럼 거역한 사단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은 변이(變移,become)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 여기서 '흑암'은 단순히 빛에 대칭되는 어두움의 개념이 아니라 창조 이전 빛이 없는 상태를 포괄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한편 공동 번역은 이를 '어둠이 깊은 물 위에 뒤덮여 있었고'로 번역하였다. 왜냐하면 '깊음'에 해당하는 원어 '테홈'( )은 때로 '깊은 바다'(시 42:7;겔 31:15)나 지하물의 근원지(7:11; 시 78:15)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아마 이는 창조된 원시 형태의 지구가 물 혹은 물 같은 유동체로 덮여있었으며 사면에는 칠흑 같은 어둠만이 있었을뿐임을 뜻 하는것 같다.
하나님의 신( , 루아흐 엘로힘). - '루아흐'는 때로 '바람'(8:1)이나 '숨'(욥9:18)을 가리키기도한다. 그러므로 혹자는 이를 하나님께서 깊은 물의 표면에 불게하신 바람으로 이해하기도하나 실은 그렇지 않다. 여기서는 어디까지나 제3위 하나님되시는 '성령'을 가리키는 말로 천지 창조시부터 이미 삼위 하나님께서 서로 협력하여 사역하셨음을 암시해 주는 말로 이해하여야 한다(26절). 혹자는 성령께서 신약 시대에야 비로소 활동하신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데(행 2:1-4) 성경은 성령께서 이미 구약 시대부터 여러모로 활동하였음을 이미 구약 시대부터 여러모로 활동하였음을 분명히 증거해 준다 (출 35:31; 삿 3:10; 왕하 2:1215; 대상 12:18; 겔 11:24).
운행하시니라 - 원뜻은 '알을 품다', 따라서 이 말은 이미 새가 새생명의 탄생을 열망하며 알을 소중히 감싸 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상대로 지음 받을 인간의 삶의 장소를 조성하시기 위해 깊은 관심으로 포근하고 소중하게 돌보심을 의미한다.
1:3
가라사대( , 아마르) - 6일간의 창조 기사에서 10회나 반복 사용된 이 말은 하나님은 말씀의 하나님이시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력이 있음을 보여 준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 공허하지 않고(신 32:47; 사 55:11; 렘 23:2)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은 곧 그분의 능력(power)이요 행위(Action)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창조시부터 말씀으로 역사하신 하나님은 오늘날도 말씀으로 인간들을 권고한다는 점에서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이며 아울러 하나님의 인격적인 분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인격적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그 크신 능력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빛이 있으라 - 하나님의 첫번째 명령은 '빛'과 '존재'(있으라)에 관한 것이었다. '빛'( , 오르)은 때로 열(사44:16),불(사31:9),태양(욥31:26),번개 불(욥 27:3)등 구체적인 발광체 혹은 발광 현상을 가리키기도 하나 본절의 '빛'은 4일째 창조된 태양과는 구별되는 에너지원(Energy源)을 가리킨다. 한편 어거스틴(Augustine) 은 여기 빛을 신적 은사와 능력을 상징하는 영적인 빛으로 보았다.
1:4
보시기에 좋았더라 - 천지 창조 기사를 다루는 1장에 7회나 언급된 이 말은 하나님이 원래 의도하셨던 대로 창조된 여러 피조물에 대해 기쁨으로 승인하는 인준 행위를 의미한다. 즉 이 말은 심미적 판단에서 나온 우주의 아름다움 이상의 창조의 놀라운 합목적성과 적합성을 나타낸다(시 104:31). 그러나 이차적으로 이 말은 우주 자체의 심미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한 말이기도 하다. '좋았더라'(good)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토브'( )는 '위대한'(시 11:2), '놀라운'(욥 37:14), '완벽한'(신 32:4), '아름다운'(전 3:11)등의 뜻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하나님이 본래 좋은 것으로 인정하신 물질을 바르게 사용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힘써야 한다.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 하나님의 천지 창도에는 3차에 걸친 분리 사역이 나타나 있다. 즉 (1)빛과 어두움(4절) (2)물과 궁창(7절) (3)바다와 땅(9절의 분리이다. 후일 바울은 이 빛과 어두움의 분리를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의와 불법의 분리에 적용시킴으로써 도덕적, 종교적 성결의 원리로 확대 해석했다(고후 6:14).
1:5
낮이라...밤이라 칭하시니라 - 하나님이 자신의 창조물에게 이름을 부여한 최초의 경우이다. 이는 곧 '낮도 주의 것이요 밤도 주의 것'(시 74:16)임을 의 미하는 동시에(1:10) 낮과 밤 양자 사이에는 생동감과 적막, 생명력과 정체 등 과 같은 차이점이 있음을 나타낸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 아침에 앞서 저녁이 먼저 언급되고 있는 까닭은 빛이 비추어 낮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계속 어두움만 있었던 저녁상태였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저녁을 하루의 시작으로 셈하고 있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날 - 날에 대한 히브리어 '욤'( )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우주 창조의 연대 및 시간적 길이가 정해지는데, 여기에는 전통적으로 다음 세 학설이 있다. (1)'날'은 곧 한 시대를 가리킨다는 학설이다(Day-Age Theory:요세푸스, 이레니우스, 오리겐). 그러므로 이들은 5,8,13절의 '저녁이 되며 아 침이 되니'라는 말이 하나의 상징적 표현으로서, 한 시대의 끝과 다른 한 시대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 주장의 근거는 창조주 하나님에게는 시간적 요소가 초월되어 있다는 점이다(시90:4; 벧후 3:8).
그러나 이 학설에는 두가지 난제가 있다. 첫째, 창 1장의 주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출 20:8-11의 안식일 계명 문제에 위반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분명히 안식일 계명에 나타난 창조의 6일은 여자적(如字的) 6일이요, 장구한 6시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일 창세기의 1일이 오늘날과 같은 하루가 아니라면 제7일의 안식일 문제를 설명할 길이 없다. 둘째, 성경의 분명한 어법으로 표현된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5,8,14,19절)라는 말을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한 시대의 교체로 보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점이다. (2) '욥'( )을 문자 그대로 24시간으로 보는 학설이다(루터, 칼빈, 뻘코프).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성경 해석상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원어의 일차적인 뜻을 따라야 한다. 둘재, 실제적인 제7일을 안식일로 하나님께서 정하셨다면 다른 6일도 당연히 같은 24시간을 가진 하루이어야 한다. 세째, 창조 사역에 있어서 마지막 3일은 분명히 오늘날과 같은 태양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24시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최초의 3일도 같아야 되지 않겠는가?라는 주장이다. (3) '욥'( )의 기간이 서로 다르다고 보는 절충적인 학설이다(어거스틴, 바빙크), 즉 태양이 창조된 제4일 이전의 3일은 오늘날의 하루와 다른 장구한 기간으로, 그리고 이어지는 3일은 24시간으로 보는 견해이다. 이 세 가지 학설은 각기 나름대로의 타당성과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 어느 학설을 완전히 수용하거나 혹은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두번째 학설이 보수적인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다.
1:6
물 가운데 - 여기서의 물은 지구 표면을 덮고 있던 물(2절)을 포함한 우주의 모든 수분(水分)을 가리킨다.
궁창( , 라키아) - 원어상 의미는 '두들겨 넓게 펼친 판(板)'이란 뜻. 따라서 고대 히브리인들의 개념상 '라키아'는 별과달이 붙어 있고, 하늘 위의 물을 받치고 있으며, 높은 산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 단단한 하늘의 금속판(firmament)을 가리킨다(욥 26장, 히브리인들의 궁창 개념).
1:7
궁창 아래의 물 - 바다를 비롯한 지구상의 모든 물.
궁창 위의 물 - 구름이 수증기 상태로 대기권 속에 떠 있는 모든 수분, 이것이 응집되어 지구상에 떨어지는 것이 곧 비나 눈, 우박이다.
그대로 되니라 - '그대로'는 '명하신 대로 확실히' 또는 '틀림없이'의 뜻. 천지가 하나님의 명하신 바대로 창조된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1:8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 이로써 하나님께서 만드신 '궁창'이 무엇인지 분명히 드러났다. 한편 '하늘'에 해당하는 원어 '쇠마임'( )은 '높다'에서 유래한 말로 아주 높이 그리고 끊없이 펼쳐져 있는 대기권 전체를 가리킨다 (욥 26장, 히브리인들의 궁창 개념).
1:9
물이... 뭍이 드러나라 - 이처럼 물과 뭍이 제각기 적절한 위치에 자리를 잡게 됨으로써 지구는 마침내 각종 생물이 서식(棲息)할 수 있는 곳으로 그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11,12,20,21절)
1:10
칭하시고( ,카라) - '선언하다'(렘 34:15), '공포하다'(레 23:21)란 뜻. 즉 권위를 가지고 공식적으로 언명함을 뜻한다. 고대 셈족 문화권에서 이름을 부여하는 행위는 주권이나 소유권의 행사를 의미한다. (왕하 23:34;24:17). 따라서 우리는 천지를 창조하신 후 방기(放棄)하신 것이 아니라 창조물의 이름을 지어 주는 하나님의 명명(命名)행위에서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지배권 주장이 선명하게 표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모든 존재와 생명의 참된 주인은 오로지 하나님 한분 뿐임을 암시한다.
1:11
풀과...채소와...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 - 70인역은 '채소의 어린 싹과 과일 의 나무'로 번역, 2종류의 식물로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도 가능은 하지만 개역 성경과 같이 3종류의 식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각기 종류대로 - 1장에서만도 10회나 사용된(11,12,21,24,25절 등) 이 표현은 창조시 모든 생물은 이미 독특하게 구별된 종(種, species)의 형태로 창조되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각기 종류대로'를 뜻하는 히브리어 '레미노'( )는 '종류'(Kind), '종'(species)을 뜻하는 '민'( )에서 파생된 말인데, 성경에서 이 말은 매종류와 까마귀 종류, 개 종류와 고양이 종류 등 제 각기 독특하게 구별된 종(種)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지 결코 매와 까마귀, 그리고 개와 고양이의 조상으로서 어떤 기본적인 소수의 종류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따라서 생물학적 변천 과정을 거쳐 저급한 종에서 고등한 종으로의 발전이나, 종과 종사이의 상태변이(變移)를 주장하는 진화론(進化論, evolution theory) 은 비성서적 견해이다.
1:12,13
세째 날은 하나님께서 최초로 생명체를 창조하셨다는 의의를 지닌다. 한편 여기서 '풀'( ,데쉐)은 이끼류와 같은 은화식물(慇化植物)을 대표하는 말로 구분지을 수 있으나 '열매 맺는 나무'와 더불어 지구상의 모든 식물군을 가리키는 점층법적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무난하다.
1:14
징조(, 오트) - 자연적인 현상 혹은 사건에서 보여지는 '표징'(출 10:2). 이런 일이 주로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나타나므로 '이적'(출 4:17)으로도 번역된다. 여기서는 천체의 변화란 뜻. *표(공동번역)
사시(, 모에드) - '지정하다', '고정하다'(히 야아드)에서 기원, '새들의 이주 시기'(렘 8:7), '축제의 절기'(시 104:19; 슥 8:19)등과 같이 계절의 순환에 따라 반복되는 전환의 시기를 가리킨다.
일자와 연한 - 네째 날 만들어진 태양 및 천체의 운동으로 측정되는 시간의 기본단위인 '날'(日)과 '년'(年)이란 뜻.
1:16
주관하게 하시고 - 히브리어 '멤솰라'( )는 '다스리다'(왕상 9:19), '관찰하다'(렘 5:28)란 뜻. 즉 큰 광명인 해와 작은 광명인 달이 낮과 밤을 구분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사실은 일월 성신(日月星辰)숭배 사상과 점성술적인 미신에 빠져 있던 고대인들에게, 그리고 그러한 경향이 있는 현대인들에게 일월성신은 하나님의 피조물일 뿐이며 또한 이들의 역할은 단지 낮과 밤을 구분하며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따라 일자와 연한을 식별케 하는 데 불과함을 교훈한다.
1:18
보시기에 좋았더라 - 하나님께서는 두 광명과 별을 창조하사 낮과 밤 동안 빛을 비취게 하셨다. 이것은 식물로 하여금 광합성(光合成)작용을 일으켜 성장 발육케 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었으니 이러한 조화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흡족하였을 것이다.
1:20
생물( , 네페쉬 하야) - 직역하면 '산 영'(living soul)이란 뜻,여기서는 살아 움직이는 동물을 가리킴. 고대 히브리인들은 식물이 부동적이므로 생명을 갖지 않은 것으로 취급하였다. 따라서 동물을 이전에 창조된 식물과는 구분하여 움직이며 숨쉬는 것임을 강조하는 용어, 즉 생물이라는 말로 묘사했다.
번성케 하라 - 히브리어 '쇠라츠'( )는 '꿈틀거리다', 무수히 많아 우글거리는 것이 마치 꿈틀거리는 듯이 보인다는 점에서 '풍부하다', '무수히 생기다'(출8:13)란 뜻으로 발전되었다.
1:21
큰 물고기 - '물고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탄닌'( )은 '용'(사 51:9), ' 뱀'(사 27:1)등으로도 번역된 단어인데 여기서는 고래, 상어, 악어, 물개 등과 같이 몸집이 큰 부류의 수서동물(水棲動物)을 가리킨다.
날개 있는 모든 새 - '새'에 해당하는 원어 '오프'( )는 곤충을 포함한 공중을 날으는 모든 종류의 생명체를 가리킨다(7:14).
1:22
복을 주어( , 바라크) - 기본 뜻은 '무릎 꿇다'(시 95:6). 이 말이 하나님께 적용될 때에는 '찬송하다'(9:26), 피조물에게 적용될 때에는 '축복하다 '(27:33)란 뜻이 된다. 여기서 복의 내용은 이어지는 말에서도 드러나듯 풍성케 하는 것인데, '복주다'란 말 자체에도 '풍족케 하다'(신 33:11)란 뜻이 있으므로 증식에 대한 내용이 더욱 강조된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 '생육'은 '열매 맺다'라는 뜻으로 풍부한 결실을, ' 번성'은 '많을'(7:17) 뿐만 아니라 '크고'(스 10:13) '강한'(대하 11:12)상태를 뜻한다. 이와 같이 유사한 언어를 반복하여 기술한 것은 하나님이 생물들에게 생명의 보존력과 번식력을 축복으로 주심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축복은 오늘날에도 생명체마다 제각기 갖고 있는 자기 방어 수단과 독특한 출산 방식으로써 종족을 보존, 번식시키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
충만하라 - 하나님의 '채워주심'(렘 15:17)으로 '넘칠'(수 3:15)정도로 ' 가득한'(6:13) 상태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축복의 신적 기원을 풍부함을 보여 주는 표현이다.
1:24
육축( ,베헤마) - '침묵하다'란 말에서 파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가축들이 인간과 친밀하나 말하지 못함에 착안하여 이 명칭이 부여된 듯하다. 여기서는 집합적인 의미로 주로 몸집이 큰 가축을 지칭한다.
기는 것 - 히브리어 '레메쉬'는 다리가 없거나 많은 다리를 갖고 있어 미 끄러지듯 움직이는 동물들을 가리킨다. 주로 곤충이나 파충류에 해당됨.
짐승( , 하이) - 생명있는 모든 '생물'(6:19)을 총칭하는 말이기도 하나 여기서는 '들짐승'(레 5:2)과 같은 야생 육식 동물을 가리킨다.
1:26
우리 - 이 말에 대한 여러 해석은 다음과 같다. (1)하나님께서 자신을 재촉하는 의미로 복수형을 사용하셨다. (2)삼위일체에 대한 구약적인 표현이다. (3)하나님이 천사들과 의논하심을 가리킨다. (4)히브리인들은 장엄한 것을 나타낼 때 흔히 복수형을 사용하므로 강세(强勢)를 나타내는 히브리 문학적 표현이다. 그러나 후대의 발전된 계시에 비추어 볼 때 합당한 해석은 두번째 견해, 즉 창조 사역에 나타난 각 위(位) - 성부,성자,성령...의 완벽한 협력을 나타낸 말로 보아야 한다.
형상...모양대로 - '형상'( ,첼렘)과 '모양'( ,데무트). 이 두 단어는 유사한 단어로서, 비슷한 말을 연속 사용하여 강조의 효과를 나타내는 히브리 수사법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굳이 분류하자면 '형상'(image)은 어떤 사물과 그것을 그린 그림이 서로 닯은 것처럼 인간과 하나님간에 찾아 볼 수 있는 구체적인 닮은 꼴을 가리키며 '모양'(likeness)은 추상적인 면에 있어서의 유사성을 가리킨다. 따라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 되었다는 것은 인간전인(全人)이 하나님의 성품의 영향을 받아 지음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시 8편, 겔28:12). 이러한 사실은 (1)인간이 저급한 상태에서 고등한 상태로 진화되었다는 진화론(evolution theory)의 허구성을 깨우쳐 주며 (2) 모든 피조물들 가운데 하나님과의 교제 대상으로 인간만이 선택되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엡 4:23, 24, 골 3:10). 그러나 창조시 부여된 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은 타락시 크게 훼손되고 말았다. 그러나 끝내 상실되지 아니하고 그 흔적은 계속 남아 있어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능케 하는 접촉점(contact point)이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이 피조물 중에서 얼마나 고귀한 존재인지를 능히 깨달을 수 있는 반면 타락으로 말미암는 인간 비하(卑下, 3:16-19) 역시 얼마나 뼈아픈 비극인가를 새삼 깨달을 수 있다.
사람( ,아담) - 창조 사역의 절정은 사람의 창조요, 창조의 면류관 역시 사람이다. '사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담'은 이중적인 뜻을 갖고 있다. 첫째 는 보통 명사로서 일반 사람을 가리키며, 둘째는 고유 명사로서 최초의 사람인 아담을 가리킨다. 한편 '아담'이란 말의 기원에 대해서는 (1) '붉어진다'에서 유래, 인간의 피부 빛을 반영하고 있다는 견해. (2)'빛이난다'란 뜻의 아 람어에서 유래, 아담을 빛자는 자로 만들었음을 뜻한다는 견해. (3)'데리고 온다', '결합시킨다'는 뜻의 아람어에서 유래, 아담이 인류의 조상이며 모든 인류를 하나로 결합시키는 자임을 뜻한다는 견해. (4)'모양'이란 어원에서 유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았음을 뜻한다는 견해. (5)'땅'에서 유래. 인간이 흙으로 만들어졌음을 반영한다는 견해 등이 있다. 모두 일면의 타당성을 지니나 (5)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다스리게 하자 - '주권을 잡다', '지배하다', '세력을 떨치다', '통치하다'라는 뜻, 즉 인간이 다른 피조물들을 주관할 수 있는 권위와 능력을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고등한 존재로서 다른 피조물들에게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말이다.
1:27
여자 - 남자와 구별됨을 강조하는 표현(6:19). 본절에서 남자와 더불어 여성의 창조를 특별히 언급한 것은 창조시부터 남녀 간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음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1:28
정복하라( , 카바쉬) - '발로 밟다'(미 7:19), '복종케 하다'(민32:22)란 뜻, 이는 땅을 자신의 것으로 취급하여 마음대로 행해도 좋다는 뜻이 아니라 선한 목적을 좇아 땅 속에 포함된 광대한 자원을 개발하며 유용하게 이용하라는 문화 명령(Cultural Mandate)이다(9장, 강해 하나님의 문화 명령).
1:29,30
너희 식물이 되리라 - 최초 인간과 동물에겐 채식(菜食)만이 허용되었음을 보여 준다. 육식(肉食)은 타락 후 노아 홍수 사건 직후에야 비로소 허용되었다(9:2). 이로 볼때 피흘림이 뒤따르는 육식 행위는 결코 하나님의 본래 뜻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따라서 원(原) 창조시 허용되지 않았던 육식이 타락 후 허용되었다는 사실은 곧 처음 낙원의 재(再) 창조 또한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런데 이 낙원의 재 창조는 그리스도의 '피흘림'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루어지고 있으며 최종
이루어질 것이다.
1:31
심히 좋았더라 -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마무리지어 주는 이 귀절은 지금까지 반복 되어온 감탄사(10,12,18,21,25절)보다 한층 더 고조된 것으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모든 것이 한 치의 오차나 흠도 없이 완벽하고 아름답게 성취 되었음을 대변한다.
창세기는 한 마디로 기원의 책이다. 우주, 인간, 가정, 죄, 민족, 언어 등의 기원을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 그증 본장은 특히 성부 하나님의 계획과 성자 하나님의 행위 및 성령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말미암아 우주 및 인간, 그리고 모든 피조물들이 신의 사랑 가운데서 신의 은총으로 탄생되는 장면을 장엄하게 서술하고 있는 장면이다. 본장에 기록된 바 창조 기사의 명쾌함과 숭고함은 이교(異敎)의 각종 신화 사상이나현대의 우주 진화론이 얼마나 천박하고 모순에 가득찬 어리석은 인간의 사상인지를 잘 보여 준다.
창세기를 구속 계시(救贖啓示)의 여명이라고 볼 때 본장은 그 계시의 찬연한 첫 빛줄기로서 구속의 주체자가 누구이며 또한 그분은 어떠한 분이시며, 인간은 왜 구원 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인 지를 보여 준다. 실로 본장은 신앙의 문으로 들어가는 첫 계단으로서 본장의 기사를 믿느냐 혹은 믿지 않느냐에 따라 마침내 한쪽 길은 유신론적(有神論的) 구원과 기쁨의 천국으로, 또 다른 길은 무신론적(無神論的) 허무와 죽음의 지옥으로 통하게 될 것이다.
한편 본장은 창조 성격에 따라 무(無)에서 유(有)에로의 순간적 창조(Creatio Ex Nihilo)를 보여 주는 전반부(1,2절)와 이미 창조된 우주를 6일 간에 걸쳐 혼돈 상태(Chaos)에서 질서 상태(Cosmos)에로 완성시켜 나가시는 점진적 창조를 보여 주는 후반부(3-31절)로 구분되는데, 내용상 창조의 주체자되시는 하나님과 창조의 면류관인 인간 양편에 모두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먼저 하나님에게 있어 본장은 전우주와 모든 생명체 및 피조물은 당신께서 지으신 '당신의 것'이라는 소유권 주장이 곳곳에 명시된 일종의 등기 문서이다. 그리고 인간에게 있어 본장은 첫재, 인간이 어디로부터 왔으며 또한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 줌으로써(롬 11:36) 내가 결코 목적없이 허무하게 살다 그저 흙으로 돌아가는 숙명론적인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태어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보내졌음을 일깨워 준다. 둘째, 인간이 절대적 초월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모든 피조물 중 가장 고귀한 존재로 지음 받았음을 똑똑히 보여 줌으로써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생명의 가치와 경외를 깊이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엄숙히 주어진 삶을 살도록 해준다.
1. 창조 사역의 개시(1:1-2)
혹자는 1,2절을 빛이 창조된 첫째날로부터 구분짓는 것에 대하여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1,2절은 시공(時空)이 창조된 바로 그 순간의 창조 행위를 묘사한 것이므로, 엄밀히 시간적으로만 따지면 당연히 첫째날에 포함된다. 그러나 여기서 1,2절을 따로 구분한 것은 1절은 무에서 유에로의 순간적 창조를, 2절은 개체적 창조 행위가 있기 전 일반적 상태를 각각 묘사한 것으로서 그 중요성이 크기 때문에 따로 떼어 구분한 것뿐이다.
1절은 창조행위의 객관적 서문인 동시에 창조의 역동성과 역사성을 강조하는 하나님 행위적 선언이다. 하나님은 태초에 어떠한 외부의 도움 없이 당신의 주권적인 계획과 의지에 따라 천지를 창조하심으로 세계와 시간과 역사 및 계시의 아침을 활짝 여셨던 것이다.
혹자는 1절에 메시지가 단순히 선언에 불과하다는 소위 '제목설'을 주장하면서 참된 의미의 창조 시작은 3절부터라고 주장한다. 만약 그렇다면 2절의 상태는 하나님의 의지적인 창조 사역 이전에 이미 존재한 것(상대 창조)이 되므로 하나님의 창조는 진정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신 것(절대 창조)이라 할 수 없다. 그러므로 1절은 단지 선언에 불과한 제목이 아니고 실질적인 창조 행위, 곧 하나님의 신성한 노동 행위로 보아야 한다. 우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creatio ex nihilo) 하나님의 천지창조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지혜와 능력(롬 1:20) 정교한 계획과 생명력 넘키는 힘(시 19:1-6)을 확인할 수 있으며 아울러 하나님만이 만유의 근원이시며 주인이심을(시 148:2-4)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다.
* 성경의 창조 기사와 이방의 창조 신화. - 고대로부터 모든 민족들에게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기원론이 있었다. 즉 인간들은 이 세상과 인간의 기원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나름대로 이 문제를 해결해 보기 위해 각종 창조 신화를 창출해 내었다. 그러나 그 어느 신화도 성경이 선포하는 바 인간과 세상에 대한 창조의 명쾌함과 단순한 그리고 장중함과 그 지고한 도덕성을 따르지 못한다. 이방 창조 신화의 특징은 한마디로 허황이다. 각종 신들의 족보를 만들어 서로 질투하게 하고 서로 싸우게 만든다. 거기에는 도덕성과 존엄성이 현저히 결여되어 있다. 오직 다신론적 사상(多神論的 思想), 각종 샤머니즘shamanism)과 애니미즘(animism), 유출설(流出說), 이원론(二元論) 등이 판을 칠 뿐이다. 기껏해야 단일신론(單一神論)에 머무르고 만다. 따라서 그들의 창조 신화에 나타난 각종 신은 인조신(人造神, man-made gods) 아니면 차용신(借用神,loan-gods)에 불과하다.
기독교가 명쾌히 선포하고 있는 바 인격적인 유일신(唯一神)과는 본질상 다르다. 물론 인간의 가치는 인간에 의해 고안된 신에게 여지없이 짓밟히고 만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는 다른 종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은 고등 종교에 머무는 것이 결코 아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기독교만이 유일한 계시 종교요, 구원 종교이다(갈 1:7,8). 창1:1은 바로 이 진리를 온 천하에 분명히 선포함에 다름아니다.
따라서 창 1:1에 대한 신앙은 기독교의 문으로 들어가는 첫 계단이요, 생명과 구원의 길로 들어서는 첫 발자욱이다. 아래 도표는 성경의 창조 기사와 이방의 창조 신화를 간략히 비교해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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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 분 | 출 전 | 내 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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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지는 영원 전부터 스스로 계시는 자 곧 하나님에 의해말씀|
| 성 경 | 창세기 |으로 창조되었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
| | |행복을 위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신의 형상을 따라 신의 |
| | |사랑 가운데서 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다. |
+--------+--------+--------------------------------------------------------+
| | |세상은 마술적 주문(呪文)을 가진 최고의 신 말둑(Marduk)이|
| 바벧론 | 에누마 |혼란의 여신 티아맛(Tiamat)을 죽여 그 시체를 둘로 쪼개 |
| 신 화 | 엘리쉬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티아맛의 군대 장관이자 영웅인|
| | |킹구(Kingu)의 피로 만들었는데 만든 목적은 신들을 섬기게 |
| | |하고 힘든 노동을 시키기 위함이다. |
+--------+--------+--------------------------------------------------------+
| | |세상(궁창)은 바다의 신 쇼(Sjoe)가 그 물 가운데 있던 |
| 이집트 |엘레판틴|누트(Nut)란 신을 죽여 그것을 높이 매달아 놓은 것이다. |
| 신 화 | 토 판|그리고 인간은 크눔(Khnum)이란 신에 의해 토기 그릇처럼 |
| | |주조(鑄造)된 것이다. |
+--------+--------+--------------------------------------------------------+
| | |태초에 지혜의 신 아후라 마츠다(Ahura Mazda)와 파괴의 신 |
| | |앙그라 마인유(Angra Mainyu)가 있었다. 세상과 인간 그리고|
|페르시아|아베스타|빛, 천사, 선, 아름다움 등은 지혜의 신 아후라 마츠다에 |
| 신 화 | |의해 만들어 졌으나 어두움, 귀신, 악과 증오, 추함 등은 |
| | |파괴의 신 앙그라 마인유에 의해 만들어 졌다. 이 두신은 |
| | |자기들이 만든 것으로서 태초이래 세상에서 끊임없이 싸우고|
| |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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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시 창조 상태. -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구체적인 질서와 아름다움으로 단장하시기 이전 현상은 '혼돈'과 '흑암'이란 말로 요약된다. 물론 이러한 혼돈과 공허가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처럼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런한 미완성의 상태가 결코 선(善)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런한 상황을 방기(放棄)치 않으시고 친히 운행하심으로 질서와 아름다움을 부여하셨다. 상징적 의미에서 이는 하나님의 찾아오시기 전 우리의 삶이 혼돈스러우며 공허하고 마치 흑암 가운데 거하는 것과 같이 무질서하나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역사하실 때 참된 기쁨과 질서를 찾는 것과 유사하다. 따라서 오늘날 이 세상이 비록 혼란하나 하나님의 관심하에 있을 때 마침내 찬란한 미래가 보장되는 것과 같이 우리의 삶도 지금은 죄에 오염된 상태에 있으나 하나님의 관심이 늘 함게 하는 한 마침내 구원받음은 물론 매일 매일 성화된 자의 면모를 가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2. 창조 사역의 전개(1:3-31)
천지 창조를 계획하신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시므로 한꺼번에 창조 사역을 종결시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을 6일에 걸쳐 시행하심으로써 모든일에는 순서가 있으며 또한 점진적인 기쁨이 어떠한가를 보이셨다. 사실 창조 기사의 전과정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치밀하신 계획과 조화로운 질서를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질서와 아름다움 및 선의 신(神)이자 합리적인 신임을 가르쳐 준다(고전 14:33,40). 한편 창조 사역을 크게 둘로 나누면 (1)전반부 3일은 준비 작업(1-13절)을 (2)후반부 3일은 완성 작업(14-31절)을 이루고 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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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 비 (배 경) | 완 성 (설 치) |
+------+----------------------------+--------+---------------------------+
|첫째날|우주, 빛(1:1-5) |네째날 |해, 달, 별(1:14-19) |
+------+----------------------------+--------+---------------------------+
|둘째날|궁창(1:6-8) |다섯째날|새, 물고기(1:20-23) |
+------+----------------------------+--------+---------------------------+
|세째날|바다, 육지, 식물(1:9-13) |여섯째날|짐승, 사람(1:24-31) |
+------+-+--------------------------+--------+---------------------------+
|일곱째날| 안식하심(2:1-3) |
+--------+---------------------------------------------------------------+
위 도표에서 볼 수 있듯 하나님께서는 다른 피조물들을 창조하기 전 제일 먼저 빛을 만드심으로써 일차적인 생존 환경을 만드셨고, 이어 궁창을 만듦으로써 공간을 분할하셨다. 그후 바다와 육지를 만들어 생물이 서식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었고, 동물을 창조하기에 앞서 식물을 창조하심으로 먹이 사슬의 가장 기초적인 기반을 만드셨다. 그후 각종 동물들을 만들었으며 최후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만드시어 지금까지 창조한 모든 피조 세계를 지배, 관리케 하셨다. 이는 창조 역사가 지니는 합리성과 더불어 원목적을 분명히 암시해 준다. 즉 인간 창조를 지향점으로 전개된 창조사역은 당신의 주권의 상징인 인간을 피조 세계 안에 두시고 그를 통해 만물을 통치, 유지하시며 영광받기 원하셨던 것이다.
* 창조 기사의 특징. - 창조 기사의 전(全) 내용을 살펴보면 그것은 철저히 하나님의 단독적이고 주권적이며 자의적(自意的)인 계획과 활동의 결과였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하나님 중심적인(God-centric) 창조 기사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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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 분 | 성 구 | 의 미 | 참고귀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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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주체|'하나님이' |만물의 원인자, 근원자, 운행자 |행 17:24, |
| | | |히 11:3 |
+---------+------------+----------------------------------+--------------+
|창조 근거|'가라사대' | 말씀 |요 1:1-3 |
+---------+------------+----------------------------------+--------------+
|창조 효과|'그대로 | 온전한 성취 |시 33:6-9 |
| | 되니라'| | |
+---------+------------+----------------------------------+--------------+
|창조 평가|'보시기에 |하나님의 의도대로 이루어진 |마 3:17 |
| | 좋앗더라'|지고(至高)의 만족상태 | |
+---------+------------+----------------------------------+--------------+
|창조 등기|'칭하시고' |이름의 부여는 세상에 대한 자신의 |왕하 23:24 |
| | |주권과 소유권을 의미 | |
+---------+------------+----------------------------------+--------------+
|창조 수준|'각기 |진화나 발전이 필요치 않은 성숙한 |행 17:25 |
| | 종류대로'|개체 | |
+---------+------------+----------------------------------+--------------+
|창조 이력|'이는... |시간과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 |행 17:26 |
| | 날이니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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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으로 창조된 세계. - 본장에는 새로운 사물이 창조될 때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있으라'는 말이 언급되어 있다. 이것은 천지 창조의 근거가 오직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말씀 뿐이었음을 가르쳐 준다(시 19:3, 4; 33:6). 하나님의 말씀은 당신의 생각과 기뻐하시는 뜻을 반영한 것이다. 그 자체가 선포된 것을 온전히 성취할 수 있는 역동적인 능력이며 신비이다(사 14:24-27). 이런 점에서 하나님은 말씀이시며(요1:1)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인 것이다. 말씀이 천지를 창조하셨으며(요 1:3) 마침내 인간 구원을 위해 성육신(Incarnation)하셨고(요 1:14) 지금도 인간 구원을 위해 역사하시며(히 4:12) 인류 최후의 날에는 심판의 유일한 주관자 및 근거로 활동할 것이다(요12:48). 한편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은 말씀의 능력과 말씀의 중요성을 깨우치기 위함이며 당신이 인격적인 존재이심을 계시하신 것인 동시에 피조물인 인간이 반드시 그 절대적 권위를 가진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 창조 사역의 이중 구조. - 하나님은 6일 동안의 신성한 노동 행위를 통해 모든 피조 세계를 친히 창조하셨다. 물론 이 창조 사역은 부족하거나 미완(未完)의 상태가 아닌 완전한 형태의 피조계를 만드심으로 종결되었다. 이같은 사실은 인간 창조를 끝으로 스스로 최고 권위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공식 인준(認准)한 사실과 제7일의 기쁨과 평안의 안식(2:1-3)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만물과 인간을 통해 영광받으시기 원하셨던 하나님의 창조 의도는 만물의 영장 인간의 불순종으로 무산(霧散)되는 듯했다(3장). 즉 당신의 창조는 불완전하고 결함이 있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세계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타락한 그 인간 회복과 오염된 그 피조 세계에 대한 재창조 사역을 곧 착수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세계와 인간을 향한 당신의 창조 사역은 이미(already) 완전히 이루어 졌으며 또한 지금(now)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리고 끝내(not yet) 완전히 이루어 질 것이다.(사65:17; 계 21:1-4). 이처럼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완성과 계속이라는 이중적 구조를 가지고 역사 속에서 오늘도 성취, 진행되고 있다. 존재와 시간의 참 시작이신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진행시키며 완성해 나가신다는 이 사실은 바로 기독교 신앙의 요체이기도 하다(롬 11:36).
* 심히 좋은 이 세상. - 1장에서만 하나님께서 당신의 창조물에 대해 '보기에 좋았다'는 말이 7번(4,11,13,18,20,25,31절)나온다. 실로 우리는 아름다운 자연의 비경(秘境)을 대할 때마다 하나님의 그 놀라운 솜씨를 찬탄하게 된다. 현재 우리 인간의 죄로 인하여 같이 신음하고 있는(롬 8:25) 이 자연도 우리에게 이처럼 큰 놀라움과 기쁨을 준다면 그 옛날 타락 이전의 자연과 훗날 우리가 들어가 살게 될 새 하늘과새 땅의 아름다움은 그 어떠하겠는가? 따라서 이 말씀에 근거하여 볼 때 이 땅 위의 삶을 고해(苦海)로 보거나 모든 물질은 본래 악하다고 보는 것은 잘못이다. 물론 하나님의 구원 은총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있어 인생은 고해란 말이 틀림없지만 구원받은 성도는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궁극적 소망이 있기에 인생은 결코 고해가 아니라 '소망의 바다'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은 이 인생을 주 안에서 자연과 더불어 선하게 누리며 참되게 살아가자! 그리고 이 땅 위에서 나그네 인생길이 힘들 때 주변의 아름다운 만물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의 손길을 느끼도록 하자!
* 만들어진 인간. - 다른 피조물들과는 달리 인간은 하나님이 독특한 방법으로 친히 만드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26절)라고 신적(神的) 결의 표명을 함으로써 이제까지의 창조 역사보다 인간 창조가 더욱 의미 깊은 것임을 보여 주셨다. 즉 인간 창조에 있어서는 성부, 성자, 성령의 3자간 '상의'(相議)의 과정을 두심으로써 인간을 타 피조물보다 더욱 신중하고 존귀하게 만드셨음을 암시하셨다. 물론 하나님게서는 다른 상담자가 필요치 않으셨기 때문에 당신 자신과 상의하셨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처럼 인간 창조는 삼위(Three Persons)가 의논할 정도로 중요한 사역이었다. 이는 인간이 이 세상 어느 것보다 귀중함을 웅변적으로 보여 준다. 인간 하나의 생명이 온 천하 보다도 귀하다는 그리스도의 말씀도 이러한 창조 사역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마 16:26). 이러한 인간 존중의 정신은 성도에게 있어 스스로를 죄로 더럽히지 않겠다는 자긍심으로 표출되어야 하며 한걸음 더 나아가 타인의 인권과 개성 역시 존중하는 정신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 -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은 인간은 지적이고 인격적이며 자유 의지를 가진 행위자로서 영적 존재라는 사실과 도덕적 진실성과 종교적 성결성에 대한 의식을 갖고 있으며 인간은 다른 피조물에 대한 지배권을 갖고 있는 존엄한 존재라는 사실 및 하나님게서 모든 피조물 가운데 유독 인간만을 당신과의 대화와 교제의 대상으로 삼으셨음을 의미한다(엡 4:23,24; 골3:10). 성경은 결코 인본주의에 근거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성경만큼 인간의 가치를 높이 주장하는 사상은 아무 데도 없다. 이것은 인간의 고귀한 가치는 진정 하나님을 중심으로 할 때에만 올바로 파악되어 진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런데 이런 존엄한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잃어 버렸는가?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죄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 우리에게 하나님의 가장 완전한 형상인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어 이땅 위에 오셨다(골 1:15).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간다면 결국 우리는 점점 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되는 셈이다(롬 8:29). 그러나 이 땅 위에서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의 형상을 닮는다 하여도 그것은 희미한 그림자에 불과하다(고전 13:12). 그러나 훗날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이 들어 주시는 날, 즉 우리의 몸이 영화롭게 변화되는 날(고전 15:52) 하나님의 형상인 우리의 참모습이 밝히 회복될 것이다<창 2:4-7, 인간의 기원>.
* 창조 기사와 과학. - 창조 기사를 읽으면서 사람이 흔히 빠지기 쉬운 오류는 소위 과학만능주의적 사고 방식이다. 본래 과학이란 인간이 사물과 우주를 이해하는 합리적인 사고의 틀에 불과할 뿐이다. 따라서 그 신빙성은 가장 높은 확률의 확실성이라는 범주를 넘지 못한다. 더우기 과학은 관찰과 실험 및 검증이 불가능한 우주의 발생, 도덕과 신앙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변을 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건전한 의미에서 과학과 성경의 기사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고 있으며 또 한때 과거 미성숙한 과학의 시각에서 비과학적인 것으로 보였던 성경 기사는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그 확실성이 더욱 명확해져서 모든 사람들이 성경의 초시간적 무오성(無誤性)에 다만 탄복할 뿐인 경우가 허다하다. 실제로 창조기사의 일부 내용은 18,19세기에는 신화적이라고 매도당했다. 그러나 성경 원리와 현대 과학 개념을 집중적으로 비교 검토해 본 결과 성경 기사가 시대를 초월하여 진리이며 과학자가 쓸 수 있는 것보다 더 정확하고 사실적이란 것이 거듭 판명되고 있다. 특히 이 현상은 진화론과의 논쟁 과정에서 창조기사의 정확성이 입증되는 사례에서 잘 발견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성경은 원칙적으로 과학을 다루지 않는다. 그렇다고 비과학적이란 말은 아니다. 다만 성경은 과학을 초월할 뿐이다. 그것은 여기 창조 기사를 다루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은 다만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분명하고도 강력하게 선포함으로써 인간 구원의 첫 이정표를 확실히 세울 뿐이다. 그리고 인간에게 신앙을 요구하는 것이 바로 성경이다. 여기에 과학과 본질적으로 다른 성경의 위대함이 있다.
창세기는 한 마디로 기원의 책이다. 우주, 인간, 가정, 죄, 민족, 언어 등의 기원을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 그증 본장은 특히 성부 하나님의 계획과 성자 하나님의 행위 및 성령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말미암아 우주 및 인간, 그리고 모든 피조물들이 신의 사랑 가운데서 신의 은총으로 탄생되는 장면을 장엄하게 서술하고 있는 장면이다. 본장에 기록된 바 창조 기사의 명쾌함과 숭고함은 이교(異敎)의 각종 신화 사상이나현대의 우주 진화론이 얼마나 천박하고 모순에 가득찬 어리석은 인간의 사상인지를 잘 보여 준다.
창세기를 구속 계시(救贖啓示)의 여명이라고 볼 때 본장은 그 계시의 찬연한 첫 빛줄기로서 구속의 주체자가 누구이며 또한 그분은 어떠한 분이시며, 인간은 왜 구원 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인 지를 보여 준다. 실로 본장은 신앙의 문으로 들어가는 첫 계단으로서 본장의 기사를 믿느냐 혹은 믿지 않느냐에 따라 마침내 한쪽 길은 유신론적(有神論的) 구원과 기쁨의 천국으로, 또 다른 길은 무신론적(無神論的) 허무와 죽음의 지옥으로 통하게 될 것이다.
한편 본장은 창조 성격에 따라 무(無)에서 유(有)에로의 순간적 창조(Creatio Ex Nihilo)를 보여 주는 전반부(1,2절)와 이미 창조된 우주를 6일 간에 걸쳐 혼돈 상태(Chaos)에서 질서 상태(Cosmos)에로 완성시켜 나가시는 점진적 창조를 보여 주는 후반부(3-31절)로 구분되는데, 내용상 창조의 주체자되시는 하나님과 창조의 면류관인 인간 양편에 모두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먼저 하나님에게 있어 본장은 전우주와 모든 생명체 및 피조물은 당신께서 지으신 '당신의 것'이라는 소유권 주장이 곳곳에 명시된 일종의 등기 문서이다. 그리고 인간에게 있어 본장은 첫재, 인간이 어디로부터 왔으며 또한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 줌으로써(롬 11:36) 내가 결코 목적없이 허무하게 살다 그저 흙으로 돌아가는 숙명론적인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태어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보내졌음을 일깨워 준다. 둘째, 인간이 절대적 초월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모든 피조물 중 가장 고귀한 존재로 지음 받았음을 똑똑히 보여 줌으로써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생명의 가치와 경외를 깊이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엄숙히 주어진 삶을 살도록 해준다.
1. 창조 사역의 개시(1:1-2)
혹자는 1,2절을 빛이 창조된 첫째날로부터 구분짓는 것에 대하여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1,2절은 시공(時空)이 창조된 바로 그 순간의 창조 행위를 묘사한 것이므로, 엄밀히 시간적으로만 따지면 당연히 첫째날에 포함된다. 그러나 여기서 1,2절을 따로 구분한 것은 1절은 무에서 유에로의 순간적 창조를, 2절은 개체적 창조 행위가 있기 전 일반적 상태를 각각 묘사한 것으로서 그 중요성이 크기 때문에 따로 떼어 구분한 것뿐이다.
1절은 창조행위의 객관적 서문인 동시에 창조의 역동성과 역사성을 강조하는 하나님 행위적 선언이다. 하나님은 태초에 어떠한 외부의 도움 없이 당신의 주권적인 계획과 의지에 따라 천지를 창조하심으로 세계와 시간과 역사 및 계시의 아침을 활짝 여셨던 것이다.
혹자는 1절에 메시지가 단순히 선언에 불과하다는 소위 '제목설'을 주장하면서 참된 의미의 창조 시작은 3절부터라고 주장한다. 만약 그렇다면 2절의 상태는 하나님의 의지적인 창조 사역 이전에 이미 존재한 것(상대 창조)이 되므로 하나님의 창조는 진정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신 것(절대 창조)이라 할 수 없다. 그러므로 1절은 단지 선언에 불과한 제목이 아니고 실질적인 창조 행위, 곧 하나님의 신성한 노동 행위로 보아야 한다. 우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creatio ex nihilo) 하나님의 천지창조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지혜와 능력(롬 1:20) 정교한 계획과 생명력 넘키는 힘(시 19:1-6)을 확인할 수 있으며 아울러 하나님만이 만유의 근원이시며 주인이심을(시 148:2-4)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다.
* 성경의 창조 기사와 이방의 창조 신화. - 고대로부터 모든 민족들에게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기원론이 있었다. 즉 인간들은 이 세상과 인간의 기원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나름대로 이 문제를 해결해 보기 위해 각종 창조 신화를 창출해 내었다. 그러나 그 어느 신화도 성경이 선포하는 바 인간과 세상에 대한 창조의 명쾌함과 단순한 그리고 장중함과 그 지고한 도덕성을 따르지 못한다. 이방 창조 신화의 특징은 한마디로 허황이다. 각종 신들의 족보를 만들어 서로 질투하게 하고 서로 싸우게 만든다. 거기에는 도덕성과 존엄성이 현저히 결여되어 있다. 오직 다신론적 사상(多神論的 思想), 각종 샤머니즘shamanism)과 애니미즘(animism), 유출설(流出說), 이원론(二元論) 등이 판을 칠 뿐이다. 기껏해야 단일신론(單一神論)에 머무르고 만다. 따라서 그들의 창조 신화에 나타난 각종 신은 인조신(人造神, man-made gods) 아니면 차용신(借用神,loan-gods)에 불과하다.
기독교가 명쾌히 선포하고 있는 바 인격적인 유일신(唯一神)과는 본질상 다르다. 물론 인간의 가치는 인간에 의해 고안된 신에게 여지없이 짓밟히고 만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는 다른 종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은 고등 종교에 머무는 것이 결코 아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기독교만이 유일한 계시 종교요, 구원 종교이다(갈 1:7,8). 창1:1은 바로 이 진리를 온 천하에 분명히 선포함에 다름아니다.
따라서 창 1:1에 대한 신앙은 기독교의 문으로 들어가는 첫 계단이요, 생명과 구원의 길로 들어서는 첫 발자욱이다. 아래 도표는 성경의 창조 기사와 이방의 창조 신화를 간략히 비교해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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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 분 | 출 전 | 내 용 |
+--------+--------+--------------------------------------------------------+
| | |천지는 영원 전부터 스스로 계시는 자 곧 하나님에 의해말씀|
| 성 경 | 창세기 |으로 창조되었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
| | |행복을 위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신의 형상을 따라 신의 |
| | |사랑 가운데서 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다. |
+--------+--------+--------------------------------------------------------+
| | |세상은 마술적 주문(呪文)을 가진 최고의 신 말둑(Marduk)이|
| 바벧론 | 에누마 |혼란의 여신 티아맛(Tiamat)을 죽여 그 시체를 둘로 쪼개 |
| 신 화 | 엘리쉬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티아맛의 군대 장관이자 영웅인|
| | |킹구(Kingu)의 피로 만들었는데 만든 목적은 신들을 섬기게 |
| | |하고 힘든 노동을 시키기 위함이다. |
+--------+--------+--------------------------------------------------------+
| | |세상(궁창)은 바다의 신 쇼(Sjoe)가 그 물 가운데 있던 |
| 이집트 |엘레판틴|누트(Nut)란 신을 죽여 그것을 높이 매달아 놓은 것이다. |
| 신 화 | 토 판|그리고 인간은 크눔(Khnum)이란 신에 의해 토기 그릇처럼 |
| | |주조(鑄造)된 것이다. |
+--------+--------+--------------------------------------------------------+
| | |태초에 지혜의 신 아후라 마츠다(Ahura Mazda)와 파괴의 신 |
| | |앙그라 마인유(Angra Mainyu)가 있었다. 세상과 인간 그리고|
|페르시아|아베스타|빛, 천사, 선, 아름다움 등은 지혜의 신 아후라 마츠다에 |
| 신 화 | |의해 만들어 졌으나 어두움, 귀신, 악과 증오, 추함 등은 |
| | |파괴의 신 앙그라 마인유에 의해 만들어 졌다. 이 두신은 |
| | |자기들이 만든 것으로서 태초이래 세상에서 끊임없이 싸우고|
| | |있다. |
+--------+--------+--------------------------------------------------------+
* 원시 창조 상태. -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구체적인 질서와 아름다움으로 단장하시기 이전 현상은 '혼돈'과 '흑암'이란 말로 요약된다. 물론 이러한 혼돈과 공허가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처럼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런한 미완성의 상태가 결코 선(善)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런한 상황을 방기(放棄)치 않으시고 친히 운행하심으로 질서와 아름다움을 부여하셨다. 상징적 의미에서 이는 하나님의 찾아오시기 전 우리의 삶이 혼돈스러우며 공허하고 마치 흑암 가운데 거하는 것과 같이 무질서하나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역사하실 때 참된 기쁨과 질서를 찾는 것과 유사하다. 따라서 오늘날 이 세상이 비록 혼란하나 하나님의 관심하에 있을 때 마침내 찬란한 미래가 보장되는 것과 같이 우리의 삶도 지금은 죄에 오염된 상태에 있으나 하나님의 관심이 늘 함게 하는 한 마침내 구원받음은 물론 매일 매일 성화된 자의 면모를 가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2. 창조 사역의 전개(1:3-31)
천지 창조를 계획하신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시므로 한꺼번에 창조 사역을 종결시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을 6일에 걸쳐 시행하심으로써 모든일에는 순서가 있으며 또한 점진적인 기쁨이 어떠한가를 보이셨다. 사실 창조 기사의 전과정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치밀하신 계획과 조화로운 질서를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질서와 아름다움 및 선의 신(神)이자 합리적인 신임을 가르쳐 준다(고전 14:33,40). 한편 창조 사역을 크게 둘로 나누면 (1)전반부 3일은 준비 작업(1-13절)을 (2)후반부 3일은 완성 작업(14-31절)을 이루고 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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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 비 (배 경) | 완 성 (설 치) |
+------+----------------------------+--------+---------------------------+
|첫째날|우주, 빛(1:1-5) |네째날 |해, 달, 별(1:14-19) |
+------+----------------------------+--------+---------------------------+
|둘째날|궁창(1:6-8) |다섯째날|새, 물고기(1:20-23) |
+------+----------------------------+--------+---------------------------+
|세째날|바다, 육지, 식물(1:9-13) |여섯째날|짐승, 사람(1:24-31) |
+------+-+--------------------------+--------+---------------------------+
|일곱째날| 안식하심(2:1-3) |
+--------+---------------------------------------------------------------+
위 도표에서 볼 수 있듯 하나님께서는 다른 피조물들을 창조하기 전 제일 먼저 빛을 만드심으로써 일차적인 생존 환경을 만드셨고, 이어 궁창을 만듦으로써 공간을 분할하셨다. 그후 바다와 육지를 만들어 생물이 서식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었고, 동물을 창조하기에 앞서 식물을 창조하심으로 먹이 사슬의 가장 기초적인 기반을 만드셨다. 그후 각종 동물들을 만들었으며 최후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만드시어 지금까지 창조한 모든 피조 세계를 지배, 관리케 하셨다. 이는 창조 역사가 지니는 합리성과 더불어 원목적을 분명히 암시해 준다. 즉 인간 창조를 지향점으로 전개된 창조사역은 당신의 주권의 상징인 인간을 피조 세계 안에 두시고 그를 통해 만물을 통치, 유지하시며 영광받기 원하셨던 것이다.
* 창조 기사의 특징. - 창조 기사의 전(全) 내용을 살펴보면 그것은 철저히 하나님의 단독적이고 주권적이며 자의적(自意的)인 계획과 활동의 결과였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하나님 중심적인(God-centric) 창조 기사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
| 구 분 | 성 구 | 의 미 | 참고귀절 |
+---------+------------+----------------------------------+--------------+
|창조 주체|'하나님이' |만물의 원인자, 근원자, 운행자 |행 17:24, |
| | | |히 11:3 |
+---------+------------+----------------------------------+--------------+
|창조 근거|'가라사대' | 말씀 |요 1:1-3 |
+---------+------------+----------------------------------+--------------+
|창조 효과|'그대로 | 온전한 성취 |시 33:6-9 |
| | 되니라'| | |
+---------+------------+----------------------------------+--------------+
|창조 평가|'보시기에 |하나님의 의도대로 이루어진 |마 3:17 |
| | 좋앗더라'|지고(至高)의 만족상태 | |
+---------+------------+----------------------------------+--------------+
|창조 등기|'칭하시고' |이름의 부여는 세상에 대한 자신의 |왕하 23:24 |
| | |주권과 소유권을 의미 | |
+---------+------------+----------------------------------+--------------+
|창조 수준|'각기 |진화나 발전이 필요치 않은 성숙한 |행 17:25 |
| | 종류대로'|개체 | |
+---------+------------+----------------------------------+--------------+
|창조 이력|'이는... |시간과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 |행 17:26 |
| | 날이니라'| | |
+---------+------------+----------------------------------+--------------+
* 말씀으로 창조된 세계. - 본장에는 새로운 사물이 창조될 때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있으라'는 말이 언급되어 있다. 이것은 천지 창조의 근거가 오직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말씀 뿐이었음을 가르쳐 준다(시 19:3, 4; 33:6). 하나님의 말씀은 당신의 생각과 기뻐하시는 뜻을 반영한 것이다. 그 자체가 선포된 것을 온전히 성취할 수 있는 역동적인 능력이며 신비이다(사 14:24-27). 이런 점에서 하나님은 말씀이시며(요1:1)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인 것이다. 말씀이 천지를 창조하셨으며(요 1:3) 마침내 인간 구원을 위해 성육신(Incarnation)하셨고(요 1:14) 지금도 인간 구원을 위해 역사하시며(히 4:12) 인류 최후의 날에는 심판의 유일한 주관자 및 근거로 활동할 것이다(요12:48). 한편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은 말씀의 능력과 말씀의 중요성을 깨우치기 위함이며 당신이 인격적인 존재이심을 계시하신 것인 동시에 피조물인 인간이 반드시 그 절대적 권위를 가진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 창조 사역의 이중 구조. - 하나님은 6일 동안의 신성한 노동 행위를 통해 모든 피조 세계를 친히 창조하셨다. 물론 이 창조 사역은 부족하거나 미완(未完)의 상태가 아닌 완전한 형태의 피조계를 만드심으로 종결되었다. 이같은 사실은 인간 창조를 끝으로 스스로 최고 권위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공식 인준(認准)한 사실과 제7일의 기쁨과 평안의 안식(2:1-3)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만물과 인간을 통해 영광받으시기 원하셨던 하나님의 창조 의도는 만물의 영장 인간의 불순종으로 무산(霧散)되는 듯했다(3장). 즉 당신의 창조는 불완전하고 결함이 있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세계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타락한 그 인간 회복과 오염된 그 피조 세계에 대한 재창조 사역을 곧 착수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세계와 인간을 향한 당신의 창조 사역은 이미(already) 완전히 이루어 졌으며 또한 지금(now)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리고 끝내(not yet) 완전히 이루어 질 것이다.(사65:17; 계 21:1-4). 이처럼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완성과 계속이라는 이중적 구조를 가지고 역사 속에서 오늘도 성취, 진행되고 있다. 존재와 시간의 참 시작이신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진행시키며 완성해 나가신다는 이 사실은 바로 기독교 신앙의 요체이기도 하다(롬 11:36).
* 심히 좋은 이 세상. - 1장에서만 하나님께서 당신의 창조물에 대해 '보기에 좋았다'는 말이 7번(4,11,13,18,20,25,31절)나온다. 실로 우리는 아름다운 자연의 비경(秘境)을 대할 때마다 하나님의 그 놀라운 솜씨를 찬탄하게 된다. 현재 우리 인간의 죄로 인하여 같이 신음하고 있는(롬 8:25) 이 자연도 우리에게 이처럼 큰 놀라움과 기쁨을 준다면 그 옛날 타락 이전의 자연과 훗날 우리가 들어가 살게 될 새 하늘과새 땅의 아름다움은 그 어떠하겠는가? 따라서 이 말씀에 근거하여 볼 때 이 땅 위의 삶을 고해(苦海)로 보거나 모든 물질은 본래 악하다고 보는 것은 잘못이다. 물론 하나님의 구원 은총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있어 인생은 고해란 말이 틀림없지만 구원받은 성도는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궁극적 소망이 있기에 인생은 결코 고해가 아니라 '소망의 바다'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은 이 인생을 주 안에서 자연과 더불어 선하게 누리며 참되게 살아가자! 그리고 이 땅 위에서 나그네 인생길이 힘들 때 주변의 아름다운 만물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의 손길을 느끼도록 하자!
* 만들어진 인간. - 다른 피조물들과는 달리 인간은 하나님이 독특한 방법으로 친히 만드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26절)라고 신적(神的) 결의 표명을 함으로써 이제까지의 창조 역사보다 인간 창조가 더욱 의미 깊은 것임을 보여 주셨다. 즉 인간 창조에 있어서는 성부, 성자, 성령의 3자간 '상의'(相議)의 과정을 두심으로써 인간을 타 피조물보다 더욱 신중하고 존귀하게 만드셨음을 암시하셨다. 물론 하나님게서는 다른 상담자가 필요치 않으셨기 때문에 당신 자신과 상의하셨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처럼 인간 창조는 삼위(Three Persons)가 의논할 정도로 중요한 사역이었다. 이는 인간이 이 세상 어느 것보다 귀중함을 웅변적으로 보여 준다. 인간 하나의 생명이 온 천하 보다도 귀하다는 그리스도의 말씀도 이러한 창조 사역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마 16:26). 이러한 인간 존중의 정신은 성도에게 있어 스스로를 죄로 더럽히지 않겠다는 자긍심으로 표출되어야 하며 한걸음 더 나아가 타인의 인권과 개성 역시 존중하는 정신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 -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은 인간은 지적이고 인격적이며 자유 의지를 가진 행위자로서 영적 존재라는 사실과 도덕적 진실성과 종교적 성결성에 대한 의식을 갖고 있으며 인간은 다른 피조물에 대한 지배권을 갖고 있는 존엄한 존재라는 사실 및 하나님게서 모든 피조물 가운데 유독 인간만을 당신과의 대화와 교제의 대상으로 삼으셨음을 의미한다(엡 4:23,24; 골3:10). 성경은 결코 인본주의에 근거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성경만큼 인간의 가치를 높이 주장하는 사상은 아무 데도 없다. 이것은 인간의 고귀한 가치는 진정 하나님을 중심으로 할 때에만 올바로 파악되어 진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런데 이런 존엄한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잃어 버렸는가?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죄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 우리에게 하나님의 가장 완전한 형상인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어 이땅 위에 오셨다(골 1:15).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간다면 결국 우리는 점점 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되는 셈이다(롬 8:29). 그러나 이 땅 위에서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의 형상을 닮는다 하여도 그것은 희미한 그림자에 불과하다(고전 13:12). 그러나 훗날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이 들어 주시는 날, 즉 우리의 몸이 영화롭게 변화되는 날(고전 15:52) 하나님의 형상인 우리의 참모습이 밝히 회복될 것이다<창 2:4-7, 인간의 기원>.
* 창조 기사와 과학. - 창조 기사를 읽으면서 사람이 흔히 빠지기 쉬운 오류는 소위 과학만능주의적 사고 방식이다. 본래 과학이란 인간이 사물과 우주를 이해하는 합리적인 사고의 틀에 불과할 뿐이다. 따라서 그 신빙성은 가장 높은 확률의 확실성이라는 범주를 넘지 못한다. 더우기 과학은 관찰과 실험 및 검증이 불가능한 우주의 발생, 도덕과 신앙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변을 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건전한 의미에서 과학과 성경의 기사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고 있으며 또 한때 과거 미성숙한 과학의 시각에서 비과학적인 것으로 보였던 성경 기사는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그 확실성이 더욱 명확해져서 모든 사람들이 성경의 초시간적 무오성(無誤性)에 다만 탄복할 뿐인 경우가 허다하다. 실제로 창조기사의 일부 내용은 18,19세기에는 신화적이라고 매도당했다. 그러나 성경 원리와 현대 과학 개념을 집중적으로 비교 검토해 본 결과 성경 기사가 시대를 초월하여 진리이며 과학자가 쓸 수 있는 것보다 더 정확하고 사실적이란 것이 거듭 판명되고 있다. 특히 이 현상은 진화론과의 논쟁 과정에서 창조기사의 정확성이 입증되는 사례에서 잘 발견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성경은 원칙적으로 과학을 다루지 않는다. 그렇다고 비과학적이란 말은 아니다. 다만 성경은 과학을 초월할 뿐이다. 그것은 여기 창조 기사를 다루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은 다만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분명하고도 강력하게 선포함으로써 인간 구원의 첫 이정표를 확실히 세울 뿐이다. 그리고 인간에게 신앙을 요구하는 것이 바로 성경이다. 여기에 과학과 본질적으로 다른 성경의 위대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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