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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2

 

겐그레아 - 이것은 고린도의 동반부(東半部)에 있는 도시인데, 18:18에도 이

지명이 나온다. 일군 - 헬라 원어로 디아코노스( )인데, "집사"라고

번역할 수 있다. 크레다너스(greijdanus), 이것을 그저 "일군"이란 뜻으로 알았고,

즈안(zahn)은 집사직으로 알았고, 칼빈(Calvin), 여기 디어코노스(

)란 말을 "사역자"(Minister)라는 뜻으로 번역하고, 그것을 집사직(執事職)으로 확정

하였다. 그는, 초대 교회에 있어서 이와 같은 여집사의 직분이 신실한 과부들 가운데

서 택함이 되었다고 하였다. , 여자로서 집사될 만한 사람은, 보통으로 자녀가 없

는 자로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에 헌신할 수 있었던 자들이라고 한다(Commentary

upon the #pistle to the Romans, pp.418-419). 리덜보스(H.N.Ridderbos), 여기 디

아코노스( )란 말이 상무(常務)의 인상을 주는 우산( )이라

는 현재분사와 "교회의( )라는 특별한 표현들 때문에 집사직을 의미

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확실치는 않다고 하였다. 그는, 딤전 3:11이 여집사직을 말

하는 것 같으나 그것도 확실치 않다고 한다(Romeinen, p.162). 그러나 딤전 3:11,

확실히 집사직에 대한 말씀이다. 어떤 학자들은 여기 "여자들"( )

란 말이 감독의 아내, 혹은 남집사의 아내를 관설한다고 한다. 그러나 딤전 3:11"

여자들도"란 말은, 8절의 "집사들도"란 말처럼, "이와같이"( )란 말과

함께 나온다. 이것을 보면, 그 본문이 남집사의 자격을 말하는 동시에, 여집사의 자

격도 병립적(竝立的)으로 진술한 것이 분명하다(N.J.d. White, in the Expositor's

Greek Testament, Vol.IV, p.116). 고대 교회에 여집사의 직분이 있었던 것이 증명된

. 예를 들면, 사도 헌장(Constitutiones Apost. II. 26, 57, III. 7,15)에 이사실

이 기록되어 있고, 감람산에서 발견된 어떤 조각문(6세기)에 역시 여집사에 대한 관설

이 있다(Revue Bilique, 1904, p.240). 그러므로 우리는 칼빈(Calvin)과 같이, 우리

본문(16:1)"일군"이란 말이 집사를 의미한다고 생각 한다. "뵈뵈"라는 여신도가

로마의 교회에 어떤 용무로 가느데, 바울이 그에게 친서(親書)를 주어서 영접을 받도

록 한다.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 - 겐그레아는 동서(東西)교통의 요충(

)에 있어서, 거기 다른 지방의 신자들이 많이 내황하였다. 그들은, 그 여행 중에

뵈뵈의 물질적 원조와 기타 도움을 많이 받았던 것이다. 여자들로서 할 일은, 남들을

다스리는 것보다 남들을 도와 주며 보호하는 일이다. 여자가 창조된 목적이 그것이다

2:18에 말하기를,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고 하였다. 사사기 4

장을 보면, 여선지 드보라가 사사(師士)의 직임을 받은 일이 있으나(4:4), 그의 노

래가 말한 것 같이 그 때에 남자들 중에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5:7에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관원이 그치고 그쳤더니 나 드보라가 일어났고 내가 일

어나서 이스라엘의 어미가 되었고"라고 하였다.

남자에게서 배울 것은, 그 굳센 성격(고전 16:13)이다. 그러나 여자에게서 배울

것은 그 동정심과 및 그 봉사 활동이다. 9:17-18에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잘 생각하고 곡하는 부녀를 불러오며 또 보내어 지혜로운

부녀를 불러 오되 그들로 빨리 와서 우리를 위하여 애곡하게 하며 우리의 눈에서 눈물

이 떨어지게 하며 우리 눈꺼풀에게 물이 쏟아지게 하라"고 하였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대로, 남들을 동정하여 보호하여 준 여자들의 역사를 몇 가

지 볼 수 있다. 요게벱은 어린 모세를 석달 동안 숨겨서 바로의 학살을 면케 했고(

2:1-2). 기생 라합은 이스라엘의 정탐 두 사람을 숨겨 원수의 손에 넘겨주지 않았고

(2:1-7), 미갈은 다윗을 창문으로 달아 내려 원수를 피하게 하였고(삼상 19:12),

아비가일은 자기 남편 나발과 그 족속을 다윗의 손에서 건지기 위하여 다윗을 찾아와

서 진리의 말씀으로 애걸하여 성공하였고(삼상 25:2-38), 드고아 여인도 다윗왕으로

하여금 압살롬을 찾아 외복케 하려고, 다윗왕에게 나아가 간곡히 말하여 왕으로 하여

금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데려오게 하였다(삼하 14:1-33). 세바가 다윗을 거스려 발

란을 일으켰을 때에, 요압이 세바의 있는 성읍을 에워싸고 크게 전쟁을 벌이려고 하였

. 그 때에 지혜로운 여자 한 사람이 나와서 요압을 권유하여 세바 한 사람만 죽이

게 하고, 모든 시민을 살리도록 하였다(삼하 20:1-22). 신약 시대에 이르러 예수님의

전도 운동에 있어서, 많은 여자들은 자기들의 재산을 바쳐 예수님의 일에 이바지 하였

(8:1-3), 루디아는 바울의 전도를 듣고 개종(改宗)한 후에 최선을 다하여 바울의

일행을 도와 주었다(16:11-15). 그는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봉사하기를 원하였

든지, 특별히 다음과 같은 말이 그것을 알려준다. ,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

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리라"고 한 말씀이다(16:15 하반)

 

 

16:3

 

이 귀절부터 16절까지에 근거하고, 몇몇 학자들이 헛된 추측을 하였다. , 이 부

분에 나오는 이름들 중에 로마식 이름이 적다는 문제와 바울이 일찌기 가 보지 않은

로마에 어떻게 지면 인사(知面人士)들이 그리 많을까 하는 문제 등으로 인하여, 어떤

사람들은, 본장을 로마서의 순정 부분(純正部分)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율리케르

(Julicher), 본장을 바울이 에베소에 보낸 또 한 개의 서신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추측들은 그릇된 것이다. 로마는 당시 세계의 국제 도시이고 교통 요충(交通要衝)

이었으니 만큼, 각국 사람이 교류하였다. 그러므로 그곳 교회에 로마 본토인보다 외

국인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여기 관설된 인사들이 주로 외국인들이었을 것이

. 그리고 바울이 비록 로마의 교회에 가 본 일은 없었으나, 여기 관설된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 일찌기 알던 외국인들이었을 것이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 "브리스가""아굴라"의 아내이다(18:2-3). 이들은,

찌기 글라우디오 황제가 유대인들 로마에서 축출할 때에 쫓겨나서 에베소에 와 있던

자들이다. 그들이 아볼로란 학자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준 일도 있었

.(18:26). 18:2, 18, 26; 고전 16:19; 딤후 4:19 참조.

 

 

 

16:4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 어느 시기(時期)에 어떤 곳에

서 이런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바울의 수난(受難)은 비일비재(

一非再)로 많이 있었으니, 그와 동행한 일이 많았던 이 부부(夫婦)가 저런 희생적 각

오를 한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이렇게 바울을 사랑하게 된 동기는 무엇일까?

그들은, 서로 일반적으로 또는 법적으로만 사랑할 뿐 아니라,

(1)우애(友愛)로 사랑하였기 때문임, 우애란 것은, 친근한 접촉을 통하여 생긴다.

우리가, 멀리 있는 좋은 사람을 존경할 수도 있고 법적으로 사랑할 수도 있다. 그러

나 그를 우애하기는 어렵다. 우애란 것은 뜨겁기 때문에 동고동락 하게까지 되나니,

그것은 가까운 접촉을 통하여 참되이 얻어진 사귐에서 일어난다. 그런데 사람들이

서로 친근히 지나다가 어느 한편의 잘못으로 인하여 멀어지는 일도 있다. 그러나 사

람들이 서로 친근히 지내는 중에도 예의(禮儀)를 지켜 서로 존경하면 그 우교(友交)

뜨거워지면서도 오래 계속한다. 바울은 아굴라와 그 아내에게 어떻게 대하였던가?

()그는 영업 관계로 그들과 친근히 지냈음. 18:3을 보면, 그는 고린도에서 그들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였다고 한다. 동업자들도 거리가 멀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서로 욕심을 채우려고 신용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서로 도

와 주면 형제와 같이 가까와진다. 바울은 장막을 만들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로 더불

어 동업하였으나 그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고 도리어 유익을 주었을 것이다. 그는,

사욕을 품지 않았고 남들을 돕기 위하여 노동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내가 아무의 은

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너희 아는 바에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

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

억하여야 할지니라"고 하였다(20:33-35). 그는 또 고린도 교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거니와 또 조심하

리라"고 하였고(고후 11:9), 또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너희가운데

서 규모 없이 행하지 아니하며 구구에게든지 양식을 값 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라고 하였다(살후

3:7-8). 그 뿐 아니라, ()그는, 브리스가와 아굴라로 더불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도 동역자였다. 영적 동역(靈的同役), 더욱 피차간에 우애를 돈독히 해 준다. 육신

사업에보다 영적 사업에는 원수와 대적이 많다. 복음의 동역자들이 이런 원수들을 꼭

같이 함께 미워하면, 서로끼리 가까와지며 서로 뜨겁게 사랑하게도 된다. 그뿐 아니

, 복음의 일군들이 서로 도와 주면 서로끼리 사랑하는 것이 더욱 뜨거워진다. 이렇

게 될 때에는 그들에게 성령의 은혜가 많아져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깊이 느껴져 서로

끼리 위하여 죽을 마음도 생길 수 있다. 개혁자 쥬글리(Zwingli)의 별세한 소식을 들

은 그의 동역자 오에클람파디우스(Oeclampadius)는 상심한 너머지 병들었다가 오래지

않아 그도 죽었다. (2)그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 진리를 가르쳐 복음의 도리에 확

신을 주었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성경 학자 아볼로에게 하나님의 도()"더 자

세히 풀어" 일러 주었다고 한다(18:26). 이것을 보면,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보

통으로만 안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야말로 신학적(神學的)으로 복음을 깊이 알았다.

그들이 이런 확신을 어디서 얻었을까? 두말 할것 없이, 그들은 바울에게서 배웠을 것

이다. 사람이 신령한 은혜를 받은 다음에는, 그 은혜를 소개해 준 인도자에게 은혜 갚

을 생각을 가지는 법이다. 바울은 말하기를, "그들(유대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

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하였다(15:27).

나 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 바울은,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그의 생명을 보호하여 준데 대하여 감사한다. 그 뿐 아니라, 이방의 모든 교

회들도 그들에게 감사한다고 한다. 이것을 보면, (1)바울에게 대한 그들(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사랑은 편벽된 사랑이 아니고, 주님을 위한 사랑이었던 것이 드러나며, (2)

그 뿐 아니라, 바울의 생활이 어디까지나 모든 교회의 공복(公僕)으로 나타났던 사실

도 알려진다. 그 때에 누구든지 바울을 도와준 것은, 결국 교회를 도와 줌과 마찬가지

였다.

 

 

 

16:5

 

또 저의 교회에게도 문안하라 - "또 저의 교회"란 말은, 헬라 원어를 오역(誤譯)

것이다. 이것은, "또 저희 집에 있는 교회"라고 해야 된다. 그 때에는, 신자들이 자

기들의 사가(私家)에 회집하여 예배하였다(16:14-15; 고전 16:9; 4:15; 2).

그렇다고 하여, 그 때에 특별한 건물을 지정하고 모인 교회가 전연 없었다는 것은 아

니다. 어쨌든 그 때에는 기독교회에 있어서, 건물 문제가 중대한 관심건(關心件)

아니었다. 신약 성경에는, 교회의 건물에 관한 무슨 연보라든지, 혹은 무슨 사건이

전연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 때에는 교회가 신령한 은혜 중심으로 모였고, 어떤 교세

(敎勢)나 시설 같은 외부적인 것을 중심하지 않았다.

나의 사랑하는 에배네도 - 바울은, 여기서 인상 깊은 자기와 관련된 신자들을 관설

한다. "에배네도"란 사람은, 그의 아시아 전도에 최초로 결심하고 그리스도를 믿은자

(처음 익은 열매), 참으로 전도자의 기억에서 사라질 수 없는 귀한 인물이다.

저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익은 열매니라 - "처음 익은 열매"란 것은,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이 처음 익은 곡식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쳤던 것을 생각케 한다(

23:19; 18:4, 26:2, 10). 이렇게 바친 것은 소출의 전부를 바친다는 대표적 의미였

. 신약성경에 그리스도의 부활을 가리켜 "첫 열매"라고 한 말씀이 있는데(고전

15:20, 23), 그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시간적으로도 첫째가 되지만, 세상 끝날에 모

든 신자들의 부활을 보장하는 의미도 가진다. 그리고 이 말은 일반 신자들에게 대하여

도 사용되었는데(8:23; 1:18; 14:4), 이것은 그들의 받은 성령이 그들의 최

후의 구원을 보장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처럼 "처음 익은 열매"란 말은 시간적으로

처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미래의 최후적 구원을 보장한다. 그러므로 (1)이것은 기초적

인 것으로써 전체를 보장하며 또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11:16). (2)그 뿐 아니라,

이것은 그리스도에게 바쳐진 제물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에배네도"란 사람을 가리켜

"처음 익은 열매"라고 한것은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그가 보통 신자가 아니고 아시아

교회 성립에 기초가 될만한 중요한 신자였음을 알게 한다. 그의 신앙 생활은 자기 한

개인의 구원을 성취하는데 멎어진 것이 아니고, 아시아 교회 전체를 성립시키는데 제

물이 되었던 것이다. 신자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이니 만큼, 자기 자신을 위

하여 살 자가 아니고 하나님의 모든 교회를 위하여 제물이 되어야 한다.

 

 

 

16:6

 

너희를 위하여 많이 수고한 마리아 - "마리아"는 누구인지, 다른 기록이 없으므

로 더 알아 볼 길이 없다. 그러나 성도들을 돕기 위한 그의 많은 수고는, 신자들의 기

억에서 영원히 사라질 수 없는 귀한 행적이다. 마리아가 무슨 일로 인해 많이 수고했

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여기 "수고하였다"는 말의 헬라 원문(

)을 보아, 그것은, "수난"을 의미하지 않고 "많은 노고"(努苦)를 의미한다.

리아의 노고는 교회 봉사를 위한 것이다. 기독 신자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빙자하여

노고를 피하거나 봉사를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은, 사람을 게으

르게 만들기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땅에 계실 때

에 만사를 권능으로 쉽게 해결하려 하시지 않고 애쓰며 힘써서 일하셨는데, 어떤 때에

는 음식 잡수실 틈도 없었다. 그는 각촌(各村)에 찾아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하셨다고

한다(8:1). 이것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봉사를 위한 노고를 오히려 권능보다 존중

시 하셨다. 그가 범죄한 인생에게 처음으로 부탁하신 말씀은, 얼굴에 땀이 흘러야 될

것과,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야 할 사실이었다(3:19). 그러므로 인생이 땅 위에서

()을 이루는 비결은 노고에 있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할 것이 있다. , 노고는, 주님을 믿고 또 주님을 위하여 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노고는 도리어 저주요 기쁨과 축복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그것은 힘있게 뻗쳐 나가지도 못한다. 127:2에 말하기를,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

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라고 하였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위

하여 일하는 자만이 참다운 성과(成果)를 거두고(127:1), 또 만족과 기쁨을 누린

. 5:12에 말하기를, "노동자는 먹는 것이 많든지 적든지 잠을 달게 자거니와"

고 하였다.

주님을 위하여 수고롭게 일하는 자는,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그렇게 일하는 자이

. "마리아", 로마의 교회 교인들을 위하여 그렇게 애써서 일하였다. 사람은 누구

든지 자기 한 사람만 위하여 일할 자가 아니고, 무수한 사람들을 위하여 일할 처지에

있다. 그 이유는, 그는, 다른 사람들을 자기 자신과 같이 간주하고 살아야 되기 때문

이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모든 사람의 모본이요 특별히 기독 신자들의 모본이다.

 

 

16:7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 바울은, 여기서 자기 친척이

그리스도를 믿게 된 사실에 대하여 기쁘게 여기고 그들에게 문안을 전한다. 여기 "

"이란 말은 헬라 원어로 슁게네이스( ), "동포"란 뜻이다. 바울

은 자기 동포 곧 이스라엘 민족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실에 대하여 뼈 아프게 생

각하였다(9:3). 그의 이와 같은 심리는 동족이란 혈연(血緣) 관계보다 하나님 중심으

로 움직였던 것이다. , 이스라엘 민족은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 받았

으며, 계약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9:4),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는 것은 통탄할 만한 일이었다. 약속을 받았던 백성이 약속 성취로 오신 메시야

를 믿지 않았다면, 그것은 이방(異邦) 전도에 큰 애로가 될 것이었다. 만일 그의 동포

인 이스라엘 민족이 어디서든지 그리스도를 믿어 진리대로 산다면, 이방인들이 그것을

보고 더욱 힘있게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올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서는 그리스

도를 믿는 동포 한 사람이 말할 수 없이 반가웠던 것이다.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그들이 바울과 함께 갇혔던 때는 알기

어려우나, 그들이 주님을 위하여 그렇게 수난한 것만은 확실하다. 여기서 바울이 주님

을 위하여 그들과 "함께 갇혔던" 사건을 말하여 보여준 것은, (1)그들은 수난을 그렇

게 높이 평가함이었음. 벧전 4:13-14은 말하기를,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

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

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혼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고 하였다. (2)그가 그들과 함께 수난하는 중에 서

로 형제와 같이 가까와졌음. 사람들이 주님을 위하여 함께 수난하면, 하나님을 어버지

로 한 형제관계(兄弟關係)의 뜨거움을 느낀다(1:9; 벧전 5:9).

"안드로니고"는 헬라식 이름으로서 황족(皇族) 중에 발견된다. 그리고 "유니아"

로마식 이름으로서 여자의 이름이다. 그러므로 이 두 사람은 부부(夫婦)라고 생각된

. 우리는, 여기서도 여자가 복음 전파에 중요한 일을 한 것을 볼 수 있다.

저희는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고 - 이 문구는, "그들이 사도들 중에 유명한 자

들이라"고도 번역될 수 있다. 이 번역에 의하면, 그들도 사도들이라는 뜻이 성립된다.

그들은 12사도 반렬에 속한 자들이 아니고, 넓은 의미에서 사도급(使徒級) 인물들이겠

. 그들은 본래의 사도들처럼 많은 교회에 순회하며 복음을 전하여 널리 알려졌을 것

이다. 여러 권위 있는 학자들이 이 둘째 해석을 지지한다(Sanday, Ridderbos).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 , 그들이 바울보다 먼저 그리스도

를 믿었다는 뜻이다. 이 말씀을 보면, (1)그리스도를 믿는 일에 대하여, 바울이 얼마

나 귀하게 생각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는 사건에 대하여 이

렇게 시간적 순서까지도 음미(吟味)해 보며 즐거워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2)그는,

이 말로써 자기의 선배를 존중시하는 표시도 보여준다. 이 세상 다른 일들에 있어서도

우리는 선배를 존중히 해야 된다(19:32). 선배는, 후배의 경험하지 못한 일을 체험

한 자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 방면에 있어서 특별히 후배보다 아는 바가 많다.

12:12에 말하기를, "늙은 자에게는 지혜가 있고"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잠 16:31에 말

하기를,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하였고, 20:29에 말하

기를, "젊은 자의 영화는 그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운 것은 백발이니라"고 하였다.

 

 

 

16:8,9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에게 문안하라 - "주 안에서...사랑함", 함께 주

님을 사랑하는 인연으로 서로끼리 사랑하게 되어짐을 가리킨다. 동역자인 우르바노 -

"동역자"들이 서로 존중히 여기면, 즐거운 사랑의 줄로 서로 연결될 수 있다. 나의 사

랑하는 스다구 - 여기 말한 "사랑", 역시 주님을 사랑하는 인연으로 발생된 영적 친

(靈的親愛)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16:10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벧레 - , 아벧레가 그의 받은 은사에 따랄 교

회 봉사에 많은 경력을 가지어 교회의 신임을 받았다는 것이다. 교회의 일군들이 모든

어려운 일들을 통과하면서 굳게 서서 사명을 잘감당하게 되는 것은 귀하다. 그런 일군

들에게는 주님의 귀중한 일들을 맡길 만하다. 그와 반면에, 많은 경력을 가지지도 못

하였고 따라서 모든 곤란을 극복하고 견고히 서는 경험이 없는 자들은, 교회의 신임을

받기 어렵다. 아리스도불로의 권속에게 문안하라 - 여기 "아리스도불로"는 해롯의 증

(曾孫)인 듯하다. 아리스도불로가 로마에서 살다가 죽었다고 함이, 역사적 사실이

.

 

 

16:11-13

 

내 친척 헤로디온 - 여기 "친척"이란 말( =슁게네)도 동족을 말함이

. 7절 참조. 주 안에 있는 자들 - 이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가리킨다. 주 안

에서 수고한 두루배나와 두루보사 - 이들은, 아마 여자들이며 주님을 위하여 교회 봉

사에 힘쓰며 수고한 것 같다. 6 절 해석을 참조하여라.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 - 여기 "많이"란 말은 무의미한 부가어(

加語)가 아니고, 그의 수고가 위의 두 사람의 수고보다 더 컸던 것을 밝힌다. "사랑하

"이란 말( ), "사랑 받는"으로 고쳐 번역되어야 한다.

것은, 그리스도와 교회에게서 사랑을 받는다는 뜻일 것이다 "버시"란 이름(

)도 여자의 이름이다.

루포 - 그는 구레네 시몬의 아들일 것이다. 15:21 참조. 그 어머니 는 곧 내 어

머니 - "루포"의 어머니가 바울을 친 자식 같이 사랑하고 도와준 일이 있었던고로,

울은 이렇게 말한 것이다.

 

 

 

16:14-16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 살전 5:26; 고전 16:20; 고후 13:11; 벧전

5:14 참조. 예배석에서 기도한 후에 남자들과 남자들기리, 또는 여자들과 여자들끼리

따로따로 입맞추는 것은, 고대(古代) 예배의 한 순서였다고 한다(Just. Mart. Apol.

mai 65).

 

 

 

16:17,18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

바울은, 로마의 신자들에게 대하여 진정한 성도들과의 친교(親交)를 장려하는 동시에,

여기서는 거짓 스승들을 "떠나라"고 권면한다. 여기 "교훈"이란 말은 사도의 교훈이니

(살전 4:1), 오늘날로 말하면 성경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리는 자들은,

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들과 충돌된다. 그런 때에 신자들이 그 분쟁자들을 진정

시킬 수 있다면, 그냥 그들과 함께 머물러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못할 바에는,

옳은 편이 떠나 나와야 된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해야 교회의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배만 섬기나니 - 이 말씀은, 로마의 교우들이 분쟁자들을 떠나야 할 이유를 가르쳐

준다. , 그들(분쟁자들)은 그리스도보다 이 세상의 것들을 탐하고 구한다는 것이다.

순진한 자 - 이것은, 비판력(批判力)이 부족하여 속기 쉬운 자를 가리킨다. "순진한

"가 무사기(無邪氣)한 점은 좋으나, 진리의 지식이 부족하면 마귀에게 미혹되기 쉬

우므로 위태하다.

 

 

16:19

 

너희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 지라 - 이것은, 로마의 신자들이 순진한 성질

의 좋은 방면(복음에 순종함)을 칭찬한 것이다. 거기에 이어서 그 위태한 방면을 염두

에 두고 주의건(注意件)을 준다. 그것은 다음 말씀과 같다. 선한데 지혜롭게 악한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 "순진한 자"는 선에 대하여는 지혜롭게(민첩하게) 따라가야 되

, 죄악 앞에서는 신앙의 순결성을 지켜 그것과 타협하지 않아야 된다. 여기 "미련함

"( =아케라이오스)이란 말은 순결성을 의미한다(10:16).

 

 

 

16:20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 - 이것은, 바울이 로마의 신자들을

위로하는 말씀이다. 당시의 유대인들 중 거짓 스승들이, 율법주의를 가지고 복음 운동

을 방해하면서 교회의 질서를 어지럽게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방해자들을

실패하게 하실 것이었다. 3:15 참조. 그러므로 바울은 이 사실을 예감하고 교회를

위로한 것이다.

 

 

 

16:21-24

 

이 부분에 있는 말씀은, 사도와 동거하는 고린도 사람들로부터 로마의 교회에 보내

는 문안이다.

디모데 - 이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보배"란 것이다. 친척 - 이 말은 "동포"란 뜻

이다. 누기오 - 13:1 참조. 야손 - 17:5-7, 9참조. 소시바더 - 20:4 참조.

대서하는...더디오 - 고전 16:21; 6:11; 살후 3:17 참조. 나와 온 교회 식주인 가

이오 - 바울만이 가이오의 집에 유숙()할 뿐 아니라, 일반 교계 인사(敎界人士)들이

그 집에서 유숙하는 혜택을 받았다. 고전 1:14 참조.

 

 

 

16:25-27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하나님. 인간은, 이 세상에서 견고한 것을

찾고 있다. 그러나 실로 이 세상 자체가 견고한 것이 아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라고 성경은 말한다(

1:24). 그러나 참으로 견고한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이

며 이 세상과 다른 것이다. 그것은 복음이다. 복음이 영원하고 견고한 이유는 무엇인

? 그것은, (1)영원 전부터 감취었던 것인 까닭. 복음은 이 세상이 있기 전부터 있었

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이 세상과 운명을 같이 할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영원한

것이며 변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이 복음의 말씀을 우리의 손에 들고 있으니, 감사

하기 한이 없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감사할 줄 모르는 자들이 많다. 이것은, 마치 아

프리카의 아이들이 금강석을 가지고 놀면서도 그 가치를 몰랐다는 것과 같다. (2)

복음은 선지자들의 예언한 것인 까닭. 복음이 진리는 일시적으로 갑자기 나나탄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 탄생 여러 천 년 전, 혹은 여러 백 변 전에 예언되었던 것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복음은 절대적 신임을 받을 만큼, 이렇게 예언 성취의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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