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선 주석, 로마서 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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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롬 15:1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  여기  "마땅히"란  말      
(*                     )은 빚진다는 뜻을 가진다.  이것으로 보아서, 신자는,  자기
보다 약한 자들의 약점에 대하여 책임적으로 도와 주어야 하며, 포용해야  된다.   곧
이 말씀은, 강한 신자가 약한 자(14:1 해석 참조)를 이해하라는 것이다.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 이것은, 고기를 먹어도 좋다는 자기의 표준을
교리화(敎理化) 하거나 혹은 강행(强行)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것은, 진리를  근본적
으로 위반하지 않는 자유 영역(自由領域) 안에서 다른 사람과 충돌을 피해야 될  것을
말한다.  14:12 해석 참조.  바울  자신이,  이와  같이  아량  있게  하였다.   고전
9:20-22 참조.

 

 롬 15: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 바울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생활을  향기롭
게 생각하지 않은 적도 있다(갈 1:10).  그러나 그것은, 진리(복음 문제)에 있어서 이
단자와 타협하지 않아야 할 것을 가리키는 것 뿐이다.  형제가  진리에서  근본적으로
탈선된 일이 별로 없는 한, 우리는 될 수 있는대로 그를 기쁘게 해야 된다.  이는  건
덕(建德)을 위한 것이므로, 바울은 언제나 역설한다(고전 9:20-23).
   덕을 세움 - 이 말의 헬라 원어(*                      )는  건축함을  의미한다.  
건축은, 재목과 재목이 상부 상조(相扶相助)함으로만 성립된다.  기둥들은 건물의  윗
부분들을 받쳐주고, 다른 것들도 그 방식으로 서로 지지하고 있다.   건덕이란  것은,
이렇게 교회라고 하는 영적 건축을 성립하고 지킨다.

 

 롬 15:3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 헬라 원문에는 이  귀절  초두에
"왜 그런고 하면"이란 이유 접속사가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란 말은,  "그리스
도께서도"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영광과 권세가 있는 성자(聖子)이시
다.  그러나 그도 그것을 버리시고 우리의 연약을 담당하셨거든, 하물며 우리  죄인들
끼리야 말할 것이 무엇이랴?
   기록된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 이것은, 시 69:9의 인용
이다.  이 시편의 저자는 하나님을 위하여 살기 때문에, 하나님의 적(敵)에게서  오는
비방을 받았다는 뜻이다.  이 점에 있어서 그는 메시야의 표상이었다.

 

 롬 15: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 - 성경이 기록된 목
적은, 그 당시의 사람들 뿐 아니라 특별히 시간적으로 멀리 후대의 사람들을 교훈하기
위한 것이다.  만일 성경 말씀이 그 기록되던 당시의 사람들만 교훈할  목적이었다면,
그것이 기록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여기 "무엇이든지"란 말(*        =  호사)은,
"전에 기록한 바" 성경 전부를 총칭하는 말이다.  여기 "우리의"라는 말은 헬라  원어
로 헤메테란(*                  )인데, 소유를 표시하는  말의  강세형(强勢形)이다.  
그러므로 이말은, 구약 전서(舊約全書)가 그 저작 시대의 사람들보다도 더욱 그  이후
의 모든 시대 사람들(신약 시대의 우리)을, 그 교육 대상으로 특별히 목표하였다는 것
이다.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 여기 이 귀절
중에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란 말은, 다음과 같이 개역할 수 있다.  곧, "성경의
인내와 성경의 안위로"이다.  이것은 하찌(C. Hodge)가 채택하는 번역이다.  이와 같은
번역은, 다음 귀절의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란 어귀가 지지하여 준다.  하나님께서,
그  말씀(성경)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인내와 안위의 영력(靈力)을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이런 영력을 받아서 (1) 영생의 소망을 파악하는 생활을 유지하
게 되며(4절 끝).  (2) 우리 신자들끼리 이해와 포용과 합심이 가능하게 된다(5-6).  
참는 일은 피곤하나, 이것이 끊어지면 좋은 일이 무너지고 불행이 온다.  참기는 피곤
하나, 거기에는 하나님의 안위가 공급되나니 그것이 꿀과 같이 달다.  참으로 피곤해지
는 계단에 와 보지 못하는 자는, 이 꿀 맛을 모른다.

 

 롬 15:5,6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 여기 있는 말씀은, 교회 연합이 무엇으로 되는지 알게 한다.  교회의  연합은,
신자들끼리 서로 인내하며 안위하는 영력으로 된다.  그리고 인내와 안위는, 성경  말
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영력으로 공급된다.  교회가 교리적 견해의 전
적 합치(全的合致)에서만 연합하려면, 단 두 사람의 연합도 어려운  것이다.   교리적
견해가 지엽 문제(枝葉問題)에 있어서는, 신자에 따라서 조금씩 다른 점도 없지 않다.  
이 점에 있어서는 신자들이 인내와 안위로 서로 포용해야 된다.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 앞절 해석에 말한 것 같이, 신자들은 어떤 지엽 문제에 있어서  의견이
조금씩 다를 수 있다.  그래도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만 바로 알고 그를  사랑하는  데
열중하면, 서로 하나될 수 있다.  그들이 하나되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면, 세상  사
람들이 그것을 보고 놀라고(벧전 3:*)  또한  하나님께로  인도함이  된다(요  13:35,
17:21, 23).


 롬 15:7-9

  여기서는, 위의 인용 성구(3 절)의 예언과 같이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인들의  짐을
지시고 포용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포용해야 될 것을 가르친다.  이 점에  있어서,
표본적으로 그리스도의 역사가 어떠했음에 대하여 자세히 말한다(8-9).  그것은, 물론
오래 참으며 수종드는 구원역사이다.  여기 "수종자"(*                    )란  말이
그 요점을 보여준다.  그리스도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낮아지셨고  또  그들의
죄짐을 친히 져 주셨다.  빌 2:6-8 참조.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으니 - 곧,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의 구원 언약(할례로 특징하는 구약의 약속)을 성취하시려고 이세상에 오시어 제 일착
(第一着)으로 유대인들에게 전도하셨다는 것이다.  그가 이렇게 구원 언약을 성취하시
므로 하나님의 진실성이 드러났다.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케 하시고 이방인으로 그 긍휼하심을 인하여 하나님
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성취하
신 일을 지적한다.  곧, (1) 이스라엘의 선조들에게 있었던 언약(메시야를 보내어  구
원의 축복을 주시려 하신 언약)을 그대로 성취하여 확실(견고)케 하신 것이고, (2) 이
방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어 구원 받음으로,  기뻐서  하나님을
찬송케 됨이다.
   이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 이것은  시
18:49의 인용이다.  이것은, 다윗이 메시야의 표상(表象)된 자격으로 노래한  것이다.  
이는, 열방(列邦)중에 그리스도를 따를 자들이 많이 있을 것을 예언한 것이다.

 

 롬 15:10-12

  10절은 신 32:43의 인용이고, 11절은 시 117:1의 인용이고, 12절은 사 11:10의  인
용이다.  이 귀절들은, 이방인들도 유대인들과 함께 구원에 참가하게 될 것을  예언한
다.
   이새의 뿌리 - 이것은 예수님이 "이새의 뿌리"란 말씀이니, 다윗의 자손이신  그가
어떻게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뿌리가 되시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  
곧, 다윗과 이새의 가계(家系)가 있게 된 원인은, 하나님의 영원 전 작정대로  메시야
께서 그 가계에서 출생되려는 데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새와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도리어 그들의 존재의 원인이고 근본이시다.  그러나  루터(Luther)
는 이와 좀 달리 해석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곧, 그리스도께서  육으로는  다윗과
족장들을 뿌리로 가지셨다.  그러나 "영으로는 그 자신이 뿌리이시고 모든 교회는  그
에게서 나왔다"고 한다(Aber dem Geiste nach ist er selber die Wurzel, aus der die
ganze Kirche entsprossen ist. - Vorlesung uber den Romerbrief, p. 460).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 - 이것은, 열방들 중에 복음을 전하시어 그
자민(子民)을 삼으시고 영원한 나라를 세우시는 메시야 곧 예수님에게 대한 예언이다.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 이것은, 열방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만  구원
받을 줄 알고 오직 그만 바라보는 일이 있을 것을 예언한 것이다.

 

 롬 15:13

  이 귀절은, 위에 말한 모든 말씀의 결론으로 나오는 사도의 기도이다.
   소망의 하나님 - 위의 인용 문구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소
망을 주시는 자비로우신 주님이시다.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 진정한 기쁨과  영적  평안은,
오직 신앙에서만 나온다.  그리고 이런 기쁨과 평안이 있는 사람은, 그 비록 알기  어
려운 미래의 문제에 대해서도 평안히 펴이는 예감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그는  소망
의식(所望意識)이 풍부한 자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소망 의식도,  성령님의  감화로
말미암아 생긴다.  이 말씀은 로마에 있는 신자들에게 서로 포용하며 화평하기를 권면
하는, 위의 모든 말씀들(14:1-15:12)의 결론으로서 매우 적절하다.  14:17-19 참조.

 

 롬 15:14

  바울이 로마의 신자들에게 권고하는 말을 보낸 것은, 그들을 불신임해서 그리한 것
이 아니었다.  다만 그들의 벌써부터 아는 선한 교리를 다시 한 번 더 기억케  하려고
한 것이다.  이것은, 바울의 겸손한 심령의 발로(發露)이다.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  여기  "선함"이란  말의  헬라   원어           
(*                     )는 선한 행실보다 선한 마음을 가리켜 말한다(Sanday).   로
마에 있는 교회의 신자들은, 서로 이해하며 포용할 수 있는 선량한 마음과 전리  지식
(복음 지식)을 가졌다.  신자들이 서로 이해하며 포용하여 건덕 생활을 하려면,  선량
한 마음에 진리 지식을 겸전(兼全)해야 된다.  마음은 좋으나 진리  지식이  부족하면
선행의 노선을 바로 찾아가기 어렵고, 진리 지식은 있으나 마음이 선량하지 못하면 실
행력이 부족할 것이다.

 

 롬 15:15

   이 귀절은, 바울이 로마의 신자들에게 권고문(14:1-15:13)을 보낸  이유와  직책에
대하여 밝히 말한다.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 바울은, 로마에 있는 신자들의 인격을 존중시(尊重視)하는
의미에서 이 말을 하였다.  그는, 그들을 진리에 대한 식견(識見)없는 자들로  취급하
지 않는다.  그는, 그들을 가르치려 함보다 다만 그들의 아는 바를 다시 생각나게  하
려고 하였다.  하찌(Hodge)는, 여기서 사도의 온유와 겸비의 위대를 지적하였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인하여 - 곧, 그가 로마의 신자들을 권고하게 된  것
이, 역시 그의 직책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여기 "은혜"란 말은 그의 사도직을  가리
켜 말한다.

 

 롬 15:16

  이 귀절 이하는, 위절에 있는 바울의 받은 "은혜"의 직분(사도직)에 대하여 해설한
다.
   이방인을 위하여 - 바울은, 특히 이방인들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사도이다.   행
9:15; 갈 2:8 참조.
   복음의 제사장 - 곧, 복음을 전하므로 하나님과 사람을 화목시키니, 그 사역은  일
종의 제사장 행위이다.  제사장직은, 하나님과 사람을 화목시킴이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 죄인이요 원수이다.  그러나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복음을 믿으면, 그 죄
는 사함 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이다.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  그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므로 그들이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에, 그들은 하나님께 일종의  거룩
한 제물로 바침이 된다(12:1).


 롬 15:17,18

  하나님의 일 - 이것은, 헬라 원어(*                                )의  뜻대로,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나타내신 능력과 및 그 성공을 가리켜 말한다.  
이 능력은 다음 귀절이 보여 주었으니, 곧, 그리스도께서 주신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이다.
   자랑하는 것 - 이것은, 교만한 자랑이 아니고 황송하고 감사하게 생각함을  말함이
다.  고전 1:31 참조.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 곧,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로  하여금  복음으로
돌아오게 하신다는 말씀이다.
   말과 일 - 곧, 성령님께서 주신 능력 있는 진리의 말씀과 일을 말함이다.   사도의
언행은, 성령님의 관할 아래 있어서 남들로 하여금 복음을 믿게 하는 감화력과 설득력
(說得力)을 가진 것이었다.  
   표적과 기사의 능력 - "표적과 기사"는, 동일한 초자연적 사건(超自然的事件)을 가
리키는 두 가지 명칭이다.  "표적"(*               )은 그 초자연적 사건이 표현하는
영의(靈意)를 생각하여 부른 명칭이고, "기사"(*               )는 그것의  나타내는
놀라운 성질을 생각하여 부르는 명칭이다.  사도들은 이런 초자연적 행적들을  가지고
있었다.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 이것은, 복음을 듣는 자들로 하여금 회개하고 하나
님께 돌아오게 하시는 성령님의 감화력(感化力)을 가리킨다.
   감히 - 이것은 헬라 원어로 톨메소(*                 )인데, 무엇을 용감히  한다
는 말이다.  바울은 주님을 위하여 일할 때에 성령님의 역사에 대해서만 용기를  가진
것이다(고후 3:5).

 

 롬 15:19

  이 일로 인하여...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 곧, 바울이 그 영광스
러운 사도직을 받은 결과로, 그는 복음을 각처에 전하였다는 말이다.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 이것은 다음과 같이 번역될 수도 있
으니, 곧, "예루살렘과 그 근방과 및 일루리곤에 이르기까지"라고 할 수 있다.   여기
"일루리곤"은 마게도냐 지대의 일부인 듯하다.  사도 바울은, 사도 직무의 완수를  위
하여 광범위의 지역에 복음을 열성으로 전하였다.  그는, 한  곳에  체재(滯在)하면서
일을 한 것이 아니라, 복음이 미치지 않은 곳을 찾아서 전도함을 자기의 본  사명으로
여겼다.  그리하여 그는 남이 벌써 전도한 지대에는 가지 않았다(20절).

 

 롬 15:20,21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 일설에 의하면, 이 말씀  뜻은,  바울이
전도자들로 더불어 경쟁과 마찰을 피하려는 의도에서, 남들이 전도하여  교회를  세운
곳에는 이중으로 역사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한다.  그러나 다음과 같이 해석됨이 문
맥에 잘 부합한다.  곧, 그의 사명은 복음이 들어가지 못한 곳에 찾아가서 복음을  전
하는 것인만큼(앞절 해석 참조).  그는 다른 사람이 벌써 전도한 지방에는 가지  않는
다는 말이다.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 이  말씀
은 사 52:15의 인용이다.  오늘날 교회도, 불신자들에게 전도하는 것을 주요한 목적으
로 삼아야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교회는 기성  교세(旣成敎勢)  유지에만
급급하고, 불신 세계에 대하여는 거의 외면하다시피 한다.  이것은 부패한 증거이다.

 

 롬 15:22-24

  여기서는, 바울의 로마 방문이 지연된 이유와 및 그 방문 계획의 실행 소망에 대하
여 말한다.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 곧, 바울의  전도
여행은, 교회 있는 지방이 아니고 교회 없는 지방을 목표한 것이었기  때문에(20-21),
로마 방문의 길은 그 때까지 막혔다는 뜻이다.
   이 지방 - 헬라 원어에서 글자대로의 번역은 "이 지방들"이란 말이니, 곧, 동부 지
대(로마는 서부 지대임)를 가리켜 말한다.  바울은 이 글을 쓸 때에 동부 지대 곧, 고
린도에 머물렀다(Greijdanus).  고후 2:12; 갈 1:21 참조.  
  서바나로 갈  때에 -  이  문구의 헬라 원어는 가정법(假定法)에 속하는 말인데,
"서바나로 가게 되면 갈 때에"란 의미를 가진다.
   너희와 교제하여 약간 만족을 받은 후 - 이것은, 바울이 로마에 가서 신자들과  영
적 은혜를 나누므로 피차간 즐거움을 보게 될 것을 의미한다.  성도들은,  서로  모여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듣는 중에 큰 희락과 안위를 얻는다.  진실한  신자
는, 남이 진실하게 주님을 받들 때에 기뻐한다.  잘 믿는 사람을 보고 기뻐할 줄 모르
는 것은, 아직 믿음이 부족한 까닭이다.  요한은, 그의 편지 받을 교회가 진리대로 행
하는 것을 보고 심히 기뻐하였다(요이 4절).
   보내줌을 바람이라 - 이것은, 재정적 원조(財政的援助)를 주면서 전송함을  가리켜
말한다.  행 15:3, 20:38; 고전 16:6; 고후 1:16 참조.  이것은, 바울이 로마의  신자
들과 가까운 친분을 가지고 하는 말이다.  그는, 아무런 장벽 없이 이런 솔직한  부탁
을 말한다.

 

 롬 15:25-27

   바울은, 마게도냐 교회 신자들의 주는 구제금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하고, 그  후에
서바나로 가는 도중 로마를 방문하기로 약속한다(28-29).  로마의 글라우디오 황제 때
의 흉년에(행 11:28-30), 유대에는 기근이 심하였으므로 예루살렘 성도들의 곤란이 컸
다.  갈 2:8-10 참조.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 복음이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이방에 전파되었으니, 이방인들은 무엇보다
큰 보물을 유대인들의 혜택으로 받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유대인 성도들에게
물질적으로라도 갚음이 마땅하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므로 사랑을 더욱  불일듯하게
하고 풍성하게 할 수 있다.

 

 롬 15:28,29

  열매를 저희에게 확증한 후 - 곧, 바울이 이방인들의 구제금을 안전히 예루살렘 성
도들에게 전달함을 의미한다.  바울은, 구제금을 이렇게 신실하고 성의 있고 안전하게
취급한다.  이 문제에 관하여, 바울은 고후 8:20-21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것
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로 인하여 아무도 우리를 훼방하지 못하게 하
려 함이니 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
라"고 하였다.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 - 곧, 바울이 영적 은혜를  충만
히 가지고 로마에 가서 그곳 신자들로 더불어 나누게 될 것을 말함이다.

 

 롬 15:30-33

   이 귀절들은, 바울이 신자들에게 부탁하는 세 가지의 기구건(祈求件)을  포함한다.  
곧, (1) 그를 핍박하는 자들에게서 구원하여 주시기를 기도할 것, (2) 예루살렘  성도
들을 구제하는 그의 연보 취급이 성도들의 받음직한 것이 되도록 기도할 것, (3) 그가
로마에 있는 교회에 갈 수 있게 되기를 위하여 기도할 것 등이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
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30절) - 한
사람이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는 것만큼, 많은 사람이 한 사람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는 원리도 있다. 기도에 "힘을 같이 하여"란 말은, 씨름을 같이 함을 의미
한다.  혹설에  기도에 씨름한다 함은, 야곱의 씨름(창 32장)에 연원(淵源)을 가진다고
한다(G. Harder).
   구원을 받게 하고 (31절) - 바울은, 그를 박해하는 유대인들의 손에서 자기가 해를
당하지 않도록 기도하여 주기를 부탁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간구이다.  사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사명을 받았으니 만큼, 그 사명을 완수하여  마치기까지 그의 생명이 보존됨이 필요하였다.  이 요구는 개인의 사욕을 위한 것이 아니고, 교회와 인류의 공익(公益)을 위한 것이다.
   나의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음직하게 하고 (31절) - 예루살렘 성도들은,  율법의
의식적 법규(意識的法規)에 대하여 아직도 보수파(保守派)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의식적 법규의 구약식 수행을 역설하지 않는 이방의 사도 바울을  주목한다.   그러므로 구제 사업에 있어서, 바울이 그들에게 아무런 오해도 받지 않고 은혜롭게 되기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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