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15:5-9
이 부분에서는 유다의 받을 벌에 대하여 진술한다. (1) 예루살렘의 멸망을 "불쌍히
여길 자"가 없으리만큼 그 백성은 극히 악했음(5절). (2)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고",
"물러갔"으며 죄악의 길에서 돌이키지 않았음으로 하나님도 그들을 벌하실 작정을 "돌
이키"지 않으심(6,7). 죄악의 정도에 비례하여 하나님의 벌도 임한다. (3) 전쟁으로
인해 장정들과 청년들이 많이 죽음으로, "과부"가 무수히 나고, "청년" 아들을 가진
부녀들은, 그 아들이 전쟁에서 죽음으로 "두려움"을 당하여 기절하게 된다(8,9).
"그들과 청년들의 어미를 쳐서". - 곧, 전쟁 때문에 남편이 희생된 과부들과 아들
을 잃은 모친들이 바벧론의 침략으로 인하여 상처를 받는다는 뜻이다. "일곱 자식"은
많은 자식을 의미한다.
백주에 그의 해로 떨어져서. - 곧, 전쟁으로 아들을 잃은 모친은, 백주에 해가 떨
어진 듯이 기가 막혀 죽을 지경이란 뜻이다. "수치"(* =뽀솨)는 실망을 의미한
다.
위의 전화는, 아주 사정 없고("과부가...바다 모래보다 더 많아"짐을 보아), 업친
데 덥치는 격으로 참담한 재앙이다. 이것은, 유대인들의 범죄가 얼마나 끊임 없이 완
강하였음을 보여주는 환난이다. 특별히 여기 (1) "대낮"이란 말(* =얌밈)은, 그
환난이 몰래 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것이므로 당돌히 임함을 가리키
고, (2) "졸지에"(* =피데옴)란 말은, 그 환난의 두려움이 심각할 것을 의미하
고, (3) "백주에...해가 떨어"짐은, 심각한 실망 상태를 가리킨다. 이 세 가지 표현
은, 다 함께 유대 민족의 죄상이 그렇게 당돌하였고 무서웠고 실망 상태였음을 암시하
여, 그들로 하여금 과거의碩오潔駭鳴殷결론함이다.
렘 15: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 그들을 내 앞에서 쫓아내치라. - "모세와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가장 두드러지게 기도한 선지자들이었다. 시 99:6 참조. 하나님께서,
이런 위대한 지도자들이 그 때의 백성을 위하여 기도한다 할지라도 들어주시지 않겠다
고 하시는 이유는, 예레미야 당시의 유대 민족이 저희 열조보다 더욱 악하였기 때문이
다(렘 16:12). 무엇보다도 그들이 회개하지 않는 강퍅성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 하나
님 앞에서 버림 받은 원인이다.
렘 15:2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리요. - 이는, 환난을 당하여 불평하는 유대인들의 원성이다.
종교에 외식하는 저들은 필경 환난 때에는 원망과 불평만 한다. 이 원망에 대한 하나
님의 답변은, 그들이 원치 않는 모든 재앙 가운데로 인도하심이다. 가룟 유다는 예수
님을 반역하고 나가는 길이 어두움이었다(요 13:30). 암 5:18-20에 말하기를, "화 있
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뇨 그날
은 어두움이요 빛이 아니라 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 집에 들어
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 여호와의 날이 어찌 어두워서 빛이 없음
이 아니며 캄캄하여 빛남이 없음이 아니냐"라고 했다.
렘 15:3
네 가지로 벌하리니. - "네 가지로 벌"한다 함은 얼마든지 벌하는 방법이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반역하고 회개치 않는 자들에 대한 벌은 무제한이다. 사람들은, 하
나님께서 벌하시는 방법이나 환난에서 건지시는 방법이 몇 가지로 제한되어 있는 줄
안다. 이렇게 그들은 불신앙한다. 그는 "칼"로도 벌하며, "개"를 가지고도 하실 수 있
고, "새"나 "짐승"으로도 하실 수 있다. 누구든지 그를 반역하면, 그의 주권 하에 있
는 만물이 총동원되어 그 반역자를 대적한다.
렘 15:4
유다 왕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예루살렘에 행한 바를 인하여 내가 그들을 세계
열방 중에 흩으리라. - "히스기야"왕은 유대의 부패한 종교를 개혁했으나, 그의 "아들
므낫세"는 그 부친의 선한 개혁을 뒤집어 엎었다. 이 죄악은 말할 수 없이 크다. 이
죄악은 종교적으로 하나님을 반역할 뿐 아니라, 인륜적으로 부친을 반역한 것이다. 그
러므로 하나님께서, 므낫세의 반역을 따른 모든 백성을 "세계" 각국에 "흩으리라"고
하신다.
렘 15:10
내게 재앙이로다 나의 모친이여 모친이 나를 온 세계에게 다툼과 침을 당할자로 낳
으셨도다 내가 뀌어주지도 아니하였고, 사람이 내게 뀌이지도 아니하였건마는 다 나를
저주하는도다 - 여기서 예레미야는, 그 때 유대인들이 아무 이유없이 자기로 더불어
다투며, 또 자기를 핍박함에 대하여 원통히 여긴다. 그는 그들로 더불어 금전 거래로
인하여 피차간 틀릴 일도 없었다. 그는 그들에게 "뀌어주지도 아니하였"거니와 "뀌지
도 아니하였"다. 예레미야는, 다만 그들이 구원 받도록 되기 위하여 그들에게 하나님
의 말씀을 직언(直言)하는 것 밖에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를 핍박했으니,
그들의 이 행동이야말로 마귀적(魔鬼的)인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의 자녀들이 당하는
핍박은 이런 종류의 것이다.
렘 15:11
너를 강하게 할 것이요 너로 복을 얻게 할 것이며 - 이것은 히브리 원어로 세리 오
티가 레토브(* )이니, (1)"내가 너의 남은 백성을 잘 되게 할
것이요"라고 번역하는 학자도 있다. 그렇다면, 위의 예레미야의 기도 중 불평이 극심
했음으로 하나님의 응답은, "남은 백성이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2) 다른 학자들은
이것을, "너의 고난이 행복이 된다"(thy affliction becomes welfare)라고 번역한다
(Hitzig). 그러나 (3) 또 다른 학자들은 이것을, "네게 복이 되도록 너를 지지(支持)
하여 주리니"(Iupport thee to thy good)라고 번역한다(Ew. Maut). 이 번역은 델리취
(Delitzsch)도 찬성한다. 그러면, 이 번역을 취하는 경우에 본절 하반절의 의미는 다
음과 같다. 곧, 예레미야가 고난을 받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지지하시므로 필경 잘 되
게 마련이니, 결국 그의 원수들이 그에게 찾아 와서 도와달라고 간청하도록까지 되는
것이다. 과연 이 약속은 성취되었다(21:1-2; 37:3,17; 38:14, 42:1-7).
렘 15:12-14
"철과 놋"은 바벧론을 비유한다. 여기서는, 유대 민족 중 회개치 않는 자들이 바벧
론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파멸(破滅)될 것을 가리킨다. 곧, (1)"재산과 보물로...탈취
를 당하게"되며, (2)"알지 못하는 땅"으로 사로잡혀 가게 되나니, 이 비극은 우연한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진노(震怒)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당하는 환난
은, 언제나 우연한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채찍이다.
예레미야는, 이 사실을 유대 민족에게 알려 주어 그들로 하여금 그것을 내다 보고
회개케 하려고 한다. 그들이, (1)재산이 탈취될 것을 내어다 볼 수 있다면, 미리부터
재산 애착 때문에 범죄하지 않게 될 것이며(13절), (2)죽는 것 만도 못한 포로 생활
(22:10)이 그들의 분깃임을 내다 볼 수 있다면, 생명 애착 때문에도 범죄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예레미야의 이 경고를 듣고도 여전히 강퍅하게 죄악을 고집한
한(限), 이제 그들은 별수 없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벧론의 침략으로 인한 환난을 면
치 못하게 되었다.
나의 진노의 맹렬한 불 - "맹렬한 불"은 사정 없다. 일단 그것이 무엇에 붙으면 끄
지 못한다. 하나님의 진노는 이렇게 두렵다.
렘 15:15
선지자는, 여기서 자기의 사적(私的)인 유익을 위하여 개인적인 원수를 없애 주시
기를 기도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를 하나님의 원수에게서 구원해 주시기를 간구한다.
하나님께서 이런 원수를 오래 참아 살며 두시면, 예레미야는 일찍 죽어 하나님의 일을
못하게 될 것이다. 시 26:9 참조. 그가 이렇게 구함은 하나님 백성의 공익(公益)을 위
한 것이다.
렘 15:16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란 말(* )은, 주님의
종의 직위를 주님으로 말미암아 가지게 된 것을 가리킨다. 그가 주님의 종인고로 주님
의 말씀을 받게 되었다.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다는 말(*
)은, 그가 선지자의 사명을 받을 때에, 예언할 말씀을 받은 사실을 가리킨다(1:9).
(1) "얻어 먹었"다고 한 것을 보아서, 그가 계획한 바도 없고 구한 바도 없이, 뜻밖에
선지자의 사명가 그 전할 말씀을 받은 사실이 분명하고, (2) 또한 그 받은 말씀이 그
에게 달게, 기쁘게, 체험된 것도 사실이다. "먹는다"는 것은 맛있게 받아짐을 가리킨
다(하반절 참조). 그 뿐 아니라, (3)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었"다는 것은 그의 속
에 말씀이 깊이 들어갔으므로 그것을 전할 때마다 그 말씀과 화합한 자로서, 진실하게
또는 힘껏 전하게 됨도 가리킨다.
렘 15:17
내가 기뻐하는 자의 회에 앉지 아니하며. - "기뻐하는 자의 회"라는 히브리어(*
)는, "조롱하는 자들의 회합"이란 뜻이니, 선지자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고 조롱하는 악도들의 사교 회합을 가리킨다. "주의 손을 인하여"
(* )란 말은, "주의 손 때문에"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이것은, 주님의 능
력의 손이 선지자를 붙들어 영적 감동 속에 이끌어 가심을 가리킨다. 20:7; 사 8:11;
겔 1:3 참조. 이 영감은, 회개치 않는 백성에 대한 주님의 진노의 영감인 것만큼(17
절), 그것으로 인하여 선지자는 악도들과 타협하려고 접촉할 필요가 없다. 그는 "홀로
앉았"다(* )고 한다. 이것은 결코 일반 사회 생활에서까지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고 염세주의 생활을 일삼는다는 것은 아니다.
렘 15:18
나의 고통이 계속하며 상처가 중하여 낫지 아니함은 어찜이니이까. - 예레이야는,
계속적으로 유대 국가의 파멸에 대한 예언만 하기 때문에 끊임 없이 민중의 미움을 당
하고 있었다. 그러니 만큼, 그의 마음에 받는 상처는 계속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을 향하여 다음과 같은 불평을 한다. 곧,
"주께서는 내게 대하여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으시리이까" - 라고 한다. 이
말씀 뜻은 다음과 같다. 곧, 사람들은 시냇물이 늘 흐를 줄로 알고 있는데 의외에도
그 물이 마른다면, 이는 그것이 사람들을 속임이다(욥 6:15-20). 그와 같이, 예레미야
는 하나님을 구원자로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저렇게 늘 유대인들의 미움만 받고 하
늘의 위로는 없으니, 하나님께서 자기를 속이는 것이 아닌가고, 그는 말한다. 이것은
물론, 그의 육신(죄로 부패한 성품)의 생각에서 나오는 좋지 않은 말이다(Calvin). 그
러므로 다음 귀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의 회개를 독촉하신다.
렘 15:19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예레미야가 회개하면(돌아오면), 그를 선지자로 계속적으로
사용하시겠다고 하신다.
천한 것에서 귀한 것을 취할 것 같으면(* ). - 이것
은, 예레미야로 하여금 예언 사역을 하는 중에 사람들에게 아첨하지 말고 취사선택을
강직하게 하라는 것이다. 곧, 강퍅한 자들에게는 아낌 없이 곧은 말로 경고할 것이며,
아무리 입장이 곤난하여도 가치 있는 의로운 자들을 변호해 주어야 할 것이라는 뜻이다(Calvin). 그러나 라에취(Laetsch)는, 이와 다르게 해석한다. 곧, 예레미야가 위의 18절과 같은, 하나님을 원망하는데 가까운 육적인 생각을 하였으나, 그런 생각을 버리고 이제 그의 속에 있는 귀한 생각(옳은 생각, 또는 믿음에 속하는 생각)을 택하여 행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자기의 "입"과 같이 사용하시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렘 15:20,21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굳세게 하여 주실 것과, 원수들을 승리하게 해 주실 것과, 또 악인들의 손에서 건져 주실 것을 약속하시지 않고, 난관을 만나지 않도록 하시겠다고도 하시지 않는다. 그는, 선지자 자신을 도와 주심으로만 예언 사역을 완수케 하실 따름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종들도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우는 것만이 만사 해결의 열쇠이다. 외계의 문제들은 하나님의 별다른 섭리의 장중에 맡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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