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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 9:1

  여기서 이사야는 팔레스틴의 변경(邊境) "스불론", "납달리", 또는 "갈릴리"에  사
는 자들이 받은 메시야의 축복에 대하여 예언한다. 이 지역(地域)에는 이방  군대들이
침입할 때에 특별히 피해가 많았다. 거기에는 이방 풍조(風潮)가 많이 들어오기도  하
였다. 그러므로 거기 사는 사람들을 가리켜 "전에 고통하던 자"라고 하였다.
   그러나 메시야가 오시는 때에는 도리어 이 지방 사람들이 특별한 은총을  입게  될
것이라고 이사야는 말한다. 먼저 된 자로서 나중되도록(마 20:16)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역상 경륜이다. 스스로 섰다고 하는 자는 넘어질 것이고,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자
처하는 자가 도리어 하나님의 은총을 입는다. 그러므로 복음은 가난한 자에게 찾아 오
기를 기뻐한다. 요 9:39-41을 보면 거기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
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로되 우리도 소경인가 예수
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
느니라"고 하였다. 마 4:13,14 참조.

 

  사 9: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
도다 - "흑암에 행하던 백성"(*                            =하암 하홀레킴  바코쉑)
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을 가리킨다(Alexander). 여기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빛"으로
비유했다. 빛은 몇 가지 특성을 가졌나니, (1)그것은 어두움을 밝혀 준다. 곧, 하나님
을 알지 못하던 소경과 같은 자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도록 하여 준다. (2)빛은 성결을
상징한다. 복음의 말씀(하나님 말씀)을 받는 자로서 그것을 받는 마음의 태도가  진실
할수록 그 마음이 깨끗하여진다. 요 15:3;시 119:9 참조. (3)빛은 온도를 가져 생명을
소생시킨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자로서 진실할수록 신령한  생명이  풍성하여진다.
요 1:4 참조.
   "보고"란 말의 히브리 원어(라우-*      )는, 현재  동사(現在動詞)로서  선지자가
미래 일을 현재의 광경(光景)으로 대면하듯이 봄을 가리킨다.

 

  사 9:3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
과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의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 여기  이른
바 "이 나라를 창성케"하신다 함은, 육적(肉的)  이스라엘보다  영적(靈的)  이스라엘
곧, 그리스도 신자들을 더 많게 하시겠다는 의미이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렇게 교
회가 왕성함에 따라서 즐거움이 많아질 것이다. 그 즐거움이 "추수하는 즐거움"과  같
을 것이라 함은, 복음 전도로 말미암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추수와 같을  것
을 가리킨다(요 4:36-38). 그리고 그것이 "탈취물(戰利品)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과
같"으리라고도 함은, 승리자의 즐거움을 이름이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
다가 다시 사신 것을 전하는 것인데 이는 승리의 전파이다.

 

  사 9:4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 본절은 위에 언급한 기쁨의  이유(*     =키)를
밝혀준다. 그것은 유대 민족이 당하던 앗수르의 침해에서 벗어나게  됨을  의미한다고
하나(왕하 19:35;사 37:36), 이연(理然)해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차라리 하나님 백성
을 죄악의 멍에 아래서 구출하신 그리스도의 구원 행위를 비유한 것이다. 이 구원  행
위는 전적으로 초자연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기드온이 이스라엘을 미디안 군대
에서 구원한 것과 유사(類似)하다. 기드온은 300명 군대를 거느리고  미디안  대군(大
軍)을 하나님의 권능으로 물리쳤다(삿 7장 참조). 그리스도께서 초자연적 권능에 의하
여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신 사실과, 기드온이 하나님의 권능에  의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한 사실과의 사이에는 서로 공통되는 원리가 있다.


  사 9:5

  이 말씀은, 마귀에게 대한 하나님의 승리가 어디까지든지 초자연적이고 어떤  군력
(軍力)을 의뢰함이 없이 된다는 것을 밝힌다. 군인의 "복장(服裝)이 불에 섶 같이  살
라"진다 함은, 앞으로 올 메시야의 승리가 전쟁으로 말미암지 않고 영력(靈力)으로 이
루어질 것을 암시한다. 그리스도께서 세계를 정복하심은, 창검을 가지고 하시지  않고
오직 그 자신이 수난(受難)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시므로 이루시는 것이다.

 

  사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
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 여기 "났고"라는 것은, 메시야의 인간성을 암시하여
주고, "주신바 되었"다는 말은 그의 신성(神性)을 암시한다. 다시 말하면, "주신바 되
었"다는 말은, 본래부터 계신 분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말이다.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다고 하였으니 정사(政事)를 위하여 홀로 수고하신다는 뜻을 내포(內包)한다. 이
세상 왕들은 행정(行政)의 수고를 그 신하들에게 맡기나, 천국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는 홀로 그것을 담당하신다(사 63:3,5 참조). "기묘자"라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 펠레
(*     )이니 인간성을 초월한 기이(奇異)하신 분을 의미하는 바 곧, 신성(神性)을 가
리킨다(사사 13:18). 이것은 초자연적 종교 곧, 기독교의 창립자이신 그리스도 예수에
게 대한 적당한 이름이다. 그리스도의 명칭을 "기묘자"라고 하는 것이  합당한  것은,
그의 화육(化肉)이나 그의 부활이 보통 이적과는 달라서 하나님 자신의 출현을 의미하
는 이적이기 때문이다. 바빙크(Bavinck)는 말하기를, "예수님의 성육신(成肉身)과  죽
으심과 그의 부활과 그의 승천은 하나님의 위대한 구속 행위이다. 이런  구속  행위는
원리(原理)에 있어서 영광 나라의 회복을 의미하는 운동이다. 이런 구속 행위는  무엇
을 계시하기 위한 방편만이 아니고 하나님 자신의 계현(啓現) 그 자체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이적이  바로  역사(歷史)요,  역사가  바로   이적화(異蹟化)한   것이다"
(vol.I,310, uitgave van J.H.Kok Te Kampen, 1928)라고 하였다. "모사"란 말은, 요예
츠(*        )이니 메시야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지모(智謀)의 신(神)이심을  보여준
다(사 11:2). 그는 그 자체가 지혜라고 할 만치(잠 8:1-31;고전 1:30),  털끝  만큼도
어두움이 없으신 지혜의 소유자이시다. 그는 하나님 나라에서 이 지혜로  통치하시고,
이 세상 사람들이 이 지혜로 돌아오기를 원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사"로  받도록
그의 지도를 전적으로 받았더라면 세상 나라들은 벌써 여러 천년 전에 진정한 화평 가
운데서 지낼뻔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를 순종하지 않았음으로 여러 천년 동안  평화
회의를 공전(空轉)시킬 뿐으로서 전쟁에 전쟁을 연출하기에 분망하고 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말은, 엘 끼뽈(*             )이니 힘 있는 하나님이란 뜻이다.  그리
스도께서는 지혜가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실시하시는 힘까지 소유하셨다. "영존하시
는 아버지"라는 말은, 아비 아드(*          )이니 이 명칭은, 그의 백성에 대한 그의
사랑스러운 보호가 영원할 것을 가리킨다. 곧, 이것은 그의 영원한  부성적(父性的)인
사랑을 보여준다. 그는 힘이 있을 뿐 아니라 사랑이 영원하시다. 어떤이들은 이  문구
("영존하시는 아버지")를, "영생의 근원되시는 아버지", 혹은, "영생을 주시는 자"(an
author and bestower of eternal life)라고 해석한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이사야는 그리스도를 "아들"(6절)이라고도 하고 또 "아버지"라
고도 한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삼위 일체(三位一體)중 한 분으로서 아버지와
일체이심을 알 수 있다(요 14:7-9). "평강의 왕"이라는 말은, 살 솰롬(*            )
이니, 그리스도께서 모든 죄인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는  중보자(仲保者)로서(고
후 5:19), 신자들에게 영적 평안을 주실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끼리도 서로 평화를 이
루어(엡 2:13-18) 필경은 영광의 왕국을 이루고 영원한 평강을 성립시킬 것을  가리킨
다. 살전 2:7,5:23;벧후 3:14 참조. 그는, 우리 개인들을 하나님과 화목케 하여  우리
의 속 사람의 모든 불안케 하는 요소들을 진정시켜 평안케하며 환난 가운데서도  평화
롭게 지나게 하며 모든 사람들로 더불어 화평스럽게 지나게 한다. 그 뿐 아니라  그가
재림하실 때에는 이 세상에 전쟁들도 없어진다. 이 말씀("평강의 왕")이  메시야(그리
스도)를 가리킨 사실은, 유대인 학자들도 의심하지 않았다(Alexander).

 

  사 9:7

  여기서는 메시야께서, (1)"다윗의 위에 앉"을 것을 가리킴. 이것은,  그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오시는  자이다
(삼하 7:12-16). (2)그의 "정사"혹은 "평강"으로 말미암아 가져오는  통치는  무궁함.
이런 평화는 이 세상 임금들의 나라에서는 찾아 볼 수 없고 다만 그리스도의 영적  왕
국에만 있는 것이다. (3)메시야 왕국의 유지 방침(維持方針). 그것은,  1)"공평과  정
의"이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왕국은 무력(武力)으로 보존되는 것이 아니고,  의
(義)로써 영원히 보존된다. 2)"만군의 여호와의 열심". 여기 "열심"이란 말은, 히브리
원어로 키느아드(*        )이니 시기(猜忌)를 의미한다. 이것은 좋은 의미의  시기이
니 곧, 자기의 사랑하는 백성을 원수에게 빼앗기우지 않으시려는 뜨거운 마음을  가리
킨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독생자를 버리실찌언정 그의 택하신 백성을 버리시지 않는
다.

 

  사 9:8-12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불회개를 탄식하시며 하시는 말씀이, 그들에게 말
씀을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저희가 회개하지 않았다는 말씀이다. "야곱에게 말씀을  보
내"셨다는 것은, 북국 이스라엘에게 회개하라는 말씀을 주셨다는 뜻이다.  회개하라고
부탁하였는데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으로서도 구원하실  도리가  없
다. 그들은 불회개를 고집하여 말하기를, "벽돌이 무너졌으나 우리는 다듬은 돌로  쌓
고 뽕나무들이 찍혔으나 우리는 백향목으로 그것을 대신하리라"고 한다. 이것은, 하나
님께서 그들을 벌하여 모든 것을 전쟁으로 파괴하셨을 때에 그들이  회개하지는  않고
도리어 그 파괴된 것을 전보다 우수하게 복구할 수 있다고 장담하는  교만한  말이다.
이것은, 상고(上古) 시대의 사람들이 교만하게 바벧탑을 쌓고 흩어짐을  면하고자  한
죄악과 같다(창 11:1-4).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대적하는 자들을  그대로  두시지
않는다(창 11:5-9). 그는, "르신(아람 왕)의 대적" 곧, 르신이 보낸 적군이 와서 이스
라엘을 치리라고 한다. 르신이 보낸 적군은 앗수르 군대였을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과 동맹한 르신이 죽은 후에, 그 후계자들이 앗수르와 합작하여 이스라엘을 침략할 것
을 가리킬 것이다(왕하 16:9,17:3). 이스라엘이 이렇게 침해를 당할 때에 아람 사람들
도 그 원수가 되어지고 블레셋 사람들도 그렇게 되어질 것이다. 일설(一說)에  의하면
(대하 28:16-19), 여기 블레셋 사람들이 북국 이스라엘을 침략하였다는  것은  생각키
어렵고, 남쪽 나라 유다가 그렇게 된 일이 있었으므로 이 부분 예언이 하필 북국 이스
라엘만 상대한것이 아니고 온 이스라엘(유다도 포함된)을 가리켰다고 한다. 어쨌든 여
기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전에 이스라엘과 친구였던 아람이(사 7:1,2) 이제 와서
는 원수가 된다는 것이다. 악한 자들의 세계에는 끝까지 친구가 되는 법이  없다.  그
원인은, 그들은 각기 자기 자신을 사랑함을 최고 목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불리(不利)하면 그 어느 순간에라도 친구의 관계를 끊는다.

 

  사 9:13-16

  "돌아오지 아니하며"라는 히브리 원어, 로 솨브 아드(*            )는, 철저히 돌
아오지 않음을 의미한다(Delitzsch, *              denotes a thorough  conversion,
not stopping half-way).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으면서도 하나님을 찾지
않은 것은, 다시금 심한 징계를 받도록 만든다(13,14 상반). 그 받는 벌은 다른  것이
아니고, 그 지도자들과 지도를 받는 자들이 함께 멸망을 받는다는 것이다.
   "머리와 꼬리"라는 말에 대한 해석은 15절에 나온다. 거짓 선지자를 "꼬리"라고 한
이유는, 그들이 거짓말로 사람들을 꾀이려고 아첨하는 것이, 마치 사람을 기쁘게 하려
고 꼬리를 흔드는 개의 생각과 같이 때문이다.
   "종려가지와 갈대"라는 것은, 상류 계급(上流階級)과 하류 계급(下流階級)을  가리
킨다. 여기 "갈대"는, 히브리 원어로 악몬(*          )이니 아감(*      ) 곧,  습지
(濕地)라는 말에서 유래(由來)되었다. 이 풀이 습지에서 나는것 만큼, 그 이름이 습지
와 인연을 가진다. 그러므로 "갈대"는 약하고 천한 층계의 사람들을 상징한다.
   "이 백성이 각기 설만하며"(거짓 선지자의 인도를 받아 우상 숭배나 술수로 더럽힘
이 됨). "악을 행하며 입으로 망령되어 말하니"(하나님을 무시하는 말을 함).  이것은
그 때 사회의 죄악이었다. "망령되이 말함"은, 그 때 사람들이 얼마나 노골적으로  불
경건을 내세우기까지 하는 증표이다. 이것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타락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장정"(군대에 나가는 청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패전케 하시며, "고아와 과부"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실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전쟁
으로 말미암아 그 나라가 비참하게 될 것을 가리킨다. 여기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
니"한다고 하는 말씀이 있다. 이것은 앞에 12절 끝에도 있고 뒤에 21절 끝에도  있다.
"여호와의 노"는 죄인들이 회개할 때에 쉬이 그치게 되는 것이고, 그 밖에는 쉬지  않
는다(레 16:18,21,24,28).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하여 건망증이 많다. 그리하여
그들은 평안치 않은 데서 평안을 느끼며 회개할 기회를 허송하고 만다. 그러므로 하나
님께서는 여기서 그들이 회개하기 전에는 그의 노가 풀리지 않으실 것을 재삼  기억시
킨다.

 

  사 9:18-21

  이 부분에서는, 이스라엘의 일반 민중의 죄악이 관영(貫盈)하여 거기 여호와의  진
노가 내린 것이 불 붙는 것과 같다고 한다. 불이 연료(燃料)에 잘 붙는 것과 같이  하
나님의 징벌은 사람들의 사무친 죄악에 내린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죄를 짓는다면  그
것은 진노의 불의 연료를 마련하는 것과 같다.
   이사야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죄악을 채웠으니 그들은 "빽빽한 수풀" 또는 "섶
나무"와 같아서 하나님의 진노의 불이 내리기에 적당하게  되었다.  "소화되리니"라는
말(*        =네으탐)은, "빨갛게 달았다"(to be red-hot) 혹은, "타서  검어졌다"(to
be black)는 뜻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의미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극도로
악해진 기세(氣勢)를 상징한다. "사람이 그 형제를 아끼지 아니하며 우편으로  움킬찌
라도 주리고 좌편으로 먹을찌라도 배부르지 못하여 각각 자기 팔의 고기를 먹을  것이
며"라는 말씀은, 이스라엘 자체 안에서 각자가 탐심으로 동포를 해롭게 하여 먹으려고
하는 내분(內紛)을 가리킨다. 북국 이스라엘에 므낫세와 에브라임 두 족속이  있었다.
창 41:51,52 참조. 이 두  족속  사이의  질투는  성경에  명시(明示)되어  있다(삼상
10:27;삼하 20:1;왕상 12:16;15:27 이하, 16:21 이하;왕하 9:14).
   죄악이 관영한 사회는 그 자체 안에 내분이 있는 법이다. 그 원인은, 그런  사회에
속하는 개인들이 각기 자기만 위하기 때문이다. "또 그들이 합하여  유다를  치리라". 악인들이 자기들끼리는 화합하지 못하나 의(義)를 대적(對敵)하는 때에는  공동  전선(共同戰線)을 편다(눅 23:12). 이때에 북국 이스라엘이 유다를 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것이다(사 7:6,7). "그럴찌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위의  17절에 있는 같은 말 해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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