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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 24:1,2

  너는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기도 원하지 말지어다 그들의 마
음은 강포를 품고 그 입술은 잔해를 말함이니라 - 앞에 있는 23:17에 대한 해석 참조.
악인과 함께 있는 것도 금지된 이유는, 그들은 남을 멸망시킬 방법을  연구하기  까지
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음은 강포를 품고"(*                    )란 말은 "그들의
마음은 멸망을 연구하고"라고 개역되어야 한다. 남을 멸망시키려고 연구하는 것은  극
도로 악한 자들의 행동이니, 신자가 그런 자들과 사귄다는 것은 벌써  그들의  악행에
동조한다는 의미도 된다. 그러므로 신자는 그들과 합류할 수 없다. 신자는 성경  말씀
대로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되고 심지어 원수 까지도 사랑해야 된다.  그러나  그들은
성별(聖別)을 파수해야 되기 때문에 강퍅한 악인과 사귀는데 있어서는  한계가  있다.
상대방과 사귀므로 도리어 그의 죄악을 조장시키게 되고, 따라서 자신은 그 죄악과 타
협하므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할 경우엔 아예 사귀지 않아야 된다.  그러므로  시
1:1에 말하기를,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
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라고 하였고, 고후 6:14에는 말하기를, "너희
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하였다. 만일 신자가  성별을  파수하지
않고 극히 악한 사람들과 타협한다면 어떻게 그의 종말이 그들의 종말과 달라질  것인
가? 어떻게 다윗이 기도한 것과 같이 기도 할 수 있겠는가? 다윗은 이렇게 기도하였으
니, 곧,"내 영혼을 죄인과 함께, 내 생명을 살인자와 함께 거두지 마소서"라고 하였다
(시 26:9). 그는 또 말하기를, "악인과 행악하는 자와 함께 나를 끌지  마옵소서"라고
하였다(시 28:3).

 

  잠 24:3,4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명철로 말미암아 견고히 되며 또 방들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각종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로 채우게 되느니라 - 이 말씀은  비유로  표현된
것이 분명하다. 여기  "집"이란 말은 하필 한 개인의 가옥이나 한 가족을 의미하는 것
이아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한평생 생활을 가옥 건축으로 비유하시기도 하셨다. 그는,
그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을 가리켜서 지혜로운 사람이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
고 하셨다(마 7:24-27). 그리고 그는 여기서, 그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가 내세에 구원
받는 것이, 마치 반석 위에 지은 집이 창수에 휩쓸려도 무너지지 않음과 같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셨다. 마 7:21-23 참조. 그러므로 우리 본분의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란 말씀은, 사람의 구원받는 생활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 순종하므로  성립
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방들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보배로 채우게" 된다는  사상
도 물질이 풍부해진다는 의미가 아니다. 잠언 저자는, 사람이 지혜(하나님을  경외함)
로 말마암아 받는 복이 풍부한 재물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잠  3:14-15  참조.
그러므로 이 말씀은 비유이니, 진실한 신자게게 하늘의 보화가 많을 것을 보여  준다.
선지자 이사야도 하나님의 교훈을 순종하는 행복을 묘사함에 있어서 아름다운  성곽으
로 비유하였다. 사54:11-13 참조.


 
  잠 24:5-7

  지혜있는 자는 강하고 지식 있는 자는 힘을 더하나니 너는 모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모사가 많음에 있느니라 지혜는 너무 높아서 미련한 자의 미치지 못할 것이므로  그는
성문에서 입을 열지 못하느니라. 여기 " 지혜"란 말은 잠언 저자가 늘 의미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을 경외함이다. 우리 본문이 가르친 내용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제일
강하다는 것이니, 잠 21:30-31의 말씀과 같다. 거기 말하기를,"지혜(여기서는  사람의
지혜를 가리킴)로도, 명철로도,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치 못하느리라 싸울 날을 위하
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고 하였다. 심상 17:46-47 참조.
   "너는 모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모사가 많음에 있느니라." (6절). 이 말씀에 대하여
잠 20:18의 해석을 참조하여라. "지혜는 너무 높아서."(7절).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는
사람들로 깨달을 수 있게 계시되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미련한 자 곧, 회개하지  않
는 죄인은 그것을 깨닫지도 못하고 받지도 못한다. 이는 마치, 빛이 소경의 얼굴에 비
취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보지 못함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요  1:5에  말하기
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하였다. 그들이 하나님의 지
혜를 받지 못하는 원인은 그들의 불회개(불신앙)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는,
사람이 먼저 믿은 후에야 깨닫는다. 그것이 이 세상의 감각적 지혜, 곧 과학적 지혜와
다른 점이다. 과학적 지혜는 인간의 감각으로도 깨달을 수 있는 얕은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사람이 먼저 알고 그 후에 믿는다. 그러나  신령한 지혜는 높은 것이기 때문에
믿는 자만이 깨닫는다.
   "성문에서 입을 열지 못하느니라."(7절하반). 곧,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지혜를
받지 못하였기 때뭉에 진정한 의미에서 진리와 비진리를 판단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잠 24:8,9

  악을 행하기를 꾀하는 자를 일컬어 사특한 자라 하느니라 미련한 자의 생각은 죄요
거만한 자는 사람의 미움을 받느니라 - 여기 이른바 "악을 행하기를 꾀하는 자",  "사
특한 자". "미련한 자", "거만한 자" 등은 다 같은 사람을 의미한다.  간단히  말해서
그는 죄악에 대해 철면피이다. 부릿지스(Ch. Bridges)는, 성경에 기록된 몇 사람을 이
런 사람의 대표로 들었으니, 곧, 발람(민 31:16), 아비멜렉(삿 9 장),  여보로암(왕상
12:26-33, 15:30), 이세벧(왕상 21:25) 등이다.
   사람이 이렇게 가증스러워지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반성하지 아니하며 회개
하지 않을 때에 점점 타락하여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가 양심의 가책을 억제할  때마
다 그 양심은 점점 약하여지며, 마침내 마비되고 만다. 사람이 그렇게 되면 그의 생각
하는 바가 모두 다 죄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 본문에 말하기를, "미련한 자의  생각은
죄요"라고 하였다. 성도와 악도의 차이점은 회개 여부에 있다. 자기의 죄를  알면서도
그것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그 죄악 가운데서 늘 그대로 살아가면 죄악에 대한 철면피,
곧 악도가 된다. 그와 반면에 사람이 자기 죄악을 깨닫고 돌이키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새로워지면(잠 28:13) 성도가 되는 법이다. 오늘날 많은 신학자들이 남을 가르친
다고 하면서도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일은 전연 없으니, 그들은 사실상  미련한  자요
교만한 자이다. 그들은 남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들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
는 자들이다(마 23:15). 성도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요한 번연(John Bunyan)은. 자
기 속에 있는 악한 생각 때문에도 심히 고통하곤 하였다고 한다.
   "사람의 미움을 받느니라." 많은 악인들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일도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악인들이 아직 극악한 악인은 아니기 때문이다. 악이 극도에 이르기  전에
는 사람들이 그것을 악으로 느끼지 못한다. 그 이유는, 사람들은 타락하여 어두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타락한 인간도 극도의 악은 악으로 알게 된다.  그렇다면 인
간은 이 점에 있어서 정신을 차려야 된다. 곧, 그는 적은 악도 깨닫고 미워해야  된다
는 것이다. 적은 악도 악의 계통에 속한 것이니 큰 악과 마찬가지로 미움의 대상이다.

 

  잠 24:10

  네가 만일 환란날에 낙담한면 네 힘의 미약함을 보임이니라 - 이 귀절의  말씀에서
우리가 깨닫는 것은, 사람이 환란을 당해야 자기의 약함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
이 평안할 때에는 스스로 강한 자인 것처럼 교만하여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 이렇
게 인간은 스스로 속아서 산다. 사실은 인간은 약한 것 뿐아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장
군이었던 다윗도 환란을 당하여 낙담한 적이 있었다. 삼상 27장 참조. 그러나 그도 그
때에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서 담대해졌다(삼상 30:6)
   사람은 자기의 약한 것을 아는 것이 귀하다. 그 이유는, 그가 그 때에 전적으로 하
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 하였다(고후 12:10). 우리는 권능이 하나님께만 있는 것을 늘 기억하고
(시 62:11),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힘을 얻는다. 사 40:28-31에 말하기를,  "너
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
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
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
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
리로다"라고 하였다.

 

  잠 24:11,12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주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치 말
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겠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 - 여기 이른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란 말과  "살
륙을 당하게 된 자"란 말은, 켐제르(B, Gimser)에 의하면 사회 질서의 문란으로  오는
사람들의 희생을  말함이다(In  erster  Linie  Sind  Wohl  die  Schlachtopfer  der
sozialen Misst nde (cf 1:10 ff.) gemeint.-Handbuch zum Alten Testament, Spr che,
Solomos, 1963, s. 89). 곧, 부패한 사회에 보통으로 있는 거짓 증인, 또는 불륜(불륜
(不倫)의 폐해(弊害)와 같은 것이다(잠 14:25, 7:22, 9:18). 약한 자나  가난한  자의
압제 받음도 역시  사망과  살륙이라는  술어로  성경에  묘사되어  있다(시  64:4-6,
94:3-6, 109:16, 143 편: 호 4:2; 암 2:7).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이렇게 말하는 자는 사실상 저런 불쌍한  자를  눈으로
보고 거저 지나가고도 사람들 앞에서 변명하기를, 자기는 그런 비참한 사건을 알지 못
하였었다고 한다. 그의 변명에는 자기를 착한 자로 내세우려는 속셈이 있다. 여리고에
서 강도 맞은 자를 보고도 피하여 지나간 제사장이나 레위인(눅 10:31-32)이 그런  핑
계를 할 만한 사람들이다. 그 이유는, 그들은 그렇게 무자비하게  행하면서도  사람들
앞에서는 자비로운 제사장처럼 나타나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많은 교역자들이  자비를
행하지 않으면서도 언제나 자기를 착한 자로 내세운다. 그들이 역시 오늘날의  비참한
현실을 모르는 체한다.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여기  이른바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란 말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을 아시되 깊이 또는 정확하게  아
신다는 의미이다. 사람이 저울로 무엇을 달아볼 때에 그 저울추가 어느 정도로 기울어
지는지 자세히 살핀다. 그 때에는 약간의 경중(輕重)의 차이도 알아보게  된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어떤 문제에 대하여 우리 마음의 생각이 지나치는지, 혹은 부족한
지 그것을 다 살펴 보신다. 하나님께서는왕의 마음도 저울로 달아보듯이 아시고 그 결
과를 왕궁 분벽에 글자로 나타내신 일도 있다(단 5:5). 거기 기록된 말씀중에  "데겔"
(*     )이란 말이 있었는데, 그것은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  함이다
(단 5:27).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저울로 달아보듯이 그 생각의 움직임과  또는
그것의 경향까지도 다 아시고 계시다. 곧, 우리 마음 속에 의로운 생각이 강한지,  악
한 생각이 강한지, 진리를 참으로 아는지, 혹은 모르면서 안다고 하는지, 그 모든  경
향을 그는 아신다. 그러므로 사람이 일시 동안 사람을 속일 수 있으나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다. 사람이 자기를 정당화 하기 위하여 사람들 앞에서는 핑계하는 것이 일쑤이
다. 그런 핑계들이 하나님 앞에서는 성립되지 못한다.
   이 부분(11-12)에 기록된 죄악은, 죽을 자리에 빠진 사람을 보고도 건져주지  않는
괴악한 행동을 말한다. 빌데부얼(D.G. Wildeboer)은 말하기를, "여기  기록된  죄악은
직책 태만죄, 혹은 무관심죄이다."(Hier Wird An Unterlassungss nde und  S nde  aus
Gleihg ltigkeit gedacht, Jak 4:17)라고 하였다(Kurzer  Hand-Commentar  zum  Alten
Testament, Die Spr chem 1897, s.70). 인류 사회에는 직책 태만, 혹은 무관심죄가 가
득 차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죄로 알지도 않는 어두운  처지
에 빠져 있다. 그렇다고 하여 죄가 죄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약  4:17에  말하기를,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의로운 사람
들은 이런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하여 죽을 자리에 빠진 사람을 건져내려고 힘을 다하였
다. 부릿지스(Ch. Bridges)는 이 점에 있어서 몇 사람을 들어 말하였으니, 곧  요나단
은 다윗의 생명을 자기 생명 같이 여겨 구원해 주었고(삼상 20:17), 오바댜는  다윗의
핍박 시대에 많은 선지자들을 숨겨주었고(왕상 18:4), 다니엘은 바벧론 박사들을 죽을
자리에서 건져 주었고(단 2:12-16), 아히감과 에벱멜렉은 가각 예레미야를 죽을  자리
에서 건져주었고(렘 26:24, 38:11-13), 바울의 생질은 바울의 생명을 위험한 자리에서
건져주었다(렘 26:16-22)고 하였다(A Commentary on Proverbs, The Banner  of  Truth
Trust, 1698, p.451).

 

  잠 24:13,14

  내 아들아 꿀을 먹으라 이것이 좋으니라 송이꿀을 먹으라 이것이 네  입에  다니라
지혜가 네 영혼에게 이와 같은 줄을 알라 이것을 얻으면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 링그렌(Ringgren)은 말하기를, "여기 꿀에  대한  말은
하나의 격언과 같이 사용되었다. 여기서 이것이 인용된 목적은, 사모함이 될만한 지혜
의  성질을  실감있게  표현하려는데  있다."(Die   S ssigkeit   des   Honigs   ist
sprichw tlich geworden; hier wird sie 13f. Angef hrtn, um die  Lieblichkeit  und
Begehrenswertheit  der  Weisheit  Zu   veranschaulichen)라고   하였다(Das   Alte
Testament Deutsch, Spr che, 1962, s.98). 여기서 "꿀을 먹으라"는 말은 지혜, 곧 하
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취할 태도를 비유한다. "지혜가 네 영혼에게 이와 같은 줄
을 알라"고 한 말씀을 보아서도 위의 13절의 말씀이 비유인 것이 확실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것과 같이 믿어야 된다는 사상은 성경에 많이 있다.  예레미야는  말하기
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라고 하였고(렘 15:16), 베드로는  말하기를,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젓을 사모하라"고 하였다(벧전 2:2).  고전  3:2;
히 5:11-14 참조.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것과 같이 믿는다는 것은, 진실하게 또는  심
령에 깊이 믿는다는 의미이다. 주린 자로서는 음식을 거짓되이 먹는 법이 없고, 그 음
식을 먹어야만 자기의 생명이  유지될  줄  알므로  즐겁게  섭취한다.  부릿지스(Ch.
Bridges)는 말하기를, 하나님 말씀의 단맛은 그것을 체험적으로 받아야 맛보게 된다고
하였다(Experimental Knowledge alone gives spirtual discernment). 하나님의 말씀을
체험적으로 믿은 다윗은  말하기를,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라고  하였다(시
19:10) 잠 16:24 참조. 그런데도 불구하고 현대의 많은 신자들과 교역자들은,  하나님
의 말씀에 순종하는 체험은 없이 그 말씀을 자기들의 두뇌로만 취급하려 한다. 그러니
만큼 그들은 하나님 말씀의 단맛을 모른다.
   "네 장래가 있겠고." 여기 "장래"란 말(*        )은 종말을 의미하는 바 곧, 내세
(來世)를 가리킨다. 혹자들이 말하기를, 여기 "종말"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꿀
과 같이 달게 받는 자가 이 세상에서 잘 되는 한 때가 있을 것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
러나 그것은 성립될 수 없는 이론이다. 진실한 신자들이 반드시 한 번은 이 세상 행복
을 누리는가? 그런 것도 아니다. 그들이 잘 믿을수록 이 세상에서는  핍박을  받는다.
딤후 3:12에 말하기를,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저 하는 자는  핍박
을 받으리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네 장래가 있겠고"란 말은 성도의  영혼이  내세에
잘 될 것을 가리킨다. 물론 이 말씀이 신약의 내세관(來世觀), 예컨대 "우리가 담대하
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후 5:8)고 한 말씀과
같이 자세하지는 못하다. 그러나 우리는 구약 사상 체계의 원리에 의하여 여기 잠언의
"장래"(*         )란 말이 내세를 가리킨다고 단언하게 된다.  구약은  계시(啓示)의
맹아(萌芽) 형태요 그 결실이 아니므로 어떤 교리에 있어서나 신약에  비하여  환하게
나타나지 않은 방면이 있다. 구약은, 인생의 사후에도 그 영혼의 생존함을 전제로  하
고 모든 교훈들을 준다(Schultz Die Voraussetzungen der christlichen Lehre von der
Unsterblichkeit Dargestellt).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잠 14:32의 해석을 참조하여라.

 

  잠 24:15,16

  악한 자여 의인의 집을 엿보지 말며 그 쉬는 처소를 헐지 말지니라 대저 의인은 일
곱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 이것
은 이 세상에 흔히 있는 일, 곧, 악인이 의인을 핍박하는 문제를 취급한다. 불의와 의
는 언제나 충돌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의인 편에 계셔서 그를  구원하여  주신
다. 이 세상에서 의인들이 악인들로 말미암아 난관에 빠지는 일이 있기는 하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넘어지는 때도 있다. 이것은 얼핏 보면 이상스럽다. 그러나 그것이  문
제될 것 없으니, 그 이유는, 그들의 넘어지는 것은 최후적인 실패가 아니고 다시 일어
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참
된 신자)을 자기 자신과 같이 보호하신다. 그러므로 그들을 해롭게 하는 자는  곧바로
하나님의 눈동자를 해침이라 하였고(슥 2:8), 그들의 이름을 자기 손바닥에 새겨서 그
들을 보호하신다고 하였고(사 49:16), 예수님은 신자들을 핍박하는 자들의 행동이  바
로 그 자신을 핍박함과 같다고 하셨다(요 15:18). 그는, 신자들을  핍박하는  사울(바
울)더러 말씀하시기를,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니라"고 하셨다(행 9:4-5). 하나님께
서는 이렇게 참된 신자들을 보호하여 주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본문이  말하기를,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라고 하였다(16절). 욥 5:19-20  참
조. 참된 신자라도 혹시 과오를 범하여 얼마 동안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일이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그를 사랑으로 회복하여 주신다. 미 7:7-10에  말하기를,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 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를
들으시리로다 나의 대적이여 나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
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내가  여호
와께 범죄하였으니 주께서 나를 위하여 심판하사 신원하시기까지는 그의 노를  당하려
니와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의를 보리로다 나의 대
적이 이것을 보고 부끄러워 하리니 그는 전에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있느냐 하던 자라 그가 거리의 진흙 같이 밟히리니 그것을 내가 목도하리로다"라고 하
였다.


 
  잠 24:17,18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것을 보시고 기뻐 아니하사 그 진노를 그에게서 옮기실까 두려우니라  -
여기서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계명(마 5:44; 눅 6:27-28; 레 19:18)을  위반하는  것이
얼마나 위태한 것을 보여준다. 그 뿐만 아니라, 이것은 인간이 자기 중심으로  잔인하
게 행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극히 가증하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잔인한 자를
벌하신다. 잠 17:5 하반에 말하기를, "사람의 재앙을 기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할
자니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원수의 넘어지는 것을 기뻐 하는 자는 하나님의 벌을  받
아 그 자신도 넘어질 때가 있다. "그 진노를 그에게서 옮기실까  두려우니라"란  말씀
(18 절)이 그 뜻이다.  부릿지스(Ch. Bridges)느 이 말씀대로 성취된 실례들을 성경에
서 몇 가지 들었다. 곧, 이스라엘의 패망을 즐거워하던 에돔이 화를 받음(애 4:21-22;
겔 35:15, 36:5-7; 옵 1:8-10), 유다의 패망을 기뻐한 두로가 화를 받음(겔 26:2), 유
다의 멸망을 기뻐한 바벧론이 화를 받음(렘 51:1-64), 유다의 패망을  기뻐한  모압이
화를 받음(렘 48:26-27), 유다의 패망을 기뻐한 암몬이 화를 받음(겔 25:1-7)과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블레셋 사람들은 두 눈알이 뽑힌 삼손을 구경꺼리로 내세우고  즐거
워하다가 그들 자신이 그 자리에서 벌을 받아 죽었다(삿 16:21-30).  

 

  잠 24:19,20

  너는 행악자의 득이함을 인하여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대
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 - 이 말씀에 대하여는 잠 23:17의
해석을 참조하여라. "장래가 없겠고"란 말씀에 대하여는 앞에 있는 14절의 해석을  참
조하여라.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고 한 말씀은 악인의 멸망을 의미한다.

 

  잠 24:21,22

  내 아들아 여호와와 왕을 경외하고 반역자로 더불어 사귀지 말라 대저 그들의 재앙
은 속히 임하리니 이 두 자의 멸망을 누가 알랴 - 여기 말한 "왕"은 하나님이  사용하
시는 이상적(理想的) 왕을 가리킨다(잠 21:1). 이상적 왕을 반역하는 자는 물론  망동
하는 자이다. 선(善)을 반대하는 것은 악이다. 그런데 이 말씀이 악한 왕에  대하여는
아무 관련이 없는가? 누구든지 개인 자격으로써는 비록 악한 통치자에게 대해서도  그
왕권을 빼앗는 반역을 하지 말라는 것이, 우리 본문의 내용이기도 하다. 여기서 몇 가
지 생각할 것이 있다.
   (1) 옳지 않은 정부에 대한 신자의 신앙 양심 문제.  우리 본문이 약한 통치자, 혹
은 불의한 정부에 대한 개인적 반역을 금하였으나, 그런 정부에 대한  국민의  무제한
순종을 명령함은 아니라는 것이다. 반역과 불순종은 같은 것이 아니다. 아무리 정부의
명령일지라도 그것이 불의한 요구(예컨대 신앙을 유린하는 명령 같은 것)라면  신자로
서는 순종하지 않아도 된다. 하나님의 것을 가이사에게 바칠 수는 없다. 마 22:21  참
조. 그러면, 롬 13:1-7의 말씀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가? 거기 1절에,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고 한 말씀도, 국민된 자가 정부에 대하여 무제한적으로  순
종해야 될 것을 명한 것이 아니다.  그 말씀도 신자가 국가 관련에  있어서  신본주의
(神本主義)로 행해야 될 것을 보여준다. 다시 말하면, 그는 국민 생활에 있어서도  하
나님을 영화롭게 할 목적으로 살아야 된다는 것이다.
   (2) 불의한 정치에 대한 기독신자의 태도. 개인 자격으로써 군왕(비록 폭군이라도)
을 폭력으로 제거시킬수는 없다(Henry Stob, The Christian Concept of Freedom,  pp.
24-25). 그러나 고위층 공무원들이나 혹은 부속 관원들로서 군왕의 방종을 막아  국민
을 보호하며, 필요하면 그들이 그런 악정(惡政)의 원천(源泉)을 제거시킬 책임을 가졌
다. 칼빈(Calvin)은 말하기를, "우리 국가를 폭군에게서 건져내는 것처럼 아름다운 일
은 없다."라고 하였다(Institutes,   , 10:6). 칼빈의 뜻한 바는 혁명이 아니고  합법
적인 개혁이라고 생각된다.
   (3) 정부의 과오를 막기 위한 기독교회의 할 일. 기독교회(기독자  개인의  자격을
말함이 아님)는 직접적으로 국가를 위하여 있는 것은 아니니만큼 국가를 위한 책임 이
행을 할 때에는 간접적으로 해야 된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교회가 국가
의 유익을 위하여 이행하는 책임이 간접성을 띠고 있기는 하나, 그 미치는 영향은  본
질적으로 탁월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기독교회는 세상의 빛과 같아서 진리를  소유하
였기 때문이다. 마터(H. Meeter)는, 국가에 대한 교회의 간접적 역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곧, "교회는 국민과 공무원들의 양심에 영향을 줌으로써 국가에  간접
적 감화를 끼칠 수 있다. 공무원들과 국민들의 양심이 기독교 정신대로 되어질수록 국
가는 종교와 도덕에 있어서 더욱 하나님의 법에 가까와지는 것이다. 이런 간접적 감화
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1> 교회가 복음을 전할 때에 이루어진다.  즉,
교회가 복음을 전할 때에 인간 생활 전부에 적용되는 하나님 말씀의 원리들을  가르치
게 된다. 그 말씀의 교훈에는 물론 정치 생활의 원리도 포함한다. <2> 기독자들은, 교
육 기관에서 국민 생활에 관계되는 성경의 원리들을 해명하여야 된다. 일반인의  환심
을 얻으며, 또 그들을 감화시키도록 힘써야 된다."라고 하였다(The  Basic  Ideas  of
Calvinism, pp. 146-147).

 

  잠 24:23-26

  이것도 지혜로운 자의 말씀이라 재판할 때에 낯을 보아주는 것이 옳지 못하니라 무
릇 악인더러 옳다 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요 국민에게 미움을  받으려니
와 오직 그를 견책하는 자는 기쁨을 얻을 것이요 또 좋은 복을 받으리라 적당한  말로
대답하는 입맞춤과 같으니라 - 이 부분은 재판의 공의(公義)에 대하여 말한다. 편벽된
재판장은 민중의 미움을 받고  의로운  재판장은  칭찬을  받는다(Gegen  Parteiliche
Richter; solche werden von allen Leuten gehasst, gerechten Richtern wird es aber
wohl ergehen.-H. Ringgren). 잠 18:5의 해석을 참조하여라. 재판은 하나님의  공의를
대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재판을 공정하게 하라는 말씀이 성경에 많다(레 19:15; 신
1:17, 16:18). 공의를 지켜야 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양심도 언제나 말한다. 동양
의 옛글 서경(書經)에도 말하기를, "의로써 일을  다스리라"(以義制事)  하였고(商書,
湯誓, 4). "하늘이 아랫 백성을 살피시되 의리를 주장으로 하나니"(惟天監下民曲厥義)
라고 하였다(商書, 高宗??日)고 하였다. 그리고 순 임금은 말하기를, "공정해야만  능
히 복종시키리라"(惟明克允)고 하였다. 공의는 하나님께서 우주 질서의 기초로 세우셨
기 때문에, 이것이 없는 곳엔 평안이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아무 공로 없이
은혜로 구원 받도록 하시는 것도, 그가 친히 그의 독생자로 하여금 우리 죄를  담당케
하여서 공의로 이루신 열매인 것이다(롬 3:25-26).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요  국
민에게 미움을 받으려니와." 통치자가 공의를 세우지 않을 때에 민중이 그를 미워한다
는 것은 너무도 확실하다. 육적 생활과 관계된 공의(公義) 시행 여부(施行與否)의  문
제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도 깨닫는다. 그러므로 공의를 시행하지 않는 정부는  조만
간 민중의 심판도 받는다. 잠 16:12에, 왕권은 공의로 말미암아 굳게 선다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통치자는 악을 벌함에 있어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아야 된다.
   "또 좋은 복을 받으리라."(25). 이것은, 악인을 공정히 벌하는 통치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교회에만 계시지 않고 인류의 현실 생활도  감시하
시며 심판하신다. "적당한 말로 대답함은 입맛춤과 같으니라."(26절).  곧,  재판석에
내리는 정당한 판결은 공의에 입맞춤과 같이 그것을 만족시킨다는 뜻이다.  시  85:10
참조.

 

  잠 24:27

  네 일을 밖에서 다스리며 밭에서 예비하고 그 후에 네 집을 세울지니라 - 곧, 사람
이 가장을 이루려면 먼저 경제적 준비가 있어야 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또한  무슨
일이든지 먼저 질서 있게 준비 작업이 앞서야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H.  Ringgren:
Alles muss ordentlich vorbereitet werden.-Das Alte Testament  Deutsch,  Spr che,
1962, s. 99). 알찬 준비 없이 하는 일은 실패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에도
먼저 희생을 각오하는 준비가 있어다 된다. 예수님은, 이런 준비의 필요를 가르치시기
위하여 두 가지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으니, 곧, 망대를 건축하는 자의  비용  예산(눅
14:28)과 전쟁하려는 임금의 군사력 강화의 준비(눅 14:31-32)이다.

 

  잠 24:28,29

  너는 까닭 없이 네 이웃을 쳐서 증인이 되지 말며 네 입술로 속이지 말지니라 너는
그가 내게 행함 같이 나도 그에게 행하여 그 행한대로 갚겠다 말하지 말지니라 -  곧,
여기 두 가지 교훈이 나타났으니, (1) 까닭 없이 거짓 증거로 남을 해하지 말라는  것
(28절)과 (2) 어떤 사람에게서 손해를 당하였어도 그에게 복수하지  말라는  것이다(2
(절).
   거짓 증거로 남을 해하는 악에 대하여는, 앞에 있는 21:28에 대한 해석을 참조하여라. 그리고 복수하지 말라는 말씀에 대하여는, 역시 20:22에 대한 해석을 참조하여라.

  잠 24:30-33
  내가 증왕에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본즉  가시덤불이 퍼졌으며 거친 풀이 지면에 덮였고 돌담이 무너졌기로 내가 보고 생각이 깊었고  내가 보고 훈계를 받았었노라 네가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눕자  하니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 이 부분 말씀의 의미에 대하여는, 앞에 있는 6:9-11에 대한 해석을 참조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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