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17: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 "르비딤"은 호렙산에 가까운 곳이다. 이곳은, 현재 와디 화이란(Wady Feiran) 지방에 자리 하고 있다(Ritter Stanley). "마실 물이 없는지라." 사막에 물이 없는 것은 미리부터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그리로 올 때에는 으례 그것을 각오했어야 될 것이며, 그 문제를 믿음으로 해결하려고 언제나 대비하고 있었어야 할 것이었다.
출 17:2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가로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그들의 이와 같은 요청은, 너무도 파렴치한 것이었다. 그들은 지도자 "모세"에게 자기들의 짐을 다 지우고, 저희 자신들의 문제에 대하여 자신들에게는 전연 책임이 없는 둣이 말하고 있다. 그들은, 모세만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했어야 될 것이었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그들이 출애굽하게 된 것은, 물론 모세의 인도를 받아 되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그들에게는 그일에 대한 책임이 없었던가 ? 그들은 모세와 아론의 지도 방침을 찬동한바 있었고(4:30-31), 또한 그들의 지도를 순종하여 나섰던 것이 아닌가(12:34)? 그러므로 그들은, 그 지도자 모세와 다툴만 한 마무런 조건도 없는 것이다. 그 뿐아니라, 모세는, 하나님의 보내신 대리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들을 출애굽시킨 것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모세로 더불어 다툰 것은, 결국 하나님과 다툰 큰 죄악이었다(시 78:40).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이 말씀은, 하나님의 존재까지 의심하는 그들의 악한 생각을 말함이다(7 절). 그들은 이때까지 여호와의 권능을 많이 체험하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했으니, 얼른 생각하면 이상스러운 느낌이 든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다. 그들이 이때까지 하나님의 기적을 많이 체험한 바 있었을지라도 불신앙으로 떨어질 위험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 이유는, 그들의 마음 속에 머물러 있는 부패성은 언제라도 발작하여 그들로 하여금 변질되도록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정상적인 심리의 소유자라도 어떤 마취제를 먹으면 그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과 같다.
출 17:3
거기서 백성이 물에 갈하매 그들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 말라 죽게 하느냐 -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서." 그들은, 이시점에 있어서 애굽에서 나오게 된 것을 후회한다. 이것은 자가모순 이다. 그들이 애굽에서 압제를 받을 때에는 거기서 구출되기 위하여 기도하지 않았던가? 2:23, 3:7,9 참조.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 말라 죽게 하느냐." 이것은, 그들의 불신앙이다. 얼마 전에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서 쓴 물을 달게 해 주시지 않았던가? 15:25참조. 왜 그들은, 위기에서 늘 건져 주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했던가? "목 말라죽게"하실 것이란 말은 그들의 술어요, 하나님으로서는 생각하실 수 없는 말이다.
출 17:4-6
그들이 얼마 아니면 내게 돌질하겠나이다(4절) - 모세의 이와 같은 말은, 그 때 이스라엘 민족의 심리 상태를 잘 묘사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을 많이 체험할수록 더욱 강퍅해진 것이다. 은혜 체험을 많이 하는 자가 순종을 그 만큼 힘쓰지 않을 때에, 그 받은 은혜와 기적은 심상하게 느껴지고, 그 심령은 굳어진다. 그러므로 히 3:16에 말하기를, "듣고 격노케 하던 자가 누구뇨 모세를 좇아 애굽에서 나온 모든 이가 아니냐"라고 하였다.
장로들을 데리고(5절) - 하나님께서 이제 모세로 하여금 지팡이로 반석을 쳐서 물이 솟아나게 할 즈음에, "장로들"로 하여금 그것을 보도록 하신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지도적 반렬에 속하였으니 만큼,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이적을 모세와 함께 볼 필요가 있었다. 그들이 그것을 봄으로 더욱 힘 있게 백성을 지도할 수 있고, 또 그 기사를 후대에 전승(傳承)시킬 수 있다. 하나님은, 그의 하신 일을 가급적 많은 사람이 알기를 원하신다.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5절) - 그 "지팡이"는, 모세가 양 치던 때에 쓰던 것이었다. 그것이야말로 별로 가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로 하여금 자초지종 그것을 가지고 기사와 이적을 행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구원 역사의 원리를 깨닫게 하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미천한 것을 가지시고도 위대한 능력을 나타내실 수 있다. 고전 1:26-29 참조.
내가 거기서 호렙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 하나님께서 모세를 향하여 서시고자 하시는 목적은, 모세가 "반석"을 칠 때에 그에게 신앙의 담력을 얻게 하려는 것이었다. "반석을 치라"고 명하시는 하나님을 앞에 모시고 반석을 치는 것은, 용이한 일이다. 하나님을 모신 확신 밑에서는 어떠한 신앙 용단이라도 가능하다.
출 17:7
그곳 이름을 맛사라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 "맛사"(* )는 "시험"이란 뜻이고, "므리바"(* )는 "다툼"을 의미한다. 이 귀절 하반이 이 두 가지 말을 해설하였다. 하나님께서 그 지방을 이 이름으로 부르도록 하심은, 그 때 이스라엘 민족의 범죄한 역사를 후대의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들은 과거의 범죄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 필요 하다. 그 이유는, 그런 기억이 그들로 하여금 다시 범죄치 않게 하는 까닭이고, 또한 그런 범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신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출 17:8,9
"아말렉"은 에서의 자손이다(창 36:15-16). 이제 이스라엘 자손이 그 민족으로 더불어 전쟁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된 것이다. 그 이유는, 아말렉 족속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족속이기 때문이다. 16절 참조. 모세는 이 전쟁에 있어서, 군인 여호수아를 전선(戰線)에 내 보내고 자기는 산 꼭대기에 서서 기도하였다. 이것을 보면, 전쟁 때라고 해서 사람마다 일선에 다 나가야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신령하게 세우신 종들은 그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선 것은, 그 지팡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지팡이의 배후에는 기도의 뒷받침이 있었다. 모세가 산에 올라간 목적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11-12절에는, 지팡이를 든다는 말은 없고, 손을 든다는 말이 있을 뿐이다. 손을 든다는 것은, 기도의 모습을 보여 준다.
출 17:10,11
"훌"은 갈렙의 아들로서 유다(야곱의 아들)의 증손(曾孫)이었다(대상 2:3-20). 유대인 역사가 요세보(Josephus)에 의하면, 그는 모세의 누이 미리암의 남편이었다(Ant.III, 2,4). 그는, 유명한 사람 브사렐(Bezaleel)의 조부였다(31:2, 35:30, 38:22).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 여기 "손을"든다는 것은, 그저 무심하게 손만 드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능력있는 기도의 표현으로 손을 드는 것을 의미한다.
출 17:12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 이 말씀을 보면, 그 때에 이스라엘로 하여금 아말렉을 이기게 한 힘이 모세의 손 자체에 달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 손은, 자체의 무게를 감당하지도 못하였다. 그 때에 전쟁을 승리케 한 힘은, 모세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었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 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 이 말씀을 보면, 전쟁에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모세의 체력에 달려 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아론과 훌"이 모세를 도와 주어 돌 위에 앉게 하고, 또 그 팔을 좌우에서 붙들어 주었음 같이, 오늘날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로해진 자들이 남의 도움을 받아 하나님께 기도하여도 그것이 응답될 것은 명백하다.
출 17:13,14
하나님께서 모세더러 아말렉에 대한 이스라엘의 승전 사건을 "책에 기록하여...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고 하셨다. 여호수아는 실제로 전쟁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전쟁에 하나님의 능력이 가담한 사실에 대하여는 그가 산 꼭대기에 앉아서 기도하던 모세처럼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 전쟁의 승리의 비결에 대하여는, 여호수아도 모세에게 배워야 된다. 특별히 그는, 불원한 장래에 가나안 정복에 있어서 지도자가 될 것인 만큼, 이와 같은 승리의 비결을 배워야 될 것이었다.
출 17:15
모세가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 "모세가 단을 쌓"은 목적은, 승전을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함이었다. "여호와 닛시"(* )란 말은, "여호와는 나의 기"라는 뜻이다. 여호아를 깃발로 하고 싸우는 전쟁은, 여호와를 위하여 싸운다는 뜻이다. 모세가, 여호수아를 세워서 여호와를 위하여 싸웠으므로 승리하였다.
출 17:16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 이 말씀 뜻은, 그 때에 일시적으로 아말렉이 진압되었으나, 앞으로도 이스라엘은 아말렉과 싸우는 일이 있을 것을 보여 준다. 삼상30:1-20 ; 삼하 8:11-12 참조. 하나님께서 마침내 그 원수를 없이하실 것이지만(14 절하반), 오래 동안 그 원수로 하여금 택한 백성을 괴롭히는 일이 있도록 용납하여 두신다. 성도들은 원수가 있으므로 도리어 경성하게 되고, 또 겸손하게 되어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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