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도의 재판(사도행전 25:1-12)
우리는 흔히 "주인이 바뀌면 법도 바뀌고 관습도 바뀐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곳에 새로운 총독이 부임하였으나 바울은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이 아직도 전의 총독에게서 받은 것과 같은 대우를 받고 있었다. 베스도는 벨릭스와 마찬가지로 바울이 마땅히 받아야 하는 정당한 대우를 하지 않았다. 그는 바울을 석방시켜 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반면에 유대인들이 바울에 대하여 바라는 바를 행하는 불의를 범하지도 않았다. 그는 바울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지도 않았으며 그들의 분노에 바울을 내어 맡기지도 않았던 것이다. 본문에서 다음 사실을 살펴 보자.
Ⅰ. 대제사장과 다른 유대인들의 총독에 대한 강력한 청원. 그것은 바울을 포기하라고 종용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보낸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총독이 그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1. 그들이 베스도에게 바울의 사건을 신속하게 재소함. 베스도가 임지로 부임하여 임무를 인수하고 가리사랴에서 취임한 후 사훌 후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을 때 곧 제사장들은 그에게 바울의 사건을 고소했다. 베스도는 바울이 죄수로 감금되어 있었던 가이사랴에서 삼일을 체류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삼일 동안 바울이 자기의 석방을 청원한 것을 아무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비록 틀림 없이 그가 좋은 친구들을 사귀었을 것이고 그들을 통하여 자기의 청원이 총독에게 수락되리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총독이 예루살렘으로 오자마자 서둘러서 총독에게 바울을 기소하였다. 그들의 악의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우리는 이 사실을 통하여 보게 된다. 바울이 그의 구속 기간이 연장된 것을 꾸준히 참고 있었는데 비하여 그의 적들은 그를 죽이기 전에는 기소를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2. 그들의 재소에서 나타난 저희의 간악함. 그들은 바울에 대해 정식 재판이 개정되기도 전에 총독에게"바울에 대하여 악담을 하였다"(2절). 이같이 하므로 그들은 가능하면 이 사건의 재판관이 될 총독이 이 사건에 대한 편견을 지니게 하므로 그를 자기 편으로 삼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책략은 충분히 생각하여 준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신뢰를 얻지 못했다. 왜냐하면 총독이 친히 바울에게서 증언을 듣기로 결심하였으므로 바울을 나쁘게 말한 모든 정보가 거짓임이 들어날 수밖에 없게 되었던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좀 더 치밀하게 심사숙고된 또 다른 계획을 세웠다. 그것은 바울에 대한 재판이 있기 이전에 그를 암살하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비인간적인 흉악한 방법들을(온 세상 사람들이 혐오할 이러한 방법들을) 이들 박해자들은 실행하고자 하였다. 이것은 그들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악의를 충족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들은 이 일을 모세에 대한 열심이라는 구실 아래 감행하고자 하였다. tatum religio potuit suadere malorun - 즉 그들의 종교적 열심은 이같이 끔찍한 것이었다.
3. 그들은 그럴듯한 핑계. 그들은 총독에게 "당신이 예루살렘에 있는 중이나 바울을 그곳으로 옮겨와" 재판하고자 하였다. 이렇게 하는 것은 기소자들의 수고를 상당히 덜어 주는 것처럼 인식될 수 있었다. 또한 바울이 예루살렘 성전을 모독하였다는 죄로 기소되었고 범죄자는 그 범죄가 저질러진 곳에서 재판받아야 한다는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그를 데려 와야 한다는 주장은 아주 타당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그들의 목적은 바울을 호송하는 도중에 그를 죽이려는 데 있었다. 그들은 바울이 전에 가이사랴로 호송될 때처럼 엄한 경비 아래 호송되어 오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또는 그를 호송하는 경비병들을 매수하여 그들의 계교를 실행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들이 "베스도의 호의를 얻고자 하였다"고 본문에 간주하고 있는 있는 자에 대해 공정한 법이 적용되기를 요청하는 것이다. 만일 피고의 범죄 사실이 확인되면 그는 형을 받아야 되지만 만일 그의 결백이 입증된다면 그를 석방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죄수를 벌 주기 위해 재판관의 호의를 사려고 했다는 것은 이 사건에 대해 그들이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재판관이 호의는 죄수를 위해 in favorem vitoe - 즉 그 호의를 베풀어 그를 살려 달라는 것을 위해 청원되는 것이 마땅한 일이었다. 그러나 본문의 무리들은 바울을 없애고자 재판관의 호의를 얻으려 하였다. 그들은 바울에게서 아무런 죄가 없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재판관이 바울에게 유죄 판결을 한다면 총독이 그들에 대하여 호의를 베푼 것으로 생각하였다.
Ⅱ. 총독의 결심. 그는 바울이 자기가 있는 가이사랴에서 재판을 받게 하고자 결심했다(4, 5절). 총독이 기소자들을 어떻게 다루었는가 살펴 보자.
1. 베스도는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데려 오는 친절을 그들에게 베풀지 않았다. 오히려 베스도는 바울을 가이사랴에 그대로 머물러 있게 하도록 명령하였다. 천부장이 바울을 가이사랴로 보낼 때 그는 바울에 대한 음모를 알고 있었다(23:30). 그러나 베스도 역시 그들이 바울을 도중에서 죽이려고 피의 음모에 대해 정보를 제공받았든지 또는 그가 그런 의심을 품었다는 사실은 본문에 나타나지 않는다. 아마도 그가 그렇게 결심한 것은 대제사장과 그의 일당의 말에 자신이 죄우되기를 싫어서 또는 가이사랴에 있는 자신의 관저의 영예를 그가 존중하여 그들로 그 권위에 굴종하게 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아니면 그가 바울을 호송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고자 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요구를 거절한 이유가 어디 있었든지 간에 여하튼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하여 바울을 대적자들의 손에서 구해내시는 방법으로 사용하셨다. 아마도 음모자들은 이전보다 더욱 더 자기들의 음모의 비밀을 지키고자 하였을 것이다. 그 비밀이 탄로가 되므로 예전처럼 이번에도 그들의 계획이 좌절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먼저번 처럼 그들의 의도를 발각되게 하지는 않으셨지만 총독의 마음에 그들의 의도대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이송시키지 않으려는 생각을 불러 일으키는 다른 방법을 통하여 그 음모를 무산시켰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백성을 구하시는 일을 하심에 있어서 한 가지 방법에 매이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 대한 저희의 음모를 은폐시키는 것은 허용하시나 그 음모가 성취되도록 내버려 두시지는 않는다. 그리고 고관들의 자기들을 위한 부당한 정책들도 자신은 은혜로운 목적에 이용하신다.2. 그럼에도 총독은 만일 그들이 가이사랴로 와서 거기서 바울을 고소한다면 그들의 송사를 들으므로 그들에게 공정한 태도를 취하고자 하였다. "너희 중 유력한 자들은 다시 말해서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거기까지 여행할 수 있는 사람들은 또는 기소하는데 구변이 좋고 또 그럴 의향이 있는 사람들은 나와 함께 내려가서 이 사람을 송사하라. 또한 그가 범행한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법적 자격을 갖춘 중인들도 함께 가서 그들의 증거를 제시하도록 하라. 만일 너희가 그를 기소하는 것처럼 그에게 그와 같은 악이 있다면 말이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베스도에서 바울이 유죄한 것으로 인식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베스도는 그의 죄가 증명되기까지 또 바울의 변론을 들어보기까지는 그들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죄를 지었다면 그들은 그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Ⅲ. 바울에 대한 베스도의 재판. 베스도는 "열흘 동안은 예루살렘에 머물고 그 후에 가이사랴로 내려 갔다." 기소자들도 베스도와 함께 내려 간 것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베스도가 그들에게 "나와 함께 내려 가자"고 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처럼 박해에 열심이었으므로 베스도는 이 사건을 제일 처음 재판하리라고 마음 먹었다. 또한 기소자들로 예루살렘의 집으로 곧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 "이튿날"재판을 개회하였다. 공무를 신속히 처리한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태도이다. 그러나 사전의 준비없는 신속함은 위험한 것이다. 다음 사실을 살펴 보자.
1. 재판이 열리고 죄수가 출두하였다. 베스도는 중대한 사건이 있을 때 하는 관례대로 "재판장의 자리에 앉아서 바울을 데려다 자기 앞에 세우라고 명령하였다"(6절).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제자들을 격려하시고 그들의 용기를 시험하는 무서운 재판장 앞에서도 그들이 굴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하여 "그들이 재판자리에 앉아 이스라엘 각 족속을 심판할 때"가 올 것을 약속하셨다.2. 기소자들이 죄수에 대하여 제시한 기소의 내용(7절). 본문에 보면 "유대인들이 둘러서서"라고 하였는데 이 구절은 그들의 숫자가 많았음을 나타내 주고 있다. 한 시인도 "주여 나를 핍박하는 자들이 어찌 이리 많는지요"라고 말했었다. 본문의 내용은 또한 그들의 주장이 일치한 것임을 나타낸다. 그들은 같이 모여서 서로 같은 의견을 제시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들은 기소를 하고 바울에 대적하여 소요를 일으키기고 합의를 보고 있었다. 그들은 재판관에게 겁을 주어 그들의 사악한 계획을 성취하기 위하여 또는 적어도 죄수에게 겁을 주어 침착성을 잃게 하려고 "둘러섰다." 그러나 그러한 의도는 모두 헛된 일이었다. 바울이 군중들에 의하여 공포를 느끼기에는 너무나 정당하고 강한 확신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한 시인은 "저희가 벌같이 나를 에워 쌌으나 가시덤불의 불같이 연소되었도다"(시 118:12)라고 노래하였다. "유대인들은 그를 둘러 싸고 여러 가지로 중한 죄목을 들어 바울을 고발하였다." 그들은 바울에게 중대한 죄와 비행을 저질렀다는 죄목을 씌우려고 하였다. 그들의 고소에는 매우 끔찍한 종류의 사실들이 다 포함되었다. 그들은 법정에서 자기들의 꾀와 악의을 총동원하여 모략할 수 있는 한 바울이 추악하고 분온한 마음의 소유자라고 법정에 호소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나는 대로 기소의 이유를 떠들어 대기는 하였으나 증거를 제시하라는 요구에는 꼼짝도 못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이 그를 고소한 내용을 "능히 증명치 못하였다." 왜냐하면 바울에 대한 그들의 발언은 거짓말이었으며 그들의 고소는 근거가 없고 부당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한 말은 사실과 전혀 다르거나 또는 잘못도 될 것이 없는 그러한 내용이었다. "그들은 바울도 알지 못하고" 또한 그들조차도 알지 못하는 얘기를 꺼내어 그를 고소했다. 이 땅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들도 그들을 향한 온갖 거짓된 악담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그들 뛰어난 사람들은 "주정뱅이의 노래를 통하여 또한 죄인들의 자리에서 그러고 재판 자리 앞에서도" 중상 모략을 당한다.
3. 바울의 자기 변호(8절). 누가 자기를 꾸짖든지 바울은 양심에 떳떳하였고 그러므로 그의 말도 역시 떳떳하였다. "비록 그가 죽게 되더라도 그는 자기의 고결함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바울이 자신을 위해 증언할 수 있는 차례가 돌아 왔을 때 그는 자기의 무죄를 주장하였다. 그는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고 말하였다.
(1) 바울은 유대인의 율법을 범하지도 않았으며 그것을 파괴하는 교리를 가르치지도 않았다. "그가 믿음에 의하여 율법을 헛되이 하였다는 말인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율법을 세웠고" 율법을 범하지 않았다.
(2) 바울은 성전을 더럽히지도 않았으며 성전의 예배를 멸시하지도 않았다. 복음의 성전이 유형인 성전을 모독하는 것이 될 수 없었다.
(3) 바울은 가이사에 대하여 뿐만 아니라 그의 당국에 대하여서도 범죄함이 없었다. 바울이 가이사에게 범죄하지 아니하였노라고 변명한 것을 보아 총독의 비위를 맞추고 자기들이 가이사의 충복인 것처럼 보이기 위하여 유대인들이 바울이 현 실권자들에 대하여 반역적인 말을 하였노라고 기소했으리라는 것이 나타난다. 그러기에 바울은 자신이 이 일에 대하여 결백하다는 것과 자기를 기소하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가이사에 대해 호의적이라는 사실을 항의하였다.
Ⅳ. 바울이 자기의 사건을 황제에게 호소함. 그의 상소로 이 사건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 바울이 이런 생각을 이전부터 가지고 있었는지 아니면 그런 도전에 대한 갑작스러운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바울의 마음 가운데 그런 생각을 집어 넣으셨던 것이다. 그 이유는 주께서 바울에게 "네가 나의 일을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행 23:11)고 하신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였다. 왜냐하면 황제의 법정은 바로 로마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1. 베스도가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서 재판을 받으라고 제의하였다(9절). 이같이 제의한 것은 "베스도가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고자 해서였다." 그는 로마의 시민인 바울의 권한을 침해하지 않는 한에서 죄수보다는 기소자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베스도는 바울에게 그가 기소를 당한 곳이요 또한 그를 위하여 증거해 주고 그가 말한 것을 확인하여 줄 증인이 있는 예루살렘에 가서 거기서 그의 결백을 밝히는 것이 어떠냐고 제의하였다. 베스도는 대제사장과 산헤드린의 요구대로 바울을 그들에게 넘겨 주려고 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는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고 물었다. 총독이 재판의 주재자였으므로 그가 원하는 것이기에 그는 바울에게 그곳으로 가라고 명령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베스도는 바울의 동의 없이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 했다. 그가 바울을 회유하여 그의 의견을 수락하게 한 것은 그러므로 자신의 책임을 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난의 시대에 주의 성도들은 인내 뿐만 아니라 신중함도 구비해야 한다. 그들은 이리의 무리 가운데로 보내어진 양과 같으므로 뱀과 같이 지혜로울 필요가 있는 것이다.2. 베스도의 제의에 대한 바울의 거부와 거절한 이유. 바울은 만약 자기가 예루살렘으로 옮겨진다면 재판장의 치밀한 경계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이 가진 수단을 다하여 자기를 죽이려 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요청을 거절하고 다음과 같이 요구하였다.
(1) 바울은 로마의 시민으로서 총독에 의하여서 재판을 받아야 할 뿐 아니라 총독의 법정이 있는 가이사랴에서 심판을 받는 것이 정당하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본문에서 "내가 지금 가이사의 법정에 서 있습니다. 나는 여기에서 재판을 받아야 할 사람입니다"라고 말하였다. 즉 그는 유대 지역의 수도인 가이사랴에서 재판을 받겠다고 하였다. 법정은 가이사의 명의로 열렸으며 가이사의 권위와 위임에 의해 열리는 것이었으므로 법정을 그의 법정이라고 부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오늘날 모든 공문서가 그 지방의 관리의 이름으로 발송되듯이 그의 모든 법정이 그의 이름으로 개회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가이사의 재판자리 앞에 설 권리가 있다는 바울의 주장은 기독교의 사역자들도 지상의 권세의 지배를 면제받을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만약 사역자들이 정말로 죄가 있다면 마땅히 당국의 처결을 받아야만 할 것이며 만약 그들이 무죄하다면 그들의 심문에 순응해서 그들 앞에서 자기들의 무죄를 증명하여야만 할 것이다.
(2) 유대 나라의 국민으로서 바울은 자기의 나라에 아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는 "당신도 잘 아시는 바에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라고 말하였다. 무죄한 사람들이 자기의 결백을 호소하고 그것을 주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의 결백을 입증하지 않는 한 그것은 우리의 명예를 손상시킨다. 우리는 우리에 대적하는 거짓된 증언을 참아서는 안 되며 우리를 대적하여 거짓 증거를 하는 사람들에게 대하여서는 우리의 결백을 주장하여야 할 것이다.
(3) 바울은 자기가 기꺼이 법을 준수하고 법에 저촉되는 일을 하지 않았노라고 하였다(11절). 만약 그는 자신이 죽음을 당할 만한 중죄를 지었다면 그는 결코 항의를 하거나 탈출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재판을 회피하거나 법정과 대결하여 투쟁하려 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였다면 "죽기를 사양치 아니하고 내 불의에 대한 처벌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해서 다 기소되거나 재판에 회부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고소를 당해 법정에 서게 되면 그들은 판결에 복종해야 하고 하나님과 당국에서 잘못을 범했노라고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가 무죄하다면 가는 바울과 같이 이렇게 항변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송사하는 것이 사실이 아니면 저희의 기소가 악의에 의한 것으로 내가 옳든 그르던 저희가 나의 피를 흘리고자 결심한 것이라면 누구든지 나를 그들에게 내어 줄 수 없삽나이다. 뚜렷한 증거 없이는 총독일지라도 그들에게 나를 내어 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있는 자를 벌하고 무죄한 자를 보호하는 것이 총독이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같이 바울은 자기의 보호를 주장하였다.
3. 바울이 가이사의 법정에 호소함. 바울이 계속하여 유대인의 위험 가운데 있었고 유대인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바울을 그들의 손에 넣으려고 계속하여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에(그들이 자비를 베푼다고 해도 그것은 냉혹한 것이었다) "바울은 무죄한 자의 최후의 수단인" dernier reiort - 즉 마지막 피난처에 호소하였다. 그것 이외에 정당한 재판을 받을 길이 없었기 때문에 거기를 마지막 도피처로 삼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유대인들에게 넘겨지기 보다는 가이사에게 호소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바울은 베스도가 그것을 승낙하리라고 여긴 것 같다). 또한 그는 "유대인들에게 넘겨지기 보다 차라리 네로의 재판을 받겠노라"고 하였다. 다윗이 여러 번 사울의 격노를 피하여 도망하여야만 했고 또 사울이 어느 날엔가는 그 손으로 자기를 멸망시킬 무서운 적인 것을 알았을 때 그는 최후의 수단으로 다음과 같이 결정을 했었다. 즉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상책이다"고 하였다(삼상 27:1). 본문의 바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자손이 자칭 아브라함의 후예라고 하는 자들을 피하기 위해 블레셋인과 즉 네로에게 호소해야 했고 예루살렘 보다는 로마나갓(블레셋의 도성 이름)이 더 안전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참으로 딱한 일이다. 그러므로 한 성서 기자는 "어찌하여 아름다웠던 도성이 창기와 같이 되었는고!"라고 탄식했던 것이다.
Ⅴ. 베스도의 최종 결판. 바울은 석방되지도 않고 또 처결되지도 않았다. 바울의 적들은 바울의 죽음으로 사건이 끝맺기를 희망하였다. 한편 바울의 친구들은 그의 석방으로 재판이 끝맺기를 희망하였다. 그러나 그 사건은 그 어떤 결판도 없이 유야무야하게 끝나고 말았다. 이같이 사건이 미결로 남아 있게 되자 양편 다 실망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때때로 서서히 진행된다는 실례를 본문은 우리에게 보여 준다. 그는 때때로 우리가 기대하듯이 일의 결말을 속히 보여 주시지 않는다. 우리의 조급함으로 우리는 우리가 지닌 소망이나 두려움 때문에 수치를 당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본문에서 전에는 다른 시간으로 연기되었던 재판이 이제는 다른 장소 곧 다른 법정으로 연기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는 바울의 시련을 통하여 그의 인내를 주고자 하는 데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1. 재판장의 배석자들과의 이 문제에 대한 논의 총독은 "배석자들과 상의하였다(meta tou sunbouliou)." 그는 (sunedrion이라고 불리우는) 유대인들의 회의에 의논하지 않고 언제나 총독에게 조언을 하는 배석자들과 의논하였다. "여러 조언자들과 협의 하에 일을 결정하는 것이 안전하다." 그리고 재판관은 선고를 내리기 전에 스스로 심사숙고 해야 하고 또 다른 사람들과도 의논해야 한다.2. 총독은 바울을 로마로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어떤 이는 본문은 바울이 황제 본인에게 호소한 뜻의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바울이 유대인의 법정에 넘겨지는 것보다는 총독의 재판의 결과를 따르겠노라고 말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베스도는 바울을 로마로 보낼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최종 결판을 내려야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입장에 처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아그립바가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호소하지 아니하였다면 놓을 수 있을 뻔하였다"(26:32)고 말한 것으로 보아 그가 가이사에게 상소한 것으로 본문을 보는 것이 옳은 것 같다. 로미의 재판법에 의하면 로마 시민이면 언제든지 최고의 법정에 호소할 수 있었다. 마치 우리가(상급 법원의) 사건 이송 명령에 의하여 상소를 할 수 있고 범죄인들도 인신 보호령(habeas corpus)에 의하여 상고할 수 있듯이 그들도 상소할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베스도는 "네가 가이사에게 호소하였느냐 그러면 가이사에게로 갈 것이니라"고 최종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총독은 이 사건이 매우 특이한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이 사건에 대하여 아무렇게나 판결을 내리기를 두려워하였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이런 생각이 황제에게 알려지면 그가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베스도는 이 사건을 황제의 심리에 의뢰하였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을 때 율법에 의거하여 자신의 의로움을 증명하려는 사람들은 그들이 호소한 그 율법에 의하여 정죄될 것이다. 그러나 회개와 믿음으로 복음 앞에 자신을 호소하는 사람은 그들이 호소한 그 복음에 의하여 구원을 받을 것이다.
아그립바의 베스도 방문(사도행전 25:13-27)
우리는 본문에서 아그립바 왕 앞에서의 바울의 사건에 대한 청문회가 열린 사실을 대하게 된다. 그것은 아그립바의 판결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었고 다만 바울의 사건에 대한 조언을 얻거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이 "통치자와 왕들 앞에 설 것을" 말씀하셨었다. 본장의 앞 부분에서 바울은 총독 베스도 앞에 섰었고 본문에서 그는 아르립바 앞에 선다. 이 두 경우 다 그리스도를 증언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기서는 다음의 내용을 찾아 볼 수 있다.
Ⅰ. 아그립바 왕의 베스도에 대한 친선 방문. 그의 방문은 베스도가 이 지방 총독으로 부임한 것을 축하하기 위한 것이었다(13절). 이에 대해 본문은 "수일 후에 아그립바 왕이 가이사랴에 왔다"고 전해 준다. 그의 방문은 왕족으로서의 친선 방문이었다. 왕이 자기 친구들에게 축하의 뜻을 전할 때는 사절을 보내는 것이 관례이다. 그러나 아그립바는 몸소 베드로를 방문하였다. 그것은 그가 몸소 방문하므로 친구를 만족하게 해 주기 위해서였다. 만남이야말로 친구들 사이에서는 가장 기쁜 일이기 때문이다.
다음을 유의하자.
1. 방문자는 누구였는가.(1) 그는 아그립바 왕이었다. 그는(아그립바라는 별칭이 붙은) 바로 헤롯 왕의 아들로서 헤롯은 사도 야고보를 살해하였고 충이 먹어서 죽은 바로 그 헤롯이었다. 또한 아그립바는 그리스도가 태어나실 때 다스리던 헤롯 대왕의 증손자였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본문의 아그립바를 "젊은 아그립바"라고 불렀다. 글라우디오 황제가 그를 칼커스의 왕으로 책봉하였고 누가복음 3장 1절에 언급된 "드라고닛 지방과 아빌레비의 분봉왕"으로 책봉하였다. 유대의 역사가들은 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라이트푸트 박사의 글을 인용한다면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희년의 종반부에 왕은 율법에 규정된 대로 율법을 국민 앞에서 낭독하였다. 왕은 말씀을 읽는 도중(신 17:15) 네 형제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두지 말 것이며"(신 17:15)라는 말씀에 이르게 되자 눈물을 흘렸다. 왜냐하면 왕이 이스라엘 자손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을 회중들이 목격하고 "아그립바 왕이여 위로를 받으소서. 그대는 우리의 형제입니다"라고 외쳤다. 그들이 그렇게 외친 것은"그가 비록 이스라엘의 혈통을 타고 나지는 않았지만 같은 종교를 믿었기 때문이었다"라고 전해 주고 있다.
(2) 버니게도 왕과 함께 왔다. 그 여지는 왕이 여동생이었고 칼커스 왕이었던 그의 삼촌 헤롯의 미망인이었다. 자기 남편이 죽은 후에 그 여자는 자기 오빠인 아그립바와함께 살았다. 아그립바와 이 여인은 이 불륜의 관계를 맺었으리라는 사실이 전해져 온다. 그 여지는 길리기아의 폴레몬왕과 재혼하였으나 곧 그에게서 이혼 당하고 다시 자기 오빠 아그립바 왕에게로 돌아 왔다. 쥬브넬은 아그립바가 자신의 불륜의 관계를 맺어온 누이 동생인 버니게에게 준 다이아몬드 반지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Berenices In digito factus pretiosior : huocdedit olim Barbarus incestoe, dedit huoc Agrippa sorori - 즉 버니계의 손가락에서 반짝이던 너무도 유명한 보석은 그녀와 불륜의 관계를 맺은 오빠의 선물이었다고 하였다. 타키투스와 수에토니우스는 그후 그 여자와 티투스 베스파시안 황제 사이에 있었던 부도덕한 사통을 언급하였다. 벨릭스의 아내 두르실라는 그의 또다른 여동생이었다. 당시 상류 계의 인사들은 이같이 음란한 무리들이었다. 그러므로 "이전 시대가 오늘날보다 도덕적으로 훌륭한 시대였다"고 말하는 것은 오류이다.
2. 이 방문의 의도. 그들은 "베스도에게 인사차" 들렸다. 베스도의 승진을 축하하고 그의 법무가 형통하기를 기원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베스도가 총독으로 부임한 것에 경의를 표하고 그와 우호 관계를 가지기 위하여 온 것이었다. 또한 갈릴리를 다스리는 아그립바가 유다의 총독인 베스도와 협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문이었다. 아마도 그들은 페스도에게 인사도 할 뿐 아니라 그의 궁전에서 놀기도 하고 또 그들의 훌륭한 의상을 과시하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으로 보인다. 훌륭한 옷은 외출하지 않고서는 그 진가를 발휘하지 못하고 말기에 허영의 족속들은 이러한 짓을 하는 것이다.
Ⅱ. 베스도가 아그립바 왕에게 바울과 그의 사건에 대하여 설명함. 그가 이 사건을 아그립바에게 설명한 것은 다음의 이유 때문이었다.
1. 아그립바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서였다. 또한 아그립바로 기분전환을 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이야기였고 누구든지 들을 만한 이야기였다. 그것은 단순히 놀라운 이야깃거리거나 오락거리로써 뿐 아니라 그것이 만일 진실되게 또 완전하게 설명될 수 있다면 매우 교훈적이고 덕을 깨우쳐 준다는 측면에서도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는 특히 아그립바가 관심을 가질 만한 얘기였다. 그 이유는 재판관으로서의 그가 알아 둘 만한 가치가 있는 법률이나 관습상의 배울 점이 이 사건에 있었기 때문이요 또한 유대인으로서 그가 알아 둘 만한 종교적인 문제들이 이 사건 속에 내포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2. 그의 조언을 얻기 위하여서였다. 베스도는 새로이 재판관이 되었다. 그는 적어도 종교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아주 생소한 입장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능력에 대해 자신이 없었다. 그러기에 나이도 많고 경험도 많은 사람들의 자문을 받기를 바랐다. 특히 바울의 사건은 많은 어려운 문제가 있는 것 같았기에 그는 왕의 조언을 필요로 했고 그래서 그는 왕에게 그 일을 이야기한 것이었다. 이제 우리는 베스도가 아그립바 왕에게 바울에 관하여 상세히 설명한 내용을 살펴 보도록 하자(14-21절).
(1) 바울은 베스도가 총독으로 부임하기 이전부터 죄수로 있었다. 그러므로 베스도는 처음부터 그 사건의 경위를 설명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그는 본문에서 "벨릭스가 한 사람을 구류하여 두었다"는 말로 서두를 꺼내었다. 베스도는 당초에 바울을 체포했던 것부터가 잘못된 것이었다면 그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였다. 왜냐하면 그가 왔을 때는 이미 바울은 구속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벨릭스는 바울의 무죄를 알고 있었지만 유대인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하여 바울을 그대로 감금하여 두었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한 일이 자신을 더욱 곤란한 지경으로 몰아 넣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2) 베스도는 왕에게 유대의 산헤드린이 바울에 대해 대단한 악감를 품고 있음를 말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나에게 바울은 위험한 인물이요 살려 두어서는 안 될 인물이며 그러기에 사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말하더이다"라고 하였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종교에 대하여 대단히 열심인 것처럼 하였고 그러기에 베스도는 그들을 위하고 결백한 사람들로 생각하여 자기가 그들을 신뢰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를 품었다. 그러나 아그립바들을 신뢰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품었다. 그러나 아그립바는 베스도 이상으로 그들을 알고 있었기에 베스도는 이 일에 대하여 왕의 조언을 청한 것이었다.
(3) 베스도는 왕에게 자기가 유대인들에게 로마의 법을 들어 죄수를 옹호하여 죄수의 증언을 듣지 아니하고는 형을 선고할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하였다고 말하였다(16절). "자연법과 정의의 기본적 계율에 의하여 자신의 나라를 치리하는 로마인들은 피고가 원고들 앞에서 변명하기 전에 즉 원고의 고소에 맞서 자신을 변명하고 자신을 변호할 기회가 허용되기 전에는 죽음에 내어 주는 것을 합당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로마 사람의 법이다"고 하였다. 베스도는 유대인들이 죄수를 심문하지도 않고 정죄해 줄 것을 자신에게 기대한 사실에 대하여 그들이 그렇게 하므로 로마인과 또 로마 당국을 모독한 것이라는 듯 그들을 책망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그렇게는 할 수 없다. 너희들의 법이야 어떠한지 모르지만 로마인들이 이러한 불의를 추호도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로마인들은 Audi etalt eram partem - 즉 다른 편의 사정도 듣고 판단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규율은 우리가 일상 생활을 하는 동안 우리가 남을 책망할 일이 있을 때 기억하여 우리의 삶에 적용할 만한 규율인 것이다. 우리는 상대방이 자신을 변호하여 무엇을 말하는지 들어 보기도 전에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 대하여 나쁘게 이야기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4) 베스도는 왕에게 자기의 의무에 따라서 그를 자기의 법정에서 심문하였노라고 말하였다(17절). 베스도는 그 일을 신속히 처리하였다. 이것은 기소자들로 하여금 총독이 더디 일을 처리한다는 불평을 할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그는 본문에서 자신이 "그들이 오자 지체하지 아니하고 다음날"(그들은 지체함 없이 가이사랴로 즉시 왔으리라고 우리가 믿어도 좋으리라) 바울을 재판하였노라고 하였다. 또한 베스도는 가장 엄숙한 의식을 따라 바울을 재판하였다. 그러기에 베스도는 로마의 재판관들이 중대 문제를 재판할 때 하는 방식대로 "재판 자리에 앉았다." 로마의 재판관들은 사소한 일을 재판할 때는 법정의 마당(de plano)에서 재판하였던 것이다. 베스도는 바울을 재판하기 위하여 큰(大) 법정을 열었다. 공정한 재판을 위하여 또한 이 사건을 종결시킬 의사에서 그는 대법정을 열었다.
(5) 베스도는 왕에게 그들이 바울에 대하여 고소한 내용에 대하여 대단히 실망하였음을 말하였다(18, 19절). "원고들이 서서" 고소를 하였는데 저희는 "s의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의 사건은 하나도 제출치 아니하였다"고 그는 말하였다.
[1] 베스도는 그 고소인들이 하도 열심히 고소하였고 그들이 부임하는 총독에게마다 이 사건을 의뢰하였기 때문에 그는 적어도 그들이 아래와 같은 문제로 고소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첫째, 그는 그들이 바울에 사유 재산이나 공공질서에 위험한 인물이기에 그에 대해 자기에게 고소하는 줄로 알았다. 즉 적어도 그들이 자기에게 도적하거나 살인자이거나 로마 정부에 대한 반역자임을 논증하는 줄로 기대하였었다. 아니면 그들이 자기에게 바울이 반란의 주모자이거나 또는 바울이 최근 반란을 일으켜 반역자로 정죄된 애굽인은 아니더라도(천부장은 그들을 애굽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적어도 그와 동류의 인물임을 유대인들이 논증하리라고 생각하였다. 사실 초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탄핵의 부르짖음이 이같이 너무 크고 격렬하였으므로 그 탄핵의 소리의 격렬함에 따라 그리스도인들을 판단할 수밖에 없었던 주변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가장 악한 무리로서 간주하고 있었다. 지금 그들이 바울에 대하여 이 같은 소요를 부린 것도 베스도로 바울을 악독한 자로 여기게 하려는 의도에서 였었다. 그들은 우리 구세주에게도 그렇게 하였었던 것이다.
둘째, 그는 그들이(갈리오가 그랬듯이, 18:14) 바울에게 로마 법정에 기호될 만한 잘못된 점이 있다는 것을 입증할 줄로 기대하였었다. 즉 그들이 자기가 재판해야 할 문제를 의뢰할 줄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소한 일로 그를 괴롭힌 것은 그를 모독하는 행위였고 무시하는 짓이었던 것이다.
[2] 그러나 놀라웁게도 베스도는 바울에게서 그런 어떤 죄과도 없음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바울에 대하여 죄의 증거를 제시하는 대신에 그들의 종교적인 입장을 그가 어겼다는 것만을 말하였다. 그들이 바울을 대적하여 가장 심하게 비난한 것도 실상은 죄인지 아닌지 분간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무리 논해 봐도 끝장이 나지 않을 신앙적인 문제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으로는 바울에게 형을 선고할 수는 없었다. 이러한 문제는 재판정에서 논의되기 보다는 학교에서 논의되어야 할 성질의 문제들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미신적 신앙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였다. 즉 그들은 바울이 자기들의 미신적 신앙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였다. 즉 그들은 바울이 자기들의 미신적 신앙에 대하여 손실을 주었다고 해서 총독에게 고소하였던 것이다. 로마 정부는 법으로 유대인의 종교를 보호해 주었다. 그러자 그들의 미신적인 신앙이나 장로들의 전승은 옹호하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가 된 것은 "바울이 죽은 예수를 살았다고 주장한다"는 것이었다. 어떤이들은 베스도가 바울이 전한 기독교 신앙도 미신적인 것이라고 말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은 베스도가 아덴 사람들이 생각하였듯이 바울이 예수라는 새로운 신(귀신)을 소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고 여긴다. 이 로마인은 그리스도와 그의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멸시조로 말하였다. 또한 그는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큰 논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사실 즉 이 예수가 약속된 메시야이냐 아니냐는 문제와 그가 메시야로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을 증거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를 가볍게 취급하였다. 그는 이 문제를 예수가 죽은 것이라는 자들과 그가 살았다는 바울의 말싸움 정도로 생각하였다. 베스도는 이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베스도가 무시한 이 예수는 "죽었었으나 살았고 또 영원히 살아 계셔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었다"(계 1:18). 그런데 베스도는 이 예수를 자신이 모르고 있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고 또 이 예수를 자신이 깊이 생각해 볼 가치도 없는 인물로 여겼다. 바울이 이 예수에 대하여 주장한 사실 즉 그가 살아계시다는 점을 너무도 중대한 문제로써 그것이 사실이냐 아니냐에 따라 우리의 모든 수고가 헛된 것이 되느냐 아니냐가 결려있는 문제인 것이다.
(6) 베스도는 왕에게 그가 바울에게 이 사건을 유대인의 법정으로 이송하자는 제의를 하였음을 말하였다. 그는 그렇게 하는 것이 이러한 성질의 사건을 잘 해결할 최선책이 될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20절). "내가 이 일을 어떻게 사실(査實)할는지 의심이 있어서 즉 내가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을 재판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 이 일에 심문을 받으려느냐고 물었다. 즉 산헤드린에 가서 거기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물었다"고 하였다. 그는 바울에게 그 일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다만 바울이 그것을 승낙하면 더 좋겠다는 태도를 취하였다. 그는 이러한 문제로 양심에 거리낌을 받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울에게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7) 베스도는 왕에게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기 보다는 로마로 가기를 원하였음을 말하였다. 극 바울이 제사장들 보다는 황제가 공정한 재판을 해 주리라 생각하고 그렇게 칭하였다고 말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바울이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자기를 지켜 주기를 호소함으로(21절) 여기 하급법원에서는 그의 상소를 더 이상 저지할 수 없으므로 내가 그를 가이사에게 보내기까지 엄히 지켜두라 명하였노라. 나는 그의 상소를 거절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으며 그러기에 오히려 일이 더 잘되었다고 생각하였노라"고 말한다.
Ⅲ. 베스도가 아그립바에게 이 일을 설명한 것은 이 일에 대한 아그립바의 의견을 듣기 바라서였다.
1. 왕도 바울을 대면하기를 바랐다(22절). 그러므로 그는 "당신의 말씀을 들었소이다. 나도 이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노라"(22절)고 답하였다. 아그립바는 이 사건에 대하여 사건의 아사자나 이 사건의 내막에 관하여 베스도 보다는 더 잘 알고 있었다. 아그립바는 바울에 관하여 이미 들은 바가 있었으며(베스도가 하찮게 생각하는) 예수가 살았느냐 아니냐는 문제가 대단한 관심을 일으키는 문제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는 바울을 직접 대면해 보고자 하였다. 많은 고위 계층의 무리들은 신앙의 문제는 아주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긴다. 그들은 그러한 문제는 재판석에서 심심소일로 들어볼 정도의 문제로 간주한다. 아그립바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바울의 설교를 듣기 위해서 일부러 그의 설교 장소로 가려고 하지 않았다. 헤롯도 예수에 대하여 같은 태도를 취하였다. 다만 그들은 자기들의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서 예수나 또는 바울이 자기들 앞에 와서 싯앙에 관하여 말해 준다면 들어 주겠다는 태도였다. 아마도 아그립바는 그 일을 직접 듣고서 베스도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베스도의 생각을 확인해 준 것 이상의 도움은 줄 수 없었다.2. 베스도가 그것을 승낙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왕에게 "내일 들으시리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의 용기를 북돋아 주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된다. 바울은 체포되어 생매장된 것 같은 신세였고 선을 행할 온갖 기회를 잃어버린 것 같은 신세였으나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바울에게 말씀을 증거할 기회를 주신 것이다. 바울이 가이사랴에서 옥중 생활하는 가운데 편지를 썼다는 사실은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아마도 바울은 매주일 그를 방문하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제한된 범위내에서 말씀을 전하는 일을 행하였을 것이다. 그는 "못쓸 깨진 그릇"처럼 무시된 채로 옥중에 던져져 있었다. 그러나 그의 갇힘이 오히려 그에게 많은 무리들 앞에서 그리고 상류층의 인사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전할 기회가 되었다. 벨릭스는 그리스도에 대한믿음에 관하여 사적으로 바울의 말을 들었었다. 그러나 아그립바와 베스도는 대중들 가운데서 그의 설교를 듣기로 합의하였다. 우리는 다음 장에서 바울을 설교를 대하게 된다. 그런데 이 설교는 그의 다를 설교와 같이 영혼의 회개를 위하여 한 설교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이 설교는 그가 일생 동안 했던 어떤 설교보다도 그리스도와 기독교의 존귀함을 알리려는 데 목적을 둔 것으로 보여진다.
3. 심문을 하기 위한 대단한 준비. 이튿날 공청회 장소는 위엄있게 단장되었다. 바울에 관한 건은 화제의 대상이 되어 있었고 그러니 만치 반론도 더욱 격렬해 있었다.
(1) 아그립바와 버니게는 이 기회를 자신들의 위엄을 들어내고 또 널리 자기들을 알릴 수 있는 계기로 이용하였다. 아마도 그들은 자기들을 과시하기 위해 이런 계기를 만들고자 하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은 금과 보석과 값비싼 의상을 입고 화려하게 꾸밈 수행원들을 거느리고 "당당한 자세로 나타났다." 그것은 굉장한 광경으로 보는 군중들을 황홀하게 하였다. 그들은 meta pollhj fantas aj - 즉 환상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다. 대단한 장식이란 대단한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하자. 대단한 장식은 그 대상을 실질적으로 위대하게 만들어 주지도 않으며 실질적인 존경심을 남들에게 일으키지도 않는다. 현명한 사람들은 그러한 위의(威儀)를 즐거워하기 보다는 배격하였고 극기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단지 쇼우(show)에 불과하며 꿈이요 환상이요 표면적인 것일 뿐이다. 그리고 이런 것은 사라져 버리고 말 것에 불과한 것이다. 외관상의 위의에 한번 빠지면 사람들은 좀처럼 그 환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는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나타냈던 외무의 화려함에서 다음의 것을 볼 수 있다.
[1] 그들의 위의의 내부에는 음탕한 그들의 성격이 감추어져 있었다. 그들의 외관의 모든 아름다움은 더러운 것이 위장된 것이었다. 그들을 아는 모든 경건한 사람들은 이러한 위의를 갖춘 그들을 사악한 자들이라고 저주하고 있었다.
[2] 저희의 거짓된 미는 법정에 선 초라한 죄수가 지닌 참된 광채에 의하여 무색하게 되었다. 그들의 화려한 의상은 바울의 지혜와 그가 지닌 은혜와 거룩 또한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도 감수하려는 그의 용기와 끈기에 비할 때 아무 것도 아니었다. 선한 일을 위한 그의 옥고는 그들의 금사슬보다 더 영광된 것이었고 많은 간수들이 그를 지킨 사실은 그들이 많은 수행원을 거느린 사실 이상으로 가치있는 것이었다. 간악한 여인은 세상적인 위의로 자신을 갖추고 바울같이 훌륭한 사람은 그와는 반대로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후자가 더욱 가치가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일 것이다.
(2) 천부장이나 그 도시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이 기회에 함께 참석하여 베스도와 그의 손님에게 존경을 표시하였다. 이 청문회는 마치 궁정 무도회와 비슷한 성격을 띤 것이었다. 이러한 집회에는 화려한 의상으로 단장한 귀족들은 빠짐없이 참석하게 마련이고 또 이러한 모임은 그들에게는 하나의 즐거운 유희였다. 베스도는 그 전날 밤에 바울에게 이미 사람을 보내어 아그립바 앞에서의 자신의 변론을 준비하라고 전하였을 것이다. 그는 "이러한 때에 할 말을 일러 주시리라"는 그리스도의 약속을 굳게 믿었으므로 그는 그렇게 급박하게 그런 사실을 자기에게 알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불평하지도 않았고 또 이 말로 인해 당황해 하지도 않았다. 필자는 죄수로 법정에 서게 될 바울이 자신의 입장을 변론할까 염려했으리라는 것보다 위의를 갖추고 거기 참석한 자들이 어떤 옷을 입을까 하는 문제로 더욱 전전긍긍하였으리라고 생각해 본다. 그러나 바울은 그가 믿는 이가 누구시며 누가 그의 곁에 함께 서 계신지를 알고 있었기에 자기 말할 것에 대해 조금도 염려하지 않았다.
Ⅳ. 재판이 열리자 또는 청중들이 좌정하자 베스도는 이 사건을 군중들에게 소개하는 연설을 하였다. 이 연설은 방금 전에 그가 아그립바에게 하였던 것과 똑 같은 취지의 연설이었다.
1. 베스도는 군중들에게 정중하게 연설을 하였다. 그는 "아그립바 왕과 여기 같이 있는 여러분이여"라고 말을 꺼냈다. 그는 여인인 버니게가 이런 좌석에 나타난 데 대하여 무언의 비난을 하는 듯이 pan tejandrej - 즉 모든 신사 여러분이라고 말하였다[역주 : K. J. V는 "남자들"(men)이라고 되어 있음]. 베스도는 버니게에 대하여는 언급하지도 않았고 그녀의 조언을 요청하지도 않았다. 그는 다만 "이 자리에 참석한 신사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이 사건을 소개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본문에 여자들과 구별하여 "남자들" 또는 "신사들"이라 한 말의 배후에는 버니게가 이런 모임에 참석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질문이 감추어져 있는 것이었다.2. 베스도는 죄수를 유대인들이 대단히 미워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하였다. "예루살렘과 가이사랴에 있는" 유대 지도자들 뿐만 아니라 "유대의 모든 무리"가 "그는 살려두지 못할 사람이라" 크게 저주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였다. 그들은 그가 벌써 죽었어야 했다고 생각하였고 또 그는 오래 살려둘수록 더욱 오래 해롭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바울을 어떤 큰 죄목을 들어 고소한 것이 아니라 그가 자기들과 다른 신앙을 지녔다는 것으로 고소하였다. 이 모든 일을 베스도는 말하였다.
3. 베스도는 바울의 무죄함을 고백하였다. 재판관이 친히 바울의 결백과 그가 갇힐 잘못을 범치 아니하였음을 공중 앞에서 선언한 것은 바울에게는 명예로운 일이었다(25절). 그는 본문에서 "나는 살피건데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라고 말했다. 즉 자신이 그 사건을 전부 들어 뵈 고소를 뒷받침할 만한 명백한 증거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뜻의 말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기소자들에게 호의를 베풀고는 싶었지만 양심상 바울에게 형을 가할 수 없었노라고 하였다. 그가 바울을 석방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석방하지 않은 것은 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미워했으므로 만일 그가 바울을 석방하면 그 원성이 자신에게 돌아올까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인간이 양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양심에 따라 행동할 용기가 없다는 것은 얼마나 가엾은 일인가! 또는 그가 바울을 석방하지 않은 것은 사람들이 이 같이 야단인 것을 보니 이 일에는 무엇인가 문제의 소지가 있어서 결국 터지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즉 그는 이 사건이 명백히 들어나기를 기다려서 그를 죄수로 묶어두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4. 베스도는 이 사건의 현재의 상황을 그들에게 설명하였다. 즉 죄수 자신이 황제에게 호소하였다는 것과(베스도는 바울이 자기 사건을 황제에게 호소한 사실을 중요시하였다) 그가 바울의 상소를 허락하였음을 설명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내가 그를 보내기로 작정하였나이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5. 베스도는 그들이 그 사건이 조용하고 공평하게 심문되도록 협조해 주기를 바랐다. 즉 그들이 전에 기소자들이 하였듯이 고함을 지르고 난동을 부리므로 회의를 중단시키지 말 것을 요구하였고 또한 이 자리를 빌어 그가 황제에게 고소할 만한 자료를 얻을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하였다(26, 27절).
(1) 그는 "죄목을 베풀지 아니하고 죄수를"(먼 로마까지) "보내는 것이 무리한 일인 줄 알았다." 그는 가능한 한 최대한으로 이 사건에 대하여 사전 준비 자료를 갖춤으로 황제의 판결에 협조하고자 하였다. 베스도가 이렇게 한 것은 그가 황제는 매우 분망하신 분이므로 그가 다른 모든 사건은 신속히 처리될 수 있도록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2) 그럼에도 베스도는 아직도 바울에 관한 죄목을 찾지 못하였다. 그를 송사하는 이유들이 너무나 뒤죽박죽이었고 모순되었던 까닭에 베스도는 어떤 두드러진 죄목을 적용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베스도는 모든 사람 앞에서 바울을 심문하여 무엇을 죄목으로 쓸가에 대하여 그들로부터 조언을 얻고자 하였다. 로마로부터 이 같이 먼 곳에 있으나 그럼에도 로마 황제의 신하이기에 공공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황제에게 의뢰를 해야 한다는 이 얼마나 번거로운 일인가! 그리고 사건 해결의 더딤(지연됨)은 어떠하며 또 진행 도중에 곤난은 얼마나 큰가! 그런데 오늘날(마찬가지로 로마에서 먼 곳에 있는) 우리 나라가 종교적인 문제는 로마 교황 관할이므로 모든 사건은 그에게 의뢰해야 한다면 예전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불행스러운 일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를 이 멍에 아래 얽어 매려는 자들이 있다니 이것이야말로 어불성설의 설득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