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방백들이 받을 벌 (스바냐 3:1-7)
예루살렘, 곧 하나님이 알려져 있고 그의 이름이 위대하게 드러나 있던 거룩한 도성이 여기에 나와 있듯이 어두운 면을 지닌 도성이 된다는 것, 하나님의 은총의 방편을 그렇게 풍요하게 누리고 있던 곳이 이렇게 타락되고 악해지며, 또 그렇게 되도록 하나님이 버려 두셨다는 사실에 대해서 의아하게 생각할 자들이 많으리라. 그러나 그렇게 되었으니, 그것은 "율법은 아무 것도 완전케 하지 못한다" 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예루살렘이 진정 그렇게 되고 말았다면, 예언자가 "예루살렘에게 화있으라!" 고 선언했다 해서 이상할 것이 없다. 아무리 자기에게 가까운 자의 경우라도, 아니 그럴 경우에는 특히, 거룩한 하나님은 죄를 증오하시기 때문이다. 죄악의 상태는 저주를 받는 상태가 되리라.
Ⅰ. 본문을 보면 예루살렘의 아주 악질적인 성질이 일반적인 말로 묘사되어 있다. 그 신실하던 도성이 창부가 되었도다!
1. 그 도성은 자신을 부끄럽게 한다. 그녀(도성)는 "패역하고 더러워졌다" (1절)(혹자의 해석대로). "불명예스러워졌고" (난외에 있는 대로-영문), "탐욕스러운" 도성이 되었다. 언제나 자기의 정욕을 채우기 위해서 육체의 양식을 마련한다. 죄란 사람과 그 장소를 오염시키며, 거룩한 하나님 보시기에 역겨운 존재가 되게 한다.2. 그 도성은 이웃과 주민들에게 해를 끼쳤다. 그 도성은 "포악한(압제하는) 도성" 이다. 그처럼 "의로운 법도와 율례" 를 소유했던 지역은 일찍이 없었다. 그러나 그 행정에서 보면 그 도성처럼 불의한 곳도 또한 없었다.
3. 그 도성은 자기 하나님을 격분시켰고, 매사에 그에게 반대되게 행했다(2절). 하나님은 그 도성에게 자기의 율법을 주셨고, 자기 종 예언자들을 통해서 행해야 할 선과 피해야 할 일을 일러 주셨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음성을 듣지 않았다." 또 명령한 바를 조금도 의식하지 않았다. 또 하나님은 말씀과 채찍으로 그녀(도성)를 잘 훈계했다. 그러나 그녀는 조금도 그 교훈을 받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거나 말씀과 채찍의 목적에 부합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자기를 의지하라고, 또 자기의 권능과 약속을 믿으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녀는 "여호와를 믿지 않았다." 그녀는 하나님과의 계약보다는 자기 동맹국들을 믿었다. 또 하나님은 그녀에게 자기의 임재의 표징을 주셨고, 그녀와 친히 교통하려 규례들을 제정해 주셨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 하나님께 가까이하지 아니했다." 그녀와 만나기로 약속한 지정된 장소에서 그를 만나 주지 않았다. 그녀는 멀리 서서, "전능자여, 떠나소서" 라고 한다.
Ⅱ. 여기에 보면 그 도성의 지도자급들이 지니고 있는 아주 악한 근성이 나와 있다. 자기들의 본을 통해서 사악과 부정을 제거해야 될 자들이 온갖 부정의 표본이 되었고, 그 도성의 의원이 되어야 할 자들이 실로 그 도성의 가장 악질적인 질병이 되었다.
1. "그녀의 방백들" 은 자기들 주변의 모든 것을 잡아먹으려는 "사자들처럼" 게걸스럽고 잔인하게 "으르렁대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두려워하고 싫어하고 있다. 저들은 자기들의 권력을 교화가 아니라 파괴에 이용한다.2. 침해받은 피해자들을 보호해 주어야 할 "그녀의 재판자들" 은 "저녁 이리들" 이라 표독하고 탐욕스러우며, 지칠 줄 모른다. "그들은 다음날 아침까지 뼈를 남겨두지 않는다." 그들은 잔학과 압제를 너무나 즐거워하기 때문에, 한 선량한 사람을 잡으면, 말하자면 그 뼈를 다음날의 즐거운 식사를 위해서 남겨둔다(욥 31:31).
3. 하늘로부터 특별 전갈을 받은 척하는 "그녀의 예언자들은 경솔하고 간사한 자들이요," 헛된 공상을 하며 일관성이 없어서,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자들이다. 저들은 하도 농담을 잘하므로, 언제가 진담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저들의 예언 따위는 터무니없는 거짓이요, 자기들의 예언을 믿는 자들을 은근히 조롱한다.
4. 직무상 선생이요, 또 성물 관리를 맡은 "그녀의 제사장들은" 저들의 신뢰에 거짓되고, 배반한다. 그들은 "성소" 의 정결을 보존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이 직접 성소를 "더럽혔다." 또 거기에 참여해야 할 홉니와 비느하스 같은 제사장들 때문에, 그 재단의 제물은 "여호와 보시기에 가능한 것이 되었다." 또 그들은 "법" 을 해석하고 적용하며, 그것에 따라 재판을 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을 해설하고 적용하는 중에, 그들은 "그 법에 폭력을 가했다(범했다)." 그들은 율법에 대한 감각을 부패시켰고, 그것과는 정반대되는 것을 조장했다. 억지로 해석된 율법 때문에, 율법은 저들의 기본에 맞는 것으로 바뀌었고, 사실상 "그 율법은 헛된 것이 되고" 말았다.
Ⅲ. 예루살렘 모든 주민들의 이 같은 전반적 타락을 더욱 가중시키는 것이 있다.
1.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임재의 표징이 있었고, 하나님의 뜻을 알 만한 모든 조건이 갖추어져 있었고, 또 그 뜻을 이행케 하는 강력한 자극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불복종을 고집했다(5절).(1)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엄위(세키나)를 모시는 영예와 특권 곧 하나님의 주재를 맛보았다. 하나님은 그들을 다른 민족처럼 대하지 않으셨다. "너희들 중에 의로우신 여호와가 거하사, 너희들이 잘못하는 모든 것을 감찰하시고, 만사를 잘 하도록 후원하신다. 그는 너희 중에 거룩한 하나님으로서 존재하신다. 따라서 너희의 부정은 더욱 분노케 하는 것이다(신 23:14). 그는 너희 중에 공의로운 하나님으로 존재하신다. 따라서 그에게 불손한 자들, 그리고 서로에게 해를 끼친 자들을 처벌하시리라."
(2)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하나님의 행동의 표본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가 있었다. "그는 불의를 행치 않으신다. 그러므로 너희도 그래서는 안 된다." 그들의 제도 중 중대한 규칙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나님은 너희에게 진실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도 그에게 거짓되이 행하지 말라" 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은 그들에게 예언자들을 보내사, 일찍부터 그들을 깨우치셨다. "그는 아침마다 자기의 공의를 나타내셨다." 아침마다 그렇게 하셨다. "그는 실패치 아니한다." 그는 자기가 그들에게서 요구하는 선이 무엇인지를 그들에게 분명하게 보였다. 그는 "아침으로 아침을 깨우며" (사 50:4), 떠오르는 태양으로 자기의 예언자들을 깨우사, 그들의 평화를 일러 줄 것을 빛나게 하신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볼 때, 그의 포도원에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그 이상의 일을 할 수 있겠는가?(사 5:4)
그러나 결국, "불의한 자는 수치를 모르는도다." 불의하던 자들은 여전히 불의하며, 자기들의 불의를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얼굴을 붉힐 줄도 모른다."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명예심이 있고 수치심이 있다면, 그토록 자기들의 고백과는 정반대되고, 자기들이 받은 교훈과 상반되는 일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수치를 느낄 줄 모르는 자는 가망이 없다.
2. 하나님은 그들의 눈 앞에다가 자기의 정의의 현저한 기념비를 남겨두셨다. 그것은 그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6절). "내가 열국을 끊어버렸도다." 그들은 가나안의 7민족으로서 그들의 죄악 때문에 그 땅이 토하여 낸 자들이다. 이것은 땅이 "저들도 역시 토하여낼까" 하는 경각심을 저들이 갖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레 18:28).아니면 이 구절은 자기들의 죄악 때문에 황폐해지고만 이웃 나라들 중 어떤 나라, 특히 이스라엘 10 지파를 가리킬 수도 있다. "저들의 망대가 황폐해졌다." 즉 저들의 높은 망대, 강한 망대, 저들의 자랑과 권력이 무너졌다. 또 저들의 "거리가 비었다." 아무도 그리로 지나가는 자가 없다. "저들의 성읍도" "황폐되었다." 거기에는 "아무 사람도" 없다. "어떤 거주자" 도 없다. 모두가 죽었거나 포로가 되었다. 원수들이 그러했다. 하나님이 서원한 바이다. "내가 그들을 끊으리라" 그리고 하나님은 예루살렘의 가증 때문에 이런 것을 계획하셨다(겔 23:9, 11). "내가 말하노니, 분명히 너희는 나를 두려워하게 되리라. 분명히 남들에게 내린 심판이 그와 비슷한 사악한 관습에서 너희를 떠나게 하리라. 분명히 너희는 이 같은 섭리의 교훈을 받으리라. 너희는 죄가 저들에게 가져오는 패망을 목격하게 되면, 그들과 같은 죄악을 계속하여 짓지 아니하게 되리라고 기대할 수 있으리라." 이웃집이 불타면, 자기 집도 위험하다는 것을 알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우리가 겁을 먹을 때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3. 하나님은 그들 앞에 생사, 선악을 말씀과 섭리로써 두셨다.(1) 그는 저들이 자기를 경외하고 교훈을 받으면, 저들이 영구히 번성하리라고 보증했다. 그래서 "저들의 거처는" 이웃집의 거처처럼 "끊어지지 않으리라" 고 했다. 저들이 주어진 경고를 받아들였다면, 그래서 회개했더라면, 지난 것은 용서되고, 저들의 평온은 지속될 수 있었다.
(2) 그는 그들에게 비록 칼을 유예시켜 주긴 했지만, 채찍의 아픔만은 알게 해 주셨다. "내가 그들을 벌한 것" 은, 어떤 징계였든지, 그들을 저주받게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도를 다 써보았으나, 모두가 헛수고였다. 그들은 점잖은 방법으로 통하지 않았고, 가혹한 방법으로도 효과를 못냈다. "그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 종일 나쁜 일을 했기" 때문이다. 저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사악한 짓을 저질렀고, 어떤 기회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심초사하였다. 하나님은 자기 "예언자들" 을 그들에게 보내시려고 "일찍 일어나셨다." 그들을 돌이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들은 "나보다 먼저 일어나" 문을 걸어닫았다.
저들의 사악은 보편적 현상이었다. "저들의 모든 행실" 이 부패되었다. 그것은 모두 저들의 탓이었다. 저들은 그 책임을 유혹자에게 돌릴 수도 없었다. 그들은 고의적으로 "그들의 행실을 부패케 했다." "모든 사람은 자기의 정욕에 이끌리어 유혹을 받고 속는다."
심판과 자비 (스바냐 3:8-13)
앞에서는 예루살렘의 사태가 아주 처참해 보였다. 그 도성은 이제 오명을 지니게 되었고, 구제 불능이 되었으며, 자비의 증거와 심판의 증거에도 불충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이제는 "녹슨 은" 처럼 버려질 수밖에 없으리라고 기대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저들은 예언자와 섭리의 사건에도 듣지 않았으니, 이웃 나라들처럼 폐허로 만들어 버려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보라.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보고 경탄하라. 그것은 인간의 악을 은혜의 더 찬란한 기회로 삼으신다.
저들은 점점 악해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너희는 나를 기다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8절). "율법은 아무 것도 완전케 하지 못하니, 더 좋은 것을 가져오리라는 희망을 가지라. 교회의 타락을 통애하는 자들아, 하나님을 기다리라. 그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자기 아들을 세상으로 보내시기까지, 또 자기 교회를 개혁, 순화시키고, 유대인과 이방인을 모두 자기의 선민으로 성별하시기 위해 자기의 복음을 보내시기까지 기다리라."
그리고 이 같은 지시와 격려에 따라서 예루살렘의 구속을 위해, "구원을 기다린" 자들이 있었다. 오랫동안 고대하던 것이 드디어는 왔다(눅 2:38). "심판을 위해서"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셨다" (요 9:39).
Ⅰ.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교회를 못살게 군 자들을 복수하고, 그의 원수, 곧 영적 원수 바벨론을 파괴시킨 것은 하나의 예형이요, 행복한 조짐이었다. 그는 "노획자들에게로 다가 가" (우리 성경과 다름-8절), "사로잡힌 자들을 인도하며" (시 8:18), "여호와와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들을 대적하는" 흑암의 권세자들을 정복하실 것이다. 그는 "철장으로 그들을 부수리라" (시 2:5, 9; 11:5, 9). 그의 "뜻을 정함(우리 성경과 다소 다름)은 열국을 소집하고 나라들을 모으기 위해서이다." 만민에게 전파된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해서 모든 민족(열국)이 소환되어, 말하자면 세상에 자기 나라를 건설하려는 주 예수 앞에 하나의 집단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인류의 대다수는 그 소환령에 복종하지 않을 것이므로, 그는 "자기의 분노를 그들 위에 쏟을 것이다." "그를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정죄받았기" 때문이다. 메시야의 나라가 세워지는 때에, 지상에는 "열국들의 곤난" (눅 21:25), "큰 소란" 이 "전무후무하게" (마 24:21) 있을 것이다. 그때 하나님은 자기의 분노를, "자기의 맹렬한 분노" 를 메시야와 그 나라를 거역하는 자들에게 쏟는가(시 2:1, 2). 그때 "온 땅은 그의 질투의 불꽃에 삼켜지리라."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모두 복음에 대한 그들의 적의 때문에 심판을 받으리라.
Ⅱ. 또 하나님은 자기 교회의 피해를 복구하시리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회복자들의 번영과 평화의 재흥을 꾀하시는 때, 그때 그는 저들의 덕과 신앙을 재흥시킴으로써 자기의 목적을 달성할 준비를 시킨다. 이것이 개인에게든 단체에게든, 하나님의 방법이니, 먼저 거룩하게 하고, 그 다음에 행복하게 만드신다.
이 약속은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 귀환한 후 부분적으로 실현되었다. 저들의 포로 생활이 저들의 우상 숭배를 철저히 근절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그 열매이니, 죄의 제거이다. 그러나 이 약속은 더 멀리, 복음과 그 은총의 거룩한 효력과 우리가 살고 있는 "개혁의 때" 를 가리킨다(히 9:10).
1. 인간들의 대화에 개혁이 있으리라는 약속이 있다. 인간의 대화는 지금까지 대체로 부패되어 있었으나, 이제는 소금으로 간을 맞추게 된다(9절). "그때에 내가 백성을 순수한 언어로 돌아가게 하리라(다소 다름). 즉 내가 지금까지 그들의 모든 선한 예절을 거의 송두리째 파괴시켜 오던 악한 말에서 떠나 순수한 말을 하게 하리라." 회개케 하는 은총은 미사여구가 아니라 참다운 지혜를 통해서 언어를 순화시킨다는 것을 기억하자.포로기 후, 유대인들에게는 방언의 개혁이 필요해졌다. 그들이 가나안의 언어를 아스돗의 언어와 혼합시켰고(느 13:24), 더구나 그 고통은 치료되어야 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저들의 언어는 온갖 불경스러움, 더러움, 거짓 따위에서 순화되어야 했다.
내가 그들을 "선택된 언어" (혹자는 그렇게 읽는다)로 돌아 가게 하리라. 그들이 함부로 말하지 않고, 조심성 있게, 신중히 말하게 되리라. 그들이 "말을 골라서 하리라." 일상 생활 속의 순결과 경건의 분위기는 어느 민족에게는 매우 아름다운 전조이다. "부정한 입술을 가졌던 백성" 에게 하나님이 순수한 언어를 주시는 때에는, 다른 은혜, 다른 축복도 따라다니게 된다.
2.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하나님 예배가 보다 잘 지켜질 것이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일치하여 참예하게 되리라. 희생물과 분향 대신에,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라." 기도란 하나님을 영예롭게 하는 신령한 예물이다. 그리고 그 같은 의무에 합당하게 우리를 준비시키기 위해서는, 우리가 "순수한 언어" 를 갖는 것이 필수적이다. 우리의 입술이 정결케 되기 전에는, 우리의 입술에 하나님의 이름도 오르내리기란 전혀 걸맞지 않는 일이다. 우리의 입의 말과 우리의 헌심의 명상이 하나님께 수납되기 위해서는, 일상생활 속에서도 순결한 말을 사용해야 한다. "같은 우물에서 어떻게 쓴물과 단물이 나올 수 있으리요?" (약 3:9-12)또한 저들의 언어가 순화된 다음, 저들이 "일심으로," "한 어깨"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하나님을 섬기게 된다는 약속도 있다. "한 어깨" 란 황소들이 끄는 멍에를 비유해서 하는 말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만장일치로 하나님 예배에 힘쓸 때, 그 일도 즐거이 진행된다. 이것도 순수한 언어, 곧 정욕, 탐욕, 육욕 따위에서 정결케 된 언어의 효력이다. 순수성이 일치성의 길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예절의 개혁이 또한 상호 이해의 길이다. "위에서 오는 지혜는 첫째로는 순전하고, 그 다음으로는 평화적이다."
3. 또 하나님께로부터 쫓겨났던 자들이 그에게 돌아 와 영접되리라고 했다(10절). "에티오피아 강 건너로부터," 혹은 다른 먼 나라에서부터, 그들이 하나님께 기억되리니, 탕자가 먼 나라에서 아버지를 생각한 것과 같다. "멀리 있는," "그의 분산된 딸" 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 부르실" 자들 중에서 발견되리라. 어디에 있든지, 비록 "에티오피아(구스)강 건너" 있더라도, 여전히 그들은 하나님의 권속이다." 그들이 내 예물을 가져오리라." 즉 그들 자신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재물로 바치게 되리라(롬 12:1).
4. "그 날에 너희는 너희가 행한 온갖 행위를 인해서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고 했다(11절). 그들이 회개자이기 때문에는 수치를 당할 것이다(겔 16:63). 그러나 다시 어리석은 짓을 하게 됨으로써 당하는 수치는 당하지 않으리라. "내가 너희 중에서, 불경스러울 뿐 아니라 겉보기에는 아름답게 보이는 위선까지 제하리라. 또 너희 교만을 즐거워하고, 성도를, 성스런 집을 자랑하는 자들을 제거하리라." 이들은 "거룩한 산 때문에 교만하였다." 그것 때문에 스스로 속아서 하나님의 심판까지도 업신여겼다. 거룩함을 빙자하여 교만해지는 것은 하나님을 가장 분노케 하는 것이다.5. 하나님은 거룩하고, 겸손하고, 신실한 백성의 남은 자를 두리라고 하셨다(12절). "내가 너희 중에 곤고하고 가난한 사람을 남기리라." 이들 선택받은 남은 자들은 순전성과 평화를 축복받으리라(13절). 말에도 그렇고 행실에도 그렇게 되리라. "그들은 불의를 행치 않으며 거짓을 말하지 않으리라."
복음의 예언 (스바냐 3:14-20)
죄를 제거하리라는 약속이 있은 후, 이제 곤란을 제거하리라는 약속이 오고 있다. 원인이 제거되면 결과도 그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즐거워하고 노래하라(14절). "노래하라. 오 시온의 딸아!" 기쁨을 노래하라. "오 이스라엘아, 외치라!"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들은 진심으로 그를 즐거워할 기회를 맞는다. "그날에 예루살렘에게 말이 있으리라" (하나님은 자기의 예언자들을 통해서 말할 것이요, 그들 이웃이 말할 것이요, 그들이 또한 서로 말하리라). "너는 두려워 말라. 하나님께 기도 올리기 위해 네 손을 들라. 네 자신을 돕기 위해 네 손을 쳐들라."
Ⅰ. 저들의 온갖 역경이 종국을 고하리라(5절). "여호와께서 너의 형벌을 제하셨도다. 즉 네 죄가 가져온 형벌이 주는 모든 재난을 제거하셨다. 전쟁의 소음은 진정되고, 기근에 대한 탄식이 그치며 포로되었던 자들이 돌아 오리라. 네 땅을 칩입한 네 원수를 그가 내어 쫓았도다(어떤 자는 그렇게 읽는다). 악한 재난을 깨끗이 제하는 길은 악한 죄에서 깨끗게 되는 것이다. 죄악이 주는 고난 이상으로 괴로운 재난은 없다.
Ⅱ. 하나님이 그들에게 자기의 임재의 표시를 주시리라. "오 시온아, 여호와께서 너 가운데 계시도다! 오 예루살렘아, 우주의 중심인 태양같이, 그의 빛을 만방에 비치라. 그가(15절) 너 가운데 왕같이 거하시도다. 그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계약맺은 자이며, 너 가운데 네 하나님으로 거하시니, 너는 그의 것이니라. 그가 구원하시리라. 그는 예수이니라. 그 이름에 상응하리라. 그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니라."
Ⅲ.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것을 즐거워하실 것이라 했다.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리라." 죄인의 회심과 성도의 확신이 천사들의 즐거움이다. 그들은 곧 하나님 자신에게도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가 "그의 사당 안에 거하리라." "그의 사당 안에서 조용하리라" (다소 다름-문자적 의미는 이러하다).
Ⅳ. 하나님은 시온의 애곡자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눈물을 씻어주리니(18절), "내가 대화로 인하여 근심하는 자들을 부르리라. 너의 수치가 그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느니라." 시온은 애곡하고 있었다. 그녀(시온)의 재앙이 여러 가지였다. 그 도성이 황폐해졌고 왕궁이 몰락했다. 상거래는 끝이 났다. 그러나 이 모든 것도, 거룩한 절기 때 매년 3차례 온 이스라엘이 모여 참례하던 성전과 제단의 파괴에 비하면 비교도 안 된다. 그들이 슬퍼하는 것은 거룩한 집회를 위해서이다. 거룩한 집회의 제한, 또 원수들에 의한 분산, 또는 친구들로부터의 잊혀짐은 모든 선량한 사람들에게는 슬픔이다. 거룩한 집회가 당하는 수치는 그들에게 무거운 짐이었다.
Ⅴ. 하나님은 포로들을 복구시키사, 영원히 추앙된 것으로 보이던 고향으로 돌아 오게 하리라(19,20절). "그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그들의 권세를 깨뜨리고, 저들의 묘사들을 흩으며, 그래서 움켜 잡았던 노획물을 도로 내어놓게 만들 것이다." 자비와 은총의 한 가지 행위가 분산된 자들을 다시 모으고, 그들을 다시금 고향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다 할 것이다. "백성의 마음이 준비되어" 있으면, 곧 일이 이루어지리라.
Ⅵ. 이 모든 일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들 주변의 모든 자들이 그를 존경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자비를 베푸사 자기 교회로 돌아 오시면, 그 교회는 다시금 신용을 회복하리라고 약속되어 있다. "내가 온 땅에서 그들을 찬양케 하리니, 지금까지는 줄곧 수치를 당해 오던 땅에서이니라." "아무도 돌보지 않는 이곳이 시온이냐!" 라고 말하던 자들이, "하나님이 돌보시는 이곳이 시온이구나!" 라고 말하리라. "유대인들에 대한 두려움" 이 이웃 민족에게 미쳤을 때, 유대 교회는 그렇게 되었다(에 8:17). 기독교 교회가 온 세상에서 꽃피어 날 때, 그 교회가 또 그렇게 되었다. 교회는 모든 민족에게 추천할 만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장자들로 구성된 세계 교회가 그 큰 날(심판)에 그렇게 되리니, 그때에는 성도들이 그리스도에게 연합되고, 그들은 그리스도를 찬미하게 될 것이다. 그때에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영원히 "찬양할 이름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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