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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

레갑 족속의 조상에 대한 모범적인 복종 (예레미야 35:1-11)

35장은 앞의 장들보다 훨씬 먼저 일어난 사건이 취급되고 있다. 왜냐하면 35장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은 "여호야김 때에" 말씀되고 이루어졌던 일들이다(1절).

그러나 이 일은 그의 통치 말년에 일어난 것임에는 틀림없다. 왜냐하면 이 사건은 바벨론 왕이 군대를 이끌고 "이 땅에 올라온" 후에 있었던 일이기 때문이다(11절). 이 침입은 열왕기 하 24장 2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사건을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사건은 여호야김이 느부갓네살을 배반하였으므로 일어난 것이었다. 하나님은 이 반역적인 백성들에게 심판을 내리신 후에도 계속 그들을 잊지 않으시고 예언자들을 통하여 죄에서 돌아설 것을 종용하셨다. 그러면 그도 그의 진노를 그들에게서 거두실 생각이시었다. 이 목적 때문에 예레미야는 백성들에게 레갑 족속을 예로 든다. 그들은 스스로를 구별하여 다른 이스라엘 족속들과 같이 생활하지 아니하였다.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들에서 자기들을 구별하기보다 엄격히 하였다. 그들은 본래 겐 족속 출신이었다. 그러므로 "이는 다 레갑의 집 조상 함맛에게서 나온 겐 족속이더라" (대상 2:55)고 하였다. 겐 족속들 중에 적어도 이스라엘 땅에 정착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던 사람들은 모세의 장인 호밥의 후예였다(삿 1:6). 우리는 겐 족속들이 아말렉 족속들을 떠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삼상 15:6)(삿 4:17). 이들 겐 족속 중 한 집안의 명칭이 레갑이었는데 이는 그들 조상 중의 레갑이란 사람의 이름에서 유래한 명칭이었다. 그의 아들이며 장남으로 요나답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당시에 지혜와 강건으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는 이 사건이 있기 300년 전인 이스라엘의 예후 왕 시대에 활동하였다. 새로 등극한 예후가 하나님을 향한 열심히 동하였을 때 그가 요나답(한글 개역에는 여호나답으로 되어있다.:역주)을 이용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왕하 10:15, 16). 이렇게 한 것은 요나답과 같이 명망있는 인물을 병거에 자기와 함께 동승시킴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회유하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본문에는 그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사실이 전해지고 있다.

Ⅰ. 요나답이 그의 후손들에게 부탁한 생활 규범을 볼 수 있다. 이것을 그는 마지막 유언으로 기록하여 남긴 것 같고 자신도 철저히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그의 후손들은 수대에 걸쳐서 이를 신실하게 준행하였다. 그의 후손들 모두가 요나답이 생전에 자신이 준수하였듯이 이를 준수하였음을 본문을 통하여 찾아 볼 수 있다.

1. 그 교훈들은 두 가지로 모두 요약될 수 있다.

(1) 그는 후손들에게 나실인의 계율에 따라 "포도주 마시는 것을" 금하였다. 포도주는 사람의 "마음에 즐거움을 주는" 것으로 적절히 마시도록 허용될 수는 있다. 그러나 술을 마시다보면 도가 지나쳐서 그것으로 인하여 해를 볼 수도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얼굴의 빛으로" 마음의 즐거움을 삼는 경건한 사람은 즐거우려는 목적 때문에 술을 마실 필요도 거의 느끼지 못한다(시 4:6, 7). 따라서 전혀 포도주를 마시지 말거나 또는 디모데가 그랬던 것처럼 약으로 조금씩 사용하는 자기 부정적인 태도가 바람직한 것이다(딤전 5:23).

(2) 그는 그의 후손들에게 "장막에 거하며" 집을 짓지 말 것과 땅을 사거나 세를 내거나 또 땅을 점령하지도 말라고 명하였다(7절). 이러한 규례는 나실인들이 지켜야 할 규례 이상의 고행과 엄격한 생활을 요구하고 있었다. 장막은 보잘 것 없는 거주 장소이다. 그러므로 장막 생활은 그들에게 겸손을 가르친다. 또한 장막은 추위를 막아 주지 못하는 거주지이다. 따라서 장막생활은 또한 그들에게 강인함을 가르치며 몸의 안일만을 추구하지 말 것을 가르친다. 장막은 또한 늘 이동할 수 있는 집이다. 따라서 장막 생활은 그들에게 이 세상에 정착한다거나 뿌리를 박고 안정되게 생활하는 것을 생각하지 말 것을 가르친다. 그들은 "평생" 을 장막에서 거해야만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초막절을 맞아 며칠을 장막에서 지내듯이 그들도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고 군인들이나 목자들처럼 여름철만 장막에서 산 것이 아니라 "평생을" 그렇게 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어려서부터 고통을 견뎌내는데 익숙해 있었고 따라서 노년에도 이 생활에 곤란을 느끼지 않았다.

2. 요나답이 이러한 생활 규범을 전해 준 이유. 그것은 단순히 그의 권유를 보이고자 해서 한 것은 아니었고 또 그가 합당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그들에게 강요함으로 그들에게 지배권을 행사하려는 이유 때문도 아니었다. 다만 이것은 그의 지혜를 보여 주는 것으로 그가 그들에게 유익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그들에게 권함으로 그들의 안녕을 염려하는 참된 관심에서 우러난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의 후손들을 명령을 지키도록 서약으로 규제하지도 않았고 이 규칙들을 지키지 않을 경우 벌을 가하라고 하지도 않았다. 다만 이 규율이 그들 자신의 교화(敎化)에 유익하다고 여겨질 때에만 그대로 지킬 것을 충고하였고 또 11절에서와 같이 필요한 경우에는 이대로 하지 않아도 허물이 되지 않았다. 그는 이 규칙들을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하였다.

(1) 그들이 조상들의 옛 가통(家統)을 지킬 것을 명하였다. 어떤 이들이 혹 이를 멸시한다고 할지라도 그는 이것을 지키는 것을 참으로 덕망있는 일로 생각하였다. 그의 조상들은 유목생활에 깊이 젖어 있었다(출 2:16). 따라서 그는 그의 후손들도 이 전통을 지켜 주기를 바랐다. 그는 그의 후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생활을 변질시키기를 원하지 않았다. 실상 이스라엘은 본래 목축민으로 장막에서 거하였던 것이었다(창 46:34). 우리는 조상들의 순수한 전통이 비록 보잘 것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이를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2) 그는 그들이 분수에 맞는 삶을 살 것을 명하였다. 모세는 그들이 이스라엘에게 귀화할 것을 희망하였다(민 10:32).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들은 여전히 "이 땅에서 나그네" 였다(7절). 그들은 이 땅에서 아무런 유산도 얻지 못하였으며 따라서 그들은 매일 수고함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할 형편이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들은 적은 수입과 어려운 생활에 스스로 적응할 수 있어야 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과 같은 나그네의 형편으로서는 정착민들처럼 풍부하고 여유있게 산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실상 우리의 처지와 신분에 스스로 적응하며 정도에 지나친 생활을 목적으로 삼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처사요, 또 우리의 의무임을 기억하자. 우리 조상들의 운명이 그랬었다면 그것을 우리의 운명으로 삼고 그대로 따라 산다고 불평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도록 하자."

(3) 그는 그들이 그들과 함께 사는 이웃들의 생활을 보고 부러워하거나 동요되지 말 것을 명하였다. 나그네인 그들이 만약 재산을 모으고 떵떵거리고 산다면 이스라엘 원주민들이 그들의 부요를 탐내고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에게 그리하였던 것처럼 시기하는 눈초리로 그들을 보게 될 것이었다(창 26:14). 그리고 그들과 시비할 트집을 찾아 그들에게 해를 입히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요나답은 그들이 검소하고 겸손히 생활하는 것이 신중한 태도라 여겼다. 왜냐하면 겸비한 삶이야말로 생을 오래 지속시킬 수 있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겸비한 생활을 하면 "그들이 나그네 되었던 땅에서 그들의 생명이 길리라" 는 것이 그의 교훈의 뜻한 바였다. 겸손하게 은둔하며 자족하는 생활이 흔히 최선의 정책으로 가장 확실한 자기보호의 수단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4) 그는 그들의 사치와 관능적인 쾌락의 유혹에 대비하여 무장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는 또한 그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시대와 장소의 강력한 죄의 유혹에도 대비하여 무장할 수 있기를 바랐다. 요나답은 당시의 도덕의 보편적인 타락을 보았다. 에브라임 족속들 가운데는 주정군들이 많았고 따라서 그는 그의 자녀들이 이에 유혹되어서 타락하지나 않을까 염려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로 하여금 그들끼리 살며 농촌에 은둔해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불법적인 쾌락에 이끌려 들어가지 않도록 합법적인 쾌락의 수단도 이용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들은 절제하는 검소한 생활을 하도록 요구되었고 이런 생활은 정신과 육체의 건강을 위하여 유익하였다. 또한 이 생활은 장수에 도움이 되었고 생활에 용이하게 적응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이러한 삶이야말로 "그들이 나그네되었던 땅에서" 안락하게 살 수 있는 길이라고 그들은 생각하였다. 우리는 나그네요, 순례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할 때 우리는 모든 육적인 욕망을 자제할 수밖에 없으며 또 관능적인 생을 초월하여 살며 이러한 욕망은 가볍게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5) 그는 그들로 고통과 재난의 시기에 대비하도록 권고하였다. 요나답은 예언의 영이 없었으나 이 백성의 불쌍할 정도의 타락을 보고 그들의 파멸을 내다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만일 평화롭게 지낼 수 없다면 고난의 와중 속에서도 평화를 지닐 수 있도록 그의 후손들에게 준비를 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잃은 것이 적게 하고자 하였고 탈취당할 시기가 임해도 그들이 적게 두려움을 먹도록 하고자 하였다. 또 그들로 하여금 소유에 대하여 무관심하게 함으로 소유물을 탈취당할 때 덜 고통스럽게 하고자 하였다. 고통에 직면하여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최상의 사람들은 세상을 극기하며 자기 부정적인 생을 사는 사람들임을 기억하자.

(6) 그는 그들로 하여금 규칙적인 생활을 배우도록 또 훈련 아래서 생활하는 법을 배우도록 명하였다. 우리 모두에게 이러한 생활은 유익하고 또 우리 자녀들에게도 그런 생을 가르친다는 것은 유익한 것이다. 세상을 오래 산 사람들은(아마 요나답도 이 훈계를 후손들에게 남겨 놓았을 때 나이가 많았던 것으로 보여지는데) 경험의 의해서 세상의 무상함과 그 풍요한 부와 쾌락의 속에 감추인 위험스러운 함정을 알고 말할 수 있으며 또 그들이 그들 뒤의 오는 사람들이 자기를 보호하도록 경고할 때 이러한 경고는 존중되어야 한다.

Ⅱ. 그의 후손들이 이 규범들을 철저히 준행함(8-10절). 그 후손들은 각각 자기 세대를 맞으면서 "그들의 조상 요나답이 그들에게 명한 모든 명을 순종하여 다 준행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포도주가 흔한 지방에서 살았지만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였다. 그들의 아내나 자녀들도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였다. 실상 스스로 자제할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러한 훈계를 받으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자기를 검토해야 한다. 그들은 집도 짓지 않았고 경작도 하지 않았다. 다만 가축을 길러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들이 이렇게 행한 것은 한편 그들의 조상에 대한 복종심과 또 그의 이름과 권유에 대한 경외심 때문이었고 또 다른 한편 그들은 경험을 통하여 이 같은 고행의 생활이 유익함을 체득하였기 때문이다. 전통이 지니고 있는 힘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그리고 고대의 덕담(德談)과 사례와 위대한 인물들이 인간들에게 미친 감화력을 생각해 보자. 거의 불가능하게 보여지던 것들이 오랜 사용과 관습에 의하여 용이하게 되고 자연적인 관례로 되어버리는 것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생각해 보자. 이제 우리는 본문에서 그 특성 몇 가지를 고찰해 보자.

1. 필요한 경우에는 요나답의 가훈을 어길 수도 있다는 것이 본문에 나타나 있다. 이것은 요나답이 그들에게 필요한 경우 예외도 있을 수 있음을 지시한 것으로 봄이 옳다(11절). 그러므로 군대를 이끌고 "바벨론 왕이 이 땅에 올라왔을 때에" 그들은 지금까지는 천막 생활을 하였지만 그 생활을 중단하고 예루살렘에 와서 거하였다. 그리고 거기서 그들은 힘이 닿는데 따라서 가옥을 준비하여 생활하였다. 아무리 엄한 생활 규칙이라도 지나치게 엄해서는 안 된다. 필요할 때에는 예외도 인정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러므로 이러한 종류의 서약을 하는 데 있어서 특별한 경우 참작할 여지를 남긴다는 것이 지혜로운 처사이다. 이렇게 할 때 사리가 보다 명백해지며 따라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 (전 5:6)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궁지에 몰리지 않게 된다. 이러한 성격의 명령들은 제한된 범죄 내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 만약 그들이 다 같이 위기에 부딪혀서 그들 가족의 규례와 관습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안전을 도모할 적절한 수단을 사용할 수 없었다면 레갑 족속들은 하나님을 시험하고 그를 불신하는 입장에 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2. 그들은 급박한 위기에도 불구하고 신앙으로 가훈을 지켰다. 예레미야는 그들을 성전의 한 방인 예언자의 방으로 인도하였다. "방백들의 방" 이 아니라 예언자의 방이라는 사실에 주목하자. 이 예언자의 방은 방백들의 방 곁에 붙어 있었다. 그렇게 한 것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하나님의 사람의 방에서" 전하는 것이 보다 타당하게 보여졌기 때문이라 하겠다. 거기서 그는 레갑 족속들에게 포도주를 마시라고 요구했을 뿐만 아니라 "포도주가 가득한 사발과" 따라 마실 잔까지 그들 앞에 놓았다. 이렇게 한 것은 그들로 마시고 싶은 강한 충동을 자극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그는 다음과 같이 자극적인 말을 던졌다. "포도주를 마시라. 공짜로 주는 것이오. 예루살렘에 살러 들어왔으니 여러분은 가훈의 규례 하나를 어겼오. 그러니 포도주를 마셔도 상관없지 않소? 당신들도 이 성에 들어왔으니 이 성에 사는 사람들처럼 행해야 되지 않겠오?" 그러나 그들은 단호히 거절하였다. 그들 중 누구도 이견을 말하지 않았고 일체로 거부하였다. "우리는 포도주를 마시지 않겠오. 그것은 우리의 법에 저촉되는 것이오" 라고 그들은 대답하였다. 예언자는 벌써 그들이 자기의 요구를 거절할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렇게 답변했을 때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그들이 단호하게 각오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확고한 금주주의자들에게는 이러한 유혹도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렇지만 그들의 확신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유혹은 매일 극복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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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갑 족속의 모범적 행위 (예레미야 35:12-19)

레갑 족속의 지조에 대한 시험은 하나의 상징적인 행위였다. 이제 본문에서 이 상징이 구체적으로 적용되는 것을 보게 된다.

Ⅰ. 레갑 족속이 조상이 그들에게 명한 것을 준수하였다는 사실은 하나님에게 불순종하는 유대인들에 대한 경고가 되고 있다. 유대인들로 이 사실을 깨닫고 수치감을 갖게 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예언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유대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다. "끝까지 너희가 내 교훈을 받지 아니하겠느냐(13절). 그래도 깨닫지 못하겠는가? 마음속에 집히는 것이 없단 말인가? 너희의 죄를 깨닫고 의무를 준행토록 할 어떤 수단도 통하지 않는단 말인가? 너희는 레갑 족속들이 어떻게 그들의 조상의 명령에 복종하였는지를 보았다(14절). 그래도 너희는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겠는가?" 라고 한다. 실상 요나답의 자손들이 요나답에게 순종하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다음과 같은 사실 때문에 하나님의 분노는 더욱 극렬하다.

1. 레갑 족속들은 자신들과 같이 인간에 불과한 존재에게도 복종하였다. 그들이 복종한 인물은 다만 지혜와 능력이 남달리 뛰어났고 또한 그들의 육신의 조상이라는 것밖에 아무런 특성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복종하였다. 허나 유대인들은 그들이 영혼의 아버지로서 그들에게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계신 무한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에게 불복종하였다.

2. 요나답은 죽은지 이미 오래되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을 알지 못하고 따라서 그의 명령에 그들이 불복종하는지 알 수도 없고 또 잘못한다고 하여도 이를 시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계셔서 그의 율법이 어떻게 지켜지는가를 살피시며 또 모든 불복종에 대해서는 언제나 보응을 내리시는 분이시다.

3. 레갑 족속들에게 조상에 대한 그들의 의무를 깨우쳐 주는 그 누구도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예언자들을 그의 백성들에게 보내사 자기에 대한 그들의 의무를 일깨우셨다. 그렇지만 그들은 복종하지 않았다. 본문에서는 예언자들의 깨우침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불복종하였다는 사실이 가장 큰 노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말씀이 주어진다. "내가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또 양심의 지시와 경고를 통하여 너희에게 말하고 부지런히 말하였도다. 또한 너희들과 같은 성정을 지닌 내 종 모든 선지자를 너희에게 보내고 부지런히 보내었도다(14,15절). 너희와 같은 인간을 보낸 것은 예언자들 자신이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고 너희도 두려움을 품게 하려는 것이었도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헛되었도다" 라고 한다.

4. 요나답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위하여 하신 것만큼 자기의 후손을 위하여 행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는 그들에게 책임은 부과하였으나 그 책임을 감당할 만한 아무런 유산도 남기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좋은 땅을 주셨고, 또 그들이 복종하기만 하면 그들이 이곳에 늘 거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듣지 않았고, 또 들은 체하지도 않았다.

5. 요나답이 그의 후손들에게 한 것처럼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이같이 큰 곤경과 굴욕의 경지에 묶이어 지내지 않도록 하신다. 그럼에도 요나답의 명령은 준수되었고 하나님의 명령은 불복종되었던 것이다.

Ⅱ. 전처럼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심판이 경고되고 있다. 이는 모두 그들의 불복종 때문에 진노하신 것이었다. 레갑 족속들이 일어나 그들은 심판하고 정죄할 것이다. 왜냐하면 레갑 족속은 어김없이 "그들의 조상의 명령을 준행하였고" 계속해서 그 명령에 복종하였다(16절). 그러나 "이 백성" 곧 도전적이며 불평을 일삼는 이 백성은 "나를 듣지 아니하였다" (17절). 그들이 교훈의 말씀에 복종치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경고한 심판대로 행하시리라고 한다. "내가 갈대아 군병들을 들어서 그들에게 선포한 모든 재앙을 내리리라. 이는 내가 율법과 선지자들을 통하여 선포한 것이었다. 재앙을 내리는 이유는 내가 그들에게 말하였어도 듣지 아니하며 불러도 대답지 아니함이라. 가까이 있는 자들에게는 속삭이듯이,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는 큰 소리로 불렀도다. 또한 그들을 믿게 하고 변화시키기 위하여 온갖 방법과 수단을 다하였도다. 같은 뜻을 이루려고 때로는 말하기도 하였고, 또는 섭리로 그들을 불렀도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허사였노라. 그들은 듣지도 대답하지도 않았노라" 고 하신다.

Ⅲ. 레갑 가족이 그들의 가율(家律)을 꾸준히 한 마음으로 지켰기 때문에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 것이 본문에 약속된다. 그들의 끈기와 부동의 자세가 높이 평가된 것은 이스라엘로 수치를 느끼게 하려는 목적에서였지만 그들의 모습 자체만 하더라도 찬양과 영예와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자비를 베푸시겠다고 그들에게 말씀한다(18,19절). 또한 그 자비로 인하여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라 한다. 다음의 사실이 약속되고 있다.

1. 레갑 족속은 이스라엘의 족속들이 존속하는 한 그들도 존속하리라고 한다. 즉 레갑 족속은 이스라엘 가운데 나그네와 객에 불과하지만 그렇게 하시겠다는 말씀이다. 이 말은 그들이 물려 줄 재산이 없을 수는 있어도 대를 이을 자가 끊어지는 일은 없으리란 말이다. 재산은 쥐꼬리만큼밖에 없으면서 자녀들은 수 없이도 많은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런 사람들은 현재에는 호구지책에 급급할지라도 언제인가는 떵떵거리며 살 때가 오고마는 법이다.

2. 그들 지파 가운데서 계속 신앙이 유지될 것이라 한다. 그러므로 본문에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서 내 앞에 설 사람 즉 나를 섬길 사람이 영영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그들은 제사장도 레위인도 아니었고, 성전을 섬기는 일에 직분도 갖지 못하였지만 정기적인 예배에 계속 참여함으로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의 다스림을 받았던 것이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1) 한 가족에게 수여될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은 대대로 그 가족 가운데서 하나님에 대한 예배가 지속되는 것이다.

(2) 절제, 자기부정, 금욕은 경건을 쌓는 일에 큰 도움이 되며 또 경건의 덕을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일에 있어서도 유익하다. 감각적인 쾌락을 억제할수록 하나님을 섬기고 싶은 마음이 강해지는 법이다. 한편 한 가정에 있어서 거만과 사치보다 신앙의 전통을 위협하는 요소는 없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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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3 예레미야 메튜 헨리 주석, 예레미야 52장
392 예레미야애가 메튜 헨리 주석, 예레미야애가 01장
391 예레미야애가 메튜 헨리 주석, 예레미야애가 02장
390 예레미야애가 메튜 헨리 주석, 예레미야애가 0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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