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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 대오를 갖추어. 직역하면 ‘그들의 군대들로서’가 된다.이 말은 이스라엘이 출애굽시 마치 승전(勝戰)한 군사들처럼 대장되신 여호와가 이끄시는 대로 씩씩하게 발걸음을 내디뎠음을 나타낸다(출 7:4). 즉 그들은 자신들을 압박하던 애굽인들의 눈치를 보며 숨죽여 애굽을 빠져나온 것이 아니라, 애굽의 신들을 보기좋게 파멸시키시고 바로의 교만을 여지없이 짓밟으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에 힘입어 보무(步武)도 당당하게 애굽에서 나온 것이다(출 12:31-37). 즉 이제 더 이상 비굴한 노예 민족으로서가 아니라, 가나안 땅을 정복하러 가는 위풍당당한 하나님의 군대로서 행진해 나온 것이다.

떠난. [히, 야체우] 이는 ‘튀어나오다’, ‘이끌어 내다’, ‘명하여 보내다’란 뜻의 ‘야차’에서 유래한 말로서,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구원하시는 능력에 따라 그분의 이끄시는 인도로 애굽에서 나온 상황을 묘사한다(출 12:33).

노정은 이러하니라. 직역하면 ‘이것들이 출발 지점들이다’가 된다. 특히 여기서 ‘노정’(路程)으로 번역된 ‘마스에’는 ‘떠남’, ‘출발’, ‘여행’ 등의 뜻을 지닌 ‘마사’의 복수로서 ‘천막(tent)을 걷다’, ‘떠나다’, ‘여행하다’라는 의미의 ‘나사’에서 유래하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광야여정으로 제시된 본 장의 지명들은 그들이 잠시 머물러 장막을 쳤다가 다른 장소로 이동할 때 장막을 다시 걷었던 임시 처소들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거처한 이러한 임시 처소는 곧 거류민과 나그네로 살아가는(벧전 2:11), 오늘날의 성도들이 잠시 머무는 이 땅에서의 삶을 예표한다.

 

33:2 모세가 여호와의 명ㅓㅕㅇ대로 … 기록하였으니.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친히 인도하셨던 여호와께서는 요단을 건너기 직전 모압 평지에 머무르던 때에 지금까지 거쳐온 경로들에 대해 모세로 하여금 일일이 기록하게 하셨다. 이렇게 지시한 이유는 숱한 어려움을 헤치고 마침내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당신의 권능과 신실하심을 그들에게 영영히 기억시키기 위해서였다. 한편 이 기록은 단순히 과거에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셨던 여호와의 행적을 기념키 위해서만 필요했던 것이 아니었다. 이 기록은 과거에 여호와께서 그처럼 이스라엘을 인도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당신을 믿고 따르는 자에게 현재와 미래에도 동일한 보호와 사랑을 베풀 것에 대한 당신의 믿을만한 약속으로서의 가치도 지닌다. 사실 성경의 모든 기록은 과거의 산물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here and now) 나에게 구체적으로 적용되는 살아있는 말씀이다(딤후 3:15-17, 히 4:12).

 

33:3 첫째 달 열다섯째 날에 라암셋을. 이는 출애굽의 시기와 장소를 언급한 것으로서, 이같은 구체적인 기술은 곧 출애굽 사건의 역사성과 사실성을 증명한다(출 12:37, 13:4). 여기서 ‘첫째 달’은 원래 유대 민간력으로 ‘7월’에 해당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해방과 구원을 기념하여 출애굽한 그 날을 신정국가(神政國家) 이스라엘의 건국 원년(元年)으로 삼게 하시고, 새로운 월력 곧 종교력을 만드셨다(출 12:2).
라암셋은 애굽 동북부에 위치한 고센 지방의 한 성읍으로서, 노예로 전락했던 이스라엘인들에 의해 건축된 국고성이다(출 1:11). 이곳은 이스라엘인들이 애굽 생활을 처음 시작한 곳(창 47:11)이자 출애굽의 출발지였다. 출 12:37 주석을 참조하라.

애굽 … 목전에서 큰 권능으로 나왔으니. 출애굽이 이스라엘 스스로의 능력이나 애굽인들의 노예해방 정책에 따라 이뤄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과 경륜에 의해 성취된 사건임을 시사한다. 이를 통해서 거듭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영, 육을 불문하고 인간 구원의 주체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시라는 것이다(행 4:12, 약 4:12). 한편 여기서 ‘목전(目前)에서’란 말은 문자 그대로 ‘보는 앞에서’란 뜻인데, 이는 출애굽의 과정을 지켜본 애굽인들이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시는 여호와의 능력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그 능력에 완전 압도되었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리고 ‘큰 권능으로’(히, 베야드 라마)란 문자적으로는 ‘높은 손으로’(with a high hand)라고 번역된다. 이 말은 성경 문학적으로 하나님의 초월적인 능력을 생생이 의인화시켜 묘사할 때 사용되며, 이같은 표현법을 흔히 신인동형동성론적(神人同形同性論的) 표현이라 한다.

 

33:4 장사하는 때라. ‘장사 지내는 동안에’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좋다. 여기서 ‘장사하다’는 뜻의 히브리어 ‘히카’는 ‘죽이다’, ‘멸망시키다’는 뜻도 지닌다. 그런데 이 말은 죄인을 징벌하는 측면에서 ‘죽이다’, ‘벌주다’는 뜻의 ‘나카’에서 유래했다. 그러므로 애굽인들의 장자(長子) 사망은 지극히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라는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그들의 신들에게도 벌을. 여기서 ‘벌을 주셨다’(히, 아사 쉐파팀)란 말은 ‘그가 심판을 집행하셨다’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애굽의 신들을 파멸시키셨음을 나타낸다. 이는 여호와가 모든 신중에 뛰어나신 유일한 참신(true God)임을 알려 주는 증거이다. 또한 이 구절은 애굽 땅에 내려진 재앙이 애굽인들에게 뿐 아니라 그들이 숭상하는 신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임을 보여 준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내리신 재앙 가운데는 애굽인들이 섬기는 각종 우상들 곧 태양과 나일 강, 개구리, 가축 등을 징벌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33:5 라암셋. 이스라엘 백성들의 애굽 정착지인 고센 지역 내에 위치한 곳으로서, 오늘날 타니스(Tanis)로 추정된다. 3절 및 출 12:37 주석 참조.

숙곳. 이스라엘이 라암셋을 출발한 후 최초로 진을 친 곳이다(출 12:37, 13:20). 이곳은 애굽의 비돔 근처에 위치하는데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기 전 체류하였다. 그러나 이곳은 요단 강 동편 얍복 강 윗쪽에 있는 ‘숙곳’과는 구별된다(창 33:17, 수 13:27).

 

33:6 광야 끝 에담. 이스라엘이 두 번째 진 친 곳으로 아직 홍해에는 못미치는 곳이다(출 13:20). 여기서 ‘광야 끝’이란 수르(Shur) 광야의 변경을 가리키는데, 오늘날의 ‘와디 투림라트’(wadi Tumilat)로 추정된다. 한편 이곳은 그 당시 애굽의 동쪽 경계선을 이루는 지역으로 성벽과 같은 군사적인 보호막이 쳐졌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곳 변방을 가리켜 ‘성벽’, ‘방벽’을 뜻하는 ‘에담’이라 부르며(8절), 한편으로는 ‘수르’(성벽)라는 히브리식 이름을 지닌 지역으로 명명되었기 때문이다(출 15:22). 따라서 이스라엘은 지금 애굽의 국경선을 막 넘는 순간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출 13:20 주석 참조.

 

33:7 바알스본. 이곳은 수에즈(Suez) 만에서 북서 쪽으로 약 50 km 떨어진 곳으로 추정된다(Steward Paul). 따라서 이스라엘이 아직 홍해를 건너기 전임을 알 수 있다.

비하히롯. 직역하면 ‘하히롯의 입구’이다. 여기서 ‘하히롯’은 애굽어로 ‘갈대숲’을 의미한다. 이렇게 볼 때 이스라엘은 이제 ‘홍해’(히브리어로 ‘갈대 바다’를 뜻함, 출 13:18 주석 참조)에 거의 접근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믹돌. 문자적으로 ‘망대’, ‘높은 곳’을 뜻한다. 이 지명의 뜻처럼 이곳은 애굽 동북쪽에 위치한 전략 요충지였다(렘 44:1, 46:14).

 

33:8 광야를 바라보고. 이 광야는 6절에 언급된 바 ‘수르’(Shur) 광야를 가리킨다. 출 15:22 주석 참조.

바다 가운데를 지나. 바다를 마치 육지처럼 지났던 홍해를 건넌 사건을 일컫는다. 출 13:18 및 14:21-31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사흘 길. 하룻 길은 보통 32 km 정도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사흘 길’은 약 96 km가 된다.

마라. ‘쓰다’(苦)는 뜻의 ‘마라’는 수에즈 만 동쪽 약 11 km 지점에 위치한 곳으로,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후 최초로 진을 친 곳이다. 출 15:23 주석 참조.

 

33:9 엘림. 홍해를 건넌 후 두 번째 진 친 곳이다(출 15:27, 16:1). ‘큰 나무’라는 뜻을 가진 이곳은 무성한 나무로 둘러싸인 오아시스(oasis) 지대였다(출 15:27 주석 참조).

샘물 열둘과 종려 칠십 그루. 메마르고 삭막한 광야 여정 중에 시원한 물과 그늘진 쉼터를 얻게 된 것은 오직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와 인도하심의 결과였다. 한편 여기서 ‘12’와 ‘70’은 각각 이스라엘 12지파 수와 장로들의 수(11:16)였다는 점에서 의미 심장하다(출 15:27).

 

33:10 홍해 가. 출애굽기에서는 이 사실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출 16:1). 이스라엘은 지금 홍해를 끼고 오른쪽으로 계속 남하하는 상태인데, 여기서 특별히 ‘홍해 가’라고 기록한 것은 아마도 그들이 홍해로 흘러드는 어느 개울을 통과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Stenry).

 

33:11 신 광야. 수르 광야 남동쪽이며 아카바 만과 가까운 광야로써 팔레스타인 최남단 지역이다. 출 16:1 주석 참조.

 

33:12 없음.

 

33:13 돕가. 이곳은 동(銅) 광산으로 유명한 ‘세라빗 엘카딤’(Serabit el-Khadim)으로 추정된다(G. E. Wright). 그렇다면 이곳의 위치는 시내 산에서 북서쪽으로 약 75 km 지점에 위치한다. 한편 이곳에서는 가장 오래된 B.C. 18C경의 셈어 계통의 비문(Proto Sinaitic Inscription, 원시내 비문)이 발견되어 언어 발달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였다.

알루스. 돕가 근처로 추측된다.

 

33:14 르비딤. ‘쉬는 곳’이라는 의미를 지닌 이곳은 신 광야와 시내 광야 사이에 위치한(출 17:1, 8, 19:2) 비옥한 광야 지대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물이 없어 이곳을 통과하던 중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다투었던 관계로, 이곳이 ‘맛사’, ‘므리바’ 등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출 17:1-7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33:15 시내 광야에 진을 치고. B.C. 1446년 1월 15일 애굽 고센 지역의 라암셋을 출발한 이스라엘은 그동안 숙곳→에담→믹돌→마라→엘림→홍해 가→신 광야→돕가→알루스→르비딤을 거쳐 마침내 그해 3월 15일, 만 2달만에 시내 산이 있는 시내 광야에 이르게 되었다. 여기서 이스라엘은 다음 해(B.C. 1445년) 2월 20일 이곳을 떠나기까지 정확히 11개월 5일 동안 머물게 된다. 그리고 그동안 각종 율법 제정, 성막 건립, 제사 제도 완비, 인구 조사 실시 등의 중요한 일을 이곳에서 치른다.

 

33:16 기브롯핫다아와. 시내 산 동북쪽 약 30 km 지점으로 추정된다. 이스라엘은 이곳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불순종에 따른 징벌을 받음으로써 ‘탐욕의 무덤’이라는 오욕의 이름을 남겼다(신 9:22). 11:34 주석 참조.

 

33:17 하세롯. 시내 산 동북쪽 약 55 km 지점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시내 산 출발 후 두 번째 숙영지로서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를 비난했던 장소였다(12:16, 신 1:1). 11:35 주석 참조.

 

33:18 릿마. 카일(Keil)은 이곳 ‘릿마’를 이스라엘이 처음 도착했던 ‘가데스’와 동일 지명으로 이해한다. 이에 대한 근거로 그는 12:16에 이스라엘이 ‘하세롯’을 떠난 후 바로 바란 광야에 진 쳤다는 사실과, 또한 그 다음에 곧바로 가데스의 정탐꾼 사건이 나오는 것을 들고 있다(13장). 아울러 그는 고고학적으로도 이곳 릿마를 오늘날의 아부-레테맛 계곡(Wady Abu-Retemat)으로 보고, 숙영지로서는 매우 좋은 곳이라 주장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황을 종합하면, 당시 ‘하세롯’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릿마’에 진쳤으나, 그곳은 200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연히 ‘가데스’까지 백성들의 진영이 퍼져나갔던 것으로 본다(Keil & Delitzsch, Vol. I-iii. pp. 242-244). 그리고 정탐꾼 사건은 이곳 가데스에서 일어났으므로, 이후로는 가데스란 지명으로 더욱 알려진 듯하다.

 

33:19 19-36절. 본문은 릿마에서 두번 째 가데스에 이르기까지의 숙영지들을 열거하고 있는데, 그중에 에시온게벨 이외에는 모두 그 위치가 불명확하다. 그러나 본문에 언급된 지명들은 출애굽 제2년 이스라엘이 가데스(릿마)에서 아카바 만 방향으로 난 길을 통하여 광야로 진입했고, 그 이후 출애굽 제40년 두번 째로 가데스에 진입할 때까지(20:1)의 긴 시간 동안 숙영했던 곳임을 알 수 있다.

 

33:20 립나. ‘흰색’이란 뜻의 지명으로서 아마 신 1:1에 언급된 ‘라반’과 동일한 곳으로 추정된다(Pulpit Commentary).

 

33:21 없음.

 

33:22 없음.

 

33:23 없음.

 

33:24 없음.

 

33:25 없음.

 

33:26 없음.

 

33:27 없음.

 

33:28 없음.

 

33:29 하스모나. 이곳의 다른 이름을 ‘헤스몬’이라 추정하기도 한다(수 15:27).

 

33:30 30-33절. 여기 언급된 여정동안 이스라엘 초대 제사장 아론이 죽었고(모세롯), 그의 아들 엘르아살이 그 직임을 계승하게 된다(20:23-29, 신 10:6-9).

모세롯. 이는 ‘모세라’의 복수형 지명이다(신 10:6). 이곳에 숙영지를 마련한 후 아론은 모세라 곁에 있는 호르 산상에서 최후를 맞게 된다. 그 때가 출애굽 제40년 5월 1일이다. 따라서 이곳에 숙영한 때는 확실히 광야 40년 중 마지막 기간임을 알 수 있다.

 

33:31 브네야아간. ‘야아간의 아들들’이란 뜻이다. 이곳은 가데스 동북쪽 약 18 km 지점에 위치했으며 ‘브에롯 브네야아간’이란 별칭도 지니고 있다(신 10:6). 한편 여기서 ‘야아간’ 혈족은 호리 족속 중 한 분파인 ‘아간 가족’을 가리킨다(창 36:27, 대상 1:42).

 

33:32 홀하깃갓. ‘깃갓에 있는 구멍’이란 뜻으로 신 10:7에 나와 있는 ‘굿고다’와 동일 장소로 보인다.

 

33:33 욧바다. ‘강이 많다’는 뜻으로(신 10:7), 이곳에 와디(Wadi)나 샘이 많았음을 암시한다.

 

33:34 없음.

 

33:35 에시온게벨. 이곳은 아카바 만(엘랏 만) 북쪽에 위치한 유명한 항구 도시이다. 이곳에는 솔로몬이 건축한 제련소가 있었으며 솔로몬 당시 오빌과의 해상 무역로로서도 큰 역할을 했다(왕상 9:26, 22:48).

 

33:36 신 광야 곧 가데스에 진 치고. 이곳을 출 16:1의 신 광야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개역개정판 성경에서는 출 16:1과 본 절에서 이 광야 이름을 똑 같이 ‘신’ 광야로 번역하였지만, 원어는 출 16:1의 광야는 ‘신’, 본 절의 광야는 ‘친’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영어성경은 각각 ‘Sin’과 ‘Zin’으로 번역하였고, 바른 성경은 각각 ‘신’과 ‘친’으로 번역하여 구분을 확실히 하고 있다.

본 절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면 숙영지 ‘에시온게벨’ 이후 가데스에 이르는 동안 이스라엘은 한 번도 짐을 풀어 장막을 쳐보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대해 카일(Keil)은 두 곳 사이의 거리가 보통 사람이면 걸어서 10-14일 걸리는 짧은 거리였기에 그냥 노숙(露宿, camping out)했다고 주장한다. 더나아가 에시온게벨에 이르러 마침내 하나님의 징계로 인한 광야 방황이 모두 종결되었고, 따라서 더 이상 광야의 천막 생활이 필요없었기 때문에 숙영지를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이해한다.

 

33:37 호르 산. 이곳의 위치는 명확치 않으나 가데스 근처, 에돔 변경으로 추정된다(20:22 주석). 이곳에서 아론이 죽었다. 기타 이 산과 연관 있는 사건에 대해서는 20:23, 21:4, 34:7-8을 참조하라.

 

33:38 38-40절. 본문에는 이스라엘의 초대 대제사장 아론의 죽음과 가나안 원주민으로서 이스라엘에 대항했던 아랏 왕에 대해 기록되었다.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20:22-29 및 21:1-3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33:39 없음.

 

33:40 없음.

 

33:41 41-49절. 이곳에는 이스라엘이 호르 산을 출발하여 가나안 진군을 위한 전초 기지로 삼았던 모압 평지에 이르는 동안의 숙영지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곳의 지명은 대부분 20, 21장의 지명과 일치한다.

살모나. 혹자(Raumer)는 이곳을 오늘날 ‘마안’ 지역으로 보기도 하나 확실치 않다. 그리고 이 지명은 이곳 외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33:42 부논. 이곳은 옛날 에돔의 ‘비논’ 지역과 동일한 곳으로 보이는 데(창 36:41), 학자들에 의하면 이 지역은 죄수들이 보내지는 유배지로서 광산 지역이었다고 한다(Jerome, Jusebius). 오늘날 이곳은 페트라(Petra)와 소알(Zoar)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33:43 오봇. 21:10 주석을 참조하라.

 

33:44 이예아바림. 21:11 주석을 참조하라.

 

33:45 디본갓. 여기서 앞서 언급된(21:30) ‘디본’과 동일 지명인 듯한데, 이곳은 아르논 북쪽 몇 마일 지점에 있다. B.C. 835년 경에 발굴된 메사 비문에 의하면 후일 이곳은 모압의 수도가 된 곳이다(Wycliffe).

 

33:46 알몬디블라다임 이곳은 다른 이름으로 ‘벧디불라다임’이라고도 한다(렘 48:22).

 

33:47 느보 앞 아바림 산. 모압평지에 위치한 큰 산맥으로써, 이 산맥의 유명한 봉우리들로 비스가, 느보 등이 있다(21:20, 27:12).

 

33:48 모압 평지. 22:1 주석 참조.

 

33:49 벧여시못. ‘사막의 집’이란 뜻을 지닌 모압의 유명한 성읍으로(겔 25:9), 비스가 산 근처 사해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이 성읍의 남서쪽은 시혼 왕국과 경계를 형성하고 있다. 후일 르우벤 자손에게 분배된 곳이다(수 12:3, 13:20).

아벨싯딤. 이곳은 모압 평지에 위치했으며 이스라엘이 최후로 진(陣)을 쳤던 장소이다(수 3:1). 그리고 ‘아카시아 나무의 목초지’란 뜻을 지니고 있다. 이곳에서 이스라엘은 바알브올을 섬겼으며(25장), 여리고 성 정탐꾼을 파견하기도 했다(수 2:1). 오늘날 이곳은 요단 강 하류에서 동쪽으로 약 10 km 지점에 위치한 현재의 ‘텔엘 케프레인’(Tell el-Kefrein)으로 추정된다.

 

33:50 50-56절. 이 부분은 34-36장의 서론격으로서 가나안 정착시에 이스라엘이 취할 자세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즉 그들은 가나안을 정복할 때 그곳의 우상 및 우상에 물든 족속들을 완전히 몰아냄으로써 가나안 땅을 여호와께서 주신 거룩한 기업으로 삼아야 했다. 그리고 그 땅을 나눌 때 서로의 욕심을 버리고 제비를 뽑아 분배해야 했다. 이는 그 땅을 공평히 나누는 방법인 동시에 그 땅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상앙적 태도였다.

여리고. 요단 강 서쪽 약 8 km 지점에 위치한 큰 성읍으로, 이스라엘이 취한 최초의 가나안 정복지였다(수 6장).

 

33:51 요단 강을 건너 … 들어가거든. 요단 강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의 동쪽 경계를 이룬다(34:10). 후에 이스라엘이 요단 강을 건널 때 마치 출애굽 직후 홍해를 건널 때와 마찬가지로 강이 육지가 되는 기적 속에서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수 3:14-17). 이처럼 출애굽 후 광야 생활의 처음과 끝에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큰 능력을 힘입어 물을 순탄히 건넌 것은 곧 이스라엘의 해방과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에 달렸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33:52 다 몰아내고. 여기서 ‘몰아내고’(히, 호라쉐템)란 ‘기존 소유주를 몰아내고 대신 점유하다’, ‘추방하다’, ‘파괴하다’는 뜻의 ‘야라쉬’에서 유래한 말로서, 가나안 원주민들을 철저히 분쇄하고 그 땅에서 완전히 축출한 다음 차지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사실 가나안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에게 기업으로 주시고, 당신의 나라를 건설하시고자 하신 거룩한 곳이기 때문에 우상과 죄악에 빠진 무리들을 용납할 수 없었다. 즉 이스라엘이 수행하는 가나안 정복 전쟁은 수탈을 목적한 것이 아니라, 종교적 성결의 한 과정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여호와 앞에서 무거운 책임 의식을 갖고 원주민들을 철저히 몰아내어야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들은 그 일을 온전히 실현하지 못함으로써(수 9:21), 그로 인해 훗날 수 많은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55, 56절).

새긴 석상과 부어 만든 우상. ‘새긴 석상’(히, 마스키트)은 문자적으로 돌, 벽 또는 어떤 물체에 ‘새겨진 형상(우상)들’(Carved images, NIV)이란 뜻이다. 즉 이 말은 가나안 원주민들이 섬기던 돌로 만든 우상(레 26:1)을 가리킨다. 그리고 ‘부어 만든 우상’(히, 찰메 맛세코트)이란 직역하면 ‘덮어 씌워 만든 우상들’(molten images, NIV)이란 뜻이다. 즉 나무나 흙 등으로 우상들의 모양을 만든 다음 그 위에 금속을 녹여 부워 만든 것을 가리킨다(레 26:1 주석).

깨뜨리며. 이 말의 히브리어 ‘이바드템’은 ‘부수다’, ‘멸망시키다’란 뜻의 ‘아바드’의 강의형(Piel)으로서 곧 철두철미 파괴시켜 그 존재를 없애버리라는 뜻이다.

산당을 다 헐고. 여기서 ‘산당’(히, 바모탐)은 ‘높은 곳’이란 의미의 ‘바마’에서 유래하였다. 따라서 흔히 이 말은 ‘고지’(high place)라고 번역되기도 하나 대부분 ‘신전’(temple)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왜냐하면 고대 팔레스타인 지역의 우상숭배자들은 산과 같이 지상으로부터 높은 곳에 신전을 세워두고 각종 제사 의식을 집행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국 그런 곳은 종교적으로 구별된 특별 장소로 인식되었다. 여호와께서는 이러한 이방의 산당을 가증히 여기시고 우상과 더불어 부숴버릴 것을 엄명하셨다(레 26:30).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일 중앙 성소 제도를 명하신 것도 바로 이러한 신앙의 난립을 철저히 방지하기 위함이었다(신 12:5, 11).

 

33:53 점령하여. 이 말은 원어상 52절의 ‘몰아내고’란 말과 동일하다. 즉 패역한 원주민을 깨끗이 쓸어내고 그 땅을 얻으라는 뜻이다.

너희 소유로. 여기서 ‘소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레쉐트’ 역시 52절의 ‘몰아내고’란 말과 동일 어근으로서 ‘정복하여 점유한 것’, 또는 ‘하나님으로부터 물려 받은 재산’ 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이스라엘이 차지한 가나안 땅은 결코 그들의 노력에 의해 탈취한 점령지가 아니라, 오래 전부터 그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며(창 15:18-21), 결국 그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신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이었다.

 

33:54 제비 뽑아 나눌 것. 이스라엘이 얻게 될 가나안 땅은 각 지파의 수효에 따라 그 넓이가 결정되었으며, 제비로서 그 땅 위치가 정해졌다. 이같은 명령은 이미 구체적으로 지시된 바 26:52-56의 반복이다.

조상의 지파를 따라. 이는 곧 가나안 땅은 12지파와 각 지파 자손들의 가족 단위로 땅이 분배될 것을 뜻한다(26:55).

 

33:55 너희의 눈에 가시. ‘가시’의 히브리어 ‘레쉬킴’은 복수형으로서 ‘가시들’(thorns)을 의미한다. 신체 중 가장 예민한 부분인 눈에 여러 개의 가시가 들어갔을 때 그 당할 고통은 대단한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가나안 원주민들을 그 땅에서 완전히 축출시키지 못한다면 이와 같은 어려움을 당할 것이라는 이 우려섞인 예언은 훗날 그대로 성취되고 만다. 즉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몇몇 원주민들에게 관용 정책을 베풂으로써 사사 시대 및 왕정 초기에 계속 생존한 원주민들로부터 고통을 당했다. 더욱이 원주민들의 우상을 수용하기까지 하여 끝내 앗수르와 바벨론의 포로가 되는 비운을 맞아야 했다. 이처럼 하나님의 명령은 절대적인 것으로, 그 명령을 거역하는 자에게는 뼈저린 고통만이 따를 뿐이다.

옆구리에 찌르는 것. ‘찌르는 것’(히, 리츠니님)이란 ‘갈구리들’(hooks)을 가리킨다. 이는 ‘예리하게 하다’, ‘차갑게 하다’ 등의 뜻인 히브리어 ‘차난’에서 유래한 말로서, 신체에 큰 상처를 입힐만한 흉기를 지칭한다. 한편 이처럼 위협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본 절의 요지는 가나안 원주민을 그 땅에서 완전히 몰아내어 그들의 죄악된 각종 문화와 우상을 제거함으로써, 이스라엘로 하여금 가증한 우상 숭배 등의 죄악에 물들지 않고 온전히 여호와만 섬기게 하기 위한 조치라 할 수 있다.

 

33:56 나는 … 너희에게 행하리라. 이는 강력한 경고의 끝맺음 말로써 곧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원주민을 몰아내지 않을 경우 오히려 그들이 당할 엄벌을 천명한 것이다. 즉 하나님은 스스로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심판받아 마땅한 가나안 원주민들에게 파멸과 축출을 계획하셨는데(창 15:16), 만약 이스라엘이 당신의 이러한 뜻을 거역한다면, 그 심판의 화살을 이스라엘에게 돌려 가나안 땅에서 그들을 쫓아내시고 파멸시킬 것이었다. 이 경고의 메시지는 훗날 여호수아를 통해 또 한번 전달되지만(수 23:13), 이스라엘은 기어코 이 경고를 무시함으로써 훗날 쓰라린 역사를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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