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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 1-4절. 본문은 성막(tabernacle)의 성소(the Holy Place) 내에 위치했던 등잔대(lampstand)의 등잔불에 관한 규례이다. 성소 안에는 분향단 및 진설병상(떡상)과 더불어 등잔대가 있었는데, 그 등잔대에는 7개의 등잔이 있었고, 그 등잔은 언제나 불이 켜져 있어야 했다.

 

24:2 감람.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많이 자생하던 기름용 나무로 제사장, 왕, 선지자 등의 임명시 사용되는 순결한 기름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일에 소용되는 관유(8:2) 등을 만들때 주로 사용되었다.

순결한 기름. 여기서 ‘순결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자크’는 ‘투명한’(transparent) 혹은 ‘빛나는’(bright)이란 뜻이다. 곧 이것은 다른 이물질(異物質)이 전혀 섞이지 않은 순수하고 깨끗한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일상 생활에서 흔히 사용되는 기름은, 감람 나무의 열매, 잎, 가지 등을 함께 으깨서 만든 반면, 하나님을 섬기는데 사용된 순수한 기름은 오직 감람 열매만을 부수어서 짜낸 순결한 기름이었다(출 27:20).

계속해서 등잔불을 켜 둘지며. 이것은 일차적으로 제사장이 성소 안에서 제사 활동을 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하고 또한 하나님의 성소를 빛 가운데 보존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계속해서 불을 켜라는 명령은 하루 24시간 계속 불을 켜 두라는 뜻이 아니라, 매일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저녁 무렵 불을 켠 후 다음날 아침까지 그 불을 꺼뜨리지 말고 잘 관리하라는 의미이다(출 27:20-21). 한편 빛은 영적으로 복음을 상징하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 행동이 계속되고 있음을 나타내며, 성도들이 복음의 진리를 밝히는 등잔대 구실을 하여야 함을 암시해 준다(마 5:14-16).

 

24:3 회막안 증거궤 휘장 밖. 성소(the holy place)와 지성소(the Holy of Holies)로 이루어진 성막 본체(tabernacle) 중 성소 부분을 가리킨다. 이곳에는 불을 켜는 등잔대 외에도 분향단, 진설병을 놓은 떡상이 있었다.

저녁부터 아침까지. 이것은 성소에 등잔불을 밝혀두어야 할 시간을 규정한 것으로, 대략 히브리 사회에서 하루가 시작되는 시각인 오후 6시부터 이튿날 아침 6시까지를 의미한다. 한편 이 어두운 시간에 등잔불을 밝힌 것은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두운 이땅에 오셔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음의 빛을 비추신 것을 상징한다(요 1:9).

 

24:4 순결한 등잔대. ‘순결한’에 해당하는 ‘테호라’는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의 뜻으로 곧 등잔대가 순수한 정금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출 25:31). 한편 등잔대의 완전한 순결성은 하나님의 절대 순결하신 속성을 보여 주는 동시에, 복음의 순수성 앞에서는 어떠한 가식이나 위선도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등잔들을 … 정리할지니라. 여기서 ‘정리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라크’는 ‘질서대로 놓다’, ‘간검(看檢)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것은 매일 저녁 등잔불을 켜기 위해 등잔에 기름을 채우고, 또한 불이 적당히 잘 타오르도록 심지를 조절하는 등 등잔불을 켜고 끄는 일을 잘 보살펴 전혀 하자가 없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24:5 고운 가루. 밀을 곱게 빻은 이 밀가루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활을 통해 획득한 땀의 결정체이다. 따라서 이것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온전한 헌신을 상징한다.

떡 열두 개.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가리킨다. 나아가 이것은 하나님의 영적 이스라엘, 곧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의 후손된 성도들을 상징한다(갈 3:7).

십분의 이 에바. 에바(Ephah)는 히브리 사회에서 통용되던 고체의 부피 단위로, 한 에바는 23리터이다. 따라서 십분의 이 에바는 4.6리터에 해당한다.

 

24:6 순결한 상. 곧 성소 안에 있는 떡상을 의미한다. 이 상(床)은 조각목으로 만든 후 순결한 정금으로 덧입혔다(출 25:23-30).

두 줄로 한 줄에 여섯씩.. 이것은 마치 대제사장의 견대 둘에 각각 여섯 지파의 이름을 각기 새겨 넣었던 것과 같다(출 28:10). 이때 그 배열은 각 지파의 나이 순서대로 나열했을 것이다.

 

24:7 정결한 유향. ‘유향’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레보나’는 ‘희게 하다’, ‘정결케 하다’는 뜻의 ‘라반’에서 파생된 말이다. 유향은 유향 나무에서 나는 천연 고무로 만든 하얀 색의 향기로운 향료였다. 이 유향은 금으로 만든 접시에 담겨져 두 줄로 배열된 진설병 위에 놓여 있었는데, 이는 진설병이 아름답고 향기 나는 정결한 상태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을 상징한다.

기념물로 … 화제를 삼을 것이며. ‘기념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즈카라’는 기념제(記念祭, memorial offering)란 뜻으로 곧 여호와께서 기억하시도록 드리는 제물을 의미한다(2:9). 따라서 유향을 기념물로 취해 화제를 삼는다는 말은 실제 예물인 진설병 대신 유향을 한 줌 취하여 단 위에서 불태워 드림으로써, 그 진설병이 여호와께 향기나는 제물이 되게 한다는 의미이다.

 

24:8 안식일마다 … 진설할지니. 한번 드려진 진설병은 일주일 동안 여호와 앞에 진설되었으며, 그리고 일주일 동안 진설되었던 그 떡을 교체할 때는 미리 새로운 떡을 준비한 후 제사장이 이를 성소에 가지고 들어가 그 떡을 내려 놓음과 동시에 새로운 떡을 올려 놓았다. 따라서 떡 상 위에는 항상 진설병이 놓여 있었다.

영원한 언약. 이스라엘 백성이 끊임없이 진설병을 떡상 위에 올려 놓는 행위는 성소 규례가 지속되는 한 영원히 지켜야 할 규례로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어진 영원한 언약 관계를 나타내는 표(sign)가 되었다. 한편 본 규례는 가장 일반적이고 구하기 쉬운 제물을 통하여 언약의 백성을 향한 당신의 구속 계획을 확증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잘 보여준다.

 

24:9 이 떡은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리고. 여호와 앞에 진설했던 떡은 제사장과 그 가족의 몫으로 돌려졌다. 따라서 이것은 그들의 생계를 위한 음식이 되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역자들에게 필요한 의식주를 책임져 주신다는 사실을 교훈적으로 보여 준다. 이처럼 진설병은 제사장과 그 가족들만 먹을 수 있었는데, 예외적인 경우로는 도망 중이던 다윗이 굶주린 자기 부하들에게 진설병을 주어 먹도록 한 사실을 들 수 있다(삼상 21:1-6). 그런데 이 사건은 후일 안식일에 시장하여 밀 이삭을 잘라먹은 예수의 제자들을 향하여 바리새인들이 비난할 때 예수께서 실례로 든 사건으로서, 복음의 참정신을 설명하는데 적용되고 있다(마 12:1-8). 여기서 우리는 율법의 참된 정신은 처벌이나 정죄가 아니라 자비와 긍휼임을 깨달을 수 있다.

지극히 거룩함이니라. 2:3 주석 참조.

 

24:10 그의 아버지는 애굽 사람인 어떤 사람.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 그들은 애굽인과 통혼한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 중 일부가 출애굽 할 때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 나왔는데(출 12:38), 이들은 때때로 하나님의 규례를 범하는 등(민 11:1, 4) 여러가지 사회 문제를 야기시켰다. 한편 구약성경이 이방인과의 접촉을 금한 이유는 당시 이방 사람들의 종교관으로 볼 때에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고결한 도덕적 행동을 요구하는 여호와 신앙은 인간의 육체적 본능을 자극하는 이방 종교와 절대 혼합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진영 중에서 싸우다가. 싸움의 원인에 대하여는 성경이 침묵하고 있으므로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전승을 빌어 추측해 보면 다음과 같다. 즉 당시 타국인의 장막터는 순수 이스라엘 혈통을 가진 자들의 장막터와는 약간 떨어져 있었다고 한다(Keil). 따라서 당시 부계(父系)를 따라야 하는 관례상 이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도 타국인의 장막터에다 자기 장막을 쳐야 했는데, 그는 자기 어머니의 권한을 억지 주장하면서 단 지파 영역에다 장막을 치려 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단 지파 사람들에 의해 거부되었고, 이에 그는 단 지파 사람의 어떤 자와 격렬하게 싸우던 중 마침내 여호와의 이름까지 모독했다는 것이다(Matthew Henry’s Commentary, Vol.I. p.543).

 

24:11 이스라엘 여인의 아들. 엄격한 가부장 제도를 가지고 있어 어머니 계통을 따라서 사람의 이름이 소개된 예가 거의 없는 히브리 사회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는 여인의 아들로 소개되고 있다. 그것은 그가 이스라엘 여인과 이방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였기 때문에, 혈통과 신앙의 순수성을 중요시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관례에 따라 여인의 아들이라고 언급된 것이다.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며 저주하므로. ‘여호와’는 ‘지존자’ 혹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란 뜻으로서 이 이름의 진정한 의미는 출애굽 상황에서 모세를 통하여 계시되었다(출 3:14-15). 특별히 원문에는 ‘여호와의 이름’ 대신 ‘그 이름’(히, 하솸)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것은 인간이 감히 여호와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을 불경스러운 일로 여겨 삼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여호와란 성호 대신 ‘주’(主, Lord)란 뜻의 ‘아도나이’란 명칭을 사용하였다(출 3:14).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을 대표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을 저주한 것은 하나님 자신을 모독한 행위이며 마귀적인 소행으로서 당시 사회에서는 죽음의 형벌에 해당했다. 한편, 여기서 ‘모독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카브’는 ‘찌르다’, ‘꿰뚫다’란 뜻인데 이것은 어떤 것을 형편없이 망가뜨리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슬로밋. 이름의 뜻은 ‘평화로움’, 평화가 충만하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여인은 애굽에 있을 때 애굽인과 결혼함으로써 동족들보다는 이방인과 연합하는 잘못을 범했다. 또한 이 여인은 자녀에게 신앙 교육을 잘못 시킴으로써 아들의 비극을 불러 일으켰다.

 

24:12 여호와의 명령을 기다리더니. 이스라엘은 당시 신정 국가(神政國家)로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 하에 있었기 때문에, 신성 모독죄에 대한 처벌 역시 여호와의 뜻을 물어 시행하였다. 이것은 인간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보여 주는 동시에 하나님만이 절대 공의로운 심판을 하실 수 있음을 교훈해 준다.

 

24:13 여호와께서 … 이르시되. 이스라엘의 최고 통치자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판결을 내리시는 장면이다.

 

24:14 진영 밖으로 끌어내어. 신성 모독자를 진영 밖으로 끌어내어 처형한 것은 그가 이스라엘 공동체로부터 축출되는 것을 상징하는 동시에 또한 그 신성 모독자의 부정한 피로 이스라엘 진을 더럽히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손을 그의 머리에 얹게 하고 . 증인들 모두가 훼방자의 머리에 안수한 것은 증언 자체가 진실임을 증거하고, 또한 증인들이 들었던 여호와에 대한 모독과 저주의 말을 자신들로부터 모독자 자신에게 전가시키기 위함이었다.

손을 얹는 것의 의미를 좀더 자세하게 설명한다. 히브리어 ‘야드사막 알’은 희생제물 위에 ‘손을 세게 누름’을 의미한다. 그 표현은 제의(祭儀)에 주로 사용되었고, 제의와 무관한 표현으로도 사용되었다. 손을 얹는 행위가 소유권을 의미한다는 사상은 실제로 아무 연관이 없다. 의식을 행할 때 죄인은 다름 아닌 자기 소유의 동물을 끌고 오기 때문이다. 의식은 그것을 포함하는 더 큰 의식의 배경과 목적에 따라 전달하는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1. 희생제물이 아닌 사례. 첫 번째 사례가 레위기 24장 14절에 나타난다. 누군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했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들은 그를 돌로 치기 전에 그 사람 위에 손을 얹는다. 그 의식의 의미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증인인 그들이 형을 집행하기에 앞서 죄를 규명한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레위기 5장 1절에 따르면 신성 모독을 들은 사람은 자신의 목숨이 위험에 처하는 죄 된 행위에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신성모독적인 발언을 한 사람에 맞서 증언하지 않는다면 그들도 죄를 짓는 것이다(레 24:15).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가만히 있을 경우 그들에게 임할 죄책을 상징적으로 그 사람에게 전가하는 셈이다. 여호수아의 취임식 때, 모세는 “[모세의] 권위를 그에게 돌리기 위해”(민 27:20, NIV) 그에게 손을 얹었다. 이런 경우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모세를 대신할 것이기 때문에 ‘대신’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민수기 8장 10절에서는 레위인이 성소 직무를 위해 구별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에게 손을 얹는다. 성막에서 그들은 이스라엘 장자들 대신 여호와를 섬기기 위해 그분에 의해 선택되었다(민 3:12). 우리는 여기서 ‘책임의 전가’와 ‘대신’이라는 개념을 발견한다. 결론적으로 몇 가지 사상이 의식에 표현된다. 즉 주체와 객체 사이에 관계가 형성된다(증인과 고소당한 자 사이, 지도자·후계자와 그 대리자 사이, 장자와 그 대리자 사이). 한쪽에서 다른쪽으로 무언가가 전가된다. 그리고 몇 경우에 ‘대신’의 개념이 나타난다.

2. 제의적 사례. 손을 얹는 일은 번제(레 1:4), 화목제(3:2), 속죄제(4:4, 15, 33) 그리고 가장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속건제를 실시할 때 요구되었다(7:7). 그것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위한 안수식의 일부였다(8:14, 18, 22). 두 손이 항상 사용되었는지는 논란이 있다. 주체가 복수일 때, 복수의 손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주체가 단수일 때 한 손이 사용되었다. 여기서 그 의미를 알 수는 없지만, 대속죄일에 광야로 보내는 염소에 대해서는 그 의미가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16:21). 아론은 두 손을 사용했고 이스라엘의 죄를 고백하여 그 살아 있는 염소에게 그것들을 전가하였다. 이 경우에 전가의 사상이 분명하게 표현되지만 대속은 아니다. 또 그 의미가 희생제물에 손을 얹는 일에 적용되는지도 분명하지는 않다.

3. 의식의 의미. 한 가지 의미 즉 전가가 압도적인 듯하다. 이것이 희생제물의 경우에도 해당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논리적인 것 같다. 몇 가지 논증이 이 제안을 지지한다. 첫째, 모든 희생제물은 그것을 통해 죄가 제거되는 것을 함축하는 속죄의 기능을 가진다. 둘째, 죄인들은 자기의 죄/부정을 진 채 성소에 오지만(5:1) 이것은 용서(10절)와 정결(12:8, 14:19)을 이룬다. 그렇게 함으로 죄/부정은 죄인들을 그 짐에서 구원해 주는(사 53:6, 11, 12) 속죄 희생을 통해 제거된다. 우리는 심지어 하나님(출 34:7) 혹은 제사장이 백성의 죄를 담당한다(레 10:17, 출 28:38)는 말을 듣는다. 셋째, 죄/부정은 성소에서 매년 한 차례 제거되었으며, 이것은 어떤 형태로든지 백성들의 죄/부정이 그곳으로 전가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죄가 죄인에게서 희생제물을 거쳐 성소로 전가된 것은 손을 얹는 행위를 통해서였다. 대속의 사상 또한 손을 얹는 행위에서 나타나는 듯하다. 의식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제물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제물을 가져온 사람도 받아들이는 것으로 볼 수 있다(1:4, 7:18). 한 사람의 경험이 다른 사람의 경험이 된다

 

24:15 하나님을 저주하면. ‘저주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칼랄’은 ‘가볍게 여기다’, ‘경멸하다’, ‘악을 초래하다’는 뜻으로 곧 여호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고 악한 마음으로 그 성호를 조롱하거나 적대한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자기 하나님을 저주하는 자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무시하고, 파기하는 자였기 때문에 하나님에 의해 정죄받을 수 밖에 없었다.

죄를 담당할 것이요. 단순히 범죄자로 낙인 찍히는 차원을 넘어, 그 죄로 말미암아 형벌을 받아 죽음에 이르는 것을 뜻한다.

 

24:16 여호와의 성호(聖號)를 모독하는 자에 대한 처벌 규정을 재삼 강조함으로써 경각심을 고취시키는 내용이다.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니라. 이처럼 공개적인 처형법을 택한 것은 신성 모독죄가 얼마나 큰 범죄인가를 보여 주고,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죄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시키며, 나아가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의 연대 책임성을 일깨우기 위함이었다.

거류민. [히, 게르] 순수 이스라엘 혈통은 아니지만 이스라엘 사회에 거주하면서 그 공동체의 종교와 문화에 동화된 외국인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들은 여행객이나 외국의 거래인들과 같은 순수 외국인과는 구별되는 존재로, 율법은 이들에게도 본토 이스라엘인과 동등한 권리 및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모독하면. 기본 동사 ‘나카브’는 ‘찌르다’(puncture), ‘구멍을 뚫다’(perforate), ‘세게 치다’(strike) 등의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모독한다는 것은 어떤 고귀한 것을 망가뜨린다는 뜻이다.

 

24:17 본 절은 살인한 자에 대한 처벌 규정이다. 이처럼 살인자를 사형에 처한 것은 살인 행위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고귀한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이며, 따라서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는 범죄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생명을 천하보다 존귀하게 보시는 하나님의 생명에 대한 주권과 아울러 이웃에 대한 사랑에의 의무를 깨달을 수 있다. 출 20:13 주석 참조.

 

24:18 본 절은 짐승을 죽였을 경우의 보상 규례이다. 이것은 한 개인의 재산권을 보장하기 위한 규정으로, 곧 사유 재산권의 보장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이 사유 재산권은 이스라엘 공동체 내의 사랑과 자비 및 긍휼의 정신이 전제된 것으로, 축적이나 치부가 목적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가난하고 일할 능력이 없는 자를 위한 공동체적 책임 의식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이다.

 

24:19 이 부분은 하나님의 공의(公義)의 원칙이 분명하게 드러난 부분이다. 하나님은 자비 중에라도 공의의 원칙을 잊지 않으시고 반드시 시행하시는 분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하나님의 공의는 최후의 심판 때 마침내 완성될 것이다.

상해를 입혔으면. 이 말은 ‘주다’(give), ‘두다’(put)란 뜻의 ‘나탄’과 ‘흠집’(blemish), ‘얼룩’(stain)이란 뜻의 ‘뭄’이 합성된 말로, 곧 상대방에게 어떤 타격을 주어 상처를 입히는 행위를 말한다.

 

24:20 상처.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쉐베르’는 ‘터지다’, ‘깨지다’란 뜻의 ‘샤바르’에서 유래한 말로, 신체 상에 입은 모든 외상(外傷)을 총칭한다.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동해 보복법의 구체적인 내용이다. 자세한 내용은 출 21:24-25 주석을 참조하라.

 

24:21 없음.

 

24:22 거류민. [히, 게르] 순수한 이방인 또는 외국인을 뜻하는 ‘노크리’와는 달리 혈통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은 아니지만 이스라엘 공동체 속에 함께 살면서 이스라엘의 문화, 종교, 풍습 등에 동화된 이방인을 가리킨다.

그 법을 동일하게 할 것. 하나님의 심판 원칙을 잘 보여 준다. 즉 하나님은 절대 공의로우신 분으로 그분의 심판은 이스라엘인이든 이방인이든 관계없이 절대 공의(公義) 하에서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것은 훗날 불의에는 불의에 상응하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과 의에는 의에 해당하는 하나님의 생명의 심판이 있을 것임을 암시해 준다.

 

24:23 돌로 쳤더라. 우상 숭배자나 신성모독자와 같이 여호와 신앙으로 뭉친 공동체를 파괴하려고 한 자에 대하여는 이처럼 ‘돌로 쳐죽이는 처형법’이 채택되었다. 그 이유는 공개적이고도 공동적인 사형 집행을 통해 나머지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켜 같은 악의 재발을 방지코자 했기 때문이요, 또한 공동체의 순수성 보존을 위해서는 그것을 저해하는 악의 요소는 그 공동체로부터 단호히 제거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려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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