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이사야 5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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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1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 - 본 이미지가 의미하는 바에 대한 견해는 여럿이 있으나 바벨론 포로 시대에 그 숫자가 적었던 이스라엘의 남은 자로 보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 특히 이어지는 3절에서는 이방인 성도가 이들에게 포함될 것을 암시하는 내용이 나온다는 점에서, 바야흐로 메시야 시대의 영적 이스라엘에 관한 비전이 강력히 제시된다. 홀로 된 ... 많음이니라 - 과부의 지식이 남편 있는 여인의 자식보다 그 숫자가 많겠다는 이 표현은 앞에 언급된 남은 자의 후손은 그 숫자가 일반의 이해를 넘어서는 수준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해준다. 물론 이 사실의 성취는 이방인의회심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앞장에서 메시야의 구속 사역을 묘사한 저자는 그 사역이 낳을 결과의 첫 번째 것으로 믿는 자의 수가 이스라에의 남은 자를 근거로 늘어날 것을 바라다보고 있다.

=====54:2
휘장( , 아할레크) - 일반적으로 이 용어는 침대나 창문 주위에 혹은 관객들로부터 무대를 숨기기 위하여 극장 객석과 무대 사이에 내리우는 천을 가리킬 때 쓰인다. 그러나 여기서는 거주용 천막을 의미한다. 이 천막은 일정 거주자의 거주 영역을 암시하는데, 여기서 그 영역을 확대한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예언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방 세계에서 돌아노는 개심자의 행렬을 수용하기 위하여 교회의 영역이 매우 넓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이 표현은 새로운 개심자들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할 뿐 아니라 그 각각의 구성원의 믿음도 더 강해진다는 것을 동시에 암시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54:3
좌우로 퍼지며 - 이것은 동서남북 그 어느 방향을 가릴 것없이 폭발적으로 퍼지는 것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퍼지며'( , 파라츠)의 원문적 의미는 '터지듯 번성하며'이다. 물론 이는 영토의 확장 혹은 단순한 인구의 폭발이 아니라 영적 이스라엘 수의 증가를 가리킨다.
황폐한 성읍들 - 1차적으로는 남북 왕국의 멸망 이후에 근방 민족들의 불법 이주로 훼손되었던 팔레스틴 땅을 가리킨다. 그러나 2차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가리킨다(J. Watts).

=====54:4
청년 때의 수치를 잊겠고 - '청년 때의 수치'란 애굽 치하의 시대 혹은 앗수르 및 바벨론의 포로 시대와 같은 특정한 시대를 가리킨다기보다는 이스라엘 역사의 시작으로부터 당시에 이르기까지 신실치 못한 아내와 같았던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대한 반역의 역사 전체를 가르틴다고 봄이 나을 것 같다. 장차 이스라엘이 마주할 백성의 중다함과 그 영광의 찬란함은 그 수욕의 역사를 잊을 만한 정도라는 것이 본 구절의 의미이다. 물론 이 구절의 완성은 주의 재림 때 이루어질 것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후 이스라엘은 그 역사 속에서 몇 차례 외적의 침입 및 그로 인한 영광의 함몰을 재차 겪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과부 때의 치욕 -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짐에 따른 결과, 예컨대 이 민족의 침탈과 유린 등을 가리킨다(렘 3:24,25;31:19;호 2:2-5 참조).

=====54:5
이는 ... 남편이시라 - 여기 '남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형 '바알'( )은 그 문자적인 뜻은 '주인', '제조자', '통치자', '소유자' 등이다. 그러나 이 용어는 흔히 '남편'을 뜻하기도 하는데(신 21:13;24:1;말 2:11), 여기서는 바로 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 하나님을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그처럼 크고 세심하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의 상태는 흔히 간음으로 묘사되며(대하 21:11;겔 6:9;호 4:12), 신약 시대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로 묘사된다(요 3:29;엡 5:23,24;계 21:9).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 -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제 혈통적 이스라엘뿐 아니라 세상 모든 백성에게도 그들을 통치하는 참하나님으로 인정받으실 것을 예언하는 말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 예언은 하나님이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신다는 사실이 본격적으로 전파될 시대를 겨냥한 표현이다 :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뿐이시뇨 또 이방의 하나님은 아니시뇨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롬 3:29). 이 같은 결과가 가능했던 것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던 메시야의 대속 사역 때문이었다(53장).

=====54:6
부르시되( , 케라아크) - 시제는 완료형이다. 앞절과의 연관성 속에서 볼 때 저자는 하나님이 다시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회복하실 사실을 그 신실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일단 남편에게 버림을 받았던 아내가 남편의 용서로 다시 남편에게도 돌아오는 이미지를 사용하여 묘사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아직 시작도 되지 않은 일을 이미 완성된 듯이 완료형으로 묘사한 것은 그 성취될 사실의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함인데, 이 같은 표현 방법을 '선지자적 과거'라고 부른다(Fausset). 70인역(LXX)의 경우는 난해하게도 '여호와께서 버려지고 위안을 받지 못한 아내로 그들을 부르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녀의 젊은 시절부터, 미워해 왔던 아내로 부르지도 않으셨다'로 본절은 번역하고 있다. 이것은 추측컨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인간 사이의 부부 관계로써 묘사하기를 거절하고자 하는 의도때문인 것으로 보여지나 문맥에 합당하지 않다.

=====54:7
잠시 - '약간의 분노로'로 번약하는 학자도 있으나(Lowth), 원문은 개역 성경과 동일하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아주 짧은 시간을 가리키는데, 여기서 이 표현이 등장한 것은 이후 임할 번영 및 영광의 기간은 영원할 것이라는 사실과 대조를 이루게 하기 위해서이다. 신약 성경에도 동일한 사상이 나타나 있다 :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7).
큰 긍휼 - 또 다른 차원의 대조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것은 버림받음이 '적은' 것이었다면 긍휼은 '큰(위대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이 큰 '긍휼'의 내용은 오랫동안의 배역(背逆)을 다 품고 해결할 수 있는 위대한 메시야의 대속사역이다.

=====54:8
넘치는 진노( , 베쉐체프 케체프) - '분노의 범람'이 그 문자적 뜻이다(a surge of anger, NIV). 그러나 하나님의 징벌과 회복의 은총을 대조시키는 문맥을 중시할 때, 이는 '적은 분노'(a little wrath, KJV) 혹은 '잠시 동안의 격노'(lverflowing wrath for a moment, RSV) 등으로 해석해볼 수도 있겠다. 얼굴을 ... 가리웠으나 - 불쾌감의 표현이다(8:17;욥 13:24;34:29;시 30:7). 이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바벨론 포로라는 징벌로 명백히 드러난 하나님의 불쾌감과 노여움을 가리킨다.
영원한 자비 - 앞의 '넘치는 진노'와 대비를 이룬다. 메시야의 은총 아래 있는 교회와 그 개인이 받을 은총은 엄청나다 :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엡 1:3).
구속자 여호와 - 계속해서 '구속자'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은 회복될 모든 번영, 영광 등은 메시야의 구속 사역을 근거로 하는 것임을 암시하기 위해서이다.

=====54:9
본절에서 하나님은 노아게게 주신 약속을 상기시키면서 다시는 이스라엘을 징벌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계신다. 그런데 본 약속에 대한 이해의 기초는 노아에게 약속을 주셨던 당시의 문맥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의 생각이 어려서부터 악하기 때문에 물로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하셨다(창 8:21). 노아에게 주셨던 약속은 분명하게 인간의 죄성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이다. 즉 인간은 나면서부터 죄인인데, 이러한 인생들에 대하여 반복하여 대홍수왁 타은 저주를 내린다면 이 땅과 인생들은 잠시도 견디지 못할 것이므로 이 땅과 인생들은 잠시도 견디지 못할 것이므로 인류 전체를 향한 물심판은 없으리라는 약속이었다. 따라서 인간의 죄성이란 관점에서 본절의 약속도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셔서 인간의 죄를 결코 용납하지 않으신다. 그런데 본절에서 범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에릉마 징벌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계신데, 그것은 53장에서 메시야께서 온 인류의 가죄악으로 말미암아 십자가를 지실 것이기 때문에 그 대속의 은총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심판을 면제해주시겠다는 약속인 것이다.

=====54:10
인자( , 헤세드) - 언약 용어로서 기왕에 주신 약속을 끝까지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의 불변의 상랑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화평케 하는 나의 언약( , 베리트 쉘로미) - 문자적인 뜻은 '나의 평화의 언약'이다. 동일한 용어가 사용된 유사 구절에 근거할때 본 언약은 다윗의 위를 이은 한 왕이 통치할 영원한 하나님 나라 건설에 관한 약속이다(겔 37:24-26). 이 나라는 혈통적 이스라엘만을 구성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들어올 이방의 택함받은 자까지도 포함된 하나님 나라의 건설에 대한 약속으로 보아야 정확하다. 이 나라의 건설은 인간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하나님 언약의 신실성 때문에 가능하다. 견고성, 불변성을 상징하는 산들은 혹시 움직여질 수 있어도 그 나라를 세우기로 한 하나님의 약속 계획은 결코 변경되지 않는다.

=====54:11
곤고하며 ... 안위를 받지 못한 자 - 오랫동안의 포로 생활로 광풍에 시달리는 배처럼 그 마음에 평안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킨다. 그들에게 저자는 미래의 안정과 영광을 약속함으로 그들을 위로하려고 하고 있다(11-`4절).
화려한 채색으로 네 돌 사이에 더하며 - 여기 '화려한 채색'이란 색색의 벽돌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돌과 돌을 붙이는 색색의 접합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다잇 여인들이 눈썹 위에 치장용으로 붙이기도 했던 이 접합체는 벽돌 사이사이에 붙여, 벽돌 건물을 멋지게 보이도록 하는데 사용되었다. '더하며'의 정확한 원문 직역은 '기초를 놓다'이다. 이는 그 기초가 튼튼한, 따라서 미래의 번영과 영광이 보장된 교회를 상징적으로 표현할 때도 사용된다(계 21:18-21 참조).
청옥 - 그 단단하기에 있어서는 다이아몬드 다음이고 아름다움과 광체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푸른 색, 붉은 색, 흰 색, 자주색 등 다양한 색을 지닌, 우리에게 사라이러로 아려져 있는 보석이다.

=====54:12
홍보석( , 카데코드) - '때리다', '가루를 내다' 혹은 '불을 지피다'는 뜻의 '카다드'( )에서 온 본 용어는 불을 지필 때 나는 섬광, 불꽃과 같이 번쩍이느 보석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성첩( , 쉼쇼타이크) - '태양'을 뜻하는 '쉐메쉬'( )에서 온 용어로 의미 규정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성벽위의 반짝이는 피뢰침, 성채 혹은 성(城) 본 건물에 딸린 작은 건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어쨌든 문맥은 그 기초가 든든하고 찬란한 성을 말하고 있으므로, 보석으로 지은 번쩍이는 성 건물의 일부로 보면 적절하겠다.

=====54:13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 이것은 미래에 하나님의 참자녀들이 구속주 메시야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것을 시사한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가르침과 인도 아래 있게 될 것을 예언하면서 이 구절과 유사하게 표현한 바 있다 :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렘 31:34).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이끌림을 받은 자만이 그에게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말씀 하시면서 본 구절을 인용하셨다 :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 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요 6:45).

=====54:14
의로 설 것이며 - 메시야가 다스리는 나라의 특성 중의 하나가 소개되고 있다(시 72:2;계 19:11). 다른 세상 나라는 음모, 약탈, 정복 등으로 세워지므로 통치의 내용이 불의하지만 하나님의 주권 아래 이루어지는 메시야의 왕국은 편만한 공평이 통치의 특징이 될 것이다.

=====54:15
그들이 모일지라도( , 고르) - 주어가 대명사로 되어 있으므로 그 정체를 밝히는 것이 쉽지 않으나 문맥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은 영적 이스라엘 곧 교회의 대적이며 엄밀히 말해서 메시야의 대적이다. 세상 나라 군왕들이 연합하여 메시야를 대적할 것을 시편 기자는 다음과 같이 잘 묘사하고 있다 :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아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시 2:1,2).
너를 인하여 패망하리라( , 알라이크 이폴) - 문자적인 뜻은 '너에게 복종케 되리라'이다. 이것은 메시야의 대적이 파멸케 될 것을 가리킬 뿐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이들이 오히려 교회으 진영으로 두손들고 들어오게 된 것을 암시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이후 교회는 멸망할 듯 보였으나 도리어 세상 나라가 교회로 돌아오기 시작하였다.

=====54:16
여기 언급된 기계를 만드는 자와 그 기계를 가지고 파괴를 일삼는 자는 외관상 전쟁을 일삼는 자들로 보여진다. 그러나 다음절과의 연관성 속에서 볼 때, 이들은 교회를 대적하는 조재의 상징적 표현으로 이해된다. 그들은 하나님수하에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교회를 대적할 수 있을 뿐이다.

=====54:17
송사하는 혀는 네게 정죄를 당하리니 - 법정의 이미지가 동원되었다. 교회의 대적들은 교회를 고소할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도리어 대적들에게 승리할 것이다. 그 이유는 메시야의 대속 사역을 근거로 그의 택한 백성을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대적이 고소할 때 교회를 변호하고 대적을 물리치시기 때문이다.



53장과 본장 사이에 분위기 변화는 너무 급박하다. 53장에서는 여호와의 종의 구속
사역에 대해 언급한 반면, 본장에서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예루살렘(이스라엘)의
회복과 영광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53장과 본장의 흐름이 단절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저자는 종의 사역을 언급한 후 이 사역을 근거로 하여 예루살렘의 회
복과 영광을 이끌어내고 있다. 결국 본장은 포로 생활 중에 있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
의 위로를 전달하며, 동시에 '새 예루살렘'의 건설을 예표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
다.
이처럼 낙관적인 소망의 메시지가 전달되는 본장은 (1) 가까운 미래에 성취될 이스
라엘의 회복을 다루는 전반부(1-10절)와 (2) 먼 미래에 성취될 이스라엘의 영광을 다
루는 후반부(11-17절)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저자는 종의 구속 사
역은 일차적으로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온 인류를 위한 것임을 명백
히 제시하고 있다(롬 9:25-29;10:10-21).
한편, 본장은 다양한 비유들을 사용하고 있다. 즉, '임신치 못하는 여인'(1절),
'장막의 확장'(2절), '재결합의 부부'(6절), '재건될 찬란한 성'(11, 12절), '무력한
적'(15-17절) 등이다. 이러한 다양한 비유들은 운문체로 되어 있는 본장을 더욱 빛나
게 해주는 보석과 같은 역할을 한다.
또한, '두려워하지 말라'(4, 14절), '곤고하고 요동하는 자'(11절) 등의 표현을 통
해종의 구속 사역에 대한 예언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여전히 안식을 찾지 못하고
있음을 은연중에 고발하고 있다.
이러한 특징을 보여주는 본장이 강조하는 핵심적인 내용은 종의 속죄 사역을 근거
로 하는 '새 예루살렘'(히 12:22;계 3:12;21:2, 10:22:19)의 회복과 영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기초로 하여 성립된 신약 교회에 대해 하나님은 그누
구도 공략할 수 없는 난공 불락의 요새와 같은 존재라고 선언하신다(15-17절). 그러므
로 선지자는 비애의 색조를 버리고 기쁨의 어조로 교회의 찬란한 영광을 마음껏 노래
하고 있다. 속죄 사역으로 탄생한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빛낼 것이다.
이제 회복된 이스라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는 본장을 두 단락으로 나누어 살펴보
면 다음과 같다.

1. 이스라엘의 회복(54:1-10)
본서의 절정에 해당되는 종의 구속 사역이 묘사된 전장(53장)에 이어지는 본 단락
에서는 종의 구속 사역의 결과에 해당되는 이스라엘의 회복이 다루어지고 있다. 저자
는 이스라엘이 포로 신분에서 자유를 얻고 전쟁으로 경감된 숫자가 다시 증가될 것이
라고 선언한다. 또한 부려움과 불신을 버리고 언약 성취에 대한 소망과 확신을 간직하
도록 권고한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보장이 드러나는 본 단락은 첫째, 포
로 귀환 후 숫자가 증가할 이스라엘(1-3절) 둘째,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회복(4-8
절) 셋째,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성(9, 10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제 본 단락의 핵
심적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분명해진 이스라엘의 포로 귀환(1절):저자는 추방 기간 동안 숫자가 크게 감소
되어 '홀로된 여인', '잉태치 못하는 여인' 등에 비견되는 이스라엘이 다시금 생육하
고 번성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예언은 이스라엘이 포로 상태에서 회복되고, 하나
님의 언약이 성취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실제적으로 고레스의 칙령 공포 이후(대하
36:22;스 1:1) 이스라엘은 이전과 같이 번창하게 되었다(대상 9:2-34;스
2:1-65;8:1-20;느 7:6-72;11:3-36). 이사야는 이스라엘이 지상에서 소멸되지 않고 흥
왕하리라는 내용을 통해 포로 귀환의 확실성을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2) 이스라엘의 확대(2, 3절):저자는 장막의 비유를 사용하여 이스라엘의 번성을
설명한다. 고대 근동 지방 유목민들은 일시적인 거처로 천막의 일종인 장막을 사용한
다. 이런 장막의 경우는 대들보가 부착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필요한 만큼의 기둥을
사용해서 임의로 크기를 조절할 수 있었다. 따라서 장막을 넓히는 데는 좀더 긴 밧줄
과 강한 말뚝만 있으면 된다(출 35:18;39:40). 이사야는 아마도 유목 생활을 하던 아
브라함 일가를 생각하며 이러한 비유를 사용했을 것이다(창 12:1-3;28:13, 14). 또한
여기서 사용되고 있는 '퍼지며'라는 용어는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을 묘사할 때 사용
된 바 있다. 그러므로 본 장막의 이미지는 단순히 포로귀환 이후 이스라엘의 숫자 늘
어남을 가리키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이스라엘 공동체에 포함될 자들의 대상이
이방인에게까지도 확대된 것임을 강하게 암시한다(행 2:47;6:7;9:31).
(3) 이스라엘의 회복(4-8절):히브리인들은 과부나 어린아이가 없는 여자에 대해 하
나님의 징벌을 받았다고 생각했다(4절). 그런데 저자는 동일한 처지에 놓여 있는 여인
으로 간주되는 이스라엘이 치욕을 벗어나 기쁜 환대 속에서 돌아오는 아내같이 될 것
이라고 밝힌다(6절).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재결합을 암시한다(호
2:16-20). 자신의 죄 때문에 잠시 버리움을 당한 이스라엘은(50:1) 이제 하나님의 긍
휼로 인하여 회복될 것이다(7, 8절).
(4) 언약의 지속성(9, 10절):저자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이 결코 변개되거나
철회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비록 이스라엘이 다시 범죄한다고 할지라도
노아에게 언약하신 것처럼 멸말시키지 않으실 것이다(창 8:21). 왜냐하면 하나님은 백
성들의 상태와 무관하게 자신의 약속을 신실하게 이행하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
로 이스라엘의 화평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2. 시온의 영광(54:11-17)
지금까지 바벧론에서 포로로 사로잡혀 고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로하고 새로
운 소망을 주기 위하여 예언한 이사야 선지자는 이제 본 단락에 이르러 종말론적으로
완성될 새 예루살렘의 영광을 중점적으로 묘사하고 있다(계 21:16-21). 특히 하나님의
백성이 장차 누릴 영광을 보석으로 만들어진 아름답고 빛나는 건물로 비유하여 인상적
으로 드러낸다. 또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승리와 평화와 안정이 충만한 은총리 상태로
표현한다. 이러한 내용은 복음적 사고의 표현으로서 교회의 모습을 예표적으로 보여준
다.
이와같이 이스라엘의 종말론적 영광을 선포하는 본문은 (1) 이스라엘의 외적 모습
에 대한 비유(11, 12절), (2) 두려움의 제게(13, 14절), (3) 원수의 공격의 무기력함
(15-17절)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여기서 저자는 먼저 교회의 영광스러움에 대해 일종의 건축상의 접근법을 사용하여
상세하게 묘사한다(11, 12절). 개 예루살렘은 돌이 아니라 보석으로 만들어진 찬란한
건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記述)은 하나님에게 있어서 교회의 소중함을 상징적
으로 보여준다(계 21:15-21). 교회는 만물 중에서 가장 소중하고 존귀한 존재로서 그
리스도의 신부가 된다는 것이다.
둘째로, 저자는 교회의 견고함에 대해 언급한다(15, 17a절). 교회는 원수들의 치열한 공경에도 불구하고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공격하는 자들이 패망할 것이다(눅 20:18). 특별히 저자는 강력한 힘을 가진 세계의 정복자들까지도 여호와의 섬세한 배려를 받는 이스라엘을 파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공업한다. 이러한 사실은 원수을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퇴치할수 있는 교회의, 권능을 잘 모여주는 것이다(고후 10;4;엡 6;11-13.).
세째로, 저자는 교회의 의로움에 대해 설명한다(14, 17b절). 교회는 하나님의 은총과조건적 용서를 받음으로써정죄를 당하지 애고 의롭다여김을 받는다. 그리고 하나님의 기업을 물려받게 된다. 비록 허물과 죄로 가득 찼을지라도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인하여 깨끗함을 얻기 때문에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본장에서 우리는 언약 백성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깊이 체험하게 된다. 하나님은 당시의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고 승리와 영광의 길로 인도하신다. 아무리 악랄한 원수들의 책동도 하나님께 선택하신 교회를 멸절시킬 수 없다(룸 8;35-39).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와 용기를 확신하면서 당명한 고통을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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