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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0
본서는 7개 회개의 시(6, 32, 38, 51, 102, 130, 143편) 중 한 편이다. 이 시에는 시인의 극한 고통이 잘 표현되어 있다. 하지만 시인은 이 극한 고통 가운데서 자신의 과오를 처절하리만큼 철저하게 회개하고 있다. '영장'이란 말에 대해서는 4편의 서문을 참조하라. 한편, '스미닛'은 아마도 '8현금'을 의미하든지 아니면 '여덟 번째 줄의 높이로'라는 뜻을 가질 것이다(Kraus).

=====6:1
이 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다윗이 지금 자신이 하나님의 진노아에 있음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로 그는 괴로워하고 탄식하며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주의 분으로 나를 견책하지 마옵시며 - 주께서 분을 내신다는 다윗의 표현은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인생으로부터 떠나시고 그를 버리심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 결과는 하나님의 심판이다. 여기서 '견책하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카흐'(* )는 '심판하다', '판단하다'는 뜻이다. 이 심판의 결과로 그는 지금 영혼과 육체에 있어서 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다(2, 3절). 이처럼 주께서 다윗을 심판하신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율법)을 어겼기 때문이었다.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 주의 진노는 가공하리만큼 무서운 것이다. 주의 진노 앞에 땅이 혼들리며 산이 무너지며 아무도 그것을 진정시킬 자가 없다(욥 9:5;렘 10:10). 이와같은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 다윗은 두려워 떨고 있다. 다윗은 병행 대구법을 사용하여 자신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이 매우 엄했음을 보여준다.

=====6:2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 육신의 병에 걸렸음을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다. 구약에서 죄와 질병은 불가분리(不可分離)의 관계에 있다(32:1ff.;38:2ff.; 39:8, 11).
긍휼히 여기소서 - 다윗은 이 질병을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상태에서 여호와의 긍휼에 호소하고 있다.이 긍휼은 그것을 받을 자격이 없는자에게 무조건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다윗은 여기서 자신이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만한 자격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구한 것이 아니고 다만 자신의 영육간의 고통을 도저히 이길 수 없었기 때문에 이것을 구한 것이다(Craigie).
나의 뼈가 떨리오니 - '떨리오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발루'(* )는 문자적으로 '부숴지다'(go to pieces)는 뜻이다. 이러한 표현은 다윗의 고통이 죽음의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나를 고치소서 - 죄악으로 인한 질병은 오직 하나님만이 고칠 수 있다(출 15:26;왕하 5:7). 따라서 다윗은 오직 하나님께만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6:3
나의 영혼도 심히 떨리나이다 - '영혼'은 히브리어로 '네페쉬'(* )이다. 이 용어는 인간 자신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지만(Kraus), 여기서는 2절의 '뼈'(육체)와 대조적인 개념으로 인간의 영혼을 의미한다(Craigie). 따라서 이 구절은 다윗이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까지도 병들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구체적으로 권태, 의욕 상실, 무력감, 열등 의식, 죄 의식 등이 영혼의 질병에 포함될 것이다(22:14;31:10;38:3; 102:3, Rawlinson).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 질병이 참을 수 없는 한도에까지 이르자 다윗은 절규하고 있다. 여기서 '어느 때'란 곧 하나님의 긍휼이 그에게 임하는 때이다(Rawlinson, Craigie).

=====6:4
여호와여 돌아와 - 이 말은 질병 중에 있는 다윗이 지금 하나님께서 자기를 떠나 계신 것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Lange, Perowne).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다윗으로서 하나님께서 그를 떠나 계신다는 생각은 그의 질병을 더욱 악화시키는 고통이 되었을 것이다.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 여기서 '영혼'(* , 네페쉬)은 '생명'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 따라서 본 구절은 다윗이 영육간에 강건해지기를 간구한 표현이다.
주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나를 구원하소서 - 여기서 '인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헤세드'(* )이다. 이 단어에 대해서는 5:7 주석을 참조하라.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적인 사랑에 근거하여 구원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구약에서의 구원은 국가적인 구원이든 개인적인 구원이든 항상 하나님의 언약적인 사랑에 근거하여 성취되었다(Craigie).

=====6:5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함이 없사오니...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 다윗은 마지막 원수인 사망에서 구원해달라고 간구하고 있다. 구약시대의 사후(死後) 개념은 신약 시대와 같이 분명하지 않았다. 구약 시대의 성도들은 사후에 의인과 악인이 구분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그것을 확실하게 신학적으로 정립하지는 못했다. 다만 인생이 사후에 음부에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하였으며, 이 음부는 일종의 '지하의 세계'(underworld)로 인식 되었다. 이곳에 들어간 사자(死者)들은 무의식 상태에 있게 되며, 따라서 하나님께 감사할 수도 없게 된다고 생각하였다. 음부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삼하 12:15-25 강해.
'구약의 사후(死後) 개념 - 음부(陰府)'를 참조하라.

=====6:6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 이는 탄식함으로 완전히 탈진된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는 다윗이 죄로 인해 얼마나 심각하게 고민했는지를 보여준다.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 이 '눈물'은 고통을 이기지 못해 나오는 눈물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론 하나님이 자기를 떠나 계신다는 슬픔으로 인해 나오는 눈물이었다(Craigie). 따라서 이 많은 눈물은 그의 육체적, 영적인 상처가 얼마나 깊은 것이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Kraus).

=====6:7
내 눈이...쇠하며...어두웠나이다 - 건강을 측정하는 척도가 된다. 모세는 죽기 전에 그의 눈이 쇠하지 아니하였는데(신 34:7), 이는 그가 12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건강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본 구절은 다윗이 극도로 쇠약해진 자신의 건강을 하나님께 호소하는 구절이다. 여기서 '근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아스'(* )는 '분개', '성냄'을 의미하는 말이다(Rawlinson, Lange, TWOT). 따라서 근심은 '분개'로 개역되어야 합당하다. 그렇다면 다윗을 분개하게 했던 그 요인이 무엇이었던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그 대답은 '내 모든 대적을 인하여' 라는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에 언급된 '대적'이란 병자인 다윗을 적대시하는 모든 상황을 지시하는 말이다. 즉, 구약 시대에 병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죄인으로 간주되었고 따라서 사람들은 병자를 적대시하였다. 심지어 친구들까지 적대시하였다(욥 30:1-15). 다윗은 이러한 의미에서의 대적으로 인하여 분개하게 되었고, 또한 이로 인해 그 눈이 어둡게 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었던 것이다(Craigie).

=====6:8
본 구절에서부터 지금까지의 기도가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즉, 지금까지 자신의 고통을 애절하게 호소해 온 다윗이 본 구절에서부터는 기도의 응답을 확신하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아마도 큰 고통 중에서 분개와 실망을 극복할수 있는 믿음을 회복한 듯하다(Perowne).
행악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 '행악하는 너희'는 7절의 '내 모든 대적'을 지시하는 말이다. 다윗이 이렇게 담대히 외칠 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다시금 돌아오셨음을 확신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다윗의 질병은 하나님께서 그를 떠나신 결과였다. 하나님께서 떠나심으로 그는 질병에 걸리게 되었고 사람들은 그를 적대시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큰 슬픔과 비애 속에서 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돌아오셨으므로 그는 이 모든 대적에게서 자유롭게 될 수 있었다(Craigie).

=====6:9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 본절에 사용된 두 동사는 시제가 서로 다르다. 앞의 '들으셨음이여'는 완료형이며 '받으시리로다'는 미완료형이다. 이 시제의 차이는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큰 근심 중에 간구했던 다윗이 지금은 확신 중에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고통 중에 간구하는 다윗에게 돌아와 그를 다시금 받아주셨다. 그러므로 다윗의 기도가 이미 응답된 것이다(완료). 그러나 지금까지 악화된 다윗의 건강과 그의 명예는 앞으로 회복될 것이다(미완료). 즉, 그의 심령은 이미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으나 그의 육체는 아직 응답을 받지 못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곧 하나님의 응답이 그의 육체에까지 미칠 것을 다윗은 확신하고 있다(Craigie).

=====6:10
내 모든 원수가...심히 떪이여 - 여기서 '떪이여'는 3절의 '심히 떨리나이다'라는 말과 같다. 처음에는 다윗이 떨었으나 이제 하나님께서 그에게 돌아온 이후에는 그의 모든 원수가 떨게 될 것이다. 여기서 다윗은 남을 비방하는 자는 결국 그 비방의 대상이 된다는 진리를 확신하고 있다(마 7:1, 2).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 - 본절의 '물러가리로다'(* , 슈브)는 4절의 '돌아와'와 깊은 연관이 있는 용어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돌아오셨을 때 그의 대적은 물러가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인생이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질 때 이 대적은 다시 돌아올 것이다. 다윗은 이 구절에서 인생은 하나님을 모시고 있을 때에만 모든 대적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본시는 '회개의 시편'(6, 32, 38, 51, 102, 130, 143편)으로 불리는 7편 중 제일 처음 언급된 것으로, 초대 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안식일 이후 네 번째 날을 회개의  날로 지정하여 본 시편을 낭송하였다. 하지만 최근의 여러 학자들은 본시를 회개의 시편에 포함시키는 것을 꺼려한다. 그들이 주장에 따르면 이 시에는 용서를 구하는 기도나 죄를 고백하는 회개의 표현들이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볼 때 본 시편은 회개시가 아니라 개인적인 탄식시에 속한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본시의 분위기나 성격을 볼 때 참회나 회개의 시로 분류하는  전통적 견해가 타당할 듯하다. 특히 시의 표제문은 본시가 지휘자의 인도로  '스미닛'(제8음,낮은 음)의 특정 음율에 맞추어 불리워졌음을 보여 준다.
  한편, 본시의 저자는 다윗으로 알려져 있지만 몇몇 학자들은 다윗 저작설을  부인한다. 그들은 본시의 전반부(1-7절)와 후반부(8-10절) 사이에 갑작스런  어조의  변화가 나타나는 것에 그 근거를 둔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이 시의 후반부가 누군가에  의해 첨가된 것이라는 주장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저자의 신뢰를 반중하는 표현으로 생각되어진다.
  또한 본시가 쓰여진 시대와 배경에 대해서도 알려져 있지가 않다. 다만 추측컨대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동침하고 죄를 범한 이후에 집피가한    것으로    여겨진다(삼하 12:16). 당시 다윗은 나단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밧세바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병이 들자 금식하며 회개했었다. 그때의 다윗의 심정이 본시의 구절마다 표현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무튼 본시가 다윗이 영적. 육체적으로 깊은 고통 중에  있을 때 쓰여진 것만은 분명하다.
  이처럼 다윗이 영혼과 육체의 질병으로 고통하던 때에 주께 드린 기도인 본시는 (1)다윗이 자신의 고통을 아뢰고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하는 부분(1-7절)과,  (2)  다윗이 자신의 구원을 확신하는 부분(8-10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 시에 담긴 내영을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다윗은 간절한 심정으로 회개하고 있다(1-7절). 본 대목은 질고(疾苦)를 호소하는 다윗의 애절한 외침(1-3, 5-7절)과,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하는(4절) 내용으로 어우러져 있다.
  이러한 내용의 본 단락에서 우리는 질병 주에 있는 다윗의 처절한 형편과 그런 상황에서 다윗이 드린 기도의 내용을 발견하게 된다.먼저 다윗의 처절한 형편을    살펴보면 한마디로 그는 중병에 걸려 있는 상황이었다. 그의 몸은 수척하였고 그의 뼈는 부숴질 정도로 아팠다(2절). 이로 인해 다윗은 죽음 직전까지 이르렀음을 탄식한다.(5절), 뿐만 아니라 다윗은 심각한 육체적 질병과 아울러 영혼의 질병까지  앓고  있었다(3절). 사실 육체의 질병이 아무리 심하더라도 영혼이 건강하기만 하다면 그 질병은 어느  정도 견딜만 한 것이다. 그의 영혼 속에는 두려움과 무기력, 그리고 비관, 허약함  등이 가득차 있었다. 그래서 그는 육체와 영혼이 함께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다윗이 이처럼 비참하게 된 원인은 바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때문이었다(1절). 우리는 그의 죄가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죄의 결과인 파괴적인 고통이 다윗의 영혼에 미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다윗은  본시를 통해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는 죄인이 장차 어떠한 형벌을 받게 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죽음의 고통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고통은 그리스도께서 범죄한 인간을 위해 십자가 상에서 받아야 했던 바로 그 고통으로  연결될  수있는 것이다(마 27:46).
  한편 질병의 고통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는 다윗의 간구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다윗은 먼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로 돌아와 주시기를 간구한다(4절). 범죄한 인생이 하나님의 돌아오심을 요청하느느 것은 염치없는 일이지만, 다윗에게 있어서 이런 요청은 생명보다 소중한 것이었기에 간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영영 떠나버리시는 것은 곧 파멸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윗은 오직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며 회복을 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간구는 다윗이  자신의 고통의 해결책을 오직 하나님의 회복하심을 두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2) 다윗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호소한다(2, 4절). 범죄한 인생이 회복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자비하신 은총을 입는 것뿐이다. 따라서 다윗은 회복을 위한 자기의 놀력과 행위를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오직 그는 하나님 앞에서 더러워진 자신을 보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에 의지하여 간구하였다. 이 같은 다윗의 간구에서 우리는 범죄한 인생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자비를 힘입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엡 2:8).
  (3) 다윗은 눈물로써 간구한다(6절). 그는 밤마다 눈물로 침상과 요를 적실  정도로 회개했다. 물론 이 표현이 시적(詩的) 고장법으로 사용된 것이지만, 다윗은 자신의 깊은 슬픔과 회개의 심정을 이러한 방식으로 고백하였다. 결국 다윗은 자기의 죄를 크게 안타까워 했으며, 진실한 마음으로 그 죄를 뉘우쳤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  심령이 죄에 대하여 애통하는 자는 결국 하나님의 은총과 위로가 임하리라는 신약  시대의 산상 수훈을 기억하게 된다(마 5:4).
  둘째, 다윗은 자신의 회복과 구원을 확신한다(8-10절). 앞 단락에 (1-7절) 짙게  깔려 있던 무겁고 어두운 시의 분위기가 본 대목에서부터 갑자기 변화되어 나타나기  시작한다. 즉, 앞에서 자신의 죄와 그로 인한 고통을 눈물로써 호소했던 다윗은 본 단라게 이르러 하나님의 응답과 구원을 강하게 확신하고 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의 슬픔이 기쁨으로 변할 것임을 의심치 않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영호가의 깊은 밤을 지나 이제 새로운 영혼의 아침을 맞이한 것과 같다. 여기서 우리는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듯이 고통의 때가 지나간 이후에는 기쁨의 때가 도래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진리는 오직 믿음의 사람에게만 적용된다. 만약 다윗이  극심한 질병에 걸렸을 때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였다면 과연  다윗이 본 단락의 확신을 노래할 수 있었겠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는  심한  고통중에도 자신의 죄를 깨닫고 눈물로 진실된 참회를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회복과 구원을 확신할 수 있게 된 것이다(4, 9절).
  그러므로 우리는 본 대목에서 하나님의 자비하신 성품을 발견하게 된다. 즉, 하나님은 죄에 대한 보응으로 다윗에게 진노를 내리셨다. 하지만 진노를 받아 마땅한 죄인일지라도 진실된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아니하셨던 것이다. 결국 다윗은 죄에 대해서는 분노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나, 진실한 망음으로 통회하여 회개하는 자에게는 인자와 긍휼을 베푸시는 사라의 하나님을 신뢰하엿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본시에서 우리는 죄가 가져다 주는 영혼의 고통이 너무나 크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사죄의 은총을 당신의 백성들에게  허락하신다는 점을 배우게 된다(사 1:18;눅 15: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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