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
의인은 의롭다 하고 악인은 정죄할 것이며 - 기록에 의하면, 구약 시대에도 재판상의 부정이 있었으며 재판관이 타락하여 돈에 매수되는 사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16:19; 잠 17:23; 사 1:23). 그런데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사회의 선악 기준을 어지럽게 하는 범죄이자 하나님의 공의에 위배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재판관이 사심없이 오직 공의(公義)에 따라 재판을 진행하라고 강조하고 있다(출 23:6-8).
===25:2
재판장은...자기 앞에서 때리게 하라 - 유대 전통에 의하면, 태형(笞形)의 집행시에는 재판정의 수석 재판관이 입회하여 본서 28:58, 59 및 29:9을 큰 소리로 봉독하였으며 태형 후 맨 마지막에는 "그러나 주께서도 자비가 충만하셔서 저들의 죄를 사하셨느니라"는 말로 끝맺음 하였다고 한다(Mishna).
죄의 경중대로 여수히 - '여수히'에 해당하는 '미스파르'(* )는 '세다', '기록하다'는 말에서 온 단어로 곧 '일정하게', 또는 '적당한 수로'(KJV, by a certain number)라는 뜻이다. 여기서는 범죄자가 저지른 죄에 비해 너무 무거운 형벌이나 또는 그 반대로 지나치게 가벼운 형벌을 가하는 것과 같은 형평에 어긋난 처사를 하지 말라는 강조적 의미로 쓰였다. 따라서 모든 죄악은 거기에 따른 적절한 징벌이 가해져야 한다는 것이 곧 율법의 공의로운 정신이다<1-4절 강해, 성경에 나타난 형벌의 종류>.
===25:3
사십까지는 때리려니와 - '40'이란 숫자는 성경에서 종종 '심판'과 '연단' 또는 '시험'을 의미하는 상징수로 사용된다(창 7:12; 출 24:18;민 13:25; 마 4:2; 행 1:3).그러므로 40대의 매를 때리는 것은 곧 죄에 대한 심판을 뜻함과 동시에 선한 길로 인도하려는 연단의 방편을 의미한다(Keil) . 그런데 후대에 이르러 유대인들은 태형을 집행할 때 40에서 하나를 감한 39대까지만 때렸다. 그 이유는 혹시라도 계수(計數)과정에서 착오가 생겨 40대의 매를 초과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Pulpit Commentary). 후일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던 중 다섯 번이나 맞았다는 매가 바로 그것이다(고후 11:24). 한편 혹자(Maimonides)는 여기서 유대인들이 태형(笞形) 집행시 최고 30대까지 정한 이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즉 그것은 태형 집행시 유대인들이 태형 도구로 세가닥으로 된 채찍을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14번을 때릴 경우, 40대를 초과하여 42대를 때린 셈이 되었기 때문에 13번, 곧 39대까지만 때렸다는 것이다(Pulpit Commentary, Matthew Henry's Commentary). 여하튼 본 규정은 당시 이방 국가에서처럼 인간을 무자비하게 때림으로 해서 사람을 불구로 만든다든지 혹은 죽게 되도록 만드는 경우를 미연에 방지 시킨 규정이다. 따라서 만일 40대 이상의 형벌이 가해질 정도로 중한 범죄이면, 재판관은 차라리 그를 처형시켜야 했다.
천히 여김을 받게 할까 하노라 - 칼빈(Calvin)은 여기서 '천히 여김을 받게 하다'는 말을 '너무 심한 매질을 하여 흉측한 불구의 몸이 되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해석하였다. 이 해석이 정확한 해석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여하튼 본절은 범죄에 대해 마땅히 징벌함으로써 정의 구현과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고 할지라도, 타인의 인격을 송두리째 짓밟는 행위는 허용될 수 없음을 강조하는 규례임에는 분명하다. 비록 범죄자라 할지라도 그 기본 인권만은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 성경적 가르침인 것이다(Matthew Hanry).
===25:4
곡식 떠는 소 - 여기서 '곡식을 떤다'는 것은 곡식의 타작을 가리킨다. 팔레스틴에서는 대개 두 가지의 타작법(打作法)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그 중 하나는 편편한 널판지에 구멍을 많이 뚫고 그곳에 날카롭고 단단한 돌을 박은 타작기를 당나귀나 소로 하여금 타작할 곡식 위로 끌고 다니게 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평평한 바위나 고르게 다진 타작마당에 곡식 단을 펴놓고 막대기나 도리깨로 두들겨 타작하는 방법이다(삿 6:11).
입에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 - 앞서 언급한 방법대로 소를 이용하여 탈곡할 경우, 소가 곡식 낟알을 주워 먹는 사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는 것은 비록 짐승이라도 그 수고한 대가를 받는 것이 마땅함을 가르쳐 준다. 따라서 이는 보상의 일반 원칙을 언급한 일종의 격언인데, 예수께서 "전도자가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하다"(마 10:10)고 한 것이나, 사도 바울이 "교회 사역자들이 교회로부터 응분의 대가를 제공받는 것이 마땅하다"(고전 9:9-14; 딤전 5:18)고 한 것도 바로 이러한 원리에 근거한 것이다. 아뭏든 회교권 국가에서는 오늘날에도 이같은 가르침에 입각, 탈곡 작업에 동원되는 가축의 입을 망으로 씌우지 않고 자유롭게 놓아 두는 것을 볼 수 있다(Robinson).
===25:5
형제가 동거하는데 - 칼빈(Calvin)은 사촌 미만의 사람이 계대 결혼(繼代結婚, Levirate Marriage)을 할 경우 근친 상간죄(레 18:6-18)에 해당되므로, 여기서의 '형제'란 친형제가 아닌 사촌 이상의 가까운 친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칼빈의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 레 18:16의 "형제의 아내의 하체를 범치 말라"는 조항은 살아 있는 형제의 아내와 관계하는 것을 금한 것이지 이미 죽은 형제의 아내를, 더구나 아무런 후사(後嗣)가 없는 경우에 한해, 특별한 취지하에 취하는 계대 결혼을 금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그리고 여기서 '동거하다'는 말은 반드시 한 집에서 같이 사는 경우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의 아내를 데려가기에 크게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인접 지역에 사는 경우도 포함하는 말이다(창 13:6; 36:7).
아들이 없거든 - 문자적인 의미는 그대로 남아(男兒), 곧 '아들'(벤, * )만을 뜻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죽은 형제에게 아들 대신 딸이라도 있을 경우 그 딸이 아비의 기업을 이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민 27:4-7; 36:8). 그러므로 70인역(LXX)과 벌게이트역(Vulgate), 그리고 KJV등은 본절을 '아이가 없거든'(and have no child)으로 적절히 번역하고 있다.
그 남편의 형제가...아내를 삼아 - 이같은 계대 결혼에 있어서,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경우로는 유다의 둘째 아들 오난과 그의 형수 다말 간의 예를 들 수 있다<창 38:1-11 강해, 계대 결혼법>. 그러나 당시 오난은 그와같은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가 자기 자손이 되지 못할 것을 알고서는 고의로 땅에 설정(泄精)하다 하나님의 진노를 사 죽임당했었다(창 38:6-10). 다음의 경우로는 룻과 보아스 간의 예를 들 수 있는데, 그와 같은 관계에서 출생한 아이가 곧 다윗의 할아버지인 오벱이다(룻 4:17).
남편의 형제된 의무를...다 행할 것이요 - 즉 '계대 결혼'(繼代結婚, Levirate Marriage)의 의무를 다하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계대 결혼이라 함은 만일 결혼한 형제가 후사(後嗣)없이 죽은 경우 다른 형제가 형제된 의무로서 이 죽은 형제의 과부된 아내와 결혼하는 제도를 가리킨다. 이 계대 결혼의 풍습은 모세보다 훨씬 이전의 이스라엘 사회와 고대 근동 사회에 널리 퍼져 있었던 풍습이었으나(창 38:8-11), 모세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율법으로 성문화(成文化)되었다. 계대 결혼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1)죽은 형제를 대신하여 대(代)를 이어줄 후사를 낳아 줌으로써, 그 형제의 이름과 기업을 가문(家門)과 지파 내에서 보존해 주기위함이었다. (2)이스라엘 여인이 이방 남자와 결혼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3)홀로 남아 의지할 데 없는 과부를 제도적으로 보살펴 주기 위함이었다.
===25:6
첫 아들로... 후사를 잇게 하여 - 여기서 '잇게 하다'에 해당하는 '쿰'(* )은 '지탱하다', '성립하다'(잠 15:22), '일어나다'(17:8)등과 같은 다양한 뜻이 있으나, 여기서는 쓰러진 가문(家門)을 다시 '일으키다'는 의미로 쓰였다(Pulpit Commentary). 그런데 이와 같은 역할은 계대 결혼에 의하여 태어난 첫아들이 수행하였다. 즉 첫아들은 죽은 형제의 아들로 간주되어 족보에 대신 이름이 올려졌으며 또한 그 기업을 상속하였다 한다(Talmud).
그 이름을...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 계대 결혼의 가장 큰 목적이다. 실로 자손 번성을 하늘(신)의 축복으로, 반면 가문의 대가 끊어지는 것을 하늘의 저주로 여기는 것은 비단 이스라엘인뿐 아니라 세계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현상이다(시127: 3,4).이러한 연유에서 고대로부터 자연적으로 발달한 것이 축첩(蓄妾)제도이기도 하다(창 16:1,2). 이에 대해 한편에서는 타 동물에 비해 성장기와 독립기가 10배 이상이나 긴 인간이 인생 말년에 가서야 겨우 이루어 놓은 사회적 기반과 부(富)따위를 죽음과 함께 타인에게 넘겨 줄 수 없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더욱 더 갖가지 방법으로 후사를 얻으려 하는 것이 보편적 인간 심리라는 지적도 있다.
===25:7
성문 장로 - '성읍 장로'(8절)로도 불리우는 이들은 이스라엘 각 성읍에서 개정(開廷)되는 법정의 재판관을 가리킨다<21:1-9 강해, 성경에 나타난 장로직>. 한편 이스라엘의 재판 제도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각 마을에서 열리는 일반 법정이고 다른 하나는 중앙 성소에서 열리는 고등 법정이다. 그런데 각 마을에서 열리게 되는 일반 법정의 장소가 바로 마을 성문이며<17:5> 그 재판을 주관하던 재판관들이 곧 마을 장로들이었으므로 '성문 장로'라 칭하였던 것이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6:18주석을 참조하라.
나아가서 말하기를 - 계대 결혼을 해야 할 상황에 놓인 사람이 그것을 회피할 경우, 결혼을 거절당한 미망인이 그 사실을 법정에 정식 고발하는 것을 가리킨다.
===25:8
성읍 장로들은 그를 불러다가 이를 것이며 - 계대 결혼을 거절당한 여자의 고발이 접수되면, 재판관들은 곧 법정을 개정한 후 피고를 소환하여 고발 내용의 사실 여부를 심문할 의무가 있었다. 이때 피고가 결혼을 거절한 것이 사실로 밝혀지면, 재판관들은 다시 한번 그 남자에게 계대 결혼이 갖는 목적과 의미를 충분히 설명해 주면서 거기에 따를 것을 종용하였다 한다(Keil).
내가...즐겨 아니하노라 하거든 - 이와 관련하여 메튜 헨리(Mattthew Henry)는, 본규정은 그 당시 관례적으로 내려오던 계대 결혼의 풍습으로 인하여 자칫하면 생겨날지 모르는 억지 결혼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op. cit. p.827). 즉 계대 결혼의 의무가 있는 자라 할지라도 상대방 여자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혹은 다른 이유로 결혼을 원치 않을 경우에는 애정없는 억지 결혼을 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 곧 본문의 규정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계대 결혼 거부자에 대한 공개적인 멸시와 모욕 조치(9,10절)는 공동체적 사회 생활에서 도저히 그 사람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그 같은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 따라서 본문의 규정들은 형제의 가문과 기업을 보존시켜 주기를 거절하는 자에 대하여 '사회적 제재를 가하기 위한 규정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형사 처벌이 뒤따르지 않은 것으로 볼 때, 이 계대 결혼은 '도덕적 사랑의 의무 규정'이라 봄이 좋을 것이다(Keil).
===25:9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 본 규정은 원래 땅 소유자가 자기 소유의 땅을 발로 직접 밟음으로써, 그 토지에 대한 자신의 소유권을 확인하고 주장하였던 고대 공증(公證) 풍습에서 유래된 행위이다. 그리고 자신의 토지를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는 자는 자신이 신고 있던 신을 벗어 상대방에게 건네 주었다 한다(Keil & Delitzsch). 따라서 계대 결혼을 거절한 남자의 신을 벗기는 것은 이제 그가 더이상 형제의 기업을 이을 자격이 없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상징적 행위(룻 4:7, 8)였음을 알 수 있다(F.J.Dake, Hupfeld). 그런데 이에는 다분히 여자가 상대방 남자를 조소하고 경멸하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Pulpit Commentary). 왜냐하면 성경상에서 맨발의 상태는 치욕과 조소 및 비천한 상태를 상징하기 때문이다(삼하 15:30; 사 20:2,3).
그 얼굴에 침을 뱉으며 - 유대 랍비들이 이 말이 실제로 얼굴에다 침을 뱉으라는 뜻이 아니라, 그의 '면전에서' 침을 뱉으라는 뜻이라고 해석하였다(Keil, Talmud). 아뭏든 이는 계대 결혼을 거절함으로써, 형제 된 의무를 기피한 자에게 모욕과 수치를 가하는 일종의 공개적 징벌이었음에는 분명하다(레 15:8;민12:14;욥 30:10; 사 50:6).
===25:10
신 벗기운 자의 집 - 그 의미상 '별 볼일 없는 집안', '하찮은 가문'이란 뜻이다. 부함으로써 형제의 가문이 끊기는 일이 초래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계대 결혼을 거부할 경우, 일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집안 전체에까지 불명예가 돌아가는 것은 크나큰 치욕이 아닐 수 없었다. 한편 이것은 당시 히브리 사회가 개인 보다는 가문과 공동체 위주로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25:11,12
음낭을 잡거든...손을 찍어 버릴 것이고 - 성기(性器)는 그 사람의 상징이자 가장 중요한 신체 부위이며 치명적인 급소이기도 하다. 따라서 아무리 곤경에 처한 자기 남편을 구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할 지라도, 다른 남자의 성기를 잡아당기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에 대한 커다란 모독임과 동시에 생명에 대한 위협 행위이다. 또한 성기는 자손을 생식하는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성기가 위해(危害)를 당한다는 것은 곧 생식 기능이 위협받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는 가문(家門)의 계승을 대단히 중요시 여기던 고대인들에게 있어서 심각한 사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므로 타인의 성기를 공격하는 자에 대하여서는 그 손을 잘라 버리는 것과 같은 중벌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많은 학자들은 여자가 다른 남자의 성기를 잡아당기는 행위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음란과 호색(好色)이 게재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엄벌로 다스렸었다고 풀이하기도 한다(Calvin, Dake, Lange, Matthew Henry). 그러나 후일 유대 랍비들은 손을 찍는 대신 그에 상응하는 벌금형을 내렸다(Commentary).
네 눈이 그를 불쌍히 보지 말지니라 - 19:13 주석 참조.
===25:13
같지 않은 저울추(* , 에벤 와아벤) - 직역하면 '한 돌과 또 한 돌'이란 뜻이다. 즉 히브리인들은 무게를 달 때 돌로 만든 저울추를 사용하였는 바, 이는 동일한 저울추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가리키는 관용적 표현이다. 즉 부정직한 자들은 서로 같지 않은 두 개의 추를 주머니에 간직하고 있다가, 물건을 살 때에는 큰 추로 무게를 측정하여 정량보다 많은 양을 거두어 들이고, 물건을 팔 때에는 작은 추를 사용하여 정량보다 적은 양을 줌으로써 부당 이득을 취하였던 것이다(Keil). 따라서 공정한 상거래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도량형기(度量衡器)의 정확성이 요구되었는바, 이에 대하여 성경도 누차 강조하고 있다(레 19:35, 36; 잠 20:10; 21:6; 암 8:5).
===25:14
네 집에...두지 말 것이요 - 앞서의 "너는 주머니에... 넣지 말 것이며"라는 말과 대구를 이루는 말로, 곧 같지 않은 도량형기는 가지고 다니면서 사용해서도 안 될 뿐 아니라, 집에다 그런것을 둠으로써 유혹의 소지를 안고 있어도 안된다는 강한 경고이다(Lange). 성경이 우리에게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고 권면하는 까닭도 처음부터 우리로 하여금 이처럼 그릇된 길로 빠질 수 있는 일체의 여지를 배제토록 하기 위함이다.
===25:15
그리하면...네 날이 장구하리라 - 비단 일개인을 향한 축복이라기 보다는 이스라엘 사회 전체에 대한 축복으로 보아야 한다. 서로 공정한 도량형기(度量衡器)를 사용하므로써 이웃간에 상호 믿고 화목할 수 있는 사회가 구현된다면(레 19:35,36), 그 자체가 축복일 뿐 아니라 그 사회가 장구(長久)할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25:16
무릇 부정당히 행하는 자는...가증하니라 - 비록 사람이 사람을 속여 부당 이득을 취할 수는 있을지라도,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된다(시 33:13,14).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정치 못한 도량형기 따위로 불의의 재물을 모으는 것은 하나님을 엄수히 여기는 가증스런 행위로, 스스로의 멸망을 자초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잠 21:6).
===25:17
너희가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 출애굽 제 1년 2월 말경, 이스라엘 백성들이 호렙산 근처의 르비딤에 이르렀을 때를 가리킨다(출 17:8-16).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 - 아말렉 족속은 에서의 손자인 아말렉의 후손들이다(창 36:12). 이들 족속은 팔레스틴 남쪽 광야에서 시내 반도 사이를 배회하며 약탈을 일삼았는데, 특히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을 집요하게 괴롭혔었다(출 17:8-12; 민 14:45; 삿 3:13;삼상 30:1). 여기서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도 그러한 것 중의 하나로, 가나안을 향해 진군하는 이스라엘을 방해했을 뿐 아니라 행군 후미에 처진 유약자(幼弱者)들을 기습 공격하여 무참히 살륙한 사건(18절; 출 17:8-16)을 가리킨다.
===25:18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 아말렉 족속의 잘못이 근본적으로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정의해 주는 말이다. 즉 그들의 잘못은 그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했다는데 있지 아니하고, 그와 같은 행위가 하나님께 대한 도전행위였다는데 있는 것이다. 즉 그들은 애굽의 권세를 꺽고 홍해를 갈라 마른 땅이 되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출 7-14장)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심을 분명 들었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공격하였으니, 그것은 곧 하나님의 전능성을 모독하는 중대한 범죄 행위가 되었던 것이다.
뒤에 떨어진...쳤느니라(* , 자나브) - 직역하면 '꼬리를 자르다', '꼬리를 치다'는 뜻으로, 비겁하게도 상대방 행군 대열의 가장 뒤쪽을 기습적으로 습격하여 무자비하게 살륙하는 행위를 가리킨다(Keil).
===25:19
여호와께서...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 아말렉 족속의 멸절을 이처럼 가나안 정복후로 미루도록 하신 것은 혹자가 생각하듯 당시로서는 아말렉 족속이 너무 강하여 이스라엘이 당해낼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기만 하면, 이스라엘 중 가장 연약한 자들만으로도 능히 아말렉을 섬멸할 수 있으셨다.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이 완수해야 할 선결 과제는 곧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 밖에 거주하고 있는 아말렉 족속의 멸절을 그 이후로 연기토록 하신 것이다.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할지니라 - 여기서 '이름'에 해당하는 '제케르'(* )는 '자카르'(기억하다, 표하다)에서 온 말로 '기념물', '회상' 또는 '기억'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러한 의미를 보다 충실히 살려 본절을 번역한다면 '아말렉 족속을 모조리 멸절시켜서 그들에 대한 기억조차 세상에서 없어지도록 하라'가 된다. 한편 '이름'을 뜻하는 일반적인 히브리어는 '제케르'가 아닌 '쉠'(* )이다(창 2:11;5:2;출 1:1;레 24:16).
너는 잊지 말지니라 - 이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잊지않고 반드시 아말렉 족속을 멸절시키게 하기 위한 다짐 말인 동시에, 후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성취되는지 주목하게 하기 위한 말이다. 즉 본절은 '너희는 잊지 말고 하나님의 명령을 시행하라 그리고 또 잊어버리지 말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 말씀을 성취하시는지를 살펴보라'는 뜻이다. 이 명령 그대로 후일 아말렉 족속은 사울 왕에 의해(삼상 15장), 그리고 시므온 자손에 의해(대상 4:39-43), 그리고 마침내는 에스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에 3:1; 7:9,10; 8:11-13) 완전히 멸절당하고야 말았다.
의인은 의롭다 하고 악인은 정죄할 것이며 - 기록에 의하면, 구약 시대에도 재판상의 부정이 있었으며 재판관이 타락하여 돈에 매수되는 사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16:19; 잠 17:23; 사 1:23). 그런데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사회의 선악 기준을 어지럽게 하는 범죄이자 하나님의 공의에 위배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재판관이 사심없이 오직 공의(公義)에 따라 재판을 진행하라고 강조하고 있다(출 23:6-8).
===25:2
재판장은...자기 앞에서 때리게 하라 - 유대 전통에 의하면, 태형(笞形)의 집행시에는 재판정의 수석 재판관이 입회하여 본서 28:58, 59 및 29:9을 큰 소리로 봉독하였으며 태형 후 맨 마지막에는 "그러나 주께서도 자비가 충만하셔서 저들의 죄를 사하셨느니라"는 말로 끝맺음 하였다고 한다(Mishna).
죄의 경중대로 여수히 - '여수히'에 해당하는 '미스파르'(* )는 '세다', '기록하다'는 말에서 온 단어로 곧 '일정하게', 또는 '적당한 수로'(KJV, by a certain number)라는 뜻이다. 여기서는 범죄자가 저지른 죄에 비해 너무 무거운 형벌이나 또는 그 반대로 지나치게 가벼운 형벌을 가하는 것과 같은 형평에 어긋난 처사를 하지 말라는 강조적 의미로 쓰였다. 따라서 모든 죄악은 거기에 따른 적절한 징벌이 가해져야 한다는 것이 곧 율법의 공의로운 정신이다<1-4절 강해, 성경에 나타난 형벌의 종류>.
===25:3
사십까지는 때리려니와 - '40'이란 숫자는 성경에서 종종 '심판'과 '연단' 또는 '시험'을 의미하는 상징수로 사용된다(창 7:12; 출 24:18;민 13:25; 마 4:2; 행 1:3).그러므로 40대의 매를 때리는 것은 곧 죄에 대한 심판을 뜻함과 동시에 선한 길로 인도하려는 연단의 방편을 의미한다(Keil) . 그런데 후대에 이르러 유대인들은 태형을 집행할 때 40에서 하나를 감한 39대까지만 때렸다. 그 이유는 혹시라도 계수(計數)과정에서 착오가 생겨 40대의 매를 초과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Pulpit Commentary). 후일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던 중 다섯 번이나 맞았다는 매가 바로 그것이다(고후 11:24). 한편 혹자(Maimonides)는 여기서 유대인들이 태형(笞形) 집행시 최고 30대까지 정한 이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즉 그것은 태형 집행시 유대인들이 태형 도구로 세가닥으로 된 채찍을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14번을 때릴 경우, 40대를 초과하여 42대를 때린 셈이 되었기 때문에 13번, 곧 39대까지만 때렸다는 것이다(Pulpit Commentary, Matthew Henry's Commentary). 여하튼 본 규정은 당시 이방 국가에서처럼 인간을 무자비하게 때림으로 해서 사람을 불구로 만든다든지 혹은 죽게 되도록 만드는 경우를 미연에 방지 시킨 규정이다. 따라서 만일 40대 이상의 형벌이 가해질 정도로 중한 범죄이면, 재판관은 차라리 그를 처형시켜야 했다.
천히 여김을 받게 할까 하노라 - 칼빈(Calvin)은 여기서 '천히 여김을 받게 하다'는 말을 '너무 심한 매질을 하여 흉측한 불구의 몸이 되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해석하였다. 이 해석이 정확한 해석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여하튼 본절은 범죄에 대해 마땅히 징벌함으로써 정의 구현과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고 할지라도, 타인의 인격을 송두리째 짓밟는 행위는 허용될 수 없음을 강조하는 규례임에는 분명하다. 비록 범죄자라 할지라도 그 기본 인권만은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 성경적 가르침인 것이다(Matthew Hanry).
===25:4
곡식 떠는 소 - 여기서 '곡식을 떤다'는 것은 곡식의 타작을 가리킨다. 팔레스틴에서는 대개 두 가지의 타작법(打作法)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그 중 하나는 편편한 널판지에 구멍을 많이 뚫고 그곳에 날카롭고 단단한 돌을 박은 타작기를 당나귀나 소로 하여금 타작할 곡식 위로 끌고 다니게 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평평한 바위나 고르게 다진 타작마당에 곡식 단을 펴놓고 막대기나 도리깨로 두들겨 타작하는 방법이다(삿 6:11).
입에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 - 앞서 언급한 방법대로 소를 이용하여 탈곡할 경우, 소가 곡식 낟알을 주워 먹는 사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는 것은 비록 짐승이라도 그 수고한 대가를 받는 것이 마땅함을 가르쳐 준다. 따라서 이는 보상의 일반 원칙을 언급한 일종의 격언인데, 예수께서 "전도자가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하다"(마 10:10)고 한 것이나, 사도 바울이 "교회 사역자들이 교회로부터 응분의 대가를 제공받는 것이 마땅하다"(고전 9:9-14; 딤전 5:18)고 한 것도 바로 이러한 원리에 근거한 것이다. 아뭏든 회교권 국가에서는 오늘날에도 이같은 가르침에 입각, 탈곡 작업에 동원되는 가축의 입을 망으로 씌우지 않고 자유롭게 놓아 두는 것을 볼 수 있다(Robinson).
===25:5
형제가 동거하는데 - 칼빈(Calvin)은 사촌 미만의 사람이 계대 결혼(繼代結婚, Levirate Marriage)을 할 경우 근친 상간죄(레 18:6-18)에 해당되므로, 여기서의 '형제'란 친형제가 아닌 사촌 이상의 가까운 친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칼빈의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 레 18:16의 "형제의 아내의 하체를 범치 말라"는 조항은 살아 있는 형제의 아내와 관계하는 것을 금한 것이지 이미 죽은 형제의 아내를, 더구나 아무런 후사(後嗣)가 없는 경우에 한해, 특별한 취지하에 취하는 계대 결혼을 금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그리고 여기서 '동거하다'는 말은 반드시 한 집에서 같이 사는 경우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의 아내를 데려가기에 크게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인접 지역에 사는 경우도 포함하는 말이다(창 13:6; 36:7).
아들이 없거든 - 문자적인 의미는 그대로 남아(男兒), 곧 '아들'(벤, * )만을 뜻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죽은 형제에게 아들 대신 딸이라도 있을 경우 그 딸이 아비의 기업을 이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민 27:4-7; 36:8). 그러므로 70인역(LXX)과 벌게이트역(Vulgate), 그리고 KJV등은 본절을 '아이가 없거든'(and have no child)으로 적절히 번역하고 있다.
그 남편의 형제가...아내를 삼아 - 이같은 계대 결혼에 있어서,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경우로는 유다의 둘째 아들 오난과 그의 형수 다말 간의 예를 들 수 있다<창 38:1-11 강해, 계대 결혼법>. 그러나 당시 오난은 그와같은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가 자기 자손이 되지 못할 것을 알고서는 고의로 땅에 설정(泄精)하다 하나님의 진노를 사 죽임당했었다(창 38:6-10). 다음의 경우로는 룻과 보아스 간의 예를 들 수 있는데, 그와 같은 관계에서 출생한 아이가 곧 다윗의 할아버지인 오벱이다(룻 4:17).
남편의 형제된 의무를...다 행할 것이요 - 즉 '계대 결혼'(繼代結婚, Levirate Marriage)의 의무를 다하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계대 결혼이라 함은 만일 결혼한 형제가 후사(後嗣)없이 죽은 경우 다른 형제가 형제된 의무로서 이 죽은 형제의 과부된 아내와 결혼하는 제도를 가리킨다. 이 계대 결혼의 풍습은 모세보다 훨씬 이전의 이스라엘 사회와 고대 근동 사회에 널리 퍼져 있었던 풍습이었으나(창 38:8-11), 모세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율법으로 성문화(成文化)되었다. 계대 결혼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1)죽은 형제를 대신하여 대(代)를 이어줄 후사를 낳아 줌으로써, 그 형제의 이름과 기업을 가문(家門)과 지파 내에서 보존해 주기위함이었다. (2)이스라엘 여인이 이방 남자와 결혼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3)홀로 남아 의지할 데 없는 과부를 제도적으로 보살펴 주기 위함이었다.
===25:6
첫 아들로... 후사를 잇게 하여 - 여기서 '잇게 하다'에 해당하는 '쿰'(* )은 '지탱하다', '성립하다'(잠 15:22), '일어나다'(17:8)등과 같은 다양한 뜻이 있으나, 여기서는 쓰러진 가문(家門)을 다시 '일으키다'는 의미로 쓰였다(Pulpit Commentary). 그런데 이와 같은 역할은 계대 결혼에 의하여 태어난 첫아들이 수행하였다. 즉 첫아들은 죽은 형제의 아들로 간주되어 족보에 대신 이름이 올려졌으며 또한 그 기업을 상속하였다 한다(Talmud).
그 이름을...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 계대 결혼의 가장 큰 목적이다. 실로 자손 번성을 하늘(신)의 축복으로, 반면 가문의 대가 끊어지는 것을 하늘의 저주로 여기는 것은 비단 이스라엘인뿐 아니라 세계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현상이다(시127: 3,4).이러한 연유에서 고대로부터 자연적으로 발달한 것이 축첩(蓄妾)제도이기도 하다(창 16:1,2). 이에 대해 한편에서는 타 동물에 비해 성장기와 독립기가 10배 이상이나 긴 인간이 인생 말년에 가서야 겨우 이루어 놓은 사회적 기반과 부(富)따위를 죽음과 함께 타인에게 넘겨 줄 수 없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더욱 더 갖가지 방법으로 후사를 얻으려 하는 것이 보편적 인간 심리라는 지적도 있다.
===25:7
성문 장로 - '성읍 장로'(8절)로도 불리우는 이들은 이스라엘 각 성읍에서 개정(開廷)되는 법정의 재판관을 가리킨다<21:1-9 강해, 성경에 나타난 장로직>. 한편 이스라엘의 재판 제도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각 마을에서 열리는 일반 법정이고 다른 하나는 중앙 성소에서 열리는 고등 법정이다. 그런데 각 마을에서 열리게 되는 일반 법정의 장소가 바로 마을 성문이며<17:5> 그 재판을 주관하던 재판관들이 곧 마을 장로들이었으므로 '성문 장로'라 칭하였던 것이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6:18주석을 참조하라.
나아가서 말하기를 - 계대 결혼을 해야 할 상황에 놓인 사람이 그것을 회피할 경우, 결혼을 거절당한 미망인이 그 사실을 법정에 정식 고발하는 것을 가리킨다.
===25:8
성읍 장로들은 그를 불러다가 이를 것이며 - 계대 결혼을 거절당한 여자의 고발이 접수되면, 재판관들은 곧 법정을 개정한 후 피고를 소환하여 고발 내용의 사실 여부를 심문할 의무가 있었다. 이때 피고가 결혼을 거절한 것이 사실로 밝혀지면, 재판관들은 다시 한번 그 남자에게 계대 결혼이 갖는 목적과 의미를 충분히 설명해 주면서 거기에 따를 것을 종용하였다 한다(Keil).
내가...즐겨 아니하노라 하거든 - 이와 관련하여 메튜 헨리(Mattthew Henry)는, 본규정은 그 당시 관례적으로 내려오던 계대 결혼의 풍습으로 인하여 자칫하면 생겨날지 모르는 억지 결혼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op. cit. p.827). 즉 계대 결혼의 의무가 있는 자라 할지라도 상대방 여자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혹은 다른 이유로 결혼을 원치 않을 경우에는 애정없는 억지 결혼을 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 곧 본문의 규정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계대 결혼 거부자에 대한 공개적인 멸시와 모욕 조치(9,10절)는 공동체적 사회 생활에서 도저히 그 사람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그 같은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 따라서 본문의 규정들은 형제의 가문과 기업을 보존시켜 주기를 거절하는 자에 대하여 '사회적 제재를 가하기 위한 규정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형사 처벌이 뒤따르지 않은 것으로 볼 때, 이 계대 결혼은 '도덕적 사랑의 의무 규정'이라 봄이 좋을 것이다(Keil).
===25:9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 본 규정은 원래 땅 소유자가 자기 소유의 땅을 발로 직접 밟음으로써, 그 토지에 대한 자신의 소유권을 확인하고 주장하였던 고대 공증(公證) 풍습에서 유래된 행위이다. 그리고 자신의 토지를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는 자는 자신이 신고 있던 신을 벗어 상대방에게 건네 주었다 한다(Keil & Delitzsch). 따라서 계대 결혼을 거절한 남자의 신을 벗기는 것은 이제 그가 더이상 형제의 기업을 이을 자격이 없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상징적 행위(룻 4:7, 8)였음을 알 수 있다(F.J.Dake, Hupfeld). 그런데 이에는 다분히 여자가 상대방 남자를 조소하고 경멸하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Pulpit Commentary). 왜냐하면 성경상에서 맨발의 상태는 치욕과 조소 및 비천한 상태를 상징하기 때문이다(삼하 15:30; 사 20:2,3).
그 얼굴에 침을 뱉으며 - 유대 랍비들이 이 말이 실제로 얼굴에다 침을 뱉으라는 뜻이 아니라, 그의 '면전에서' 침을 뱉으라는 뜻이라고 해석하였다(Keil, Talmud). 아뭏든 이는 계대 결혼을 거절함으로써, 형제 된 의무를 기피한 자에게 모욕과 수치를 가하는 일종의 공개적 징벌이었음에는 분명하다(레 15:8;민12:14;욥 30:10; 사 50:6).
===25:10
신 벗기운 자의 집 - 그 의미상 '별 볼일 없는 집안', '하찮은 가문'이란 뜻이다. 부함으로써 형제의 가문이 끊기는 일이 초래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계대 결혼을 거부할 경우, 일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집안 전체에까지 불명예가 돌아가는 것은 크나큰 치욕이 아닐 수 없었다. 한편 이것은 당시 히브리 사회가 개인 보다는 가문과 공동체 위주로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25:11,12
음낭을 잡거든...손을 찍어 버릴 것이고 - 성기(性器)는 그 사람의 상징이자 가장 중요한 신체 부위이며 치명적인 급소이기도 하다. 따라서 아무리 곤경에 처한 자기 남편을 구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할 지라도, 다른 남자의 성기를 잡아당기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에 대한 커다란 모독임과 동시에 생명에 대한 위협 행위이다. 또한 성기는 자손을 생식하는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성기가 위해(危害)를 당한다는 것은 곧 생식 기능이 위협받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는 가문(家門)의 계승을 대단히 중요시 여기던 고대인들에게 있어서 심각한 사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므로 타인의 성기를 공격하는 자에 대하여서는 그 손을 잘라 버리는 것과 같은 중벌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많은 학자들은 여자가 다른 남자의 성기를 잡아당기는 행위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음란과 호색(好色)이 게재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엄벌로 다스렸었다고 풀이하기도 한다(Calvin, Dake, Lange, Matthew Henry). 그러나 후일 유대 랍비들은 손을 찍는 대신 그에 상응하는 벌금형을 내렸다(Commentary).
네 눈이 그를 불쌍히 보지 말지니라 - 19:13 주석 참조.
===25:13
같지 않은 저울추(* , 에벤 와아벤) - 직역하면 '한 돌과 또 한 돌'이란 뜻이다. 즉 히브리인들은 무게를 달 때 돌로 만든 저울추를 사용하였는 바, 이는 동일한 저울추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가리키는 관용적 표현이다. 즉 부정직한 자들은 서로 같지 않은 두 개의 추를 주머니에 간직하고 있다가, 물건을 살 때에는 큰 추로 무게를 측정하여 정량보다 많은 양을 거두어 들이고, 물건을 팔 때에는 작은 추를 사용하여 정량보다 적은 양을 줌으로써 부당 이득을 취하였던 것이다(Keil). 따라서 공정한 상거래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도량형기(度量衡器)의 정확성이 요구되었는바, 이에 대하여 성경도 누차 강조하고 있다(레 19:35, 36; 잠 20:10; 21:6; 암 8:5).
===25:14
네 집에...두지 말 것이요 - 앞서의 "너는 주머니에... 넣지 말 것이며"라는 말과 대구를 이루는 말로, 곧 같지 않은 도량형기는 가지고 다니면서 사용해서도 안 될 뿐 아니라, 집에다 그런것을 둠으로써 유혹의 소지를 안고 있어도 안된다는 강한 경고이다(Lange). 성경이 우리에게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고 권면하는 까닭도 처음부터 우리로 하여금 이처럼 그릇된 길로 빠질 수 있는 일체의 여지를 배제토록 하기 위함이다.
===25:15
그리하면...네 날이 장구하리라 - 비단 일개인을 향한 축복이라기 보다는 이스라엘 사회 전체에 대한 축복으로 보아야 한다. 서로 공정한 도량형기(度量衡器)를 사용하므로써 이웃간에 상호 믿고 화목할 수 있는 사회가 구현된다면(레 19:35,36), 그 자체가 축복일 뿐 아니라 그 사회가 장구(長久)할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25:16
무릇 부정당히 행하는 자는...가증하니라 - 비록 사람이 사람을 속여 부당 이득을 취할 수는 있을지라도,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된다(시 33:13,14).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정치 못한 도량형기 따위로 불의의 재물을 모으는 것은 하나님을 엄수히 여기는 가증스런 행위로, 스스로의 멸망을 자초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잠 21:6).
===25:17
너희가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 출애굽 제 1년 2월 말경, 이스라엘 백성들이 호렙산 근처의 르비딤에 이르렀을 때를 가리킨다(출 17:8-16).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 - 아말렉 족속은 에서의 손자인 아말렉의 후손들이다(창 36:12). 이들 족속은 팔레스틴 남쪽 광야에서 시내 반도 사이를 배회하며 약탈을 일삼았는데, 특히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을 집요하게 괴롭혔었다(출 17:8-12; 민 14:45; 삿 3:13;삼상 30:1). 여기서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도 그러한 것 중의 하나로, 가나안을 향해 진군하는 이스라엘을 방해했을 뿐 아니라 행군 후미에 처진 유약자(幼弱者)들을 기습 공격하여 무참히 살륙한 사건(18절; 출 17:8-16)을 가리킨다.
===25:18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 아말렉 족속의 잘못이 근본적으로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정의해 주는 말이다. 즉 그들의 잘못은 그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했다는데 있지 아니하고, 그와 같은 행위가 하나님께 대한 도전행위였다는데 있는 것이다. 즉 그들은 애굽의 권세를 꺽고 홍해를 갈라 마른 땅이 되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출 7-14장)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심을 분명 들었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공격하였으니, 그것은 곧 하나님의 전능성을 모독하는 중대한 범죄 행위가 되었던 것이다.
뒤에 떨어진...쳤느니라(* , 자나브) - 직역하면 '꼬리를 자르다', '꼬리를 치다'는 뜻으로, 비겁하게도 상대방 행군 대열의 가장 뒤쪽을 기습적으로 습격하여 무자비하게 살륙하는 행위를 가리킨다(Keil).
===25:19
여호와께서...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 아말렉 족속의 멸절을 이처럼 가나안 정복후로 미루도록 하신 것은 혹자가 생각하듯 당시로서는 아말렉 족속이 너무 강하여 이스라엘이 당해낼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기만 하면, 이스라엘 중 가장 연약한 자들만으로도 능히 아말렉을 섬멸할 수 있으셨다.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이 완수해야 할 선결 과제는 곧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 밖에 거주하고 있는 아말렉 족속의 멸절을 그 이후로 연기토록 하신 것이다.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할지니라 - 여기서 '이름'에 해당하는 '제케르'(* )는 '자카르'(기억하다, 표하다)에서 온 말로 '기념물', '회상' 또는 '기억'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러한 의미를 보다 충실히 살려 본절을 번역한다면 '아말렉 족속을 모조리 멸절시켜서 그들에 대한 기억조차 세상에서 없어지도록 하라'가 된다. 한편 '이름'을 뜻하는 일반적인 히브리어는 '제케르'가 아닌 '쉠'(* )이다(창 2:11;5:2;출 1:1;레 24:16).
너는 잊지 말지니라 - 이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잊지않고 반드시 아말렉 족속을 멸절시키게 하기 위한 다짐 말인 동시에, 후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성취되는지 주목하게 하기 위한 말이다. 즉 본절은 '너희는 잊지 말고 하나님의 명령을 시행하라 그리고 또 잊어버리지 말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 말씀을 성취하시는지를 살펴보라'는 뜻이다. 이 명령 그대로 후일 아말렉 족속은 사울 왕에 의해(삼상 15장), 그리고 시므온 자손에 의해(대상 4:39-43), 그리고 마침내는 에스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에 3:1; 7:9,10; 8:11-13) 완전히 멸절당하고야 말았다.
Previous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