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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 3:1

  어리석도다 - 깨달았던 복음을 의식적 율법과 바꿀 때의 어리석음은 크다.  바울은
사랑하는 성도들을 위하여 채찍을 아끼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들은 사랑하는 형제에게
사랑의 충고를 할 줄 모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 "눈 앞
에 밝히 보임"은 '눈 앞에 계시(啓示)되었다'는 말이다. 곧,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
으사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믿음의 도(道)가 누구나 알 수 있게 그림과 같이 밝히 나타
났다는 것이다.(Zahn).칼빈은 말하기를,"교역자는 복음을 설교할 뿐 아니라, 그설교를
듣는 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보는 듯이 명백히 깨닫도록 해야 된다"라고
하였다.

 

 갈 3:2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하노니"란 문구는 다음과 같이 번
역해야 된다."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배우기 원한다." 여기 배운다는 말(*    
        )은 갈라디야교회 교인들의 체험을 존중히 여기며 또 확실하게 간주하는 의미
이다. 그들이 성령을 받은 사실은, 무엇을 행하여 된 것이 아니고 그저 복음을 들음으
로 된 것이다. 사람이 복음을 들을 때에 성령을 받아 믿음에 이른다. 이 사실을  가리
켜 "듣고 믿음"이라고 한다.롬 10:17참조

 

 갈 3:3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야 - 곧,그들이 복음을 듣고 성령을
받아서 중생하여 믿게 되었는 데, 이제 퇴보하여 육(肉)의 사람 곧, 거듭나지 못한 사
람처럼 율법주의로 돌아가고 말겠는가 하는 문책이다. 물론 그들이 그렇게 될  수  없
다. 한 번 성령을 받아서 거듭난 자는 영원히 구원을 얻고야 마는 것이  성경의  교훈
이다(요 6:39,44). 그러나 표면상으로는 그들이 다시 육체적으로 떨어지는 듯이  어두
어졌으르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갈 3:4

  이같이 많은 괴로음을 헛되 받았느냐 - 곧,갈라디아 신자들이 복음을 믿어  나오는
길에 많은 핍박을 받은 일이 있었는데, 이제 그귀한 복음에서 떠난다면  전에  고생한
것이 가석(可惜)하다는 말이다.

 

 갈 3: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 -  이말은  신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는 뜻과 같다. 이렇게 은혜로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서 구원하여 주실 조건으로 그들의 율법적 행위를 요구하실 리는 만무하다. 그는 우리
가 복음을 듣고 믿을 때에 우리를 값 없이 구원하여 주신다.

 

 갈 3:6,7

  이 귀절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를 얻은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서 은혜로 되는 구
원 교리를 논증한 것이다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 이것은  창15:16을
인용한 것이다. 이 문구의 히브리 원어(*                                         )
를 직역(直譯)하면,"아브람함이 하나님 안에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셨느니
라"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안에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이다.
"하나님 안에 믿었다"는 것은 아브라함이 "네 자손"(기독 신자들)의 수효가 하늘의 별
과 같이 많으리라고 하신(창15:5)하나님의 약속(메시아 약속)을 믿고, 하나님 자신 안
에 자기를 맡기고 안식한 것을 말한다. 이런 신앙의 대상과  내용은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이 신앙의 대상 곧, 그리스도(그의 義)를 아브하함만을 위하여 나타나신
것이 아니고, 그 한 건(件)을 조종(祖宗)으로 하고 후에 그같은 칭의건들이 수다할 것
을 가리킨 것이다. 다시 말하면 , 그와 같은 제도로 칭이될 자들의 수가 하늘의  별의
수처럼 많을 것을 예언하는 것이다.

 

 갈 3:8

  성경을 미리 알고 - (1)"성경"을 의인시(擬人視)한 것은 성경이 그 모든 부분에 있
어서 마치 의식 있는 인격처럼 서로 연라 또는 조화되어 있음을  표현하려는  것이다.
(2)"미리 알고"란 말(*                  )은 이스라엘이 율법을 받기 전에 이미 아브
라함에게 주신 약속에 이미 이방의 구원을 포함했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말함으
로 율법을 자랑하는 유대주의자들의 교만한 말을 막는다(Luther).

 

 갈 3:10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 - 이 말은 율법을 행해야 구원 얻는 다는 제도에 매인 자들
을 가리킨다.
   저주 아래 있나니 - 곧,저주를 피할 수 없는 제재(制裁)아래 매였다는 뜻이다.  여
기 "저주"란 말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영멸(永滅)에 이름을  의미한다.(마 25:41;롬
 4:15).
   기록된 대로 - 이것은 신 27:26의 기록을 가리킨다.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 "항상 행
한"다는 것은 모든 율법의 조례(條例)들로써 자신을 제재하기 위하여 자기의 전 존재
(全存在)와 행위를 율법 안에 내주(內住)시킴을  가리킨다(Greijdanus). 이것이야말로
법화(法化)한 생활이니 사람으로서야 누가  이렇게  될 수 있겠는가? 그런즉 사람으로
서는 율법을 완전히 지키기가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저주 아래에 있지 아니하는
자 그 누구리요! 그러므로 사람은  다만  외래(外來)으 구원을 받기만 함이 절대 필요
하였던 것이다.


 갈 3:11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 바울은 이 말씀을 합 2:4에서 인용한
다. 롬 1:17과 히 10:38에도 같은 말씀을 인용하였다. 바울은 중요한 교리를 밝힐  때
마다 성경(구약)말씀자르 인용했다. 그것을 보아도 우리는 바울의 성경관을 알 수  있
다. 바울은 성경이 글자대로 하나님의 말씀이요 변치 않는 진리라고 믿었다. "의인"은
어떠한 사람인가? 그는 자기가 죄인인 줄 아는 자이다.(눅 18:13-14). 그는 자기 밖에
서 하나님이 주시는 의를 신앙에 의하여 받는 자이다. 이렇게 그가 생명을 얻은  방법
은 믿음 뿐이다.


 갈 3:12

  본질은 사람이 율법을 행하여 의를 이룬다는 것이,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것과
다른 것임을 보여준다.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 율법의 길에서 난 것이 아니며, 믿음의 길은 율
법의 길에서 난 것이 아니다. 이 두 길은 그체계(體系)를 서로 달리 한 것이다.

 

 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 "우리를 위하여"란 말의  헬라  원어(*         )는
'우리를 대신하여'란 뜻이다(Greijdanus).
   율법의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 우리가 율법을 지키지 못한 관계로  율법은
우리를 정죄하고 또 저주하게 된 것이다(10절).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이 저주를 받으신 고로 이 저주는 우리에게서 떠나게 되었다. "속량하셨"다 함은 값주
고 사서 풀러 냈다는 뜻이다. 곧,그리스도께서 그 보혈로 우리의 죄값을 내시고  정죄
와 저주에서 우리를 풀어 내시어 구원하셨다는 것이다.(롬 8:1-3).
   기록된 바 - 이것은 신 21:23을 가리킨다.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 나무에 달려 죽음은 저주의 죽음을  의
미한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나무 형틀)위에서 죽으셨으니 이것이  저중의  죽음이란
말이다.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우리 때문에 저주를 받으심은 지극한 사랑이다.

 

 갈 3:14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
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 "하브라함의 복"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
하신 천구 기업(天國基業)을 의미한다(롬 4:13,8:17)."우리"란 말은 이방인과  유대인
들 가운데 있는 모든 기독신자들을 가리킨다. "성령의 약속"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
시마 하신 약속이다.(Greijdanus).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다 함께 믿음으로 이  약속에
참여하여 같은 성령을 받은 것이다(율 2:28; 행 10:47,11:15,15:8).

 

 갈 3:15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 곧,인간 사회의 풍속대로 말한다는 것이다. 롬 3:5,6:19
고전 9:8 찬조.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 여기
서부터 17절까지는 강이유 논법(强理由論法)에 의한 어투로 되었다. 거짓된 인간들 사
이에 맺은 언약도 한 번 정한 뒤에는 폐할 수도 없고 변할 수도 없거든, 하물며  신실
하시고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하나님께서 인간과 맺으신 언약이랴 말할 것이 무었이
랴? 17절 참조.

 

 갈 3:16

  본절에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 내용을 말하고, 다음 절에서는  그것
이 폐지될 수 없음을 논한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 이 문구의 헬라 원문을 직
역하면 다음과 같다. "그 약속들이 아브라함에게 말씀되었는데 또한 그  자손에게도니
라."     여기서     "그     약속들"이라고     복수를     사용한      까닭이다(창
12:1-3,15:1-7,18,17:1-14,18:18-19,22:15-18).그런데 이 약속들은 한결 같이  신약교
회가 믿음으로 받을 구원 축복을 내용으로 한 것이다. 즉,이 약속들은 모두  그리스도
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것이다. "또한 그 자손에게도니라"고 부기(附記)한 이유는,  아
브라함이 죽은 뒤에도 그 약속들은 계속해서 그의 자손인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완전히
실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아브하함과 맺으신 이 언약은  아브라함의  별세
후에도 그대로 영구히 존속하고 있고, 그것을 폐할 아무 다른 제도가 있을  수  없다.
그 후에 모세의 율법이 왔으나 그것은 사람에게 구원을 약속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재래의 제도(아브라함과 맺으신 구원 언약)에 대하여 측면적(側面的)으로 임(臨)한(*
것 뿐이다( 롬 5:20). 곧, 그것은 옆으로 와서 인간에서 죄를 알게 하는 것 뿐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또 하나의 구원 제도가 아니며, 본래 믿음으로 구원 얻는 제도를 폐한
것도 아니다.

 

 갈 3:17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 삼십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 본절의  이
론은 본래 있던 언약을 후에 온 율법이 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본래의  구원  제도가
언약의 제도 곧,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 얻는 제도인데, 그것을 율법이 폐지시키지  못
하였고 ,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완성하신 것이다.
   "사백 삼십년."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압박 받은 연수이다. 아브라함이
약속을 받은 때부터 모세가 율법을 받은 때까지의 기간은 더 긴 세월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이 "사백 삼십년"은 아브라함이 약속을 받은 때부터 계산된 것이 아니고, 그
의 받은 약속에 들어 있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수난한 연수이다.(출 12:40).

 

 갈 3:18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 -
어떤 학자들은 이 문구를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곧,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기
시작할 때에"라고 한다.  이렇게 번역될 때에 이 문구는, 하나님께서 이 시점(時點)에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그의 창조 역사는 2절부터 시작할 터인데,
그 일을 여기서 서론적으로 말한 것 뿐일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번역은  문맥과
부합하지 않는다.  2절에 있는 "땅이"란 말의 히브리 원어(*         )는 "또 땅이"란
뜻인데, 여기 "또"란 말은 그 번역(위에 소개된 1절에 대한 번역)과  통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1절의 번역은 우리 한역이 잘 되어 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실제로 천
지를 창조하신 것을 말한다.
   "창조"란 말은 히브리 원어로 빠라(*      )니,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
서만 쓰는 말이다(G. Ch. Aalders, De Goddelijke  Openbaring  in  De  Eerste  Drie
Hoofdstukken Van Genesis, p. 207).  이 말이 여기서는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서  천
지를 지으신 사실을 가리킨다.
   1절 말씀에 있어서 중요한 말은, "하나님"(*        =엘로힘)이란  말이다.   천지
만물 창조에 대하여 기록하는 모세의 목적은, 인간을 섭리하시며 구원하시며 벌하시는
이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심을 알려 주려는데 있다.  성경은 구속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데, 먼저 구속자(救贖者)가 누구이심을 말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구속자는 만
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만물을 창조하신 자가 아니고서는 죄 때문에 멸
망한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시 121:1-2 ; 행 4:23-31).


 갈 3:19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 "범법함을 인하여"란 말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의 죄 많은 사실을 알게 하려고'라고 의미이다(Greijdanus). 이것은 롬 7:7-8의  사상
과 부합하는 해석이다. 인간은 죄를 알게 하는 율법의 작용을 통해서만 비로소 자기의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처지를 알고, 자신을 그리스도에게 맡기게 된다. "더한 것이라."
이 말의 헬라 원어(*                  )는 재래의 구원 제도에 일시적 부속물로 붙어
있음을 뜻하고, 구원의 원제도(原制度)의 한요소로 편입(編入)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본래의 구원 제도에 대하여 측면적으로 와서 임무를 마친 뒤에는 지나간다. 롬
5:20 참조.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 - 이것은 구약과 신약이 가르친 대
로 율법 받은 때의 형편을 가리킨다. 곧, 율법은 하나님이 직접 오셔서 주신 것이  아
니고, "천사들"을 경유하고 또한 모세를 "중보"(仲保)로 하여 선포된 것이다(행 7:53;
히 2:2). 출 24:12,32:15-16,34:28-29을 보면,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두  돌판에  친수
(親手)로 기록하셨고, 모세의 율법 받은 경위를 설명하는 가라디아서 본문은 그가 "천
사들로 말미암아"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율법은 하나님이 직접 주신 것이 아니고  간
접으로 주신 것이니 만큼, 그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이 세상에 오셔서 임마누엘(*    
       )로서 주시는 믿음의 구원 제도와 다른 것이다.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 "자손"이란 말의 헬라 원어(*        
         )는 "그 자손"이라는 말인데 특수한 자손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크
레다너스는 말하기를, 아브라함의 다른 자손들(기독신자들)은 모두 이 특수한  자손을
말미암아 생겼다고 하였다. 율법이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었다는 것은  (1)
율법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모두 성취되었다는 것과, (2) 율법의  방식(方式)
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3) 율법의 정죄(定罪)하는 일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만 있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갈 3:20

  중보는 한편만 위한 자가 아니나 오직 하나님은 하나이시니라 - 이 귀절의  의미는
해득(解得)하기 어려우므로 여러가지 의견들이 있느데 무려 440가지나  된다고  한다.
그 가운데 라이트푸트의 해석은 취할 만하다. 그의 해석에 의하면, 율법이  중보자(仲
保者)를 통하여 우리에게 왔는데, 그것은 쌍방(인간편과 하나님편)의 책임을 같고  고
려하여 조약적(條約的)으로 성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약적으로 맺은 것은  한편에
서 책임을 이행하지 않을 때에 무효로 돌아간다. 그러나 하나님이 솔선적으로 주체(主
體)가 되시어 사람에게 복 주시기로 하신 것은 "약속"이요 조약이 아니니, 그것은  하
나님께서 홀로 성취해 나가시므로 변하지도 않고 폐하지도 않는 은혜의 제도이다.  그
것이 "하나님께서 친히 단독적으로 그것을 세우시고 약속의 대상인 인간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 인간은 다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받으 뿐이다. 그러므로  이  약속
체제의 축복을  성립시키시므로 그것은 언제든지 그대로 되고야 만다. 그것은  신실성
없고 무력한 인간의 영향을 받지 않으므로 변동되는 일이 결코 없다.

 

 갈 3:21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 위에  말한
것과 같이 율법은"하나님의 약속"에 대하여 부속적(附屬的)역할을 할 뿐이고 방해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며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  헬
라원문에는 이 문구 초두에 "왜 그런고 하면"(*      )이란 이유 접속사가 있어서  율
법이 약속 체제에 거스름 이 없는 이유를 밝힌다. 만일 율법이 살게 하는 길이었더면,
그것은 약속 체제와 충돌하며 거스릴 뻔하였다. 성격이 다른 두 가지 살게 하는  길이
있다면, 그것들은 각기 거부하며 모순을 가져올 것이다. 즉, 만일 은혜로  구원  받는
길과 반대되는 행위로 구원 받는 길이 있다면, 그것들은 서로 충돌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실 때에 살게 하는 길 곧, 구원으 길로 주시지  않았다.  따라서
그것은 약속 체제에 부속적 역할로 협조하는 것 뿐이다. 그 협조의 내막은 다음  귀절
이 설명한다.

 

 갈 3:22

  성경이 - 이것은 성경의 일부분을 가리킴보다 성경 전체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
라고 한다(Zahn). 그러나 리츠만(Lietamann)은 이것이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가리켰다고 한다. 첫째 해석이 옳다.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 곧, 성경에 의지하면 율법이 모든 것을  죄  야래
가두었다는 말이다. "모든 것"이란 말은 크레다너스의 해석에 의하면, 온 인류(그들의
造와 思言行을 포함하여)와 또한 그들의 주관 아래 있고 그들 때문에 저주 받은 온 세
상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
하나님께서 율법에 의하여 모든 것을 정죄 아래 또는 죄의 종으로(할 수 없는  처지에
떨어진 자로)드러나게 하신 목적이 있다.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힘으로는 구원
받을 수 없음을 알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완전히 돌이키도록 하시려는 것이다.

 

 갈 3:23

   믿음이 오기 전 - 이것은 구약 시대를 라리키는데, 그 시대에도  믿음은  있었으나
(갈 3:6-9,14;요 8:56;롬 4:11,12),그리스도께서 오신 신약 시대처럼  믿음의  내용이
명백히 드러나지는 못하였던 것이다. 그 시대는 신약 시대에 비교하면 의식적(儀式的)
이고 그림자와 같은 것이었다. 이처럼 그 두 시대를 가리켜 "믿음의 시대"라고 할  만
하다(Greijdanus)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 22절 해석 참조


 갈 3:25

  믿음이 온 후 - 이는 그리스도께서 오신 신약시대로서 믿음으로 구언 얻는  제도가
완성된 시대를 말한다.

 

 갈 3: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 이것은 기독 신자가  그리스
도를 믿음으로 그와 연합함을 의미한다(롬 6:3-11).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 "하나님의 아들"은 헬라 원어로 휘오이 데우(*        
         )인데, 출생 관계의 의미를  가리키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된  자의  지위
곧,(1) 율법의 노예된 자리에서 해방되어, (2) 하나님의 양자(養子)가 되고, (3) 영적
자유가 있고, (4) 영원한 기업(천국의 복)을 누릴 특권을 가진 사실과 관련된  명칭이
다. 4:6-7가 롬 8:15-17 참조.

 

 갈 3:27

  그리스도오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 - "그리스도와 합하
여"란 말의 헬라 원어(*                     )는 "그리스도  안으로"라고  번역된다.
그러므로 기독신자가 받는 "세례"는 그리스도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마한다. 그런 세례를 받은 그는, 이제부터 그리스도만으로 살고 그리스도만으로 자랑하며,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전부(全部)가 되어진다. 이것은 세례를 참되이 받은 신자에 대해서  가리킨 말이다. 세례를 참되이 받은 신자는 마치 옷으로 몸의 부끄러움을 가리운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 감싸여 있어서 하나님 앞에서 정죄와 수치를 면한다. 그뿐 아니라,  그는 빛나는 옷을 자랑하듯이 그리스도를 자랑한다. 물론 그 자랑은 교만한 자랑이  아니다(롬 8:1)

 갈 3:28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나이니라 - 이것은 신자들이 다함께 하나님의 자녀인 점에서 마찬가지이고, 천국의 기업을 누릴 특권이 동일함을 말한다.

 갈 3:29
   이 귀절에 대하여는 롬 4:23-24를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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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고린도전서 박윤선 주석, 고린도전서 14장
113 고린도전서 박윤선 주석, 고린도전서 15장
112 고린도전서 박윤선 주석, 고린도전서 16장
111 고린도후서 박윤선 주석, 고린도후서 01장
110 고린도후서 박윤선 주석, 고린도후서 02장
109 고린도후서 박윤선 주석, 고린도후서 03장
108 고린도후서 박윤선 주석, 고린도후서 04장
107 고린도후서 박윤선 주석, 고린도후서 0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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