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6:1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청지기는 주인을 대리하여 모든 가사를 맡아 처
리하는 자니 보통 종들과는다른 것이다. 한 예를 들면 요셉은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
의 청지기였다.
눅 16:2
네 보던 일을 셈하라.- 그의 보던 사무를 남에게 내 맡기기 위하여 문서와 회계를
밝히라는 뜻인데 그 청지기는 허물로 인하여 면직당한 것이다. 이 비유는 (1) 인간이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축복을 잃어 버리게된 것을 가리킨 비유라고 말하는 학설
이 있으나 적당하지 않고 (2) 비트링가(Vitringa)는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던 그 때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잘못하므로 지도권을 잃어버린 것을 가리킨다
고 하였다. 이학설이 옳다면 이 비유는 세리와 죄인들에 대한 그들의 각박한 태도를
책망하는 것이다.(눅15:9) 그들은 세리와 죄인들을 마땅히 동정했어야 한다. 곧, 면직
된 청지기는 그 면직된 때부터 그 주인의 및진 자들에게 대하여 부드러운 태도를 가졌
다고 하였으니, 그처럼 바리새인들도 저희가 멸시하는 죄인들에 대한 각박한 태도를
버려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책망이란 말이다. 그러나 이 해석은 우리 본문의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9절)는 말씀과 부합하지 않는다. (3) 이 배유의 주요한 뜻은,
신자가 내세의 상급을 얻기 위하여 이 세상에 있는 동안 그 소유한 물질로 그 구제함
이 지혜롭다는 것이다. 이의미가 8절 하반부에 명백히 나타난다.
눅 16:3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그 청지기는
자기의 어쩔 수 없는 처지를 발견한다. 인간은 먼저 자기의 무력을 알아야 한다. 그래
야 비로소 타력(하나님의 힘)을 신앙한다. 그래서 그는 이제 남의 힘으로 살려고 결심
하였다.
눅 16:4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청지기는 주인에게 빚진 자들에게 선심 쓰면 후
일에 그들이 자기를 대접하여 원조할 것을 내어다 본다. 이것은, 남의 것을
가지고 선심 써서 인심을 얻어 자기의 전정을 좋게 예비한 지혜이다. 그리
스도 신자들도 하나님의 재물(신자 자신이 소유한 재물은 하나님의 것임)로
써 남들을 도와주면 그들의 영원한 처소 곧,천국에서 갚음을 발는다(9절 하
반부 참조)
눅 16:5-7
여기 있는 말씀은, 그 "청지기"가 옳지 않게 그 주인의 재물을 가지고 그 주인의
빚진자들에게 선심 쓰는 것을 가리킨다. 그의 방법은 불의하지만, 그의 앞길을 우려하
여 에비적으로 대책을 세운 것만은 지혜롭다. 예수님은 이 지혜를 좋게 생각하시는 의
미에서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눅 16:8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주인으
로서 이와 같이 관대한 것은 이 세상에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다만 하나님의 관대하
신 성품을 가리키는 비유다.
이 세대의 아들들, - 이것은 이 세상에 속하여 하나님도 모르고 내세도 모르는 불신자
들을 가리킨다. 그들이 이 세상의 생활을 위하여서는 지혜롭게 예비한다.
빛의 아들들, - 이것은 진리를 알며 하나님과 내세를 아는 참 신자들을 이름이다. 이
세상만 아는 불신자들은 이 세상의 생활을 위하여 경영하며 예비함에 전력을 다한다.
그 점에 있어서는 그들이 신자보다 앞선다. 그 대신에 신자들은 내세를 위하여 예비하
는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눅 16:9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 여기 재물이란 말은 헬라 원어로 마모나스(*
)이니 금전만 아니라 기타모든 이 세상 소유물들을 이름이다. (im Ravvin nicht
blass Geld im eigentlichen sinn,,,,, sondern sie ganze Habe eines Menschen,
alles, was Geldwert fur ihn hat, oder alles, waser ausser dem eigenen Leib und
Leben besitzt.- P Biller beck A.W.I.S. 434)
불의의 재물이란 것은 위의 비유가 말한 바와 같이 주인의 재물을 맡은 자가 그 주인
의 뜻대로 그것을 쓰지 않고 제 뜻대로 씀이 된 재물이다.이 세상의 재물은 다 불의하
다. 그 이유는, 이 세상 사람 중에는 재물이 하나님의 것임을 무시하고 자기의 뜻대로
쓰는 자들이 대다수이기 떠문이다.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재물을 맡은 자들이 기들 자
신의 영원한 장래 곧, 내세를 위하여 남들에게 선심 쓰는 것을 기뻐하신다.
없어질 떠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여기 없어진다는 말은 헬라 원
어로 에클리페라고 하는데 크레다너스는 이것을 별세(육신이 세상 떠남)의 의미로보았
다. 영원한 처소(원어의 직역대로 영원한 장막들)로 영접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재물을
가지고 남들에게 선심 쓴자가 내세에 이르러서 상급과 영광을 받게 된다는 말씀이다.
눅 16:10-12
여기서 예수님은 우리가 재물을 가지고 남들을 도와주어야 할 것을 가르치셨다.
재물은 천국의 것들에 비교하면, (1) 지극히 작은 것이고(10절), (2) 불의한 것이며
(11절) (3) 남의 것이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뜻-12절) 그 이유는, 이 세상에서 우리
가 한번 반드시 소유를 빼앗기는 심판을 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국의 것은 큰것이고(10절), 참된 것이고(12절), 너희의 것 곧, 자기 소유이
다. 그 이유는 누구든지 천구그이 것을 한번 내세에서 받으면 영원히 잃지도 않으며
심판도 안 받기 때문이다. (12절)
눅 16:13
본절에 대한 설교참조 마 6:24해석 참조.
눅 16:14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돈을 좋아하는 자는 필랄귀로이(*
)라고 하는데 은을 사랑하는 자들이란 말이다. 그러나 돈을 사랑한다는 의
미이다. 비웃거늘.- 헬라 원어는 엑뮌테리조(* )라고 하는데 엑이
란 말로써 강미를 가진다. 그러므로 그건, 보통류의 조롱이 아니고 심각한 것이어서
커다란 파동을 일으킨 것이다.
눅 16:15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높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하는 행동이다. 그 이
유는,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만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서만 창조된 것인데 그가 자기를 영화롭게 한다면 그것이 어찌 죄악이 아니랴?
시115:1에 말하기를 "여호와의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하였다.
눅 16:16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침입한다는 말
은 헬라 원어로 비아제타이(* )라고 하는데, 힘쓰므로 들어간다는
말이다. 곧 아무런 인종 차별이나 기타 외모의 차별이 없이 누구든지 힘쓰는 대로 들
어가게 되는 천국이란 의미를 가진다. 그렇다고 믿음을 제외하고인력으로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는 의미는 아니다. 이것은 바리새인들이 그 외부적 간판만 의지하고 개인적
책임을 잊은 태도를 반대하시는 의미의 말씀이다.
눅 16:17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의 없어짐이 쉬우리라. - 이것은 바리새인을 경계
하시는 말씀이다. 윗 말씀에서 천국은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 함이 바리새인들에게는
율법이 폐지 된다는 말로 오인될 듯하므로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여기 붙이신다. 그
뿐 아니라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접하면서 율법에 대한 관념이 천박 하였으므로 그가
이 말씀을 하신 듯하다.
눅 16:18
아내를 버리고 다른데 장가 드는 자.- 이는 음행한 연고 없는 아내를 버리고 다
른 아내를 취함이니 그것은 물론 제 7계를 범함이다.
버리운 이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마5:32해석 참조.
눅 16:19
자색 옷과 고운 베옷.- 이것은 그 때에 매우 값 비싼 의복이었다.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이것을 보면, 그는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이 세상
의 안락만 좋아하는 자이다.
눅 16:20
"나사로"- 는, 히브리 원어로 엘아자르(* )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도움"
이라는 의미이다. 이 거지를 도움은 오직 하나님에게로부터 올 뿐이다. 이 이름은
그를 돕는 자가 없는 불쌍한 처지를 가리킨다.
대문.- 퓔로- 나(* )니 화려한 집에 있는 대문을 의미한다. 나사로는 그 부
자의 내실 문 앞에도 못가고 개처럼 대문 밖에 겨우 몸을 의탁할 따름이다.
눅 16:21
나사로의 믿음은 겸손에 나타났다.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어떤 사본에는 이 어
귀앞에 "아무도 그에게 무엇을 주지 않더니"라고 하였다(Greijdanus). 그가 너무도 주려서 개들
이나 주어먹는 떡 부스러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것을 보면 그의 심령이 매우 겸손하였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크레다너스(Greijdanus)는 말하기를, "그 개들이 그의
헌데를 핥을 때에 개발이 헌데에 닿기도 하였을터이니 그의 고통은 더하였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Daar bij zullen deze honden niet slechts met hunne tong-en over deze zweren heengeggan
zijn, maar het voorkwam ook hunno tanden wel indie zweren Gezet hebben. Dit doen
der
honden zal daarom de ellede van Lazrus n-og vermeerderd hebben, en zijne smart ver groot.-
Lucas II. p. 793).
"심지어"란 말의 헬라 원어 알라 카이(* )는, 확실히 그 개들이 그를 괴롭게 한 것을
표시한다. 특별히 근동 지방의 개들은 사납다. 플러머(Plummer)는 말하기를, "그는 옷도 변변
히 입지 못하였고 그의 헌데들은 싸매지 못했고 그에게 핥으려고 오는 개들을 물리칠 힘도 없었
다"(He was scantly clad and his sores were not b-ound up, and he was unable to drive
away
the unclean dogs when they came to li-ck them.-Commentary on the Gospel of St. Luke
p.392)
라고 하였다. 클로스테만(K-lostermann)은 여기 "심지어"란 말의 뜻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곧, "그것은,개가 오히려 그에게 자비를 표시한다는 뜻도 아니고 치료의 행동을 나타낸다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그가 이 불결한 개들이 접촉도 참아 견딘 것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우리 본문을 원어에서 자역하면, "헌데"란 말은, 실상 "헌데들"이란 말이니 그의 종처가 많았
던 것이 알려진다. 이 거지는 개의 압박도 견디는 겸손을 가졌다. 그는 말없는 성자였다. 모
든 것에 견디고 불원천 불우인(하늘을 원망치도 않고 사람을 허물하지도 않음)으로 침묵하였다.
천국에 들어간 후에 지옥에 간 부자의 무리한 청원에도 그는 침묵하였다(24절 참조). 플러머
(Plummer)는, 나사로의 침묵의 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곧, "그는 부를 인간들에게
나누어 주신 하나님에게 대하여원망하지 않았고, 그 부자가 돈을 그릇되게 사용함에 대하여도 불
평을 가지지 않았다.
그는, 내세에 들어간 후 자기와 그 부자의 형편이 변동된 일에 대하여 어떤 통쾌감을 발표하지
도 않고, 음부에 간 그 부자가 그(나사로)를 사환으로 청할 때에도 그는반항하지 않았다"고 하였
다. 그런데 이 두사람의 내세 생활의 상태는 어떠하냐? 그것은 다음과 같다.
눅 16:22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이것은 아브라함이 간 곳에 동참함이니 곧, 낙원에 감을 이름이
다. 거기에 들어가려면 천사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눅 16:23
음부.-설교 참조.
눅 16:24
불러 가로되.- 이것은 소리쳐 말한다는 뜻이니, 그 고통이 심할 뿐 아니라 그에게
는 복된 세계가 너무 멀리 있는 고로 그는 소리를 높였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이
것은 그의 불신앙을 보인다. (1)그는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아브라함을 의뢰하였으
며, (2)그는 혈통으로 아브라함이 자기의 조상인 것을 의지하던 자였다.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성도 아닌 자는 언제나 죄감이 없다. 그
는 음부에 가서도 죄감을 못가지고 그저 쾌락만 사모한 것이다. "손가락 끝에 물"한
방울은 극히 적은 위안인데, 지옥에는 그것도 없으므로 그는 그것을 찾는다. 그의 이
말을 보아서 사람이 죽은 후에도 그 의식(깨닫는 마음)은 여전함을 알 수 있다.
눅 16:25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이것은, 그 부자가 세상 떠난 후에 불행
하게 된 근본 원인을 말하지 않고, 다만 그 표면 이유만을 지적함이다. 인간이 구원
을 얻고 못 얻는 근본 원인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못받은 사실에만 달려 있다. 그
러나 그 표면 이유는, 그가 이 세상에서 가졌던 생활의 어떠함에 달려 있다(시 17:14,
15).
눅 16:26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이것은 천계와 음부와의 간격이다.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천국에서 음부에 거래할 수 없을 것은 당연하다. 만
일 천국 사람이 지옥 사람을 돕기 위하여 거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누가 가르친다면 그
사람은, (1)인간이 하나님보다 자비롭다는 망상, (2)하나님이 주신 지옥 형벌이 가혹
하다는 망상, (3)그 지옥 간 자의 죄를 적게 보는 망상, (4)하나님의 성결을 낮게 평
가하는 망상을 가지는 자이다.
천국과 지옥과의 사이에 융통성이 없음은, 하나님의 그 크신 자비와 그 높으신 공의
와 그 무한하신 지혜로서의 최후적 결론의 산물이니 그것을 변경시킬 더 큰 사람, 더
큰 공의, 더 큰 지혜가 어디 있으랴? 불신앙자와 신앙자가 서로 도와주기도 하고 도
움 받기도 할 기회는 오직 현세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서로 돕는 일과 도움 받는
일을 현세에서 힘써야 된다.
눅 16:27
이 귀절의 말씀은, 나사로를 다시 살려 자기 부친의 집으로 보내어 달라는 뜻이다.
음부에 간 부자는 이와 같이 끝까지 하나님을 찾지 않고 자기 조상 아브라함 곧, 사
람을 찾아 도움을 받고자 한다. 이것은 물론 불신앙이다. 위의 24절 해석 참조.
눅 16:28
형제 다섯.- 율리케르(Julicher)는, 여기 다섯 형제와 및 그 음부에 간 자를 합하
여 여섯이란 수를 만들고 그것을 불신앙의 무리의 상징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 학설
은 확신하기 어렵다. 요 4:18에, 사마리아 여인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다는 말씀을 보
아서 다섯이란 수는 죄와 관련된 듯하다. 증거하게 하여.- 여기 "증거한다"는 말은,
원어로 디아말튀레타이(* )라고 하는데 "성과 있게 증거함"을 이름이다.
클로스텔만(Klostermann)은, 이 말이 사후 보상에 대하여 증거하며 경고함을 의미한
다고 하였다(Zu Warnen durch den Hinweis auf dem Ausgleich nach dem Tode).
눅 16:29
모세와 선지자들.- 이것은 구약 성경 전부를 가리킨다.
눅 16:31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무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온 사람이 복음을 전하면 누구나 잘 듣고 회개할 듯하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은 법이다. 부활한 사람이 증거보다 성경의 증거가 오히려 크다. 그 이유는, 신앙은, 내부적 변화 곧, 심령의 변화로 되는 일이니 오직 성경을 통하여 일하시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서 이루어지고, 단지 외부적 현상인 부활의 기적만으론는 될 수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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