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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렘 23:1,2

  양 무리를 멸하며 흩으는 목자 - (*                                       ). 이
들은 그 때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왕, 방백, 제사장, 거짓  선지자  등)인데,  그들은,
"목자"라는 선한 간판 밑에서 "양(유대 민족을 비유함)을 흩으는" 악행을 하였다.  그
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가리켜, "양을 멸하며 흩으는 목자"라고 드러내신다.
   몰아내고 돌아보지 아니함. - 곧,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양(유대민족)을 우리  안
에 보호해야 될터인데 도리어 몰아낸다. 이것은, 그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유대 민족이
외국 땅으로 끌려 가게 됨을 비유한다.

 

  렘 23:3,4

   남은 자(*         =쉐에리드). 이들은, 환난 중에서 생존(生存)한 사람들을  의미
한다. "그 우리로 돌아오게"함은, 포로 되었던 유대인들을 본토로 돌아오게  할  것을
가리킨 것이다. 그러나 이 예언은, 언제든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을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는 신약의 구원 운동을 가리키기도 한다.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축이 나지 아니하리라. - 진정한 목자는 양 떼를  먹여  줄
뿐 아니라 그들에게 평안과 안식을 준다.
   위에 말한 것 같이, 흩어진 양 떼를 모으는 구원 사역을 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심
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특별히 3절 초두의 "내가"(*    )란 말을, 우리는 주목해야
된다. 땅 위에 있는 거짓 목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해롭게 하지만(1,2), 하나님은 그
대로 두지 않으시고 필경 간섭하시어 자기 양을 찾으신다. 그러므로 땅 위에 있는  하
나님의 백성은, 그 어떤 난관 중에서도 낙심할 것은 없다. 이 세상은 죄악  세상이고,
또 하나님의 백성의 원수가 많은 곳이니 만큼(예수님의 말씀대로 성도의 원수는 한 집
안 식구들 중에도 있음), 성도는 부절히 곤란을 당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를 구원해 주신다.

 

  렘 23:5,6

  위에 기록된 것과 같이, 유대 민족이 바벧론에서 해방될 일에 대한 예언에 뒤이어,
여기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신약 시대의 구원 운동을 예언한다. 이렇게 이 두 가지
예언이 한자리에 나오는 이유는, 바벧론에서 유다 민족이 해방된 사건 그 자체도,  신
약의 구원 운동을 지향하는 예언 사건이기 때문이다.
   의로운 가지. "가지"란 말은 히브리 원어로 체마크(*      )니,  보통  가지(枝)가
아니고 베어 버리고 남은 뿌리에서 돋아난 "싹"을 가리킨다. 이것은, 다윗 왕통에  속
하는 보통 왕이 아니고 무너진 다윗 왕통에서 새로이 출발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
킨다. 여호와 우리의 의(*               ). 여기서 "의로운 가지"의 별명을 "여호와"
라고 하였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 뿐만 아니고 하나님이시란 의미이다.  그의
"의"(義)의 효과는 무궁한 생명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의로우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의가 되신다(고전 1:30).
   이 부분에 있어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이 새 시대의 구원 특징이 하나님의 단
독사역주의(單獨使役主義)의 구원이라는 것이다. 여기서도 "내가"(*    )  라는  말로
표시되는(5절)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이루신다. "참된 다윗 왕국(그리스도 왕국)은 하
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고, 바벧론 왕의 은혜로 되는 것이 아니다"(A. Weisser,  Das
echte davidsche K nigtum  ist  von  Gottes  Gnaden  und  nicht  von  Gnaden  des
babylonischen K nigs).

 

  렘 23:7,8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집  자
손을 북방 땅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 것
이며. - "맹세"한다는 말은, 여기서 히브리 원어로 요메루(*        )니, 말한다는 뜻
이다. 여기 있는 두 가지의 "맹세" 중에, 이제는 앞에 있는 것을  무시한다는  의미가
아니고, 뒤의 것이 너무 위대함을 생각케 하는 말씀이다. 유대인이 바벧론에서 구원받
은 사건은, 신약 시대의 구원 운동을 표지(表指)하는 것인 만큼, 그 구원 운동은 위대
하기 그지 없다.

 

  렘 23:9

  이 귀절 부터는 거짓 선지자들에 관하여 경고한다. 거짓 선지자들이 예레미야의 시
대에 많이 있었다(5:31, 14:13-18, 26:7-16, 28:1-17, 29:20-32, 37:18-21). 예레미야
의 마음이 "상하며", "뼈가 떨리며", "취한 사람 같"이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1) 거짓 선지자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영감(靈感)이 그에게 임한  까닭이
며(10절 이하에, 그들의 죄악이 기록됨), (2) 그들의 죄악으로 인하여 유대 민족이 수
난(受難)하게 됨이 원통한 까닭이다(10절 하반).

 

  렘 23:10

  이 땅에 행음하는 자가 가득하도다. - 히브리 원문에서는 이 문구의  초두에,  "왜
그런고 하면"이란 말(*   =키)이 있어서 본절부터의 내용이 윗절의 이유인 것을  밝혀
준다. "행음하는 자"는, 영적(靈的)으로 하나님을 배반하는 자들, 곧, 거짓  선지자들
의 예언을 따라 배교한 자들을 가리킨다. 타락한 종교인들은, 흔히  육적(肉的)  음행
죄도 범한다.
   땅이 슬퍼하며 광야의 초장들이 마르나니. - 이것은, 한재(旱災)로 인하여  초목이
말라 버린 비참한 사실을 가리킨다. 이런 것은 그 땅 사람들의 죄악 때문에 임한 천재
(天災)이다. 14:1-9 참조.
   그들의 행위가 악하고 힘쓰는 것이 정직하지 못함이로다. - "그들의 행위"(*     
     =메루차담)란 말은, 그들의 달음질의 향방(向方), 곧, 목적을 가리킨다.  행위의
목적까지 악한 것은 낙오자(落伍者)들, 곧, 타락자들의 특징이다. "그들의 힘쓰는  것
이 정직하지 못"하다고 하였으니, 그들이야 말로 악한 일에 도리어  용감한  자들이다
(9:2). 그들은, 죄악이 관영한 백성들로서 이제 하나님의 벌을 면하기 어렵다.

 

  렘 23:11

   선지자와 제사장들이 다 사특한지라 - (*                               ). 이 문
구의 히브리 원문은, "왜 그런고 하면 선지자와 제사장까지도 더럽혔도다"라고 번역해
야 옳다. 위(9, 10)에 진술된 유대 민족의 타락은, 그들의 지도자들인 선지자들과  제
사장들이 더러워진데 원인을 가진다.
   내 집에서도 그들의 악을 발견하였노라. - 곧, 저 지도층의 인사(人士)들이,  하나
님의 성전에서까지 우상을 섬기는 일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 선지자와 제사장의 타
락이 원인이 되어 유다 민족 전체가 부패해졌다.

 

  렘 23:12

  본 절은, 위에 관설된 종교적 지도자들의 앞길이, 흑암의 길일 것을 예언한다. "흑
암"은 불행, 재앙, 사망, 멸망 등을 상징한다. 여기서 이것은 저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벌과 재앙을 가리킨다. 하나님을 끝까지 반역한 자의 앞길은 어데까지나 비참하다. 암
5:18-20 참조.

 

  렘 23:13,14

  여기서는, 예레미야 시대에 있었던 남북 양국(南北兩國)의 선지자들이  일반적으로
부패한 사실을 지적한다. "사마리아"는 북쪽 나라 이스라엘을 가리키고, "예루살렘"은
남쪽 나라 유다의 수도(首都)이다. 북쪽 나라는 여로보암왕의 그릇된 종교  운동(왕상
12:37-33)으로 위시하여, 혼합주의(混合主義)의 길을 밟아 바알  종교와  타협하였다.
그리고 남쪽 나라의 많은 선지자들은 도덕적으로 타락하였으니 만큼, 사람들의 악행을
조장(助長)시켰다.

 

  렘 23:15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내가 선지자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에
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우리니 이는 사악이 예루살렘 선지자들에게로서 나와서
온 땅에 퍼짐이라 하시니라. - "그들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우리"라  함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겠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에게는 필경 면할 수
없는 재앙의 날이 오고야 만다. 그 때에는 소위 좋다고 하는 것들도 그들에게 쓴 맛을
가져온다(겔 7:19). 그 이유는, 그들이 모든 일의 주재자 되시는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디서나 참된 평안을 맛보지 못한다. 암 5:18-20에 말하기를,
"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
뇨 그 날은 어두움이요 빛이 아니라 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 여호와의 날이 어찌  어두워서
빛이 없음이 아니며 캄캄하여 빛남이 없음이 아니냐"라고 하였다.

 

  렘 23:16-18

  이 부분에서는, 거짓 선지자들의 교훈이 헛된 것임을 지적한다. 그들의 말이  헛된
이유는,
   (1) 그것이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는 까닭이다(16절 하반). 인간의 마음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17:9)이다. 그러므로 그것에서는 인간을 죄에서 구원할 진리
가 전혀 나올 수 없다. 인간은, 자기 눈 앞에 있는 일들도 뿌리 깊이 알 수 없는데 어
떻게 영원한 장래를 관찰할 수 있으랴? 이런 구원에 관한 말씀은  여호와의  입에서만
나올 수 있다.
   (2) 그들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들의 죄악을 조장시키고(17절), 하나님과 정 반대
로 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시기를, 회개치 않는 유대 민
족에게 전쟁의 화를 보내시리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이와 반대로 말하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 라고 하였다. 그들의
이와 같은 말은 하나님과 및 그의 진리에 대한 반역이다. 이런 말을 믿는 자들은 필경
거꾸러질 수 밖에 없다.
   (3) 그들은, 여호와의 회의(會議)에 참예한 적도 없이 말하기 때문이다(18절).  여
기 "회의"란 말은 히브리 원어로 쏘-드(*     )니, "은밀한 교통"을 의미한다. 암 3:7
에 말하기를,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버림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
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라고 하였다.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진정한  비밀을
성령으로 깨달은 적이 없다.

 

  렘 23:"19,20

  보라 나 여호와의 노가 발하여 폭풍과 회리바람처럼 악인의 머리를 칠  것이라  나
여호와의 노는 내 마음의 뜻하는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쉬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말일에 그것을 완전히 깨달으리라. - 여기서는,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벌이
어떠할 것을 보여준다. "나 여호와의 노가 발하여 폭풍과 회리바람처럼 악인의 머리를
칠 것이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거짓 선지자들이 민중에게 안전 보장을  약속하는(17
절) 교만을 파쇄(破碎)하는 목적으로 나온 말씀이다. 그들은 교만하여 회개치 않는 유
대 민족의 미래를 "평안하다"는 말로써 간단하게 결론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와 반대로 장차 수습할 수 없는 역경과 환난이 그들에게 임할 것을 언명(言明)하신다.
그것은 "폭풍과 회리바람처럼" 임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걷잡을 수 없이,  정
신을 못차릴 정도로 임하는 환난이라는 것이다. 거짓 선지자들은 교만하여,  자기들의
머리로 유대 민족의 장래를 간단하게 판정하였다. 이제 "폭풍과 회리바람" 같은  환난
앞에서는, 그들의 머리로써는 어찌할 수 없이 될 것이다. 교만하게 장래를 낙관(樂觀)
하는 거짓 선지자들에게 대하여, 하나님은 필경 "폭풍과 회리바람 처럼"나타나신다.
   "악인의 머리를 칠 것이라". 이 말씀 역시, 교만하게 미래를 낙관하는 거짓 선지자
의 사고 방식(思考方式)을 파쇄(破碎)하실 것이라는 의미이다. 인간들은 머리를  가지
고 미래를 계획하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파괴시키신다. 인간은 오직 하나님만  믿어
야 한다.
   "내 마음의 뜻하는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쉬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역시 거짓
선지자들의 교만을 깨뜨리는 말씀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참 선지자  예레미
야의 예언을 어디까지나 무시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에  뜻하시고
예언하신 바를 끝까지 이루시리라고 하신다. "너희가 말일에 그것을 완전히  깨달으리
라".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되어가는 도중에는 그 성취의 내용을 잘 깨닫지 못하는  사
람도 많다. 그 이유는, 예언 성취는 종종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되며, 또한 여러  사
건을 경유하여 매듭을 짓기 때문이다. 특별히 예레미야가 예언한 바는,  회개치  않는
유대 민족이 바벧론에 사로잡혀 갔다가 얼마 후에 해방되리라고 한 것이다.  이  사건
은, 장차 신약 시대(新約時代)에 이루어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 운동의  모
형(模型)이기도 하다. 그러니 만큼, 그 예언 성취에 대해서는 "말일"(*             
      =아카리드 하야밈=신약 시대)에야 사람들이 "완전히 깨달으리"라고 한다.

 

  렘 23:21,22

   이 부분에서는, 거짓 선지자들이 얼마나 열심으로 활동("달음질")하고 있음을 지적
하는 동시에, 그들의 노력이 헛된 것을 보여준다(22절). 하나님을 위한 효과적인 사역
(使役)은, 사람의 열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사역자를 세우신 사실에 있
다. 하나님은 그 세우신 자와 동행하여 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 부분에 그
가 보내신다는 것과 그의 회의(*     =쏘-드=은밀한 교통))에 참예하는 것의 필요성을
역설하신 것이다.

 

  렘 23:23-25

   이 부분 말씀은, 또 다시 거짓 선지자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한다.  그들이  민중(民
衆)을 속이며 자칭 선지자라고 하였을 때에, 그것은 너무도 명백한 사실 앞에서  스스
로 속은 일이었다. 그들이 남들을 속이려 하나 실상 자신들이 속고 있었다.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며, 저들의 거짓된 행위를 어디서나 깊이 살피고 계시다. 그런데도 불구하
고 저들은, 하나님 없는 세계에 사는듯이 자행자지(自行自止)하며 거짓 예언의 행위를
담대히 행하고 있다. 딤후 3:13에, 사도 바울이 거짓 스승을 가리켜 말하기를,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가까운 데"서도 "하나님"이시고 "먼 데"서도 "하나님"이시니, 그는 "천지에
충만"하신 단 한 분으로서 안계신 데가 없다. 거짓 선지자들은
   "몽사를 얻었다 몽사를 얻었다" - (*                   =칼람티 칼람티)하면서 민
중을 유인하려고 하였다. 일반 민중은 "몽사(夢事)를 얻었다"는데 대하여, 흔히  초자
연적 사역(超自然的使役)으로 인정해 준다. 사람들이 성경 말씀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
하는 경향이 많고, 도리어 "몽사를 얻었다"하는데 대하여는 새로운 주의(注意)를 하게
된다. 이것은 어느 시대에나 있는 부패한 인간성의 잘못된 경향이다.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계시 하심에 있어서, 옛날엔 몽사를 사용하신 일도 없지  않다(창  28:12;  민
12:6). 그러나 그것은, (1) 성문 계시(成文啓示=聖經)가  미완성(未完成)되어  있었던
시대에 약간 있었을 뿐이며, (2) 또한 하나님이 특별히 사용하시는 종들에게 국한하여
그리하셨던 것이다. 성문 계시가 완성된 시대에는, 그의 말씀이 성경에 다 나타나  있
으니 만큼 하나님께서 몽사를 계시의 방편(方便)으로 사용하시지 않는다. 오늘날에 몽
사를 주장하는 일은 거짓 선지자들의 하는 짓이라고 성경에 밝히 가르친다. 신 13:1-3
참조.

 

  렘 23:26,27

  이 두 귀절에서는,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이 그들의 "마음의 간교한 것"과 "몽사"로
성립되었다고 한다. 이것을 보면 그들이, (1) 동사를 얻지 못하고도 민중(民衆)을  속
여 몽사를 얻었다고 한 사실이 드러난다. 그들은, 이렇게 고의적으로까지 남들을 속이
는 자들이다. 다시 말하면, 계획적으로 남들을 속이는 자들이다.  본의(本意)가  아닌
거짓말도 죄인데, 저렇게까지 한 것을 보아 그들이 얼마나 거짓으로 굳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그들이 혹시 실제로 몽사를 얻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계시
(啓示)가 아니고 그들의 "마음"의 산물이었다. 사람이 흔히 일이 많아서 생각이  복잡
하면 몽사를 얻게 된다(전 5:3). 거짓 선지자들이 몽사를 주장한 결과는, 일반 민중으
로 하여금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내 이름")을 잊어버리게 하며 등한히 여기게 만들었
다. 언제든지 하나님에게서 오는 직접 계시(直接啓示)를 원하는 자의 마음은, 이미 완
성하여 주신 기록된 하나님 말씀(聖經)을 등한히 여기게 된다. 이스라엘에는,  예레미
야 시대 이전에도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민중을 바알신에게로 유인하여, 하나님  말
씀을 무시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확실히 알 것은, 기록된 하나님  말
씀을 잊어버리게 하거나 등한히 여기게 만드는 소위 새로운 운동이라는 것은 모두  다
진리에 속하지 않는 헛된 것이라는 것이다.

 

  렘 23:28,29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몽사를 얻은 선지자는 몽사를 말할 것이요 내 말을 받은  자
는 성실함으로 내 말을 말할 것이라 겨와 밀을 어찌 비교하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
라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  이
부분에서는, 하나님께서 몽사(夢事)에 의한 거짓 선지자들의 말과 참 선지자들의 전하
는 하나님 말씀의 가치를 대조(對照)시킨다. 이 점에 있어서 그는 몽사를 "겨"에 비유
하는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을 "성실"(*      =에메드), "밀"(*    =바르), "불"(*  
  =에쉬), "방망이"(*       =팟티쉬)등으로 비유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성실"(참
됨)이라고 함은, 그 말씀이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이"  순수한  진리이기
때문이며(시 12:6), 그 말씀을 "밀"로 비유한 것은, 믿어 순종하는 자의 양식이  되기
때문이며(마 4:4; 히 5:12-14; 렘 15:16), 그것을 "불"과 "방망이"로 비유한 것은, 끝
까지 회개치 않는 자들을 불로 삼키듯이, 방망이로 부서뜨리듯이 멸망 시키기  때문이
다(Calvin).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이렇게 양면(兩面)작용을 가진다.

 

  렘 23:30-32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거짓 선지자들을 벌하실 일에 대하여 역설(力說)하신다.  이
런 역설의 의미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란 말씀이  세  번  나오고,
"치리라"란 말씀이 세 번 나온다. 이렇게 역설하심을 보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임을 알 수 있다.
   "서로 내 말을 도적질하는" - 이란 히브리 원어, 메간네베이 데바라이  이쉬메에드
레에후(*                              )는, "각기 자기의 친구에게서 내 말을  도적
질하는"이라고 번역해야 된다. 이 문구의 의미는 거짓 선지자가, (1) 참 선지자의  말
을 자기 친구(역시 거짓 선지자)를 통하여 비밀히 얻어가지고, 자기의 거짓된 사상(思
想)과 섞어서 사용함을 의미한다. 그가 이렇게 하는 목적은, 간교하게도 자기의  거짓
된 사상을 진리와 같이 보이도록 하려는데 있다. 진리를 섞지 않고 거짓된 사상이  그
대로 선전될 때에는 사람들이 그 거짓된 것을 용이하게 알아보고 배척하게 된다. 그러
나 그것이 진리와 혼합되어 선전될 때에는 사람들이 용이하게 받나니  이것이  위험하
다. (2) 칼빈(Calvin)은 말하기를, 이 문구는 거짓 선지자들이 저희끼리 일치(一致)된
사상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전할 때에도 그것이 그들(사람들)의 가졌던 말씀 신앙을 동
요시켜 없애버리나니 그것이 도적질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이 문구가 위의 두가지  의
미를 다 포함한다고 본다.
   "그들이 혀를 놀려 그가 말씀하셨다" - 고 함은, 그들이 자기들의  인간적  사상을
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이
라고 주장하는 것은, (1) 하나님의 권위(權威)를 인간의 수준으로 낮추어 말하는 교만
이고, 또한 (2) 사람을 하나님의 자리에 높이는 외람된 일이다. 이런 행동은 하나님의
권위를 침해하는 죄악이므로 하나님께서 "내가 치리라"라고 말씀하신다.
   "거짓 몽사를 예언"함은, 몽사(夢事)를 빙자하여 거짓을 퍼뜨리는 악한 선전을  가
리킨다. 마귀는 종종 동사를 빙자하여 사람들을 속인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흔히 몽
사를 하나님의 지시(指示)로 여겨 흥미 있게 생각하는 인습을 마귀가 잘 알기  때문이
다. 하나님께서 거짓 선지자들과 몽사와의 관련성을 이렇게도  많이(23:25,  27,  28,
32) 말씀하심을 보아, 하나님의 말씀을 참되이 전하는 자는, 몽사를 하나님의 지시 라
고 생각하는 것을 금물로 여겨야 된다.

 

  렘 23:33,34

   그 때의 백성이나 지도자들이 예레미야에게 찾아 와서 조롱하기를,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 무엇이뇨" - 하면서 선지자를 괴롭게 하였던 것이다. "엄
중한 말씀"이란 것은, 히브리 원어로 맛사(*      )니 "무거운 짐"이란 뜻인데 여기서
는, 재앙(災殃)에 대한 예언을 의미한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사실상 그 때의 모든 사
람들에게 그들의 죄로 인한 벌이 가까운 장래에 임한다고 거듭거듭 말한 것이다. 그가
여호와에게서 받은 말씀이 그것이었으니, 그 말씀을 반복적(反復的)으로 예언할 것 밖
에 없었다. 사실상 그 시대를 경고할 말씀은 그것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예레미야
서는 바벧론 침략으로 임할 전쟁에 대하여 거의 매장(每章) 반복하듯이 가르친다.  이
런 반복식 예언은, 실상 그 시대 사람들의 회개를 독촉하는 반가운  말씀이었던  것이
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때 사람들은 지도자와 백성이 다 함께 예레미야의  예언을
감사하게 받지 않고, 도리어 조롱하는 의미에서 묻기를,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  무
엇이뇨"라고 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대하여  하
나님은 선지자 예레미야를 시켜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들을 버리리라" - 고 하셨다. 이 대답이야말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직언(直言)하는 선지자의 담력(膽力)이다. 선지자는 담대하다. 그 담
력은 자신(自身)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 말씀에 대한 그의  확신(確信)과  사명감(使命
感)에서 나온 것이다.
   예레미야는, 그들을 버리시는 하나님의 구체적인 방침이 무엇임에  대하여  34절에
진술한다. 곧, 그들("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고 하면서 조롱하는 거짓 선지자와 제
사장과 백성)에게 벌을 내리시겠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 죄  때문에  천벌
(天罰)을 받는다는 경고(警告)를 싫어한다.

 

  렘 23:35,36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시켜서 그 때  유대인들이  예레미야에게
대하여 취할 바 정당한 태도를 보여 주신다. 그것은 이러하니, 곧, 이제부터는  "여호
와의 엄중한 말씀"이라고 하는 조롱의 태도를 취하지 말고, 겸손히 묻기를,
   "여호와께서 무엇이라 응답하셨으며 무엇이라 말씀하셨느뇨" - 라고 하라고 하심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그 강퍅한 마음으로 예레미야의 예언을 미워하며 "엄중한 말씀"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순종하여 회개할 따름이라는 것이다. 만일 그들이 이 경고를 듣지 않고 계속하여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고 조롱하려면 중벌(重罰)을  각오해야 될 것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망령되이(조롱하는 의미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렘 23:37
  이 말씀은, 앞의 35절 말씀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다. 70인역(LXX)에는 이 귀절 말씀이 생략(省略)되어 있다.

  렘 23:38-40
  너희는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말하도다. - 이 말씀의 히브리 원문(*  )을 정역(正譯)하면, "그러나 만일 너희가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고 하면"이라고 함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앞에 말씀하신 경고를 순종치  않고 계속하여 조롱하는 뜻으로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고 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그러므로"란 말은, 그들이 회개치 않고 저렇게 조롱하는 뜻으로 말하는 경우에 가져올 결과를 가리킨다.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1) 그 민족을 "온전히 잊어  버리며", 그 "성읍을...내어버려", (2) 그 민족으로   "영원한 치욕과 잊지 못할 영구한 수치를 당케 하리라" - 라고 하신 말씀대로이다. 이것은, 유대 나라가 바벧론 침략으로 말미암아 파멸될 것을 가리킨다.
  바벧론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와 유다 방백들과  목공들
과 철공들을 예루살렘에서 바벧론으로 옮긴 후에. - 유다  왕  "여고냐"를  위시하여,
"방백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이 바벧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될 일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하여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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