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20:1,2
예레미야는 유대 민족에게 임할 재앙에 대하여 예언한 고로(19:14, 15) 핍박을 받
게 되었다. 그것은, 그가 제사장들의 두목("유사장")에게 매를 맞고 수금(囚禁) 당한
것이다. 제사장 두목으로서 폭력을 사용한 것은, 그 때에 종교가 얼마나 타락한 사실
을 보여 준다. "바스훌"(* )이 예레미야에게 폭행한 이유는 예레미야의 예언
때문이었으니, 그 행동은 하나님의 말씀을 박해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 때에 종교인
들이 그만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형식과 외식(外飾)으로만 종교를 가졌던 것이
분명하다. 진정한 종교의 요점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다.
렘 20:3
다음날 바스훌이 예레미야를 착고에서 놓아주매 예레미야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
께서 네 이름을 바스훌이라 아니하시고 마골밋사빕이라 하시느니라. - 예레미야는 그
를 놓아주는 "바스훌" 앞에서도 그 받은 바 예언의 내용을 굽히지 않고 초지일관(초志
一寬)하여 장차 임할 재앙에 대해 예언할 뿐 아니라, 바스훌 자신과 그 가족과 친구들
에게 재앙이 임할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예레미야가, 사람의 얼굴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직(剛直)한 예언자인 사실을 알려준다(렘 1:17). 하나님의 대언자(代言者)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운명을 같이 한다.
"바스훌이라 아니하시고 마골밋사빕(* )이라 하시느니라". "바스
훌"(* )은 "권세를 확장하는 자"란 뜻인데, 이제부터는 그가 "마골밋사빕"(*
), 곧, "사방에 두려움"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다. 다시 말하면, 그
는 이 새 이름 내용과 같이, 앞으로 무서운 환난을 자신이 당할 것이며, 그 자신이 모
든 두려운 환난의 원인이 되리라고 한다. 그는 선지자를 구타하리 만큼, 사람들로 하
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못하도록 충동한 자였다(6절). 실상 그는, 민족에게 환
난을 가져오도록 한 원인자(原因者)이다.
렘 20:4-6
이 부분에서는 바스훌이 당할 환난의 내용을 말해 준다. 그것은 물론 바벧론의 침
략을 가리키는바(4절), (1) 그가 그의 친구들이 칼에 죽는 것을 볼 것임(4절 상반).
그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에 일당(一黨)이 되어진 친구들을 믿었
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바스훌")의 믿는 바를 없애버리시겠다고 하신다(사
3:1-3). (2) 예루살렘의 모든 소유와 보물이 원수 바벧론에게 탈취 당하리라고 함(5
절). 악인들은 무엇보다도 물질을 의지하므로 그것이 없어지는 것은, 그들에게 죽는
것과 같이 간주된다. (3) 그의 가족들과 그 자신도 바벧론에 사로잡혀 가게 되리라고
함(6절). 하나님보다 가족을 더 사랑하는 거짓 지도자들은 가족이 외국으로 포로되어
가는, 간장이 녹는 듯한 고난을 맛보게 된다.
렘 20:7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 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
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 본
절은, 예레미야의 선지자 된 것이 오직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 몰아 넣으셨기 때문에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말씀에 대하여 어떤 학자들은 말하기를, 이것은, 예레미
야가 하나님에게 대하여 불평한 것이라고 한다. 곧, 그가 선지직을 취한 것은 하나님
의 열원(熱願)에 의한 것인데, 예언직(豫言職)을 실행하는 중 핍박만 받게 됨을 불평
한 것이라 한다. 바스훌이 그를 때리고 가둔 사건(事件) 등은(20:1-2) 그 일례(一例)
이다. 본절의 "권유"란 말(* =파다)이 속인다는 뜻을 가진 것으로 보면 이 귀절
이 더욱 불평의 의미를 가진다. 하나님께서 그(예레미야)를 보호하시겠다고 약속은 하
시고 보호하지는 않으신다는 불평이겠다.
그러나 칼빈(Calvin)은, 여기 "권유"라는 말(* =파다)을 속인다는 뜻으로 번
역하고도 이 귀절 뜻을 불평의 언사(言辭)로 보지 않는다. 그는, 이 말씀을 풍자적(풍
자的)인 언사로 본다. 곧, 타락한 유대인들이 예레미야를 가리켜 "민중을 속이는 자"
라고 하였는데, 예레미야는 그 말을 풍자하여 하는 말이, "내가 민중을 속이는 자라면
주님이 나를 속인 것이지!"라고 한 셈이라는 것이다. 곧, 자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
대로 받아서 민중에게 전하는 것 뿐이라는 뜻이다(O God, if I am an impostor, thou
hast made me so for I have derived from thee all that I have.).
여기서 우리는, (1) 예레미야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는데 주력한 사실을
볼 수 있고, (2)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전하는 사역자의 권위(權威)가 하나님을 대리
(代理)하는 권위라는 것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는 이렇게 하나님의 권위
와 같기 때문에, 성경은 그 말씀의 적은 부분이라도 멸시하는 사람의 죄가 크다고 한
다. 신 12:32에 말하기를,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말을 너희는 지켜 행하고
그것에 가감하지 말지니라"하였고, 계 22:18, 19에는 말하기를,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오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
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
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
시리라"라고 하였다.
렘 20:8
대저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강포와 멸망을 부르짖으오니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
여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 - 본절은, 유대 민족이 예레미야를
조롱하며 핍박하게 되는 원인을 보여준다. 첫머리에, "대저"란 말의 히브리 원어 키(*
)는 이유 접속사(理由接續詞)로써 "왜 그런고 하면"이란 뜻이다. 그가 "말할 때마
다...강포와 멸망을 부르짖"는다 함은, 말할 때마다 유대 민족에게 임할 전쟁(바벧론
의 침략)의 재앙을 말한다는 뜻이다. 그가 하나님에게서 받은 말씀이 그것 밖에 없으
니 그것만 말하였다. 그가 그 말을 거듭한 목적은, 유대 민족으로 하여금 회개케 하려
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때에 그 말씀을 듣는 자들이 달게 듣지 않았다. 타락한 인생
은, 죄악을 지적해 줄 때 싫어하며, 그 죄 값으로 징계 받는다는 경고를 쓴 것으로 여
긴다. 그러나 실상 누구든지 그것을 감심(甘心)으로 받아 회개하면, 도리어 축복을 받
는 법이다. 사람의 죄악에 대한 지적(指摘)과 경고(警告)는, 그렇게 오묘하게도 하나
님의 기뻐하시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범죄자의 생사(生死)를 결단하는 분수령(分水
嶺)이다. 그러므로 잠 28:13에 말하기를,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라고 하였다. 계 2:5, 16, 3:3,
19참조.
렘 20: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
의 중심이 불붙는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 예레미야
가, 그 당하는 핍박이 괴로워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으려 하면, 그의 "중심이
불 붙는 것 같"이 뜨거워졌다. 곧, 그가, 그 말씀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도록 마
음 속에 하나님의 강권(强權)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됨은,
어디까지나 타력(他力=하나님의 힘)에 의(依)한 것이고, 자기의 영웅심(英雄心)이나
기타 주관적 가능성(主觀的可能性)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주관적 방면에는, 낙
심(落心)과 의기저상(意氣沮喪)과 기피(忌避)하는 심리와 무능력 밖에 없었다.
우리가 이 점에 있어서도 또 다시 느끼는 것은, 예언자의 전한 말씀이 어디까지나
객관계(客觀界) 곧,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고, 예언자 자신의 마음의 산물(産物)이 아
닌 것을 확신하게 된다. 그런데, 예레미야가 그 받은 말씀을 전하지 않으려 하면, 그
의 중심이 불붙는 것과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며, 답답하여 견딜 수 없었음은 무슨 이
유였을까? 그것은 (1) 그가 받은 말씀이 너무도 확실히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기 때문
이며, (2) 그것이 너무도 참되기 때문이며, (3) 성령님께서 그로 하여금 그것을 전하
지 않고는 못견디도록, 마음을 뜨겁게 하시기 때문이다.
렘 20:10
나는 무리의 비방과 사방의 두려움을 들었나이다 그들이 이르기를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 하오며 나의 친한 벗도 다 나의 타락하기를 기다리며 피차 이르기를 그가
혹시 유혹을 받으리니 우리가 그를 이기어 우리 원수를 갚자 하나이다. - 여기서 예레
미야는, 자기가 당하는 모든 위험스러운 일에 대하여 말한다. 그것은 곧, 비방하는 것
과 그를 해하려는 음모(陰謀)였다. "그들이 이르기를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
). 이것은, 예레미야의 원수들이 서로끼리 예레미야에게서 허물을 찾
으면 알려 달라는 뜻이니, 이것은 그를 잡아 죽이려는 음모인 것이다.
"친한 벗도 다 나의 타락하기를 기다리며". 다시 말하면, 그의 친한 친구들도 예레
미야가 어떤 죄를 범하고 거꾸러지기를 원한다는 의미이다. 여기 이른바 "나의 친한
벗"(* )이란 말은, "나의 평화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는 예레미
야와 좋게 지내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이렇게 겉으로는 좋게 지내면서 내막으
로는 예레미야가 넘어지는 것을 원하고 있다. "혹시 유혹을 받"는다 함은, 예레미야가
트집 잡히울 사건이 있게 되리라는 뜻이다. 그들의 이와 같은 태도야말로 구밀복검식
(口蜜腹劍式)의 악한 태도인 것이다. 이것은, 노골적으로 원수 되는 것과 마찬가지의
고통을 예레미야에게 주었을 것이다.
렘 20:11
본절부터 13절까지는, 예레미야가, 위에 말한 것 같은 역경에서라도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사실이 드러난다. 그렇게 원수들이 산더미 같이 일어난 때에는 하나님을 생각
지 못할 장면이었으나, 그는, 하나님을 자기와 함께 하여 주시는 "두려운 용사"(*
=낍볼 아리츠)로 알았으며, 자기를 대적(對敵)하는 자들이 이기지 못할 것을 내
어다 보았다. 그들이 예레미야를 이기지 못할 이유로서는, 예레미야를 대적함이 하나
님을 대적함과 같아서 지혜롭지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수욕을 당"한다 함은 실패를
당한다는 뜻이다.
렘 20:12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
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수하심을 나로 보게 하옵소서. - 여기서도 계속하여 예레
미야의 신앙이 어떠함을 보여준다. 그는 자기의 심사("폐부와 심장"=*
)에 불의함이 없는 사실과, 또는 자기의 사정을 하나님께 고하였다는 사실에 입각하
여, 하나님의 알아 주심을 믿고 안전감을 가진다. 신앙이 없는 자들은, 자기들의 외모
에 나타난 어떤 의(義)와, 주위에 보장되어 있는 어떤 세력을 믿고 비로소 안심한다.
그러나 성도는, 은밀한 데서 보시는 하나님이 그의 편이 되어 주실 사실과, 및 그의
기도가 응답될 사실을 안전 보장으로 삼는다.
렘 20:13
여호와께 노래하라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가난한 자의 생명을 행악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음이니라. - 이 말씀도 계속적으로 예레미야의 신앙을 보여 준다. 그는, 저런
위험한 때에 노래하며 찬양하였다. 그는, 미래의 구원을 벌써 받은 것처럼 느꼈다.
"가난한 자"란 말(* =에브욘)은 핍박 받는 성도(聖徒)를 의미한다.
렘 20:14-16
이 부분에서 예레미야는, 그의 당하는 핍박의 고통을 인하여
"내 생일이 저주(* =아루르)를 받았더라면"(14절)하며, 그의 출생(出生) 소식
을 그 아버지에게 전한 자까지도 "저주를 받았더면"이라고 한다(15, 16). 여기에 난제
가 있다. 윗절에서 신앙으로 찬송하던 예레미야가 어떻게 갑자기 이런 비관에 빠졌을
까? 그러나 이것은 문제될 것 없다. 예레미야에게 여전히 신앙은 있으면서도 그는, 핍
박의 고통 그 자체를 인해서는 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으리라고 생각하게 될만큼 괴로운
것을 묘사하는 것 뿐이다. 이 부분 말씀은 시적 표현(詩的表現)으로써 그 요지(要指)
는, 그의 당하는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을 알리는 것 뿐이다.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들어야 할 자들이 도리어 핍박할 때에 그 고통은 말
할 수 없이 크다. 선지자는 아니지만 하나의 개혁자로서의 루터(Luther)도, 그 개혁에
있어서 반대를 받을 때에 당한 고통은 말할 수 없이 컸다고 한다. 그의 이와 같은 고
통을 신학자들이 알아 주지 못할 때에 그는, 그들을 가리켜 이론적인 신학자들이라고
하였다. 엘리야도 그 때 사람들이 그를 박해할 때에,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원하였
다(왕상 19:4).
그로 아침에는 부르짖는 소리, 낮에는 떠드는 소리를 듣게 하였더면. - 이것은, 전
쟁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모든 공포(恐怖)의 소리를 의미한다.
렘 20:17
이는 그가 나를 태에서 죽이지 아니하셨으며 나의 어미로 내 무덤이 되게 하지 아니하셨으며 그 배로 항상 부르게 하지 아니하신 연고로다. - "그가 나를 태에서 죽이지 아니하셨으며". 여기 "그"란 말이 하나님을 의미한다는 해석이 있다. 우리 번역이 그 해석을 취하였다. 그러나 다른 해석에서는, 여기 "그"라는 말이, 위의 말씀(15,16)에서 관설된 바 예레미야의 출생 소식을 전한 사람을 가리킨다고 한다. 이 해석을 취하는 경우에 있어서 난제는, 출생 소식을 전하는 사람으로서 그 출생된 애기를 죽이지 않는 것이 저주 받을 일인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그것도 문제될 것 없다. 그 이유는, 예레미야가 여기서 그 사람에게 책임 추궁을 하는 의미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다만 자기의 예언 생활(豫言生活)에 있어서, 자기의 당하는 고통이 얼마나 심한 것을 시적(詩的)으로 강조하는 것 뿐이다. 일설(一說)에, 이 부분에 있는 예레미야의 말은 그의 육적(肉的)으로 기울어진 실수인 듯이 말한다(Calvin). 그렇다고 해도 그것은, 일시적으로 그가 홀로 가져보았던 심사(心思)로써 후에 돌이킴이 된 것이니, 하나님이 아니고 단지 인간인 예레미야에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렘 20:18
본절에 대하여는 위의 14-17절 해석을 참조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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