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 19:1,2
토기장이의 오지병을 사고. - "오지병"이란 말은 히브리 원어로 빡뿍(* )인
데, 목이 좁은 병으로서 속에 담긴 액체(液體)를 쏟을 때에 빡뿍 빡뿍 소리가 난다.
이 소리대로 그 병의 이름을 지은 것이다. 이 병은 토기로 만들었으며, 오짓물을 발라
구어 윤이 나게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병의 깨짐과 같이 유대 나라가 깨어질
것을 실물 교수(實物敎授)하시기 위하여 예레미야더러 이 병을 사라고 하셨다. 어른들
(* =자칸). 나라가 망하거나 흥하게 되는 그 원인은, 그 나라의 모든 지도자들에게
달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유대 민족 중에서 이런 자들을 경고하려고 하신다. 하시드
문(* ). 이것을 "질그릇 조각문"이라고도 하나, "태양문" 곧, 예루
살렘 성의 동편 문을 의미한다고 한다(Calvin).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
). 이곳을 도벱(* )이라고도 한다. 예레미야가 유대 민족의 어른들을 데리고 이
곳으로 가서 경고하는 목적은, 유대 땅이 도벱(아이들을 죽여 몰록 우상에게 바치는
더러운 곳임)과 같이 저주 받은 땅이 될 것을 실물로 보여 주시려는 것이다. 유대 땅
은 우상을 섬김으로 더러워진 결과 도벱 같이 살륙(殺戮)이 가득찬 땅이 될 것이었다.
렘 19:3
유대 나라가 망하게 된 그 죄책(罪責)이 "왕"들에게도 있지만, "거민"(* =요
쉐베=住民)들에게도 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
라 내가 이곳에 재앙을 내릴 것이다. - 이 말씀은, 도벱(흰놈의 아들의 골짜기)과 같
이 더러워진 유대 땅에 전쟁의 화(화)를 보내시겠다는 뜻이다. 마땅히 하나님을 섬겨
야 할 땅(유대 땅)이 우상 섬기는 곳으로 더러워진 것은, 너무도 정반대(正反對)로 흘
러서 하나님의 진노를 격동시킨 것이다. 귀가 진동하리니. 이는, 환난이 오기 때문에
그 소식을 듣는 자가 놀라리라는 뜻이다.
렘 19:4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이 곳을 불결케 하며 이 곳에서 자기와 자기 열조와 유다
왕들이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무죄한 자의 피로 이 곳이 채웠음이며. -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버린"(* =아자브) 죄는, 하나님이 그들을 버려 이방인
들의 손에 넘겨주실 원인이 된다. 하나님이 죄인을 벌하시는 방법은, 종종 이렇게 비
례식(比例式)으로 나타난다. 곧, 그들의 범한 죄의 성질에 대응(對應)하는 식으로 나
타난다.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옛적부터 자기를 계시(啓示)
하시어 사람들에게 알게 하시며, 말씀대로 성취하시어 그 진실성을 나타내신 참되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이방의 우상은, 말하지 못하며 아무 것도 행하지 못하는 것이
니, 지적(知的)으로 사람과 교통(交通)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사마리
아 여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
배하노니"라고 하셨다(요 4:22).
"무죄한 자의 피로 이 곳에 채웠"다 함은, 예레미야 시대에 참된 하나님의 사람들
이 많은 박해를 받아 죽임이 된 사실을 가리킨다(2:34, 7:6, 22:3, 17). 종교가 부패
한 시대에는, 의인(義人)을 죽이는 불의(不義)한 자들이 많아진다(시 14:4-6).
렘 19:5
또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산당을 건축하고 자기 아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로 불살라
드렸나니 이는 내가 명하거나 말하거나 뜻한 바가 아니니라. -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
던 유대 민족이 이방신 바알을 섬기며, "아들들을...불살라 드렸"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어찌하여 그들은 그 고상한 계시 종교(啓示宗敎), 곧, 여호와의 종교
를 버리고 미신으로 떨어졌을까? 어떻게 태양빛을 버리고 어두움을 빛이라고 생각하는
우매(愚昧)에 떨어졌을까? 그것은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 곧, 사람이 미혹(迷惑)에 빠
지기 시작하면 아주 어리석어지는 법이다. 누구든지 하나님 말씀을 근거하지 않고 사
람을 두려워하거나, 혹 사람을 너무 따를 때에는 미혹에 떨어진다.
"명하거나 말하거나 뜻한 바가 아니니라". 이 문구에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 고조
(高調)되어 있다. 하나님이 그 말씀으로 가르치지 않은 것을 그 누가 진리라고 주장할
수 있으랴? 만일 누가 주장한다면, 그는 하나님보다 자기가 높다는 무서운 죄를 범하
는 자이다.
렘 19:6-9
이 부분에서는, 유대인들이 그 죄로 인하여 받을 재앙들을 지적한다. 곧,
(1) 유대 땅이, "도벱이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보다 더 불행한 "살륙의 골짜기"
(* =죽음의 골짜기)가 됨(6절). 예레미야는, 유대 땅이 "도벱"(혹은 힌
놈의 아들의 골짜기)과 같이 더러워졌다는 의미로, 이 때에 도벱 땅에 와서 도벱을 들
어 예언한 것이다. 그러므로 도벱이 "살륙의 골짜기"라 칭함이 된다는 것은, 곧, 유대
온 땅이 "살륙의 골짜기"라 칭함이 된다는 말씀으로 청취(청취)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므로 땅을 더럽히니, 하나님은 전쟁을 그들에게 보내시어 시체(屍體)로써
그 땅이 더러워지도록 벌을 내리신다.
(2) 유대인들의 "모계"(* =아차드=계획)가 실패되도록 하심(7절).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할 그들이 인간의 지혜를 믿으므로 하나님께서 그 택한 백성에게 내리
시는 벌이다.
(3) 예루살렘 성은 황폐되고, 그 성을 지나가는 행인들은 놀라며 모욕함(8절). 여
기 "지나가는 자"란 말은 이방인을 의미했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종교를 믿지 않는 이
방인들도, 유대 민족의 멸망이 그 민족의 종교적 타락으로 인한 것이라고 욕하게 된다
(22:8,9). [1] 이만큼, 유대 민족의 멸망은 신벌(神罰)인 사실이 현저(顯著)하다는 것
이다. [2] 교회가 타락한 때에는 불신 사회(不信社會)만도 못해진다. 예수님도 말씀하
시기를,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라고 하셨다.
(4) 유대인들이 적군(敵軍)에게 포위되어 서로끼리의 고기를 먹음(9절). 전쟁 때에
는 식량이 끊어지므로 사람이 기절할 정도로 정신이 혼미(昏迷)해져서 자기 자녀들을
죽여 그 고기를 먹는데까지 이른다. 이런 일은 사람이 상상(想像)할 수 없는 비극(悲
劇)이다. 그러나 이런 환난이 땅 위에 있게 된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환난의 원인
이 된 죄악이 얼마나 비참하였던 것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 환난 전에
하나님을 거스려 범한 죄악은, 그들이 지금 서로끼리의 고기를 먹는 것과 같은 비참한
일이었다. 환난의 비참함을 보는 자는, 그 환난의 배후 원인이 되는 죄악의 비참함을
회상(回想)할 줄 알아야 된다.
렘 19:10,11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더러 동행자들 앞에서 "오지병을 깨뜨리"어 예루살
렘 멸망에 대한 실물 교수(實物敎授)를 하라고 하신다. 우리와 신학 입장이 다른 루돌
푸(W. Rudolph)도, "본장에서는 이렇게 상징적(象徵的) 행동 예언을 우리에게 보여주
고 있다"(In Kap. 19 begegnet uns erstmals eine symbolische Handlung des
Propheten)라고, 말하였다. 오지병이 부서지듯이 예루살렘은 파멸될 것이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유대 나라를 깨뜨리심이 하나의 오지병을 깨뜨림과 같이
쉬운 일이다.
렘 19:12,13
예루살렘은 "도벱" 같이 시체들이 많은 땅이 될 것인데, 그것은 물론 바벧론 군대
의 침입(侵入)으로 인하여 될 일이었다. 이렇게 성지(聖地)가 시체(屍體)들로 더러워
질 원인은, 유대인들이 우상 숭배로 그 땅을 먼저 더럽혀 하나님의 노를 격동한데 있
다.
그 집 위에서 하늘의 만상에 분향하고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움으로 더러워졌은
즉. - 왕하 23:12, 21:3; 렘 32:29; 습 1:5 참조. 이것은, 유대인들이 이방의 미신 종
교를 수입하여 옥상에서(屋上)에서 하늘의 별을 섬긴 죄를 지적한 말씀이다. 우상 숭
배는 땅을 더럽히는 죄악이며, 시체(屍體)로 땅을 더럽힐 무서운 벌 받을 죄악이다.
렘 19:14,15
예레미야는 성전 뜰에서 다시 예언하였는데, 그것이 역시 유대 민족이 받을 재앙에
대한 것이었다. 그들이 이와 같은 재앙을 받게 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았기 때문이다. 삼상 15:22, 23 참조.
렘 19:20
공의로 판단하시며 사람의 심장을 감찰하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원정을 주께 아뢰었사오니 그들에게 대한 주의 보수를 내가 보리이다 하였더니 - 여기서는 예레미야가, 위에 말한 것 같은 아나돗 사람의 악행이 주님의 보응을 받게 되리라고 한다. 성도는 억울함을 당할 때에 복수하지 않고 그것을 하나님께 맡길 뿐이다. 여기 말한 대로, "나의 원정을 주께 아뢰었사오니"(* )란 말씀이 바로 그 듯이다. 곧, 나의 송사(訟事)를 주님에게 아뢰었다는 뜻이다. 롬 12:19 참조.
"주의 보수를 내가 보리이다"(* )란 말씀은, 예레미야가 그들의 불행해지는 것을 원하여서 한 말이 아니고 저들의 장래에 대한 예언일 뿐이다. 예언자를 죽이려고 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지독히 대적한 죄악이다. 그러므로 그 죄악에 대한 형벌은 마침내 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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