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선 주석, 예레미야 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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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렘 10:1

  이스라엘 집이여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스라엘 집"
이란 말(*                      )은, 여호와 하나님의 계약(契約)을 받은 관계에  처
한 백성 전체를 가리킨다. "들을지어다"란 말(*          =쉬메우)은, 귀로  들을  뿐
아니라 순종하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만 참
으로 살게 된다(요 10:4,5,27-29).

 

  렘 10:2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열방의 길을 배우지 말라 열방인은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하거니와 너희는 그것을 두려워 말라 - "열방의 길"이란 말은, 이방(異邦) 나라
들의 행동 원리를 가리키나니 그것은 아랫말이 설명한다. 곧, "열방인은 하늘의  징조
를 두려워하거니와"라는 말이다. "하늘의 징조"란 말(*                  )은, 애굽이
나 바벧론 사람이 지킨 미신(迷信)이다. 곧 해나 달이나 별들 가운데 어떤 표가  나타
나면 외아들 죽을 징조라 하고 또 어떤 다른 표가 나타나면 기쁜 일이 있으리라는  등
의미신을 만드는 징조를 의미한다. 그 때 사람들은, 그 징조를  무서워하여  우상에게
제사하였던 것이다. 사람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는데 만일  그가
다른 것을 두려워 하는 때에는, 그것을 하나님으로 삼는 우상 숭배의 죄를  범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유대인들더러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마
10:28 참조. 땅 위에 두려운 일들이 있을 때에 우리는 그것들도 하나님의 경륜에 미루
어 생각하고, 그것들을 두려워함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회개와 신앙을 가질  따름
이다.

 

  렘 10:3-5

  열방의 규례는 헛된 것이라 그 위하는 것은 삼림에서 벤 나무요 공장의 손이  도끼
로 만든 것이라 그들이 은과 긔으로 그것에 꾸미고 못과 장도리로 그것을 든든히 하여
요동치 않게 하나니 그것이 갈린 기둥 같아서 말도 못하며 걸어다니지도 못하므로  사
람에게 하나니 그것이 갈린 기둥 같아서 말도 못하며 걸어다니지도 못하므로 사람에게
메임을 입느니라 그것이 화를 주거나 복을 주지 못하나니 너희는 두려워 말라  하셨느
니라 -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우상의 헛된 것을 몇 가지로 지적하셨으니, 그것은  다음
과 같다. (1) 우상은 "삼림에서 벤(찍어 온)나무" 뿐이다(3절 하반). (2) 우상은  "은
과 금으로" 장식하여 세워 놓은 것 뿐이다(4절). (3) 스스로 아무런 동작도 하지 못하
며 따라서 "화를 주거나 복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5절).
   "열방의 규례"(*                      )란 것은, 이방 민족들 중에 유행된 미신의
풍속을 가리킨다. 그들이 위하는 것은, 삼림에서 베어 온 나무를 가져다가 은과  금으
로 꾸며 놓은 것 뿐이다. 삼림에 그저 있는 나무보다도 베어다가 장식을 입히면, 사람
들의 마음에 숭배심을 일으켰던 모양이다. 사람들의 이와 같은 심리는 어리석은  것으
로 드러난다. 그 우상의 실질은 나무 뿐인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아로새긴 것과  장식
한 것 대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으니, 인생이 얼마나 외모에 이끌리
며 아무것도 아닌 것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 어리석은 자임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어찌하여 이렇게 종교적 사리(事理)에 있어서는 우준하고 어두운가? 그것은 다음과 같
이 설명된다. 사람들이 그 조상 때부터 어두워졌으되 특별히 하나님을 아는 일에 있어
서는 더욱 심하게 어두어졌다. 그들이 하나님을 잃고는 살 수 없으니 만큼,  하나님을
찾노라고 하기는 하나, 바로 찾지 못하고 저렇게 어리석게 우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
러므로 그들의 모든 우상 숭배 행위는 다 한 모양으로 어리석게 나타난다. 여호와  하
나님을 섬기는 참 종교를 제외한 모든 다른 종교들은, 다 꼭 같이 어리석다. 그것들은
모두 다 사람이 만든 소위 신(所謂神)을 섬기는 것이다. 어느 시대의 사람이든지 스스
로 종교를 생각할 대엔, 우상주의의 종교 외에는 생각할 힘이 없다. 비록 문명한 사람
이라 할지라도 종교 문제에 있어서는 이렇게 우매하다. 인간의 모든  우상주의(偶像主
義)는, 오직 계시(啓示)된 하나님의 말씀으로써만 파괴된다. 계시된 하나님  말씀만이
참 하나님을 알게 한다.
   또예베르드(Dooyeweerd)는 말하기를, "이런 신화주의(神話主義)는, 인간이  논리성
(論理性)을 띠기 전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가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면,
인간은 별 수 없이 그 논리성을 충분히 가지는 시대에도 신화적  경향을  가진다"라고
하였다. 그는 또 말하기를, "신화주의는 원시인(原始人)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철
학적, 신학적 사변(思辨)에 있어서도 고도(高度)의 이론으로 발달하여 그  안에  헛된
신념(信念)을 포괄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A New Critique of Theoretical  Thought,
II. p.325-327). 하나님 말씀에서 떠난 모든 타락한 시념 행위는 죄악이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이 헛되다는 것을 역설(力說)하시기 위하여, 그것은 "도끼로 만
든 것"이며, "장도리로 든든"케 한 정도의 것이라고 하신다. 이것은,  우상  교도들의
믿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임을 풍자하기도 한다. 그는 또  말씀하시기를,  그것이
"갈린 기둥 같다"고 하셨다. "갈린 기둥"은 히브리 원어로 토멜(*       )이니 종려나
무 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상은 종려나무처럼 뻣뻣이 서 있기만 할 뿐, 아무런 움직
임도 없다고 하여 그것을 섬기는 자들의 우매를 여기서 지적한다.

 

  렘 10:6-10

  이 부분에서는, 전지자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송한다. 그는 이 찬송에  있어서,
일변 우상은 헛된 것임을 또 다시 지적한다.

 

  렘 10:11

    너희는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서 망하리라 하라 - 이 말씀의 원어는 갈대아 말 곧, 아람어로 기록되었다.하필 이
귀절만이 아람 말로 기록된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갈대아(바벧론) 사람들도 이 말씀
만은 명심(銘心)케 하려는 것이다. 그 나라 사람들은, 우상을 많이 섬기고 있었는데 그
모든  우상들은 참 신이 아니며,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이다. 그 모든 우상들이  
망할  것을 여기 예언하였으니 만큼, 그것들을 섬기는 자들가지 망할 것이 여기 겸하여  
예언되고 있다. 우상들과 그것을 섬기는 자들이 일시 동안, 혹은 심지어 이 세상에  있는  
동안 강성(强盛)하여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후에는 그들이 다 함께 망한다.

 

  렘 10:12

  여호와께서 그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그 명철로 하늘
들을 펴셨으며 - 여기서는, 여호와께서만이 천지를 지으신 참 하나님이신 것을 말하여
둔다. 참 하나님이 누구이심을 말함에 있어서, 세상을 창조하신 것으로 그 자격을  삼
으시는 이뉴는 무엇인가? 그것은, 본래 없던 세상을 지어 내신 것 이상이 될만한 위대
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세계(世界)를 창조하신 자가 아니면, 그것을 근본적으로 주장
하지 못하며, 구원하지 못하며, 심판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구원도 하시고 심판도  하
시는 하나님은 창조자이시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심에 있어서  두  가지(권능과
지혜)를 가지고 하셨다. 그는 지혜로우실 뿐만 아니라, 그 지혜 대로 이루셨으니 전능
자이시다. 우리는 천지 만물 가운데 어디서든지 이 두 가지의 표현을 볼 수 있다.  과
학은 아무리 발달해도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지혜와 권능을 찾아 내는  수종(隨從=發見
혹은 發明)의 역할을 할 뿐이고, 창조의 역할은 할 수 없다. 이는 마치, 나사로를  살
리신 이는 그리스도이시고, 거기 모였던 사람들은, 무덤에서 돌을 굴리며 나사로의 수
족을 동였던 베를 풀어 주는 정도의 수종을 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렘 10:13

  그가 목소리를 발하신즉 하늘에 많은 물이 생기나니 그는 땅 끝에서 구름이 오르게
하시며 비를 위하여 번개하게 하시며 그 곳간에서 바람을 내시거늘 - 여기 "목소리"란
말은, 우뢰소리를 가리킨다. 우뢰소리를 하나님의 "목소리"라고 한 것은, 뇌성 그  자
체가 하나님의 목소리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것은 뇌성의 원인자가 하나님이심을 가리
키는 시적 표현(詩的表現)이다. 예레미야는 여기서 자연계(自然界)의 모든 현상을  하
나님이 주장하신다고 생각한 것이다. 칼빈은 말하기를, 자연계의  거대(巨大)한  업적
(業績)들의 원인을 하나님에게 돌리지 않는 과학(科學)은 악마의 과학이라고 하였다.
   "하늘에 많은 물이 생기나니". 이것은, 우뢰소리가 나자 많은 비가 공중에서  내리
게 됨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성경은, 비를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언제난  말하고
있다. 현대의 사람들이 공중에 어떤 구름이 있는 때를 타서 비행기를 타고 올라가  과
학적 방법에 의하여 비를 오게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만이 비를 주신다
는 말씀이 성립되지 못하는가? 그런 것이 아니다. 위에 말한 것과 같이  인공(人工)으
로 비를 내리게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전부 사람이 했다고 할 수는 없다.  어떤
제한된 구역에 조성(造成)된 구름 자체가 하나님의 역사로 이루어진 사실을 우리는 기
억해야 된다. 오늘날 과학이 아무리 발달되었다 할지라도 비가 내릴 수  있게  되어진
운천(雲天)을 조성할 수는 없다.
   "그는 땅 끝에서 구름이 오르게 하시며". 이런 말씀은 관점 본위(觀點本位)로 하는
말이다. "구름"은 바다에서 증발되어 올라가는 것인데, 특별히 유대인들로서는 육지에
서 지중해를 바라볼 때에 이런 시적 표현(詩的表現)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성경에는
문학체(文學體)로 기록된 것이 적지 않다. 이렇게 멀리서 수증기(水蒸氣)를  몰아다가
넓은 당을 적실 비가 내리게 하는 것은, 인공(人工)으로써는 언제나 불가능한 것이다.
   "비를 위하여 번개하게 하시며". "번개"는 불이로되 맑은 날에 생기는  것이  아니
고, 흐리고 습기 찬 비 오는 하늘에 일어난다. 여기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교
훈을 볼 수 있다. 곧, 하나님께서는 물 가운데도 불을 보존시켜 두실 수 있고, 불로써
도 물을 발생시키는 원인이 되게 하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칼빈(Calvin)은,  하
나님께서는 두 반대되는 것들을 혼합시킬 수 있는 권능을 가지셨다는  의미로  말하였
다.
   "그 곳간에서 바람을 내시며". 칼빈(Calvin)은 말하기를, 바람은 땅의 낮은 곳에서
일어난다고 한다. 그러니 만큼, 여기 "곳간"이란 말은 땅의 가장 깊은 지대를  의미했
을 것이다. 어쨌든 이것은 시적 표현으로서 바람도 하나님이 주장하심을 알게 한다.

 

  렘 10:14,15

  사람마다 우준하고 무식하도다 금 장색마다 자기의 조각한 신상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하나니 이는 그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것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  그것들은
헛 것이요 망령되이 만든 것인즉 징벌하실 때에 멸망할 것이나 - 여기서는 또 다시 우
상 섬기는 자들의 어리석음과 및 그들의 장래의 실망(失望)을 지적한다. 그들이  장래
에 실패할 이유는, 그들이 의지하는 우상이 헛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 이른바,  "사
람마다 우준하고 무식하"다는 말은, 그 아랫말이 설명해 주었으니 곧, 우상을  만들며
섬기는 자들("금장색")이 그렇다는 뜻이다. "우준"하다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  니브알
(*         )이니, 짐승 같다는 뜻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손으로 만든  것을  가지고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대신했으니, 그것이야말로 빛을 어두움이라고 하는 어
리석음이다(사 5:20). 이렇게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짐승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어리
석은 일 중에 우상 숭배 이상 어리석은 것이 없기 때문에, 성경은 종종  많은  말로써
그것의 어리석음을 지적한다(렘 10:1-5,8 롬 1:20-25). 이런 종교적 우매에 대하여 성
경 말씀이 이렇게 심하게 말하는 이유는, (1) 하나님을 알게 하는 많은 증거들이 명확
함에도 불구하고 인생들이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기는  까닭이며(롬
1:20-25), (2) 하나님은 지극히 영화로우신 무상(無上)의 대주재이신데, 인생들이  그
를 썩어질 피조물로 바꾸어 가지기 때문이다(롬 1:23).
   "수치를 당함"(*        =호비쉬)은, 실패한다는 뜻이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우상
에 대해서도 네 가지 표현을 사용했으니 곧, "거짓 것"(*         =쉐케르), "그 속에
생기가 없음"(*                   =로 루아크 빰), "헛것"(*          =헤벧), "망령
되이 만든 것"(*                             =마에세 타투임)이라고 하였다.  "망령
되이 만든 것"이라는 뜻은, "크게 속은 자들이 만든 것"이라는 뜻이라고 칼빈(Calvin)
은 말한다. "징벌하실 대에 멸망할 것이나". 곧, 이 우상들이 한 동안 사람들에게  섬
김 받으나 하나님께서 한 번 심판하시는 날이 올 대에는 그것들이 다 없어져 버린다는
뜻이다.

 

  렘 10:16

  야곱의 분깃은 이같지 아니하시니 그는 만물의 조성자요 이스라엘은 그 산업의  지
파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라 - 여기서는 "야곱" 곧,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분깃"(*        =켈렉=소유)으로 가진 사실과(상반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분
깃" 혹은 "산업"(*            =나칼라)으로 소유하신 사실이 알려진다(하반절). 이렇
게 택한 백성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서로끼리 소유하는 관계이다. 특별히 신약  시대의
모든 신자들은 하나님을 소유하는 복을 받는 동시에,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복도 받도
록 되어 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소유되는 복이 하나님을 소유하는 복보다 못하지 않
다. 그 이유는, 우리가 친히 우리 자신을 소유하는 것은 태산 같은  무거운  짐으로써
한 평생(혹은 영원토록) 애써도 처리할 수 없는 것인데, 이런 무거운 짐을 하나님께서
맡아 주시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현상이 바로 영생을 성립시킨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소유가 되어진다는 것은, 우리가 영원하신 하나님을 즐거워한다는 의미도 되어
진다. 이 세상 소유는 다 썩어지며 더러워지며 쇠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을 소유한  것
은 영원하다(벧전 1:3-5). 신 4:19,20,32:9; 시 16:5 참조. 이 점에 있어서 우리가 주
의해야 될 것은, 이 소유 관계는 하나님의 솔선적 구원 실시에 의하여 되어진 것이고,
결코 우리 자신의 힘으로 되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그의  하시는
일을 믿고 그에게 순종할 뿐이다.
   "이같이 아니하시니". 곧, 하나님께서는 윗절에 말한 우상과 같지  않다는  말씀이
다. "만군의 여호와". 7:3해석 참조.

 

  렘 10:17,18

   에워싸인 가운데 앉은 자여 네 구러미를 이 땅에서 수습하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
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 땅에 거하는 자를 이번에는 내어던질 것이라 그들을 괴롭게 하
여 깨닫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 "에워싸인 가운데 앉은 자"란 말은, 바벧론  군대에게
포위 당할 유대 민족을 가리킨다. "꾸러미"는 소포(小包)나  보따리들을  가리키는데,
그들더러 이것들을 "수습하라"고 하는 이유는, 그들이 이제 사로잡혀  가겠기  때문이
다. 그것은 18절 상반의 "이번에는 내어 던질  것(포로됨)이라"란  말씀이  보여준다.
"그들을 괴롭게 하여 깨닫게 하리라". 택한 백성은 "괴롬"을 당할 대에 죄를 "깨닫"는
다. 그러나 불택자들은 괴롬을 당할  대에  하나님을  훼방하며  회개하지  않는다(계
16:9,11). 하나님께서는 그의 택한 백성으로 하여금 깨닫고 회개케 하기 위하여  괴롬
을 주신다고 하였으니, 신자들은 뜻 밖에 환난이 올 대에 조심하여 그것을 감수(甘受)
하면서 회개하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된다. 환난은 암행어사(暗行御使)와  같아
서 처음 찾아 올 대에는 험악해 보인다. 성도가 회개하므로 그것을 잘 영접하면  그것
은 복을 주고 떠난다. 고난은 이렇게 귀한 것이다. 시 119:71에 말하기를,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하였고,
시 119:67에는,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
나이다"라고 하였다.

 

  렘 10:19

  슬프다 내 상처여 내가 중상을 당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말하노라 이는 참으로 나의
고난이라 내가 참아야 하리로다 - 본절은, 선지자 예레미야가 유대  민족을  대표하고
그 당할 환난에 대하여 탄식하는 말씀을 진술한다.  "내  상처"(*         =쉬브리)와
"내 중상"(*          =마카티)은, 유대 민족이 바벧론 침략 때문에 당할  전화(戰禍)
를 가리킨다. 이 귀절은, 유대 민족 중 각 개인으로 하여금 그 당할 환난이 각기 자기
를 위한 것인 줄 알고 감심으로 당하며 회개해야 될 것을 가르친다. 여기 "이는  참으
로 나의 고난이라"라고 한 문구(*                    )에 있어서, "참으로"9*      =
아크=      확실히)란 말이 특별히 이 점을 역설(역설)한다. 그 환난은  타인  때문이
아니고 나 대문이라는 강력한 생각은 언제나 참다운 회개를 가져온다. 요나도  하나님
의 사명을 피하여 다시스로 가다가 풍랑을 당하여 회개하게 될 때에 말하기를,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폭풍을  만
난 것이 나의 연고인 줄을 내가 아노라"라고 하였다. 스가랴 12장을 보아도 회개는 각
개인이 죄책을 지고 개별적으로 해야 될 것을 역설한다. 슥 12:12-14  참조.  거기에,
"따로"(*         =레바드)란 말이 열 한 번 나온다.

 

  렘 10:20

   내 장막이 훼파되고 나의 모든 줄이 끊어졌으며 내 자녀가 나를 떠나가고 있지  아
니하니 내 장막을 세울 자와 내 장을 칠 자가 다시 없도다. 여기 "나의 장막"이란  말
(*           =오홀리)은 하나님의 백성(교회)을 상징하나니, 교회는 이 세상에서  장
막 생활을 하는 자이다. 곧, 교회는 세상에 애착하여 살 자가 아니고  일시  지나가는
나그네와 같다(벧전 2:11). 장막은 볼 모양도 없고 영구한 것이 못된다. 그와 같이 교
회는, 이 세상에서 멸시를 받으며 미천한 자리에 처하여 있다가 영원한  하늘  나라로
옮김이 된다. 고후 5:1 참조. 예레미야 때에 하나님의 백성이 바벧론  군대의  침략을
당한 참상은, 땅 위의 교회가 환난을 당하므로 비참하여지는 광경을 예언한다고도  할
수 있다.
   교회가 외부적인 시설(施設)에 대하여는 언제나 장막과 같이 임시적인 것을 각오해
야 된다. 교회가 만일 외부적인 것(물질, 건물)을 그 영원한 속성(屬性)이나 되는  듯
이 애착하면 하나님과 그 나라와는 멀어진다.

 

  렘 10:21

  목자들은 우준하여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므로 형통치 못하며 그 모든 양떼는  흩어
졌도다 - 여기 "목자들"(*            )이란 말은, 이스라엘의 왕들과 제사장들과  신
자들과 기타 모든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우준하다"는 말은, 히브리원어로 니브아루(
*             )라고 하는데 짐승과 같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그들의 심히  어두워진
것을 가리키는데, 그들은 높은 지위와 영광을 받는 중에서 이렇게  어두워진  것이다.
사람은 언제나 높임과 칭찬과 지위로 인하여 속는다. 이런 것들이 좋은 것 같지만  실
상은 이런 것들을 받기 좋아 하는 심리는 어느덧 진리에 어두워지며, 영적  사리(靈的
事理)에 대하여 캄캄하여지고, 결국 많은 죄를 범하는 데로 떨어진다. 칼빈(Calvin)은
말하기를, "저희는 율법의 제재를 받지 않을 자로 스스로 생각하며 거룩한 자들이라고
하면서 절대로 누구의 책망을 받기도  원하지  않는다"(For  they  think  themselves
exempt from the restraint of laws, and will not be reproved, as though they were
secred persons)라고 하였다.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므로". 이것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어두워진 사실을 알  수
있다. 높은 지위에 처하여 권세와 영광을 누리는 자는, 높아짐과 칭찬과 영광을  하나
님보다 더 좋아하므로 실제에 있어서 그 생활의 이면(裏面)은 하나님을  제외하고  있
다. 신약 시대에 있어서는 교역자들의 타락이 이와 같은 것이다. 그들은 높은  대우와
칭찬 받기를 좋아하는 광인(狂人)들과 같이 되기 쉽다. 교역자는 마땅히 하나님만  바
라보고 그의 교요하신 음성을 듣고 자기의 위치를 먼저 바로 지키며 움직여야 된다.
   "형통치 못하리로다"(*             ). 여기 "형통"이란  말은,  지혜롭게  행하여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생활)잘 되어감을 의미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모시면, 자기 자신
만 아니라 남들까지 형통케 한다. 요셉은, 애굽 사람의 집에 종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
이 함께 하셨음으로 그 주인 집까지 복을 받게 하였다(창 39:1-5). 잠  16:7을  보면,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브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
시느니라"라고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을 찾지 않는 자는 무슨 일에나  "형통치  못"할
것이 명백하다. "그 모든 양떼는 흩어졌도다". 이것은, 유대 백성이 바벧론으로  잡혀
갈 것을 가리킨다.

 

  렘 10:22

   북방에서부터 크게 떠드는 풍성 - 이것은, 바벧론 군대가 침략하여 오는 것을 가리
킨다.

 

  렘 10:23,24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
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여 나를 징계하옵시되 너그러이 하시고 진노로 하
지 마옵소서 주께서 나로 없어지게 하실까 두려워하나이다 - 이 말씀을 보면,  사람의
당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주재 아래 있다는 것이 알려 진다(잠 16:9). 그러므로  유
대 민족이 사로잡혀 가는 환난도 하나님에게서 오는 징계이다. 예레미야는 그  민족을
대표하여 그 징계가 너그럽게 되기를 기구(祈求)한다. "너그러이 하시고"(*         
       =뻬미쉬파트)란 말은, "옳은 판단으로 하시고"라고 개역(改譯)해야 된다. 이것
은, 죄인을 멸(滅)하시기 위한 판단이 아니고 회개시키기 위한 판단이다.  예레미야의
이 기도는, 마땅히 받을 벌을 받게 하시되 진노 중에라도 긍휼(矜恤)을 기억하사 필경
구원하여 주시기를 원하는 뜻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진노에 의하여"(*             =
뻬아페햐) 이스라엘을 벌하신다면 그 민족은 아주 망할 것 밖에 없다고 한다.

 

  렘 10:25

  주를 알지 못하는 열방과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아니하는 족속들에게 주의  분노
를 부으소서 그들은 야곱을 씹어 삼켜 멸하고 그 거처를 황폐케 하였나이다 -  여기서
는 선지자가, 열방 곧, 불택자들에 대해서는 이스라엘에게 하시는 것과는 다르게 진노
로 벌하여 주시기를 구한다. 둠(D.B.Duhm)은, 이 본문을 잘못  해석하기를,  선지자의
이와 같은 기원(祈願)은 명백히 옛날 도덕이고 기독교의  도덕은  아니라고  한다(Das ist handgreiflich antike Ethik, keine christliche.-Das Buch Jeremia, p.106).  그
러나 예레미야의 이와 같은 기원은 신약 시대에도 있을 수 있다. 구약에서  말한  "열방"은 불택자를 대표한 명칭이로되, 반드시 어떤 지역(地域)의 모든 개인들을 다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불택자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내린다고 생각하는 것은 역시 신약 성경의 사상이다. 물론 일반 신자들이 선지자와 달라서 저주를 기원하는 권위는  가지지 못하였다. 그러나 구약의 권위와 동일한 권위를 가진 사도는 저주(詛呪)를 선포할  수 있었다(행 5:1-10; 고전 16:22; 갈 1:10).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아니하는 족속들"이란 문구는, 그 윗말 "열방"과  동격명사(同格名詞)이다. 따라서 그 둘("열방"과 "족속")은 함께 불택자를 가리킨다. 열방이 하나님의 분노로 "부음"이 될 이유에 대하여 우리는 이 귀절에서 세 가지를 볼 수  있다. (1) 그들이 주님을 알지 못하는 까닭(25절 상반). (2) 그들이 주님께 기도하지 않은 가닭(25절 상반). (3) 그들이 택한 백성을 멸망시키려고 극도로  포악하게  행하는 까닭(25절 하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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