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선 주석, 시편 022장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시 22: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
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 이 시인은, 심한 고통 중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느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하나님에게 대한 사랑을 잃지 않았기  때문
에, "하나님"을 "내 하나님"(*      =엘리)이라고 부르짖었다. 이 시인이 고통과 환난
중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내 하나님"으로 단단히 붙잡는 것은, 그의  신앙이
다. "어찌"란 것은 여기서는 라마라고 하여, 더욱 애타는 뜻을  보여준다(Delitzsch).
이것은, 하나님에게 대한 원망이 아니고,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여 찾는 탄식이다.
   "버리셨나이까". 이 말은 히브리 원어로 야잡타니(*             )인데,  예수님은
이것을 아람 말로 대용하여 사박다니(*            )라고 하셨다. 이 둘은 뜻이 같다.
그가 아람 말을 사용하신 이유는, 그것이 그 때 팔레스틴 유대인의  사용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다윗과 같은 경건한 성도도 때로는 하나님이 그를 내버리신 듯한 어려운 시
절을 당한 것이다. 개인 신자나 교회가 어떤 딱한 환경을 만나는 것은,  신앙  생활에
연단을 받게 하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경륜이다. 그런 때에 성도가 애타는 기도를 계속
하기만 하면 오래지 않아 큰 은혜를 받는다.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 주시기  않
으심에 대하여 그 성도가 느낀 표현이다. 기도 응답이 되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 기도자에게 멀리 떠나신 듯하다. 그러나 실상은, 하나님께서 진정한  성도를  멀리
떠나시기 않는다. 성도의 기도를 더욱 간절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얼른  응답하시지
않는 것 뿐이다. 중세대의 성녀 카다린(Catherine 1347-1380)은, 여러가지 불결한  죄
의 유혹을 받는 은혜 없는 시간을 보내다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환상중에서 보고 너무 기뻐서 그리스도에게 묻기를, "주여 어디 계시나이까?"하니, 그
리스도께서 대답하시기를 "너의 마음 속에 있었느니라"라고 하셨다고 한다. 이것은 한
개의 신비적인 체험인바, 사람마다 그런 체험을 해야 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것이 한 가지 뜻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그것은, 성도가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는 듯한
때에도 하나님은 그에게 가까이 계시다는 것이다.

 

 

시 22:2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지 아니하시나
이다. - 렘 14:17; 애3:49 참조. 다윗은 오랫동안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그 어려운 환
난 가운데서도 기도 생활을 중단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의  신앙의  굳센  절개이다
(Calvin). 어떤 때엔, 오랫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듯이  캄캄
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다고하여 기도 생활을 중단하면 안된다.

 

  시 22: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 하나님은 그를  신앙
하는 자들을 도우시므로 그들에게 찬송을 받으신다.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여호와는
악인들에게서 모욕을 당하시고 실패하시는 이가 아니고, 반드시 그것을 귀정하시어 그
성호를 거룩히 유지하신다. 저가 그 성호를 보호하시는 방법은, 저를 신앙하는 자들을
구원해 주심이다.


 

  시 22:4,5

    우리 열조가 주께 의뢰하였고 의뢰하였으므로 저희를 건지셨나이다 저희가 주께 부
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치 아니하였나이다. - 여기 "의뢰"한다는
말은 히브리 원어로 빠테쿠(*        )라고 한다. 이것이 두 번이나(4절과 5절에)  거
듭 나온 이유는, 하나님을 의뢰함이 중요하다는 것을 지적하려는 까닭이다.  이  시인
은, 과거에 성도들이 주님을 의뢰하여 성공한 사실을 회고하므로 확신을  얻는다.  그
확신은 다음과 같다고 추측된다. (1)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들이 참되다고 확신함.
(2)하나님의 도우심이 과거의 성도들에게 있었다는 것을 확신함.  (3)기도의  위대(偉
大)한 효과가 있음을 확신하였을 것이다. 우리가, 앞서 간 성도들의 신앙 행적을 생각
하므로 신앙에 용기를 얻는 것은 확실하다. 히브리서 11장은 우리에게 그런 은혜를 주
려고 기록되었다.

 

  시 22:6,7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 이 시인은,  자기가  "벌
레"같이 천하게 악인들에게 핍박 박고 있음을 한탄하다. 곧, 그는, 그의 신앙이  원수
들에게서 조롱을 받고 있는 사실을 원통히 여긴다(8절). 그러나 그의  탄식은  낙심이
아니고 말없는 기도까지 포함한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신앙 때문에 핍박 받는 때야말
로 하나님을 만나 볼수 있는 때인 줄 알아, 그 때에 낙심하지 말고 특별한 소망을  가
지고 기도해야 된다.

 

  시 22:8

  저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걸. 저를 기뻐하시니 건지실걸 하나이다. - 이 것
은, 불경건한 자들이 특별히 다윗의 기름 부음 받아 왕된 거룩한 사실을 반대하는  조
롱이다. "저를 기뻐하시니".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기름 부으신  사실을  관설한
다. 다윗은, 자기의 기름 부음 받은 사실에 대한 조롱을 가장 아프게 여겼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런 조롱은 하나님의 하신 일을 조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조
롱은 그리스도에게 응험(應驗)되었다.
   여기 다윗의 원수들은 사단의 극악성을 띠고 있다. 그들은, 회개할 수 없이 강퍅하
여진 악도로서 죄악 행위에 지도적 처지를 취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악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다. 그 점에서 그들은 사단에  가까운  자들이다.  사단은,
(1)하나님을 반역하였고, (2)회개하는 일이 전연 없고, 죄성(罪性)을 가지고, (3)하나
님을 알고도 계속하여 반역하며, (4)모든 악의 근원이다.

 

  시 22:9,10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모친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
셨나이다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내 하나님이
되셨사오니. - 메시야께서 그의 부친에 대한 관설을 전연 하시지 않고 모친에  대해서
만 말씀하신다. 델리취(Delitzsch)는 이것을 보고 말하기를, 구약 전체가 메시야의 인
간편 부친을 관설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 귀절들이 보여 주는 것은, 이 시를 쓴 성도가 어릴 때부터 주님을 믿게 되었고,
따라서 주님에게 헌신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기 "의지하게 하셨나이다"란 말과  "맡긴
바 되었고"란 말에 특별히 주목해야 된다. 이 두가지 말은 신앙이 무엇임을  보여  준
다. 신앙은 의지하는 것이며 또 겸하여 헌신함(맡긴바 됨)이다. 헌신이  없는  신앙은
아직 확실한 신앙이 아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존재와 기타 하나님의 성품을  시인하는
것만으로는 신앙이 아니다. 그런 믿음은 마귀도 가졌다. 약 2:19에  말하기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하였다. 헌신 없
는 신앙이란 것은, 비유컨대,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승인한 것과 같다. 다만 그 나라
는 그 승인한 나라에게 대하여 독립하고 있을 뿐이다. 기독 신자들 중에는 이런  정도
의 신앙을 가진 자들이 많다. 신앙은, 하나님을 승인하는 정도가  아니고  하나님에게
자신을 맡김이다. 신약에서 신앙 생활을, "그리스도 안에 있음"이란  말로  표현한다.
그것이 역시 헌신을 의미한다. 헌신하지 않고 구원 받으려는 것은 고기를 소금에 저리
지 않고도 썩지 않게 하려 함과 같다. 이 시편을 쓴 시인은, 그 출생시부터  하나님께
바침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정녕 하나님에게 임치(任置)된 자가 어찌  버림을
받으랴. 우리가, 자신이 주님께 헌신한 것이 확실한 줄 알진대,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
를 받을 줄 확신하고 기도할 만하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그의  도우심을  받고자
하는 자는, 의사에게 몸을 맡기지 않고 수술 받아 병을 고치려는 자와 같다.

 

  시 22:11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깝고 도울 자 없나이다. -  다윗은,  여기서부터
자기의 할 수 없는 처지를 진정(陳情)하므로 하나님의 원조를 청한다. 성경은, 가난한
자들을 누구보다도 더 돌아보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가르쳐 준다.

 

  시 22:12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렀으며. - "황소".  성도를
대적하는 자를 가리켜 "황소"라고 한 이유는, 황소는 무지하고 또 힘이 강하여 사람을
해(害)함에 있어서 서슴지 않는 까닭이다.

 

  시 22:13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고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 다윗은, 하나님의  원수들
을 이렇게 동물들로 비유한다. 동물을 본래부터 사단이 사용한  도구였다(Delitzsch).
창 3:1; 애 2:16, 3:46; 암 3:4 참조.
   여기 "사자"로 비유된 원수는, 아마도 모든 다른 원수들의 머리되는 한 사람을  가
리켰을 듯하니(Gunkel), 그렇다면, 사울이나 압살롬 같은 자가 이 시인의 염두에 있었
을 듯하다.

 

  시 22:14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
에서 녹았으며. - 물을 땅에 쏟아 버리듯이 이 시인은 세상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한
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고난 당하심에서 이루어진 예언이다.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그는, 수난 중에 몸이 파리해지고  심기(心氣)
가 쇠약해진 것이 분명하다. 성도는 의를 위하여 힘써 증거하다가 혹시 이렇게 적막한
때를 당한다. 그러나 그 뒤에는 반드시 은혜와 기쁨이 온다.

 

  시 22:15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
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 그가 사망의 지경에 빠진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고 주님께서
그 경륜 속에 정하신 뜻이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수난하실 것을 예언한 것이다.

 

  시 22: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  "개들"
은, 염치 없고 불결하고 남을 해하는 악인들을 가리킨다.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이
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그 손 발에 못 박히실 일을 예언한 것이다.

 

  시 22:17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주목하여 보고. - 어떤 학자들은,
여기 "뼈"라는 말이 돕는 친구를 비유한다고 한다. 그러나 칼빈은 문자적으로 뼈를 의
미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 귀절의 말씀 뜻은, 이 시인이 너무 고난을 받는 중 파
리해져서 뼈들이 두드러져 셀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원수들은, 이렇게 파
리한 자를 동정하지 않고 도리어 주목하여 구경거리로 삼았다는 것이다.

 

  시 22: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 이 귀절 말씀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다. 요 19:24 참조.

 

  시 22:19

   여호와여 멀리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 히브리  원문에
는 "여호와여"란 말 앞에 "당신"이란 말(*      =아타)이  있어서,  역설체(力說體)를
이룬다. 이 역설체는, 이 시인의 주의가 이때까지 말해 오던 원수들에게서 떠나서  여
호와에게로 집중되는 표시이다.
   "힘"이란 말은, 히브리 원어로 에얄(*      )이니, 힘의  본질(本質)을  의미한다.
리델보스(J. Ridderbos)는 이것을 그 힘의 근원과 총체(總體)란 뜻으로 보았다.  이렇
게 이 시인은 하나님을 힘의 근원으로 보는 신앙으로 기도하였다.

 

  시 22:20

  내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  여기  "영
혼"이란 말은 생명을 의미하고, "내 유일한 것"이란 말(*            =예키다디)은 영
혼을 가리킨다. "개"(*      =켈렙)는 불경건한 원수들을 비유한다.

 

  시 22:21

  나를 사자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락하시고 들소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
- "사자 입에서". 이것은 비유니 약한 자의 핍박을 말함이다. 위에 말한 세  가지  짐
승, 곧, "소","개","사자"는, 성도를 대적하는 원수들을 상징하였다. "소"는 무지하며
육체의 힘만 강하고, "개"는 불결하며 물고, "사자"는 육식(肉食)하는 짐승으로서  잔
인하다. 이것은, 성도의 원수들의 성격이다. 성도는 원수를 바로 알아야 되고, 원수될
자와만 원수되어야 한다. 위의 짐승들처럼 무지하여 진리를 모르고 육체의 힘만  의지
하는 자, 불결하고 입으로 성도를 해하는 자, 남의 생명을 잡아 먹는  잔인한  자들은
모두 다 성도의 원수이다.

 

  시 22:22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 여기서 이 시
인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구원을 얻은 뒤에 할 일을 서원한다. 그가 이때까지 하나
님의 은고를 기구한 목적은, 결국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것이 신본주의
신앙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 귀절을 그리스도에 관하여 인용하였다(히 2:12).

 

  시 22:23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
을 돌릴지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다. - 이 시인은, 하나님
께서 그에게 베푸신 은혜를 인하여 모든 경건한 백성도 찬송해야 될 것을 말한다.  리
델보스(J. Ridderbos)는, 여기서 성도들의 교제를 발견하고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성
도들 중 하나에게 하신 일이 결국은 그 전체에 의미를 가진다"라고 하였다(Hier is de
gemeenschap der heiligen: hetgeen Hij aan een der zijnen  doet  heeft  betekenis
voor allen.-De Psalmen I, p.195).

 

  시 22:24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 얼굴을 저에게서  숨
기지 아니하시고 부르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 히브리 원문에는, 이 귀절 초두에, "왜
그런고 하면"이란 말(*    =키)이 있다. 그러므로 이 귀절은, 앞절에 말한 모든  성도
들이 찬송할 이유를 말한 것이다. 여기 "곤고한 자"(*      =아니)는 다윗과 같이  핍
박 받은 성도를 가리킨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장차 그를 도와 주실 일에 대하여 과거
사(過去事)와 같이 확신한다.

 

  시 22:25

  대회 중에 나의 찬송은 주께로서 온  것이니 주를 경외하는 자 앞에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이다. - 곧, 다윗이 그 환난  중에서 받은 구원은 순전히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
이니 만큼, 그가 그 환난 때에  서원하였던 것을 이행하겠다는 말이다. 신자들도 혹시
자기들의 받은 축복이 자기들 자신 혹은 다른 사람들로 말미암아 온 것처럼 잘못 생각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큰 죄악이다.

 

  시 22:26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
음은 영원히 살지어다. - 여기 "겸손한 자"란 말과 "여호와를 찾는 자"란 말은 다  같
이 경건한 신자를 가리킨다. "먹고 배부를 것"이란 말씀은,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와
기쁨으로 만족할 것을 비유한다.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란 말씀은 영원히  복
된 영적 생명의 풍족을 의미한다. 그것은,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결과인
영적 혜택을 영원히 누림이다.

 

  시 22:27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열방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경배하
리니. - 이것은, 다윗의 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으로 말미암아 다른 민족들에게  하나님
의 이름이 알려질 사실을 가리킨다고도 볼 수 있다(대하 32:23). 그러나 그보다도  예
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열매로 모든 이방 민족들에게 복음이 이르게 될 것을 예언한 것
이다. 이런 예언이 시편에 많으니, 87편과 45:17, 46:9, 18:43-49을 참조하여라.

 

  시 22:28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열방의 주재심이로다. - 이와  같은  말씀은  사
2:4에도 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세계 각국에서 주님께  돌
아올 자들이 많을 것을 예언한다. 욥 21장 참조.

 

  시 22:29

  세상의 모든 풍비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진토에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다 그 앞에 절하리로다. - 여기서 이른바, "풍비한 자"란 말은 민족
들의 대표자들 혹은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먹고 경배함"은, 신약 시대에 하나님과 사
귀는 축복을 비유한다. "진토에 내려가는 자" 혹은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란  말은,
죽은 자들을 가리킨다고 하나(Gunkel,Noordtzij), 리델보스(J. Ridderbos)는 , 환난이
나 질병이나 비애로 인하여 눌린 자들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시 22:30

  후손이 그를 봉사할 것이요 대대에 즈를 전할 것이며. - 여기 "후손"이란 것은  앞
절에 언급된 신자들의 후손을 이름이다(창  17:6;신  30:6'  시  69:36,  102:28;  사
59:21; 렘 31:34; 욜 2:28). 이 귀절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위대에 대하여 말하는 동
시에 인생들에게 주시는  특권에  대해서도  말한다(J.  Ridderbos,  De  Psalmen  I,
p.199).

  시 22:31
  와서 그 공의를 장차 날 백성에게 전함이여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할 것이로다.  -
"와서"란 말은, 앞절의 "후손"이란 말과 관계되어 있는데, 그들이 세상에 날 것을  가리킨다. "그 공의"란 말은 하나님의 의(구원)를 가리키고,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란 말은, 주께서 구원을 이루셨다는 뜻이다. 이것은, 신약 시대에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실 사실을 예언한다.


Articles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