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22:1,2
다윗이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1절 상반). "아둘람"은 베들레헴 동남쪽
으로 4마일 거리에 있는 지방이라고 하는 학자가 있으나 확실치 않다. 어쨌든 이곳은
요새지요 은신처였다. 다윗이 이곳에 있는 동안 곤경에 빠진 모든 자들이 그에게로 모
여 왔다.
"빚진 자"로 번역된 히브리어(* )는 복수이므
로 "빚진 모든 사람"이라고 개역해야 된다. 이들은 사울의 착취 행위 때문에 궁지에
빠진 자들이다. 왕하 4:1 참조. 다윗에게로 모요든 사람들은 모두 다 사울의 압제 아
래서 억울함을 당한 자들이어쌀. 불의한 사울 일당과 대립되는 이들은 의로운 편에 속
한 것이다. 이들 중에는 용사들도 있었고(대상 12장), 선지자도 있었다(22:5). 대상
21:9 참조. 이들은 강한 군대를 이루었으므로 전쟁하면 승리를 거둘 만한 병력(兵力)
이었다. 23:5, 27:9, 30:26참조. 그러나 다윗은 끝까지 사울을 대항(對抗)하지 않고
피신을 계속한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자를 존중하는 믿음을 가
졌기 때문이다. 훗날 다윗의 왕위에 오른 뒤에 이 때 함께 있던 군인들이 다윗을 유력
하게 돕는 세력이 된 것이다. 이들이 이렇게 모이게 된 것은 이들로 하여금 다윗과 함
께 고생하면서 신앙과 겸손과 의(義)의 훈련을 받도록 섭리하신 하나님의 인도였다.
삼상 22:3-5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 것을 내가 알기까지(3절 중간). 다윗은 그 험악
한 때에 한 걸음씩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의뢰하였다. 시 37:39-40 참조. 다윗이 그 부
모를 "모압 왕"에게 맡겨 보호를 받도록 하였는데 이것은 그이 효도이다. 다윗의 중조
모(曾祖母)인 "룻"이 모압 여자였으니만큼 모압 왕에게 그만한 부탁을 할 만하였다.
룻 1:22 참조.
삼상 22:6-8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으되 내게 고
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고(8절 상반). 하나님의 신이 떠난 사울와은 어두워져서 권세를
유지하려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자기를 참으로 돕는 친구들을 원수로 여기는 악인이 되
었다. 그가 전부터 다윗과 요나단을 자기의 원수로 오해해 왔는데(20:30-34), 이제는
자기와 함께 한 신하들에 대해서도 의심하려고 한다.
사람은 조심하지 않으면 이권(利權)을 보고 저렇게 망발하게 된다. 특히 지도자들 중
에 이렇게 되는 일이 많다. 그러므로 지도자들은 이권앞에서 신중히 생각함으로 자기
자신자르 제재해야 된다. 불신자들 중에도 의리를 지키는 사람이 있는데 어찌하여 신
자들 가운데 이권을 탐하여 망동하는 자가 있는가? 안중근(安重根) 의사(義士)는 중국
여순(中國旅順)감옥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이권을 보고는 의(義)를 생각하
고, (나라가) 위태로운 것을 보고는 생명을 내어주라"(見利思義見危授命)라고. 일국의
애국자도 이렇게 살았거든 하물며 천국 일꾼들이랴!
삼상 22:9,10
에돔 사람 도엑이.... 가로되 이새의 아들이 놉에 와서... 아히멜렉에게 이른 것을
내가 보았었는데 아히멜렉이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묻고 그에게 식물도 주고... 골리
앗의 칼도 주더이다. 도엑은 사울왕을 기쁘게 하려고 으로운 사람 다윗과 제사장 아히
멜렉 사이에 되어진 일을 사울에게 고발하였다. 그 때에 다윗과 아히멜렉이 사울레게
대한 반역을 꾀한 일은 전연 없었건만 도엑은 그들을 참소하였다. 이것은 권세 있는
자 앞에서 옳고 참된 말은 하지 못하고 그 권세자의 생각에 영합(迎合)하려고 옳은것
도 왜곡(歪曲)시켜 전한다. 옛날 진(秦) 나라의 간신(奸臣)들은 폭군 앞에 설 때에 왕
이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해도 그 말을 응종하여 그렇다고 (指鹿爲馬) 하였다. 도멕
은 세력 있는 자에게 붙어 사욕(私慾)을 채우고자 하였다. 21:7에 대한 해석을 참조하
라. 이와 같은 자는 간사한 자임에 틀림 없다. 다윗이 이 소식자르 듣고 읊은 시(時)
가 시 52편이다.
삼상 22:11-13
이 때에 사울이 제사장들을 문책한 말은 그의 오해에서 난 것이고 사실에 근거한
것은 아니었다. 다윗에게는 사울을 대적하여 반란을 일으킬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런
데 사울은 다윗과 제사장들이 공모하여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고 하였다.
삼상 22:14-16
제사장 아히멜렉은 왕권(王權) 앞에서도 바른 말을 용감하게 하였다. 그는 다윗을
칭찬하여 말한(14절) 뒤에 "내가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은 것이 오늘이 처음이니이
까"라고 담대히 말하였다(15절 상반). 아히멜렉의 이 말은, 자기가 대제사장의 자격으
로서 다윗을 위하여 하나님께 물은 일(다윗의 앞길이 평탄할지 알아본 것)이 당연하다
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다우시을 사울의 원수로 알지 않고 충신(忠臣)이자 그의
사위로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의 이와 같은 고백은 양심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아히멜렉과 그 가문(家門)을 진멸하겠다고 공언하였다.
삼상 22:17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이라. 사울은 이 살인 장면에서 "여호와"한 성호를 부르기
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그 제사장들이 여호와를 위하여 성별괸 자들인 줄 알면서
도 그 성별을 모독하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나님에게서 버림을 받은 자
는 이렇게 어두워진다. 16:14 참조.
왕의 신하들이 손을 들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이기를 싫어한지라. 이 때까지 상루
을 따르던 신하들도 그의 이 망령된 명령은 순종하지 않았으니, 그들이 이단계에 와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편으로 용단한 것은 귀하다. 그들의 이같은 결단은 폭군의 무서운
벌을 각오한 데서 내려졌을 것이다. 이 시점(時點)에서 그들은 하늘에 속하였고 사울
은 땅에 속하였다.
삼상 22:18
에돔 사람 도엑이 돌이켜 제사장들을 쳐서 그 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 자팔심 오인
을 죽였고. 사울의 이 무서운 범죄는 그가 멸망을 자초하는 행동이다. 악인은 언제나
스스로 함정을 판다. "도엑"에 대하여는 21:7, 22:9에 자세히 설명되었으니 참조하라.
삼상 22:19
제사장들의 성읍 놉의 남녀와 아이들과 젖 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쳤더
라. 이 끔찍한 살륙 행위는 사울의 악독이 극도에 달하였음을 드러냈다. 하나님의 말
씀은 왕 된 자가 그 백성에게 대하여 형제 같이 처신해야 될 것을 가르친다(신 17:20
상반). 그런데 사울은 정반대로 행하였다. 권세욕으로 어두워진 자들은 무죄한 생명 해함을 조금도 두려원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마 2:16, 14:6-11; 행 12:1-3 참조.
삼상 22:20-22
나의 연고로다(22절 끝). 다윗은 제사장들이 사울에게 죽임 당한 참사(慘事)에 대
하여 스스로 책임을 느낀다. 위대한 신자들은 책임감이 강하다. 욘 1:12 참조.
네가 나와 함께 있으면 보전하리라(23절 끝). 다윗은 여기서 아비아달을 위로하여 말하기를, 자기와 함께 있으면 안전하다고 하였다. 그의 이 말은,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여 주심을 확신한 데서 한 것이고 결콜자기의 어떤 힘을 과시한 것은 아니었다. 23장에 나타난 그의 행적을 보아도 그는 여호와의 인도를 따라서 한걸음씩 움직였으므로 사울에게 붙잡히지 않았다. 23:4, 9-1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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