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11:1,2
암몬 사람 나하스가 올라와서 길르앗 야베스를 대하여...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
희 오른눈을 다 빼어야 너희와 언약하리라 내가 온 이스라엘을 이같이 모욕하리라.
"야베스"(* )는 '말랐다'(dried up)는 뜻을 지닌 지방으로서 이 지방 사람들
은 일찌기 베냐민 지파를 공격하는 이스라엘의 전체적 동원에도 협력하지 않았었다(삿
21:8). 따라서 야베스 사람들은 그 고장의 이름 뜻과 같이 연약해진 것이 분명하다.
공동체에 협력하지 않는 지체는 언제나 약해지는 법이다. 이 때에 암몬은 이스라엘 중
가장 약한 지방으로 침략해 왔다. 우리의 신앙 생활에 있어서도 마귀의 역사는 언제나
약한 점을 틈타서 들어온다.
옛날에 침략자가 포로들의 눈을 뽑은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다시는 전쟁을 하지 못하
게 하려는 것이었다. 암몬 족속이 이스라엘(야베스에 있는)사람들을 정벌(征伐)하되
그들의 오른눈을 뽑고 그들을 종으로 삼고자 하였다. 그것은 극도로 잔인한 계략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압제 당하는 약자, 특히 이방인에게 압제 당하는 그의 백성을 위하여
구원의 손을 펴신다.(시 10:18).
삼상 11:3-5
"야베스 장로들"이 그 당한 원통한 사실(2절)을 이스라엘 전체에게 호소하였다.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 가로되 백성이 무슨 일로 우느냐(5절). 이 때에
사울은 전에 하던 농사를 돌보고 있었다. 그가 이미 왕으로 기름 부음이 되었고
(10:1), 또 일반 민종도 그를 왕으로 추대한 사실이 있는데(10:24) 그가 아직도 자기
집 농사에 종사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로서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의 왕권 사용
의 출발동기는 아직까지 생기지 않았고, 또 그것도 하나님의 신(성령)의 역사로 시작
될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왕으로 추대된 후에도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가 농
사에 종사하였던 것이다(10:26). 어떤 학자들은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왔다는 기록
에 대하여 말하기를, 벌써 왕으로 민중의 추대를 받은 바 있는 사울이 여기서 농부로
묘사된 것은 이상하다고 하면서 이 부분이 사울의 왕 된 사실(9:1-10: 24)과 관련 없
이 기록된 별개의 문서라고 한다(New Century Bible, 1 and 2 Samuel, 1971, p.104).
스토에베(Hans Joachim Stoebe)는 11:1-11은 하나의 독립적인 단편문서로서 9:1-10:
16과 대조된다는 뜻으로 말하였다(Damit erweist sich zunachst 11, 1-11 als
selbstandiges Uberlieferungsstuck, parallel zu 9, 1-10, 16.-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Das erste Buch Samuelis, 1973, s.224). 그러나 이 학설은 신임할 만한
근거를 가지지 못하였다.
삼상 11:6,7
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매 그 노가 크게 일어나서
96절). 사울은 이스라엘을 모욕한 이방인의 교만한 행위에 대하여 노를 발하였다. 이
것은 혈기의 노가 아니었고 "하나님의 신에게 브게 감동"되어 일어난 의분(義憤)이었
다.
한 겨리 소를 취하여 각을 뜨고...가로되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좇지
아니하면 그 소들도 이와 같이 하리라(7절). 이것은 사울이 침략군을 물리치기 위한
그의 군사 동원에 민중의 복종을 촉구하는 의미로 취한 행위였다(Hans Joachim
Stoebe, 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Das erste Buch Samuelis, 1973, s.227).
사울이 그의 징병(徵兵) 명령에 복종치 않는 자에 대한 벌을 선포하되 인명(人命)에
관계된 것은 아니니, 앞으로의 그의 정치가 가혹하지 않을 것이 암시되기도 하였다.
삿 21:5 비교. 사울의 명령 때문에 "여호와의 두려움"(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생각)이
백성에게 임하였다고 함을 보아서(7절 하반), 지도자로서의 그의 이와 같은 행위가 정
당했던 것으로 증명된다(Hans Joachim Stoeve, Was vom Gottes-shrecken gesagt wird,
legitimiert Sauls Fuhrungsanspruch gegenuber dem Volk.-Kommentar Zum Alten
Testament, Das erste Buch Samuelis, 1973, s.227). 이 때에 사울이 서령의 감동에
의한 의분의 표현으로 소를 잡아 각을 뜬 것은 큰 일을 이름에 있어서 시작이었고, 그
는 그 정의감대로 관철하였다. 세상에서 좋은 업적을 남긴 지도자들은 불의를 향하여
의분으로 애항했던 정의(正義)의 사람들이었다. 의분이란 것은 결국 정의감(sense of
justice)인 것이다.
삼상 11:8
이스라엘 자손이 삼십 만이요 유다 사람이 삼 만이더라. 숫자에 있어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엄청난 차이점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유다 사람"(인구가 적어진 베냐민 지파
를 내포함. 삿 21:6,15)의 수효는 한 지파의 것이니 적고,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는
열 지파의 것이니 많다. 어떤 학자들은 이 숫자가 과장된 것이라고 하였고(New
Century Bible, 1 and 2 Samuel, 1971, p.105), 혹은 이 기록이 문학적인 것이므로 정
확한 것이 못된다는 의미로 말하였다(J.L.Kool, Het soortelijk gewicht van de
historusche stoffen van het Oude Testament, GTT, jaarg.65, mei 1965). 그러나 성
경의 기록이 사실주의를 엄격하게 지키는 것인 만큼 우리는 위의 학설들을 받을 수 없
다. 그 때에 암몬 족속의 잔인한 행동 때문에(1-2) 이스라엘 민족이 격분하였으므로
그들이 모두 "한 사람 같이" 나아왔다(7절 하반). 그렇다면 그들의 대다수가 군대로
나왔음이 틀림 없다. 어느 민족이든지 억울하게 외국의 압제를 받을 때에는 단결하여
그 압제자를 대항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무엇보다 이 때는 사울이 이스라엘의 지도
자로 나서는 초기였고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에 구국 운동(救國運動)에 온
백성이 총궐기 하였다.
삼상 11:9-11
내일 해가 더울 때에 너희가 구원을 얻으리라 하라(9절 중간). 사울은 하나님이 자
기와 함께 해주심을 확신하기 때문에 이렇게 승리의 시간까지 내다보았다. 약속대로
사울은 승전하였다(11절).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는 사람은 그의 받은 사명 실행에 형
통할 것을 확신하게 된다.
삼상 11:12,13
사울이 자기를 반대하여 온 자들에 대하여 관대하게 용서한 사실이 여기에 기록되
었다. 그가 이렇게 관대하게 행한 동기는 여호와의 행하시는 일 (구원하시는 일)에 순
종하려는 것이었다(13절). 이것은 그가 하나님을 경외한 증거이다. 이것은 그가 그의
후년에 행한 것(무죄한 다윗을 죽이려고 한 것)과 정반대이다. 우리는 이것을 보아서
도 집권자가 권세욕에 끌리게 되는 때에는 심령이 어두워지고 따라서 인간성이 잔인해
지며 호학해지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약 1:15 참조.
삼상 11:14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 사울이 이미 민중으로 말미암아 왕으로 추대 받았었으나(10:24) 이 때까지 왕을 위한 공식적 행사가 없었다. 그러므로 사무엘은 이번에 암몬 족속에 대한 사울의 승리 사건을 계기로 하여 그의 왕권을 확고하게 하려 한다. 사울왕을 지지하는 민중의 이번 행사는 하나님 앞에서 화목제(감사제)를 드림이었다.
삼상 11:15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고. "화목제"(* )는 감사제인데 경
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고 온 희중이 제물을 먹으며 즐거워하는 행사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있는 평화로운 교통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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