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성령에서 나온 여러 은사(고린도 전서 12:1-11)
바울은 여기에서 고린도 교회에 풍성히 임한 영적 은사와 은사의 남용을 취급한다. 이 장에서 이들 은사가 무엇인가를 말한다. 불신자의 회개와 복음의 전파를 위하여 초대 교회의 사역자들과 교인들에게 부여된 특별한 직책과 능력을 말한다. 은사(cari,smata)와 은혜(ca,rij)가 크게 다르다. 둘 다 하나님에게서 왔다. 구원을 위하여 은혜가 주어지고 다른 사람의 유익과 구원을 위하여 은사가 주어진다. 은혜가 없는 곳에도 은사가 있을 수 있고, 은사를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은총에서 전연 떠나 있을 수가 있다. 은사가 인간에게 주어진 신령한 자비이지만 하나님을 만족할 조건은 못된다. 고린도 교회는 은사가 풍부하였으나 혼란에서 온 많은 잘못된 일이 있었다. 그들은 이들 은사를 성령으로부터 받았다.
Ⅰ. 바울은 그들이 은사의 출처와 용도를 알기를 원한다. 은사들은 하나님에게서 왔으니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한다. 이 둘을 모르면 잘못을 범한다. 올바른 깨달음이 신앙의 실천에 있어서 매우 유용하다.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은사의 성질과 올바른 용도를 모르는 것은 비참한 일이다.
Ⅱ.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빠져나온 옛날의 상태를 상기시킨다.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갔느니라"(2절). 이방인이었을 때에 영적인 예산이나 은사들을 자랑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이방 종교의 정신을 받고 있는 동안에 그리스도의 영으로 영향을 받을 수가 없었다. 그들이 이전의 이와 같은 상태를 이해한다면 모든 영적인 은사가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모를 리가 없다.
1. 그들의 전의 상태, 그들은 "이방인"이었다.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버린 상태로서 유지시킨 백성이었다. 선택된 유대 민족은 특별한 은총으로 세상의 다른 민족과 구별되었다. 이들에게만 하나님에 대한 참다운 지식과 예배가 제한되어 있었다. 세상의 남어지 백성은 약속의 계약에 낯선 사람이요 하나님이 없는 이스라엘 나라에서 소외된 백성이다(엡 2:12). 개종 전에는 고린도 교인들도 그러한 이방인이었다. 얼마나 큰 변화가 일어났는가! 다음을 주목하자. 그리스도인들을 의무와 감사를 느끼게 하며 어떠한 사람이었던가를 생각하게 하는 것은 대단히 유용한 일이다. "너희들은 이방인이었다."2. 그들이 행하던 행위.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헛된 상상력과 무지를 악용하는 이방 선지자들의 영향으로 큰 우상에 빠져 나무나 돌을 섬기었다. 그들의 철학자들의 사상이 무엇이든지 그들을 추종하는 대중의 행위가 이러하였다. 그들은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문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우상을 섬기며 경의를 바쳤다(시 113:5, 6). 비참한 마음의 상태이다. 대중의 이와 같은 개념을 경멸하는 사람들도 행위로써 지지하는 형편이었다. 이방 종교의 실망스러운 상태이다. 성령이 그와 같은 어리석은 우상 숭배자에 임하며 그들이 이 성령에 의하여 감동을 받을 수 있을까, 이 세상의 왕이 인간을 얼마나 잘못 인도하며 인간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가!
Ⅲ.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나온 참다운 영적 은사를 분별하는 방법.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즉 유대인이나 이방인들 모두 그렇다. 이방인들은 예수를 사기군으로 저주하였다. 많은 유대인들도 하나님의 영으로 기사를 행하고 다닌다고 생각하며 이방인들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것처럼 행동했다. [라이트푸트(Lightfoot)의 "Horoe in loc" 참조]. 그리스도를 부언하고 저주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예언과 기사와 부활과 교리의 선포와 영향으로써 그리스도를 증거한다. 그리스도를 저주할 수가 없다. 반면에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주라 함은 신앙으로 살며 그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기사를 행한다 함이다. 사람들 앞에서 이 진리를 시인하며 죽을 때까지 유지하며 그 영향으로 살아가는 일은 성령의 성화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신앙이 성령으로 역사되지 않고는 그에게 복종하고 의지하며 살아가고 그리스도를 주라 할 수 없다. 격려하고 힘을 주는 성령에 의하지 않고는 시험의 날에 이 진리를 고백한 수 없다. 다음을 주목하자. 하나님의 용납하심과 화해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중보가 필요한 것과 같이 우리의 성화와 견인을 위하여 성령의 역사와 영향에 의존해야 한다. 성령에 의하지 않고 기적으로 이 진리를 증거할 수 없다. 악마의 나라에 그렇게 유해한 교리와 신앙을 악의 영이 도와주지 않는다. 바울의 주장의 진수는 기독교의 반대의 입장을 가진자의 영감과 기사는 성령에서 온 것이 아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라는 증거는 용기로, 기사로 할 수 없고 성령만으로 가능하다. 그러므로 그들의 특별한 역사와 능력은 하나님의 영에서 온 것이다.
Ⅳ. 이들 성령의 은사들은 같은 성령에서 나왔으나 여러 가지이다. 이들은 한 창시자와 근원을 가지고 있으나 여러 종류이다. 자유로운 원인은 여러 결과를 만들고 같은 공급자가 여러 은사를 부여할 수 있다(4절). "은사는 여러 가지나" 즉 계시와 방언과 예언과 방언 해석이다. 그러나 "성령은 같다." 여러 직임과 규례와 제도가 있다(28-30절). 이 모든 것을 정하시는 이는 같은 주이시다(6절). "여러 역사"가 있으나 즉 기적적인 능력들이 있으나(evnergh.mata duna,mewg)(10절) "모든 역사를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여러 은사와 시행과 역사가 있으나 한 하나님, 한 주, 한 영에서 나왔으며 즉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며 모든 영적 축복과 유산의 원천에서부터 나왔다. 같은 근원과 창시자에게서 나왔다. 은사가 다르나 이전에서는 일치한다. 얼마의 종류가 여기에 언급된다(8-10절). 여러 사람이 여러 은사를 가지고 있으나 같은 성령에서 나왔다. 어떤 이에게는 지혜의 말씀이 주어졌다. 즉 복음의 비밀에 대한 지식이다. 이 비밀을 설명하고 그리스도의 신앙의 계획과 성질과 교리의 정확한 이해라고 해석하고 어떤 이들은 솔로몬의 잠언과 같이 정중한 말을 의미한다고 한다. 사도에게 나타난 계시에 의한 지혜의 말씀이라고 한정시키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즉 비밀에 대한 지식이다(2:13). 구약의 예언과 모형과 역사에 싸여 있던 것이다. 어떤 이들은 어려운 경우에 충고할 수 있는 기술을 의미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기적에 대한 믿음 혹은 신령한 능력과 약속에 대한 믿음이다.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믿음이다. 위로부터 내려온 특이한 감동이다. 그래서 위험할 때에 하나님을 믿을 수 있고 의무를 수행하며 어떤 위험이나 곤란이 있어도 진리를 자인하고 고백할 수 있는 능력이다.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안수나 기름을 붓거나 말씀으로 병자를 고치는 은사이다.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능력의 효력이다(evnergh.mata duna,mewg). 즉 죽은 자를 살리며 장님을 보게 하며 벙어리가 말하게 하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반신불수가 걷도록 하는 능력이다. "어떤 이에게는 예언을," 즉 미래의 일을 미리 말하는 것이다. 혹은 성령의 특별한 은사로써 성경을 설명하는 일이다(14:24 참고). "어떤 이에게는 영을 분별함을" 즉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별하며 어떤 직책에 대한 어떤 사람의 내적 자격을 분별하거나 베드로와 같이 사람의 마음을 알아내는 성령의 역사이다(행 5:3).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영감으로 언어를 말하는 능력이다. "어떤이에게는 방언을 통역함을 주시나니," 외국의 언어를 쉽게 통역할 수 있는 능력이다. 초대 사역자들과 교회들은 이런 여러 영적 은사를 받았다.
Ⅴ. 이들 은사가 부여된 목적.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7절). 성령은 이들 은사의 역사로 나타나셨다. 성령의 영향과 유익이 그들 안에서 나타났다. 그러나 단지 소유자의 영광이나 유익을 위하여 분배되지 않고 교회의 유익과 덕과 복음의 전파와 발전을 위하여 주어졌다. 다음을 주목하자. 하나님이 부여하신 모든 은사는 선을 행하도록 함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은 그의 영광과 이웃의 이익을 위하여 이용되어야 한다. 아무도 자기의 전유물로 가지는 것이 아니다. 유익을 주도록 위탁될 것이다. 남을 유익하게 할수록 자기가 이롭게 된다(빌 4:17). 성령의 은사는 교회의 유익과 기독교의 전파를 위하여 부여되었다. 자랑하도록 주어지지 하고 봉사하도록 주어졌다. 뽑내기 위함이 아니고 덕을 세우기 위함이다. 소유자가 높아지도록 하는 것이 아니고 남을 가르치기 위함이다.
Ⅵ. 은사가 주어지는 분량. "이 모듣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주시는 이의 절대적인 기쁜 마음에 의하여 주어진다. 선물보다 더 무료인 것이 무엇일까. 하나님이 자기의 것인 성령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을까. 성령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에게 그 뜻대로 주시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각양각색의 은사가 있다. 많이 받는 이도 적게 받는 이도 있다. 성령은 가장 훌륭한 판단자이시다. 사람의 생각대로 부여되지 않고 성령의 뜻대로 주어진다. 다음을 주목하자. 성령은 신령한 인격이시다. 그는 의존이나 간섭없이 자신의 뜻과 능력에 의하여 신령한 은사를 공급하신다. 은사들은 성령에 의하여 무료로 주어지지만 개인의 명예나 유익이 아니라 공공의 유익과 몸인 교회의 덕을 위하도록 목표가 서있다.
사람의 몸과 같은 교회(고린도 전서 12:12-26)
바울은 위에서 주장한 진리를 이해시키고 고린도 교회 교인들 중에서 은사를 받은 사람에게 그들의 의무를 상기시킨다. 그리스도의 교회를 인간의 몸에 비유한다.
Ⅰ. 한 몸은 여러 지체를 가지고 있으나 여러 지체는 한 몸을 만든다(12절). "몸은 하나인데 여러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인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즉 여러 신학자가 말하는 바와 같이 신비스러운 그리스도이다. 머리와 지체의 관계처럼 그리스도와 교회는 한 몸이다. 여러 부분이고 여러 지체나 한 몸이다. 모든 지체는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한 성령을 마시게 하였느니라"(13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같은 위치에 있다. 같은 몸에 세례를 받고 같은 성령에 참여한다. 그리스도인은 세례로써 몸의 지체가 된다. 한 몸이 된다. 외적인 의식은 신령한 제되다. 중생의 씻음(딛 3:5)이라 불리어지는 새로운 탄생을 의미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는 것은 성령의 신생으로써 된다. 성령의 역사와 성찬의 분배로 지체가 된다. 잔을 마실 뿐 아니라 성령으로 마셔 교제한다. 외적인 의식은 하나님에 의하여 정해진 수단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의 참 지체가 되는 것은 성령의 세례와 그의 새롭게 하여 주심과 감화의 덕분이다. 성령으로 생기를 얻어 한 몸이 된다. 다음을 주목하자.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모든 사람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그리스도의 지체이다.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이다. 한 생활 원리를 가지고 있다. 모두가 같은 성령으로 생동하게 된다.
Ⅱ. 각 지체는 특이한 형태와 위치와 용도를 가지고 있다.
1. 가장 비천한 지체도 몸의 한 부분을 만든다. 발과 귀는 손과 눈보다는 덜 유용할지 모른다. 그러나 손이 아니며 눈이 아니라고 몸에 속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가 없다(15,16절). 신비한 몸의 모든 지체도 같은 위치와 직책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면 몸과 관계가 없는가? 같은 지위나 같은 은사를 못받아서 "그리스도에게 속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가장 비천한 지체도 가장 고상한 지체만큼 중요하다. 모든 지체가 그리스도에게는 귀하다.2. 몸의 지체는 차이가 있어야 한다.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뇨"(17절).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뇨"(19절). 여러 지체이고 차이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몸은 하나다"(20절). 한 지체가 몸이 아니고 여러 지체로 구성된다. 이들은 위치와 모양과 용도가 다르다. 그리스도의 몸도 그렇다. 그의 지체들은 다른 지위와 능력과 은사를 가지고 있다. 여러 지체가 몸의 아름다움을 이룬다. 다 눈이거나 귀이거나 팔이면 어떠한 괴물이 되겠는가! 여러 은사와 직책이 있음은 교회의 아름다움을 위함이다.
3. 인간의 몸의 각 지체의 배열과 위치는 하나님의 기쁜 뜻이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18절) 모든 지체의 배열의 하나님의 지혜가 나타나 있다. 그의 뜻대로 되어 있다고 그리스도의 몸도 그러하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위치와 능력이 정해져 있다. 모든 것의 주께서 은총과 은사를 기뻐하시는 대로 주셨다. 누가 그에게 반대할까 다른 사람들을 시기하거나 불평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의 자리에 있지 않다고 투덜거리거나 싸워서는 안 된다.
4. 몸의 모든 지체는 어떤 의미에 있어서 서로 서로 필요하다.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21,22절) 하나님께서는 모든 지체가 서로 요긴하도록 하셨다. 남는 지체나 불필요한 지체가 없다. 모든 지체가 봉사한다. 각 지체와 전체 몸에 유익하다. 불필요한 교회의 지체가 없다. 다 필요하다. 서로 시기하거나 경멸하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 서로 의존하며 귀하며 관계를 맺고 요긴하도록 하셨다. 어떤 은사에게 뛰어난 사람들이 다른 부족한 사람을 무시할 수 없다. 다른 은사에서는 그들이 우수하기 때문이다. 가장 높은 지체도 가장 낮은 지체가 없으면 무용하다. 눈은 손이 필요하다.
5. 인간의 신체에 대한 관심도 그러하다.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노출하기에 부끄럽고 흉한 몸의 부분은 잘 입혀서 덮어 둔다. 아름다운 부분은 그럴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섭리는 너무나 놀라워 가장 필요한 곳에 배려와 명예가 주어진다(24절).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도 이와 같이 행동하여야 한다. 연약한 자를 멸시하거나 비난하지 말고 덮어서 감추어 주어야 한다.
6. 하나님의 지혜는 몸의 각 지체가 분열하지 않고 서로 관계를 가지며 이웃의 슬픔과 기쁨을 나누도록 고안하고 질서를 세웠다(25,26절). 자연적인 육체도 조정하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25절) 분열이 없으며 상호 무시가 없도록 되어 있다. 영적인 그리스도의 몸도 그러해야 한다. 사랑의 강한 줄로써 연결되어야 한다. 이런 애정의 부패가 모든 분쟁의 씨가 된다. 이웃에 대하여 냉담하면 부주의하게 된다. 이 상호의 무관심이 분쟁의 시초이다. 자연적인 육체도 각 지체가 서로 보도록 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몸도 같다. 각 지체는 동정해야 한다. 육체에 있어서 한 지체의 기쁨과 슬픔이 전체의 몸에게 영향을 주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인도 동료들과 함께 영광을 누리고 함께 고통을 당하며 형제의 명예를 시기하지 말고 같이 기뻐하고 영광을 누려야 한다.
은사의 종류(고린도 전서 12:27-31)
Ⅰ. 바울은 여기에서 자기의 주장을 정리하고 그리스도의 교회에 비교한다.
1. 그리스도인들이 서 있는 관계성 모든 시대에 걸쳐 그리스도인의 모임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의 몸의 지체이며 동료로서 서로 관계가 있다(27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각자는 지체이며 몸이 아니다. 몸의 일부분으로 붙어 있고 각 지체는 상호 의존과 관계를 가져 서로 돌보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사람의 몸과 같이 신령한 몸도 같이 배치되어 있다. 다음을 주목하자. 상호의 냉담과 경멸과 미움과 시기와 싸움은 그리스도인에게 어색한 것들이다. 그것은 몸의 지체가 서로 무관하며 싸우는 것과 같다. 이것이 바울의 논지이다. 바울은 교만하는 사람과 자랑하는 사람과 성령의 은사로써 다투는 정신을 누르려고 노력했다.2. 그리스도에 의하여 세워진 여러 직책과 부여된 은사와 은총들(28절).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웠으니 첫째는 사도요" 사도는 교회를 세울 능력과 계시를 받았다. "둘째는 선지자요" 전도자와 같이 성령의 영감으로 예언하고 성서를 해석하며 기록하는 사람이다. "세째는 교사요" 목회를 하거나 하지 않거나 말씀과 교리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그 다음은 능력이요" 즉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다. "그 다음은 병고치는 은사요" 병고치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서로 돕는 것과" 병자와 약한 자에게 동정을 가지고 돌보는 사람이다. "다스리는 것과" 교회의 사랑의 헌금을 처리하며 가난한 자를 돕는 사람들이다. "각종 방언을 하는 사람이라." 여러말을 하는 사람이다.
(1) 풍부한 은사와 직팩. 얼마나 많을 은사인가. 선하신 하나님께서 원시 교회에 풍족히 주셨다. 그는 축복과 은총에 인색하시지 않다. 아니 부요하게 주셨다. 필요 이상으로 주셨다.
(2) 직책과 은사의 순서. 올바른 순서로 놓여 있다. 가장 가치가 있는 것이 먼저 놓여 있다. 사도와 선지자와 교사는 사람들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일을 알려 주고 그들의 영적 교훈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세워졌다. 이들이 없으면 복음의 지식도 거룩함도 증진 될 수가 없다. 나머지가 기독교에 아무리 필요하더라도 신앙에 그처럼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다음을 주목하자.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은사의 참 가치를 정해야 한다. 용도가 가치의 가장 좋은 표준이다. 최고의 목표를 만족시키는 것이 최고의 가치가 있다. 사도의 능력이다. 기적과 병고치는 것과 가난한 자를 돕는 것과 병든 자를 도와 주는 것은 유용하다. 즐기고 자랑하기 위한 방언은 얼마나 헛된 일인가. 방언은 칭찬은 받기 쉬우나 듣는 사람의 덕이나 유익이 없다. 14장에 의하면 고린도 교인들은 이 은사를 아주 귀하게 여긴 것 같다. 그들이 자랑하는 것의 참다운 가치를 깨닫도록 하는 것이 얼마나 적당한 교만을 꺾는 방법인가. 인간은 가장 가치가 없는 것을 가장 자랑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의 잘못을 알게 하여서 정신을 차리도록 한다.
(3) 은사의 고른 분배. 모든 지체와 직책은 교회에서 같은 지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 같은 능력도 가지지 않았다.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29, 30절). 그렇다면 교회를 괴물로 만든다. 마치 몸 전체가 눈이거나 귀인 것과 똑 같다. 직책에 맞는 교인들이다. 성령께서 정해 주시었다. 다른 사람과 다른 직책이라도 만족해야 한다. 높은 지위나 큰 은사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거나 다른 사람을 경멸하면 안 된다. 각 지체가 자기의 직책을 수행하며 서로 봉사하며 시기와 멸시와 무시와 악용 없이 서로 봉사해야 한다. 각 지체가 자기의 의무을 수행하면 교회는 얼마나 축복된 기관일까.
Ⅱ. 바울은 충고와 암시로써 이 장을 끝맺는다.
1.가장 좋은 은사를 사모하라는 충고. cariuata takrei,ttona -dona potiora proestautiora 그 자체가 가장 귀하며 가장 남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명성과 존경을 가져오는 은사를 가장 귀하게 여기지만 이것들이 가장 좋은 은사이다. 즉 하나님이 가장 영광을 받으시고 교회의 덕에 가장 유용한 것이 제일 귀한 은사이다. 이런 은사들을 사모해야 한다. 다음을 주목하자. 우리는 가장 가치있고 좋은 것을 원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은사보다 은혜가 더 귀하다. 은사 중에도 유용한 것이 더 귀하다. 충고가 아니고 책망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다른 은사를 사모하라"(zhloavte). 13장 4절에 같은 단어가 번역되었다. 너희들이 그들에 대하여 싸우고 다투는도다. 바울은 이것을 책망하고 수정하려고 노력한다. 교만에서 다툼이 생긴다. 고린도 교회의 다툼은 이 근원에서 생겼다. 우월에 대한 싸움이었다. 우월권은 사랑을 박멸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모두가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할 때에 그의 형제를 떠미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은사가 유용하지만 자만과 경쟁의 화근이 될 때에 비극이다. 이것을 바울은 막으려고 하였다.2. 더 좋은 은사 즉 사랑과 선의을 암시한다. 이것이 그들을 안정시키고 연합하는 유일의 길이며 은사가 유익하고 교회에 덕이 되도록 하는 방법이다. 이것이 서로 친절하며 관심을 가지며 다툼과 우월감을 종식시키는 것이다. 참다운 사랑을 가진 사람이 제일 높은 자리에 있다. 진실한 사랑이 모든 은사보다 더 사모해야 함을 주목하자. 사랑으로 마음이 빛나는 것이 자랑하는 명예나 직책이나 능력보다 더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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