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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이스라엘의 죄악 (호세아 4:1-5)

본문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가진다.

Ⅰ. 법정이 개설되고 방청과 주의가 요구된다. "너희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이는 너희가 들으려고 하든지 않든지 간에 너희에게 이런 유죄 선고가 내려진 때문이다." 하나님이 자기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자기에게서 경고를 받아들일 것으로 기대하실 수 있는 대상은 하나님께 신앙을 고백하는 이스라엘 자손 외에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 하나님께서 위로의 말씀을 하실 때 그들은 기꺼이 들으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과 쟁변하실 때 그들은 즐겨 들으려 할 것인가? 물론,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질책하시고 고발하실 때 그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안 된다. "여호와께서 이 땅 곧 이 거룩한 땅의 거민과 쟁변하신다." 죄는 큰 이간꾼이란 점을 명심하자. 죄는 하나님과 이스라엘간에 불화를 심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서 죄를 발견하시고 그 때문에 그들을 고발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보다 특수한 몇 가지 혐의 사실이 있다. 이것은 다른 죄인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이다. 그가 그들과 쟁변하시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한 때문이다. 그는 그들이 하나님께 수치를 돌려 드리고 그의 은총을 배은망덕하게 갚은 데 대해 변론하신다. 하나님의 쟁론은 그들이 하나님의 손의 심판으로 정죄되기 전에 그 입의 심판으로 전개될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자기의 모든 행동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으시고 죄인의 죽음을 원치 않으신다는 것을 드러내시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변론은 경청되어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그의 쟁변은 조만간에 들려 질 것이기 때문이다.

Ⅱ. 기소장이 낭독된다. 이 기소장으로 전 민족이 극악의 혐의를 받는다. 하나님께서는 이로써 크게 노여워하신다.

1. 그들은 국가적으로 극히 중요한 의무를 태만히 하였다.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다. 그들에게는 자선도 정의도 없다." 이런 것들은 우리 구주께서 의와 신과 인이라고 표현하듯(마 23:23), 율법의 극히 중한 것이었다. 백성 전체가 소위 정직이라는 것 따위를 전혀 인식하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그들은 자기들의 말과 행실이 아무리 진실에 위배되고 자기 이웃에게 피해를 주더라도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하물며 자비에 대한 인식이나 빈자에게 대한 측은지심과 구제의 의무야 말해 무엇하랴! 그 땅에 하나님께 대한 지식이 없을 때 진실과 인애가 없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하나님께 대한 지식이 없는 곳에서 어떤 선을 기대할 수 있으랴? 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이 알려지고 그의 이름이 그곳에서 크다는 것은 그 땅의 특권이었다. 따라서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그들의 죄를 더욱 가중시키는 것이었다(시 76:1).

2. 여기에는 십계명에 대한 극악한 국민적 죄가 잇달아 나온다. 그들은 십계명의 두 율법판을 전혀 중시하지 않았다. 맹세(한글 개역 성서:저주)와 거짓말(사위)과 살인과 도둑질(2절)과 간음은 각각 3계명, 9계명, 6계명, 8계명, 7계명의 위반이었고 이런 죄는 전국 방방곡곡과 온갖 부류의 사람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죄였다(2절). 부패는 그 땅에서 보편적으로 볼 수 있었다. 선량한 사람들은 없어지거나 숨기웠다. 또는 선량한 사람은 스스로 숨거나 했다. 그들은 이들 죄로써 파괴하였다(강포했다). 즉 그들은 이성과 양심과 신적 법의 모든 영역을 범하였다. 그들은 심히 악했고 지나치게 악인이 되었다(전 7:17). 그들은 자기들의 부패가 밖으로 나오도록 허용했다. 그들은 자기 길에 걸리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파괴하며 돌파하고 물이 둑 위에 넘치듯 죄의 편력 가운데서 그들을 제지시키려고 했다. 죄는 격렬한 것이며 그 위세가 엄청나다는 데 주목하자. 인생들의 마음이 악을 행하기에 담대할 때(전 8:11) 무엇으로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하리요? (창 11:6) 그들이 이처럼 강포할 때 피는 피를 따른다. 즉 전국 각처에서 끊임없이 늘 많은 살인이 자행된다. Cades alioe aliis sunt contiquoe-즉 살인이 살인을 뒤따른다. 그들 사이에는 심지어 왕국 간에도 유혈이 임리한다. 왕권을 장악하느라고 그토록 많은 유혈사태를 빚은 것도 이때였다. 살룸이 스가랴를 시해하고 므나헴은 살룸을, 베가는 브가야를, 호세아는 베가를 살해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유혈극은 아마 다른 분쟁자들 사이에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땅은 피로 더러워졌다(시 106:38). 무죄한 자의 피는 예루살렘 이쪽 가에서 저쪽 가까지 가득하였다(왕하 21:16).

Ⅲ. 이 죄와 오염된 땅에 내려진 판결(3절). 그 땅은 완전히 멸망하여 황폐될 것이다. 전 국토는 죄에 감염되었다. 그러므로 온 땅이 하나님의 쓰라린 심판 아래서 슬러할 것이며 그 모든 재물과 아름다움을 박탈당하여 애곡 속에 앉게 될 것이다. 풍요와 평화가 있을 때는 골짜기가 기뻐 소리치며 노래한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전쟁과 기근으로 황량하게 되어 슬퍼한다고 한다. 율법에서 위협되었듯이(신 29:23) 온 땅이 유황이 되며 소금이 되며 불에 탈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어겼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그들의 모든 위로를 빼앗아 버리겠다고 위협하신다. 소떼가 먹을 풀이 없고 사람에게 소용되는 식물이 없을 때 땅은 슬퍼한다. 그리고 무릇 거기 거하는 자가 다 생명을 유지시키는 좋은 음식의 부족으로 쇠잔할 것이며 기쁨을 주는 맛난 음식의 결핍으로 안달이 날 것이다. 들짐승도 곤비할 것이다(렘 14:5, 6). 아니, 땅의 열매의 멸망이 너무나 커서 공중의 새도 주워 먹고 살 것이 없을 정도이다. 조류는 사람이 함께 고난을 당할 것이어서 그들의 사멸이나 수척은 야생 조류로 식탁을 풍족히 꾸미던 자들에게는 형벌이 될 것이다. 아니,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거나 한 데 모일 것이다. 즉 고기가 떼를 지어 다른 해안으로 사라지며 따라서 어업은 극심한 흉어로 보잘 것 없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황폐는 노아의 홍수 때보다 더 전반적인 것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노아 홍수가 바다의 고기한테는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그들의 물고기를 죽이신 것은 애굽의 재앙중 하나였다(시 105:29). 물이 마를 때 고기는 죽는다(사 50:2; 습 1:2, 3). 인간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게 될 때 하등 동물이 인간에게 소용없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점을 유의하자. 우리는 우리 땅에 대한 하나님의 인내와 자비를 찬양할 만하다. 왜냐하면 비록 이 땅에서 저주와 사위와 살인과 투절과 간음이 그토록 많지만 우리 식탁에는 육류와 생선과 조류가 풍성하기 때문이다.

Ⅳ. 정죄받은 죄인을 회개시키기 위해 어떤 수고도 하지 말라는 법정 명령이 내려진다. 이 명령에 대한 이유도 제시되고 있는데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1. 명령 자체(4절). "그러나 아무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 그들을 환원시키거나 순화시키기 위해 어떤 수단도 사용하지 말라. 그들의 의원으로 하여금 그들을 치료 불가능한 절망자로 포기케 하라." 이것은 역설적으로 희망이 있는 한 우리가 죄인의 죄에 대해 그들을 꾸짖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책망을 주고받는 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지고 있는 의무이다. "너는 네 이웃을 반듯이 책선하라" (레 19:17)는 것은 모세 율법중 하나였다. 그것은 형제애의 한 본보기이다. 인간은 자기 죄와 헤어지기 싫어하는 존재이므로 때로는 신랄하게 책망할 필요가 있을 뿐만 아니라 다툴 필요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책망하지도 말라" 고 하실 때에는 그 사람들을 멸망받도록 포기한다는 표시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때때로 선지자에게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지 말라" 고 하시는 명령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선지자들은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그런 명령을 내리신다. 그러나 본문의 의미는 그들이 죄 가운데서 너무나 완악해져서 멸망에 합당하게 무르익었으므로 그들과 관계하거나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진정하는 것은 전혀 소용이 없으리라는 것이다. 책망자들이 침묵을 지키고 그 시대의 죄를 쳐서 증언해야 할 자들이 귀퉁이로 물러나 주장을 포기할 때는 그것이 백성들에게 흉한 징조가 된다(대하 25:16 참조).

2. 이 명령의 이유. 상호 책망 금지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그들은 죄 가운데 계속 행하기로 결심하고 있어서 어떤 책망도 그들의 죄를 치료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같이 되었음이니라." 그들은 죄 중에서 너무나 뻔뻔스럽고 무례하게 되어 책망을 참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제사장이 조금만 제지해도 그의 특수성과 직분을 전혀 존중치 않고 그에게 덤벼들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어떻게 일반개인에게서 책망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자기들에게 신실히 관계한다고 하여 목사들과 언쟁을 벌이는 죄인은 자기 마음을 악하고 강퍅케 한다. 목사의 책망은 교인을 개혁하기 위한 하나님의 규례이다. 이런 책망에 반발하는 자는 형제적 책망의 혜택도 상실한 자이다. 이것은 아마 유다왕 요아스의 악함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이유로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돌로 친 그 백성들을 가리킬 것이다(대하 24:21). 스가랴는 제사장이었다. 그가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직분을 이행하던 때 그들은 그와 다투었다. 라이트푸트 박사는 호세아가 피를 따르는 피이야기(2절)를 할 때는 바로 스가랴의 경우를 지목한다고 생각한다. 제사 드리는 자의 피가 제물의 피와 뒤섞였다는 것은 그들의 악의 절정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 같다는 것이 그들을 고칠 가능성이 없는 것이었듯이 그들의 파멸은 스가랴의 피까지 소급하는 것이었다(마 23:35).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든지 그들을 책망하지 말라는 것이다.

(2) 하나님도 그들의 파멸을 진행시키기로 결심하셨기 때문이다(5절). "그러므로, 즉 네가 어떤 책망도, 어떤 충고도 받아 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에 너는 거칠 것이다. 누가 그것을 방지하려고 생각해도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명령이 이미 발해졌기 때문이다. 너는 낮에 거쳐서 넘어질 것이며 선지자 즉 네게 아첨하고 꾀던 선지자는 밤에 너와 함께 거치리라. 너와 네 선지자는 밤낮으로 넘어질 것이며 끊임없이 이런 저런 재난에 빠질 것이다. 밤의 어두움도 너를 환난에서 엄폐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며 낮의 빛도 네가 곤란에서 도피하는 것을 도우지 못할 것이다." 선지자들은 눈 먼 인도자들이며 백성은 눈 먼 추종자들이다. 눈 먼 자에게는 낮과 밤이 마찬가지이다. 낮이든 밤이든 그들 두 부류는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 "너는 네 실족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무척 안심할 낮에 거치리라(원의:넘어지리라). 남들의 눈에 보이고 관찰되는 낮에 너는 엎어질 것이며 그것은 극히 큰 수치가 될 것이다. 선지자는 밤에 엎어질 것이다. 즉 그 자신에게는 실족이 극히 두려울 밤에 거칠 것이다." 타인의 파멸을 도운 자들은 파멸을 당할 것이며 그 파멸은 특별히 견딜 수 없는 것이 될 것이다. 자녀들은 자기들이 넘어질 위험에 빠져 있을 때 그 어머니가 도와 줄 것으로 생각했는가? 그런 기대는 무익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네 어미를 멸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마리아는 어미 성이었고 완전한 나라였다. 그것은 각 지역에게 어머니 같았다. 그것은 모두 잠잠하게 될 것이다. 모두가 죄에 연루될 때에는 모두가 멸망에 연루되는 것밖에 달리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4:2 없음.

 

4:3 없음.

 

4:4 없음.

 

4:5 없음.

 

4:6

백성과 제사장의 죄 (호세아 4:6-11)

하나님께서는 여기에서도 제사장 및 백성과의 쟁변을 계속하신다. 백성들은 자기 의무를 이행하는 제사장들을 소유할 때도 그 제사장과 다투는 자 같았다(4절). 그러나 대다수의 제사장들은 자기 의무를 태만히 하는 가운데서 생활했고 여기에는 그런 제사장들과, 그런 상황을 사랑하던(렘 5:31) 백성들에게 대한 말씀이 나온다. 여기서는 형벌이 어떻게 죄와 상응하는지와 하나님이 자신의 수속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이 두 가지를 어떻게 대조하시는 지를 관찰할 수 있다.

Ⅰ. 백성들은 제사장들과 다투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지식을 백성에게 가르쳐야 했었다. 따라서 백성들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것은 당연했다(6절). 빛에 반역하는 자들은 어둠 속에서 망하는 것밖에 달리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자. 또는 이것은 제사장에게 대한 책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제사장은 백성에게 계속 지식을 가르쳐야 했었다(전 12:9). 그러나 그들은 그러질 못했거나 아니면 전혀 가르치지 않는 듯이 했다. 그래서 그 땅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었다. 그리고 환상이 없거나 아무 목적도 없으므로 백성은 망했다(잠 29:18). 무지는 신앙의 어머니기는 커녕 멸망의 어머니라는 데 주목하자. 지식의 결핍은 어느 사람이나 어느 백성에게도 파멸이 된다. 이처럼 망하는 백성은 "내 백성" 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었고 그의 계명 아래 있었으며 그와 계약을 맺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지식을 얻으려고 수고하지 않았다. 그런 하나님과의 관계는 그들의 죄를 더욱 가중시켰다. 그리고 백성을 가르쳐야 마땅했던 제사장의 죄도 역시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의 교육을 그들에게 맡기고 자녀들을 그들에게 보내셨지만 그들은 백성을 유의하지 않고 그들에게 애쓰지 않았다.

Ⅱ. 제사장과 백성은 다 지식을 배격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시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백성이 배우지 않고 제사장들이 가르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빛을 가지지 못한 때문이 아니고 빛을 미워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도달할 길이 없거나 전달할 수단이 없어서라기보다 그럴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배우거나 가르치지 않았다. 그들은 지식을 버렸다. 그들은 하나님의 도에 관한 지식을 원하지 않고 멀리하였으며 빛에 대해 눈을 감았다. 그러므로 "나도 너를 버리리라. 내가 너를 인지하고 인정하기를 거절하겠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모르니 나를 떠나라고 명하리라. 왜냐하면 너희가 나를 모를 것이며 나더러 떠나라고 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너를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다."

1. 제사장들은 더 이상 제사장직의 특권을 허용받지 못할 것이며 제사직에 등용되지 못할 것이고 우리가 보는 대로 다시는 열납받지 못할 것이다(겔 44:13). 지식을 버리며 크게 무지하고 비방적인 목사들은 목사로 인정되어선 안 된다는 것을 유의하자.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눅 8:18).

2. 백성들은 더 이상 이전처럼 제사장 나라나 거룩한 백성이 되지 못할 것이다(출 19:6 참조). 하나님의 백성은 지식을 버림으로써 그 명예를 상실할 것이며 자기들의 면류관을 더럽히게 될 것이다.

Ⅲ.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다. 그들은 그것을 마음에 간직하고 싶어하지도 않았고 그러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율법에 대한 기억을 그 후손에게 전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연히 그들과 그 자녀 즉 백성의 자녀를 잊어버리실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지식과 의무를 자녀에게 가르쳐야 마땅했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와의 언약대로 그들을 인정하지 않으실 것이다. 만일 부모가 자녀들이 어릴 때 그 창조주를 기억하도록 가르치지 않는다면 그들은 그 창조주가 자기들을 기억해 주시리라고 기대할 수가 없다는 데 주목하자. 아니면 이것은 제사장의 자녀를 의미할 수도 있다. 그들은 자기 아비의 제사장직을 계승하지 못하고 엘리집에 대한 경고처럼(삼상 2:20) 빈궁에 처하게 될 것이다.

Ⅳ. 그들은 자기들의 명예가 되는 것으로 하나님을 불명예스럽게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들의 명예를 박탈할 것이다(7절). 그들의 인구나 존귀나 세력이나 위엄이 증가한 것은 그들의 명예였다. 이스라엘 민족의 시작은 보잘 것 없었으나 시간이 경과하자 크게 번성하고 매우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 제사장 가문은 놀랄 정도로 번성했다. 그러나 그들은 번성할수록 하나님께 범죄했다. 민족의 수효가 불어날수록 더욱 많은 죄가 자행되었고 그들은 더욱 더 속화되었다. 그들의 재산과 명예와 세력은 그들을 더욱 대담하게 범죄하도록 만들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내가 저희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겠다." 고 말씀하신다. 그들의 인구가 그들의 영화인가? 하나님께서 그들의 수를 줄여 소수가 되게 하실 것이다. 재물이 그들의 영화인가?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난하게 만들고 비천하게 만드실 것이다. 그들은 자랑하던 것을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제사장은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될 것이다(말 2:9). 우리가 우리의 명예가 되는 것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면 그것도 조만간 우리의 치욕으로 변하게 된다는 데 주목하자.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멸시하는 자를 경멸히 여기실 것이다(삼상 2:30).

Ⅴ.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백성의 죄를 먹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먹어도 배부르지 않을 것이다.

1.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제사장 즉 아론 집의 제사장에게 허락된 공물과 자기들의 헌법으로 금송아지의 가짜 제사장에게 바쳐진 부양물을 남용하였다(8절). "저희가 내 백성의 죄(흠정역) 즉 속죄 제물을 먹었다." 이것이 만약 송아지의 제사장을 가리킨다면 그들이 취할 권리가 없는 제물을 먹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들은 제사장도 아니면서 제사장의 수입을 횡령했다. 그리고 만약 이것이 합법적 제사장을 의미한다면 그들이 직분의 이행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으면서 부수입이나 이익에는 탐욕을 부리는 것을 시사한다. 그들은 여호와의 제물 중 자기 몫으로는 흥청거리면서 정작 그처럼 후한 보수를 받는 일은 망각하였다. "그들은 그 마음을 저희의 죄악에 두는도다." 그들은 자기 영혼을 백성의 죄악에 들어 바쳤다. 즉 그들은 백성이 죄를 범할 때 기뻐하였다. 이는 백성이 범죄하면 속죄하기 위해 제물을 가지고 와야 하며 그렇게 되면 그들도 제 몫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죄가 많으면 많을수록 재물도 더욱 많아진다. 그러므로 그들은 백성이 죄를 얼마나 많이 짓든지 상관하지 않았다. 죄는 속죄의 보상을 필요로 했고 제물은 죄가 하나님께 얼마나 노여움이 되는 지를 나타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백성에게 죄를 경고하긴 커녕 제물만 생각하고 백성으로 하여금 더욱 대담하게 범죄하도록 격려를 한 셈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토록 작은 비용을 들여서 속죄를 할 수 있었던 때문이다. 이와 같이 그들은 백성의 죄를 포식했으며 마땅히 중단시켜야 할 범죄를 계속 행하게 도왔던 것이었다. 이런 저런 면으로 우리에게 이득이 될 수 있다고 하여 타인의 죄를 기뻐한다는 것은 아주 악한 일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2.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대한 부양의 축복을 거절하실 것이다(10절). "저희가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리라." 그들은 제물의 헌납으로 아주 풍족하게 소유할지라도 만족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음식이 그들에게 좋은 영양을 제공하지 않거나 그들의 탐욕이 그 음식에서 만족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불법으로 획득한 것은 즐겁게 사용되지 못한다는 데 주목하자. 아니, 과도히 탐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탐욕스러운 욕심은 언제나 만족을 모르며 족함을 모르는 자들이 결코 배부르지 못한다는 것은 당연하다(미 6:14; 학 1:6 참조).

Ⅵ. 그들은 번성할수록 더 많은 죄를 범했다(7절). 그러므로 그들이 행음하여도, 즉 백성을 증가시키기 위해 극히 악한 방법을 취할지라도 수효가 더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비록 솔로몬처럼 처첩을 많이 둘지라도 솔로몬과 같이 많은 자손을 얻지 못할 것이다. 불법적 수단으로라도 수를 증가시키려고 희망하는 자들은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실망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여호와 좇기를 그쳤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모든 계획을 이처럼 무산시켜 버리실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께 주목하기를 그쳤다(흠정역). 그들이 하나님과 그의 권세와 영향력에 주의를 다소 기울이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중도에서 그쳤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나 섭리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들은 그를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께 주목하지 않으려고 그를 버린다. 그들은 너무도 타락해서 하나님을 존중하는 예의도 없고 세상에서 완전히 하나님이 없는 듯이 지낸다. 여호와께 주목하기를 그치는 자들은 모든 선을 그치는 자들이어서 온갖 선한 것이 자기들을 버리는 것밖에 달리 기대할 것이 없다.

Ⅶ. 백성과 제사장들은 서로의 죄를 강퍅케 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형벌에 동참해 마땅할 것이다(9절). "장차는 백성이나 제사장이나 일반이라." 그들은 성질상으로도 마찬가지였다. 백성과 제사장은 다 같이 무지했고 저속했으며 하나님을 무시했고 의무에 태만했으며 우상 숭배에 탐닉했다. 그래서 그들은 같은 처지에 빠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심판을 내리실 것이며 그 심판은 양자를 다 멸망시킬 것이다. 백성에게서 양심을 빼앗는 기근은 제사장에게서 소제를 빼앗을 것이다(욜 1:9). 백성과 제사장이 일반일 것이라는 것은 보편적 파멸에 대한 부분적 묘사이다(사 24:2). 하나님의 심판이 사명을 갖고 임할 때는 구별이 없을 것이다. 죄에 동참하는 자는 파멸의 동참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소행대로 벌하실 것이며 그들의 소위대로 갚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행위가 그들 위에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원의는 그렇다). 죄가 저지른 후 죄인은 그 죄가 가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그 죄가 다시 호출을 받아 돌아오게 되며 자기를 낮추고 정죄하게 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Ⅷ. 그들은 관능의 즐거움에 빠져 마음을 북돋우려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것이 자기들의 마음을 빼앗는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11절). "음행과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가 마음을 빼앗느니라." 어떤 이는 앞 절과 결합시켜 "그들은 음행과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를 좇기 위해 여호와를 버렸다." 고 읽는다. 또는 "이런 것들이 그 마음을 빼앗았기 때문에 그들이 여호와 좇기를 그쳤다" 고 읽기도 한다. 관능적 쾌락이 그들의 신앙심을 빼앗아 갔고 그들 안에 있는 온갖 선을 죄다 수장시켜 버렸다. 아니면 우리는 이것을 위대한 진리가 포함된 분명한 하나의 문장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는 나날의 경험에서 음란과 술취함의 죄는 인간을 흐리멍덩하게 만들고 취하게 하며 약화시킨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이 두 가지는 총명과 용기를 다 가져가 버린다.

 

4:7 없음.

 

4:8 없음.

 

4:9 없음.

 

4:10 없음.

 

4:11 없음.

 

4:12

제사장과 백성의 죄 (호세아 4:12-19)

Ⅰ. 여기서는 하나님이 쟁론하시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가 기소된다. 즉 그 죄는 다음과 같다.

1. 영적 음행 또는 우상 숭배. 그들은 음란한 마음을 품고 있다. 그들은 음란의 죄에 대한 강력한 경향성을 지닌다. 그들의 마음은 그쪽으로 치우쳐 있고 구부러져 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죄였다. 그들은 말할 수 없는 맹렬한 힘으로 그 죄를 향해 끌려가며 이것은 그들을 미혹하게 한다. 판단의 실책과 실수는 부패한 애착에 기인한다는 것을 주목하자. 사람들은 죄에 대한 기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죄를 좋게 생각한다. 우상에 대해 그토록 그릇된 견해를 품으며 우상을 향해 그토록 열정이 작용하므로 그런 머리와 마음을 지닌 자들이 하나님의 수하를 떠나 행음한다 해도 하등 이상할 것은 없다(12절). 그들은 머리와 남편되신 하나님께 복종해야 마땅했고 그의 인도하심과 명령 아래 있어야 옳았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떠나 거짓 잡신들의 인도와 보호 아래로 들어갔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행음하였다(15절). 그들이 우상을 섬기는 행동은 방종하고 뻔뻔스러운 음부와 같았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완강한 암소처럼 완강하다" (원의는 뒷걸음질치는 암소뒷걸음질 한다:흠정역). 그들은 길들지 않은 암소 같다(혹자는 그렇게 해석한다). 또는 패역하거나 고집센 암소 같다(다른 이들은 그렇게 해석한다). 고삐풀린 소가 풀밭에서 미친 듯 날뛰는 것과 같다. 멍에를 지운 소가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뒤로 물러나며 목에서 멍에를 벗으려고 기를 쓰며 밭이랑에 발을 들여놓지 않으려고 버티는 것과 같다(본문은 오히려 이것을 가리킬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와 같이 제어하기 힘들고 고분고분하지 않으며 불순종하였다. 그들을 앞으로 몰기 위해 선지자들이 책망의 막대기로 보내졌을 때 그들은 가시채를 뒷발질하고(행 26:14), 뒤로 달아났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의 합계는 "에브라임이 우상과 연합했다" (17절)는 것이었다. 그들은 완전히 우상과 결합하고 그 애정은 아교처럼 우상과 접착되며 그 마음도 우상에게 가 있었다. 그들의 영적 간음에 대한 사례가 두 가지 나오는데 이 일에서 그들은 하나님께만 돌려야 할 존귀를 우상에게 돌렸다.

(1) 그들은 우상에게 신탁을 묻고 우상의 사제들에게서 배운 점술을 사용했다(12절). "내 백성이 나무를 향하여 묻는다." 그들은 나무로 된 신들에게 지도를 구하며 충고를 의뢰하였다. 그들은 어떻게 행해야 할지 지시와 권고를 의뢰하며 사건에 대한 정보를 물었다. 그들은 나무에게 "너는 내 아비라" (렘 2:27)고 말했다. 그게 참으로 아비라면 이런 존귀를 받을 만했다. 그러나 그들이 나무를 향하여 이렇게 묻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큰 모욕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의 참 아버지며 그들 중에는 살아 있는 그의 신탁이 있어서 어느 때든지 자유로이 물을 수 있었던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막대기가 그들에게 어떤 길을 취해야 할지와 사건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고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이것은 아마 이방인 사이에 사용되던 악한 점술을 가리킬지도 모른다. 유대인들은 그들에게서 그 점치는 방법을 배웠을 것이다. 그것은 느부갓네살이 화살로 점을 쳤듯(겔 21:21) 한 조각의 나무 또는 막대기로 치는 점이었다. 하나님의 신탁을 버리고 세상과 육으로부터 방도를 구하는 자들은 사실상 자기 나무나 막대기와 상의하는 셈이다.

(2) 그들은 그것을 신으로서 그것에게 제사를 드렸다. 그들은 그 은총을 원했고 그것의 노여움을 두려워하고 그 진노를 입지 않도록 빌었다(13절). 그들이 그것들에게 제사를 드린 것은 속죄를 위해서이며 그것들을 달래기 위해서이다. 그들이 분향한 것은 그것들을 즐겁게 하고 흡족하게 하며 이로써 그것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이름을 기록하고 싶은 곳을 선정하셨지만 그들은 그곳을 버리고 자기들의 상상력을 만족시키며 불경건한 의식에 알맞는 장소를 택했다.

[1] 그들은 높은 곳을 택했다. 그들은 산 꼭대기와 작은 산 위에서 제사를 드렸다. 이것은 땅의 높이가 하늘을 향한 접근에 유리하리라는 어리석은 생각에서이다.

[2] 그들은 참나무와 버드나무와 상수리나무 아래의 음지를 택했다. 이는 그 그늘이 그들에게 즐거웠기 때문이다. 더운 지방에서는 특히 그러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런 응달이 자기들의 신에게 즐거운 곳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그들은 짙은 녹음이 명상학에 알맞고 두려운 마음 같은 것이 들게 하기 때문에 예배의 적지(適地)라고 상상했을 것이다.

2. 육체적 간음이 여기서 그들의 또 다른 범죄로 추궁되고 있다. "저희는 행음하기를 마지 아니하였다" (18절). 그들은 음란을 업으로 삼았다. 그것은 때때로 범한 단일 행위가 아니라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않는 많은 사람들의 경우처럼(벧후 2:14) 그들의 변치않는 행위였다. 이스라엘에게서 발견된 것은 가증스런 불결과 음란이었다.

(1) 그것은 우상 숭배의 부수물로 언급된다. 그들의 거짓 신들은 그들을 음란에로 이끌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섬긴 악마는 비록 영이긴 하지만 음란한 영이기 때문이다. 우상을 섬긴 자들은 창기와 함께 나가며 음부와 함께 희생을 드렸다. 왜냐하면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여 그를 욕되게 했으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악한 애정:흠정역)대로 내버려 두사 자기 몸을 서로 더럽게 하신 때문이다(롬 1:24, 28).

(2) 그것은 우상 숭배의 벌로 언급된다. 우상을 숭배한 자들은 바알브올의 숭배에서처럼(민 25:1, 2) 우상 숭배 의식에 참가한 창기들과 함께 나갔다. 이를 벌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아내와 딸들을 마찬가지의 악한 애욕에 내버려두셨다. 그들은 행음하며 간음하였으니(13절) 이는 그 남편과 부모들에게 큰 슬픔과 수치가 되었다. 자신은 정숙하지 않은 자라도 아내나 딸들은 정숙하기를 바라는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형벌에서 자기들의 죄를 읽을 수 있었다. 이는 마치 다윗의 간음이 자기 아들에 의한 후궁들의 겁탈로 벌받은 것과 같다(삼하 12:11). 그들은 간음죄를 범했지만 남들도 그들에게 꼭 같은 죄를 범함으로써 그들을 슬픔과 고통 속으로 몰아 넣는다. 그럴 때에라도 그들은 하나님이 의로우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3. 정의의 왜곡(18절). "저희 방백들은 달라 하기를 사랑한다(흠정역)." 즉 그들은 뇌물을 사랑한다. 그 입에서는 "달라 달라" 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들은 부정 이득에 미쳤다. 그들과 볼일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너는 무엇을 주려는가?" 라는 물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은 방백(통치자)으로서 직분상 정의를 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도 사례금을 주어야 정의를 행해준다. 그들이 사례금을 위해서 부정을 행하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금전에 대한 사랑은 공평을 파멸시키며 모든 악의 뿌리가 된다는데 주의하자. 그러나 "달라" 고 하기를 사랑하는 것은 어느 누구보다 통치자에게 수치가 된다. 통치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탐욕을 미워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마 이것은 여기 "그들의 술이시다" (한글개역 성서:저희가 마시기를 다하고)는 표현의 의도일 것이다. 그들의 마시는 것은 김이 빠지고 맛이 나갔다. 정당하게 행사되는 정의는 목마른 자에게 대한 음료처럼 원기를 북돋우는 것이 되나 정의가 왜곡될 때 즉 지배자들이 보수를 받고 죄인을 방면하거나 무죄한 자를 정죄할 때는 그 마시는 것이시다. 그들은 "공법을 벌레로 변하게 하는 자들이다" (암 5:7). 아니면 이것은 일반적으로 전 국민의 타락된 도덕을 가리킬 수도 있다. 그들은 자기들의 모든 생명과 정신을 상실했고 하나님께는 죽은 것만큼이나 역겨운 존재였다. 그들은 신술처럼 역겨운 존재였다(신 31:32, 33 참조).

Ⅱ. 이런 죄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진노하실 징표는 다음 여러 가지다.

1. 그들의 아내와 딸은 그 가족들에게 끼친 피해와 치욕에 대해 처벌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14절). "내가 너희 딸들을 벌하지 않으리라." 그들은 자기 죄에 대한 벌을 받지 않음으로 해서 계속 그 죄를 범하려 할 것이다. 한 죄인의 무형벌은 때때로 다른 죄인의 벌이된다는 데 주목하자. 또는 "내가 너희를 벌하듯 그들을 벌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너희는 유다가 그 며느리에 대해 한 것처럼 그들이 너희보다 더 의롭다는 것을 자인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창 38:26).

2. 그들은 잠시 번영할 테지만 그 번영은 그들의 멸망에 보조 역할을 할 것이다. 그 번영은 그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징표로서 등장한다(16절). "여호와께서 저희를 넓은 곳의 양같이 먹이시리라" (흠정역). 그들은 비옥하고 넓은 초장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들은 거기서 완전히 포식하게 되고 최상의 것으로 배부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잘 먹인 양처럼 그들을 살륙하기 위한 준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살져서 차버린다면 도살자를 위해 살찌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그들을 공유지, 참으로 넓은 장소의 양처럼 먹인다고 해석한다. 이스라엘의 목자는 그들을 자기 초장과 자기 보호로부터 몰아 내실 것이다.

3. 그들을 회개시키기 위한 어떠한 수단도 사용되지 않을 것이다(17절). "에브라임은 우상과 연합하여 우상을 사랑하며 우상에 빠졌으니 그를 버려 두라. 아무 사람이든지 그를 책망하지 말라(4절). 그를 그 마음의 정욕대로 내버려 두며 그 자신의 의향대로 행하게 하라. 우리는 그를 고치고자 하였으나 그가 고침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를 버려두라." 그들의 결국이 어떠한지 살펴보자(신 32:20). 어떤 사람이든간에 죄 중에 혼자 버려둔다는 것은 슬프고도 쓰라린 심판임을 명심하자. 왜냐하면 하나님은 죄인에게 대해 이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우상 즉 세상 및 육신과 연합하였다. 그는 고칠 수 없을 만치 교만하고 탐욕스러우며 포악하다. 그는 고칠 수 없는 주정뱅이거나 행음자다. 그를 혼자 버려 두라. 양심아, 그를 혼자 버려 두라. 목사야, 그를 버려 두라. 섭리야, 그를 버려 두라. 지옥의 불길이 그를 깨닫게 하기까지 아무 것도 그를 일깨우지 못하게 하라." 아버지가 자식을 폐적하려고 결심하는 때는 그 패역한 자식을 그 이상 더 징계하지 않는다. 자기 죄 속에서 당혹함을 느끼지 않는 자들은 그 죄 때문에 멸망받게 될 것이다.

4. 그들은 신속하고 수치스런 멸망으로 급히 데려감을 당할 것이다(19절). "바람이 그 날개로 저를 쌌다. 이는 저를 급하고 격렬하게 그리고 불가항력적으로 포로로 끌어가기 위해서다." 그는 그들을 회리바람으로 제해 버리실 것이다(시 58:9). 그러면 그들은 그 제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다. 그들은 우상에게 제물을 바친 자기 죄 때문에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며 자기들의 어리석음을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다. 즉 그들은 자기들을 도울 능력이 없는 신들에게 그토록 비용을 들이고 자기들을 멸할 만한 전능한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을 자기들의 원수로 삼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언젠가 부끄러워하고 수치를 당할 제물이 있다는 데 주목하자. 자기 시간과 힘과 명예와 모든 위안물을 세상과 육신에 바치는 자들은 곧 그것을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눈멀고 절고 마음에도 없는 제물을 하나님께 바치는 자들도 그것을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다.

Ⅲ. 범죄한 이스라엘의 전철을 따라 죄를 짓지 말라는 경고가 유다에게 주어지고 있다. 이것은 14절 끝에서도 나온다.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패망하리라." 부닥치는 거침돌을 피하거나 극복할 줄 모르는 자들은 넘어지지 않을 수 없다(그러므로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특히 두 지파의 나라 유다가 그렇다(15절). "이스라엘아 너는 행음하여도 유다는 죄를 범치 말아야 할 것이라." 이스라엘은 우상 숭배에 빠질지라도 유다는 감염되지 말아야 했다. 다음을 살펴보자.

1. 이것은 매우 필요한 경고였다. 유다인에게는 이스라엘인이 형제였고 가까운 이웃이었다. 이스라엘은 유다보다 다수였고 이 때에는 보다 번성하였다. 그러므로 유다인이 이스라엘의 행사를 배우고 영혼의 올무에 빠질 위험이 있었다. 우리가 죄에 감염될 위험이 크면 클수록 경계해야 할 필요성도 더욱 증대한다는 것을 유의하자.

2. 그것은 매우 합리적 경고였다. "이스라엘은 행음해도 유다는 그러지 말 것이라." 유다는 이스라엘보다 큰 지식의 수단을 소유했고 성전과 제사장과 다윗 가문의 왕이 있기 때문이다. 실로는 유다로부터 오시기로 되어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위해 큰 축복을 예비하고 계셨다. 그러므로 유다는 죄를 범치 말아야 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보다 유다에게서 더 많은 것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만약 범죄한다면 책임질 일이 더 많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더 무자비하게 다루실 것이며 그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취하실 것이다. 이스라엘이 행음한다고 하더라도 유다는 그러지 않아야 한다. 유다도 범죄하면 하나님께는 이 세상에서 신앙을 고백하는 백성이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많은 자가 등을 돌렸을 때 "너희도 가려느냐?" (요 6:67)고 열두 제자에게 이르셨듯이 하나님께서도 여기서 유다에게 말씀하신다. 이제껏 자기 순전을 지킨 자들은 모든 사람이 타락하는 시기에조차 자기 순전을 굳건히 고수해야 한다는 데 유념하자. 유다를 이스라엘처럼 범죄하는 것에서 보호하기 위해 두 가지 규칙이 제시된다.

(1) 우상 숭배를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들은 우상 숭배의 장소에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너희는 길갈로 가지말라." 그들의 모든 악은 길갈에 있었다(9:15; 12:11). 그들은 길갈에서 죄를 더했다(암 4:4). 아마 그들은 길갈에 대한 경외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여호수아는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다" (수 5:15)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길갈로 가지 말라고 금지를 받는다(암 5:5). 꼭 같은 이유로 그들은 벧엘로 가서는 안 되는데 벧엘은 여기서 허영의 집이라고 불리운다. 왜냐하면 벧아웬은 하나님의 집이란 의미의 벧엘과는 달리 허영의 집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죄를 멀리하고 악마의 수중에 빠지지 않으려는 자들은 범죄의 기회를 애써 피해야 하며 악마의 땅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2) 우상숭배를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들은 신성 모독을 주의해야 하며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들은 진실과 공평과 정의로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렘 4:2). 그러므로 여기서 금지하고 있는 것은 허위와 불공평한 불의로 하는 맹세이며 경박하고 성급한 맹세나 거짓되고 기만적 맹세나 여호와와 우상으로 하는 맹세이다(습 1:5). 꾸준히 하나님께 집착하려는 자들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감과 존경심을 소유해야 하며 언제나 엄숙하고 진지하게 하나님의 말을 해야 한다. 참되신 하나님을 희롱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자는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으로 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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