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사랑(신명기 22:1-4)
출애굽기 22장 4절에는 원수에게도 칠절을 베풀자는 말씀이 있고 여기에서도 비록 이웃이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더라도 그에게 친절을 행하도록 명하고 있다. 왜냐하면 율법은 언제나 공평하기 때문이다.
1. 길 잃은 가축을 만났을 때는 그 주인에게 돌려 주거나, 그것이 있었던 목장으로 데려다 주어야 한다(1, 2절). 길을 잃고 헤매는 이 가축을 진심으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이렇게 행해야 한다. 즉 자기가 대접받고 싶은 그대로 남에게 대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공평의 근본적인 율법이다. 신앙은 우리에게 친절할 것을 가르치며, 우리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모든 사람에게 선행을 행하도록 가르치고 있다는 것를 명심하자. 이 일을 행하는 데 있어서,(1) 그들은 수고를 꺼려하지 말고 주인을 알면 그 가축을 곧 데려다 주어야 한다. 만약 그들이 주인에게 알려 그 주인이 찾아 가도록 한다면 그가 찾아오기 전에 어떤 재난이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2) 비용드는 것을 꺼려해서는 안 된다. 만일 그 주인을 모르거든 그 가축을 자기 집으로 데려가 주인을 찾을 때까지 키워야 한다. 길 잃은 이웃의 가축을 돌봐 주는 데에도 이러한 관심이 필요할진대 하나님과 그의 의무로부터 떠나 길을 잃고 헤매는 인간에게랴! 우리는 진리를 떠난 자들이 돌아설 수 있도록 우리의 최선을 다해야 하며(약 15, 19). 우리들 자신을 또한 돌아 보아야 한다(갈 6:1).
2. 모든 잃은 물건은 그 주인에게 돌려 주어야 한다(3절). 유대인들은 "잃은 물건을 주운 자는 대중 앞에 나가 서너 번 큰 소리로 주인을 찾도록 되어 있었다" 라고 말한다. 이것은 영국 관습과 비슷하다. 만일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그 물건을 주은 자가 자기의 것으로 삼을 수 있었다. 그러나(이러한 경우를 깊이 연구해 본 저술가에 의하면) 물건을 주운 자는 그것을 가난한 자에게 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한다.
3. 곤경에 빠진 가축을 도와야 한다(4절). 우리가 언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는지 모르더라도, 우리는 이웃에 대한 우호감과 사랑을 가지고, 짐승에 대한 동정을 가지고(자비로운 사람은, 비록 자기 것이 아닐지라도 짐승의 생명을 존중한다.) 이렇게 행해야 한다. 어떤지 모르나 "앞으로도 결코 필요가 없을 것이다.
혼합을 금함(신명기 22:5-12)
여기에 나오는 몇 가지 율법은 생활에 나타난 극히 사소하고 하잘 것 없는 것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사람들이 만든 법은 흔히 그렇지 못하다. 즉 De minimis non curat lex - 법은 사소한 일에는 눈을 돌리지 않는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시계(視界)와 사랑 안에 있으므로 극히 하잘 것 없는 일 속에서라도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 을 지니게 된다. 사소한 것은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이 보이나, 그것이 그리 보잘 것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율법 속에 그것을 기록하고 계시며 그것을 중대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Ⅰ. 우리 자신과 이웃의 정절을 보호하기 위해서 남녀의 구별이 분명한 차림을 하라고 했다(5절). "인간의 본성 자체가" 사람의 "머리 모양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고전 11:14). 옷에서도 마찬가지다. 평범한 차림에서나 특별한 차림에 있어서나 성별이 혼돈되는 의복을 입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남을 어떤 합법적인 도리나 숨기 위하여 혼돈되는 의복을 입을 수도 있을지 모르나, 운동이나 연극에 있어서도 그러한 복장이 문제시되고 있다.
1. 이것은 이방인의 우상 숭배적 관습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비너스 숭배에서는 여자가 갑옷을 입고 남자는 여성의 옷을 입고 있는데, 이것은 미신적인 관습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가증스러운 일이다" .2. 일이나 사람의 성질에 있어서도 성별이 혼돈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즉 남자는 나약해서는 안 되고 집에서 여자의 일을 해서도 안 된다. 또한 여자는 표독해서는 안 되며 가르치거나 권위를 찬탈해서도 안 된다(딤전 2:11, 12).
3. 의복을 혼동해서 입게 되면 정숙하지 못한 일을 범하게 되므로 그것을 금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죄를 범하지 않으려는 자는 이런 차림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Ⅱ. 새 둥우리를 발견했을 때 그 안에 있는 어미새는 잡으면 안 된다(6, 7절). 유대인들은 "이것은 모세의 율법 속에 있는 모든 계명 중에서 가장 작은 것" 이라고 말하나, 이 귀절을 잘 살펴보면 아주 중요한 계명 가운데 다섯번째 계명 즉 "그리하면 네가 복을 누리고 장수하리라는" 약속을 찾아 볼 수 있다. 사소한 일에 복종하지 않는다는 것은 율법을 아주 경멸하는 것이 된다. 하나님 명령대로 그가 잡은 새(숲에 있는 두 마리의 새보다 가치 있는)를 놓아 주는 자는 "의로운 일에 대한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존중하는 자라고 볼 수 있으며" 자기 자신을 부인할지언정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를 범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새들을 "돌보시는가?" (고전 9:9) 물론이다. 우리의 그리스도께서는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 들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하나라도 잊어 버리시는 바 되지 않았도다" 라고 말씀하셨다(눅 12:6). 이 율법은
1. 우리가 짐승을 학대하거나 그것을 괴롭히는 것을 낙으로 삼는 것을 금하고 있다. 비록 하나님은 우리를 "공중에 나는 새보다도 더 지혜롭게" 만드셨고, "그 새를 주관하도록" 해 주셨지만, 우리는 권리를 악용해서는 안 되고, 또 가혹하게 그들을 다스려서도 안 된다. "어미 새를 놓아주어" 다시 새끼를 낳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결코 그것을 상하지 말라. 거기에 복이 있나니라" (사 65:8).2. 이 율법은 또한 우리에게 동정심을 갖도록 가르치고 있다. 그리하여 야비하고 잔인하며 비뚤어진 생각들을 증오하게 한다. 특히 자손을 낳으려는 여성들의 고충을 생각하여 그들에게 충격을 주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대해야 한다. 가장 잔인한 비인간적인 예로는 "어미와 자식이 함께 부숴지고" (호 10:14)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가르는 것" (암 1:13)을 들 수 있다.
3. 나아가 여기서는 그들의 자연적 애정이나 그 부드러운 성품을 이용하여 그들을 행하고 우리의 이익을 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어미 새에게 그의 알이나 새끼를 보호하려는 마음이 없었다면 그 새는 날아가 버려 잡히지 않고 안전하게 피신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미새가 새끼를 위해 고통을 받으려는 연민의 정은 갸륵한 일이기에, 율법은 어미새를 보호하여 놓아 주도록 하고 있다. 이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처분에 달려 달려 있는 자들을 잔인하고 불친절하게 대하지 않도록 될 것이다.
Ⅲ. 집을 지을 때 지붕에 난간을 만들어 두어 사람이 떨어지는 일을 막도록 해야 한다(8절). 여러 성서 귀절에서 볼 수 있는 대로 저들의 지붕은 사람들이 걸어 다닐 수 있도록 평평하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주의를 크게 하지 않더라도 떨어지지 않도록 3피트 반의 높이로(유대인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난간을 만들어야 한다. 만일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주인의 소홀함으로 재난이 생겨 피를 흘리는 죄가 그 집에 임할 것이다.
1. 인간의 생명이 하나님께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하나님은 그의 섭리 뿐 아니라 율법으로도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신다.2. 따라서 다른 사람의 생명은 우리의 생명과 같이 매우 소중하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재난이 미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율법은 공평하므로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들을 방어해 주며, 우리의 태만으로 그들이 죽음을 당하여 그들의 피가 내 손에 돌아오지 않도록, 교량을 수리한다든가 우물을 덮도록 하여 위험한 것을 방지하도록 한다.
Ⅳ. 서로 다른 것을 섞는 일을 금하고 있다(9, 10절). 이러한 것은 대체로 앞에 나왔던 것이다(레 19:19). 그러한 일에는 아무런 도덕적인 악이 나타나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런 생각 없이 밀과 보리 씨앗을 섞어 뿌리며, 말과 소를 함께 하여 밭을 갈고 양털과 배실로 짠 옷을 입는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런 일을 금하고 있다.
1. 그것은 우상 숭배 풍습과 일치하거나2. 이스라엘의 명백하고 깨끗한 기질과는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창조주께서 무한한 지혜로써 서로 구별하여 만들어 놓으신 것을 한데 합함으로써 인간의 허영이나 호기심을 만족시켜서는 안 된다. 황소를 나귀와 교환하듯이 믿는 자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할 수 없고 또한 불경스러운 것과 함께 할 수 없다. 직업이나 외양에 있어서도 한 가지만을 취할 것이지 결코 잡다한 것을 취하여서는 안 된다.
Ⅴ. 옷단의 술을 달아 계명을 비망록으로 삼으라는 율법은 이미 나왔었는데(민 15:38, 39), 여기서 다시 반복되었다(12절). 이것으로 누구든 한 눈에 이스라엘 사람을 구별할 수 있도록 하며, 다른 민족이 그것을 보고 어떠한 경멸을 하든 말든 그들의 나라나 그들의 독특한 신앙에 대한 긍지를 배우게 한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술을 보고 계명을 기억하여 불미스러운 일을 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여기에서 다시 이 내용을 반복한 것은 앞에서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옷단의 술은 양털과 배실을 혼합해 짠 것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11절).
간음자의 처벌법(신명기 22:13-30)
여기에 언급된 율법들은 제 7계명과 관련되어 있다. 즉 영혼과 싸우는 육체적인 욕정에 대해 형벌을 줌으로써 제재를 가하고 있는 율법이다.
Ⅰ. 만일 한 남자가 어느 여자에게 욕정을 품어 그의 아내를 버릴 마음이 생겨 그 아내를 비방하고, 그 아내가 처녀인 줄 알았으나 동침할 때에 처녀인 표적을 보지 못하였다고 하며 누명을 씌울 때, 이 비방이 거짓이라는 것이 드러나면 그 남자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13-19절). 그 남자의 고소가 거짓임이 드러나고 재판관이 이를 알게 되었을 때에, 거짓 진술한 남자를 처벌하기 위해 이러한 율법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의심할 여기자 없다. 이렇게 그의 아내의 평판을 더렵히려 한 악한 남편은 벌을 받고 벌금을 물고 그 아내를 평생토록 버릴 수 없게 된다(18, 19절).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 그 아내를 기뻐하지 않는다면 이혼 증서를 주어 그 아내를 내어 보낼 수 있었다(24:1). 그러나 그 때에는 결혼 지참금을 그 아내에게 주어서 보내야 한다. 그러나 그 비용을 아끼고 그 아내에게 더 큰 손해를 끼치고 그 여자의 이름을 손상시켰을 때에는 그는 심한 형벌을 받고 그 여자를 평생 버리지 못할 아내로 삼게 된다.
1. 우리의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들을 속이고 그들의 평판을 더럽히는 것은 더욱 더 커다란 죄악이 된다. "네 친어머니의 아들을 - 이는 자기와 가장 가까운 자이다 - 비방하는" 것은 남편이나 아내를 - 이는 자기 자신이다 - 비방하는 것보다 더욱 커다란 죄로 간주되고 있다(시편 50:2). 자기의 둥우리를 더럽히는 새는 진실로 악한 새이다.2. 덕과 마찬가지로 정절을 존중해야 하며, 순결을 의심하는 것은 매우 치욕스럽고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우리 자신의 명예와 다른 사람의 명예를 위해 다른 어떤 문제보다 훨씬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3. 부모는 자녀들의 평판을 돌 볼 책임이 있다. 그것은 자녀는 바로 그들 자신의 가지이기 때문이다.
Ⅱ. 그러나 처녀인 줄 알고 결혼한 여인에게 처녀인 표적이 없을 때는, 그녀를 끌어내어 그 아비 집 문에서 성읍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이도록 했다(20, 21절). 약혼하기 전에 행한 불미스러운 일은 중대한 죄악으로 처벌하지 않았다. 그러나 음행을 하고서도 그 일을 속이고 순결하고 모범적인 여인인 체하였을 때는, 그 여자를 죽이도록 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알 수 있다.
1. 이것은 젊은 처녀들에게 그들의 결혼을 망치는 일이 없도록 간음을 피할 것을 강력히 경고하고 있다. 그런 일이 처음에는 잘 숨겨졌더라도 후일 드러나게 된다면, 씻을 수 없는 오욕을 남기고 일생을 망치게 된다.2. 또한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좋은 충고와 훈계를 주고, 모범을 보여주며, 나쁜 친구들을 사귀지 않도록 해주고 그들에게 필요한 제재를 가함으로써 자녀들의 순결을 책임지고 보호해 주어야 한다. 만일 자녀들이 음행을 저지르면그 부모들은 자기들의 문 앞에서 그들이 처벌받는 슬픔과 수치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 이스라엘 증에서 어리석음(악)을 행하였다" 는 귀절은 디나에게 행해진 바로 이와 같은 범행에 관련되어서도 사용되었었다(창 34:7). 모든 죄는 어리석고 더러우며, 성스러운 백성인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Ⅲ. 결혼한 남자이든 안한 남자이든 결혼한 남의 여자와 통간했을 때는 남녀 둘 다 죽이도록 했다(22절). 이 법은 레위기 20장 10절에도 언급되어 있다. 결혼한 남자가 결혼하지 않은 여자와 통간하는 것은 그리 중한 범죄가 되지 않았고, 그들을 사형에 처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이들 사이에서 낳는 자식은 합법적인 성격을 가장한 사생아는 되지 않기 때문이다.
Ⅳ. 약혼하고 아직 결혼하지 아니한 처녀는 장차 남편될 사람의 보호 아래 있으므로 그 여자의 순결을 특별히 보호하도록 하는 율법이 규정되어 있다.
1. 만일 그 여자가 성읍이나 그 밖의 곳에서 일을 당했을 때 소리를 질렀다면 그 곳 사람이 달려와 그 여자를 구했을 것이다. Qui tacet, consentire videtur - 침묵은 승낙을 뜻한다. 유혹에 져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청하지 않은 여자도 그들 스스로가 충분히 그 일을 피할 수도 극복할 수도 있었는지 모른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여자가 그 아비의 보호 아래 있어야만 함에도 불구하고 성읍에서 어느 남자와 통간한다는 것은, 그 여자가 정숙한 여자로써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조심스러운 일과 죄악에 대해 아무런 두려움도 갖고 있지 않은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쓸데없이 자신을 유혹에 노출시키는 자들이 그런 일을 당하고 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미쳐 깨닫기도 전에 그 함정에 빠져 버리고 만다는 것을 명심하라.야곱의 딸 디나가 "가나안 땅의 딸들" 을 보러 나가서 자기의 호기심을 채우려 하다가 순결을 잃고 말았다. 이 율법에 의하여 동정녀 마리아는 돌에 맞아 죽을 위기에 놓여 있었으나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마리아의 순결을 요셉에게 알려 주었다.
2. 만일 처녀의 허락 없이 강제로 그 처녀를 강간하였다면, 그 남자는 죽이되 처녀는 무죄하므로 그대로 두도록 했다(25-27절). 만일 남자가 약혼한 처녀를 들에서 만나 강간하였다면 그 여자가 소리쳐 도움을 구했을지라도 너무 한적한 곳이어서 이웃 사람들이 듣지 못하였을 것이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율법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암시해 주고 있다.(1) 우리는 우리가 행한 죄로 처벌받는 것이지 우리가 당한 일로 벌을 받는 것은 아니다. 죄된 의지가 조금도 없이 일어난 일은 죄가 아니다.
(2)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는 이웃에게 최대의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자비의 율법 뿐만 아니라 평형의 율법(받고자 하는대로 주라 :역주)도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 여자가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들을 수 없는 곳인 경우에도 그 여자가 당연히 소리를 질렀으리라고 생각해야 한다. 사람과 행동을 판단함에 있어서는 이런 규칙을 적용하라. 즉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희망하라."
(3) 우리의 순결은 우리의 생명 만큼이나 귀중한 것임에 틀림없다. 순결을 범한 자는 어떤 자가 그의 이웃을 해하며 죽이려 할 때 그를 살인자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일에 있어서도 우리는 당연히 그를 살인자라고 부를 수 있다.
(4) 이에 대한 비유로서, 우리는 사탄이 우리를 유혹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그런 시험당할 때는 Succurre, Domine, vim Patior - 주여 나를 포악에서 구하소서 하고 크게 부르짖어 하늘의 도움을 청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바울처럼 "내 은총이 너에게 족하니라" 하는 응답을 분명히 들을 것이다.
Ⅴ. 만일 남자가 약혼하지 않은 쳐녀를 통간하였으면 그는 그 처녀의 아비에게 은 오십 세겔을 벌금으로 주고, 처녀와 그 아비가 허락하면 그 처녀를 아내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후에 그 처녀가 비천해 보이든가, 다말이 암논에게 그러했듯이 결혼한 후 싫어지더라도, 결코 버려서는 안 된다(28, 29절). 이것은 남자들의 방탕스런 생활에 제재를 가하고 있으며 이런 일이 여기 적혀져 있다는 것은 퍽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Ⅵ. 레위기 18장 8절에서 언급된 바 있듯이 아비의 아내와 결혼하거나 부정한관계를 갖는 것을 여기서도 금하고 있다(30절). (패트릭 주교의 주석과 같이) 아마 이것은 불미한 결혼을 금하는 모든 율법들을 간략한 비망록처럼 꾸며 놓아서 잘 알아 보게 하려는 뜻이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는 가장 추악한 경우의 결혼이 특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범행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전서 5장 1절에서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고 말하고 있는 바로 그런 것이다.
Previous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