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민수기 2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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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절과 속죄일(민수기 29:1-11)

칠월에는 일년중 어느 달보다 더 신성한 의식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후 첫째달 - 아빕월이었던 그 달은 그 이후로 모든 교회상의 계산에서 달의 시작이 되었다- 이었기 때문이었을 뿐만 아니라, 희년과 면제년을 계산할 때는 일반력에서도 역시 첫번째 달이 되고 있기 때문이며, 또한 제 7월은 추수기와 파종기 사이에 있는 휴식기간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 기간 동안 그들은 대부분의 여가를 성소에서 보냈는데, 이것은 비록 하나님께서 필요한 일과 긍휼을 고려하여 제사들을 분배하실지라도, 우리가 인생의 분망한 때에 여가를 얻으면 얻을수록 우리는 더 많은 시간을 하나님을 직접 봉사하는 데에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1. 우리는 여기에서 그 달의 첫 날 곧 "나팔을 불" 날에 바쳐져야 할 제물이 지정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은 속죄일의 거룩한 아침과 초막절에 거룩한 기쁨으로 시작되는 2대 의식에 대한 예비 나팔이었다. 하나님의 제도의 뜻은, 종교적 봉사를 통하여 우리가 다른 일과 특히 하늘 나라에 가장 합당한 자들이 되어질 때 비로소 잘 실천되는 것이다.

" 나팔을 부는" 것이 명령되었다(레 23:24). 여기에서는 그 백성들은 그 날에 어떤 제물을 바쳐야 하는가를 지시받고 있는데, 그 당시는 이에 관한 언급이 없었다.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자 하는 자들은 성경의 한부분을 다른 부분과 비교해 보아야 하며, 같은사실을 언급하고 있는 부분들을 함께 보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왜 냐하면 거룩한 빛에 대한 후자의 발견물은 어두운 부분을 설명해 주고 전자에서 모자랐던 부분을 보충해 주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해 주기 때문이다. 그때에 바쳐져야 할 제물들이 여기에 특별히 명해져 있으며(2-6절), 이러한 것들이 매일의 제사와 월삭의 제사를 배제하지 않도록 주의가 요해지고 있다.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봉사에 대한 우리의 열심을 약화시킬 기회를 찾거나 선한 의무를 빼먹을 구실을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신앙에 있어서 보통 이상으로 많은 일을 행할 기회가 생긴 것을 기뻐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가정 예배를 드렬 경우에, 우리는 그것이 우리에게서 우리의 개인적인 은밀한 기도를 면제해 주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 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교회 가는 날에는 혼자 따로 그리고 우리 가족들과 하나님께 예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언제나 주님의 사업에 풍성히 참여해야" 한다.

2. "속죄일" 에 바쳐쳐야 할 제물, 그날에 있는 모든 의식은 이미 앞에 나왔다(레 16장). 혹자는 그날이 요구하는 수고와 부담이 결코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나, 그 모든 의식 이외에, 여기에서는 번제를 바치도록 명해져 있다(8-10절). 왜냐하면, 우리의 믿음과 회개 속에서 즉, 그날의 행사로써 상징된 그 두 가지, 큰 복음의 은혜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과 존엄을 주시해야 하는데, 번제는 순전히 하나님 영광과 존엄만을 의미하고 있는 제사이다. 또한 "수염 소 하나를 속죄제로 드릴 것이니 이는 속죄제 외" 의 것이었다(11절). 그런데 이것은 우리 회개의 행실과 말속에도 매우 많은 결점과 잘못이 있으므로, 우리는 우리의 거룩한 실행 속에서도 그 가운데 있는 죄를 속해 주는 제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비록 우리가 회개한 것을 후회해서는 안될지라도, 우리는 좀 더 잘 회개하지 않은 것을 뉘우쳐야 한다. 그것은 또한 율법적인 제물의 불완전함을 그리고 바로 그날에 "속죄제" 가 바쳐졌을지라도, 죄를 속하기 위한 또 다른 제물이 바쳐져야 한다는 것 즉 그 제물이 죄를 제거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시사했다. 그러나 "율법이 약하여 실행할 수 없었던 바를" 그리스도께서 행하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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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막절(민수기 29:12-40)

속죄일 즉 사람들이 자기의 영혼을 괴롭게 해야 했던 날 직후에 초막절이 뒤따랐는데, 그때에는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기뻐해야 했다. 왜냐하면, "눈물로 뿌린" 자들은 곧 "기쁨으로 거둘"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절기에 대한 율법을 앞에서 이미(레 23:34 이하) 읽었다. 여기에서는 "화제" 에 관한 지시가 부가되어 있다. 그들은 이 화제를 "칠일" 동안에 여호와께 드려야 했던 것이다(레 23:36). 여기에서 다음을 살펴보자.

1. 그들이 기뻐하는 날은 제물을 드리는 날이어야 했다. 즐거워지려는 성향은 그것이 우리를 하나님의 직접적인 의무에 부적합하게 만드는 것이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격려하고 그것에 대한 우리 마음을 넓혀 줄 때, 우리에게 아무런 해도 주지 않으며 또한 어떤 나쁜 징조도 아니다.

2. 그들은 초막에 거할 동안 계속 제물을 바쳐야 했다. 우리가 이 땅 장막 상태에 있는 동안, 하나님과의 교제를 꾸준히 지속시키는 것이 우리의 권익인 동시에 의무이다. 또한 우리의 외적 상황이 안정되어 있지 않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것에 대한 구실이 되지도 않을 것이다.

3. 칠일 중 날마다 바쳐지는 제물은 비록 수송아지의 수효에서 만 다를지라도, 따로따로 그리고 낱낱이 지정되어 있는데, 그것을 반복해 놓은 것은 결코 헛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처럼, 그들에게 이 의식을 매우 정확히 준수하고 날마다의 일 속에서의 그 법령을 믿음의 눈으로 항시 주목할 것을 그들에게 가르치고자 하셨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똑같은 봉사의 반복은, 만일 순전한 마음으로 그리고 계속적으로 경건하고 헌신적인 마음에서 나오는 지속적인 불로 행해진다면, 결코 하나님을 싫증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에 코웃음을 치거나 "보라. 그것에 우리가 싫증 났도라" 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4. 수송아지(그것은 제물중 가장 값 비싼 제물이었다)의 수는 날마다 감소되었다. 그 명절의 첫째날에 그들은 열셋을 바쳐야 했고 두째 날에는 열둘을 그리고 세째 날에는 열 하나를 드려야 했다. 따라서 일곱째 날에는 일곱을 드려야 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비록 그 것이 명절의 큰 날이었고 성회로 송축되었을지라도, 그들은 수송아지 하나만을 드려야 했다. 그리고 다른 날에는 모두 수양 둘과 어린 양 열 넷을 드려야 했지만, 이 날에는 수양 하나와 어린양 일곱을 드려야 했다. 이러한 것이 그 입법자의 뜻이었고 그것이 그 율법에 대한 충분한 이유였다. 혹자는 하나님께서 여기에서 신앙 적인 일의 부담과 비용에 인색해지기 쉬운 육신의 연약함을 고려하셨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마치 하나님께서 예물로 인하여 그들을 수고롭게 하신 것처럼(사 43:21) 그들이 불평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점점 적게 드리도록 명해지고 있다. 또는 그 율법적인 분배는 점점 쇠하여져 마침내는 없어지리라는 것이 그들에게 이것으로써 시사되어 있다. 그리고 그 무수한 그들의 제물이 그 모든 제물보다 무한히 값진 한 제물로 끝나고 말 것임을 암시한다. 우리 주 예수께서 아직도 의에 목마른(그들을 의롭게 하기에는 이 제물들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자들은 그에게로 와서 마시라고 서서 외치신 것은 이 모든 제물들이 바쳐진 후인, 명절 끝날이었다(요 7:37).

5. 소제와 전제는 "수효를 따라서 규례대로" 드린 모든 제물에 부속되었다. 아무리 고기가 많을지라도 떡과 마실 것이 없는 그것은 잔치가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식탁인 그 제단에 결코 이러한 것들을 빠뜨려서는 안 된다. 우리는 신앙적인 일을 많이 할지라도 그 것을 잘 행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례대로 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용납하심을 얻으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6. 우리가 다른 명절을 지킬 때처럼 날마다 속죄제가 드려져야 했다. 우리의 찬송의 번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속죄제가 되셨을 때 제공하신 큰 화목 제물과 우리가 관련을 맺고 있지 않다면, 하나님께 상달될 수 없다.

7. 이 모든 제물들이 바쳐졌을지라도, 상번제가 아침이나 저녁에 빠트려져서는 안되며, 날마다 이것이 아침에 제일 먼저 그리고 저녁에 마지막으로 바쳐져야 했다. 어떤 특별한 봉사도 정해진 우리의 예배를 밀어 내서는 안 된다.

8. 비록 이 모든 제물들이 공동의 부담으로 회중 전체에 의해 바쳐지는 것이 요구되었을지라도, 그외에 각자가 서원제와 자원제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했다(39절).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행해야 할(must do) 것을 명하셨을 때, 역대하 30장 23, 24절에서와 같이 다른 예배를 고안해내지 않고 단지 이것을 풍부하게 함으로써 그들이 행할 수 있는(might do) 더 많은 것을 하도록 그들의 헌신의 관대함을 위해 여백을 마련해 놓으셨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에 따라서 각자가 드려야 될 각종 제물에 관하여는 레위기에 자세히 나와 있다. 비록 이스라엘 사람마다 이 공동 제물에 관련되어 있었을지라도 각 사람은 이 제물들이 그들의 서원제와 자원제 대신에 드려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처럼 우리들과 함께 하는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하는 사역자들의 기도가 우리 각자의 기도를 면제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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