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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반란의 3인(민수기 16:1-11)

Ⅰ. 여기에 나오는 이야기는 반란의 이야기이다. 주동자와 그 내용은 예전의 경우와는 달리 오합지졸이거나 천민들이 아니라 상당한 인물들이었다. 오합지졸들은 이름조차도 나와 있지 않았었다. 고라는 그 주동자다. 그는 한 편당을 조성했다. 그리고 그 당을 "고라의 패역자" 들이라고 불렀다(유 11). 그는 모세의 친사촌이었다. 그러나 촌수가 가깝다고 하여 모세에게 무례해도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인간의 화가 "그 자신의 집안에 있는 자들" 이 되더라도 이상히 생각지 말라. 거기에 다단과 아비람이 합세했다. 이들은 야곱의 장자 르우벤 지파의 주요 인물이었다. 아마 고라는 아론이 제사장이 되었다는 것과 엘리사반으로 고핫 가계의 우두머리로 삼은 일(3:30)에 대하여 특별히 불쾌했던 모양이다. 또한 아마 르우벤 지파는 유다 지파가 이스라엘 진영의 선두에서는 명예를 차지했다고 화가 났을 것이다. 온이 그 파당의 한 우두머리로 나와 있다(1절). 그러나 전체 이야기에서는 다시 나오지 않는다. 아마 흑자들이 생각하는 대로, 회개하고 돌아갔든지 아니면 다단이나 아비람처럼 설치지 않았던 때문인 것 같다. 고핫 가계는 르우벤 지파가 진치고 있던 회막쪽에 있었다. 이것이 아마 그들까지 끄집어들이는 이유를 고라에게 주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악인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며, 그의 이웃에게도 화가 있을 것이로다" . 이웃 사람도 그 나쁜 사람의 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유명한 사람들" 인고로, "250인의 방백 회의" 의 공모에 유인된 것이다(2절). 아마 그들이 장자이므로, 적어도 그 집안에서는 우두머리였던 모양이다. 가장들은 아론이 서임을 받기 전까지만 해도 제사를 주관하고 있었던 자들이다. 유명한 자들의 자만성, 열망, 경쟁의식 따위는 교회나 국가에 모두 큰 피해를 끼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하나님이여, 당신의 은혜로써 위대한 사람들을 겸손케 하시며, 그럼으로써 우리 시대에 평화를 주옵소서! 오, 주여! 여기에 기록된 것처럼 유명한 자, 이름난 자들은 옛 세계에서도 큰 죄인들이었다(창 6:4).

그들은 이름과 명성을 떨쳤으나 만족치 못했다. 이미 높았으나 더 높기를 바랐다. 마찬가지로 유명한 사람들은 유명해지기를 바란다.

Ⅱ. 폭도들의 항의(3절). 그들의 특징은 아론과 그의 집안에 제사 장직제가 한정되었다는 점이었다. 그런 영예는 모세가 주고 아론이 받기에는 너무 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두 사람 모두에게 화를 내고 비난한 것이다. "너희가 분수에 지나치도다." 즉 "너희들은 너희이웃 사람들의 수준에서 만족하라. 그들도 모두 거룩하며 모두 너희처럼 선하고, 그러므로 그들도 모두 거룩하며 너희 같이 위대해져야 하느니라" 는 것이다. 또는 "이제 너희가 이처럼 오래 집권했으니 그 것으로 만족하고 이제는 너의 자리를 양보하라. 이들도 너희의 자리를 차지할 권리가 있고, 너희들처럼 잘 운영해 나갈 능력이 있느니라" 는 것이다.

1. 저들은 건방지게도 회중의 거룩함과 그 가운데 있는 하나님 의 임제를 자랑했다. "그들은 다 각각 거룩하니, 아론이나, 이전의 가장들처럼 제물을 드리기에 합당하고,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 계시니 그들에게도 명령을 내리시고 그들을 인정해 주시니라." 실상 저들은 그 백성의 정경이나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할만한 이유가 별로 없었다. 그들은 얼마 전에도 죄악으로 더러워졌었고, 지금도 하나님의 진노의 표적 속에 살고 있었으니, 제사장들이 그들과 하나님 사이를 중제해 준데 대하여 오히려 감사를 드려야만 될 판이었다. 그러나 그러기는커녕 그들은 모세와 아론을 질시했다.

2. 모세와 아론이 자기들 마음대로 그러한 영예를 차지했다고 비난한 것은 부당된 처사였다. 오히려 그들은 그러한 직책에 하나님의 소명을 받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명백했었다(히 5:4). 그래서 그들은 차라리 제사장들이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랐고, 통치자도. 일반일이나 거룩한 일이나 간에 다스릴 자가 없기를 바랐으며, 하나님께서 명하신 헌법에 따르기를 싫어했다.

그러므로 여기서 이런 사실을 찾아 보자.



(1) 폭도들은 어떤 정신 밑에서 통치자를 멸시하고 하나님이 주신 권력에 항거했는가? 그들은 교만하고, 질투하고 야심을 가졌고, 소동을 퍼우고, 사악하고, 부조리한 자들이 었다.

(2)아무리 선하고 유용한 사람들이라도, 심지어는 그들이 용서해 주고 있는 바로 그 사람들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를 볼 수 있다. 그들이 가장 좋은 자리를 찬탈한 자로 보이고, 최고의 통치자가 폭군으로 보인다면, 모세와 아론도 그런 억울함을 당했었다는 사실을 기억케 하자.

Ⅲ. 이러한 항거가 일어났을 때 모세의 처신은 어떠했는가?

1. 그는 "엎드렸다" (4절). 앞에서 그러했었다(14:5). 그리하여 그는 자기가 그들에게 기꺼이 굴복할 수 있음을, 그리고 자기의 자리를 즐거이 사양할 뜻을 비춘 것이다. 만일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그의 의무와 그를 맡기신 자에 대한 충성에 맞기만 한다면 말이다. 그와 동시에 그는 하나님께 기도로 아뢰었다. 이 슬픈 관국에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를 지시해 달라고 한 것이다. 그는 그들에게 말하기 전에, 먼저 이렇게 스스로 낮아져서 자기의 정신 (열이 오를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의 지시를 받은 것이다. 이와 같이 "지혜로운 자의 심령은 답변을 궁구한다." 하나님의 입의 조언을 들으려 한다.

2. 그는 하나님께 사정을 고하고, 자기의 직무의 정당성을 확신 하면서, 그 판결을 하나님께 맡기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자기의 자리를 양보하고 다른 사람을 지명할 태세였다. 정직한 피고는 재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제심도, 즉결 재판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또한 다음날 까지 연기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5-7절), 고라와 그의 동조자들에게 향로를 가져와 하나님 앞에 분향케 했다. 하나님이 그들의 분할을 받으면 그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이 옳은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만 기뻐하신다면, 이전에 그들이 모두 예언자들이 되기를 바랐듯이(11:29). 그들 모두가 제사장이 되기를 기뻐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는 의심치 않았다) 아론으로 결정한다면, 그들의 모험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깨닫게 되리라. 그러므로 모세는 재판을 다음날로 연기했다. 그들이 하룻밤 자면서 생각해 보고 나면 혹 자기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중지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3. 모세는 가능하다면 하나님의 법정에 호소하기 전에 그들과 정당한 이유를 따져서 사건의 시비를 가리려 했다. 그러면 그들의 붙평이 끝나리라고 알았기 때문이다.

(1) 그는 그들을 "레위의 아들들" 이라고 불렀다(7절). 그리고 8절에도 나온다. 그들은 모세와 같은 지파의 출신이었다. 그보다도 모두가 하나님의 지파의 출신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과 모세에 대하여 소동을 피운 것은 더 고약한 일이었다. 금송아지 사건 때에, 이미 오래 전에부터 레위의 아들은 용감하게 하나님의 편을 들었다. 그것 때문에 그들은 영구적인 엉예를 차지했던 것이다. 그리고 당시에는 천진난만하던 그들이 이제 와서는 범인의 앞잡이 노롯을 하고 그들이 남겨둔 모든 영예를 잃으려는 것인가? 하나님의 집에도 이런 몹쓸자들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레위인들이 반역을 하다니?

(2) 모세는 그들의 비난을 역습했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을 보고 분수에 지나치다고 비난했었다. 그겄은 부당한 일이었다. 그들은 결코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것 이상을 친하지 않았다. 이제 모세는 말한다. "저희 레위 자손들아, 너희가 분수에 지나치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자들이야말로 분수에 지나친 자들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면 족하다. 하나님의 명령을 처방하는 것은 분수 밖이다.

(3) 모세는 그들은 레위인으로서의 특권이 있으니 그것이 그들에게 족하다고 가르쳤다. 더 이상 제사장직의 명에를 탐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9,10절). 모세는 그들이 레위 지파라는 것이 얼마나 큰 영예인가를 상기시켜 쿠었다.

[1] 그들은 "이스라엘 회중과 구별되어" 있다. 그들보다 더 존귀하다. 아론의 집안이 자기들보다 더 출세했다고 불평할 게 아니라, 자기들의 지파가 다른 지파보다 출세하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했어야 했다. 우리는 우리 밑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생각하면 우리 위에 있는 자들을 질투하지 않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남들이 명예, 권력, 지위, 이해관계, 소질, 미모, 능력 중에 있어서 우리보다 뛰어나다-안달을 부릴 것이 아니라, 가장 천한 자 보다 못한 우리가 만물의 찌꺼기 중에 들지 않는 것을 하나님께 찬미해야 한다. 당연히 더 대접을 받아야 할 사람 중에도 별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자들이 많다.

[2] 그들은 매우 크고 값 있는 영예를 성별 받았다. 첫째,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다. 일반 백성들도 하나님께 가까운 자들이지만, 레위 지파는 그들보다 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 물론, "회막에서 봉사하게" 되었다. 성소에 있는 그룻 하나를 운반하거나, 회막의 어느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한 영예가 된다. 하나님께 대한 봉사는 완전한 자유로 또한 지극히 높은 명예적이다. 세째로,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한다." 공증을 섬긴다는 것은 정말로 위대한 일이요. 교회의 일꾼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열자들의 명예이다. 그것은 그들의 품위를 더해 준다.

[3] 그들을 구별하신 분은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나 그들에게 그런 위치를 준 것은 하나님의 행동이시다. 그러므로 거기에 무슨 불만이 있을 수 없다. 또한 아론에게 그런 자리를 준 분도 바로 그분이시다. 고로 그들은 그를 질투해서는 안 된다.

(4) 모세는 이러한 특권을 과소평가한 죄를 깨우쳐 주었다. "그것이 너희애게 작은 일로 보이느냐?"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아론의 제사장직을 탐내는 것은 너희 모든 사람에게 옳치 못하느니라. 아론이 그와 같은 영예를 얻게 됨과 동시에, 그에 따라서 너희들에게도 다른 명예가 주어졌고, 아론으로부터 나온 빛을 너희가 발산하고 있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다음 사실들을 명심하자.

[1]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특권 그 자체가 결코 작온 것이 아니며, 따라서 우리도 그것을 작은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게 되는 기회를 소흘히 하고, 거기에 부주의하며 형식적으로 대하고, 그것을 짐으로만 생각하고 기쁨으로 여기지 아니하는 자들은 마땅히 이런 질문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너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한 것이 네게 작은 일로 보이느냐?"

[2] 금지된 영예를 탐하고 찬탈하는 자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명예에도 큰 모욕을 돌리게 된다. 우리는 각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성을 기꺼이 받고, 그것이 우리에게 합당하다는 것을 알고, 또 실상 우리예게 과분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거기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사람들과는 달리, -우리는 우리에게 지나치게 높은 것을 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너희가 제사장 직을 원하느냐?" 그들은 자기들이 그것을 원한다고 인정하지 않으려 했으나, 모세는 이미 그들의 눈에서 그것을 읽었다. 율법이 제단에서 일할 자들을 위해서 매우 잘 준비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대로 직무에 임하려 했을 것이다.

(5) 모세는 이 폭동은 하나님께 도전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11절). 그들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의 성결과 자유를 주장하는 체하지만, 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반기를 든 것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대항하여 모반였도다." 하나님의 규례와 법규에 도전하는 자는 어떤 속임수를 쓰든, 그들이 어떻게 알고 있든, 실은 그것을 만든 자에 대한 다툼이다. 보냄을 받은 자에게 저항하는 것은 그 보낸 자를 저항하는 것이다. 오호라! 그러므로 모세는, "아론이 어떤 자이관대, 너희가 그를 원망하느냐?" 고 말했다. 이 원망과 불평꾼들이 자기들이 다투고 있는 그 도구들은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들이라는 것을 신중히 생각했다면,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이 시켜서 된 자들이고, 그밖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신중히 생각할 수 있었다면, 지금처럼 그렇게 저들을 비난하고 모욕하는데 대담하고 분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제사장직이 고정된 것을 축복으로 아는 자라면 하나님께 모든 찬양을 돌려야 했다. 그러나 그것을 짐으로 보는 자들은 도구에 불과한 아론과 싸워서는 안 된다. 그는 명령대로 행하는 자이다. 그리하여 모세는 이 소송에 하나님을 개입시켰다. 그래야 이 사건이 빨리 처리되리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16:2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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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진노(민수기 16:12-22)

Ⅰ. 다단과 아비람의 무례한 행동과 그들의 배신적인 항거가 있다. 모세는 고라가 한 이야기를 듣고 거기에 답변했다. 그리고는 다단과 아비람을 불러 그들의 고소를 들으려 했다(12절). 그러나 그들은 이 소환에 응하지 않았다. 이유는 아마 부끄러워서 모세 앞에서는 이야기할 수 없었으며, 한 조각의 겸손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모세의 권위를 그 정도까지 인정해 주고 싶지 않았으며, 그들이 그 정도로까지 무례해서였을 것이다. 그들은 모세를 공방하던 바로의 말을 그대로 답습했다. 그러나 그들은 바로가 어떤 댓가를 받았는지 잊어버렸다. 저들의 머리가 완전히 돌고 마음이 굳어지지만 않았더라면, 모세가 애굽 백성들을 죽이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어떤 심부름꾼들을 보내었던가를 생각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함으로써 이 세상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눈멀게"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을 부르러오던 그 심부름꾼들에게 모세를 비난하는 이야기를 전달하여 보냈다. 그리고 그 비난이 대단했다.

1. 그들은 모세가 가기들을 애굽에서 끌어내어 온 것은 큰 잘못 이라고 비난하면서, 애굽을 오히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하면서 시세움을 했다(13절). 애굽에는 정말로 채소와 마늘과 물고기가 풍성했다. 그러나 결코 우유와 꿀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은 가나안의 약속을 조롱하는 것이었다. 가엾고 배은망덕한 사람들이로 다. 어느 민족에게보다도 더 큰 호의를 내려 주었는데. 그것을 자기들에게 피해를 끼친 것이라 하다니!

2. 그들은 모세가 "그들을 광야에서 죽이려고" 음모했다고 비난 했다. 광야에서 그들이 그렇게 융성한 대접을 받았음에도 그렇다. 그리고 그들이 이제 광야에서 죽어야될 선고를 받았다면, 그것은 자기들 탓이었다. 모세는 그들을 고치려고 했지만, 그들은 고침받기를 싫어했다.

3. 모세가 "스스로 자기들의 왕이" 됨으로써 자기들을 노예로 하는, 자유 침해를 꾀했다고 비난했다. 그들의 왕이라니! 모세는 그들에게 어진 아버지 같지 않았던가? 그보다도 여호와로 인하여 종처럼 헌신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번영이 보장되었고, 그들의 요구는 관절되었고, 재판은 공정하게 집행되지 않았던가? 지금까지 편안하고 영예롭게 살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들은 모세의 멍에가 바로의 멍에보다 더 무겁다는듯이 불평을 한다. 그리고 모세가 왕이 되려 했다니 ? 당치도 않는 말이다. 처음에는 모세가 그러한 직책을 얼마나 유괘히 사양하려 했던가! 그러나 이제 모세는 가장 지독한 폭군이요 권력 찬탈자라는 취급을 받고 있다.

4. 그들은 복된 땅에 대한 기대감을 주어놓고 나중에 가서는 그것을 좌절시킴으로써, 자기들을 굴였다고 모세를 비난했다(14절). 당신은 약속대로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으로 인도하지 않았나이다." 그게 누구의 잘못이냐? 모세는 그들을 그 땅의 국경지대 까지 끌고 갔었다. 이제 막 하나님의 도움으로 그 땅을 차지하게 될 그런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버리고, 문을 닫아 버렸다. 그러므로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순전히 자신들의 잘못이다. 그런데 그 책임을 모세에게 씌웠다.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그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 (잠 19:3).

5. 그들은 도대체 부당한 비난을 했다. 모세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내려" 한다고 비난했다. 그것은 모세가 그들을 눈멀게 해놓고 마음대로 끌고 간다는 뜻이다. 그들에 대한 모세의 모든 계획은 그들의 눈을 열어 둘려고 했지만, 그들은 모세가 그들의 눈을 빼어 버리려고 한다고 빗대어 말했다. 아무리 선하고 현명한 사람이라도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해주거나, 모든 사람의 칭찬을 받지는 못하는 법이다. 최고의 칭찬을 받아야 할 사람도 때로는 지독한 비난을 당한다. 모세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수많은 일을 그들에게 행해 보였는데, 도대체 왜 그를 비난하는 것인가?

Ⅱ. 그들의 무례함을 보고 모세는 분개했다(15절). 가장 온유한 모세였지만, 자기로 인하여 하나님이 모욕을 당하는 것을 보고 그는 "심히 노했다." 모세는 자기가 그들을 구원하기 위채 그렇게 많은 일을 해주었는데도 스스로 파멸로 들어가는 백성을 보고 견딜 수 없었다.

1. 이렇게 당황한 모세는 자기의 정직성을 하나님께 호소했다. 반면에 그들은 모세가 야심장이요, 탐욕이 많고, 압제적이라서 자기 들을 지배하는 왕이 되려 한다는 비열한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의 증인이었다.

(1) 모세는 그들에게서 아무것도 취하지 아니했다는 것을 증언했다. "나는 그들에게서 나귀 새끼 한 마리도 취하지 아니했느니라." 탈취나 징발로는 물론이요, 묘세가 그들에게 많은 재산을 가지게 해 주었다는 이유로 보상이나 팁을 달라고 하여 받은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는 결코 장군의 급료를 받거나 대판관의 봉급을 받지 않았으며, 왕의 조세도 물론 안 받았다. 그는 여수룬의 통치자가 되기 전 이드로의 양을 칠 때에 더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

(2) 아무도 모세로 인하여 재산을 잃은 사람이 없다. "난 그 들의 아무것도 침해하지 않았느니라."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자 아무리 악한 자, 아무리 자기를 분노케 하는 자라도 해하지 아니했다는 것이다. 그는 결코 자기의 권력을 이용하여 악을 행치 않았다. 자신을 책망할 것이 없는 자들은 결코 남의 중상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을 명심하자. 남들이 우리를 비난하더라도, 우리의 마음에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면 우리는 편안할 수 있다.

2. 모세는 고라와 그의 친구들이 드린 향에 대하여 분노함으로써 자기의 소송 이유를 하나님에 호소하여 개진하여 주기 원했다. 그 분향에는 다단과 아비람도 공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말했다. "주여 그들의 예물을 돌아보지 마소서." 이것은 아마 후세에 와서 자기 손으로 기록했던, 그 가인의 이야기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인 듯 하다. 가인과 가인의 예물은 하나님께서 열납되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창 4:5).고라의 패역을 좇은 "이들은 가인의 길을 향한 자들이다" (유다서 11절에는 함께 언급되어 있다). 그러므로 모세는 그들도 가인과 같이 수치와 당혹을 당하게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Ⅲ. 모세와 그를 고발한 자간에 문제가 일어났다.

1. 모세는 다음날 아침, 아침 분향을 드리는 그 시간에 아론과 함께 그들더러 나오라고 했다. 하나님의 심판에 맡기자는 것이었다(16,17절). 모세는 자기의 노력으로 그들을 설득시킬 수 없음을 알자, 하나님의 손에 맡기기로 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나타나실는지를 의심해서가 아니라, 논쟁의 판결을 내리게 하기 위해서다. 모세는 전에도 이런 식으로 할 것을 동의했었다(6.7절). 그래서 여기서는 한 귀 절만 더 첨가했다. 이것은 모세가 원고들에게 지극히 겸손한 태도를 취했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아론은 하나님의 제도에 의해서 회막에서 분향을 드리는 영예를 획득했지만 그도 재판 중이어서 죄인석에 서야 하므로, 회막문간에 고라와 같이 서게 했다. 그러나 모세도 같이 서겠다고 했다. 그래서 모든 불평을 공정히 들어주었고, 그 "모든 입은 닫혀졌다."

2. 고라는 이 제의를 받아들이고, 모세와 아론과 함께 "회막문에" 나타나 자기의 가식을 드러내었다(18,19절). 그가 그렇게까지 무례한 자가 아니었더라면, 문제를 이렇게까지 끌고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 그는 나답과 아비후를 생각지 못했을까? 그들은 얼마 전 거룩하지 못한 불로 분향을 드린 죄로, 성별되었던 제사장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었다. 그런데 고라나 그의 동료들은 거룩하지 못한 손으로 분향을 드리고도 그들보다 더 낫기를 기대할 수 있었다는 것인가? 그러나, 그는 모세와 아론에 대결하고, 극도로 교만에 눌려 하늘에까지 도전하고, 하나님의 명령이 없이도 하나님께 열납되기를 요구하는 모험을 했다. 이처럼 죄악의 기만성으로 인하여 굳어 진 마음들은 극도로 비천해지는 법이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각자의 향로를" 들고 오게 했다. 아마 이 사람들은 가장들이므로 자기 들의 집에서 쓰던 향로를 가져왔을 것이다. 그것은 분향이 성전에서 제사장들과 제단에서만 할 수 있도록 명령되기 전에 쓰던 향로였을 것이다(그들은 아마 다시 사용하고 싶었을 것이다). 또는 그 향로들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보통 화로였을지도 모른다. 이제 그 엄숙한 재판에 나아와 그 결과의 증인이 되기 위해 모세가 "그 폭도를 대하여 회중을 모아야 했다" 고 생각하는 자도 있다. 그러나 고라가 모세를 대하여 회중들을 모은 것 같다(19절). 이것은 대부분의 회중이 고라의 편을 들고, 그가 승소하기를 바랐다는 것을 시사하며, 아론을 물리치고 고라의 회망이 성취되기를 기다린 것이다. 고라가 그런 생각을 품지 않았더라면, 재판을 그렇게 공공연히 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회중이 모인 것은 자기의 패배에 대한 증인들이 되고 말리라는 사실은 생각지도 못했다! 교만하고 야심적인 사람들이 자기들의 출세를 도모하나 그 결과는 종종 치명적인 수치로 끝나고 만다.

Ⅳ. 재판이 열렸다. 재판장이 법정에 나와 회증에게 인도했다.

1.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났다" (19절). 처음에 아론을 그의 자리에 임명해 줄때 나타났던 바로 그 영광(레 9:23)이 이제 그의 자리를 확증해 주기 위해 나타났다. 그리고 그를 반대한 자들을 당황케 하고, 그를 대적한 자들을 꺼꾸러 뜨리려 한 것이다. 세키나(shechinah) 곧 하나님의 엄위, 영원한 말씀의 영광이 공공연해 회막 앞에 나타났다. 그것은 일상시에는 회막 속에 있는 그룹들 사이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온 회중은 공포에 사로 잡혔다. 그들은 하나님의 모습을 조금도 보지 못했지만, 그 불과 광채의 모습으로 보아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다는 것을 명백히 알게 되었을 것이다. 전에도 그러했다(14:10). 하나님의 영광의 출현보다 죄책을 지고 있는 자들을 두렵게 하는 것은 없다. 그렇게 영광스런 존재는 분명히 무서운 적군과 같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은 "그들을 모두 순식 간에 소멸하리라" 고 경고했다. 그래서 모세와 아론더러 그들에게서 물러나라고 명령했다(21절). 이로써 하나님든 그들의 죄가 얼마나 중하며 하나님이 얼마나 노하셨는가를 보이셨다. 죄인들과 한패가 되거나 작은 일에라도 그들과 동조 하는 것이 얼마나 위함한 일인가를 깨닫자. 아마 많은 회중은 단지 따라와서, 즉 군중들을 따라와서 사건의 결말을 호기심으로 보러 왔던 것 같다. 그들은 사실 폭도들을 고발하는 증인이 되고 하나님과 모세를 공공연히 지지하러 왔어야 했지만, 실상 그런 뜻으로 온 것이 아니었다. 그를은 순식간에 모두 소멸될 뻔했다. 우리들이 패거리를 따라서 마귀가 들어간 곳으로 따라 들어간다면, 그것은 생명을 내놓 는 일이 된다.

Ⅴ. 모세와 아론은 회중을 위해서 겸손한 중재를 드렸다(22절).

1. 저들은 하나님께 간절히 조르는 자세를 취했다. 그들이 "엎 드렸다." 이것은 저들이 자비를 얻어 내기 위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부복한 것이다. 백성들은 지독하게도 그들을 증오하고 공격했지만, 그들은 자기들이 맡은 책임에 신실했으니, 양떼들이 위험해지면 공격에 맞서 싸우는 이스라엘의 목자와도 같았다. 남들이 우리들에게 자기들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면, 이것 때문에 우리가 그들에게 의무를 소흘히 해도 된다거나 그들의 복지를 구해야 될 우리들의 책임을 등한히 헤도 된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자.

2. 그들의 기도는 탄원의 기도였고, 응답받는 기도였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그의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했더라면(시 106:23) "그들을 죽이려고" 했었다. 그러나 모제가 이 사건에 하나님보다 더 깊이 그리고 더 열의 있게 개입했다고 상상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그러나 이 죄인들의 죄에는 선고를 내려 당신의 의로운 분노를 보여 주고, 그와 동시에 모세의 중재로 선고를 취소하심으로써 성도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양보를 보여 주시고자 하신 것이다. 이 기도 속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관찰해 보자.

(1) 그들이 하나님을 부른 호칭. "모든 육체와 생명의 하나님" 이라 했다. 인간이 뭔가를 보라. 인간이란 육체에 깃든 생명이오, 몸으로 나타난 영혼이니, 하늘과 땅의 놀라운 복합으로 이뤄진 피조물이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보라. 하나님은 모든 인류의 생명이시다. "그가 생명을 조성하셨도다" (슥 12:1). 그는 "육체의 아버지시라" (히 12:9),하나님은 인생들을 조성하는 능력(시 33:15)과 원대 복귀시킬 권위를 가지고 계시니, "모든 사람은 나의 것이라" (겔 18:4)고 말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런 호칭을 사용한 것은 다음과 같은 뜻이다. 즉 하나님 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 이시기 때문에 이 회중을 일시에 소멸시킬 주권을 가지고 계시기도 하지만, 그들을 살려두는 자비를 베푸실 것을 기대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인생들을 하나님의 솜씨로 지으신 작품들이요, 그들에게 대한 정당성을 가지고 계신 분이기 때문이며, 게다가 "생명의 하나님" 이신 고로 하나님은 그들의 성분을 아시며, 그래서 주동자와 선동을 당한 자들을 구별하실 수 있으며, 사악한 마음을 품고 범죄한 자들파 그들의 악의 때문에 죄에 빠져들은 자들을 또한 구별하실 수 있으며, 당신의 판결에 따라서 다른 처벌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 때문에서이다.



(2) 그들이 주장한 논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브라함이 소돔을 위해 중재할 때(창 18:23)사용한 논점과 비슷하다. "주여,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하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여기서도 나온다. "한 사람의 범죄로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이 사건에 관련된 것은 그들 전체의 죄악이 아니라 이 대역죄를 처음에 교사한 자의 죄이다. 하나님이 아무리 주권자이시요 엄격한 심판자 이시라도, 한 사람의 죄로 온 회중이 멸망되지는 않을 것이요, "의와 평화" 는 구속자의 역사를 통하여 "서로 입맞추며" "자비가 심판을 물리치리라" 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온 회중이 점차적으로 광야에서 죽으리라는 것은 이미 모세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일시에 소멸시키지 말고 집행유예의 은혜를 베플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한 것이다. "주여, 금년만 버려 두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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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역자들의 심판(민수기 16:23-34)

모세에 도전한 다단과 아비람과의 논쟁이 결판이 났다. 그 다음 문단에서는 아론에게 상대한 고라와 그의 동료들에게 대한 논쟁이 결판을 내리게 된다. 다단과 아비람은 자기들의 가정용 천막의 가운데 에다가 별도의 회막을 세웠던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거기서 법정을 열고, 회의로 모이고, 모세에게 도전하는 깃발도 내다 건 것이다. 그 래서 본문에는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회막" 이라카고 했다(24, 27절). 거기는 그들의 약속 장소였고, 고라와 그의 친구들이 여호와의 회막을 세워놓고 그들의 재판의 결말을 기다리고 있었던 곳이다. 그러나 그 재판이 끝나기 전에 그들이 거기서 무슨 일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나님은 그가 원하시는 방법으로 판결을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Ⅰ. 이 폭도들 주변에서 즉각 물러나라는 경고가 회중에서 내려졌다.

1.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것을 시켰다(24절). 이것은 모세의 기도의 응답이다. 모세는 하나님께 "온 회중은 멸하지" 않기를 간구했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래, 그러지 않겠노라. 그러나 그들은 재빨리 스스로의 안전을 찾아 그 위험의 길에서 떠나야 된다. 그들이 폭도들에게서 순순히 물러나면, 그들과 함께 죽지 않으리다. 그렇지 않으면 같은 운명을 당하리라." 우리 스스로가 구원의 방편을 활용하는 일에 부지런하고 성실하지 않는 한, 우리가 우리의 친구들의 기도로써 우리의 구원을 위한 은혜를 쌓기를 기대할 수 없다. 구원의 방편으로 스스로를 구원하지 않으려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그들을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을 결코 하지 않으신다. 그들을 위해 기도한 모세는 "다가을 진노를 피하라" 고 그들에게 경고 해 주었다.

2. 이리하여 모세는 반역자들의 본부로 갔다. 아론은 그냥 회막 문간에 남겨 두었다(25절). 다단과 아비람은 건방지게도 모세에게 나아오기를 거부했었다(12절). 그러나 모세는 겸손히 그들에게 내려갔다. 아무도 회개치 않고 자기 주장을 하고 있는지 보려는 것이었다. 사역자들은 자기들을 반대하는 자들에게도 이토록 온유한 마음으로 훈계하며 그들의 유익을 위해서 가장 고집센 자들 앞에 굽히는 것은 그들 밑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도 반항적이요 배신적인 사람들에게 당신의 손길을 뺀쳤다. 이스라엘의 70장로들은 폭도들이 모세를 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수호자들처럼 모세를 수행했다. 그들이 수행한 것은 모세에게 영예스런 일이요, 가능하다면 그 배신자들에게 화를 내리게 하려 함이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피해받은 순결과 영예를 지원해 주는 것은 하나의 의무이다.

3. 자기들의 안전을 도모한다면, "이 사악한 자들의 장막에서 떠나라" 고 모든 사람에게 말했다(26절). 그렇게 하는 것은 그들의 명분과 입장을 증오하고 그들의 범죄와 의도를 규탄하며, 그들에게 내릴 벌을 두려워한다는 표시였다. 죄인과 함께 멸하고 싶지 않는 자들은 "그들에서 나와" 따로 서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우리가 "패역한 세대" 에게서 떠남으로써 자신을 구하지 않는 한, "우리를 죄인들과 함께 모으지 마소서" 하는 기도는 헛된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벨론의 죄와 재앙에 참여하지 않는 한 그들은 거기서 탈출하게 될 것이다(계 18:4).

Ⅱ. 회중들은 경고를 받아들였으나, 그 폭도들을 계속 고집을 부렸다(27절).

1. 자비롭게도 하나님은 그 백성들에게 폭도들을 떠날 수 있는 마음을 주셨다. "그들은 고라와 다단과 아리람의 장막에서 떠났다." 자기들의 땅이 그들에게 가까이 있어 그 부분에 있던 자들과 (틀림없이 이들은 가족들과 모든 재산까지 이동시켰을 것이다.) 그들의 결과를 보려고 각지에서 모여온 자들도 모두 피신을 했다. 하나님께서 회중의 마음을 감화시키사 그들을 생존케 하신 것은 모세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다. 하나님이 구원하시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회개의 심정을 주사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다는 것을 명심하자. 행악자들과 구별시켜 주는 은혜는 구원에 수반되는 한 가지 일이다.

2. 정의롭게도, 하나님은 그 폭도들을 그대로 버려두사 고집을 계속 부리게 하셨다. 이웃들이 자기들을 떠나가는 것을 보고도, 또 하나님의 정의의 화산이 자기들을 표적으로 하고 있는 것을 보고도, 하나님과 모세 앞에 엎드려 자기들의 죄를 겸손히 고백하고 용서를 빌며 군중들과 함께 도망하여 퍼난처를 찾는 대신, 그들은 하나님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최악의 일까지도 행하겠다는 듯한 태도로써 계속 "자기들의 장막문에 서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완악해진 심렁들은 스스로에게 멸망을 가져오며, 자기들의 실정은 가장 두려운 처지이나 오히려 무서움을 모르게 된다. 그러나 죄를 지을수도 무서워할 줄도 모르는 어린 자식들도 그들의 부모들의 자만으로 인하여 비극에 처하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불쌍한 일인가! 어려서부터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을 배운 자들은 행복하며,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는 자들은 어린 자라도 불행하지 않도다!

Ⅲ. 모세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엄숙한 선고를 내렸다. 그리고 하나님의 전능한 권능으로 선고가 집행됨으로 그 논쟁은 판결이 났다. 모세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서, 모든 이스라엘의 눈들이 집중하여 사건을 지켜보는 가운데서, 폭도들의 건방진 태도에 대하여 정당하고 거룩한 분노를 나타내었다. 그리하여 모든 문제는 놀라운 결말을 내게 되었다(28-30절).

1. 그 폭도들이 평범한 죽음을 죽었다면, 능히 한 사기꾼으로 불리우고 그렇게 간주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그들이 자연사를 했거나 다른 악행자들의 경우와 같은 종류의 처벌로 죽었다면 그러했을 것이다. "그들이 재앙이나, 하늘에서 내려온 분노, 또는 검으로 죽임을 당했다면, 하나님은 모세를 인정한 것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2. 그러나 "땅이 입을 벌려 그들을 삼키었다면" (이런 심판은 전레가 없었다), "그들의 모든 집은 내가 하나님의 종이요, 보내심을 받은 자요, 당신을 위해 고용된 자요, 내게 항의하던 자들은 당신께 항의하던 자인 줄을 확실히 알리리다." 이 심판은 그 자체가 폭도들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를 나타내기에 충분했을 것이요, 모든 사람 들은 "그들이 여호와를 분노케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토록 엄숙히 모세를 통해 미리 예고되었다면 구체적 설명이 전혀 없었다하더라도, 그 명백한 증거는 보다 설득력 있게 되고, 모세는 단순히 하나님의 종이었을 뿐만 아니라 하늘의 총애를 입는 자요, 하나님의 뜻을 아주 친밀히 아는 자이며, 그의 확실성을 입증하기 위해서 그러한 강경한 힘의 출현까지 동반시킬 수 있는 자라는 사실이 논쟁의 여지 없이 밝혀진 것이다.

Ⅳ. 집행은 순식간이었다. 하나님과 그의 종 모세는 서로를 아주 잘 알고 있었던 것이 드러났다. 모세가 말을 하자마자, 하나님은 시행했다. 땅이 "갈라져" (31절), "입을 벌리고 그들을 삼켰다." 그 사람들과 그들의 물건들(32절)도 삼켰다. 그리고 땅이 "그들 위에 합해 졌다" (33절).

1. 이 심판은 비할 데 없는 독특한 것이었다.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은 "새로운 일을 창조하셨다." 즉 전에는 결코 한 일이 없던 일을 행하셨다. 그의 전통에는 여러가지 화살이 있다. 그래서 자비에도 그렇지만 진노도 여러가지로 작용하게 된다. 다단과 아비람은 세키나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안전하리라고 생각했다. 세키나에서 때때로 여호와의 불이 나왔었다. (그들은 말하기를) qui procul d Jove-천신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은 벼락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께서는 벌을 줌에 있어서 한 가지 방법에 구애되는 것이 아님을 알려 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불과 마찬가지로 땅도 효율적으로 그의 정의를 실행한다.

2. 산 채로 무덤에 들어가 곤충처럼 시체가 되고 매장되며, "평안하고 조용하여 원기 왕성할 때에" 무저갱의 빗장에까지 내려가게 된다는 것은 죄인 본인들에게는 대단히 무서운 일인 것이다,

3. 그것은 또한 그들의 가엾은 자녀들에게도 가혹했다. 그것은 심팍의 무서움을 더하게 하며, 하나님의 진노의 뜻을 더 밝혀내는 것이다. 즉 그들의 자녀들이 부모들 때문에 죽게 된 것이다. 우리는 그 자식들이 그런 벌을 받아야 할 만큼 악하다거나, 또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어떤 보상을 해 줄 만큼 자비롭다고 하는 기록은 여기에 없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보아 무한한 재판자이신 하나님은 그들에게 아무런 잘못도 행하지 아니했다고 하는 점을 확신하게 된다. "하나님은 결코 불의를 행할 수 없느니라."

4. 그 사건은 완전히 기적이었다. 땅이 갈라진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요, 바다가 갈라지는 것만큼 초자연적인 일이다. 그리고 바다가 다시 합쳐지듯이 땅이 다시 합쳐졌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명령하신다. 그가 원하시면, 언제라도 그 아무것이든 당신의 정의를 실행하는 도구추로 삼을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의 원수라면, 어떤 피조물도 우리의 친구가 될 수 없다. 모세가 최근에 자기의 기도로 그들에게 가르쳐 준 것(시 90:11). 즉 "누가 주의 분노와 위력을 알리요?" 하는 사실을 그 백성에게 확신시켜 주었다. 하나님은 당신이 원하시는 때면,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위해서 기이한 벌을" 내리신다(욥 31:3). 그러므로 이렇게 결론 내릴 수 있다. "누가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서리오?"

5. 그것은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입으로 하늘의 거슬렀고", 그리하여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 되었다." 바로 그것 때문에 땅이 입을 열어 그들을 삼켜 버렸다. 그들은 회중 사이에서 틈을냈다. 바로 그 때문에 땅은 그들 밑에다 틈을 내었다. 회개하기를 싫어하는, 고의적인 죄인들은 땅에게도 짐이다. 온 피조물이 그들 밑에서 신음을 하게 된다. 이것은 그 사실을 상징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땅이 이 폭도들을 가라앉게 하였다. 그 땅이 그들을 지고 있다가 싫증이 났고, 그들 밑에서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땅은 지금도 무서운 불의로 인하여 괴로운 짐을 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 때가 바로 땅이 그들의 짐을 삼켜버릴 때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6. 이 사건은 회개하지 않고 죽은 죄인들의 영원한 파멸을 상징한다. 아마 이것을 비유하여 그들은 "웅덩이에 빠진다" (시 9:15). 또 "지옥으로 빨리 내려가는도다" (시 55:15)라는 말이 생겨났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깊은 수렁에 빠져서도" 믿음으로 기도했고, 저주받은 자와 생명 사이에는 깊은 괴리가 놓여 있듯이 "깊음이 나를 삼키 지 말게 하소서" 라고 했다(시 69:2-15). 다윗의 실정도 형편 없었다. 그러나 본문에 있는 자들처럼 절망적인 것은 아니었다.

Ⅴ. 모든 이스라엘에게 심판의 경보가 울렸다. "그들(회중)은 그들(폭도)의 부르짖음을 듣고 도망했다" (34절). 그들은 때늦은 뒤에서야 도움의 고함을 질렀다. 저들의 비탄은 구조자를 부른 것이 아니라 다 빨리 쫓아 버렸다. 저들은 각자 자기들의 죄를 깨닫고 "땅이 우리도 삼킬까 하여" 서로 도망쳤다. 우리는 남의 패망을 보면 스스로 경고를 받아야 한다. 무저갱으로 내려간 자들의 소리를 신앙으로써 들을 수 있다면, 우리도 같은 운명에 처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의 삶을 위해서 보다 열심히 도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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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5

분향의 제한(민수기 16:35-40)

회막문을 다시 돌아보자. 거기에는 제사장을 사칭하여 자기들의 손에 향로를 들고 분향할 채비를 하고 있던 자들이 남아 있었다.

Ⅰ. 그들에게는 보복이 가해졌다(35절). 다단과 아비람을 삼키려고 그들의 진에서 강이 열렸던 바로 그 때에, "여호와께로부터 불이 나와서 분향하는 250인을 소멸하니라." 그러나 아론은 그대로 살아남았다. 이 일은 전에도 있었던 일이다. 나답과 아비후가 그렇게 죽었다. 그러나 그것은 저으기 신기하고 무서운 일이었다.

1. 이 사건을 통하여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 이라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천둥이 하나님의 음성의 무서움을 알리는, 들을 수 있는 소리이었다면 번개불도 또한 하나님의 권능을 드러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당신의 논쟁자들을 삼키는 강렬한 분노를 볼 수 있다. 우리는 이것으로써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떨어진다는 것" 이(히 10:27-31)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를 알자.

2. 우리가 남의 일에 간섭하면 위험해진다. 하나님은 당신이 친히 세우신 제 제도의 영예를 귀히 여기시사, 그것이 침해되지 않기를 바란다. 고라 자신도 분향하다가 죽은 이 250인 가운데 끼여 불에 타 죽었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그가 표적 삼은 것은 제사장직이요, 그래서 그는 회막문에서 물러나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보라. 자칭 제사장들이라고 뽐내던 자들은 하나님의 정의의 희생물이 되었다. 그들은 레위인이므로 신성하고 영예로운 직위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것으로 만족해야 했었다. 그것은 그들이 받을 자격 이상의 것이었다. 그랬더라면 그들은 기쁨과 명예 속에서 살다가 죽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죄지은 천사들과 같이, "자기들의 처음 자리를 떠나" 지시되지 않은 영예를 탐하다가 하데스에 떨어졌다. 그들은 "영원한 불의 보복" 을 상징하는 불에 의해서 향로를 뺏기고 숨이 끊어졌다.

Ⅱ. 이러한 보복을 영원히 기념하는 조처가 취해졌다. 여기에는 그들의 시체 처리에 관한 언급이 없다. 성서는 쓰레기들저럼 그들의 시체를 그냥 지면에 버려두었다. 그러나 향로에 대한 명령은 나타나 있다.

1. 그것은 거룩하므로, 보존되었다. 엘르아살이 그 일을 맡았다(37절). 제사장직을 탐하던 자들은 하나님의 참으심과 온유하심으로 인하여 제단에서 불을 가져다가 향로의 불을 붙이기까지 했다. 그것은 시험삼아 허용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불을 붙이자마자, 하나님이 다른 불을 또 붙이셨으니, 이것은 그들의 교만에 운명적인 종지부를 찍은 불이었다. 이제 엘르아살은 그 불과 분향을 흩어 버리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것은 불이 붙어 있던 분향인데, 진 밖 어떤 부정한 곳에다 흩으라고 했다. 이것은 하님께서 그들의 제물을 더러운 물건처럼 가증스럽게 여겼다는 것을 상징한다. "사악한 자들의 제사는 여호와께 가증스런 것이다." 그러나 엘르아살은 하나님의 불과 그들의 불이 섞여진 불길 속에서 향로를 꺼내어 모았다. "그것들은 거룩하기" 때문이다. 일단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거룩한 온도로 사용된 향로(이것은 오직 시험을 위해서였지만)는 결코 일상적인 일에 되돌려질 수 없다. 그래서 어떤 자들은 그것을 이렇게 이해한다. "그것들은 아주 바쳐졌다." 그것은 금지된 물건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아주 바쳐진 물건처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만 사용되어야 한다.

2. 향로서는 아니지만, 성소 내에서의 일에 사용하게 했다. 그대로 향로로 쓰인다면 그 불경한 찬탈자들의 의도에 영예를 주는 것이 되리라. 놋 향로로 사용되지도 아니했다. 금 제단에는 금 향로가 쓰여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쳐서 "놋 제단의 테를" 두르라고 했다(38-40절). 이 사칭자들은 제사장직을 일반화함으로써 그 제 단을 파괴 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아론의 직무는 그들의 무능력한 악의에 의해서 흔들리기는커녕 오히려 더 강화되었다. 아론의 향로에 대적하던 그들의 향로는 아론이 섬기는 제단의 장식과 보존에 도움이 되는 데에 쓰여졌다. 이뿐이 아니라 이 제단에 테를 두른 것은 이스라엘의 자손 대대로 이 큰 사건을 기억하는 "기념물이" 되게 했다. 그 사건은 이토록 놀랍고, 또 모세가 그것을 역사로 기록해야 했지만, 시간이 가면 잊혀지고 말 위험이 있었다. 깊은 감명을 준 것이 언제나 영속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 심판의 기록을 명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제단에 시중드는 레위인들이나 그들에게 맡겨진 사소 한 일들은, 역시 레위인이었지만 제사장들이 되고자 하던 고라와 그의 동료들처럼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자기들의 한계를 잘 지키고 그 한계를 범하지 않도록 조심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 향로들은 "공포 속에서" 보존되었다. 즉 남들도 그것을 듣고 두려워하여 더 이상 그런 짓을 고의로 범하지 않케 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은 자비와 심판에 있어서 당신의 기사(奇事)를 보이사 영원한 기념비가 되게 하셨고, 그것이 "세상의 끝에 있는" 자들에게 교훈과 훈계를 주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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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0 없음.

 

16:41

재기된 반역(민수기 16:41-50)

Ⅰ. 바로 그 다음날 모세와 아론에 대한 새로운 반역이 일어났다. 오 하늘이여! 놀랍도다. 오 땅이여, 이 일은 불가사의로다! 이렇게 불치의 타락에 떨어진 죄인들이 도대체 있었던가? "다음날" (41 절), 그 백성은 폭동을 일으켰다.

1. 바로 조금 전에 폭도들이 처벌을 받는 모습을 목격하고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바로 그들이다. 자기들의 영혼을 대하여 범죄했던 그 죄인들이 땅 밑으로 내려 가면서 지른 비명소리가 아직 그들의 귓전에 남아 있고, 아직도 그들을 태워 죽인 불의 냄새가 남아있으며, 입을 벌렸던 땅이 채 닫혀지기도 전에, 그런 때에 같은 죄가 재기되었다. 그러한 모든 경고는 소흘히 되고 만 것이다.

2. 그들은 얼마 직전 바로 그들의 처벌을 함께 받았어야 했는데 간신히 구출되었고, 그 잔존자들은 "타다 남은 부지깽이" 같았었다. 그러나 그들이 다시금 모세와 아론에게 도전했으니, 모세와 아론이란 바로 그들의 생존을 위해 중재 기도를 했던 자들이 아닌가. 비난의 소리는 대단히 높았다.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도다." 이보다 더 부조리하고 악랄한 말이 또 있겠는가? 그들은 여호와를 도전하다가 죽은 자들을 여호와의 백성이라고 부르면서 폭도들을 정당화 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정의 자체를 비난한 것이다. 모세와 아론은 그들의 죽음에 아무런 책임도 없다는 것이 너무나 분명하다(그들은 목숨을 구할 수 있는 모든 방도를 취했었다). 그러므로 원당조로 그들을 비난하면서, 사실상은 그 비난으로 하나님 자신께 모든 책임을 맡기는 것이었다. 시내 산에서 주신 하나님의 율법의 엄위 하심에도 불구하고 이 백성들의 완악은 계속되었고, 불복종한 자들의 처형으로 심판의 두려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 모양이니, 이 사실은 인간의 심령을 실제적으로 변화시키는 데는 하나님의 은층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이 없이는 아무리 그럴 듯한 수단이라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법이다.

Ⅱ. 이 폭도들에 대해 하나님은 즉시 나타나셨다. 그들이 "모세와 아론에 대하여 모였을" 때에 -아마 그들을 탄핵하든가 원망하기 위해서 -그들은 "희막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마치 걱정스런 그들의 양심이 거기에서 어떤 불쾌한 모양이라고 보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은 "여호와의 영광을 보았다" (42절). 그것은 하나님의 종들을 보호하는 것이었고, 하나님과 그들을 고발하고 대적하는 자들의 당혹을 자아내는 것이었다. 모세와 아론은 회막으로 나아왔다. 부분적으로는 자기 자신들 때문이요(거기서 하나님은 저들을 은밀히 숨기신다. 시 27:5; 31:20). 또 다른 이유로는 하나님의 충언을 받아 이 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함이었다(43절). 이에 대하여 정의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즉 그들은 "순식간에 소멸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이었다(45절). 회개하기를 싫어하고, 날마다 반역만을 자행하는 그들을 무엇 때문에 하루 더 살려 줄 필요가 있겠는가! 정당한 보복이 일어나게 하고, 그들 때문에 일어나는 곤란은 즉시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모세와 아론만은 먼저 구출되어야 했다,

Ⅲ. 모세와 아론은 그들을 위해 중재했다. 엘리야처럼 그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 고발할(롬 11:2)만한 이유가 그들에게 충분히 있었지만, 그들은 자기들이 당한 모욕을 용서하고 있었다. 그들은 원수들에게도 최선의 친구가 되어 준 것이다.

1. 그들은 둘 다 "엎드렸다." 그들의 죄가 지극히 크다는것을 알면서도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하나님께 겸손히 중재한 것이다. 모세와 아론은 이전에도 이 비슷한 일을 당하여 여러 번 그렇게 했다. 그리고 그 백성들은 거기에 대해서 야비한 앙갚음을 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같은 방법을 택했다. 이것이 항상 기도하는 자의 자세이다.

2. 모세는 "재앙이" 폭도들의 "회중에 내리기 시작했다" 는 사실 (즉, 그들은 모세에 대항하기 위해 한 군대 모였다)을 알면서도 아론을 시켜 그의 제사장직 직무를 통해서 그를 위해 속죄하라고 했다(46절). 그리고 아론은 기꺼이 갔고,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서 분향을 올렸다. 그것은 더러워진 공기를 정화하기 위함이 아니라 모욕을 당한 하나님께 용서를 빌기 위함이다. 그래서 심판의 진행은 늦어졌다. 이 사실은 다음과 같은 것을 보여 준다.

(1) 아론은 매우 선량한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기를 미워하고 시기하지만, 그들을 위한 참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제 하나님은 당신께 대한 싸움을 복수하시고 당신의 제사장 제도의 명분을 변호하시려고 하고 있었지만, 아론은 하나님의 진노를 제거하려고 참견하고 있다. 그보다는 자기의 연륜과 품위도 잊고서, 회중을 도우려고 그들 한가운데로 달려갔다. 그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즉 "그들을 잠시 괴롭히소서, 그러면 내가 갈때 나를 더 잘 환영할 것입니다" 고. 오히려 모든 이스라엘인들의 생명을 지키는 보호자처럼, 죽음이 스며들고 있는 그 구렁텅이로 전속력을 다해 나아갔다.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다는 비난을 받고 있던 모세와 아론은 이제 그들을 책망해야 마땅했을 것이다. 저들이 그토록 부당하게도 살인자로 욕하고 있는 모세와 아론이 자기들의 구원자가 되어 주리라고 감히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선량한 두 사람은 우리에게 한 모범을 보여 주었다. 곧 우리는 우리를 짖궂게 괴롭히는 자들에겐 기분 나쁘게 대해서는 안 되며, 그들이 우리를 모욕하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우리들에게 그들을 처분한 권리가 생길 때에 그들에게 참다운 친절을 거부해 버리는 구실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악인에게 선으로 갚아야 한다.

(2) 또 아론은 매우 용감한 자였다. 자기를 치려고 모여 있는 노한 폭도들, 이제 시작된 재앙으로 인하여 더욱 감정이 격화된 그 폭도들, 그것을 알면서도 그들 한가운데로 나아가는 모험을 감행했다 -또 그는 전염병이 퍼져 있는 한가운데로 용감히 나아갔다. 거기에는 죽음의 화살이 비오듯 쏟아지고, 수백 수천 명이 그의 좌우에 넘어지는 그런 곳이었다. 그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그는 자기의 손을 그들에게 내밀었다. 그것이 자기에게 위험해지리라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직 자기의 사명을 다하기 위함이었다.

(3) 아론은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또 하나님께 관한 거룩한 일에 있어서 "사람을 위해 임명된" 자였다. 제사장직에 부름받은 자기의 소명은 이로써 확고히 되었고 논쟁의 여지가 전혀 없게 되었다. 하나님은 당신의 권위에 도전한 이 침략자들을 죽이면서 아론의 생명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한 도구로 삼으셨다. 아론의 향로와 여기에 나오는 "그들의 영혼을 거스르는 죄인들의 향로들" 과 비교해 보라. 그것들은 하나님의 분노를 자극시켰으나, 아른의 향로는 그 분노를 진정시키었다. 그들의 것은 인간의 생명을 파괴시켰으나, 아론의 향로는 구했다. 그런고로 아론이 제사장에 소명받은 자라는 사실을 의심할 여지가 없게 되었다. 자기 자신을 공공의 복리를 위해서 철저히 내어던지는 자들, 여호와의 자비를 얻어 진실하고 유용한 자들, 바로 그들이 공공의 영예를 차지하기에 가장 적합하다. 어떤 위대한 사람이 있다면, 그로 하여금 만인의 종이 되게 하라.

(4) 아론은 그리스도의 할 모형이다. 그리스도는 죄를 위한 속죄물로 세상에 오셨고,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진노를 제하여 버리려고 오셨으며, 그 방편은 그의 중보와 중재 곧 "산자와 죽은 자 사이에 서서" 그의 택함받은 이스라엘을 당신께로 보존하고, 죄와 저주에 감염된 이 세계 한가운데서 그들을 구출하는 것이었다.

Ⅳ. 사건의 결말

1. 그들 중의 몇몇 사람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정의는 영광을 받게 되었다. 여호와의 검은 순식간에 큰 힘을 발휘했다. 아론은 최선을 다해 서둘렀지만, 그가 자기의 직무 자리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1만 4천 7백 명이 죽어 넘어졌다(49절). 고라의 사건 때에는 그 선동자들만 본보기로 죽었으므로 비교적 소수의 사람이 죽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내와 참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는 사람들의 피는 정의가 아끼지 아니했다. 그들은 "여호와의 백성" 중에서 몇백 명이 참변을 당해 죽은 것을 불평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수천 명을 죽이심으로써 그들의 불평을 침묵케 했다. 하찮은 심판에 도전하는 자들은 더 큰 심판을 초래하고 만다.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에는 언제나 승리하신다.

2. 나머지 사람들은 살려 두심으로써 하나님의 자비는 영광을 받았다. 하나님은 당신의 능력이 어떠한가를 보여 주셨고, 당신의 정의가 무엇을 행하는가를 보여 주셨다. 그러나 그 후에는 당신의 사랑과 자비가 어떤 것인가도 보여 주셨다. 이 모든 사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한 중보자를 통하여 그들을 남기셔서 당신의 백성을 삼으시고자 하셨다. 아론이 피운 분향의 연기가 올라가기 시작 하자 그 재앙은 그쳤다. 분노하신 중에도 수없이 자비를 기억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더욱 영광되게 한다. 그리고 비록 심판은 시작되었지만, 기도는 그것을 중지시켰다. 하나님은 그토록 용서를 기뻐하시기 때문이요, 죄인의 죽음을 조금치도 기뻐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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