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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이스라엘 왕조실록. 이는 성경의 열왕기(the Book of Kings)를 뜻하지 않는다. 대신 지금은 유실된 궁전 기록을 의미한다(Keil, The Wycliffe Bible Commentary, Payne). 본서 저자는 본서를 기록하기 위하여 많은 자료들을 참조하였는데(27:24, 29:29, 대하 9:29, 12:15, 13:22, 20:34, 25:26, 27:7, 32:32, 36:8) 불행히도 그 문헌들은 오늘날 전해지지 않고 있다. 한편 여기서 ‘이스라엘’은 유다 왕국과 대조되는 ‘이스라엘 왕국’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전(全) 이스라엘 곧 12지파 전체를 일컫는 말이다. 왜냐하면 (1) 여기서 인용된 기록의 내용이 이스라엘 전체를 포함하고 있고(1-44절) (2) ‘이스라엘’이란 말 자체가 언약 백성 전체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Keil).

유다가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 사로잡혀 갔더니. 저자는 하나님의 백성을 통칭하는 ‘이스라엘’(삼상 4:10)이나 ‘온 이스라엘’(삼상 4:5)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유다’라 지칭함으로써, 이스라엘 역사의 주체가 북 왕국 이스라엘이 아닌 남 왕국 유다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한편 여기서 그들의 범죄함을 강조한 것은, 후손들에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도록 경고하기 위한 것이다.

 

9:2 그들의 땅 안에 있는 성읍에 처음으로 거주한 이스라엘 사람들. 본 절은 학자들 간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구절이다. 즉 어떤 이들은 본 절을 바벨론에서 최초로 돌아온 사람들을 가리키는 구절이라고 한다(Bertheau, P.C. Barker, Roddy Braun). 반면에 다른 이들은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가기 이전에 예루살렘에 거했던 사람들을 가리키는 구절이라고 한다(Keil & Delitzsch, Payne, Wycliffe Bible Commentary). 하지만 본 절 이하에 나오는 기록은 느헤미야 당시(B.C. 444년)에 예루살렘 안팎에 거주했던 자들의 명단(느 11:3-24)과 유사하므로 본 절은 바벨론에서 최초로 돌아온 사람들을 가리키는 구절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물론 이에 대하여 ‘바벨론 포로 이전 거주설’을 주장하는 자들은 다음과 같이 반박하기도 한다. (1) 본 장의 기록은 포로(B.C. 586년) 이전의 예루살렘 거민들의 명단인 반면, 느헤미야의 기록은 그 당시(B.C. 444년)의 예루살렘 거민들의 명단이다. (2) 본장의 기록에는 71명의 이름, 느헤미야의 기록에는 81명의 이름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중 약 35명의 이름만이 같거나 유사할 뿐이다(Payne, Keil, Myers). 그러나 적어도 그러한 차이점은 본서와 느헤미야서의 저자가 다른데서 비롯된 차이이며 양 기록을 합칠 때 거의 완전한 기록을 얻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Payne, Keil, Myers). 더구나 본장은 지금까지 이스라엘 12지파의 족보가 언급되고 난 이후(1-8장), 특히 바벨론 포로 사건(1절)과 관계하여 기술되고 있는 장이란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전후 문맥 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바벨론 포로 이전 거주설’을 주장하는 것은 무리인 듯하다.

느디님 사람들. ‘느디님’은 ‘바쳐진 자들’이란 뜻이다. 이들은 성전에서 레위인의 일을 도왔던 자들로 여겨지는데 영문 개역표준역(RSV)은 ‘성전 봉사자들’(the temple servants)로 번역하고 있다. 한편 이들 조직이 과거 다윗 당시부터 있었는지 아니면 포로 귀환 후 성전 재건을 위해 조직되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추측컨대 과거부터 별다른 이름 없이 막일꾼으로 존재해 오다가(수 9:27) 포로 귀환 후 ‘느디님’(스 2:43)으로 불렸을 가능성도 있다.

 

9:3 유다 자손과 베냐민 자손과 에브라임과 므낫세 자손. 본 절에는 이처럼 네 지파의 자손이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실상 본 장에는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자손들만 기록되어 있다(4-9절). 이는 아마도 저자가 이들 중에서 중요하게 여겼던 지파의 족장들만을 선별하여 기록하였기 때문일 것이다(Payne).

예루살렘에 거주한 자. 저자는 포로 귀환 이후 유다의 신정 국가로서의 합법성을 내세우기 위해 예루살렘 거민들의 명단을 기록하였다(4-34절). 즉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변함없는 종교적 중심지요 합법적인 수도였기 때문에 그 거민들의 명단은 바벨론에서 귀환하여 신정 국가를 재건하고자 했던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적지 않은 의미를 부여했던 것이다(Payne).

 

9:4 우대. ‘우대’는 느 11:4의 ‘아다야’와 동일 인물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돕는 사람’이다.

 

9:5 실로 사람 … 아사야. 실로는 이스라엘의 종교 중심지로 해마다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던 곳이다(삿 21:9). 또한 이곳은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언약궤를 옮기기 전까지 백성들이 여호와께 예배하던 곳이다(삼상 1:3).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실로 사람 아사야의 출신을 말해주는데 그는 매우 신실한 인물로서 포로 귀환 후 하나님께 봉사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그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만드셨다’인데 느 11:5에 나오는 마아세야와 동일 인물인 것으로 추정된다.

 

9:6 세라 자손 중에서는 여우엘과. 느헤미야 11장에서는 세라의 후손이 언급되지 않았다. 세라는 유다가 며느리 다말에게서 낳은 아들이다(창 38:12-30). 2:4 주석 참조.

그 형제 육백구십 명이요. 여기서 ‘그 형제’란 여우엘의 형제만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4-6절에 등장한 모든 자들의 형제(혈족)를 의미하는 듯하다(Keil, Lange). 이는 9절의 경우에 비추어 볼 때 신빙성이 있다.

 

9:7 핫스누아의 증손 호다위아의 손자 므술람의 아들 살루요. 본문(7-9절)에는 베냐민 자손과 관련하여 네 족장이 소개되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인 살루의 이름만이 느헤미야 11장의 기록에 언급되어 있다(느 11:7). 그러나 본문의 살루가 느헤미야의 기록에 언급된 살루와 동일 인물인지는 분명치 않다. 왜냐하면 비록 이들의 아버지의 이름은 므술람으로 일치하고 있지만 그들의 조부와 증조부는 서로 다른 이름으로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9:8 무술람. 한글 개역 성경에 므술람으로도 곧잘 표기되는데(11절) 성경에는 이와 동일한 이름의 소유자가 20명이 넘게 나온다. 그렇지만 본 절의 ‘무술람’에 대하여 달리 알려진 바는 없으며 그 이름의 뜻이 ‘보상됨’이란 사실이 확인될 뿐이다.

 

9:9 그의 형제들이라. 여기서도 ‘형제들’이란 위(7, 8절)에 언급된 살루, 이브느야, 엘라, 무술람 이 네 족장들의 혈족들을 의미한다. 6절 참조.

구백오십육 명이니. 느 11:8에 계수된 숫자는 928명이다. 이러한 수치의 차이는 이 두 기록이 서로 다른 사람에 의해 기록된 데서 비롯된 차이인 것으로 이해된다. 2절 주석 참조.

다 종족의 가문의 우두머리들이더라. 이는 바로 앞의 956명의 혈족들을 다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4절에서부터 8절에 이르기까지 그 이름이 언급된 유다와 베냐민의 자손들을 통틀어 가리키는 말로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다음 절에서부터는 레위인들을 소개하고 있으므로 본 절은 지금까지의 족장들의 명단을 마무리 짓는 구절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Lange).

 

9:10 여다야와 여호야립과 야긴. 이 이름들은 다윗 왕 때에 구성된 제사장의 24 반차에 나오는 이름들과도 동일하다(Keil). 이 중 여다야는 두 번째 반차, 여호야립은 첫 번째 반차, 그리고 야긴은 스물한 번째 반차에 해당한다(24:7-19). 본 절에 나오는 각 사람들은 분명 바로 그 반차와 계통을 따라 난 자손들일 것이다. 한편 이들 이름은 느헤미야서에도 나와 있다(느 11:10).

 

9:11 하나님의 성전을 맡은 자. 여기서 ‘맡은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기드’는 ‘지도자,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본래는 ‘대제사장’을 일컫는 말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바벨론 포로 귀환 후의 대제사장은 여호수아였으니(학 1:1, 슥 3:1) 여기서는 대제사장 다음 가는 권한을 지닌 ‘제사장’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해야 한다.

아사랴니 그는 힐기야의 아들이요. 아사랴는 B.C. 586년에 바벨론으로 잡혀간 여호사닥의 조부이며(6:14, 15) 그의 부친 힐기야는 요시야의 종교개혁(B.C. 622)에 가담했던 인물이다(왕하 22:4-14, 23:4). 이에 근거하여 혹자는 저자에 의해 기술된 본 족보가 B.C. 622년 직후에 기록된 것이라고 주장한다(Payne). 그러나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본 족보는 바벨론 포로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자들의 명단이므로 본 절의 아사랴, 힐기야는 동명 이인(同名異人)인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2절 주석 참조.

 

9:12 아다야니 … 말기야의 증손이며 또 마아새니 … 임멜의 오대손이며. 본 절에 나오는 것과 같은 동일한 이름을 우리는 다윗 시대 당시의 제사장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즉 아다야의 증조부 말기야는 다섯 번째 반차를, 마아새의 조상 임멜은 열여섯 번째의 반차를 맡았던 제사장들이었다(24:9, 14).

 

9:13 하나님의 성전의 임무를 수행할 힘있는 자. 이들은 습관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한 자들이 아니라 그 일을 감당하는 가운데 열심과 능력을 보인 영웅적 일꾼들이었다. 한편 이처럼 성전에서의 다양한 봉사 직분은 다윗 시대에 정해진 것이다(23:26-32). 본 절에 언급된 자들은 바로 그 계열의 후손들이다.

모두 천칠백육십 명이더라. 이 숫자는 10-13절에 소개된 제사장들과 그 형제들 뿐만 아니라 그 외에 성전에서 수종든 레위인들을 모두 포함하는 숫자인 것 같다. 왜냐하면 다음에 이어지는 레위인의 명단에는 계수한 숫자가 언급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Keil, Lange).

 

9:14 므라리 자손 스마야. 므라리는 레위의 세 아들 중 한 명이다(6:1). 그 후손들은 다윗 당시 성전 문지기(26:10, 19)와 찬양의 직무 등을 맡았다(6:44). 한편 스마야는 ‘여호와께서 들으셨다’는 뜻이다.

 

9:15 박박갈. ‘산의 풍부함’이란 뜻이다.

맛다냐이니 … 아삽의 증손이며. 맛다냐는 ‘여호와의 선물’이란 뜻이다. 한편 아삽은 다윗이 임명한 악사(樂師)로서 레위의 맏아들 게르손의 후손이다(6:39-44). 본 절은 귀환한 포로 가운데 성전에서 찬송 직무를 맡을 가문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9:16 오바댜이니 … 여두둔의 증손이며. 오바댜는 ‘여호와의 종’이란 뜻이다. 한편 여두둔 역시 다윗이 임명한 악사로서 레위의 셋째 아들 므라리의 후손이다. 6:44 주석 참조.

베레갸이니 … 엘가나의 손자라. 엘가나라는 이름이 그핫 족속의 족보에 여러 번 언급된 점으로 볼 때(6:23, 25-27, 34, 36) 베레갸는 그핫의 후손일 가능성이 높다(Payne). 특히 엘가나라는 이름은 다윗의 악사 헤만의 족보에 여러 번 언급되어 있다(6:33-36).

느도바 사람의 마을에 거주하였더라. 느도바는 베들레헴에서 가까운 유다의 구릉 지대에 위치한 성읍이다(2:54, 스 2:21, 22, 느 7:26). 바벨론에서 귀환한 레위인들 중 노래하는 자들이 이곳에 거주했던 사실로 미루어 볼 때(느 12:27, 28) 느도바는 역사적으로 악사(樂士)들의 거처였던 것 같다.

 

9:17 문지기.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쇼페르’는 성전의 입구나 왕궁의 문을 지키는 자들을 말한다(왕하 22:4, 에 2:21). 특히, 성전 안 여러 문들의 입구를 지키는 직무는 레위인들에게 맡겨졌다. 이들의 중요한 직무는 아침 저녁으로 성전(성막)의 문을 열고 닫는 것이었다. 한편 현대 산업 사회에서 볼 때 문지기는 비천한 임무로 보일지 모르나, 하나님의 성전을 지키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 84:10)라는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영광된 직무였다. 기쁨에 충만한 이들의 직무 자세는 오늘 우리들이 직분 수행에 있어서 일의 성격에 관계 없이 기쁨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해야 할 것을 교훈해 준다(빌 4:4, 살전 5:16, 18).

 

9:18 전에. 문자적으로는 ‘지금까지’라는 의미이다. 이는 곧 본 장에 언급된 자들이 본서 기록 당시까지 계속해서 조상들의 뒤를 이어 자기 업무를 수행하였음을 보여준다.

왕의 문. 이 문은 왕궁에서 성전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문으로서 왕이 성전으로 들어갈 때 이용한 중요하고도 비중있는 문이었다(왕하 16:18, 겔 46:1, 2). 이 문은 성전의 동편에 위치해 있었는데 신약 성경에는 미문(美門)으로 나와 있다(행 3:2,10).

레위 자손의 진영의 문지기이며. 이는 이스라엘의 광야 시대의 진영을 회상하는 구절이다. 당시 이스라엘의 지파들은 성막을 중심으로 그들의 진영을 세웠으나 레위 지파의 진영은 성막 또는 성물(聖物)과 함께 있었다(민 10:17, 21). 따라서 ‘레위 자손의 진영의 문지기’란 곧 ‘성막의 문지기’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성막을 지켰던 이들이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된 이후에는 ‘성전 문의 문지기’가 된 것이다.

 

9:19 고라의 증손 에비아삽의 손자 고레의 아들 살룸. 여기서 ‘증손’, ‘손자’라는 표현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왜냐하면 에비아삽은 6:23에서 고라의 5대손으로 밝혀져 있으며 또한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벤’은 ‘후손’을 의미할 수도 있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살룸이 고라의 증손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벤’은 마지막의 경우(고레의 아들)를 제외하고는 모두 ‘후손’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편, 고라는 그핫 족속의 후손으로서 아론의 대제사장직을 탐내다가 저주를 받은 바로 그 인물이다(민 16:9, 10). 그러나 그때에 그의 아들들은 저주에서 면제되어 그핫 족속의 중요한 성직(민 4:4)을 계속 담당할 수 있었고 이들의 직무가 살룸에게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그들의 조상들도 여호와의 진영을 맡고 출입문을 지켰으며. 17-19절에 언급된 자들의 조상인 고라 자손(그핫의 후손들)은 광야에서 지성물을 운반 또는 관리했었다(민 4:4). 물론 그 조상들이 문지기였다는 분명한 언급은 성경에 없지만 본 절로 보아 그들 역시 지성소를 지키는 문지기의 직무를 감당했을 것이 자명하다(Lange). 한편 본 절은 포로 귀환 이후의 문지기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명령하신 직무를 그대로 이어받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9:20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옛적에 그의 무리를 거느렸고. 이는 대제사장으로서의 비느하스의 직무를 말해 주는 구절이 아니다. 왜냐하면 대제사장은 보다 중요한 직무가 있었기 때문에 문지기들을 관할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절은 비느하스가 대제사장의 직을 맡기 전 그의 아버지 엘르아살 밑에서 감당했던 일을 알려주는 구절이다. 그의 아버지 엘르아살 또한 대제사장 아론의 밑에서 문지기들을 관할했었다(민 3:32). 한편 비느하스는 그의 의로운 행동으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평화의 언약을 얻어낸 과거의 유명 인물이다(민 25:11-13).

 

9:21 므셀레먀의 아들 스가랴는 회막 문지기가 되었더라. 므셀레먀와 스가랴라는 이름은 다윗 시대에 임명된 문지기들의 명단 가운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26:2). 한편 ‘회막’(會幕)이란 용어는 ‘만남의 장소, 계시의 장소’란 신학적 의미를 지닌다. 물론 ‘회막’, ‘성막’, ‘장막’이란 말은 모두 ‘하나님의 장막’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이들 용어는 다음과 같은 약간의 의미상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

1. 회막: 히브리어 ‘오헬 모에드’는 ‘약속에 의해 만나는 것’을 의미함. 이러한 명칭은 바로 이곳에서 언약의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만나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출 29:42, 43, 민 17:40).
2. 성막: 히브리어 명사 ‘미쉬칸’은 ‘머물다’라는 동사에서 파생한 것으로 ‘거처하는 장소’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거주하는 처소를 일컫는다(출 26:1, 27:9).
3. 장막: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유랑 중 거주하던 천막을 가리키기도 하나 그것은 여호와께서 거주하는 장막인 성막과 구별된다(왕상 2:28).

 

9:22 문지기 된 자가 모두 이백열두 명이니. 성전을 지키는 자의 수는 시대마다 달랐다. 그러나 그 직분은 오직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레위 가문에게만 허락된 귀중한 직분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각 시대마다 집계된 문지기의 수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다윗 시대: 93명(대상 26:2-11). 포로 귀환 후: 212명(대상 9:22). 스룹바벨 성전(에스라서): 139명(스 2:42). 스룹바벨 성전(느헤미야서): 172명(느 11:19).

그들의 마을. 이는 예루살렘 주변에 위치한 문지기들의 거처를 의미한다. 이들은 이곳에 거주하다가 직무를 행할 때면 예루살렘 성으로 올라가 봉사했다.

다윗과 선견자 사무엘이 전에 세워서 이 직분을 맡긴 자라. 여기서 문지기의 직분을 최초로 세운 자들이 다윗과 사무엘 선지자였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다윗이 먼저 기록되고 사무엘 선지자가 나중에 기록된 것은 연대적으로 볼 때는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1) 성전 예배의 기틀을 마련한 핵심적인 인물이 다윗이었으며 (2) 문지기의 활동이 활발했던 때의 인물 또한 다윗이었기 때문에 다윗을 먼저 기록한 것은 자연스럽게 이해될 수 있다. 또한 여기서 사무엘이란 이름이 나오는 것의 의미는 적지 않다. 즉, 본서 저자는 다윗의 훌륭한 종교정책이 다윗 자신의 독자적인 노력만으로 발전된 것이 아니라 사무엘이 세운 제도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것임을 밝혀 준 것이다. 사무엘은 어린 시절 성막의 문지기로서 봉사하다가(삼상 3:15) 선지자직을 맡은 이후에는 자신의 직무를 대신 담당할 성막의 문지기들을 임명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여 조직된 문지기 제도는 약 500여년이 지난 포로 귀환 시대에도 계승되어 충실히 이행되었다. 한편, 여기서 ‘전에 세워서’는 분명한 오역이다.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그들을 신뢰하는 중에’라는 뜻이다. 우리는 여기서 직분자들의 바른 자세는 맡긴 자의 신임을 얻는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9:23 그 순차를 좇아 … 성막 문을 지켰는데. 이는 다윗 시대에 편성되었던 문지기의 조직적인 봉사를 설명하여 준다. 당시 문지기들은 24반으로 나뉘어졌으며 동편에 6명, 북편에 4명, 남편에 4명, 곳간에 2명, 낭실 서편에 4명, 낭실에 2명씩 총 22명이 매일 배치되었다(26:17, 18). 그런데 다윗 당시 문지기의 수는 두목들을 포함하여 모두 93명이었으니 정확히 4교대로 직무를 수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26:2).

 

9:24 없음.

 

9:25 그들의 마을에 있는 형제들은 이레마다 와서 함께 있으니. 모든 레위인들이 예루살렘 성에 다 수용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예루살렘 주변의 마을에 거주하면서 반차(班次)를 좇아 성전에 올라와 교대로 봉사의 일을 감당하였다. 본 절은 그들이 곧 일주일 단위로 직무를 교대했음을 보여 준다.

 

9:26 우두머리 된 레위 사람 넷. 우두머리로 번역된 히브리어 ‘깁보레이’는 본래 ‘용사들’이란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문지기들의 지도자들’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Bertheau). 한편 혹자는 본 절에 ‘레위 사람’이란 말이 있는 것에 근거하여 이들을 문지기가 아닌 다른 레위인으로 간주하기도 한다(Lange, Keil). 그러나 그 같은 주장은 본 문맥이 문지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옳지 않다. 따라서 이들은 17절에서 언급된 네 명의 문지기들의 지도자들임이 분명하다(Curtis).

중요한 직분. 성전 업무와 관계되는 사항 중 중요한 것은 성전을 지키는 것이다. 성전을 지킨다는 것은 오늘날 성도들에게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예수를 모신 성도의 몸이 곧 성전이기 때문이다(요 2:21, 고전 3:16, 17).

모든 방과 곳간. 이는 십일조와 성물(聖物)을 보관해 두는 곳이었다(대하 31:5, 11, 12, 느 13:4-9). 네 명의 문지기 우두머리들은 이 곳을 관리하는 일을 총감독하였다. 그리고 이곳을 맡도록 되어 있는 문지기들(26:17, 18)은 반차를 좇아 교대로 나아와 이곳을 지켰다.

 

9:27 하나님의 성전을 맡은 직분이 있으므로 성전 주위에서 밤을 지내며. 여기서 ‘맡은 직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세메레트’는 ‘감시하다, 돌보다’는 뜻의 동사 ‘샤마르’에서 파생된 명사형으로 ‘감시하는 직분, 돌보는 직분’이란 뜻이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거처하였던 일반 문지기들(25절)과는 달리 지도자격인 문지기 우두머리 네 사람은 그들의 직무의 중요성 때문에 성전 가까이에 거주하였다.

아침마다 문을 여는 책임이 그들에게 있었더라. 여기서 ‘문을 여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맙프테아흐’는 ‘열쇠’를 의미하는 단어이다(삿 3:25, 사 22:22). 따라서 이들은 밤에 하나님의 성전의 문을 닫았다가 아침에 열쇠로 그 문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Keil, Curtis).

 

9:28 섬기는 데 쓰는 기구. 이는 성소(聖所)의 제사 때 사용되는 금, 은으로 된 귀한 그릇(28:13)으로서 오직 레위인들만이 운반할 수 있었다(출 25:1-9). 더욱이 그것들은 하나님의 성물(聖物)이었기 때문에 사용한 이후에는 성전 창고에 조심스럽게 보관해 두어야 했다.

 

9:29 성소의 기구와 … 향품을 맡았으며. ‘기구’나 ‘그릇’은 28절의 ‘기구’와 같은 단어이나 여기서 이 말은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과 연결되어 사용되었다. 즉, 이 기구 또는 그릇은 고운 가루, 포도주, 기름과 유향과 향품을 담을 그릇을 의미한다(Lange). 한편 이 중 고운 가루는 제사 때 소제물(素祭物)로 쓰였고(레 2:1), 포도주는 소제와 함께 드려지는 전제(奠祭)에 사용되었다(레 23:13). 그리고 기름과 유향은 소제와 함께 드려졌으며(레 2:1, 3, 13, 6:15) 향품은 등유와 관유에 사용되었다(출 25:6). 따라서 본 절은 대체적으로 소제에 사용되는 성물을 기록한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Curtis).

 

9:30 향품으로 향기름을 만들었으며. 여기서 향기름이란 거룩한 관유(灌油)를 말한다. 이 관유는 성소의 모든 기구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발라 그것들을 거룩하게 구별하는 목적으로 사용되었다(출 30:25, 32). 이 관유를 배합하는 자들은 극히 제한되어 있었으며(출 30:33, 38) 여기에 필요한 재료는 몰약, 육계, 창포, 계피 등이었다. 한편 이 관유를 만들었던 방법에 대해서는 출 30:23-25 주석을 참조하라.

 

9:31 고라 자손 살룸의 맏아들 맛디댜. 여기서 ‘고라 자손 살룸’은 19절에 나오는 바로 그 살룸인 것 같다. 그런데 혹자는 이 살룸을 다윗 시대의 문지기였던 므셀레먀(26:1)와 동일시 하기도 한다(O. Zöckler). 그러나 그 같은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없다. 왜냐하면 본 절에는 살룸의 장자(長子)가 맛디댜로 나와 있으나 26:1에는 므셀레먀의 맏아들이 스가랴로 나와 있기 때문이다. 한편 ‘맛디댜’는 ‘하나님의 선물’이란 뜻이다.

전병을 굽는 일을 맡았으며. 여기서 ‘전병’은 소제 때에 사용된 ‘누룩없는 제사떡’을 의미한다(레 2:5, 6:14-18, 7:9, 10).

 

9:32 그의 형제 그핫 자손. 그핫 자손은 레위 지파를 형성한 세 자손(게르손, 그핫, 므라리) 중 하나이다(6:1). 맛디댜가 속한 고라 자손이 바로 이 그핫 자손에 속한다(출 6:18-21).

진설하는 떡을 맡아 안식일마다 준비하였더라. ‘진설하는 떡’은 곧 매 안식일마다 새것으로 차리는 진설병을 가리킨다. 이 진설병은 고운 가루로 만들어졌으며 모두 열두 개의 진설병이 두 줄로 순결한 상위에 진설(陳設)되었다. 이는 하나님의 구속(救贖)받은 백성들의 공동체를 상징하였다(레 24:5, 6).

 

9:33 또 찬송하는 자가 있으니 곧 레위 우두머리라. 이는 14-16절에 소개된 레위 족장들을 지칭하는 구절이다(Payne, Lange, The Wycliffe Bible Commentary). 왜냐하면 과거 다윗 당시 찬양의 직분을 맡아 24 반열로 구성된 성가대는 에단, 아삽, 헤만의 자손들이었기 때문이다(6:39-44). 포로 귀환 후 이 직무를 맡게된 후손들은 주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철저히 자기를 헌신하여 이 직무를 감당하였다(느 11:22, 23, 12:27-47).

골방에 거주하면서 주야로 자기 직분에 전념하므로 … 아니하였더라. 이는 당시 찬송하는 일의 전문화(專門化)를 보여준다. 여기서 골방은 성전 안에 있던 방을 말한다(스 8:29). 찬송하는 자들은 필요에 따라 이 골방에 거주하면서 밤낮으로 자기 직분에 전념하였다. 즉 성전에서 예배와 제사가 진행되는 동안은 밤낮으로 하나님께 대한 찬송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시 35:28, 42:8).

 

9:34 그들은 다 … 예루살렘에 거주하였더라. 본 절은 10-33절에 등장한 모든 레위인들을 일컫는 말이다.

 

9:35 35-44절. 이 부분은 8:29-39의 중복이다. 그러나 이 기록은 다음 장에서 언급될 사울 왕의 비극적인 종말을 소개하기 위한 도입 부분으로서 여기에 또 다시 반복되어 있는 것이다(Payne, The Wycliffe Bible Commentary, Keil, Lange). 여기에 나와 있는 이름들에 대해서는 8:29-39 주석을 참조하라.

 

9:36 없음.

 

9:37 없음.

 

9:38 없음.

 

9:39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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