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여기서 ‘일어나’라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 ‘쿰’은 군사 용어로서 ‘어떤 행동을 개시하는 것’을 뜻한다(7:12). 지금까지 세기의 악녀 이세벨과 같이 자기 남편 여호람을 부추겼을 뿐만 아니라(8:18, 대하 21:5, 11) 아들 아하시야를 조종하여(8:27, 대하 22:3) 마음껏 권력을 휘두르던 그녀에게 남편과 아들의 잇따른 죽음(8:24, 9:27)은 큰 충격이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아하시야가 통치하던 때에는 아달랴가 남(南) 유다 아히시야 왕의 태후로서 실질적인 통치권을 행사하였다. 한편 아달랴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서 태후 또는 ‘왕후’(히, 게비라)가 왕보다 더 실질적인 세력을 가진 때(왕상 15:2, 렘 13:18, 29:2)가 종종 있었는데(Bähr) 그 여자들은 때때로 중요한 역사적 인물로 등장하기도 하였다(예를 들면, 밧세바, 마아가, 아달랴, 이세벨). 그런데 이제 아달랴의 아들 아하시야가 죽었으니 자연히 그녀의 손자들 중에 하나가 왕위를 계승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녀는 태후의 자리도 물러나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달랴는 자신의 권좌를 유지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킨 것이다.
왕의 자손을 모두 멸절하였으나. 본 표현에 나타난 ‘자손’은 히브리어 ‘제라’를 번역한 말인데 이는 ‘씨를 뿌리다, 퍼뜨리다, 낳다’를 의미하는 ‘자라’에서 온 용어이다. 특히 이 말은 ‘열매, 자손, 후손’이라는 뜻도 지니므로 본 절에서 ‘왕의 자손’이라고 함은 왕위를 계승할 권리가 있는 아하시야의 모든 아들과 친척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여기서 왕의 자손은 아달랴가 집권하는 데 방해가 되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때에 아하시야의 친척들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라비아의 사람들에 의해서(대하 21:17), 그리고 예후에 의해서(10:13, 14), 또한 여호람에 의해서 (대하 21:4) 이미 멸절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달랴는 아하시야의 아들, 즉 자신의 친손자들을 죽였을 것이다. 그 중에서 남아있는 왕족들은 대제사장들과 결혼 관계를 맺음으로써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였기 때문에 아달랴는 그들을 멸하였을 것이다(Rawlinson).
침실에 숨겨. 여기서 ‘침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다르 함미토트’의 해석에 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성전에 딸린 제사장들의 공동 침실이라는 견해(Luther, Clericus, Vatablus, Hobbs)와 (2) 침실로 쓰여지지는 않으나 요나 이불이 있는 궁궐 내의 한 방(Keil, Bähr)이라는 견해이다.
육 년을 숨어 있는 동안에. 요아스와 그 유모는 성전에서 6년 동안 숨어 살 수 있었는데 그것은 한차례 아달랴가 성전을 파괴했음에도 불구하고(대하 24:7) 하나님께서 다윗의 씨를 보존하였다는 증거가 된다. 한편 요아스가 아달랴의 눈을 피해 성전에서 6년 동안 양육받았던 사실은 다음과 같은 의미에서 매우 중요하다. (1) 다윗의 씨가 보전됨: 요아스는 다윗의 왕통을 이어야 할 자이다. 그리고 다윗의 왕통이 끊어진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언약이 파괴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탄은 아달랴를 통해서 다윗의 왕통인 요아스를 죽여 하나님의 언약을 파괴시켜 버리려는 흉계를 꾸몄다. 이러한 사탄의 흉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도 계속되었다(마 2:13-23). 뿐만아니라 이와 유사하게 그리스도께서 피로 사신 언약의 자녀들에게도(고전 10:16, 11:25, 히 13:20) 사탄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언약적인 사랑에서 성도들을 끊어버리려고 한다. 그러나 택함 받은 백성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자가 아무도 없다(롬 8:13-39). (2) 종교 개혁을 위한 예비 교육: 요아스는 여호와의 전에서 양육되었기 때문에 제사장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아(12:2) 여호와 신앙을 수호하기 위해 필요한 각성을 쌓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12:4-6).
여호야다. 이 이름은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와 ‘알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 ‘야다’가 합성된 것으로서 ‘여호와께서 아신다’라는 뜻이다. 한편 본 절에서 여호야다가 주체가 되어 모든 거사(擧事)를 진행하고 지휘한 것으로 보아 그가 요아스의 왕위 복권 운동의 핵심이었던 것으로 짐작이 된다.
가리 사람의 백부장들과. 여기서 가리 사람은 그렛 사람과 동일한 민족이다(대상 18:17). 그런데 이들은 가나안의 서방에 있던 정착민들로(삼상 30:14) 아도니야의 반역 음모에서 솔로몬을 보호했던 사람들이다(왕상 1:37, 38). 또한 이들은 브니야의 관할하에서 다윗의 심복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삼하 8:18) 일명 블레셋 사람이라고 칭해지기도 했다(겔 25:16). 한편 그레이(Gray)와 몽고메리(Montgomery)의 견해에 따르면 가리 사람들은 왕실을 경호하는 용병들이라고 한다. 그래서 역대기 사가(史家)는 여호야다의 왕정 복고 운동이 순수한 유다의 힘으로 성공하였음을 기록하고 있으나(대하 23:3, 4) 본서 기자는 이방인의 세력이 혁명군으로 가담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한편 당시의 백부장이라는 지위는 상당한 세력을 가졌던 것으로 추측되며 백부장 위에는 천부장이 있었다(삼하 18:1).
호위병.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침’은‘달리다’라는 뜻의 동사 ‘라츠’에서 파생된 단어이다(삼하 15:1, 왕상 1:5). 이들이 주로하는 일은 왕상 14:27에 개괄적으로 나타난 바와 같이 왕을 경호하는 것이다. 한편 역대기 기자는 이 때에 모인 백부장이 다섯이라는 것과 그 이름들을 낱낱이 밝히고 있다(대하 23:1).
그들과 언약을 맺고. 역대기에는 본서보다 훨씬 더 자세하게 유다 고을에 있는 레위 사람과 이스라엘 족장들이 모두 함께 하나님의 전에서 언약을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다(대하 23:2, 3). 한편 예후가 이스라엘 왕 요람에 대한 자신의 혁명을 스스로 ‘반역’이라고 칭하고 있는 것(10:9)과 비교해 볼 때, 본 절에서 ‘언약’이란 말에 대해 ‘케쉐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베리트’라는 전형적인 언약의 용어를 쓰고 있는 데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1) 이것은 하나님과 다윗 간에 세운 언약에 대한 재 다짐이다(삼하 7:11-16). 실제로 7세된 요아스가 죽었더라면 다윗의 자손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은 폐기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무서운 아달랴의 학살 가운데서도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씨를 보전하셨기 때문에 여호야다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새로운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2) 하나님과의 언약을 세움에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들 편에서 이처럼 적극적으로 시도한 적은 없었다. 따라서 이것은 여호야다가 요아스의 정체를 밝히기 이전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 절망적인 상태에 있었는가 하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된다. 한편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에 맺은 언약에 대한 사탄의 파괴 공작은 아담에서부터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쉴 새 없이 계속되어 왔다. 그러나 언약에 성실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자는 아무도 없다(롬8:31-39).
안식일에 들어온 너희. 여기서 ‘들어오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보’로서 ‘들어가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이 말은 ‘호위 엄무를 수행하기 위해 들어간다’는 뜻이다. 그런데 당시 호위병들은 당번(當番)과 비번(非番)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래서 당번이 근무를 위해서 출근하는 것을 ‘들어온다’고 하고 비번이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것을 ‘나간다’(7절)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왕실 호위대는 각각 100명씩 다섯 부대로 나뉘어져 있었는데(대하 23:1) 이들은 백부장에 의해 지휘 되었다. 한편 안식일의 호위 임무를 위해 들어가는 부대는 이 중에서 세 부대이며 그 나머지 두 부대는 백성들의 치안을 돌보거나 성전을 지켰다(Rawilinson). 따라서 5, 6절은 안식일에 들어온 세 부대에 대한 여호야다의 지시 사항으로 왕궁, 수르 문, 그리고 호위대 뒷문에 각각 1개 부대씩 배치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여호야다가 이와 같이 왕궁을 수호하게 한 것은 아달랴를 사로잡으려는 의도에서라기 보다는 이제 곧 왕위에 오를 요아스를 위해 왕의 보좌가 있는 왕궁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Rawlinson, Bähr). 이처럼 여호야다가 당시의 이러한 관례를 이용하여 성전에 많은 병력이 배치되는 안식일을 거사일로 잡은 것은 그가 얼마나 치밀하게 계획했는지를 알게 한다.
호위대 뒤에 있는 문. 19절에서는 이곳을 ‘호위병의 문’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이 문은 왕궁 동편에 있어서 성전과 마주 대하기 때문에 새 왕의 대관식 때에 왕궁으로 통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곳은 매우 중요하게 지키는 장소였다(Bähr).
왕궁을 주의하여 지키고. 여기서 ‘지키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마싸흐’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주장하는 학자에 따라서 다양하다. BDB 사전에는 이 단어가 ‘밀어내다, 찢어내다’라는 뜻의 ‘나싸흐’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이와 동일한 견해를 보이고 있는 데이비슨(Davidson) 사전에도 이 단어의 뜻이 부사적으로 호위병들이 교대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추측한다. 그러나 루터의 주장 같이 이 단어가 ‘방어’를 의미한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Bähr). 그래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를 ‘지킨다’라는 뜻으로 번역한다(Ewald, Keil, Fürst).
왕의 출입할 때에 시위할지니라. 이것은 요아스 왕이 어디를 가든지 그를 둘러싸고 보호하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당시 요아스가 유년의 나이였기에 호기심이 많아 어디든지 가고 싶어했기 때문일 것이다(Rawilnson). 그러나 혹자는 이것이 요아스의 행동 전부에 대해 호위하라는 것이 아니라 왕이 성전에서 왕궁으로 들어가기까지를 호위하는 것이라고 한다(Bähr, Thenius).
제단과 성전 곁에 서고. 여기서 말하는 제단은 성전 마당 중앙에 놓여 있는 번제단을 가리킨다. 호위대는 제단과 성전 현관 바로 앞 부분인 뜰의 가장 윗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Pulpit Commentary).
율법책을 주고. 여기서 말하는 율법책은 모세 오경 전부가 아닌 십계명만을 가리킨다(Bähr). 그리고 ‘증거판’(출 16:34, 25:16, 21)이라고도 불리는 이 십계명은 왕이 왕좌에 오른 것을 상징하는 의미로 주어지기도 하였다(신 17:18, 19). 또한 이것은 왕의 독단적인 생각과 행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으로 백성들을 치리하여야 함을 뜻한다(G. von Rod).
기름을 부어. 히브리어 원문에는 여기에 기록된 동사의 주어가 복수 형태로 나타나 있는데 병행구절인 대하 23:11에 따르면 여호야다와 그 아들들이 함께 기름을 부었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 이유는 여호야다의 아들들도 제사장들이었기 때문이다(Keil & Delitzsch).
박수하며 왕의 만세를 부르니라. 열왕기서에서 왕의 등극에 대한 백성들의 기쁨을 표현한 곳은 솔로몬 시대 이후(왕상 1:39) 여기가 처음이다. 이것은 요아스로 인하여 다윗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이 새롭게 되었음을 백성들이 공통으로 나타낸 것이다. 한편 혹자는 백성들이 박수하며 만세를 부른 것은 요아스를 왕으로 승인하고 인정한 것이라고 한다(Wycliffe).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 아달랴는 바알을 숭배하는 우상 숭배자였기 때문에 안식일 뿐만 아니라 그 어떠한 날에도 성전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곳, 성전에서 요란한 함성이 들려오자 불안한 마음이 생겨 성전으로 달려갔던 것이다(Rawilnson).
왕이 규례대로 단 위에 섰고. 여기서 ‘단’으로 번역된 ‘암무드’는 ‘서다’(stand)라는 뜻의 ‘아마드’에서 파생된 단어로 집을 떠받치는 ‘기둥, 두 놋쇠 기둥’ 등을 뜻한다(삿 16:25, 26, 29, 출 27:10, 11, 17, 왕상 7:15). 한편 여기에 사용된 전치사 ‘알’이 ‘위’쪽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옆’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래서 루터는 이 부분을 ‘기둥 옆’이라고 번역했다. 그러나 학자들은 이것을 전통적으로 지정된 어떤 장소로서 왕을 위하여 특별히 만든 ‘사열대 위’ 혹은 ‘관람석’(suggestus)이라고 생각한다(Keil, Bähr, Rawilnson). 그에 대한 실증적인 예로 대하 6:13을 보면 솔로몬이 놋으로 단을 만들어 그 위에 섰다고 한다. 그리고 본 절의 ‘규례대로’라는 말은 이와 같은 해석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왕이 당시의 규례대로, 즉 왕이 성전을 방문 하였을 때 취하는 습관이나 규범대로 그렇게 행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아스 왕은 성전 제단 뜰 한가운데 있는 높은 단 위에 서서 아달랴가 성전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지켜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관들. 4, 9, 10절에 나타난 호위대의 백부장들, 또는 대장들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모여든 그 외의 두령들을 포함해서 지칭하는 말이다.
나팔수. 이것은 ‘노래부르는 자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샤림’과는 달리 ‘하사림’의 번역어이다. 이 말은 불가타(Vulgate)역에는 ‘노래 부르는 자들’이라는 뜻으로 번역되어 있으나 본 절에서는 분명히 나팔을 부는 것을 주 임무로 하는 관리들을 가리킨다(9:13, 민 10:2, 삼하 15:10). 즉 이들은 레위인들이나 제사장들로서 양각 나팔을 불었던 악사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Bähr).
옷을 찢으며. 이는 요람과 같이 큰 슬픔을 나타내기 위해 취한 행동(6:30)이 아니라 분노와 공포를 느꼈기 때문에 옷을 찢은 것이다.
반역이로다 하매. 여기서 사용된 ‘반역’(히, 케쉐르)이라는 단어는 예후가 사용했던 것으로(10:9) 여호야다가 사용한 ‘언약’(히, 베리트)이라는 말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그리고 아달랴의 이러한 외침은 분명한 목적이나 의도가 없이 본능적으로 내뱉은 절규였다(Puipit Commentary). 한편 혹자는 그녀의 이러한 외침을 살펴볼 때 그녀의 호위대가 곁에 있었음을 암시해 준다고 주장하나(Wycliffe) 이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
바알의 신당. 유다에도 이스라엘과 같이 바알 신전이 있었다는 기록은 아무데도 없다. 그러나 요세푸스에 의하면 이 바알 신전은 여호람과 아달랴에 의해 세워졌다고 한다. 만약 그렇다면 여호람의 악행을 낱낱이 기록하고 있는 역대기서에서(대하 21:1-20) 그러한 사실을 언급하고 있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Rawilnson). 한편 혹자는 이 바알 신전이 모리아 산에 있었다고 주장하나(Bähr), 그 정확한 위치를 확정지을 수 있는 분명한 단서는 없다. 그리고 당시 바알의 신전이 여호와의 성전 안에 있었다고 하는 견해(Thenius)는 대하 24:7이나 본 절을 볼 때 가능하지 않다(Keil & Delitzsch). 한편 본 절에서 ‘깨뜨리고’란 말은 히브리어 ‘쇠바르’를 역한 것인데 그 원뜻은 ‘산산히 부서지다, 파열하다’란 의미이다. 이는 형체가 없어질 정도로 완전히 으스러뜨림을 가리키는 것이다(레 26:13, 나 1:13).
바알의 제사장 맛단. ‘맛단’은 페니키아(두로와 시돈)식 이름으로 그 뜻은 ‘선물’이라는 의미로 추측된다. 이에 대한 완전한 이름은 ‘맛단 바알’, 즉 ‘바알의 선물’이란 뜻인데 바알의 제사장에게 아주 걸맞는 이름이다. 한편 이것은 페니키아 비문에 자주 등장하는 이름이며 히브리어로 유다의 마지막 왕인 ‘맛다니야’(24:17)와 동일한 어근에서 파생된 이름이다.
관리들을 세워 여호와의 성전을 수직하게 하고. 여호야다가 성전에 문지기를 세운 것은 (1) 율법대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는가를 감독하고(Keil & Delitzsch), (2) 부정한 자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서였다(대하 23:18, 19, Thenius, Ewald). 이것은 아달랴의 통치기간 동안 정상적인 성전 예배를 드리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자칫 율법을 범하기 쉬웠기 때문인 듯하다(Rawilnson). 그리고 이 때가 왕의 대관식이 진행되는 중이었으므로(19절) 바알 숭배자들의 공격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한 목적도 함께 있었음을 배제할 수 없다(Bähr).
왕궁에서 칼로 죽였더라. 외형상 본 절의 의미가 16절과 배치되는 것처럼 보이나 둘 다 왕궁 근처에서 무리가 아달랴를 죽였음을 뜻한다. 열왕기서 기자가 다시 한 번 아달랴가 왕궁 근처에서 죽임당했음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성중의 평온함과 대조시켜서 지금까지 유다를 혼란케 한 장본인이 바로 아달랴임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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