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아들들을 … 사사로 삼으니. 이것은 사사직의 안전한 이양이나 계승을 의미하지 않는다. 단지 사무엘은 자신을 돕도록 하기 위하여 두 아들들을 보조 사사로 임명한 듯하다(Keil). 사실 이스라엘의 역사상 사사직이 세습 계승된 일은 전혀 없었다. 물론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이 왕(사사)으로 자처하기는 하였으나(삿 9:16), 그러나 그것은 사사직의 합법적 승계는 절대로 아니었다.
차자의 이름은 아비야. ‘아비야’는 ‘여호와는 아버지’라는 뜻이다. 결국이 두 아들의 이름은 사무엘의 믿음과 영감이 깊이 반영된 신앙적인 이름임을 알 수 있다(Smith, Fay).
브엘세바에서 사사가 되니라. ‘브엘세바’는 ‘일곱의 우물’ 또는 ‘맹세의 우물’이란 뜻으로, 족장 시대로부터 유서 깊은 곳이었다(창 21:31). 또한 고대로부터 이곳은 근동과 애굽의 교역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요충지로서, 이스라엘의 최남단 곧 라마로부터 약 80 km나 떨어진 먼 곳이었다. 바로 이러한 곳에 사무엘은 두 아들을 보조 사사로 삼아 다스리게 하였는데, 그 이유는 (1) 사무엘 자신이 늙었기 때문에 이곳까지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2) 이곳에 사사를 둠으로써 인접국인 블레셋의 간섭을 배제시키기 위함이었다. 아무튼 사무엘의 통치 중심지인 라마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곳 가나안 남부 지역까지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사무엘 외에 별도의 보조 사사가 반드시 필요하였다. 그런데 사무엘이 한 지역에 왜 두 명의 사사를 임명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따라서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사무엘의 두 아들 중 한 아들은 가나안 북단의 ‘단’에 배치되었다고 주장하나(Josephus, Antiquities,VI, 3, 2), 확실히 알 수는 없다.
이익을 따라서 뇌물을 취하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이익의 추구(출 18:21), 뇌물수수(출 23:8, 사 1:23, 5:23, 암 5:12), 판결의 왜곡(출 23:2, 6, 8, 신16:19, 24:17, 사 5:23) 등은 특별히 성경이 지도자된 사람들에게 금지시킨 것들이다. 따라서 사무엘의 아들들의 이 같은 행위들은 그들이 사사의 본분을 망각한, 대단히 타락한 지도자들이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출 23:6-8, 신 16:19 주석 참조.
이스라엘 모든 장로. 이들은 이스라엘 각 지파들의 대표자들이다(15:30, 삼하 5:3, 왕상 8:3).
모든 나라와 같이 …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여기의 ‘모든 나라’는 특히 이스라엘과 혈통적 연관성이 있었던 모압, 암몬, 에돔 등 주변 국가들을 가리킨다. 물론 애굽에도 왕이 있었으나, 당시 그 나라는 초강대국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관심의 대상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과 비슷한 여건을 가졌으면서도 이미 왕을 갖고 강력한 왕정 제도를 실시하고 있던 모압, 암몬, 에돔 등을 자신들의 모범 사례로 삼으려 했을 것이다. 즉 이스라엘은 이때 지파 차원의 부족 동맹 체제에서 벗어나서 왕(王)을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왕정 국가 체제를 형성함으로써, 주변의 이웃 나라들과 동등한 차원의 군주국이 되길 원했다. 그런데 이처럼 왕을 요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원 자체가 악하다고는 볼 수 없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왕정 제도는 이미 모세에 의해 예언된 바 있었고(신 17:14), 따라서 때가 이르면 이스라엘도 필연적으로 왕정 제도로 발전할 수 밖에 없을 운명이었다(Keil, Fay, Calvin). 그러나 그 모든 일의 진행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기쁘신 뜻과 방법대로 행해져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러한 하나님의 경륜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인본주의적 욕구를 따라, 자신들이 원하는 방법대로 왕을 세우고자 했다. 바로 이 점이 지금 사무엘에게 왕을 요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점이었다.
여호와께 기도하매. 이것은 사무엘이 자신의 판단에 혹시 인간적인 감정이 개입되지나 않았을까 염려하여, 하나님의 뜻을 겸손히 물어보는 진지한 태도이다.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장로들이 공식적으로 왕을 요구했을 때, 사무엘은 일면 그들이 자신을 싫어하여 자신의 사사직을 사임하게 하려는 것으로도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 여호와의 말씀은 백성들의 요구가 그러한 단순한 동기 이상의 것임을 분명히 지적해 준다. 즉 백성들은 단순히 사무엘 이후 자신들을 다스릴 신정적 왕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열방의 뭇 왕과 똑같은 정치적 왕을 요구한 것이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 의해 예언된 바(신 17:14-20) 신정적 왕, 곧 여호와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율법을 보존 전수하고 우상 숭배 행위를 척결하며 여호와 신앙으로 단결시켜 국력을 튼튼하게 하는 일 등을 주임무로 하는 그러한 왕을 요구했더라면, 오히려 그것은 사무엘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백성들은 정치적이고 무력적인 절대 군주를 원했기 때문에, 결국 그것은 여호와의 통치를 거부하는 일로서 곧 여호와를 버린 행위와 같은 것이었다(Pulpit Commentary).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성경은 도처에서 선민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왕권을 강조하고 있다(출 15:18, 신 33:5, 삿 8:22-2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자신들을 강력하게 다스릴 또 다른 왕을 요구한 것은 곧 하나님의 왕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동일한 행위였다(10:19, 12:12). 나아가 이 행위는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인도해 주신 여호와를 저버리고, 대신 절대적으로 의뢰할 또 다른 그 무엇을 섬기고자 하는 우상 숭배 행위와 다름없었다(Keil).
엄히 경계하고 … 가르치라. 여기서 ‘경계하고’(히, 타이드)는 ‘증거하다, 증인이 되다’란 의미이다. 또한 ‘가르치다’(히, 히가데타)는 ‘선포하다, 고하다’의 의미이다(시 97: 6). 본 절은 이같은 유사한 동사를 반복 사용함으로써, 이스라엘이 스스로 택한 왕으로 인하여 후에 고통을 당하더라도 그것은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롬 3:25, 26).
왕의 제도. 여기서 ‘제도’로 번역된 ‘미쉬파트’는 ‘다스리다, 심판하다’ 등의 뜻을 지닌 동사 ‘샤파트’에서 파생한 말로 곧 ‘심판, 특권, 권리’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여기 ‘왕의 제도’란 말을 직역하면 ‘왕의 권력, 왕의 특권’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문맥을 따라 이 말을 풀어 해석하면, 곧 (1)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택한 왕이 취하게될 부정적인 행동(Hertzberg), (2) 그같은 왕이 행사하게 될 부정적인 권력(Caird) 등을 뜻한다. 따라서 여기의 이 문구는 본서 10:25에 언급된 긍정적 의미의 ‘나라의 제도’ 와는 전적으로 구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10:25에 언급된 ‘나라의 제도’는 왕이 지켜야 할 율법적 의무를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병거와 말을 어거하게 하리니. 이것은 백성들이 왕에 의하여 징발되어 왕의 병거 앞에서 왕을 호위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을 가리킨다. 특히 여기의 ‘병거’(히, 메르카바)가 단수라는 점에서 전쟁용이나 군대용이 아닌, 왕이 위엄을 과시하기 위하여 타고 다니는 왕의 개인 수레임이 분명하다(왕하 9:21). 결국 ‘왕의 병거를 어거하게 한다’는 말은 왕에 의하여 백성들이 자유를 제약당하며, 오히려 백성 자신들이 세운 왕의 수종이나 드는 비참한 처지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일종의 경고이다. 따라서 ‘병거와 말을 어거하게 하리니’란 말을 직역하면 ‘그(왕) 자신을 위하여 (그들을) 그의 병거 가운데로 (보내) 말타는 사람으로 삼으리니’란 의미이다. 또한 영역본 NIV는 이를 의역하여 ‘왕이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병거와 말을 돌보게 할 것이다’란 뜻으로 번역했다. 그리고 공동번역은 “(왕이 그들을) 병거대나 기마대의 일을 시키고”라고 번역했다.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이 말은 곧 왕에 의해 차출된 백성들의 아들들은 왕의 수레 앞에서 왕의 신변 보호를 위해 경호할 것이라는 말이다. 아무튼 본 절의 의도는 이제 백성들이 세우고자 하는 왕은 백성들 위에서 군림하는 전제 군주가 될 것이라는 뜻이며, 따라서 왕 개인을 위해 백성들이 치러야 할 희생이 막중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여기의 ‘밭’은 왕 자신이 개인적으로 소유한 왕실의 농지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 말은 왕이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위하여 백성들의 노동력을 강제로 동원하리란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이같은 일은 백성들의 원성을 살 수 밖에 없었다(렘 22:13). 후일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단됐던 큰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이같은 강제적인 노동력 착취 때문이었다(왕상 5:13-16, 12:10-11). 한편, 여기서 ‘밭을 가는 일’과 ‘추수하는 일’은 곧 농사의 전 과정을 가리킨다.
자기 무기와 병거의 장비. 여기 ‘무기’는 주로 전투에 필요한 창, 칼, 활, 방패 등의 공격 및 방어용 무기들을 모두 가리킨다. 그리고 ‘병거’는 주로 왕들에 의해 자신들의 위엄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소유되었다(왕상 1:5). 그런데 이것은 처음에는 애굽에서 주로 수입되었으나(왕상 10:28), 솔로몬 시대에는 그것을 직접 만들었다(왕상 9:19). 그리고 여기 ‘병거의 장비’는 병거의 부속품들, 즉 ‘여섯 개의 살이 달린 바퀴’ 및 ‘바퀴 축’ 등을 가리킨다.
향료 만드는 자. 여기의 ‘향료’는 몸에 뿌리는 향수 및 몸에 바르는 향기 나는 연고를 모두 가리킨다. 이것들은 고대 중근동에서 주로 궁중의 호화로온 사치 생활을 위해 꼭 필요한 물품들로 간주되었다. 한편 이것의 원료는 침향, 창포, 계피 등으로서, 이 원료들에 대한 무역은 그 당시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졌다(창 37:25, 왕상 10:10, 겔 27:22).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로 삼을 것이며. 이것은 왕의 궁전에서 생활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식사 준비를 위하여 백성 중 특히 젊은 여자들이 징집될 것임을 말한다. 그런데 후일 솔로몬 왕 당시 궁전에서 하루에 소용되었던 식량이 가는 밀가루 삼십 석, 굵은 밀가루 육십 석, 소 삼십 마리, 양 일백 마리 등이었다는 점에서(왕상 4:22-23), 왕의 궁전으로 징집되어 자신들의 자유를 제한 받았을 여자들의 수효는 실로 엄청났을 것이며, 또한 그들의 고초도 대단했을 것이다.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이와 같은 하사는 고대 중근동의 국가들에서 널리 시행되었던 봉건 제도적 관습 중의 하나였다(Kline). 특히 이와 같은 일은 왕이 선하들에게 보다 절대적인 충성을 요구하기 위하여 시행되었다 (22:7).
자기의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왕이 자신에게 봉사한 대가로 신하들에게 봉록을 주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여기서 ‘관리’(히, 사리스)는 본래 앗수르에서 넘어온 단어로서, 문자적으로는 ‘우두머리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런데 성경은 이 단어를 많은 경우 ‘환관’이나 ‘내시’의 의미로(왕상 22:9, 왕하 9:32, 20:18, 24:12, 사 39:7, 56:3-4, 단 1:3, 7), 때로는 다만 ‘높은 지위의 관리’란 의미로(창 39:1, 40:2) 사용하였다. 따라서 본 단어는 대체로 문맥에 따라 그 의미가 결정되는데, 여기서는 단순히 ‘높은 관리’란 뜻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소년. 여기서 ‘소년’(히, 바하르)은 (1) 칠십인역(LXX)이 ‘황소’(헬, 타 부콜리아)로 번역하였을 뿐만 아니라 (2) 문맥상 ‘소년’보다는 ‘황소’가 자연스럽다는 점에서, 필사자가 ‘황소’라는 의미의 ‘바카르’를 ‘바하르’로 잘못 옮긴 듯하다(Keil, Fay, Smith). 이같은 추측은 본 절의 ‘노비’, ‘황소’, ‘나귀’ 등이 모두 토목 건축 사업에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라는 사실에서 보다 확실해진다.
너희가 그의 종이 될 것이라. 이것은 11-17절에서 길게 언급한 왕의 제도(권력)의 결론이다. 즉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위와 같은 절대 군주 밑에서 사는 생활은 곧 노예의 생활과 다름없음을 말해주는 두려운 경고이다(9, 11절).
말 듣기를 거절하여. 이와 같은 표현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계명을 범했던 불순종적인 일과 관련하여 성경에 자주 나타난다(왕하 17:17, 렘 11:10, 13:10).
우리의 왕이 … 싸움을 싸워야.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른 나라들과 같은 왕’을 요구하게 된 결정적 이유를 암시해 준다. 즉 그들은 타민족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주변 열방처럼 조직력을 갖춘 군대와, 또한 그 군대를 일사불란하게 통솔할 강력한 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와 같은 사실은 그들이 훈련이 잘 된 이방 군대의 강력한 힘과 짜임새 있는 조직, 그리고 그러한 조직을 지휘하는 위풍당당한 왕의 모습에 매료되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따라서 본 절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지금까지 싸워 오셨고, 또한 앞으로도 계속 대신하여 싸워주실 것이라는 중요한 사실을(출 14:14, 신 20:1-4, 수 10:14, 42, 23:3, 10, 삿 4 :14, 삼하 5:24) 믿지 않았던 이스라엘의 죄악성을 분명히 보여 준다.
너희는 각기 성읍으로 돌아가라. 마침내 사무엘은 이스라엘 장로들을 각 지파 각 성읍으로 돌려 보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1) 왕을 위한 백성들의 요구가 완전히 수락되었으니, 이제 이 소식을 각 성읍에 알리고 재소집의 시기를 기다리라는 의미가 있다(Keil). (2) 왕을 세우기 위한 제반 준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F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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