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 모세의 장인. 여기서 ‘장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호텐’, 그리고 헬라어 ‘감브로스’는 모두 결혼 관계로 인해 생기는 장인이나 처남에 다같이 적용되는 포괄적인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혹자는 여기 ‘장인’을 처남으로 이해하기도 하나(Pulpit Commentary), 여기서는 장인으로 봄이 타당하다(L. Wood).
미디안 제사장인 이드로. 미디안 족속은 아브라함의 후처인 그두라의 아들 미디안의 후손이다(창 25:1, 2). 이들은 주로 아라비아 북서쪽의 아카바 만 동쪽 지역을 본토로 삼아 거주하던 유목민들로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이방신을 섬겼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이들로부터 갈라져 나와 시내 반도에 살았던 무리들의 제사장이었는데, 그도 모세를 만나기 전까지는 여호와 하나님을 몰랐음이 분명하다(2:18). 한편 성경에서 이드로는 ‘르우엘’(2:18)로도 불리웠고 삿 4:11에는 모세의 장인이 ‘호밥’(삿 4:11)으로도 나오는데 이에 대하여서는 출 2:18 및 민 10:29을 참조하라.
모든 일을 들으니라. 사실 모세가 애굽으로 돌아갈 때만 해도(4:8) 이드로는 그 정확한 사유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모세를 지도자로 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였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그 사유를 명확히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다.
18:2 모세가 돌려 보냈던. 모세가 언제, 어디서, 그의 처와 두 아들을 되돌려 보내었는지는 성경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지 않다. 단지 추측컨대, 하나님께로부터 소명을 받고 신적 권위를 위임받은 모세가 그의 처와 더불어 두 아들을 데리고 애굽으로 귀환하던 중 아들의 할례 문제로 인하여 하나님에 의해 죽을 뻔한 위험을 당하자(4:24-26), 다시 그들을 미디안 땅의 이드로에게 보낸 것 같다(L. Wood). 즉 자신의 생명에 대한 위험을 당한 모세는 그의 처와 아들들의 생명마저 염려한 나머지 그들을 안전한 처가로 되돌려 보내었던 것이다.
십보라. 2:21의 주석을 보라.
18:3 하나의 이름은 게르솜이라. 모세의 두 아들은 이름의 뜻 그대로 과거의 삶에 대한 모세의 진솔한 신앙 고백이었다. 모세는 두 아들의 이름을 통하여 과거 바로의 추격을 피해 도망치던 비참했던 시절의 자신의 모습을 뒤돌아 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럼에도 자신을 끝까지 도와 주셨던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기억할 수 있었다(2:11-25).
게르솜. 2:22의 주석을 보라.
18:4 엘리에셀. ‘나의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이란 뜻으로, 애굽 귀환시 할례를 받은 모세의 둘째 아들이다(4:25). 후일 솔로몬 시대에 이르러 그의 후손은 크게 번창했다(대상 23:15-17).
나를 도우사. 여기서 ‘돕다’에 해당하는 ‘아자르’는 ‘둘러싸다’, ‘방어하다’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전후 좌우로 감싸듯 빈틈없이 보호하며 도우시는 것을 가리킨다.
18:5 하나님의 산에 진 친 곳이라. 본래 ‘하나님의 산’이란 일명 시내 산으로 불리우는 호렙 산을 가리킨다(17:6). 그런데 이를 특별히 ‘하나님의 산’이라 칭하는 까닭은 훗날 모세가 이 산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았기 때문이다(3:1). 그러나 여기서 의미하는 ‘하나님의 산’이란 호렙 산 자체를 뜻하지 아니하고, 호렙 산에 인접해 있는 르비딤을 가리키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앞서 이곳에 장막을 쳤었다(17:1).
18:6 그가 모세에게 말을 전하되. 이드로는 모세가 백성들과 함께 진을 치고 있는 곳에 가까이 이르러서는 먼저 모세에게 사람을 보내어 자기가 왔음을 전하였다. 이드로의 이러한 처사는 아마도 자신의 급작스런 방문으로 인해 모세가 경황 망조(驚惶罔措)하거나 혹은 백성의 지도자로서 모세가 급한 공무를 처리하지 못하는 등과 같은 일을 방지하기 위한 세심한 배려였을 것이다(Lange).
18:7 모세가 … 절하고. 200만 이스라엘의 지도자라는 자신의 지위에 아랑곳 없이 모세는 장인 이드로를 맞이하는데 있어 최대의 친절과 경의 및 기쁨을 표했다. 대개 사람은 높은 지위에 오르면 교만하여지기 십상이고 그리하여 연장자에 대한 인간 본연의 공경심마저 잃어버리기 쉽다. 그러나 이처럼 겸손을 잃지 않은 모세의 자세에서 우리는 그의 올바른 도덕성과 윤리관을 엿볼 수 있다.
그에게 입 맞추고. 반가움을 표시하는 인사로서 고대 근동 지방에 흔히 있었던 풍속이었다(창 29:13, 33:4, 삼하 19:39).
문안하고. [히, 샤알 샬롬] ‘샤알’은 ‘묻다’, ‘문의하다’, ‘간구하다’, ‘빌다’는 뜻이다. 그리고 ‘샬롬’은 ‘평화’, ‘행복’을 뜻한다. 따라서 이 말은 ‘평안을 빌다’라는 뜻이다.
18:8 여호와께서 그들을 구원하신 일. 요약하면 애굽에 임한 여호와의 10대 재앙(7:14-12:30), 홍해 도하 사건(14장). 쓴 물을 달게 만든 마라 사건(15:22-26). 광야의 음식 만나와 메추라기 공급 사건(16장), 반석을 쳐서 물이 나게 한 르비딤 사건(17:1-7), 아말렉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사건(17:8-16) 등이다. 실로 당신의 백성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생생한 기적의 연속이었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 삶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기적들로 섭리하고 계심을 성도는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한편 70인역은 ‘여호와께서’란 말 다음에 ‘바로의 손과 애굽 사람들의 손으로 부터’란 말을 첨가하였다.
다 그 장인에게 말하매. 모세는 그의 장인 이드로를 만난 후 가정의 사사로운 일이나 개인 신변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밝히 간증하였다. 모세의 이런 자세는 그가 지닌 신앙 인격의 한 면을 보여 주는데, 즉 그는 무슨 일이든지 자신의 명예나 영광을 나타내기 보다는 먼저 하나님을 높이고 그에게 찬양을 돌렸던 것이다. 구약 시대나 신약 시대를 막론하고 이처럼 하나님의 역사를 증언하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자, 그의 백성들이 힘써 실천해야 할 사명이기도 하다.
18:9 이드로가 … 기뻐하여. 모세의 간증을 들은 이드로가 이방 신앙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귀의하였음을 시사한다. 그는 이방 제사장으로서 범신(凡神)을 섬기고 있었을 때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신 역사를 듣고 단순한 지적 호기심의 대상으로 여겼을 것이다(1절).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구원 행동에 대한 모세의 생생한 간증을 듣고 그의 가슴은 뜨거운 기쁨으로 타올랐다. 즉 하나님을 지식적으로만 아는 단계에서 벗어나, 이제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벅찬 기쁨(감정)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카일(Keil)은 이드로를 가리켜 ‘이방인 중 살아계신 하나님을 찾은 첫 개종자’라 하였다.
18:10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찬송하다’에 해당하는 ‘바라크’는 ‘무릎꿇다’, ‘송축하다’는 뜻으로 하나님께 겸손한 마음으로 찬양과 영광돌리는 것을 가리킨다. 이처럼 이방 제사장이었던 이드로가 처음으로 이스라엘의 언약 하나님의 ‘여호와’를 부르며 찬양한 것은 이제 그가 여호와 하나님만이 이 세상에서 유일하신 지존자이심을 깨달았다는 증거이다. 한편 이드로의 이와 같은 행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바다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받은 후, 하나님을 찬양한 것과 동일한 성격의 것이기도 하다(15:1-21).
너희를 … 건지셨도다. 이스라엘 하나님께 대한 이드로의 믿음을 고백하는 구절이다. 이드로는 자신이 직접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체험하지는 못했지만, 그에 대한 모세의 생생한 간증을 듣고 과거에 자신이 소문으로만 들었던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이제는 확신에 찬 입술로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그의 신앙과 믿음의 확신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한편, 이드로가 이토록 쉽게 여호와 신앙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과거 모세와 지냈던 40년 동안 부지 불식간에 모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L. Wood). 따라서 일부 자유주의 학자들의 견해처럼(H. H. Rowley, The Redisovery of the Old Testament), 모세가 40년 동안 이드로에게서 여호와 신앙을 가르침 받았다는 주장은 터무니 없다.
18:11 이제 내가 알았도다. ‘이제’란 말의 히브리어는 ‘아타’로서 ‘지금에야’, ‘방금에야’란 뜻이다. 따라서 이것은 현재를 시점으로해서 과거와 미래의 인생관이 전적으로 변화되었음을 암시한다. 또한 ‘내가 알았도다’란 말은 히브리어의 ‘야다에티’로서 ‘내가 깨달았다’ 또는 ‘내가 알아차렸다’라는 의미의 현재형 동사이다. 이것은 과거에는 몰랐던 사실을 이제 비로소 분명히 깨닫고 있음을 보여 주는 말이다.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시므로. 이드로는 여기서 다른 모든 이방신, 즉 자기가 섬기던 신을 포함하여 애굽의 모든 여러 신들이나 다른 부족들의 신들보다 여호와의 능력이 더 위대함을 증언하였다. 그런데 이 표현을 다른 신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즉 다신교(多神敎) 사상의 표현이라고 볼 수는 없다. 단지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의 위대함을 다른 이방인들이 섬기는 신들과 비교하여 수사학적으로 강조한 것 뿐이다. 즉 이것은 홍해 바다에서 구원받은 후 이스라엘이 올렸던 찬양이나(15:11), 시편의 노래 가운데 자주 나타나는(시 136:2, 3) 표현과 같은 것이다.
18:12 번제물과 희생제물. 문자적으로는 ‘번제용 제물과 그 외 다른 제사들을 위해 드릴 여러 가지 희생제물들’이란 뜻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드로가 번제 뿐만이 아니라, 다른 감사 제사도 함께 드렸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여기서 ‘번제’는 제물을 온전히 태워서 드리는 제사로서, 드리는 자의 전적 헌신을 상징한다. 따라서 번제는 이스라엘 초기 역사 때부터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예표하는 희생제사로 간주되어 왔다(10:25, 창 4:3, 4, 8:20, 22:2-13).
하나님 앞에서 떡을 먹으니라. 모세와 아론 및 장로들이 이드로의 제사에 참석하고, 그 음식으로 그와 함께 친교의 공동 식사를 나눴다는 것은 이드로가 드린 제사의 합법성, 즉 그가 드린 제사가 하나님께 합당한 것이었음을 인정하는 행위였다. 여기서 우리는 이드로가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그가 새로운 여호와 신앙을 가짐으로써 이제 하나님과 교제함에 있어서 아무런 결격 사유가 없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중대한 예표론적 의미를 지니는데, 곧 오늘날 유대인과 이방인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생명의 자리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요 6:35).
18:13 모세가 백성을 재판하느라고 앉아 있고. 당시 모세는 분화(分化)되지 못한 행정 조직 때문에 종교적인 일은 물론 사사로운 민사 소송까지 처리해야만 하는 격무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달리고 있었다.
18:14 어찌하여 네가 홀로 앉아 있고. 당시 이스라엘의 인구는 여자와 어린아이를 제외하고도 장정만 60만 가량이었다(12:37). 따라서 이러한 거대 집단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사소한 것들을 차치하고라도 무수히 많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분화된 행정 조직이 필요하였는데 미처 모세는 이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드로는 모세에게 조언해 줄 필요성을 느꼈을 터인데, 이에 그는 먼저 모세의 비능률적이고도 불합리한 행정 처리 방식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18:15 하나님께 물으려고 내게로 옴이라. 여기서 ‘묻다’에 해당하는 ‘다라쉬’는 원래 ‘따르다’, ‘밟다’, ‘찾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고 묻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하여 백성들이 모세에게로 나아왔다는 것은 곧 모세의 판결이 신탁재판이었음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을 당신의 뜻대로 통치하시기 위하여 모세를 대리자로 세우셨으며 그에게 지혜와 성신의 감동을 덧입히셨던 것이다(4:12). 이러한 역할은 모세 사후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이 담당하였는데,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계시를 받아 이를 백성들에게 증언하는 일을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 신구약성경 66권에 총체화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데 더 이상 특별한 중재자가 필요하지 않다. 따라서 우리는 날마다 성경을 상고할 뿐 아니라(행 17:11)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전심 전력해야 할 것이다(살전 4:3-8).
18:16 일. ‘명령하다’, ‘선언하다’는 뜻의 ‘다바르’에서 온 말로 재판상 판결을 필요로 하는 사건이나 소송을 가리킨다.
율례와 법도를 알게 하나이다. 당시는 율법이 주어지기전 상황이었으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른 모세의 판례 원칙이 곧 백성들이 믿고 따라야 할 유일한 하나님의 불문율(不文律)이 되었다. 그러나 시내 산에서 성문법(成文法)이 주어진 이후에는 지도자들이 이 법을 각 경우에 잘 적용하기만 하면 되었다(20절).
18:17 네가 하는 것이 옳지 못하도다. 이드로가 모세를 향해 ‘옳지 못하다’고 말한 것은 모세의 행위가 윤리적으로 악하다는 것이 아니라, 비능률적이라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이는 ‘옳지 못하다’에 해당하는 ‘로 토브’가 ‘좋지 못하다’는 의미란 점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Gipsen).
18:18 기력이 쇠하리니. 여기에서 ‘기력이 쇠하다’란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벨’은 ‘시들다’, ‘떨어지다’, ‘실신하다’는 뜻이다. 모세가 비록 하나님의 일에 충성된 자이며(히 3:5), 그의 성품이 세상의 모든 사람보다 더 온유하다(민12:3) 할지라도 그가 하나님 보시기에 지혜롭지 못한 방법으로 일을 처리한다면 오래가지 못해 육체적인 연약함으로 인하여 기진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일을 행할 때에 인간적인 차원의 모든 지혜와 경험을 선하게 활용하여야 한다. 인간 능력의 한계점에 다다를 만큼 이모저모로 최선을 다했을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은 은혜의 빛을 발하여 우리를 위하여 역사하실 것이다(마 10:16, 딤전 4:15). 그리스도께서도 지상 사역시 12 제자 선정 훈련, 2인 1조의 70 전도인의 파송(눅 10:1) 등 조직적으로 사역하셨음을 볼 수 있다.
네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반드시 공동 사역의 원리(롬 12:4-8)가 적용되어야 함을 시사하는 말이다. 이 원리는 신적 기원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도 창조 사역과 구속 사역을 삼위(三位)의 아름답고도, 완벽한 협력으로 공동 사역하셨기 때문이다(창 1:26). 동시에 이 원리는 믿는 자의 공동체 원리(엡 4:4)및 지체(肢體) 원리(고전 12:27-30)와 맥을 같이 한다.
18:19 하나님 앞에서 그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 서서 중재 사역을 하는 모세의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사건들을 하나님께 가져오며. 백성들이 가져오는 문제나 사건들의 옳고 그름을 판별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로 아뢴다는 의미이다. 이드로는 모세가 중재자로서 백성을 위하여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그들의 문제를 스스로 판단하거나, 그들에게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먼저 백성들의 모든 문제들을 하나님 앞에 아뢰는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18:20 율례와 법도. 율례와 법도의 차이는 분명치 않지만, 보통 ‘율례’(호크)는 종교법, ‘법도’(토라)는 시민 생활에 관계된 일반법을 뜻한다. 그러나 대개는 ‘하나님의 온 율법’을 강조하는 중언법적(重言法的)의미로 쓰인다(신 5:1).
18:21 능력 있는 사람들.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안쉐 하일’은 ‘힘이 있는 자들’ 또는 ‘능력이 있는 자들’을 말한다. 그런데 신앙의 지도자는 그 능력의 원천이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기 때문에, 이드로는 그 능력의 조건을 다음 세 가지로 제시한다. 즉 (1)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2) 거짓됨이 없는 진실한 자 (3) 재물에 청렴 결백한 자이다.
진실하며. [히, 아쉐 에메트] ‘진실한 사람들’ 또는 ‘진리의 사람들’을 뜻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꾼들을 세우실 때 무엇보다 당신의 진리의 말씀을 준행하며 따르기 원하는 진실된 자들만을 원하신다. 왜냐하면 이런 자들만이 환경과 형편을 초월한 채 하나님을 향한 굳센 믿음 위에서 백성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잘 인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 ‘불의한 이익’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베차’는 ‘약탈하다’를 뜻하는 ‘바차’에서 유래하였다. 따라서 그 의미는 ‘불의를 행함으로 얻은 이익’을 말한다. 그런데 하나님에 의해 세움을 받는 지도자는 이러한 개인적인 탐욕을 버리고 물질에 대하여 청렴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돈을 사랑함은 일만악(一萬惡)의 뿌리가 되며(딤전 6:10),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기 때문이다(약 1:15).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이러한 행정 조직의 특색은 언제라도 군사 체제로 전환시킬 수 있는 준(準)군사 체제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즉 이 부장 제도는 오늘날의 분대, 소대, 중대, 대대라는 군사 체제를 쉽게 연상시켜 준다. 아마 모세가 이스라엘의 행정 조직을 이처럼 정비한 까닭은 이스라엘이 현재 가나안 정복 전쟁을 앞두고 민족 이동 중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신 1:13, 15).
18:22 때를 따라 … 재판하게 하라. ‘때를 따라’란 ‘시종 어느 때나’. ‘항상’을 뜻한다. 과거에 모세는 그 때 그 때 재판 날을 정하여 홀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백성들의 문제를 판결하였다. 따라서 약 200만의 백성들이 임시 재판 날에만 와야 했기 때문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줄을 서서 기다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각 지파 안에 세워진 지도자들에게 언제라도 재판을 받을 수가 있게 되었다. 여하튼 이번의 행정 조직 확립으로 인하여 사법(司法)에 관계되는 일 뿐만 아니라 보다 효율적인 전투 수행, 보고 상달, 지시 사항 하달 등이 용이하게 되었다.
18:23 하나님께서도 … 허락하시면. 하나님 앞에 겸손한 이드로의 신앙 모습을 잘 보여 준다. 즉 그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세우는 인간의 계획이나 지혜, 방법, 수단 등이 비록 아무리 훌륭하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이를 허락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역에 백해무익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서, 먼저 모세에게 하나님으로부터 부장 제도에 대한 재가를 얻도록 권면한 것이다.
18:24 장인의 말을 듣고. 신명기의 기록에 근거하면(신 1:13-15), 이때 모세는 지도자들을 자신의 지혜에 따라 선택한 것이 아니라, 각 지파들에게 근본 취지를 알리어 동의를 얻은 후(신 1:13, 14),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지파에서 지혜와 지식이 있는 유명한 자들을 스스로 선택하게 하였다(신 1:13, 15). 이러한 사실은 당시 모세가 얼마나 신중한 인물이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실례가 된다.
18:25 백성의 우두머리. 이드로의 충고를 받아들여 세워진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들은 단순한 재판관이 아니라, 그들에게 맡겨진 조직의 ‘우두머리’로서 행군시에는 그들의 앞장에 서서 행군하며, 전쟁시에는 ‘군대 장관’이 되었다(민 31:14).
18:26 작은 일은 스스로 재판하더라. 당시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들은 모세처럼 하나님과 교제 속에서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충분히, 명확하게 감지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그들은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은 후 그것에 따라 지혜롭게 백성들의 문제를 판별하기 전까지는 상식선에서 다룰 수 있는 작은 문제들만을 처리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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