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 '중요한것'의 헬라어 '케팔라이온'(* )은 '머리'를 뜻하는 헬라어 '케팔레'(* )에서 유래한 단어로 '요점', '핵심'을 의미한다(Hewitt,Robertson). 저자는 먼저 그리스도에 관한 핵심적인 사실을 설명해 나아가기 위해서'케팔라이온'을 사용하고 있다. 한편 '이러한'이 가리키는 것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앞에서 지금까지 한 언급을 가리킨다. (2) 다음에 이어지는 말, 곧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그리스도를 설명하는 언급을 가리킨다. 이 두 가지중 본절에서는 후자가 타당하다(Cockerill, Morris).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 저자는 7:28에서 그리스도의 제사장직과 하나님의 아들됨의 개념을 함께 묶어 설명하였으나 본절에서는 그의 제사장직과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을 연결하였다. 본문은 시 110:1의 '너는 내 우편에앉으라 하셨도다'에 대한 인용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70인역(LXX) 슥 6:13의'그리고 그 제사장이 자기 위에 있으리라'를 의식하고 반영하였을 것이다(Synge). 본문에서 '하늘에서 위엄의'는 하나님을 존대히 여기는 표현 방법으로 '하늘에서 위엄의보좌 우편에 앉아계신'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서 대제사장직을 수행하는 위대한 분이심을 시사한다(Morris, Lane).
=====8:2
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 이 장막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니라 - '성소와 참 장막'은 문자적으로 '참 장막인 성소'(the sanctuary, the truetabernacle, NIV)를 의미하는 것으로 '성소'와 '참 장막'은 그리스도께서 중보 사역을행하시는 하늘 처소를 가리킨다(롬 8:34, Heitt). '성소'에 해당하는 헬라어 '톤 하기온'(* )은 70인역에서 종종 성소의 내부와 외부를 구별하지 않고(9:2,3)사용된 일반적인 용어이다(Moffatt, Michel, Hughes). 또한 '장막'의 헬라어'스케네스'(* )는 문자적으로 '천막'을 의미한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광야 생활을 할 때 예배드리는 장소로 사용했던 천막(출 27:21)을 암시한다. '장막'을수식하는 형용사 '참'의 헬라어 '알레디네스'(* )는 '원형' 혹은 '영원한'이라는 의미를 지닌다(Bietenhard). 이것은 '거짓'과 대조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상징적인 것' 혹은 '불완전한 것'과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하늘 처소를 시사한다(Cody). 한편 '부리는 자'의 헬라어 '레이투르고스'(* )는 공식적인 일을 수행하는 자로서 '사역자' 혹은 '종'을 뜻하는 것으로 본절에서 그 실재적인의미는 '대제사장'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지상의 장막과는 다른(9:11,24) 주께서 직접 이루신 하늘 처소에서 자녀인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중보 사역을 행하신다(Hewitt).
=====8:3
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 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이러므로 저도 무슨 드릴 것이있어야 할지니라 - 대제사장은 속죄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는 일'을 그들은 소제물과 수소, 수염소, 수양, 비둘기 같은 번제물로써 1년에 한 번씩 속죄 제사를 드렸다. 이와 마찬가지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도 드려야 할 제물이있어야 한다. 저자는 본절에서 그리스도께서 드려야 할 제물이 무엇인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이렇게 바로 대답하지 않는 것은 저자의 독특한 표현 방법이다.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 드려야 할 것은 '흠 없는 자신'이었다(7:27;9:14).
=====8:4
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 이는 율법을 좇아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 - '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라는 말은 반어적(反語的)인 표현으로 예수께서 이 땅에서 하늘로 승천하셨기 때문에 비로소 제사장이 되셨다는 의미가 된다. 예수께서는 지상의 어느 성소에서도 제사장직을 수행한 적이 없다. 이 땅의 성소에는 모세의 율법을 따라 제사장직무를 수행하는 아론 계통의 레위 제사장들이 있었다. 그들은 성막 밖에서 잡은 짐승의 피를 기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제사를 드렸다(레 4:4,5). 그와 같이 예수께서는 이땅에서 대속의 피를 흘린 몸을 가지시고 하늘에 있는 참된 성소에서 제사장으로서의중보 사역을 수행하신다(7:25;9:12,24).
=====8:5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지상의 성소에서 그들의 직무를 수행하였다. 그러나 그 성소는 하늘에 있는 참 성소의모형에 불과하다. 이러한 사상은 플라톤(Platon)의 이데아 사상 곧 지상에 있는 모든사물들은 하늘에 있는 '이데아'들의 모형이라는 사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기 쉬우나본절은 저자가 출 25:40의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에 지나지 않으며, 유대인들에게 지상의 것들은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이라는 뿌리깊은 사상이 있는 것으로 보아 플라톤의 사상보다는 구약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Morris, Bruce).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 - 본문은 출 25:40의 인용이다. 이외에도 동일한 문구가 출애굽기의 다른 곳에서도 언급되어 있다(출 25:9;26:30;27:8).'본'에 해당하는 헬라어 '튀폰'(* )은 출 25:40에서 사용된 '탑니트'(* , '식양')와 동일한 표현으로 구두적(口頭的)인 지시보다는 가시적(可視的)인 것을 의미한다(Bruce, Lane). 그래서 혹자는 모세가 하늘에 있는 성소의 모습을 보았을것이라고 추측한다(Bruce, Cross). 지상에 있던 성소는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보여주신 식양(式樣)대로 지어진 것이었으며 이같은 식양을 따라 세워진 성소와 성소의 각종 기구들을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된 상징적 의미를 지닌 모형에 불과하다( 출25-40장).이러한 상징적인 모형들은 언젠가 실체에 의해 대체(代替)될 수 밖에 없었으며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대체되었다. 예수께서 자신의 몸을 속죄 제물로 바쳤을 때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것(마 27:51)은 더이상 이 땅의 성소가 필요 없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예수께서 승천하심으로 지상의 성소는 하늘의 성소로, 인간의 제사장 사역은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으로 완전히 대체되었다.
=====8:6
그러나 이제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 예수께서 대제사장으로서 자신의 직분을 행하시는 곳은 지상의 성소가 아니라 하늘처소이다. '직분'의 헬라어 '레이투르기아스'(* )는 헬라 고전에서 종교적인 용어로 사용된 예가없는 단어이다. 그러나 70인역(LXX)에서는 제의적인 어감(nuance)을 지닌 말로서 성스러운 직임(職任)을 나타낼 때에만 사용되었으며(Lane), '아름다운'의 헬라어 '디아포로테라스'(* )는 '우월한' 이라는 의미를 지닌다(superior,NIV, Rovertson). 예수께서 얻으신 직분이 아름다운 이유는 대제사장의 가장 본질적인임무인 속죄 사역에 있어서 예수께서 이루신 것이 레위 계통의 대제사장들보다 우월하기 때문이다(Strathmann). 한편 '얻으셨으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테튀켄'(* )은 '달성하다', '얻다'의 뜻을 지닌 동사 '튕카노'(* )의 완료형이다.이것은 예수께서 이미 그러한 직분을 얻으셨으며 현재에도 소유하고 계심을 시사한다.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 - '중보'의 헬라어 '메시테스'(* )는 본서에서 언제나 '더 좋은 언약' 혹은 언약이 새 중재자를요구하기 때문이다. 한편 '더 좋은 약속으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 크레이트토신에팡겔리아이스'(* )에서 '에피'는 '...의 근거 위에'라는 의미이다(Robertson). 이것은 아론계통의 대제사장들과 맺은 언약보다 '더 좋은 언약'이 더 좋은 약속을 근거로 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 '약속'의 내용은 10-12절에서 인용되고 있는 렘 31:31-34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완전한순종의 삶과 죽음을 통해서 렘 31:31-34에 예언된 새로운 언약의 시대를 여셨다(Lane). 새 언약은 과거에 맺었던 옛 언약과는 비교될 수 없는 새로운 차원의 언약으로 예수께서 지상에서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구원 사역에 의해서 성취되었다.
=====8:7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 저자는 '첫 언약'과 '둘째 언약'의 비교를 통해서 '첫 언약의 불완전성'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둘째 언약'이 나타날 수 밖에 없는 당위성을 제시한다. '저 첫언약'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었던 계약, 즉 유대인들의 율법과 규례와 계명을 가리킨다(출 19:3-8;24:7;신6:1-3). 그리고 '둘째 것'이란 '새 언약'(8절), 즉 하나님께서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더불어 세우셨으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하신 완전한 언약을 가리킨다(막 14:24;요19:30). 새로운 언약이 필요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은 옛 언약이 불완전하였음을 시사한다. 모세의 중재로 주어진 율법은 외적인 면만을정결케 할 수 있었을 뿐 인간의 내면 즉 양심을 깨끗게 할 수 없었으며(9:9,10) 인간이 온전히 지킬 수 없었기 때문에 더 좋은 새 언약으로 대체되어야만 했다.
=====8:8
본절에서 12절까지는 렘 31:31-34의 인용이다. 저자는 이 인용을 통해서 첫 언약을대체한 새 언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저희를 허물하여 일렀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리라 - 본절의 '날이 이르리니' 나 10절의 '그 날 후에'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자주 사용한 표현으로(렘 30:3;31:27,31,38)미래에 도래할메시야 시대를 가리킨다. 한편 '내가...새 언약을 세우리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내포하고 있다. (1) 새 언약을 세우시겠다는 것은 옛 언약 즉 모세의 율법을 폐하심을암시한다(Lane). (2) '세우리라'의 헬라어 '쉰텔레소'(* )는 '이룩하다'란 뜻의 '쉰텔레오'(* )의 미래 능동태이다. 이는 새 언약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의해서 성취됨을 시사한다. 이러한 새 언약의 상대자는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되어 있다(렘 31:31). 예레미야 당시는 이스라엘과 유다가 한국가로 존속하지 못하고 두 왕국으로 나뉘어져 이미 북 이스라엘은 망하고 남유다만이남아 있던 때였다(렘 1:2,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나타나는 것은 장래에 두 나라가 하나가 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이기도 하다(Morris).
=====8:9
또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열조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저희와 세운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 본문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후 하나님께서맺으신 언약 즉 옛 언약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손을 잡고 즉부모가 어린 자녀를 안전한 장소로 인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호 11:1-4, Morris)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난의 땅 애굽에서 이끌어 내셔서 언약을 세우셨다. 이때 맺은 언약은 첫 언약으로 모세의 율법을 가리킨다. 이 언약은 불완전하였다(7절;9:9,10).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율법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 언약을 미래에 주시겠다고 예레미야를 통해 약속하였다. '같지 아니하도다'는 새 언약이 모세 율법을 수정한 정도의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다른 것임을 나타낸다(Morris). 저희는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저희를 돌아보지 아니하였노라- '저희는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의 계명을 준행하지 않았음을 시시한다(Hewitt).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노예와 같은 처지에 있던 이스라엘 열조(列祖)들을 구원해 주신 후 그들에게 율법을 주심으로 언약을 맺었으나(출 19장)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그 언약을 준행치 아니하였다. 그결과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간에 맺어졌던 옛 언약의 효력은 상실되었으며그들은 더이상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지 못하고 진노의 심판을 선고 받았다(렘 22:5).여기서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였노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멜레사'(* )는 '무시하다' 혹은 '등을 돌리다'라는 의미로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셨음을 나타내는 강한 표현이다.
=====8:10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 저자는 예레미야서를 인용하는 가운데 '주께서 가라사대'라는 문구를 반복해서 사용하고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과 새로운 언약을 세우는 일이 사람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되는 것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한편 '그 날후에'가 언제인지 구체적인 언급은 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이스라엘 집으로'라는 말로 보아서 예레미야가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갈라져 있었던 이스라엘 왕국이 다시 하나가 될 그 어느 미래를 내다보며 예언한 표현일 것이다(Morris).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과 새롭게 세울 언약은 '첫 언약'(7절) 즉 모세에게 주신 율법과는 다른 것이었다. 후자가 외적인 것으로서 돌판에 새겨진 것이었다면(출 32:15,16), 전자는 보이지않는 내적인 것으로서 돌판이 아닌 '생각에 두고 마음에 기록한' 것이었다. 여기서의'생각과 마음'은 인간의 내적 본성인 지성(至誠)과 감성(感性)을 총체적으로 일컫는표현이다(Robertson, Westcott). 하나님의 법을 '생각에 두고 마음에 기록한다는 것'은 옛 언약이 할 수 없었던 양심의 정결(9:9,10) 곧 인격적인 변화를 시사한다. 하나님은 더이상 의문(儀文)에 의해서 자기 백성을 다루시기를 원하지 아니하신다. 반대로하나님의 법을 자기 백성의 심비에 새겨 그리스도와 같이 하나님의 법과 명령에 순종하는 새 언약의 백성이 되게 하셨다.
=====8:11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니 아니할 것은 저희가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 10절에 이어 본절에서도 새 언약의 특성이 열거되고 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과 모세를 통하여 내리신 계시로 하나님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여호수아의 인도 아래 가나안 땅에 들어간 세대가 다 죽은 이후의 세대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셨던 일도 알지 못하였다(삿 2:10;호 4:1,6). 그러나 새로운 언약 안에 있는 믿음의 공동체는 개개인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소유하게 된다(Bruce). 새 언약은 10절에서 언급된 대로 사람의 생각과 마음에 기록된 하나님의 법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독교 진리를 먼저 받아들인 자가 다른 사람에게 진리를 전하여 줄 필요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전도 사역은 기독교의 근간을 이루는 주된 사역 가운데 하나이다(눅 10;1-16;고전 1:21). 전도 사역을 통해서 전해진 지식은 객관적이며 피상적인 지식이다. 그러나 본절에서 인용된 예레미야 선지자의 '나를 앎이니라'는 하나님에 대한 직접적이고도 실제적인 지식으로서 개인이 하나님과 교제할 때 비로소 아는 지식을 가리킨다. 새 언약의 백성들은 타인이 전해준 이야기를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법을 생각과 마음으로 알게 되며 하나님을 인식하게 된다(Morris).
=====8:12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 새 언약안에는 하나님이 백성들의 죄를 용서한다는 약속이 들어있다(Morris). 옛 언약에 속해있던 사람들은 자신이 범죄할 때마다 제사장에게 가서 속죄 제사를 드려달라고 요청할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새 언약 아래 있는 사람들은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왜냐하면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6절)께서 단번에 신자들의 모든 죄를 속해 버리는 제사를 드리셨기 때문이다(7:27;10:10). 따라서 하나님은 새 언약에 참여하는 사람들의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신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들은 더이상 구약 시대의 제사와같은 일을 반복할 필요가 없으며 오직 필요한 것은 범죄할 때마다 겸손히 하나님 앞에용서를 구하고 다시는 그같은 죄를 범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뿐이다(요 5:14;갈4:8,9).
=====8:13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가는 것이니라 - 저자는 이제 새 언약의 내용에서 관심을 돌려 '새 언약'의 '새'(* ,카이넨)에 초점을 맞춘다(8절).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선포하셨다는것은 모세를 통해 시내산에서 주셨던 옛 언약 즉 율법의 효력을 폐기시키셨음을 암시한다. 옛 언약은 불완전하여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게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새 언약을 통해서 옛 언약을 폐기시키고(7:11,12) 불완전한구약 시대의 율법을 온전한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으로 완전히 대체시키셨다.
앞에서 이제까지 살핀 4:1-7:28까지의 내용이 주로 대제사장으로서의 예수의 사역을
구약의 제사 제도와 비교하여 가르친 것이라면, 본장에서는 그와 같은 제도의 근본 목
적이었던 언약의 관점에서 예수의 사역을 새 언약에 따른 새 제도를 위한 것으로 가르
치고 있다.
즉 구약과 신약의 제사는 생명의 근원이 되는 피를 드린 것에서 동일성을 가지나 제
물이 양에서 예수로, 중보자가 제사장에서 예수로 발전한 차이점을 가진다. 본장 5절
은 이러한 구약과 신약의 관련성 및 차이를 모형과 그림자에 비유해 단적으로 설명하
고 있다. 또한 본장은 땅에 있는 레위 제사장 제도를 제쳐두고 굳이 예수께서 새 대제
사장으로 등장하셔야 했던 필연적인 목적을 하늘의 제사장이 되기 위함과(4절), 또한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기 위함(6절)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즉 본장은 1-6절을 통해 새
언약에 의한 새 중보자로서의 예수의 등장을 먼저 말한 후, 7-13절은 새 언약의 필연
성과 그 기원을 말하고 있다.
이와 관련되는 본장의 중심 내용과 본서 전체의 신학적 맥락에서 살핀 본장의 흐름
은 아래와 같다.
(1) 신학적 맥락 속에서의 본장 주제 흐름. 본서는 매우 특색 있는 서신으로 설교와
논문의 중간 형태를 취하고 있는 변증서이다. 본서의 중심 사상은 기독론이며 특히 그
리스도의 우월성에 모든 논의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자는 본서의 초두에서부터 관
용적인 인사말을 생략하고 곧바로 본서의 주제인 그리스도의 우월성 즉 구약의 선지자
들보다 그리스도가 뛰어나심을 이야기하였다. 이렇게 시작한 본서는 1:1-4:13에서는
그리스도의 품성의 우월성을 보여주고, 4:14-10:18에서는 그리스도 사역의 우월성을
설명하고 있으며 10:19-13:25에서는 그리스도인 신앙의 우월성을 재확인시키고 있다.
본장은 본서의 그 두번째 부분으로서 그리스도 사역의 우월성을 다루고 있다. 따라
서 본장의 주제는 그리스도의 유일무이한 대제사장직에 관한 내용이다. 한편, 논증이
진전됨에 따라 모세 아래 세워진 옛 성소 제도와 그리스도 안에서 확립된 영원한 멜기
세덱의 반열 사이에는 불연속성의 측면들뿐만 아니라 예표론적(typological) 유사성도
존재한다는 사실이 점점 분명해 진다. 다시 말해 옛 반열은 비록 불완전하고 일시적이
었으나 그 자체가 유효하고 영구적인 다른 한 반열의 출현을 가능케 한 배경이었을 뿐
아니라 머지 않아 하나님께서 친히 모든 죄를 제거하기 위한 완전한 희생 제물을 보내
시리라는 소망을 불러일으키는 데도 그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신학적 흐름을 따라 저자는 앞장에서 새로운 제사장직의 우월함을 논하였다.
그리고 이제는 그러한 제사장직에는 그만큼 우월한 제사장이 있어서 그 사역을 잘 감
당하고 있음을 이야기하려 한다. 이 과정에는 새로운 계약(covenant)이 전제되어 있음
을 본장은 또한 나타내고 있다. 이것이 바로 본장의 서두, 즉 '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이라는 전환적 표현이 시사하는 것이다. 저자는 전장까지의 가르침을 정리하고
이제 새로운 사고로 나아가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새로운 사고는 바로 본장의 주
제인 '새 언약의 중보자인 그리스도'이다.
(2) 중심 내용. 저자는 구약과 신약을 가장 분명히 연결시킬 수 있는 '언약'(
, 디아데케)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레위 계통의 대제사장 직분보다 그리스
도의 대제사장 직분이 우월함을 논증한다. 즉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쳐 새 언약의 신
실성을 확증하신 그리스도는 친히 중보자의 직분을 수행하심으로써 불완전한 옛 언약
하의 대제사장 직분을 폐기시키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장의 중심 내용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졌던 옛 언약이
어떻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새 언약으로 대체되었는가에 대한 설명이다.
이에 대한 첫번째 설명으로서 본서의 저장는 모세의 율법으로 말마암은 모든 제사 제
도는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1-5절). 따라서
그 같은 모형은 궁극적으로 실체적인 것에 의해 대체될 수밖에 없는데 그 실체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이라는 것이다(6절).
그리고 두번째 설명으로서 저자는 이처럼 인간적 제사 제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으로 대체되는 것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에 의한 것이라
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7-12절). 그러므로 우리는 본장에서 옛 언약은 낡아 없어지는
성격의 것이지만, 새 언약은 이후로 영원토록 우리에게 적용되는 불변의 언약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13절).
1. 새 언약의 중보자(8:1-6)
본문은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어떤 분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도록 해
준다. 이 해답은 바로 그림자와 실체와의 관계 즉 땅의 성소와 하늘의 성소와의 관계
를 살핌으로써 드러나게 되며 그 결과 우리는 예수께서 취하신 제사장 직분의 성격을
아래와 같이 발견할 수 있다.
(1)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어떤 분이신가 ?
첫째, 그분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는 분이다(1절). 이 말씀은 예
수께서 대제사장이 되시기 위해서 인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3일만에
부활하신 후 40일 되던 날 구름을 타고 하늘 나라 지성소로 들어가셨으며 그곳에서 하
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심으로써 대제사장이 되셨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것은 먼저는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제사를 다 마치셨
기 때문이며(10:12,13) 다음으로는, 우리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때문이고
(7:24,25; 롬 8:34) 마지막으로는 만왕의 왕으로 재림하실 때를 기다리시기 때문이다
(1:13; 고전 15:23-28). 여기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다'라는 말은 그가 '지
존한 영광의 자리에 계시다'는 뜻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을 의미한다(계
19:16). 그는 지금도 하나님과 더불어 이 세상을 통치하고 계시지만 장차 성도들과 함
께 의(義)로 이 세상을 다스리실 것이다(계 20:4).
둘째, 그는 성소와 참 장막에서 부리는 자이시다(2절). 여기서 '성소'( ,
하기온)와 '참 장막'( , 스케테스 테스 알레디
네스)은 같은 말로서 예수께서 중보 사역을 행하고 계시는 처소를 의미한다. 2절에서
는 특별히 이곳을 다음 3가시로 언급하는데 이들은 같은 말이지만 각각 그 강조점이
다르다. 먼저 '성소'가 강조하는 것은 예수께서 일하시는 곳이 지상에 있었던 성전의
성소가 아니고 '하늘나라 성전의 성소'임을 말하고 있으며, 다음의 '참 장막'은 예수
께서 일하시는 곳이 구약 시대에 만들어졌던 천막 성전이 아니고 하늘나라에 세워져
있는 '실체의 성전'이란 뜻이고, 마지막으로 '주께서 베푸신 장막'은 예수님의 일하시
는 곳이 사람들의 손에 의해 땅에 세워졌던 성전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직접 손으로
지으신'하늘에 세워진 하나님의 성전이란 뜻이 강조된 것이다.
그리고 '부리는 자'( , 레이투르고스)는 어떤 형태로든 공적인
업무에 종사하는 자를 의미한다. 따라서 예수께서 '성소와 참 장막에서 부리는 자'라
는 말은 그가 하늘 나라에서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중보 사역을 행하는 자이심을 밝혀
준다. 바클레이(William Barclay)는 이것을 '예수님은 성소에서 섬기고 계신다'로 해
석한다. 즉 이 구절은 예수가 봉사하는 분이시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 전능한 힘과 섬
김에 있어서 예수는 유일무이한 존재이시다. 땅에 계실 때는 물론이려니와 하늘 보좌
영광의 자리에서조차도 예수는 권능을 자기 자신을 위해서 향유하지 않으시고 자기 자
신을 위해서 부여받은 것이라고 보시지 않았던 것이다.
이상과 같이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세상을 통치하시는 왕일 뿐 아니라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하늘나라에서 간구하는 분이시다(7:25).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내가 그
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가 내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 그분이 영광 받으실 수 있도록 해
야 한다(요 17:21-23).
(2) 땅의 성소와 하늘의 성소. 본문 5절에서 저자는 이 땅의 대제사장들이 직분을
수행하던 '땅의 성소'가 하늘에 있는 것, 즉 '하늘 성소'의 모형과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 말은 지상 성소에서 행해진 각종 제사 제도가 자체가 이미 불완전
하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7:11).
이 땅의 성소(장막)는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보여주신 식양(式樣)대로
지어진 것이다(출 25:40; 39:32). 그렇지만 이같은 식양을 따라 세워진 성소와 성소의
각종 기구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된 상징적 의미를 지닌 것들에 불과하다(출 25-40
장). 예수께서 자신의 몸을 속죄 제물로 바쳤을 때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것은(마
27:51) 더 이상 이 땅의 성소가 필요없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예수께서 승천하
심으로 말미암아 땅의 성소는 하늘의 성소로, 인간 제사장의 사역은 하늘 성소에서의
예수의 중보 사역으로 완전히 대체 되었다.
이러한 땅의 성소와 하늘의 성소 즉 5절에 표현된 대로 '모세의 장막'과 '하늘의 실
체'를 비교해 보면 아래 도표와 같다.
+------------+-----------------------------+-----------------------------------+
| | 모세의 장막 | 하늘의 실체 |
+------------+-----------------------------+-----------------------------------+
| 건축 위치 |땅 위(4,5절; 9:6) |하늘 (1절) |
+------------+-----------------------------+-----------------------------------+
| 건 축 자 |사람이 세움(2절) |주님이 세움(2절) |
+------------+-----------------------------+-----------------------------------+
| 건축 방법 |손으로 지은 성소(9:24) |손으로 짓지 아니한 성소(9:24) |
| |이 세상의 창조에 속함(9:11) |이세상의 창조에 속하지 아니함(9:11)|
+------------+-----------------------------+-----------------------------------+
| 건축조감도 |모든 식양을 하나님이 지시하심|하나님께서 그림자와 모형을 미리 |
| | ( 5절 ) |예표하심 (5절) |
+------------+-----------------------------+-----------------------------------+
| 평 가 |모형과 그림자(5절; 9:24) |참 장막(2절) |
| | |더 크고 온전한 장막(9:11) |
+------------+-----------------------------+-----------------------------------+
(3) 예수께서 취하신 제사장 직분의 성격. 본문 6절은 특별히 예수께서 더 좋은 대
제사장이 되셔서 우리에게 계신 사실을(1절) 재확언하고 있다. 즉 예수게서 우리에게
대제사장이 되신 것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은 것이며 동시에 더 좋은 약속과 더 좋
은 언약의 중보자로 세워진 것이다. 한마디로 예수께서 취하신 제사장 직분은 그 성격
상 지상 성소에서 사역하는 인간 제사장들의 직분보다 '더 아름다운'(
, 디아포로테라스) 것이다. '디아포로테라스'는 '보다 존귀한', '보다
탁월한'이란 뜻이다. 이 말은 상대적인 탁월성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인간 제사장들의
직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영예롭고 가치가 있는 절대적인 탁월성을 의미한다. 왜
냐하면 예수께서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된 제사장이시기 때문이다.
한편 이 같은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있어서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
의 중보자'가 되신다. 여기서 '더 좋은 언약'이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
으로 더불어 세우신 새로운 계약(8절)을 의미한다. 그리고 '더 좋은 약속'이란 이 같
은 계약에 담겨 있는 내용(10-12절)을 의미하는데 그 내용이 우리들에게 절대적으로
유익한 것이므로 더 좋은 약속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그리고 '중보자'(
, 메시테스)란 예수께서는 새로운 계약이 반드시 이행되도록 보증하시는 분이라는 의
미이다. 원래 '메시테스'라는 이 단어는 '중간'(the middle)이라는 뜻이며 두 사람 사
이에 서서 화해시키는 사람을 뜻한다. 욥 9:33에서 욥은 그의 입장을 하나님께 호소해
줄 '메시테스'(판결자)를 애타게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절망하였다. 그러나 이제 우리
에게는 완전한 '메시테스'인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 사실 이 새 계약은 예수 그리스
도의 대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온전히 성취되었다(요 19:30). 그래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은 대속 사역(ministry of Redemption)이며 동시에 화해 사역(ministry of
Reconciliation)인 것이다.
* 예표론(Typology)에 대하여. '예표'란 신약성경에서 완전한 원형으로 구체화될
어떤 진리가 구약성경의 역사에 미리 나타나 신약성경의 실체를 암시하거나 드러내고
있는 것을 말한다. 성경에 나타나는 용어 중 '예표'라는 말과 유사한 용어는 '표상'(
, 튀포스, 롬 5:14), '그림자'( , 스키아, 8:5; 골 2:17) '모형'(
,휘포데이그마타, 9:23), '표적'( ,세메이온,
마 12:38), '표'( , 안티튀폰, 벧전 3:21)등이 있으며 이 용어들은
모두 예표론의 연구 대상에 포함된다. 예표론은 성경 신학에 있어서 중요한 비중을 차
지하는 것으로서 성경 자체도 구약과 신약의 내용 사이에는 밀접한 영적 친화성(親和
性)이 있음을 증거하고 있다. 따라서 예표론과 예표론적 해석 방식은 초대 교회 때부
터 교회의 성경 해석과 해석학의 중요한 일부가 되어 왔으며, 신약성경에서 구약성경
을 예표론적으로 인용함으로써 구약성경을 좀더 심오하게 해석하는 예를 제공하였다.
(1) 예표론의 특징. 예표론의 중요한 특징은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구약성경을 신약
성경과 연결된 아주 광범위한 통일성 위에서 조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신약성경
을 단지 서로 경합적인, 심지어는 모순적인 신학들의 집합에 불과하다고 보는 비평주
의자들의 비판을 받아 왔다. 그러나 신약성경의 통일성을 주목함에 있어서도 예표론은
신약성경의 다양성을 무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표론은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각기 다
른 음성을 통해 메시지를 말씀하시는 성령의 감동에 각자의 상황과 방법으로 응답했음
을 인정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몇 가지의 특징을 갖는다.
첫째로, 예표들은 철저하게 역사에 근거하고 있다. 예컨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예표하는 광야의 불뱀 사건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민 21:6-9; 요 3:14).
둘째로, 예표는 예언적 성격을 지니며 그것은 메시야 시대에 성취된다.
셋째로, 예표는 구원사(History of Salvation)의 일부로서 필요 불가결한 것이다(고
전 10:1-11).
넷째로, 예표는 그리스도 중심적이다. 구약의 모든 예표들은 그리스도에 의한 타락
한 인류의 구원을 지적하고 있다(눅 24:25,44; 행 3:24).
다섯째로, 예표는 교훈적이며 건덕적(建德的)인 것들로서 구약 시대나 신약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영적 교훈을 제시해 준다.
(2) 예표론의 범위. 신학자들에 따라 예표론의 범위는 매우 다양하다. 어떤 학자들
은 구약성경을 모두 예표로 해석하여 실재 역사로서의 의미를 무시한 반면, 다른 학자
들은 구약성경의 예표론적 성격을 완전히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양극단은 모
두 무리가 있으므로 여기서는 중간 입장을 취한다. 이에 따란 예표론의 범위를 정하는
원칙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신약성경에 분명하게 성취된 예표와 신학자들의 해석에 근거한 예표이어야 한
다.
둘째, 예표에 있어서 핵심적인 것과 부수적인 것은 구분해야 한다.
셋째, 교리를 확증하는 예표와 교리와는 상관없는 예표를 구분해야 한다.
넷째, 예표에 있어서 이미 성취된 예표와 아직도 완전히 성취되지 않아 예표적 성격
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3) 본서와 예수 예표론. 모든 신약성경 중에서 본서는 그 전개와 해석을 위해 가장
광범하게 구약성경을 인용한다. 본서에는 구약성경에 대한 많은 암시가 있고 저자 자
신의 메시지는 구약성경의 언어로 표현되어 있다. 다른 신약성경 어디서도 본서처럼
명시적이고 조직적으로 구약성경의 증거구로써 논리를 전개시킨 곳을 찾아보기가 어렵
다. 또한 다른 어느 신약성경에서도 그처럼 많은 구약 용어들이 직접적으로 그리스도
에게 혹은 신약적 구원의 다른 국면들에 적용된 곳을 찾기가 어렵다.
본서는 가장 면밀하게 모세 시대, 특히 시내산 언약과 그 제의적 질서에 모형론적으
로 접근하고 있다. '시내산 언야과 새 언약', '아론과 그리스도', '율법과 그리스도의
사역' 사이의 예표론적 관계는 바울에서처럼 반명제(antithesis)의 성격보다는 비교의
성격을 띤다. 즉 옛 모형과 대조되는 것으로서 새 것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옛 모형
보다 우월한 것으로서의 새 것이 등장한다. 예를 들면 예수는 아론의 반차가 아니라
(7:11)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110:4) 대제사장이시므로 그의 대제사장직은 구약의
대제사장직 보다 우월하다.
여기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으로 예수를 부름은 그가 단순히 구약 제사
장보다 우월함을 보이려는 것 이상이다. 즉 그것은 구약 제사장직의 폐기를 뜻한다
(7:11-22,28). 그리고 이 제사장직의 폐기는 전체 율법의 폐기를 뜻한다(7:12). 이제
예수는 대제사장으로서 더욱 승귀된 신분에 따라, 더 나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다
(7:22). 그리고 그분은 원형( , 튀포스)이 있는 하늘에서 제사 직무를 수행
하신다(1절; 9:11,23). 모세는 하늘에 있는 원형의 그림자로 지상의 장막을 건축했다
(2,5절). 그러나 다른 제사장직의 설치가 옛 것의 불충분함을 지시하듯이(7:11이하)
새 언약의 선포는 옛 언약이 쓸모없고 낡아진 것을 보여주며(13절) 땅의 장막은 하늘
에 있는 참장막의 존재를 증거하고 요청하는 것이다.
2. 새 언약의 필요성(8:7-13)
앞 단락에서 저자는 옛 언약을 대체하는 새 언약의 등장을 보여주었다. 이제 본 단
락은 왜 새 언약이 필요했으며, 어떻게 약속되었고 그 새 언약의 우월성은 무엇인가를
아래와 같이 보여준다.
(1) 새 언약의 필요성. 7절은 두 언약에 대해 언급한다. 여기서 '첫 언약'이란 하나
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었던 계약, 즉 유대인들의 율법과 규례와
계명을 가리킨다(출 19:3-8; 24:7; 신 6:1-3). 그리고 '둘째 것'이란 8절에 나타나는
'새 언약'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더불어 세우셨으며 예수 그리스
도로 말미암아 성취된 새로운 계약을 의미한다(막 14:24; 요 19:30).
옛 언약은 하나님께서 애굽의 노예와 같은 처지에 있던 이스라엘 열조들의 손을 붙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던 날에 주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저버리고 그 같은 언약을 준행치 아니하셨다. 따라서 자동적으로 하나님과 이
스라엘 백성들 간에 맺어졌던 옛 언약은 효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지 못하고 진노의 심판을 선고받았다(렘 22:5). 그러므로
그 당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새 언약'에 대하여 약속하셨다는 것은
곧 '첫 언약'이 낡은 것이라는 점을 암시한 것이 된다. 따라서 '첫 언약'은 예레미야
당시부터 '새 언약'으로 대체될 날을 바라보면서 그 명맥을 유지해 왔다고 보아야 한
다.
(2) 새 언약을 약속함. '새 언약'이란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성취된 예수 그리스도
의 피 언약을 예표하는 것으로서 패역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권
적으로 제시 하신 약속이다. 이 약속에 대해 살펴 보면
첫째, 하나님께서는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 새 언약을 세우겠다고 약속하셨다(렘
31:31). 여기서 '날이 이르리니'(8절)와 '그 날 후에'(10절)라는 말은 예레미야 선지
자가 즐겨 쓴 말로서(렘 30:3; 31:27,31,38) 앞으로 도래할 메시야 시대를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세우시는 때란 다름아닌 신약 시대임을 알 수 있
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더불어 새 언약을 세우겠다고
약속하셨다(렘 31:31). 예레미야 당시는 이스라엘과 유다가 한 국가로서 존속하여 있
지 않고 두 왕국으로 나뉘어져 이미 북왕국 이스라엘은 망하고 남유다만이 남아 있던
시대이다(렘 1:2). 따라서 위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은 예레미야에게 언젠가 북이스라
엘이 남유다와 더불어 회복되어 한 국가를 이룰 것이라는 희망을 안겨 주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간에 구별없이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
도안에서 하나가 된 자들과 더불어 새 언약을 세우시겠다는 상징적 의미도 띠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신약시대에 이르러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복음의 진리가 남녀 노소, 유
대인, 이방인을 불문하고 모든 이에게 주어진 점에 의해 입증된다(행 10:44-48).
또한 하나님께서는 '새 언약'을 약속하실 뿐 아니라 이 새 언약의 성취에 대한 여호
와의 신실성을 몇 가지 자연 법칙을 들어 보증하고 있다(렘 31:35-37). 즉 자연계의
질서가 창조 이래로 변함없이 계속되어 온 것처럼 구속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에도 역
시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의 성도들과 교회에도 동등하게 적용된다. 즉
신자들과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 계획은 사단의 책략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진
행되어 최종적인 완성을 이룰 것이다.
(3) 새 언약의 우월성. 본문에서 저자는 하나님이 '저희를 허물하여'(8절) 새 언약
의 약속을 하셨음을 지적한다. 옛 언약의 한도 내에서는 그 만연한 죄악의 처방을 마
련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이제 새 언약이 세워진 것인데, 이 새 언약은 옛 언약에 비
해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측면에서 우월성이 강조된다(10-12절).
(까) 내면적인 복종의 자세, 새 언약의 첫번째 우월성은 그것이 내적인 것이며 힘
있는 언약이라는 점이다. 옛 언약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율법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돌판에 새겨진 것이었다(출 32:15,16; 34:1-4,28).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 줄 알면서도 제대로 그것을 준행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새 언
약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새겨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같은 언약은 자연적으로 마음
의 변화를 일으켜 줄 것이다. 왜냐하면 역사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능
력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히 우리들의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
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신다(4:12).
그러므로 새 언약의 이러한 우월성은 새 언약이 (a) 우리 영혼 깊숙이 새겨지며(렘
31:33), (b) 하나님을 떠나지 않도록 마음속에 경외심을 심어주며(렘 32:30), (c) 마
음속에 하나님의 영을 두게 하며(겔 37:14), (d) 마음을 깨끗게 한다(겔 37:23)는 복
합적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새 언약의 성도는 형벌의 두려움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
적인 사랑의 동기에서 성령께서 주신 능력으로 주의 율례를 이행하게 되는 것이다(롬
8:2; 빌 1:6).
(다) 하나님과의 확고한 관계성. 새 언약의 두번째 우월성은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실'하나님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 '내 백성이 될' 백성들 사이에 긴밀한 관계
가 형성된다는 점이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옛 언약을 체결하기에 앞서 '너희로 내 백
성을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출 6:7)라고 하셨다. 그러나 옛 언약과 새
언약에 있어서의 이런 말에는 의미상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옛 언약에 있어서는 이스
라엘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는 사실에 그 강조점이 있는 데 반해(출 195,6), 새 언
약에 있어서는 구원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과 함께 하신다는 점에 강조
점이 있기 때문이다(마 1:21-23; 요 1:9-12; 3:16).
(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직접성(11절). 새 언약의 세번째 우월성은 새 언약에
참여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옛 언약에서는
모세, 제사장, 선지자 등이 언약의 중재자로서(대하 17:7-9; 렘 32:33) 하나님과 백성
이 언약으로 맺어진 관계에 있을 깨닫게 하는 일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새 언약에서는
백성을 위해 언약을 중재할 필요가 없는데, 이는 새 언약의 참여자마다 성령을 통하여
보다 풍성하고 분명한 하나님의 계시를 소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옛 언약에는 불 같
은 말씀으로 돌비에 새기며 듣고 배우고 깨닫게 하여 마음에 새기도록 하였다. 그러나
새 언약에는 성령이 심령 속에 직접 오셔서 심령에 영으로 말씀을 기록하고 생각나게
하며 가르치시고 성령으로 증거하게 하셨다. 또한 모든 자가 다 하나님을 알게 될 것
이라는 말씀은 앞으로 예수께서 재림하셔서 되어질 미래에 대한 예언이기도 하다. 고
린도전서 13:12말씀처럼 '그 때에는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 완전한 사죄. 새 언약의 네번째 우월성은 완전한 사죄 즉 영원한 죄사함이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이제는 죄를 위하여 반복해서 속죄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
다(7:27)는 말과 동일하다. 12절에 나오는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죄를 다시는 기억지
아니하겠다'는 말씀의 원뜻은 '죄인에게 그 죄에 대한 것을 책임지우지 않는다'는 뜻
이다. 여기에 '기억지 아니한다'는 뜻은 '기억이 없어진다'는 뜻이 아니고 '그들의 죄
에 대한 책임을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고 그 책임을 하나님께서 담당하시겠다'는 뜻
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새 언약의 주인공되시는 예수에게 모든 인류의 죄에 대한
책임을 짊어지게 하셔서 십자가에 죽게 하셨을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우편
에서 중보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새 언약에 거하며 믿고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범죄할 때마다 겸손히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하고 다시는 그 같은 죄를 범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요 5:14; 갈 4:8,9).
(바) 효력의 영원성. 새 언약의 마지막 우월성은 그 효력의 영원성이다. 하나님께
서는 새 언약을 영원하게 하신다(13절). 첫 언약에 의해 시행되던 모든 의식과 예법은
모든 백성이 완전하게 다 이행하지 못하였고, 여기에 따른 모든 방법은 완전한 방법이
아니었으며, 예수께서 오실 때까지 그림자나 모형, 혹은 비유로 남겨놓으신 것뿐이엇
다. 그래서 완전한 방법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예수께서는 옛 언약에 의해 예고해 주
었던 모든 일들을 다 완성시키고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새 언약을 주셨으며, 이 새
언약의 법은 영원히 살아 계시는 예수로 말미암아 영원하며 낡고 쇠하지 않는다.
또한 옛 언약은 사람들의 불의로 인해 그 효력이 상실되었지만, 새 언약은 사람들의
불의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 효력을 간직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의 불
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는 기억지 않으시겠다는 것(12절)이 새 언약의 주
요 골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같은 새 언약이 우리들에게 주어졌다는 것은 '영혼
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며'(6:19) 우리를 영원한 구원의 자리에로 인도하여 줄
것이다.
위에서 살핀 특성을 중심으로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차이점을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
다.
+--------------------+---------------------------+-----------------------------+
| | 옛 언 약 | 새 언 약 |
+--------------------+---------------------------+-----------------------------+
|복종의 자세 |외형적 |내면적 |
+--------------------+---------------------------+-----------------------------+
|하나님과의 관계성 |하나님의 선택이 강조 |임마누엘 하나님이 강조 |
+--------------------+---------------------------+-----------------------------+
|하나님을 아는 지식 |선지자, 제사장을 통한 간접 |성령을 통한 개인적, 지접적 |
| |적 지식 |지식 |
+--------------------+---------------------------+-----------------------------+
|사죄 |반복적인 속죄 제사가 필요함|죄를 다시는 기억지 않으심 |
+--------------------+---------------------------+-----------------------------+
|내용과 효력의 지속성|백성들의 불순종으로 효력이 |사람들의 불의에도 불구하고 효|
| |상실 |력이 영원히 지속됨 |
+--------------------+---------------------------+-----------------------------+
* 언약 신학에 대하여. 성경에 사용된 '언약'( , 브리트: ,
디아데케)이란 말의 독특한 신학적 의미는 믿음으로 약속을 받은 사람들의 축복과 유
익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세워주신(레 26:9) 은혜로운 보증의 말씀 즉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약속 관계를 뜻한다.
따라서 성경에 나타난 '언약'이라는 말은 당시 고대 근동 지방에서 흔히 행해졌던
계약, 즉 두 사람 또는 두 집단간의 상호 합의하에 이루어진 쌍무 계약이나 종주권적
협약 등과 같은 의미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비록 성경의 언약들이 그러한 인간들의
계약 형태를 도입했다 하더라도 성경의 언약은 어디까지나 인간과 인간 사이의 계약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계약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즉 언약의 주도권은 언
제나 하나님께 있는 것이고 인간은 단지 수혜자일 뿐이다. 그러므로 신구약성경에서는
'언약'을 하나님이 명하신 것(수 7:11), 하나님이 세우신 것(레 26:9; 신 5:2), 하나
님이 주신 것(행 7:8)이라고 표현한다. 즉 피조물이요 죄인인 인간의 주장이나 욕망이
전혀 배제된 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에 의해서 제시되고 집행되어 지는 것이 성경
언약의 특징이다. 왜냐하면 언약은 그 궁극적 내용과 목적이 인간의 구원에 관계된 것
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성경에 나타난 언약을 구속사적 맥락에 관련시켜 개혁주의 신
학 안에서 특징적으로 발달시키고 체계화시킨 일련의 신학 사상을 '언약 신학'
(Covenant Theology)이라 한다.
다시 말하면 언약이란 하나님께서 당신의 구원 계획을 약속의 형태로 인간들에게 계
시한 일종의 입법 행위이다. 뿐만 아니라 성경에 나타난 모든 언약들은 그 속성에 있
어서 동시성을 띠고 있으므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적용되는 하나님의 약속이
다.
더 나아가 창조사를 중심으로 성경의 주요 언약들을 살펴보면 타락 이전에는 최초의
행위 언약이 있었으나(창 2:16,17) 이 행위 언약은 인간측의 불순종으로 깨지고 이 후에 하나님의 은혜로 은혜 언약이 나타났다(창 3:15). 이 은혜 언약이 여러 시기에 다양한 사람들에게 각종 형태(patters)로 나타나 상이한 경륜을 거치지만 그 본체나 목적에 있어서는 율법 전과 율법 후, 그리고 전세대를 통하여 항상 동일하였다. 즉 인간들에게 주어졌던 그리고 인간들과 맺었던 하나님의 모든 언약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통일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되는 십자가 사건의 계시로서 마침내 재림과 심판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비밀이었다(고전 4:1; 계 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