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본장은 70년 동안의 포로 생활에 대한 예레미야의 예언(렘 25:11, 12;29:10)을 깨달은 다니엘의 동족의 회복을 위한 통회의 기도(1-19절)와 칠십 이레의 환상(20-27절)이 기술된다. 한편 본장은 다니엘이 예레미야의 예언을 공식적인 교회의 인준 이전에 이미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것으로 인정하였다는 점(2절)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원년 - 여기서 '다리오'는 6:1에 이미 언급되었는 바, 메대의 마지막 왕이며 고레스의 장인인 키악사레스 2세를 가리킨다. 따라서 그의 부왕 '아하수에로'는 곧 '아스투아게스'(Astyages)이다. 또한 본 구절의 '원년'은 다리오의 메대 왕 즉위 원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가 고레스에게 메대의 통치권을 위임한 뒤, 바벨론 지역만의 섭정 왕으로 재즉위한 해인 B.C. 538년(또는 537)을 가리키는 것이다. 본 구절의 상세한 내용은 6:1 주석을 참조하라.
=====9:2
서책으로 말미암아...고하신 - 혹자는 다니엘이 깨달은 70년의 기간이 언급된 렘 29:1이 예레미야가 포로된 자들에게 보낸 서신이라는 점과 이미 왕하 19:14에서 단순한 서신 한 장에 '세파림'이란 복수형이 사용된 용례가 있다는 점에서 여기서의 복수형 '서책'(* , 세파림)을 렘 29장에만 관련된 한 장의 '서신'으로 이해한다(Thomson, Havernick, Kranichfeld). 그러나 이 70년에 관한 기록, 특히 본장과 같은 그 기간 동안의 이스라엘 땅의 황폐를 언급한 것이 렘 25장에 나타난다는 점에서 여기서의 '서책'은 일반적인 성경의 문서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다니엘이 이 문서들을 상고하며 기도하던 중에 예레미야의 예언을 발견하고 유대 민족의 포로 생활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을 깨달은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Delitzsch).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 년 만에 마치리라 - 다니엘이 예레미야의 예언을 깨닫고 기도하기 시작한 때(3-19절)는 1절에 의하면 B.C. 538년(537년)경으로 예루살렘이 멸망된 때(B.C. 586)로부터 약 50년이 경과한 시기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고토 귀환이 고레스 원년인 B.C. 536년에 이루어졌다는 점에 비추어 이 칠십 년의 최초 시점은 예루살렘 멸망 때가 아닌 다니엘이 포로로 잡혀간 때인 B.C. 605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9:3
서책으로 말미암아...고하신 - 혹자는 다니엘이 깨달은 70년의 기간이 언급된 렘 29:1이 예레미야가 포로된 자들에게 보낸 서신이라는 점과 이미 왕하 19:14에서 단순한 서신 한 장에 '세파림'이란 복수형이 사용된 용례가 있다는 점에서 여기서의 복수형 '서책'(* , 세파림)을 렘 29장에만 관련된 한 장의 '서신'으로 이해한다(Thomson, Havernick, Kranichfeld). 그러나 이 70년에 관한 기록, 특히 본장과 같은 그 기간 동안의 이스라엘 땅의 황폐를 언급한 것이 렘 25장에 나타난다는 점에서 여기서의 '서책'은 일반적인 성경의 문서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다니엘이 이 문서들을 상고하며 기도하던 중에 예레미야의 예언을 발견하고 유대 민족의 포로 생활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을 깨달은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Delitzsch).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 년 만에 마치리라 - 다니엘이 예레미야의 예언을 깨닫고 기도하기 시작한 때(3-19절)는 1절에 의하면 B.C. 538년(537년)경으로 예루살렘이 멸망된 때(B.C. 586)로부터 약 50년이 경과한 시기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고토 귀환이 고레스 원년인 B.C. 536년에 이루어졌다는 점에 비추어 이 칠십 년의 최초 시점은 예루살렘 멸망 때가 아닌 다니엘이 포로로 잡혀간 때인 B.C. 605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9:4
본격적인 다니엘의 기도가 시작되는 부분으로 현대의 많은 비평학자들은 이 기도문의 형식이 에스라와 느헤미야에 나타난 기도의 형식과 유사하다는 점(4절-느 1:5;9:32;7/8절-스 9:7;느 9:34/14절-느 9:33/15절-느 1:10;9:10)에서 이를 포로기 이후에 편집된 삽입구로 이해한다(Hitzig, Ewald, Berth). 그러나 그 기도 대부분의 근간이 구약의 포로기 이전의 문서라는 점(7, 8절-대하 32:21;시 44:16;렘 7:19/9절-시 130:4/11절-대하 12:7;34:21;렘 42:18;44:6;나 1:6 등)을 고려해 볼 때, 타당성이 희박하다. 본절은 신 7:9에 의거한 것으로 느 1:5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한편 본절에는 구약에서 하나님을 칭하는 일차적 명칭들이 모두 나타나는 바, '여호와'(* , 야훼)는 신실한 언약 성취자로서의 하나님을, '(내) 하나님'(* , 엘로힘)은 전능하신 능력의 하나님을, '(주)하나님'(* , 아도나이)은 피조 세계에 대한 절대적인 주권을 가진 분으로서의 하나님을 각각 의미한다. 따라서 이러한 하나님의 칭호는 당시 유대 민족이 처한 내적, 외적 상황 곧 그들의 회개의 수용과 해방의 예언 성취를 염두에 둔 다니엘의 간절한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9:5
느 1:6, 7과 유사하다. 범죄하여...반역하여 - '범죄하여'(* , 하타)는 '빗나가다'란 문자적 의미로 하나님의 정하신 길에서 벗어난다는 소극적 의미에서의 죄를, '패역하며'(* , 아와)는 하나님을 거스르는 완악한 심성(잠 12:8)으로서의 내적 의미의 범죄를, '행악하며'(* , 라솨)는 '잘못 행하다'란 뜻으로 실제적 행위로서 하나님을 거스르는 외적 의미의 범죄를, '반역하여'(* , 마라드)는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며 훼방하는 적극적 의미의 번죄를 각각 가리키는 바, 본 구절에서 다니엘은 범죄의 점층적 묘사를 통해 이스라엘이 저지른 모든 종류의 죄악을 고백하고 있다.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언약의 징표로 주신 계명에서 떠났다는 의미로, 위에 언급된 모든 범죄를 포괄적으로 함축한다.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범죄는 하나님의 계명을 떠난 사실로 귀결된다.
=====9:6
본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5절의 범죄에 더해서 선지자를 통해 발한 하나님의 책망과 경고를 무시한 또 하나의 죄악을 부가한다(대하 36:16;느 9:30, 34).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범죄들은 불신앙과 이방의 우상 숭배로 나타나게 되며,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여기서는 열강의 침략과 포로됨)을 불러일으키는 직접적인 동인이 되었다(7절;렘 29:19).
=====9:7
공의는...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 스 9:7;렘 7:19에도 유사한 표현이 등장한다. 본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의 결과로 하나님의 '공의'(* , 체다카)에 근거하여 징벌을 받게 됨을 설명한다. 즉 이방인들의 손에 필연적으로 고난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Kranichfeld).
오늘날과 같아서 - 여기서 '오늘날'은 현재 다니엘을 비롯한 유대 민족이 체험하고 있는 고난의 시기, 곧 이방에서의 포로 생활을 의미한다. 유다 사람들과...이스라엘 -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은 모두 남왕국 유다에 대한 강조적 표현이며(렘 4:4;11:2;17:25), '이스라엘'은 북왕국 이스라엘 열 지파를 가리키는 바, 이는 하나님의 선민되었던 이스라엘 백성 모두를 지칭하는 말이다. 한편 '가까운 데...먼 데 있는 자'는 모두 이스라엘을 기준으로 해서 들이 포로되어 살고 있는 멀고 가까운 이방의 장소를 가리킨다.
=====9:8-10
8, 10절은 각각 7저로가 6절의 반복으로 백성들의 죄와 그 죄의 결과로서 그들이 당하고 있는 수욕을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9절)과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할 수 있는 자격이 전혀 없으나, 오직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긍휼과 사유) 속에서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느 9:17). 한편 '긍휼'(* , 라함)의 일차적 의미는 여성의 '자궁'(창 49:25)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언약 백성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마치 수태한 여성이 자신의 태아에 갖는 무한한 애정과 같음을 알 수 있다.
=====9:11
백성들의 범죄와 그에 대한 필연적인 징벌이 하나님의 확고한 언약 성취적 측면에서 15절까지 기술된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범죄는 (1) 율법을 범함(11절), (2) 불순종(11절), (3) 회개치 않음(13절) 등 세 가지로 요약된다. 이 저주가 우리에게...맹세대로 되었사오니 - 여기서 '내렸으되'(* , 나타크)는 특별히 심판적 징벌의 수여라는 의미로 쓰여진 것이다(창 19:24;렘 7:20;42:18;44:6). 한편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저주'는 율법을 범하고 불순종한 자들에게 심판적 위협으로 주어진 레 26:14 이하와 신 28:15 이하의 내용을 지시하는 바, 본 구절은 그 저주의 맹세가 이미 자신들에게 성취 되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9:12
우리를 재판하던 재판관 - 여기서 '재판관'은 법정적 의미에서의 재판을 집행하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백성들의 치리를 담당한 왕들이나 백성의 장 또는 방백 등 국가의 관료들을 가리키는 것이다(시 2:10;148:11). 온 천하에...없나이다 - 느부갓네살에 의한 예루살렘 함락이 성전과 모든 성읍의 철저한 파괴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이는 여타 국가나 도시에 대한 느부갓네살의 침략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극렬한 행위였음이 분명하다(Thomson).
=====9:13
우리의 죄악을...간구치 아니하였나이다 - 여기에 기록된 '주의 진리'에 대해 혹자는 축복의 언약이든 저주의 맹세든 간에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신실함으로 해석한다. 이에 따르면 본 구절은 백성들이 당하는 현재의 고난이 이미 제시된 언약 파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적 결과라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얻기 위해 회개했어야함 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Hitzig, Thomson). 그러나 델리취(Delitzsch)는 좀더 희망적인 측면에서 '주의 진리'를 말씀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 계획으로 해석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징벌이 궁극적으로 온전한 구원을 성취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 섭리임을 깨닫고, 구원의 조속한 성취를 위해 미리 회개했어야 한다는 주장이라고 본다.
=====9:14
이 재앙을 간직하여 두셨다가 - 문자적으로 '여호와께서 (우리의) 악을 계속해서 주의 깊게 살피시다가'란 뜻이다(렘 1:12;31:28;44:27).
=====9:15
강한 손으로...명성을 얻으신 - 렘 32:20, 21에 근거한 것으로 느 1:10;9:10과 유사한 본 구절은 곧 애굽에서의 해방을 통해 현재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열방 중에 나타내셨다는 의미를 가진다. 한편 다니엘은 이전 선조들의 이러한 애굽에서의 해방이 하나님의 급작스런 사역의 일환으로 시행된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께서 그들의 족장들과 언약 하신 언약의 구체적인 성취란 점(출 32:13;사 63:16)을 근거로 해서 유대 민족의 회복이라는 예레미야 예언 언약의 확고한 성취를 간구하고 있다(Delitzsch).
=====9:16
겸손한 죄의 고백과 하나님의 공의 찬양에 이어 다니엘은 이제 그 죄에 대해 시행된 하나님의 진노의 징벌 제거와 이스라엘의 구속을 간구한다. 주의 공의를 좇으사...떠나게 하옵소서 - 여기서 '공의'(* , 치드코테카)는 '공의들'이란 복수형으로 나타나는 바, 이는 보편적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공의를 가리킨다기 보다는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그 동안 이스라엘에게 행하셨던 신실한 언약의 이행, 곧 과거에 이스라엘에게 베푼 많은 은혜의 증거들을 지시한다(Delitzsch, Behrmann). 따라서 본 구절은 그러한 전례대로(출애굽 등) 이스라엘의 해방과 회복을 언약한 예레미야의 예언을 성취시켜 달라는 다니엘의 간구이다. 사면에 있는 자에게...받음이니이다 - 7절 주석을 참조하라.
=====9:17-19
본문 기도의 핵심은 이스라엘의 구속과 회복인 바, 다니엘은 그 구원의 유일한 근거를 하나님 자신, 곧 하나님 스스로 행하실 그 이름의 영광스런 회복(17절-'주를 위하여', 18절-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 19절-'주 자신을 위하여')에서 찾고 있다(8-10절 주석 참조). 주의 얼굴 빛을...비취시옵소서 - 시 80:3, 7, 19과 유사한 문구이다. 여기서 '주의 얼굴 빛'은 곧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 그리고 구원의 소망을 가리키는 것이다(9절).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 - 이는 단순히 주의 이름을 따라 사람드레게 불리워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 예루살렘에 그 이름을 두시고 하나님의 처소로 택하셨다는 의미이다(렘 7장, Delitzsch). 우리의 의를...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오니 - 이스라엘 구원의 유일한 근거가 곧 택한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와 사랑에 있다는 사실을 재삼 확증하고 있다(8-10절 주석 참조). 주여 들으소서...행하소서 - 곧 회개의 구원의 간구('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를 열납하시고 그에 대해 조속히 응답하시기를('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바라는 다니엘의 간절한 신앙 자세가 점층적인 '주여...소서'라는 삼중 반복 속에서 여실하게 보여지고 있다.
=====9:20,21
다니엘의 신실한 기도에 대한 신속한 하나님의 응답이 가브리엘을 통해 전달된다.
내가 말하여 기도할 때에 -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신속한 응답을 보여주는 구절로(창 24:15, '말을 마치지 못하여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요구 이전에 이미 우리의 필요함을 아시는 분임을 알게 한다(Thomson).
이전 이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 여기서 '이전 이상'은 8장에 언급된 '을래 강변의 이상'을 가리키는 바, 그 때에 본 천사 가브리엘(8:15, 16)이 지금 다시 다니엘 앞에 나타났다. 한편 8:15의 '사람'(* , 가베르)과는 달리 본 구절의 '사람'이 일반적인 남자를 지칭하는 '이쉬'(* )로 쓰여진 것은 천사 가브리엘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마치 옆에 있는 사람과 대화하듯 그렇게 다니엘과 애기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에서 기인된 듯하다(눅 24:4;행 1:10). 빨리 날아서...내게 이르더니 - 여기서 '빨리...날아서'(* , 무아프 아프)의 '야아프'(* )는 원어상 '(신속하게) 날다'란 뜻과 '피곤하다', '지치다'란 뜻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본 구절은 이 두 의미 중 어느 것을 취하느냐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진다. 곧 전자의 의미에 의거할 때 이 말은 천사 가브리엘과 연관된 수식어로 개역 성경의 번역에서처럼 가브리엘이 신속하게 날아서 다니엘에게 왔다는 사실로 해석된다(Havernick, Hitzig, Jacchia 등의 랍비들). 이러한 의미에 의거해 초대 교회의 교부들은 천사들이 날개가 있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또한 후자의 의미를 취할 때 이 말은 인간 다니엘에게 연관되는 것으로서, 다니엘이 저녁 제사 때까지 계속되는 기도로 말미암아 몹시 지쳐서 피곤한 상태에 있을 때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났다는 의미로 해석된다(Delitzsch, Thomson, Kliefoth, Gesenius 등). 이중 어느 견해가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다. 한편 여기서 '저녁 제사 드릴 때'의 '제사'(* , 민하)가 피없는 소제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이는 유대인들이 오후 3, 4시 경에 정규적으로 드리는 소제 때의 시간을 가리킨다(민 28;4).
=====9:22
지혜와 총명 - 곧 8:16, 17의 '깨달아 알다'와 동일한 의미로 이 환상의 의미를 깨닫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수여하신 영적 통찰력을 가리킨다.
=====9:23
네가 기도를...명령이 내렸으므로 -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신속한 응답을 보여준 21절의 '내가...기도할 때에'란 말보다 가일층 그 의미가 강된 구절로, 하나님게서는 다니엘이 동족의 구원과 회복을 위해 기도하려고 마음 먹은 순간부터 다니엘의 중심을 미리 아시고 그 응답을 준비하셨다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하나님의 순간적인 응답은 곧 70년에 걸친 이스라엘의 고난과 연단을 끝내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고 재확증하기 위한 것으로 그 택한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간절한 연민과 긍휼이 반영된 것이다.
은총을 입은 자(* , 하무도트) - 문자적으로는 '아름다운 자', '보배로운 자'란 뜻으로 곧 하나님이 보시기에 다니엘의 신앙이 귀한 보배와 같이 아름답게 여겨졌음을 알게 한다. 한편 에발트(Ewald)는 '지극히 사랑받는 자'(God loves you very much, LB)로 번역한다.
=====9:24
본절에서 마지막 27절까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국가적, 영적 구속을 이루실 기간인 '칠십 이레' 곧 490년의 기간에 관한 언급인데, 이 칠십 이레의 환상은 (1) 포로 귀환과 성전 중건 (2) 그리스도의 성육신 (3) 로마 군대에 의한 성전의 파괴 (4) 적그리스도의 출현 등 이스라엘의 운명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있을 대환난 때의 종말론적 사건이 예시되어 있다.
칠십 이레 - '이레'(* , 솨부임)는 '일곱'의 의미로 '한 주간'(week)을 가리키기도 하나(10:2), 때로는 1년(year)의 의미로 쓰여지기도 한다(창 29:27). 따라서 여기서의 '칠십 이레'는 문자적으로 70주간을 의미하는 바, 이를 날 수로 계산하여 하루를 1년으로 간주하면 490년이란 기간이 도출되는데 이 기간은 세계 역사와 종말론적인 사건들의 기본적인 틀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기간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이 '칠십 이레'는 다시 '7이레와 62이레'(25절 주석 참조), '중간 공백기'(26절 주석 참조)와 '한 이레'(27절 주석 참조)로 구분된다. 허물이 마치며...기름부음을 받으리라 - 메시야의 사명이 언급되고 있는 본 구절은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임할 하나님 나라에서 성취될 사건을 묘사한 것으로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정치적 메시야 개념과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 본 구절의 여섯 항목 중 처음의 세 가지는 죄의 제거와 연관된 것으로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으로 단번에 성취되었으며(히 9:26), 나중의 세 가지는 의(義)의 회복과 관계된 것으로 그리스도의 초림에 의해 이말 하나님 나라에서 적극적으로 성취되어 가다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결될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계시된 것이다(사 61:1-3).
=====9:25
일곱 이레 - 이 기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견해들이 있다. (1) 아닥사스다 왕 제 20년(B.C. 458)의 포로 귀환 때부터 예루살렘을 재건한 490년 동안을 가리킨다는 견해(세대주의자), (2) 상징적 해석으로 고레스의 칙령이 발표된 때(B.C. 536)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까지를 의미한다는 견해, (3) 고레스 원년(B.C. 536)에 왕의 칙령으로 바벨론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이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인도 아래 제2성전인 스룹바벧 성전과 예루살렘 성벽을 수축한(B.C. 444)기간을 가리킨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 일롭 이레가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를 지시하는 것이란 점에서 (3)의 견해가 가장 타당한 것으로 여겨진다(대하 36:22, 23;스 1:1-4;사 44:28).
육십 이 이레 - 이 또한 세 가지 견해로 대별된다. (1) 에스라 때부터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까지를 가리킨다는 견해(세대주의자), (2) 그리스도의 성육신 때부터 적그리스도의 출현 곧 신약의 교회 시대까지를 의미한다는 견해, (3) 일롭 이레에 연속되는 기간으로 예루살렘 성전이 수축된 때(B.C. 444)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B.C. 4)까지의 기간을 가리킨다는 견해 등이다. 그러나 여기서 또한 '일곱 이레'의 주석과 이 육십 이 이레가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와 연관된다는 점에서 (3)의 견해가 타당하다. 따라서 이 기간은 이스라엘의 영적 쇠퇴기로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시작될 하나님 나라의 준비 기간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곤란한 동안에...해자가 이룰 것이며 - 여기서 '곤란한 동안'은 고레스의 칙령(B.C. 536)에 의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대 백성들이 성전의 중건과 성벽을 수축할 때 겪었던 이방인들의 방해와 핍박이 있었던 시기를 가리킨다(느 4, 6장). 한편 '거리'(* , 레호브)는 '넓은 사거리'란 뜻으로 '넓은 광장'을, '해자'(* , 하루츠)는 성벽을 따라 그 외곽에 파놓은 도랑을 각각 의미하는 바, 본 구절은 그러한 이방인들의 방해와 핍박에도 불구하고 성전과 성벽의 수축이 온전하게 성공될 것임을 예시하는 말이다.
=====9:26
육십 이 이레 후에...없어질 것이며 - 이는 곧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25절) 그리고 최종적인 '한 이레'(27절) 사이에 있을 중간 공백기를 가리키는 바, 이는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의 의미에 비추어 그리스도의 성육신 이후부터 적그리스도의 출현 직전까지를 의마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기간 동안에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로마의 디도(Titus, A.D. 79-81) 장군에 의한 예루살렘의 멸망과 성전 훼파 사건(A.D. 70) 등이 발생하게 된다. 특별히 이 기간에 대한 정확한 언급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으며 곧 이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달려 있는 사항이다. 장차 한 왕의...훼파하려니와 - 여기서 '한 왕'은 후일 로마의 황제로 즉위한(A.D. 79) 디도 장군을 지칭하는 것으로 본 구절은 그에 의한 예루살렘 점령과 성전 훼파 사건을 가리킨다(A.D. 70). 그의 종말은...작정되었느니라 - 감람 산 강화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예언(마 24:7-22)과 일치하는 부분으로 고통과 고난, 전쟁이 이 세대 끝까지 게속될 것이며 그 종국에는 엄청난 대환난이 찾아오게 될 것을 예시한다. 한편 여기서의 '그의 종말'은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적 징벌을 가리키는 것으로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종말의 의미를 아니다.
=====9:27
한 이레 - 세계 역사의 종말, 곧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있을 7년 대환난 시대로 적그리스도의 활동 시기를 가리킨다. 적그리스도는 이 7년 대환난기의 절반인 3년 반 동안 성도들과 언약을 맺고 그들의 신앙의 자유를 허락하나('그가 장차...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 후반 부인 3년 반의 기간에(7:25 주석 참조)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어 그들과 맺은 언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며 본격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핍박하게 될 것이다('그 이레의 절반에...아지리라').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러한 적그리스도의 활동은 일시적인 것으로 종국에는 그리스도의재림으로 영원한 멸망의 볼못에 던져질 것이다(7:21, 22 주석 참조;마 24:15;살후 2:4;계 11-13장). 한편 '많은 사람'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 중 특별한 참되고 신실한 성도들을 가리킨다(사 53:11, 12).
이레의 절반에 - 위의 주석에서 언급되고 있는 7년 대환난기의 후반부 3년 반을 가리킨다(계 11:2, 9).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 이는 이미 적그리스도의 전형으로 제시된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기사에서 보여진 바 있다(8:11 주석 참조).
강포하여...설 것이며 - '강포하여 미운 물건'(* , 쉬쿠침 메쇼멤)은 문자적으로 '가증한 황폐케 하는 자'란 뜻으로 11:31, 12:11의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과 유사한 표현인 바, 이는 곧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때에 관한 감란 산 강론에 밝힌 '멸망을 가져오는 가증한 것'(마 24:15)과 같은 적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곧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란 문장과 함께 독수리가 날개를 펴고 신속하게 먹이를 낚아채는 모습처럼 성도들에 대한 적그리스도의 핍박과 박해가 이루어질 것임을 묘사한 것이다(Thomson).
또 이미 정한...쏟아지리라 - 여기서 '황폐케 하는 자'는 곧 적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본 구절은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지는 그 정한 종말의 때까지 적그리스도가 계속 그 세력을 과시하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 한편 적그리스도에 쏟아질 하나님의 진노는 계 16장에 언급되었다. 특히 여기서의 '정한 종말'은 적그리스도의 완전한 궤멸이 성취될 아마겟돈 전쟁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세상 나라와 하나님 나라의 갈등과 궁극적인 결과들을 환상의 형태로 계시한 전장
(8장)에 이어서 본장은 다니엘의 기도와 칠십 이레의 환상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다.
이제까지의 환상의 내용은 주로 이방인들과 관련된 계시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본장부터는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하여 관심한다. 이러한 변화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하여 관심한다. 이러한 변화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관계가 이 세
상의 역사를 움직이는 중심적인 틀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특이하게도 본장에서는 다
니엘의 간절한 기도를 묘사함으로써 이스라엘의 회복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
을 실감나게 한다. 이러한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본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
성되어 있는데, 다니엘의 기도를 소개하고 있는 전반부(1-19절)와 칠십 이레의 환상을
묘사하는 후반부(20-27절)로 구분된다.
한편, 본장의 서구(1-3절) 역사적, 개인적 상황을 동시에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형
식은 7장(1, 2장), 8장(1, 2절) 등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아러한 언급은 환상
의 내용인 하나님의 계시가 세상 역사 속에서 구체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주
기 위한 의도적 기록이다.
또한, 본장에는 환상 이전에 다니엘의 기도가 묘사되고 있는데, 주된 내용은 이스라
엘 백성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리 긍휼을 구하는 것이다. 이 사실은 이어서 나오는
환상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미래를 계시하는 내용임을 암시해준다. 즉 이스라엘의 미래
에 대한 다니엘의 기도의 응답으로서 칠십 이레의 환상이 계시되어진 것이다. 이러한
다니엘의 기도는 포로 시대 이후의 에스라(스 9:6-15)나 느헤미야(느 1:5-11 ;
9:6-38), 포로 시대 이전의 내용에 있어서 매우 비슷하다. 이 사실은 포로 시대 이전
이나 포로 시대 이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동일하게 죄악에 빠져 있음을 알려준다.
이상과 같은 본장은 다니엘의 통회 기도와 칠십 이레의 환상에 대해 주로 소개하고
있다. 특히 '칠십 이레의 환상'은 가브리엘 천사에 의해 직접 계시된 것으로 포로 귀
환과 성전 중건, 그리스도의 성육신, 로마 군대에 의한 성전의 파괴, 적그리스도의 출
현 등 이스라엘의 운명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있을 때의 종말론적 사건이
예언되어 있다.
또한 예레미야가 예언했던 70년 동안의 포로 생활에 대한 말씀을 깨닫고(렘 25:11,
12 ; 29:10)민족의 회복을 위해 기도한 다니엘의 모습을 통해 참된 기도에 대해 알려
주고 있다. 다니엘은 비록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다고 할지라도 민족의
죄에 대한 연대감을 느끼고 철저하게 통회하였다. 즉, 주위 사람들의 죄에 대해 민감
하게 반응하며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애통하며 간구했다. 이처럼 성도는 개인만을 생
각해서는 곤란하고, 시대적 죄악에 대해 책임을 느끼고 기도해야 한다.
1. 다니엘의 기도(9:1-19)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계시를 환상의 형태로 묘사한 데 이어서(7, 8장) 본 단락
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미래에 대한 다니엘의 기도를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다니엘의
기도는 바벧론 포로에서 자유케 될 것이라는 확신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그는 렘 25:11의 말씀을 통하여 바벧론 포로가 70년만에 끝날 것임을 알았다. 그런데
바벧론 포로라는 수치스러운 역사적인 상황이 끝나기 위해서는 백성들의 죄악이 처리
되어야 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회개의 기도를 드리게 되었다.
이처럼 간절한 다니엘의 기도를 쇄하고 있는 단락은 (1)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고
백하는 내용의 기도를 묘사하는 전반부(3-6절), (2) 하나미의 공의와 이스라엘 백성들
을 향한 징계를 묘사하는 중반부(7-14절), (3) 하나님의 긍휼을 호소하는 후반부
(15-19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본문은 민족의 회복과 미래
의 영광을 간구하는 다니엘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참된 성도의 자세를 극명하게 제시하
고 있다.
한편, 본문에 나타난 다니엘의 기도는 에스라의 기도와 내용과 주제에 있어서 유사점
이 있다. 이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구분 에스라(9:5-15) 다니엘(9:3-19)
회개의 자세 옷을 찢음 금식과 재를 무릅씀(9:3)
죄의 고백 허물이 커서 하늘에미침(9-6) 범죄,패역,행악,반역(9:5)
열조의 죄를 고백함 열조때로부터 죄가 비롯됨(9:7) 수욕이열조에게 돌아옴(9:8)
선지자의 말을 어김 땅에 대한 경고(9:11)를 어김 총체적 반역(9:6)
또한, 본 단락에서 나오는 '서책'(2절)은 단수로 쓰여 있지 않고 복수로 쓰였다. 이
사실은 다니엘이 렘 25:11의 말씀만을 보았다기보다는 예레미야 전체를 읽어내려 가다
가 본 구절을 발견했음을 알게 해준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꾸준히 연구하고 묵
상할 때 시대적 소명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본 단락은 특별히 기도에 있어서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알려준다.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패역한 세대일수록 참된 회개의 기도가 요청된다(3-6절). 다니엘이 처한 역사적
상황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과 반역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공의에 입각하여 징계
를 시행했던 중이었다. 사실 이스라엘의 지난 날의 죄악은 너무나 심각한 것이었다.
유다 전역은 우상 숭배로 물들었으며, 도적의 소굴과 같이 변하였다(렘 7:9-11). 그
러므로 하나님은 앗수르와 바벧론을 도구로 사용하여 멸망시킬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다니엘은 진정한 회개만이 이스라엘을 포로에서 귀환시킬 수 있음을
깨닫고 통회하기 시작하였다. 진실된 회개만이 하나니므이 용서와 새로운 회복을 가
능하게 한다.
(2)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7-14절). 하나님은 거룩하기
때문에 죄와 같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거듭하면 하나님
의 공의로우신 심판이 전개된다. 그래서 다니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고백하는
것이다. 사실 현재 당하고 있는 역사적 현실도 하나님의 공의에서 비롯된다. 특히
저자는 모세의 율법을 언급함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이 말씀에 근거함을 밝히고 있다(13
절). 이처럼 하나님의 공의를 인정하는 기도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악된 생활에서
돌이키게 하는 요인이 된다. 백성들의 이기적인 특혜 의식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공의
를 바라볼 때 바른 삶이 가능하게 된다.
(3)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15-19절).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죄를 발견할 것이다. 자신의 죄인됨을 발견하면 자연적
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게 된다. 다니엘은 자신의 죄악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
을 하나님 앞에서 적나라하게 발견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 때문에 살 소망이 없는 인간은 하나님에게 긍휼을 구할 때 온
전한 생명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눅 18:13).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을 가
장 잘 설명해 주는 표본이 된다(롬 3:23, 24).
2. 칠십 이레의 환상(9:20-27)
본 단락의 칠십 이레의 환상은 다니엘의 기도 다음에 나오는 내용이기 때문에 전에
있었던 환상들(2, 7, 8장)과 상관이 없는 것 같으나, 전장(8:16)에서 나타났던 '가브
리엘'이라는 천사가 본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점을 감안해 볼 때 밀접한 관련이 있음
을 알게 된다. 특히 그동안 환상(7, 8장)이 사건 중심이었던 데 반하여, 본 단락에서
는 기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본 환상이 이전의 환상들의 내용을 보
충해주는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다니엘이 이스라엘 백성
들의 회복과 관련하여 기도를 드리는 문맥에서 이 환상이 나타났다는 것은 다니엘이
이스라엘의 순간적인 회복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장차 이루어질 궁극적인 회복을
내다보고 있음을 제시해준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칠십 이레의 구체적인 환상이 계시되기 전의 다니엘과 가브리
엘의 만남을 묘사하고 있는 전반부(20-23절), (2) 칠십 이레의 구체적인 환상을 소개
하는 후반부(24-27절)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응 통하여 본문은 이스라엘
의 회복과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게시함으로써 포로민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제공하고 있다.
한편, 본 단락의 칠십 이레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그런데 먼저 제기되는 문제는
개영 성경의 '칠십 이레'에 대한 번역이다. 이 말은 보통 칠십 주간으로 이해되고 있
으나, 실제적인 의미는 문자 그대로 '칠십의 일곱들'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런데 원문을 살펴보면 70이라는 숫자보다 '7'이라는 숫자에 강조점이 있음을 발견하
게 된다. 왜냐하면 히브리 원문에서는 '칠십'이라는 숫자를 형용사처럼 '일곱'이라는
명사 뒤에 배열했다. 원래 히브리어 문법에서는 항상 수사가 명사보다 앞선다. 그런
데 여기서는 순서가 뒤바뀌었다. 이러한 사실은 규명되어져야 할 것이다. 이 7에 대
한 해석은 문자적인 의미로 보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본문 자체가 환상이라는 상징
적인 기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기간을 의미하기 보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세대주의자들처럼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490년으로 보기
는 어렵다. 그러므로 1차적으로는 고레스 원년부터 제2성전의 건축까지의 기간으로
보고, 2차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까지의 기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희년 제도를 생각할 때 보다 분명해진다(레 25장). 희년이란 7년씩 7
번 지나서 임하는 해(제50년)이다. 그때에는 모든 부채를 탕감시키고 종을 해방시키
며 모두 속량해준다. 그러므로 70이레의 마지막 해는 모든 것에 걸쳐서 가장 최대의
안식일이요 모든 종류의 부채를 탕감해 주는 기간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희년
에 이루어지는 일들이 암시적으로 예수 그리스노의 메시야적 사역을 보여 준다는 것은
감안할 때 메시야적 사역의 기간으로 보는 것이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 것이다.
이러한 본 단락은 구약 성경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 가장 분명하게 예
언된 부분 중의 하나이다. 이제 여기에 제시된 메시야 시대의 특징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메시야 시대에 있을 소극적인 측면들(24a절) : 이기서는 '허물이 마
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의 영속(永續)되는' 세 가지 측면이 드러나 있다. '허물, 죄,
죄악'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남으로 당한 저주의 성격을 확실하게 보여 준다. 이러한
부정적인 양상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완전히 제거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의 속죄 사역은 모든 죄를 단번에 완전히 처리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히 9:26). 구
약 시대에는 황소와 염소의 피로 해마다 제사를 드려 죄를 정결케 했으나, 예수님은
친히 제사장과 제물이 되셔서 죄를 기억하지도 못하는 것은 완벽하고 영원한 제사를
두렸다(히 10:4, 11, 14). 그러므로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필요가 없게 된 것이
다(히 10:8).
(2) 메시야 시대에 있을 적극적인 측면들(24b) : 메시야 시대에는 영원한 의가 드러
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는 일이 발생한다.
'의'란 죄가 제거된 이후에 일어나는 동시적인 현상이다. 죄가 제거되면 완전하고 영
원한 의를 덧입는다(롬 3:22). 그리고 이상과 예언이 성취되었기 때문에 영원한 의가기능한 것이다. 이상과 같은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온전히 이루어졌다(히 1:1,2). 또한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게 된다. 기름부음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을 다스리심으로 더욱 온전한 평화와 자유가 성취된다. 이는 그리스도의 초림에 의해 성취되었다가 재림으로 완성된다(사 61:1-3).
이와 같은 본장을 통하여 우리는 (1) 하나님의 백성들은 민족의 죄를 자신의 죄로 알고 참된 회개의 기도를 드려야 하며(느 1:4-11), (2) 이 세상의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랑야 함을 깨닫게 된다(롬 14:7, 8).
다니엘의 70 이레 예언과 계시록의 7년 환난 - 본 단락(20-27절)에 나오는 본서의
70 이레 예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특히 마지막 1이레는 계시록의 7년 대환난과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상존하므로 모든 견해를 나열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여기서는 대체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의견을 종합하여 도표로 정리하기로 한다.
본장은 70년 동안의 포로 생활에 대한 예레미야의 예언(렘 25:11, 12;29:10)을 깨달은 다니엘의 동족의 회복을 위한 통회의 기도(1-19절)와 칠십 이레의 환상(20-27절)이 기술된다. 한편 본장은 다니엘이 예레미야의 예언을 공식적인 교회의 인준 이전에 이미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것으로 인정하였다는 점(2절)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원년 - 여기서 '다리오'는 6:1에 이미 언급되었는 바, 메대의 마지막 왕이며 고레스의 장인인 키악사레스 2세를 가리킨다. 따라서 그의 부왕 '아하수에로'는 곧 '아스투아게스'(Astyages)이다. 또한 본 구절의 '원년'은 다리오의 메대 왕 즉위 원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가 고레스에게 메대의 통치권을 위임한 뒤, 바벨론 지역만의 섭정 왕으로 재즉위한 해인 B.C. 538년(또는 537)을 가리키는 것이다. 본 구절의 상세한 내용은 6:1 주석을 참조하라.
=====9:2
서책으로 말미암아...고하신 - 혹자는 다니엘이 깨달은 70년의 기간이 언급된 렘 29:1이 예레미야가 포로된 자들에게 보낸 서신이라는 점과 이미 왕하 19:14에서 단순한 서신 한 장에 '세파림'이란 복수형이 사용된 용례가 있다는 점에서 여기서의 복수형 '서책'(* , 세파림)을 렘 29장에만 관련된 한 장의 '서신'으로 이해한다(Thomson, Havernick, Kranichfeld). 그러나 이 70년에 관한 기록, 특히 본장과 같은 그 기간 동안의 이스라엘 땅의 황폐를 언급한 것이 렘 25장에 나타난다는 점에서 여기서의 '서책'은 일반적인 성경의 문서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다니엘이 이 문서들을 상고하며 기도하던 중에 예레미야의 예언을 발견하고 유대 민족의 포로 생활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을 깨달은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Delitzsch).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 년 만에 마치리라 - 다니엘이 예레미야의 예언을 깨닫고 기도하기 시작한 때(3-19절)는 1절에 의하면 B.C. 538년(537년)경으로 예루살렘이 멸망된 때(B.C. 586)로부터 약 50년이 경과한 시기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고토 귀환이 고레스 원년인 B.C. 536년에 이루어졌다는 점에 비추어 이 칠십 년의 최초 시점은 예루살렘 멸망 때가 아닌 다니엘이 포로로 잡혀간 때인 B.C. 605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9:3
서책으로 말미암아...고하신 - 혹자는 다니엘이 깨달은 70년의 기간이 언급된 렘 29:1이 예레미야가 포로된 자들에게 보낸 서신이라는 점과 이미 왕하 19:14에서 단순한 서신 한 장에 '세파림'이란 복수형이 사용된 용례가 있다는 점에서 여기서의 복수형 '서책'(* , 세파림)을 렘 29장에만 관련된 한 장의 '서신'으로 이해한다(Thomson, Havernick, Kranichfeld). 그러나 이 70년에 관한 기록, 특히 본장과 같은 그 기간 동안의 이스라엘 땅의 황폐를 언급한 것이 렘 25장에 나타난다는 점에서 여기서의 '서책'은 일반적인 성경의 문서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다니엘이 이 문서들을 상고하며 기도하던 중에 예레미야의 예언을 발견하고 유대 민족의 포로 생활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을 깨달은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Delitzsch).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 년 만에 마치리라 - 다니엘이 예레미야의 예언을 깨닫고 기도하기 시작한 때(3-19절)는 1절에 의하면 B.C. 538년(537년)경으로 예루살렘이 멸망된 때(B.C. 586)로부터 약 50년이 경과한 시기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고토 귀환이 고레스 원년인 B.C. 536년에 이루어졌다는 점에 비추어 이 칠십 년의 최초 시점은 예루살렘 멸망 때가 아닌 다니엘이 포로로 잡혀간 때인 B.C. 605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9:4
본격적인 다니엘의 기도가 시작되는 부분으로 현대의 많은 비평학자들은 이 기도문의 형식이 에스라와 느헤미야에 나타난 기도의 형식과 유사하다는 점(4절-느 1:5;9:32;7/8절-스 9:7;느 9:34/14절-느 9:33/15절-느 1:10;9:10)에서 이를 포로기 이후에 편집된 삽입구로 이해한다(Hitzig, Ewald, Berth). 그러나 그 기도 대부분의 근간이 구약의 포로기 이전의 문서라는 점(7, 8절-대하 32:21;시 44:16;렘 7:19/9절-시 130:4/11절-대하 12:7;34:21;렘 42:18;44:6;나 1:6 등)을 고려해 볼 때, 타당성이 희박하다. 본절은 신 7:9에 의거한 것으로 느 1:5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한편 본절에는 구약에서 하나님을 칭하는 일차적 명칭들이 모두 나타나는 바, '여호와'(* , 야훼)는 신실한 언약 성취자로서의 하나님을, '(내) 하나님'(* , 엘로힘)은 전능하신 능력의 하나님을, '(주)하나님'(* , 아도나이)은 피조 세계에 대한 절대적인 주권을 가진 분으로서의 하나님을 각각 의미한다. 따라서 이러한 하나님의 칭호는 당시 유대 민족이 처한 내적, 외적 상황 곧 그들의 회개의 수용과 해방의 예언 성취를 염두에 둔 다니엘의 간절한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9:5
느 1:6, 7과 유사하다. 범죄하여...반역하여 - '범죄하여'(* , 하타)는 '빗나가다'란 문자적 의미로 하나님의 정하신 길에서 벗어난다는 소극적 의미에서의 죄를, '패역하며'(* , 아와)는 하나님을 거스르는 완악한 심성(잠 12:8)으로서의 내적 의미의 범죄를, '행악하며'(* , 라솨)는 '잘못 행하다'란 뜻으로 실제적 행위로서 하나님을 거스르는 외적 의미의 범죄를, '반역하여'(* , 마라드)는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며 훼방하는 적극적 의미의 번죄를 각각 가리키는 바, 본 구절에서 다니엘은 범죄의 점층적 묘사를 통해 이스라엘이 저지른 모든 종류의 죄악을 고백하고 있다.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언약의 징표로 주신 계명에서 떠났다는 의미로, 위에 언급된 모든 범죄를 포괄적으로 함축한다.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범죄는 하나님의 계명을 떠난 사실로 귀결된다.
=====9:6
본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5절의 범죄에 더해서 선지자를 통해 발한 하나님의 책망과 경고를 무시한 또 하나의 죄악을 부가한다(대하 36:16;느 9:30, 34).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범죄들은 불신앙과 이방의 우상 숭배로 나타나게 되며,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여기서는 열강의 침략과 포로됨)을 불러일으키는 직접적인 동인이 되었다(7절;렘 29:19).
=====9:7
공의는...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 스 9:7;렘 7:19에도 유사한 표현이 등장한다. 본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의 결과로 하나님의 '공의'(* , 체다카)에 근거하여 징벌을 받게 됨을 설명한다. 즉 이방인들의 손에 필연적으로 고난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Kranichfeld).
오늘날과 같아서 - 여기서 '오늘날'은 현재 다니엘을 비롯한 유대 민족이 체험하고 있는 고난의 시기, 곧 이방에서의 포로 생활을 의미한다. 유다 사람들과...이스라엘 -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은 모두 남왕국 유다에 대한 강조적 표현이며(렘 4:4;11:2;17:25), '이스라엘'은 북왕국 이스라엘 열 지파를 가리키는 바, 이는 하나님의 선민되었던 이스라엘 백성 모두를 지칭하는 말이다. 한편 '가까운 데...먼 데 있는 자'는 모두 이스라엘을 기준으로 해서 들이 포로되어 살고 있는 멀고 가까운 이방의 장소를 가리킨다.
=====9:8-10
8, 10절은 각각 7저로가 6절의 반복으로 백성들의 죄와 그 죄의 결과로서 그들이 당하고 있는 수욕을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9절)과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할 수 있는 자격이 전혀 없으나, 오직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긍휼과 사유) 속에서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느 9:17). 한편 '긍휼'(* , 라함)의 일차적 의미는 여성의 '자궁'(창 49:25)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언약 백성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마치 수태한 여성이 자신의 태아에 갖는 무한한 애정과 같음을 알 수 있다.
=====9:11
백성들의 범죄와 그에 대한 필연적인 징벌이 하나님의 확고한 언약 성취적 측면에서 15절까지 기술된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범죄는 (1) 율법을 범함(11절), (2) 불순종(11절), (3) 회개치 않음(13절) 등 세 가지로 요약된다. 이 저주가 우리에게...맹세대로 되었사오니 - 여기서 '내렸으되'(* , 나타크)는 특별히 심판적 징벌의 수여라는 의미로 쓰여진 것이다(창 19:24;렘 7:20;42:18;44:6). 한편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저주'는 율법을 범하고 불순종한 자들에게 심판적 위협으로 주어진 레 26:14 이하와 신 28:15 이하의 내용을 지시하는 바, 본 구절은 그 저주의 맹세가 이미 자신들에게 성취 되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9:12
우리를 재판하던 재판관 - 여기서 '재판관'은 법정적 의미에서의 재판을 집행하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백성들의 치리를 담당한 왕들이나 백성의 장 또는 방백 등 국가의 관료들을 가리키는 것이다(시 2:10;148:11). 온 천하에...없나이다 - 느부갓네살에 의한 예루살렘 함락이 성전과 모든 성읍의 철저한 파괴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이는 여타 국가나 도시에 대한 느부갓네살의 침략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극렬한 행위였음이 분명하다(Thomson).
=====9:13
우리의 죄악을...간구치 아니하였나이다 - 여기에 기록된 '주의 진리'에 대해 혹자는 축복의 언약이든 저주의 맹세든 간에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신실함으로 해석한다. 이에 따르면 본 구절은 백성들이 당하는 현재의 고난이 이미 제시된 언약 파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적 결과라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얻기 위해 회개했어야함 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Hitzig, Thomson). 그러나 델리취(Delitzsch)는 좀더 희망적인 측면에서 '주의 진리'를 말씀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 계획으로 해석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징벌이 궁극적으로 온전한 구원을 성취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 섭리임을 깨닫고, 구원의 조속한 성취를 위해 미리 회개했어야 한다는 주장이라고 본다.
=====9:14
이 재앙을 간직하여 두셨다가 - 문자적으로 '여호와께서 (우리의) 악을 계속해서 주의 깊게 살피시다가'란 뜻이다(렘 1:12;31:28;44:27).
=====9:15
강한 손으로...명성을 얻으신 - 렘 32:20, 21에 근거한 것으로 느 1:10;9:10과 유사한 본 구절은 곧 애굽에서의 해방을 통해 현재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열방 중에 나타내셨다는 의미를 가진다. 한편 다니엘은 이전 선조들의 이러한 애굽에서의 해방이 하나님의 급작스런 사역의 일환으로 시행된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께서 그들의 족장들과 언약 하신 언약의 구체적인 성취란 점(출 32:13;사 63:16)을 근거로 해서 유대 민족의 회복이라는 예레미야 예언 언약의 확고한 성취를 간구하고 있다(Delitzsch).
=====9:16
겸손한 죄의 고백과 하나님의 공의 찬양에 이어 다니엘은 이제 그 죄에 대해 시행된 하나님의 진노의 징벌 제거와 이스라엘의 구속을 간구한다. 주의 공의를 좇으사...떠나게 하옵소서 - 여기서 '공의'(* , 치드코테카)는 '공의들'이란 복수형으로 나타나는 바, 이는 보편적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공의를 가리킨다기 보다는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그 동안 이스라엘에게 행하셨던 신실한 언약의 이행, 곧 과거에 이스라엘에게 베푼 많은 은혜의 증거들을 지시한다(Delitzsch, Behrmann). 따라서 본 구절은 그러한 전례대로(출애굽 등) 이스라엘의 해방과 회복을 언약한 예레미야의 예언을 성취시켜 달라는 다니엘의 간구이다. 사면에 있는 자에게...받음이니이다 - 7절 주석을 참조하라.
=====9:17-19
본문 기도의 핵심은 이스라엘의 구속과 회복인 바, 다니엘은 그 구원의 유일한 근거를 하나님 자신, 곧 하나님 스스로 행하실 그 이름의 영광스런 회복(17절-'주를 위하여', 18절-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 19절-'주 자신을 위하여')에서 찾고 있다(8-10절 주석 참조). 주의 얼굴 빛을...비취시옵소서 - 시 80:3, 7, 19과 유사한 문구이다. 여기서 '주의 얼굴 빛'은 곧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 그리고 구원의 소망을 가리키는 것이다(9절).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 - 이는 단순히 주의 이름을 따라 사람드레게 불리워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 예루살렘에 그 이름을 두시고 하나님의 처소로 택하셨다는 의미이다(렘 7장, Delitzsch). 우리의 의를...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오니 - 이스라엘 구원의 유일한 근거가 곧 택한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와 사랑에 있다는 사실을 재삼 확증하고 있다(8-10절 주석 참조). 주여 들으소서...행하소서 - 곧 회개의 구원의 간구('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를 열납하시고 그에 대해 조속히 응답하시기를('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바라는 다니엘의 간절한 신앙 자세가 점층적인 '주여...소서'라는 삼중 반복 속에서 여실하게 보여지고 있다.
=====9:20,21
다니엘의 신실한 기도에 대한 신속한 하나님의 응답이 가브리엘을 통해 전달된다.
내가 말하여 기도할 때에 -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신속한 응답을 보여주는 구절로(창 24:15, '말을 마치지 못하여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요구 이전에 이미 우리의 필요함을 아시는 분임을 알게 한다(Thomson).
이전 이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 여기서 '이전 이상'은 8장에 언급된 '을래 강변의 이상'을 가리키는 바, 그 때에 본 천사 가브리엘(8:15, 16)이 지금 다시 다니엘 앞에 나타났다. 한편 8:15의 '사람'(* , 가베르)과는 달리 본 구절의 '사람'이 일반적인 남자를 지칭하는 '이쉬'(* )로 쓰여진 것은 천사 가브리엘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마치 옆에 있는 사람과 대화하듯 그렇게 다니엘과 애기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에서 기인된 듯하다(눅 24:4;행 1:10). 빨리 날아서...내게 이르더니 - 여기서 '빨리...날아서'(* , 무아프 아프)의 '야아프'(* )는 원어상 '(신속하게) 날다'란 뜻과 '피곤하다', '지치다'란 뜻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본 구절은 이 두 의미 중 어느 것을 취하느냐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진다. 곧 전자의 의미에 의거할 때 이 말은 천사 가브리엘과 연관된 수식어로 개역 성경의 번역에서처럼 가브리엘이 신속하게 날아서 다니엘에게 왔다는 사실로 해석된다(Havernick, Hitzig, Jacchia 등의 랍비들). 이러한 의미에 의거해 초대 교회의 교부들은 천사들이 날개가 있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또한 후자의 의미를 취할 때 이 말은 인간 다니엘에게 연관되는 것으로서, 다니엘이 저녁 제사 때까지 계속되는 기도로 말미암아 몹시 지쳐서 피곤한 상태에 있을 때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났다는 의미로 해석된다(Delitzsch, Thomson, Kliefoth, Gesenius 등). 이중 어느 견해가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다. 한편 여기서 '저녁 제사 드릴 때'의 '제사'(* , 민하)가 피없는 소제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이는 유대인들이 오후 3, 4시 경에 정규적으로 드리는 소제 때의 시간을 가리킨다(민 28;4).
=====9:22
지혜와 총명 - 곧 8:16, 17의 '깨달아 알다'와 동일한 의미로 이 환상의 의미를 깨닫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수여하신 영적 통찰력을 가리킨다.
=====9:23
네가 기도를...명령이 내렸으므로 -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신속한 응답을 보여준 21절의 '내가...기도할 때에'란 말보다 가일층 그 의미가 강된 구절로, 하나님게서는 다니엘이 동족의 구원과 회복을 위해 기도하려고 마음 먹은 순간부터 다니엘의 중심을 미리 아시고 그 응답을 준비하셨다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하나님의 순간적인 응답은 곧 70년에 걸친 이스라엘의 고난과 연단을 끝내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고 재확증하기 위한 것으로 그 택한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간절한 연민과 긍휼이 반영된 것이다.
은총을 입은 자(* , 하무도트) - 문자적으로는 '아름다운 자', '보배로운 자'란 뜻으로 곧 하나님이 보시기에 다니엘의 신앙이 귀한 보배와 같이 아름답게 여겨졌음을 알게 한다. 한편 에발트(Ewald)는 '지극히 사랑받는 자'(God loves you very much, LB)로 번역한다.
=====9:24
본절에서 마지막 27절까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국가적, 영적 구속을 이루실 기간인 '칠십 이레' 곧 490년의 기간에 관한 언급인데, 이 칠십 이레의 환상은 (1) 포로 귀환과 성전 중건 (2) 그리스도의 성육신 (3) 로마 군대에 의한 성전의 파괴 (4) 적그리스도의 출현 등 이스라엘의 운명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있을 대환난 때의 종말론적 사건이 예시되어 있다.
칠십 이레 - '이레'(* , 솨부임)는 '일곱'의 의미로 '한 주간'(week)을 가리키기도 하나(10:2), 때로는 1년(year)의 의미로 쓰여지기도 한다(창 29:27). 따라서 여기서의 '칠십 이레'는 문자적으로 70주간을 의미하는 바, 이를 날 수로 계산하여 하루를 1년으로 간주하면 490년이란 기간이 도출되는데 이 기간은 세계 역사와 종말론적인 사건들의 기본적인 틀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기간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이 '칠십 이레'는 다시 '7이레와 62이레'(25절 주석 참조), '중간 공백기'(26절 주석 참조)와 '한 이레'(27절 주석 참조)로 구분된다. 허물이 마치며...기름부음을 받으리라 - 메시야의 사명이 언급되고 있는 본 구절은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임할 하나님 나라에서 성취될 사건을 묘사한 것으로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정치적 메시야 개념과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 본 구절의 여섯 항목 중 처음의 세 가지는 죄의 제거와 연관된 것으로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으로 단번에 성취되었으며(히 9:26), 나중의 세 가지는 의(義)의 회복과 관계된 것으로 그리스도의 초림에 의해 이말 하나님 나라에서 적극적으로 성취되어 가다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결될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계시된 것이다(사 61:1-3).
=====9:25
일곱 이레 - 이 기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견해들이 있다. (1) 아닥사스다 왕 제 20년(B.C. 458)의 포로 귀환 때부터 예루살렘을 재건한 490년 동안을 가리킨다는 견해(세대주의자), (2) 상징적 해석으로 고레스의 칙령이 발표된 때(B.C. 536)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까지를 의미한다는 견해, (3) 고레스 원년(B.C. 536)에 왕의 칙령으로 바벨론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이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인도 아래 제2성전인 스룹바벧 성전과 예루살렘 성벽을 수축한(B.C. 444)기간을 가리킨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 일롭 이레가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를 지시하는 것이란 점에서 (3)의 견해가 가장 타당한 것으로 여겨진다(대하 36:22, 23;스 1:1-4;사 44:28).
육십 이 이레 - 이 또한 세 가지 견해로 대별된다. (1) 에스라 때부터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까지를 가리킨다는 견해(세대주의자), (2) 그리스도의 성육신 때부터 적그리스도의 출현 곧 신약의 교회 시대까지를 의미한다는 견해, (3) 일롭 이레에 연속되는 기간으로 예루살렘 성전이 수축된 때(B.C. 444)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B.C. 4)까지의 기간을 가리킨다는 견해 등이다. 그러나 여기서 또한 '일곱 이레'의 주석과 이 육십 이 이레가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와 연관된다는 점에서 (3)의 견해가 타당하다. 따라서 이 기간은 이스라엘의 영적 쇠퇴기로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시작될 하나님 나라의 준비 기간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곤란한 동안에...해자가 이룰 것이며 - 여기서 '곤란한 동안'은 고레스의 칙령(B.C. 536)에 의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대 백성들이 성전의 중건과 성벽을 수축할 때 겪었던 이방인들의 방해와 핍박이 있었던 시기를 가리킨다(느 4, 6장). 한편 '거리'(* , 레호브)는 '넓은 사거리'란 뜻으로 '넓은 광장'을, '해자'(* , 하루츠)는 성벽을 따라 그 외곽에 파놓은 도랑을 각각 의미하는 바, 본 구절은 그러한 이방인들의 방해와 핍박에도 불구하고 성전과 성벽의 수축이 온전하게 성공될 것임을 예시하는 말이다.
=====9:26
육십 이 이레 후에...없어질 것이며 - 이는 곧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25절) 그리고 최종적인 '한 이레'(27절) 사이에 있을 중간 공백기를 가리키는 바, 이는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의 의미에 비추어 그리스도의 성육신 이후부터 적그리스도의 출현 직전까지를 의마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기간 동안에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로마의 디도(Titus, A.D. 79-81) 장군에 의한 예루살렘의 멸망과 성전 훼파 사건(A.D. 70) 등이 발생하게 된다. 특별히 이 기간에 대한 정확한 언급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으며 곧 이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달려 있는 사항이다. 장차 한 왕의...훼파하려니와 - 여기서 '한 왕'은 후일 로마의 황제로 즉위한(A.D. 79) 디도 장군을 지칭하는 것으로 본 구절은 그에 의한 예루살렘 점령과 성전 훼파 사건을 가리킨다(A.D. 70). 그의 종말은...작정되었느니라 - 감람 산 강화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예언(마 24:7-22)과 일치하는 부분으로 고통과 고난, 전쟁이 이 세대 끝까지 게속될 것이며 그 종국에는 엄청난 대환난이 찾아오게 될 것을 예시한다. 한편 여기서의 '그의 종말'은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적 징벌을 가리키는 것으로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종말의 의미를 아니다.
=====9:27
한 이레 - 세계 역사의 종말, 곧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있을 7년 대환난 시대로 적그리스도의 활동 시기를 가리킨다. 적그리스도는 이 7년 대환난기의 절반인 3년 반 동안 성도들과 언약을 맺고 그들의 신앙의 자유를 허락하나('그가 장차...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 후반 부인 3년 반의 기간에(7:25 주석 참조)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어 그들과 맺은 언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며 본격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핍박하게 될 것이다('그 이레의 절반에...아지리라').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러한 적그리스도의 활동은 일시적인 것으로 종국에는 그리스도의재림으로 영원한 멸망의 볼못에 던져질 것이다(7:21, 22 주석 참조;마 24:15;살후 2:4;계 11-13장). 한편 '많은 사람'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 중 특별한 참되고 신실한 성도들을 가리킨다(사 53:11, 12).
이레의 절반에 - 위의 주석에서 언급되고 있는 7년 대환난기의 후반부 3년 반을 가리킨다(계 11:2, 9).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 이는 이미 적그리스도의 전형으로 제시된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기사에서 보여진 바 있다(8:11 주석 참조).
강포하여...설 것이며 - '강포하여 미운 물건'(* , 쉬쿠침 메쇼멤)은 문자적으로 '가증한 황폐케 하는 자'란 뜻으로 11:31, 12:11의 '멸망케 하는 미운 물건'과 유사한 표현인 바, 이는 곧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때에 관한 감란 산 강론에 밝힌 '멸망을 가져오는 가증한 것'(마 24:15)과 같은 적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곧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란 문장과 함께 독수리가 날개를 펴고 신속하게 먹이를 낚아채는 모습처럼 성도들에 대한 적그리스도의 핍박과 박해가 이루어질 것임을 묘사한 것이다(Thomson).
또 이미 정한...쏟아지리라 - 여기서 '황폐케 하는 자'는 곧 적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본 구절은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지는 그 정한 종말의 때까지 적그리스도가 계속 그 세력을 과시하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 한편 적그리스도에 쏟아질 하나님의 진노는 계 16장에 언급되었다. 특히 여기서의 '정한 종말'은 적그리스도의 완전한 궤멸이 성취될 아마겟돈 전쟁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세상 나라와 하나님 나라의 갈등과 궁극적인 결과들을 환상의 형태로 계시한 전장
(8장)에 이어서 본장은 다니엘의 기도와 칠십 이레의 환상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다.
이제까지의 환상의 내용은 주로 이방인들과 관련된 계시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본장부터는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하여 관심한다. 이러한 변화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하여 관심한다. 이러한 변화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관계가 이 세
상의 역사를 움직이는 중심적인 틀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특이하게도 본장에서는 다
니엘의 간절한 기도를 묘사함으로써 이스라엘의 회복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
을 실감나게 한다. 이러한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본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
성되어 있는데, 다니엘의 기도를 소개하고 있는 전반부(1-19절)와 칠십 이레의 환상을
묘사하는 후반부(20-27절)로 구분된다.
한편, 본장의 서구(1-3절) 역사적, 개인적 상황을 동시에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형
식은 7장(1, 2장), 8장(1, 2절) 등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아러한 언급은 환상
의 내용인 하나님의 계시가 세상 역사 속에서 구체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주
기 위한 의도적 기록이다.
또한, 본장에는 환상 이전에 다니엘의 기도가 묘사되고 있는데, 주된 내용은 이스라
엘 백성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리 긍휼을 구하는 것이다. 이 사실은 이어서 나오는
환상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미래를 계시하는 내용임을 암시해준다. 즉 이스라엘의 미래
에 대한 다니엘의 기도의 응답으로서 칠십 이레의 환상이 계시되어진 것이다. 이러한
다니엘의 기도는 포로 시대 이후의 에스라(스 9:6-15)나 느헤미야(느 1:5-11 ;
9:6-38), 포로 시대 이전의 내용에 있어서 매우 비슷하다. 이 사실은 포로 시대 이전
이나 포로 시대 이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동일하게 죄악에 빠져 있음을 알려준다.
이상과 같은 본장은 다니엘의 통회 기도와 칠십 이레의 환상에 대해 주로 소개하고
있다. 특히 '칠십 이레의 환상'은 가브리엘 천사에 의해 직접 계시된 것으로 포로 귀
환과 성전 중건, 그리스도의 성육신, 로마 군대에 의한 성전의 파괴, 적그리스도의 출
현 등 이스라엘의 운명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있을 때의 종말론적 사건이
예언되어 있다.
또한 예레미야가 예언했던 70년 동안의 포로 생활에 대한 말씀을 깨닫고(렘 25:11,
12 ; 29:10)민족의 회복을 위해 기도한 다니엘의 모습을 통해 참된 기도에 대해 알려
주고 있다. 다니엘은 비록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다고 할지라도 민족의
죄에 대한 연대감을 느끼고 철저하게 통회하였다. 즉, 주위 사람들의 죄에 대해 민감
하게 반응하며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애통하며 간구했다. 이처럼 성도는 개인만을 생
각해서는 곤란하고, 시대적 죄악에 대해 책임을 느끼고 기도해야 한다.
1. 다니엘의 기도(9:1-19)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계시를 환상의 형태로 묘사한 데 이어서(7, 8장) 본 단락
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미래에 대한 다니엘의 기도를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다니엘의
기도는 바벧론 포로에서 자유케 될 것이라는 확신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그는 렘 25:11의 말씀을 통하여 바벧론 포로가 70년만에 끝날 것임을 알았다. 그런데
바벧론 포로라는 수치스러운 역사적인 상황이 끝나기 위해서는 백성들의 죄악이 처리
되어야 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회개의 기도를 드리게 되었다.
이처럼 간절한 다니엘의 기도를 쇄하고 있는 단락은 (1)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고
백하는 내용의 기도를 묘사하는 전반부(3-6절), (2) 하나미의 공의와 이스라엘 백성들
을 향한 징계를 묘사하는 중반부(7-14절), (3) 하나님의 긍휼을 호소하는 후반부
(15-19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본문은 민족의 회복과 미래
의 영광을 간구하는 다니엘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참된 성도의 자세를 극명하게 제시하
고 있다.
한편, 본문에 나타난 다니엘의 기도는 에스라의 기도와 내용과 주제에 있어서 유사점
이 있다. 이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구분 에스라(9:5-15) 다니엘(9:3-19)
회개의 자세 옷을 찢음 금식과 재를 무릅씀(9:3)
죄의 고백 허물이 커서 하늘에미침(9-6) 범죄,패역,행악,반역(9:5)
열조의 죄를 고백함 열조때로부터 죄가 비롯됨(9:7) 수욕이열조에게 돌아옴(9:8)
선지자의 말을 어김 땅에 대한 경고(9:11)를 어김 총체적 반역(9:6)
또한, 본 단락에서 나오는 '서책'(2절)은 단수로 쓰여 있지 않고 복수로 쓰였다. 이
사실은 다니엘이 렘 25:11의 말씀만을 보았다기보다는 예레미야 전체를 읽어내려 가다
가 본 구절을 발견했음을 알게 해준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꾸준히 연구하고 묵
상할 때 시대적 소명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본 단락은 특별히 기도에 있어서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알려준다.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패역한 세대일수록 참된 회개의 기도가 요청된다(3-6절). 다니엘이 처한 역사적
상황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과 반역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공의에 입각하여 징계
를 시행했던 중이었다. 사실 이스라엘의 지난 날의 죄악은 너무나 심각한 것이었다.
유다 전역은 우상 숭배로 물들었으며, 도적의 소굴과 같이 변하였다(렘 7:9-11). 그
러므로 하나님은 앗수르와 바벧론을 도구로 사용하여 멸망시킬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다니엘은 진정한 회개만이 이스라엘을 포로에서 귀환시킬 수 있음을
깨닫고 통회하기 시작하였다. 진실된 회개만이 하나니므이 용서와 새로운 회복을 가
능하게 한다.
(2)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7-14절). 하나님은 거룩하기
때문에 죄와 같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거듭하면 하나님
의 공의로우신 심판이 전개된다. 그래서 다니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고백하는
것이다. 사실 현재 당하고 있는 역사적 현실도 하나님의 공의에서 비롯된다. 특히
저자는 모세의 율법을 언급함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이 말씀에 근거함을 밝히고 있다(13
절). 이처럼 하나님의 공의를 인정하는 기도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악된 생활에서
돌이키게 하는 요인이 된다. 백성들의 이기적인 특혜 의식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공의
를 바라볼 때 바른 삶이 가능하게 된다.
(3)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15-19절).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죄를 발견할 것이다. 자신의 죄인됨을 발견하면 자연적
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게 된다. 다니엘은 자신의 죄악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
을 하나님 앞에서 적나라하게 발견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 때문에 살 소망이 없는 인간은 하나님에게 긍휼을 구할 때 온
전한 생명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눅 18:13).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을 가
장 잘 설명해 주는 표본이 된다(롬 3:23, 24).
2. 칠십 이레의 환상(9:20-27)
본 단락의 칠십 이레의 환상은 다니엘의 기도 다음에 나오는 내용이기 때문에 전에
있었던 환상들(2, 7, 8장)과 상관이 없는 것 같으나, 전장(8:16)에서 나타났던 '가브
리엘'이라는 천사가 본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점을 감안해 볼 때 밀접한 관련이 있음
을 알게 된다. 특히 그동안 환상(7, 8장)이 사건 중심이었던 데 반하여, 본 단락에서
는 기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본 환상이 이전의 환상들의 내용을 보
충해주는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다니엘이 이스라엘 백성
들의 회복과 관련하여 기도를 드리는 문맥에서 이 환상이 나타났다는 것은 다니엘이
이스라엘의 순간적인 회복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장차 이루어질 궁극적인 회복을
내다보고 있음을 제시해준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칠십 이레의 구체적인 환상이 계시되기 전의 다니엘과 가브리
엘의 만남을 묘사하고 있는 전반부(20-23절), (2) 칠십 이레의 구체적인 환상을 소개
하는 후반부(24-27절)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응 통하여 본문은 이스라엘
의 회복과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게시함으로써 포로민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제공하고 있다.
한편, 본 단락의 칠십 이레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그런데 먼저 제기되는 문제는
개영 성경의 '칠십 이레'에 대한 번역이다. 이 말은 보통 칠십 주간으로 이해되고 있
으나, 실제적인 의미는 문자 그대로 '칠십의 일곱들'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런데 원문을 살펴보면 70이라는 숫자보다 '7'이라는 숫자에 강조점이 있음을 발견하
게 된다. 왜냐하면 히브리 원문에서는 '칠십'이라는 숫자를 형용사처럼 '일곱'이라는
명사 뒤에 배열했다. 원래 히브리어 문법에서는 항상 수사가 명사보다 앞선다. 그런
데 여기서는 순서가 뒤바뀌었다. 이러한 사실은 규명되어져야 할 것이다. 이 7에 대
한 해석은 문자적인 의미로 보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본문 자체가 환상이라는 상징
적인 기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기간을 의미하기 보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세대주의자들처럼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490년으로 보기
는 어렵다. 그러므로 1차적으로는 고레스 원년부터 제2성전의 건축까지의 기간으로
보고, 2차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까지의 기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희년 제도를 생각할 때 보다 분명해진다(레 25장). 희년이란 7년씩 7
번 지나서 임하는 해(제50년)이다. 그때에는 모든 부채를 탕감시키고 종을 해방시키
며 모두 속량해준다. 그러므로 70이레의 마지막 해는 모든 것에 걸쳐서 가장 최대의
안식일이요 모든 종류의 부채를 탕감해 주는 기간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희년
에 이루어지는 일들이 암시적으로 예수 그리스노의 메시야적 사역을 보여 준다는 것은
감안할 때 메시야적 사역의 기간으로 보는 것이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 것이다.
이러한 본 단락은 구약 성경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 가장 분명하게 예
언된 부분 중의 하나이다. 이제 여기에 제시된 메시야 시대의 특징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메시야 시대에 있을 소극적인 측면들(24a절) : 이기서는 '허물이 마
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의 영속(永續)되는' 세 가지 측면이 드러나 있다. '허물, 죄,
죄악'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남으로 당한 저주의 성격을 확실하게 보여 준다. 이러한
부정적인 양상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완전히 제거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의 속죄 사역은 모든 죄를 단번에 완전히 처리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히 9:26). 구
약 시대에는 황소와 염소의 피로 해마다 제사를 드려 죄를 정결케 했으나, 예수님은
친히 제사장과 제물이 되셔서 죄를 기억하지도 못하는 것은 완벽하고 영원한 제사를
두렸다(히 10:4, 11, 14). 그러므로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필요가 없게 된 것이
다(히 10:8).
(2) 메시야 시대에 있을 적극적인 측면들(24b) : 메시야 시대에는 영원한 의가 드러
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는 일이 발생한다.
'의'란 죄가 제거된 이후에 일어나는 동시적인 현상이다. 죄가 제거되면 완전하고 영
원한 의를 덧입는다(롬 3:22). 그리고 이상과 예언이 성취되었기 때문에 영원한 의가기능한 것이다. 이상과 같은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온전히 이루어졌다(히 1:1,2). 또한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게 된다. 기름부음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을 다스리심으로 더욱 온전한 평화와 자유가 성취된다. 이는 그리스도의 초림에 의해 성취되었다가 재림으로 완성된다(사 61:1-3).
이와 같은 본장을 통하여 우리는 (1) 하나님의 백성들은 민족의 죄를 자신의 죄로 알고 참된 회개의 기도를 드려야 하며(느 1:4-11), (2) 이 세상의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랑야 함을 깨닫게 된다(롬 14:7, 8).
다니엘의 70 이레 예언과 계시록의 7년 환난 - 본 단락(20-27절)에 나오는 본서의
70 이레 예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특히 마지막 1이레는 계시록의 7년 대환난과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상존하므로 모든 견해를 나열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여기서는 대체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의견을 종합하여 도표로 정리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