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천하에 거하는 - 여기서 '천하'는 문자적 의미에서의 온 세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당시 느부갓네살의 통치 영역에 속한 지역 전체, 곧 동쪽으로는 엘람과 메데, 남쪽으로는 애굽, 서쪽으로는 지중해의 섬나라에까지 미치는 광할한 제국을 의미한다(렘 27:5, 6).
평강이 있을 지어다 - '평강'(* , 솰람)은 '육적 안전'이나 '물질적 풍요'란 일차적 의미 외에도 신앙적 차원에서의 '영적 안녕'의 의미를 함께 내포하며, 느부갓네살의 이러한 축복의 선언은 백성들의 번영과 안전에 대해 자신이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고 있다는 책임 의식을 엿보게 한다.
=====4:2
내게 행하신 이적과 기사 - 느부갓네살의 개인적인 신앙적 체험, 곧 본장의 사건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본문의 3장 연관설을 배격한다.
=====4:3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왕의 찬양이 시적 형태로 기술되고 있다(시 145:51). 특별히 여기서의 '그 나라'는 종말론적 성격의 하나님 나라를 지칭한다기보다는 하나님의 주권이 구체적으로 역사하는 이 땅 위의 나라를 의미하는데, 이 찬양은 인간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고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권병'(* , 솰레탄)은 '다스리다', '지배하다'란 뜻의 '쉘레트'(* )에서 파새오딘 말로, 여기서는 세상 왕국에 대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절대 주권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적...기사 - '이적'(* , 아토히)은 원어상 '전조', '조짐'이란 뜻으로 심판과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시의 적절한 간섭을 증거해주는 자연적 현상을 가리키며, '기사'(* , 티므호히)는 '놀라다', '신비하게 여기다', '의아해 하다'란 뜻의 '타마'(* )와 동의어로 하나님의 초자연적 사역을 가리킨다.
=====4:4
본격적인 사건의 전모가 시작되는 부분이다. 편히 있으며...평강할 때에 - 전자는 원어상 '조용히', '걱정없이', '안전하게'란 뜻의 '쉘레'(* )이며 후자는 '초록의', '무성하게 번성하는'이란 뜻으로 주로 신선하게 생동하는 식물에 대해 사용된(시 52:8;92:10) '라으난'(* )이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본절은 느부갓네살이 통치 후반기에 정복 사역과 통치 기반 확충의 결과로 되어진 국내외적 반영과 평안의 상태를 만끽하고 있었음을 알게 한다(Delitzsch).
=====4:5
한 꿈을 꾸고...두려워하였으되 - 꿈을 두려워했다는 사실은 곧 그 꿈이 느부갓네살에게 있어 심상치 않은 경고의 의미를 가졌다는 사실임을 알 수 있다. 또한 평안한 중에 꿈으로 경고를 받았다는 사실은 본장에 언급된 사건의 돌발적인 성격을 잘 부각시킨다(Delitzsch).
생각하는 것(* , 하르호린) - 이는 원어상 '숙고하다', '착상하다'란 뜻을 가지며, 여기서는 꿈에 대한 과도한 반응의 결과로 나타난 여러 가지 상상들을 말한다(Delitzsch).
뇌 속으로 받은 이상(異像) - 2:28과 동일한 말로, 꿈을 통해 받은 환상을 가리킨다(7:15).
=====4:6,7
2:2, 3과 동일한 상황이나 단지 그 꿈을 그들에게 고했다는 사실만 예외적으로 언급된다. 70인역(LXX)에서는 본문과 8-10절 모두 생략되어 있다.
=====4:8
그 후에 다니엘이 내 앞에 들어왔으니 - 이미 다니엘의 능력을 알고 있는 왕이 그를 다른 박사들 다음에 최종적으로 부른 사실에 대해 많은 이견들이 있으나, 아마도 이미 2장에서 세상 제국의 소멸을 언급한 전례 때문에 불길한 대답을 두려워하여 의도적으로 가장 나중에 부른 듯하다(Delitzsch, Kranichfeld).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자 - 느부갓네살의 다신론적인 이방 신관에서(2:47;3:25) 비롯된 말로, 왕은 이미 2장의 사건을 통해서 다니엘이 탁월한 신적 예언의 은사를 받은 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편 데오도숀(Theodotion)역은 '거룩한 신들의 영'에서 복수형 '신들'(* , 엘라힌)을 하나님의 온전한 능력에 대한 강조형으로 보아 이를 '하나님의 거룩한 영(성령)'으로 번역하나, 본 구절이 느부갓네살의 개인적 체험 이전의 상황이라는 점에 비추어 타당하지 않다. 느부갓네살은 2, 3자의 사건 이후에도 여전히 이방적 신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3:29 주석 참조).
=====4:9
박수장 벧드사살 - '박수장'(* , 라브 하르투마야)은 문자적으로 '박수들의 우두머리'란 뜻이다. 이 명칭을 다니엘에게 사용한 이유에 대해서는 (1) 공식적인 직함으로, 박수들의 장(2:48 주석 참조)이기 때문이라는 견해(Delitzsch), (2) 지혜와 해몽의 능력에 있어 다른 박사들보다 탁월하다는 점에서 특별한 권위의 호칭으로 그를 불렀다는 견해(Thomson) 등이 있다.
=====4:10
본절부터 18절까지 꿈의 상세한 내용이 기록된다.
내가 본즉 - 여기서 '보다'라는 말은 특별하게 '정신적으로 꿈구다'란 뜻의 '하자'(* )가 사용되었다. 원래 이 말은 성경의 용례상 새로운 내용으로서의 전환이나 새로운 환상에 접하게 될 때 자주 사용되던 관용구로서, 본장의 묵시 문학적 특성을 잘 드러내준다.
땅의 중앙에 한 나무가 있는데 - '땅의 중앙'은 자신들의 나라가 곧 세상의 중심(omphalos)이라고 생각하던 고대의 세계관을 반영한 말로, 여기서는 느부갓네살 자신의 제국인 바벨론을 의미한다. 한편 '한 나무'는 곧 느부갓네살을 지칭하는데(22절), 성경에서 나무는 곧잘 큰 제국의 통치자들에 대한 비유적인 용례로 쓰여졌다(겔 17:22 니하;19:10;31:3).
=====4:11
그 나무가 자라서...하늘에 닿았으니 - '자라서'(* , 레바)와 '견고하여지고'(* , 테키프)는 원어상 완료형의 시제를 가지는데, 그 나무가 이미 하늘에 닿을 만큼 자란 상태를 가리킨다. 이는 느부갓네살의 제국이 가장 절정기에 이른 사실과 함께 그의 인간적 세력과 신적 교만이 극에 달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20, 22절).
땅 끝에서도 보이겠고 - '땅 끝'은 10절의 '땅 중앙'과 대조되는 말로 여기서는 바벧론을 중심으로 누부갓네살의 통치권이 닿는 광활한 지역을 가리키며, 본 구절은 그의 세력이 크게 확장된 사실을 알려준다.
=====4:12
애굽 왕 바로의 권세를 나타낸 겔 17:22;19:10;31:3의 레바논 백향목 비유와 유사한 본절은 바벨론 제국의 장엄함과 수려함('잎사귀는 아름답고'), 제국의 풍요함('열매는...식물이 될만하고'), 많은 나라의 종속과 제국에의의탁('들질승이...깃들이고')등을 의미한다(겔 31:3 주석 참조). 한편 혈기 있는 자는군소 국가들을 상징하는 '들짐승과 새'보다 더 세부적인 의미에서 느부갓네살의 세력권 내에 속한 모든 사람들을 지시한다.
=====4:13
급작스런 상황의 반전이 이루어지는데, 제국의 강성함으로 인한 느부갓네살의 교만과 이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가 계시된다.
한 순찰자, 한 거룩한 자 - '순찰자'(* , 이르)는 성경에서 이곳에만 유일하게 나타나는 단어로 원어상 '깨어 있다', '망보다'란 뜻의 '우르'(* )에서 파생된 말로 '지키는 자'란 의미이다(아 5:2;말 2:12). 이 아람어는 바벨론 시대의 이방 종교에서 흔히 사용되던 말로, 실체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자(messenger, NIV), 곧 거룩한 천사(God's angels, LB)이다(LXX). 따라서 느부갓네살의 꿈은 계시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재삼 주지시키고 있다.
=====4:14,15
그가 소리 질러 외쳐서 이처럼 이르기를 - 하나님의 천사는 이 일에 대한 하나님의 듯을 전달하는 전달자(17절)고 나타날 뿐 이 사역의 직접적인 실행자로 등장하지 않는다(Havernick, Hitzig). 이 사역의 주체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70인역(LXX)은 계 14:18과 비교해 명령의 실행자인 또 다른 천사를 언급하고 있다. 그 나무를 베고...쫓아내라 - 느부갓네살이 정신병으로 권좌에서 쫓겨날 것을 의미한다. 나무가 쓰러질 때 그곳에 깃든 많은 짐승들이 달아나는 것처럼, 그가 없는 제국은 많은 나라와 백성들에 대한 구속력을 상실하게 된다.
그 뿌리의 그루터기를 땅에 남겨 두고 -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병에서 회복되어 잃어버린 왕권과 영화를 회복하게 됨을 암시한다.
철과 놋줄로 동이고 - 혹자는 본 구절을 나무가 갈라지고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하나님의 최소한의 은총(Stuart, Langerke)으로 보며, 문자적으로는 미친 사람을 묶어놓는다는 의미(Jerome) 등으로 본다. 그러나 본 구절은 영적인 측면에서 그의 상태가 쇠줄에 묶인 것처럼 온전하지 못하고 혼란한 상태에 빠지게 될 것(욥 36:8;시 107:10)이며, 야수처럼 취급되어 자유로운 활동과 독자적인 생활이 철저하게 금지될 것(눅 12:46)임을 가리킨다(Delitzsch, Hengstenberg, Kliefoth). 그것이 하늘 이슬에...그 분량을 같이 하리라 - 70인역(LXX)은 간략하게 '땅의 짐승들과 더불어 산지에서 소처럼 풀을 뜯어 먹게 하라'로 번역한다.
=====4:16
그 마음은 변하여...짐승의 마음을 받아 - 성경의 용레상 '마음'(* , 레바브)은 전인격의 좌소로 일컬어진다. 따라서 인격의 좌소가 짐승의 마음과 대체되었다는 것은 모든 사고와 행동이 짐승과 같아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정신병으로 짐승처럼 광야에서 유랑하게 될 사실을 예시하는 것이다(33절). 한편 가절의 '받아'(* , 이트예히브)는 원어상 미완료형인 '주어질 것이다'란 듯으로 그러한 사역의 주체가 바로 하나님이심을 암시하고 있다.
일곱 대 - 여기서 '때'로 번역된 '이다닌'(* )은 원어상 '정해진 시간'이나 '알맞은 때'란 뜻이다. 따라서 정확하게 어느 단위의 시간을 의미하는 지는 단정할 수 없으나, 많은 학자들은 '년'(年)으로 이해한다(LXX, Hitzig). 한편 이 '일곱 때'는 상징적으로 교만에 대한 징계와 연단을 목적으로 느부갓네살에게 주어진 신적 형벌의 기간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4:17
순찰자들의 명령대로요 - '명령'(* , 게제라트)은 권위 있는 자에 의해서 주어지는 변경시킬 수 없는 결정을 가리키는데, 하나님 뜻의 확고한 선재적 성취를 강조하는 말이다. 한편 본절의 '거룩한 자'는 문장 구조상 별도의 천사들을 일컫는 것처럼 기술되었으나, 이는 13절에서와 같이 순찰자에 대한 동의 반복이다(Deltizsch, Zockler). 인생으로...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알게 하려 - 여기서 '지극히 높으신 자'(* , 솰리트 일라이아)는 원어상 '최고의 지배자'란 뜻으로 느부갓네살이 아직도 모든 상황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깨닫지 못한 채 그저 막연한 신의 게시로만 알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한편 본절의 고백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생사 화복에 대한 결정권이 곧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밝히는 것이다(2:21).
=====4:18
밝히 말하라(* , 에마르) - 문자적으로는 '분명하게 선언하다', '정확하게 보고하다'란 뜻으로서, 그 꿈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싶어하는 느부갓네살의 조급한 심정을 잘 나타낸다.
=====4:19
놀라 벙벙하며 마음이 범민하여 - '놀라 벙벙하며'(* , 에쉬토맘)는 원어상 '아찔할 정도로 놀라다', '마비되다'란 뜻이다. 다니엘은 신하로서 왕의 심판에 대한 계시를 듣고 연민의 정과 아울러 심각한 내면적 갈등을 느꼈다. 이러한 사실은 '마음의 번민'이라는 표현과 느부갓네살의 신하로서 그에게 드리는 절절한 충정이 잘 반영된 하반절 '그 꿈은...응하기를 원하나이다란 다니엘의 말에서 더욱 확실하게 나타난다. 한편 본절의 '얼마 동안'(* , 케솨아 하다)은 원어(아람어)상 '한 시간'이란 뜻(Ewald, Hitzig, Kranichfeld)이나 그보다는 짧은 시간의 경과라는 의미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Gesenius, Bevan, Delitzsch).
=====4:20-23
느부갓네살이 꾼 꿈이 다니엘의 입을 통해 동일하게 반복된다(10-16절 주석 참조).
=====4:24
명정(命定)하신 것(* , 게제러트) - 17절의 '명령'과 동의어로, 여기서는 곧 변개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필연적으로 성취될 하나님의 뜻을 가리킨다(17절 주석 참조). 곧 본 구절은 느부갓네살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가 확실하게 성취될 것임을 분명하게 증거하는 것이다.
=====4:25,26
22절과 함께 다니엘에 의한 본격적인 꿈의 해석이다(14-17절 주석 참조). 그 때에...아시리이다 - 느부갓네살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는 개인적인 영역과 아울러 인간 전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줄을...견고하리이다 - 여기서 '하나님'은 원어상 그 직접적 호칭인 '엘로힘'(* , 3:26)으로 쓰여지지 않고 '하늘'을 뜻하는 '쉐마야'(* )로 쓰여졌는데, 이는 본서에 자주 등장하는 '지극히 높으신 자'(* , 일라야)와 함께 '하늘의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이다(Delitzsch). 한편 '왕이 깨달은 후에야...견고하리이다'란 말은 느부갓네살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 목적을 분명게 제시해주는 구절로, 느부갓네살이 제국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시인하고 자신의 교만을 회개할 때에 다시 회복될 것임을 제시한다.
=====4:27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의 7년에 걸친 고통스러운 기간을 예시해 보이면서, 이러한 연단이 유예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통치를 하라는 간절한 충고로 이 해석을 마무리 한다. 공의를 행함으로...죄악을 속하소서 - 본절에서 '속하소서'란 개역 성경의 번역은 자칫 행위를 통한 죄의 대속과 구원이라는 오해를 야기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의원어 '페라크'(* )는 '단절하다'(break off, KJV;renounce, NIV)란 뜻으로서 단순히 '죄악된 것과 단절하고 그곳에서 떠나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본절은 느부갓네살로 하여금 이제까지의 불의한 상태를 변화시켜 '공의'(* , 체다카)의 시행 곧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통치(Delitzsch, Hanvernick, Kliefoth)와 가난한 자에 대한 긍휼을 시행함으로써 이전의 죄악된 상태와 단절하고 떠날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4:28
이제까지 언급된 예언의 성취를 확인하는 말로서 느부갓네살의 선언에 의해 다니엘의 해석의 진실성과 역사성이 입증된다.
=====4:29
열 두 달이 지난 후에 - 이는 곧 왕의 꿈에 대한 다니엘의 해석과 충고가 있은 지 1년이 지난 대를 가리킨다는 점에서,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로 하여금 다니엘의 충고(27절)대로 그의 자세를 변화시킬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주셨음을 암시한다.
바벨론 궁 지붕에서 거닐새 - '궁의 지붕'은 왕이 산책할 수 있는 평평한 지붕을 가리킨다(삼하 11:2). 그러나 원전상 '궁의 지붕'(* , 헤칼 말르쿠타)이 단순하게 '궁정'이란 뜻만을 가진다는 점에서, 혹자는 느부갓네살이 성 안의 성벽과 망대를 돌아보았다는 뜻으로 이해한다(thomson). 곧 그가 장엄한 왕궁의 성벽과 망대를 둘러 본 후에 교만한 말(30절)을 했으리라고 보는 것이다.
=====4:30
이 큰 바벨론은...아니냐 하였더니 - '이 큰 바벨론'은 느부갓네살이 궁 안에서 바라본 도성의 모습을 가리키는데, 676구역으로 구성된 바벨론의 장엄함과 위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고대 국가에 있어서 왕의 권세는 그 수도의 장엄함과 곧잘 비교되었다는 점에서 그가 바라 본 수도의 웅장함은 자신이 누리는 영화의 상징과 같은 것이었다(Thomson). 따라서 본절은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의 경고를 망각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왕국의 장엄함을 자신의 공적으로만 돌리는 교만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4:31,32
이 말이 오히려 나 왕의 입에 있을 때 - 곧 '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란 듯으로 하나님의 징계의 신속성을 강조한다.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 여기서 '하늘'(* , 쉐마야)은 26절의 경우와 같이 '하나님'을 지칭하는 말이다(26절 주석 참조). 다라서 본절에 언급된 '(경고의) 소리'가 곧 '하나님의 음성'임을 시사한다. 이러한 사실은 느부갓네살의 정신병이 자연 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기인한 것임을 암시한다.
나라의 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 여기서 '떠났느니라'(* , 아다트)은 원어상 완료형으로 '취하다', '가져가다'란 뜻으로(has been taken from, NIV) 왕권의 박탈이 하나님에 의한 것임을 명백하게 제시함과 동시에 왕권의 박탈이 이미 성취된 것임을 암시한다(그 동시에...응하므로, 33절). 편 32절은 15, 17, 25, 26절 주석을 참조하라.
=====4:33
소처럼...새 발톱과 같았었느니라 - 자신을 짐승으로 생각하고 짐승의 생활 방식을 따르게 되는 질병을 '인사니아 조안 트로피카'(insania zoan thropica)라고 명명하는데, 아마도 느부갓네살이 이러한 정신병적 증세를 보인 듯하다(Delitzsch).
=====4:34
하나님의 은총으로 7년간의 정신병에서 다시 회복된 느부갓네살의 겸허한 하나님 찬양이 마지막 37절까지 이어진다.
그 기한이 차매 - 구루터기를 남겨두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투영된 구절로 느부갓네살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의 제한된(약속된) 기간인 7년이 다했음을 보여준다.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 문자적으로는 '나의 눈을 하늘을 향해 들었다'로서,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의 도움을 바란 사실(시 121:1, 2;123:1-3)을 시사한다. 즉 왕의 그 회개와 하나님을 인정하는 자세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Delitzsch). 한편, 완고한 느부갓네살의 변화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결과로 볼 수 있다(딤전 2:4;벧후 3:9).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 그가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고 회개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응답하셨음이 드러난다. 여기서 '총명'(* , 만다)은 '지혜', '명철', '이성', '지식' 등의 다양한 뜻을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다운 온전한 의식 상태를 포괄적으로 의미하는 것이다(sanity, NIV, LB). 또한 '돌아온지라'(* , 투브)는 '회복되었다'(was restored, NIV)란 뜻으로, 느부갓네살의 의식이 다시 온전한 인간의 상태로 회복되었음을 알게 한다.
영생하시는 자(* , 레하 알레마) - 죽음 앞에 무력한 인간과는 달리 영존하시는 초월자 곧 하나님을 지칭하는 말이다.
=====4:35
땅의...없는 것같이 여기시며 - 인간들의 수가 아무리 많고 세력이 강대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한낱 미약한 존재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는 의미로 하나님의 절대성과 전능하심을 강조한다. 하늘의 군사...행하시나니 - 여기서 '하늘의 군사'는 하늘에 있는 영적 존재, 곧 '천사'들을 일컫는 말로서, '땅의 거민'과 함께 하나님의 주권이 인간의 영역뿐 아니라 영계를 포함한 전우주적인 것임을 시사한다. 손을 금하든지...할 자가 없도다 - 하나님은 당신의 절대 주권 속에서 피조 세계의 간섭을 전혀 받지 않으시는 유일한 전능자라는 사실을 설파한다(롬 9:20).
=====4:36
내 총명이...내 위엄과 광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 총명의 회복이 34절에 이어 다시 반복된 것은 총명의 회복과 왕권의 회복에 대한 밀접한 연관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여진다(Delitzsch). 여기서 '위엄'은 곧 왕으로서의 위엄있는 모습을, '광명'(* , 지위)은 원어상 '쾌활한 낯빛'이란 뜻으로 모든 질병과 근심이 사라진 온전한 영적, 육적 상태를 비유하는 바, 본 구절은 외적 형태로 보여진 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말이다(Delitzsch). 나의 모사들과...다시 세움을 입고 - 여기서 '조회하니'(* , 예바온)의 문자적 의미는 '찾다', '구하다', '요청하다'이다. 따라서 본 구절은 자신이 병을 앓은 동안에 국정을 대신 맡아 수행하던 모든 관리들이 다시 이전처럼 모든 국사를 보고하고 결재를 요청했다는 뜻으로서 다시 바벨론의 왕으로 세워졌다는 감사의 고백이다.
=====4:37
하늘의 왕 - 하나님의 위대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성경에서 유일하게 이곳에만 쓰여진 표현이며 다신론적인 이방 신관에서 유래되었다. 한편 칼빈(Calvin)은 이러한 표현과 하반절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낮추심니라'는 고백을 볼 때, 느부갓네살이 자신에게 임한 징계를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면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에 이르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결국 본절에 드러난 느부갓네살의 회개는 생명에 이르는 참된 회개로 인정하기가 어렵다(Delitzsch). 그의 일이...의로우시므로 - '진실하고'(* , 케쇼트)는 히브리어 '에메트'(* )와 동의어로 '분명하고 확실한 진리'를 가리킨다. 또한 '의로우시므로'(* , 딘)는 히브리어 '미쉬파트'(* )와 동의어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를 가리킨다. 따라서 '그의 행위'는 인간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섭리와 간섭이 온전히 공의롭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전장(3장)의 분위기는 돌변적이었다. 절박한 환경에 처해 있었는가하면(3:19-23)
다시 환희의 순간을 맞이하는 상황(3:26-30)이 전개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돌연적인
사건은 주 축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이방인이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느부갓네살
왕과, 하나님 백성들의 대표로 볼 수 있는 다니엘의 세 친구가 긴장관계를 형성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생동감 있게 그려내고 잇다. 이러한 동적인 분위기를 보이고
있는 전장과는 달리 본장은 다시 정적인 분위기로 바뀌게 된다. 왜냐하면 느부갓네살
왕이 두 번째 꿈을 꾸게 되었기 때문이다. 왕은 다니엘의 해몽대로 7년 동안 미친 자
되어 들짐승과 같이 생활하다가 급기야 회개하고 회복되었다. 그 후에 왕은 인생의
섭리자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조사를 통해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1)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해석하기 위한 노력이 불가능함을 보여주는
부분(1-7절), (2) 왕이 다니엘에게 자신의 꿈을 소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부분
(19-27절), (4) 꿈이 왕에게 그대로 성취된 사실을 묘사하고 있는 부분(28-37절) 등으
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본장은 인간이 자신의 위치로 인하여 교만하
면 결국 수치를 당하게 되고, 회개하면 다시 회복될 수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한편, 본장에 나타난 두 번째 꿈은 전에 꾸었던(2장) 꿈과 여러 가지 측면에서 비교
될 수 있다. 이를 도표로 만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구 분 2:31-45 4:10-27
꿈의 성격 이 세상 전체의 미래에 관한계시 왕 자신의 미래에 관한계시
꿈의 배경 큰 신상(2:31) 나무(4:10)
꿈의 해석자 다니엘 다니엘
꿈의 실현여부 미래의 약속에서 이루어질것임 왕 당대의 이루어짐
꿈을 통한 교훈 세상나라의 허구성과 하나님나라 모든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의 여원성을 계시하기 위함(2:44) 비롯된 것임을 깨우치기위함
(4:26)
또한, 본장의 내용은 느부갓네살 왕 개인에게 집중되어 있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이방인에게도 미칠 것임을 암시하는 동시에 이 세상의 역사가 하나님의 주권
아래있음을 밝히려는 것이다. 그래서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의 회심과 구원의 초점
을 맞추어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결국 이제까지의 내용 속에서 나타난 느부갓네살
의 하나님 체험이 주로 주변적인 사건과 관련된 간접적인 체험인 반면, 본장에서 체험
은 개인적으로 간섭하신 직접적인 성격이라 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은 본장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사상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내용이다(17, 25, 32절). 이러한 사상은 예레미야의 예언(렘 27:15-18). 욥의 고백
(욥 12:13-25), 시편 기자의 고백(시 145편), 바울 서신(롬 13:1) 등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 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왕들에게 권위를 부여해 주실 뿐만 아니라, 교만하
고 방자히 행동할 때 왕위를 폐하기도 하신다. 그러므로 왕은 자기 마음대로 나라를
다스리는 절대 권력의 소유자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권위를 위임받은 대리 통치자
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망각한 느부갓네살 왕은 7년 동안 정신병자가
되어 이리저리 방황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본장에서 절대자의 위치를 넘보는 인간의
반역을 절대로 간과하지 않으심을 보여주셨다. 아울러 회개하고 돌아오면 다시 받아
주심도 보여주신다.
1. 왕의 선포와 꿈의 내용(4:1-18)
본 단락은 앞 부분(1-3절)에서 본 기록의 목적이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 왕에게 행
한 징계와 기적을 알리기 위함임을 밝힌 후에 이어서 느부갓네살의 두 번째 꿈의 내용
을 소개하고 있다. 왕은 큰 나무에 대한 꿈을 꾼 후에 여러 술사들을 불러 해몽하려
고 했으나 불가능해지자, 마지막으로 다니엘을 불렀다. 왜냐하면 이전에 다니엘이 큰
신상에 관한 자신의 꿈을을 정확하게 해석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꿈이 다니
엘에 의하여 희석되어진다는 사실은 왕의 꿈이 단순한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가
담긴 것임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본문은 (1) 하나님에 대한 느부갓네살의 고백이 드러나는 전반부(1-3절), (2)
느부갓네살이 다니엘을 부르는 중반부(4-9절), (3) 왕의 꿈의 내용이 기술된 후반부
(10-18절)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본 단락의 초두에 나오는 느부갓네살의 고백은 전장(3장)에 연결된 것으로 이
해하는 견해도 있다. 왜냐하면 여기에 나타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이적과 기사'
(2절)는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불에서 구원받은 사건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대 역본들처럼 새로운 사건의 시작인 4장에 연결시키는 것이 더욱 자연스
럽다.
또한, 본 단락에서 뛰어나는 두드러진 신학적인 특징은 '영'에 대한 안급이다(8, 9,
18절 ; 5:11, 14). 특히 그 영을 왕이 '거룩한 신들의 영'이라고 밝힘으로써, '영'의
존재에 있어서의 독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언급은 구약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
의 영, 즉 성령의 역사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민 24:2 ; 삼하 23:2
; 대하 15:1 ; 20:14 24:20). 그런데 이전에 '성령의 역사는 계시를 깨닫게 하는 사
역과 밀접한 관련리 있는 정적인 사역임을 보여주고 있다(요 16:13). 그러므로 구약
의 역사에서 성령의 역사를 과소 평가하는 것은 정당한 이해가 아니다. 이제 구약의
역사 속에서 나타났던 성령의 역사와 신약에 나타난 성령의 역사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구 분 구약 성경 신약 성경
계시의 해석적인 사역 단4:8,9,18;삼하23:2 요16:13;딤후3:16
사람에게 임재하는 사역 대하15:1 ;20:14;24:20 마16:13;딤후3:16
공동체를 인도하는 사역 사 63:10-14 행 13:2, 4
출31:3;민11:25;삿3:10; 눅1:15;4:1 행2:4;4:8;7;
성령 충만에 대한 표현 6:34;14:6,19;삼상10:10 55; 11:24 ; 13:9
;16:13;19:20
이상과 같은 본 단락의 중심 사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은 이방인도 구원하신다. 느부갓네살 왕은 이방인의 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부갓네살 왕의 고백(2, 3절)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그러한 고백이었다. 뿐
만 아니라 이후의 내용은 왕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이방
인에 대한 구원은 오래전부터 하나님의 계획계획 속에 있었다(창 12:1-3 ; 룻
4:18-22). 그러나 구약의 역사속에서는 이방인의 구원이 현저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주로 개인에 관한 것이었지 공동체적인 회심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신약에서
도 예수님의 사역 속에서는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다가 성령의 강림(행 2:1-13) 사건
이후에 이방인의 구원의 역사 속에서 중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
한 사실은 이방인의 구원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
다.
(2) 하나님이 세상 나라를 다스리신다(13-18절). 세상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능력으
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통치권자들에게 일시적으로
다스리시는 권세를 위임하신 것뿐이다. 피상적으로 보면 인간들이 세운 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 같으나, 본질적으로는 하나님의 통치권 아래 존재하에 된다(롬 13:1).
이런 점에서 하나님은 꿈을 통해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린다'고 계시
하셨다(17절). 사실 인간 세상은 잠정적으로 주어진 체계일 뿐(계 21:1) 하나님 나라
가 완성되면 사라지게 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역사가 오직 하나님의 주권 아래
레 있음을 자각하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해야 한다.
2. 꿈에 대한 해석과 역사적 성취(4:19-37)
느부갓네살의 꿈의 내용을 소개한 전 단락(4-18절)에 이어 본문은 꿈에 대한 해석
(19-27절)과 현실(28-37절)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다니엘은 처음에 꿈을 해석하는
것에 대해 주저하지만(19절) 왕의 간청과 하나님의 계시라는 판단으로 인해 해몽한다.
이 꿈은 그대로 역사속에서 성취된다. 저자는 왕의 꿈이 실현되는 장면을 간결한 필
체로 묘사하면서, 하나님께서 인간의 역사를 운행하시는 분임을 강조하고 있다. 아울
러 1장부터 전개된 느부갓네살 왕의 이야기가 행복한 결말로 마무리됨으로써 매우 희
망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잇다.
이러한 본장은 (1) 꿈에 대한 해석이 드러나고 있는 전반부(19-27절), (2) 꿈의 역사
적 실현이 언급되고 있는 후반부(28-37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좀더 세분하
면, (까) 왕의 번성에 대해 예고하는 부분(19-22절), (다) 왕의 폐위와 회복을 나타내
는 부분(23-27절), (따) 왕의 당대에 꿈이 성취되었음을 알리는 부분(28-33절), (마)
왕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병에서 회복되어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부분
(34-37절) 등과 같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본문은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섭리자이심을 강력하게 제시하고 있다.
한편, 본 단락에 대해 비평학자들은 쿰란 제4동굴에서 발견된 아람어 파편 '나보니두
스의 기도'의 초기 형태라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본문에 기록된 느부갓네살 왕이 바
벧론 마지막 왕 나보니두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느부갓네살 사건과 '나보니두스 기
도'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나보니두스의 피부병은 느부갓네살의 정신 착란보
다 증상이 훨씬 가볍고, 서술 배경도 테에마 시이며 익명의 유대인 조언자는 나보니두
스에게 충고를 했다기보다는 편지를 썼으며, 통치 범위도 앗수르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나보니두스 파편은 단지 후대의 전설적 형태일 뿐
다니엘서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성경을 역사적으로 문서에 의거하여 재편한
다는 사실을 대단히 불경스럽고 위험한 사상이다.
이제 본 단락의 주도적인 사상을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공적으로 인해 자만에 빠
졌다(28-30절). 현재 느부갓네살은 심판을 피하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그
러나 일시적으로 교만을 절제했을지라도 자신을 신뢰하는 죄된 마음이 근본적으로 치
료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세운 아름다운 수도에 대해 깊은 경외심을 가지고 있었
고, 방어 요새의 철저함에 대해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능력과 권세로써 바벧
론에 군림했다고 자랑했다(30절). 이러한 사실은 느부갓네살에게 놀라운 능력을 드러
내사신(2, 3장) 하나님께 대한 배은 망덕이요 반역이다. 또한 그가 이전에 드렸던 여
호와에 대한 감사와 찬양과도 배치된다(2:47 ; 3:28). 하나님은 이처럼 자신의 능력
을 과대하게 신뢰하는 느부갓네살에게 공의에 입각하여 보응하실 것이다.
(2)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으로부터 징벌을 받아 비참한 지경에 놓이게 되었다(31-33
절). 다니엘은 풀무불에 던져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벱느고의 구원을 보고도(3:28) 깨
닫지 못하고 여전히 교만에 빠진 느부갓네살 왕에게 7년 동안 폐위되어 들판과 짐승과
동일한 상태에 놓여질 것임을 예언하였다(32절). 백성들도 왕의 모습을 보고 경멸과
혐오의 시선을 보내게 된다. 이처럼 하나님의 주권에 순복하지 않고 자시 고집대로
행동하는 자는 처절한 심판을 경험하게 된다.
(3)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의 은혜로 정신이 회복되었을 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반응
을 보였다. (까) 하나님을 전우주의 가자원하고 전능한 통치자로 찬양하였다(34a절).
한때 자신의 능력을 과대 평가했던 왕은 오직 하나님만을 무한한 권능을 가진 우주의
통치자임을 인정하였다. (다) 하나님을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 왕국의 통치자로 찬양
했다(34b절). 아무리 강대한 나라일지라도 반드시 멸망한다. 오직 역사의 주관자이
신 하나님이 세우시는 나가만이 영원하다는 것이다. (따)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보잘
것 없는 존재에 불과함을 고백했다.(35절). 당시 세게 최강대국의 통치자로서 왕의
위세는 당당했엇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진노를 경험하고 나서 하나님의 절대 주
권을 깨닫고(롬 9:20) 인생의 연약함과 허무함을 철저히 드러내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본장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겨훈을 깨닫게 된다. (1) 하나님은 세계의 주인이시며 통치자이시다. (2)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징계하신다(잠3:34). (3)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통하여 영광받으시기를 기뻐하신다.
천하에 거하는 - 여기서 '천하'는 문자적 의미에서의 온 세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당시 느부갓네살의 통치 영역에 속한 지역 전체, 곧 동쪽으로는 엘람과 메데, 남쪽으로는 애굽, 서쪽으로는 지중해의 섬나라에까지 미치는 광할한 제국을 의미한다(렘 27:5, 6).
평강이 있을 지어다 - '평강'(* , 솰람)은 '육적 안전'이나 '물질적 풍요'란 일차적 의미 외에도 신앙적 차원에서의 '영적 안녕'의 의미를 함께 내포하며, 느부갓네살의 이러한 축복의 선언은 백성들의 번영과 안전에 대해 자신이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고 있다는 책임 의식을 엿보게 한다.
=====4:2
내게 행하신 이적과 기사 - 느부갓네살의 개인적인 신앙적 체험, 곧 본장의 사건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본문의 3장 연관설을 배격한다.
=====4:3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왕의 찬양이 시적 형태로 기술되고 있다(시 145:51). 특별히 여기서의 '그 나라'는 종말론적 성격의 하나님 나라를 지칭한다기보다는 하나님의 주권이 구체적으로 역사하는 이 땅 위의 나라를 의미하는데, 이 찬양은 인간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고백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권병'(* , 솰레탄)은 '다스리다', '지배하다'란 뜻의 '쉘레트'(* )에서 파새오딘 말로, 여기서는 세상 왕국에 대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절대 주권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적...기사 - '이적'(* , 아토히)은 원어상 '전조', '조짐'이란 뜻으로 심판과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시의 적절한 간섭을 증거해주는 자연적 현상을 가리키며, '기사'(* , 티므호히)는 '놀라다', '신비하게 여기다', '의아해 하다'란 뜻의 '타마'(* )와 동의어로 하나님의 초자연적 사역을 가리킨다.
=====4:4
본격적인 사건의 전모가 시작되는 부분이다. 편히 있으며...평강할 때에 - 전자는 원어상 '조용히', '걱정없이', '안전하게'란 뜻의 '쉘레'(* )이며 후자는 '초록의', '무성하게 번성하는'이란 뜻으로 주로 신선하게 생동하는 식물에 대해 사용된(시 52:8;92:10) '라으난'(* )이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본절은 느부갓네살이 통치 후반기에 정복 사역과 통치 기반 확충의 결과로 되어진 국내외적 반영과 평안의 상태를 만끽하고 있었음을 알게 한다(Delitzsch).
=====4:5
한 꿈을 꾸고...두려워하였으되 - 꿈을 두려워했다는 사실은 곧 그 꿈이 느부갓네살에게 있어 심상치 않은 경고의 의미를 가졌다는 사실임을 알 수 있다. 또한 평안한 중에 꿈으로 경고를 받았다는 사실은 본장에 언급된 사건의 돌발적인 성격을 잘 부각시킨다(Delitzsch).
생각하는 것(* , 하르호린) - 이는 원어상 '숙고하다', '착상하다'란 뜻을 가지며, 여기서는 꿈에 대한 과도한 반응의 결과로 나타난 여러 가지 상상들을 말한다(Delitzsch).
뇌 속으로 받은 이상(異像) - 2:28과 동일한 말로, 꿈을 통해 받은 환상을 가리킨다(7:15).
=====4:6,7
2:2, 3과 동일한 상황이나 단지 그 꿈을 그들에게 고했다는 사실만 예외적으로 언급된다. 70인역(LXX)에서는 본문과 8-10절 모두 생략되어 있다.
=====4:8
그 후에 다니엘이 내 앞에 들어왔으니 - 이미 다니엘의 능력을 알고 있는 왕이 그를 다른 박사들 다음에 최종적으로 부른 사실에 대해 많은 이견들이 있으나, 아마도 이미 2장에서 세상 제국의 소멸을 언급한 전례 때문에 불길한 대답을 두려워하여 의도적으로 가장 나중에 부른 듯하다(Delitzsch, Kranichfeld).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자 - 느부갓네살의 다신론적인 이방 신관에서(2:47;3:25) 비롯된 말로, 왕은 이미 2장의 사건을 통해서 다니엘이 탁월한 신적 예언의 은사를 받은 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편 데오도숀(Theodotion)역은 '거룩한 신들의 영'에서 복수형 '신들'(* , 엘라힌)을 하나님의 온전한 능력에 대한 강조형으로 보아 이를 '하나님의 거룩한 영(성령)'으로 번역하나, 본 구절이 느부갓네살의 개인적 체험 이전의 상황이라는 점에 비추어 타당하지 않다. 느부갓네살은 2, 3자의 사건 이후에도 여전히 이방적 신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3:29 주석 참조).
=====4:9
박수장 벧드사살 - '박수장'(* , 라브 하르투마야)은 문자적으로 '박수들의 우두머리'란 뜻이다. 이 명칭을 다니엘에게 사용한 이유에 대해서는 (1) 공식적인 직함으로, 박수들의 장(2:48 주석 참조)이기 때문이라는 견해(Delitzsch), (2) 지혜와 해몽의 능력에 있어 다른 박사들보다 탁월하다는 점에서 특별한 권위의 호칭으로 그를 불렀다는 견해(Thomson) 등이 있다.
=====4:10
본절부터 18절까지 꿈의 상세한 내용이 기록된다.
내가 본즉 - 여기서 '보다'라는 말은 특별하게 '정신적으로 꿈구다'란 뜻의 '하자'(* )가 사용되었다. 원래 이 말은 성경의 용례상 새로운 내용으로서의 전환이나 새로운 환상에 접하게 될 때 자주 사용되던 관용구로서, 본장의 묵시 문학적 특성을 잘 드러내준다.
땅의 중앙에 한 나무가 있는데 - '땅의 중앙'은 자신들의 나라가 곧 세상의 중심(omphalos)이라고 생각하던 고대의 세계관을 반영한 말로, 여기서는 느부갓네살 자신의 제국인 바벨론을 의미한다. 한편 '한 나무'는 곧 느부갓네살을 지칭하는데(22절), 성경에서 나무는 곧잘 큰 제국의 통치자들에 대한 비유적인 용례로 쓰여졌다(겔 17:22 니하;19:10;31:3).
=====4:11
그 나무가 자라서...하늘에 닿았으니 - '자라서'(* , 레바)와 '견고하여지고'(* , 테키프)는 원어상 완료형의 시제를 가지는데, 그 나무가 이미 하늘에 닿을 만큼 자란 상태를 가리킨다. 이는 느부갓네살의 제국이 가장 절정기에 이른 사실과 함께 그의 인간적 세력과 신적 교만이 극에 달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20, 22절).
땅 끝에서도 보이겠고 - '땅 끝'은 10절의 '땅 중앙'과 대조되는 말로 여기서는 바벧론을 중심으로 누부갓네살의 통치권이 닿는 광활한 지역을 가리키며, 본 구절은 그의 세력이 크게 확장된 사실을 알려준다.
=====4:12
애굽 왕 바로의 권세를 나타낸 겔 17:22;19:10;31:3의 레바논 백향목 비유와 유사한 본절은 바벨론 제국의 장엄함과 수려함('잎사귀는 아름답고'), 제국의 풍요함('열매는...식물이 될만하고'), 많은 나라의 종속과 제국에의의탁('들질승이...깃들이고')등을 의미한다(겔 31:3 주석 참조). 한편 혈기 있는 자는군소 국가들을 상징하는 '들짐승과 새'보다 더 세부적인 의미에서 느부갓네살의 세력권 내에 속한 모든 사람들을 지시한다.
=====4:13
급작스런 상황의 반전이 이루어지는데, 제국의 강성함으로 인한 느부갓네살의 교만과 이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가 계시된다.
한 순찰자, 한 거룩한 자 - '순찰자'(* , 이르)는 성경에서 이곳에만 유일하게 나타나는 단어로 원어상 '깨어 있다', '망보다'란 뜻의 '우르'(* )에서 파생된 말로 '지키는 자'란 의미이다(아 5:2;말 2:12). 이 아람어는 바벨론 시대의 이방 종교에서 흔히 사용되던 말로, 실체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자(messenger, NIV), 곧 거룩한 천사(God's angels, LB)이다(LXX). 따라서 느부갓네살의 꿈은 계시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재삼 주지시키고 있다.
=====4:14,15
그가 소리 질러 외쳐서 이처럼 이르기를 - 하나님의 천사는 이 일에 대한 하나님의 듯을 전달하는 전달자(17절)고 나타날 뿐 이 사역의 직접적인 실행자로 등장하지 않는다(Havernick, Hitzig). 이 사역의 주체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70인역(LXX)은 계 14:18과 비교해 명령의 실행자인 또 다른 천사를 언급하고 있다. 그 나무를 베고...쫓아내라 - 느부갓네살이 정신병으로 권좌에서 쫓겨날 것을 의미한다. 나무가 쓰러질 때 그곳에 깃든 많은 짐승들이 달아나는 것처럼, 그가 없는 제국은 많은 나라와 백성들에 대한 구속력을 상실하게 된다.
그 뿌리의 그루터기를 땅에 남겨 두고 -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병에서 회복되어 잃어버린 왕권과 영화를 회복하게 됨을 암시한다.
철과 놋줄로 동이고 - 혹자는 본 구절을 나무가 갈라지고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하나님의 최소한의 은총(Stuart, Langerke)으로 보며, 문자적으로는 미친 사람을 묶어놓는다는 의미(Jerome) 등으로 본다. 그러나 본 구절은 영적인 측면에서 그의 상태가 쇠줄에 묶인 것처럼 온전하지 못하고 혼란한 상태에 빠지게 될 것(욥 36:8;시 107:10)이며, 야수처럼 취급되어 자유로운 활동과 독자적인 생활이 철저하게 금지될 것(눅 12:46)임을 가리킨다(Delitzsch, Hengstenberg, Kliefoth). 그것이 하늘 이슬에...그 분량을 같이 하리라 - 70인역(LXX)은 간략하게 '땅의 짐승들과 더불어 산지에서 소처럼 풀을 뜯어 먹게 하라'로 번역한다.
=====4:16
그 마음은 변하여...짐승의 마음을 받아 - 성경의 용레상 '마음'(* , 레바브)은 전인격의 좌소로 일컬어진다. 따라서 인격의 좌소가 짐승의 마음과 대체되었다는 것은 모든 사고와 행동이 짐승과 같아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정신병으로 짐승처럼 광야에서 유랑하게 될 사실을 예시하는 것이다(33절). 한편 가절의 '받아'(* , 이트예히브)는 원어상 미완료형인 '주어질 것이다'란 듯으로 그러한 사역의 주체가 바로 하나님이심을 암시하고 있다.
일곱 대 - 여기서 '때'로 번역된 '이다닌'(* )은 원어상 '정해진 시간'이나 '알맞은 때'란 뜻이다. 따라서 정확하게 어느 단위의 시간을 의미하는 지는 단정할 수 없으나, 많은 학자들은 '년'(年)으로 이해한다(LXX, Hitzig). 한편 이 '일곱 때'는 상징적으로 교만에 대한 징계와 연단을 목적으로 느부갓네살에게 주어진 신적 형벌의 기간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4:17
순찰자들의 명령대로요 - '명령'(* , 게제라트)은 권위 있는 자에 의해서 주어지는 변경시킬 수 없는 결정을 가리키는데, 하나님 뜻의 확고한 선재적 성취를 강조하는 말이다. 한편 본절의 '거룩한 자'는 문장 구조상 별도의 천사들을 일컫는 것처럼 기술되었으나, 이는 13절에서와 같이 순찰자에 대한 동의 반복이다(Deltizsch, Zockler). 인생으로...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알게 하려 - 여기서 '지극히 높으신 자'(* , 솰리트 일라이아)는 원어상 '최고의 지배자'란 뜻으로 느부갓네살이 아직도 모든 상황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깨닫지 못한 채 그저 막연한 신의 게시로만 알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한편 본절의 고백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생사 화복에 대한 결정권이 곧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밝히는 것이다(2:21).
=====4:18
밝히 말하라(* , 에마르) - 문자적으로는 '분명하게 선언하다', '정확하게 보고하다'란 뜻으로서, 그 꿈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싶어하는 느부갓네살의 조급한 심정을 잘 나타낸다.
=====4:19
놀라 벙벙하며 마음이 범민하여 - '놀라 벙벙하며'(* , 에쉬토맘)는 원어상 '아찔할 정도로 놀라다', '마비되다'란 뜻이다. 다니엘은 신하로서 왕의 심판에 대한 계시를 듣고 연민의 정과 아울러 심각한 내면적 갈등을 느꼈다. 이러한 사실은 '마음의 번민'이라는 표현과 느부갓네살의 신하로서 그에게 드리는 절절한 충정이 잘 반영된 하반절 '그 꿈은...응하기를 원하나이다란 다니엘의 말에서 더욱 확실하게 나타난다. 한편 본절의 '얼마 동안'(* , 케솨아 하다)은 원어(아람어)상 '한 시간'이란 뜻(Ewald, Hitzig, Kranichfeld)이나 그보다는 짧은 시간의 경과라는 의미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Gesenius, Bevan, Delitzsch).
=====4:20-23
느부갓네살이 꾼 꿈이 다니엘의 입을 통해 동일하게 반복된다(10-16절 주석 참조).
=====4:24
명정(命定)하신 것(* , 게제러트) - 17절의 '명령'과 동의어로, 여기서는 곧 변개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필연적으로 성취될 하나님의 뜻을 가리킨다(17절 주석 참조). 곧 본 구절은 느부갓네살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가 확실하게 성취될 것임을 분명하게 증거하는 것이다.
=====4:25,26
22절과 함께 다니엘에 의한 본격적인 꿈의 해석이다(14-17절 주석 참조). 그 때에...아시리이다 - 느부갓네살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는 개인적인 영역과 아울러 인간 전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줄을...견고하리이다 - 여기서 '하나님'은 원어상 그 직접적 호칭인 '엘로힘'(* , 3:26)으로 쓰여지지 않고 '하늘'을 뜻하는 '쉐마야'(* )로 쓰여졌는데, 이는 본서에 자주 등장하는 '지극히 높으신 자'(* , 일라야)와 함께 '하늘의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이다(Delitzsch). 한편 '왕이 깨달은 후에야...견고하리이다'란 말은 느부갓네살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 목적을 분명게 제시해주는 구절로, 느부갓네살이 제국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시인하고 자신의 교만을 회개할 때에 다시 회복될 것임을 제시한다.
=====4:27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의 7년에 걸친 고통스러운 기간을 예시해 보이면서, 이러한 연단이 유예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통치를 하라는 간절한 충고로 이 해석을 마무리 한다. 공의를 행함으로...죄악을 속하소서 - 본절에서 '속하소서'란 개역 성경의 번역은 자칫 행위를 통한 죄의 대속과 구원이라는 오해를 야기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의원어 '페라크'(* )는 '단절하다'(break off, KJV;renounce, NIV)란 뜻으로서 단순히 '죄악된 것과 단절하고 그곳에서 떠나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본절은 느부갓네살로 하여금 이제까지의 불의한 상태를 변화시켜 '공의'(* , 체다카)의 시행 곧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통치(Delitzsch, Hanvernick, Kliefoth)와 가난한 자에 대한 긍휼을 시행함으로써 이전의 죄악된 상태와 단절하고 떠날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4:28
이제까지 언급된 예언의 성취를 확인하는 말로서 느부갓네살의 선언에 의해 다니엘의 해석의 진실성과 역사성이 입증된다.
=====4:29
열 두 달이 지난 후에 - 이는 곧 왕의 꿈에 대한 다니엘의 해석과 충고가 있은 지 1년이 지난 대를 가리킨다는 점에서,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로 하여금 다니엘의 충고(27절)대로 그의 자세를 변화시킬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주셨음을 암시한다.
바벨론 궁 지붕에서 거닐새 - '궁의 지붕'은 왕이 산책할 수 있는 평평한 지붕을 가리킨다(삼하 11:2). 그러나 원전상 '궁의 지붕'(* , 헤칼 말르쿠타)이 단순하게 '궁정'이란 뜻만을 가진다는 점에서, 혹자는 느부갓네살이 성 안의 성벽과 망대를 돌아보았다는 뜻으로 이해한다(thomson). 곧 그가 장엄한 왕궁의 성벽과 망대를 둘러 본 후에 교만한 말(30절)을 했으리라고 보는 것이다.
=====4:30
이 큰 바벨론은...아니냐 하였더니 - '이 큰 바벨론'은 느부갓네살이 궁 안에서 바라본 도성의 모습을 가리키는데, 676구역으로 구성된 바벨론의 장엄함과 위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고대 국가에 있어서 왕의 권세는 그 수도의 장엄함과 곧잘 비교되었다는 점에서 그가 바라 본 수도의 웅장함은 자신이 누리는 영화의 상징과 같은 것이었다(Thomson). 따라서 본절은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의 경고를 망각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왕국의 장엄함을 자신의 공적으로만 돌리는 교만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4:31,32
이 말이 오히려 나 왕의 입에 있을 때 - 곧 '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란 듯으로 하나님의 징계의 신속성을 강조한다.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 여기서 '하늘'(* , 쉐마야)은 26절의 경우와 같이 '하나님'을 지칭하는 말이다(26절 주석 참조). 다라서 본절에 언급된 '(경고의) 소리'가 곧 '하나님의 음성'임을 시사한다. 이러한 사실은 느부갓네살의 정신병이 자연 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기인한 것임을 암시한다.
나라의 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 여기서 '떠났느니라'(* , 아다트)은 원어상 완료형으로 '취하다', '가져가다'란 뜻으로(has been taken from, NIV) 왕권의 박탈이 하나님에 의한 것임을 명백하게 제시함과 동시에 왕권의 박탈이 이미 성취된 것임을 암시한다(그 동시에...응하므로, 33절). 편 32절은 15, 17, 25, 26절 주석을 참조하라.
=====4:33
소처럼...새 발톱과 같았었느니라 - 자신을 짐승으로 생각하고 짐승의 생활 방식을 따르게 되는 질병을 '인사니아 조안 트로피카'(insania zoan thropica)라고 명명하는데, 아마도 느부갓네살이 이러한 정신병적 증세를 보인 듯하다(Delitzsch).
=====4:34
하나님의 은총으로 7년간의 정신병에서 다시 회복된 느부갓네살의 겸허한 하나님 찬양이 마지막 37절까지 이어진다.
그 기한이 차매 - 구루터기를 남겨두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투영된 구절로 느부갓네살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의 제한된(약속된) 기간인 7년이 다했음을 보여준다.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 문자적으로는 '나의 눈을 하늘을 향해 들었다'로서,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의 도움을 바란 사실(시 121:1, 2;123:1-3)을 시사한다. 즉 왕의 그 회개와 하나님을 인정하는 자세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Delitzsch). 한편, 완고한 느부갓네살의 변화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결과로 볼 수 있다(딤전 2:4;벧후 3:9).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 그가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고 회개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응답하셨음이 드러난다. 여기서 '총명'(* , 만다)은 '지혜', '명철', '이성', '지식' 등의 다양한 뜻을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다운 온전한 의식 상태를 포괄적으로 의미하는 것이다(sanity, NIV, LB). 또한 '돌아온지라'(* , 투브)는 '회복되었다'(was restored, NIV)란 뜻으로, 느부갓네살의 의식이 다시 온전한 인간의 상태로 회복되었음을 알게 한다.
영생하시는 자(* , 레하 알레마) - 죽음 앞에 무력한 인간과는 달리 영존하시는 초월자 곧 하나님을 지칭하는 말이다.
=====4:35
땅의...없는 것같이 여기시며 - 인간들의 수가 아무리 많고 세력이 강대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한낱 미약한 존재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는 의미로 하나님의 절대성과 전능하심을 강조한다. 하늘의 군사...행하시나니 - 여기서 '하늘의 군사'는 하늘에 있는 영적 존재, 곧 '천사'들을 일컫는 말로서, '땅의 거민'과 함께 하나님의 주권이 인간의 영역뿐 아니라 영계를 포함한 전우주적인 것임을 시사한다. 손을 금하든지...할 자가 없도다 - 하나님은 당신의 절대 주권 속에서 피조 세계의 간섭을 전혀 받지 않으시는 유일한 전능자라는 사실을 설파한다(롬 9:20).
=====4:36
내 총명이...내 위엄과 광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 총명의 회복이 34절에 이어 다시 반복된 것은 총명의 회복과 왕권의 회복에 대한 밀접한 연관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여진다(Delitzsch). 여기서 '위엄'은 곧 왕으로서의 위엄있는 모습을, '광명'(* , 지위)은 원어상 '쾌활한 낯빛'이란 뜻으로 모든 질병과 근심이 사라진 온전한 영적, 육적 상태를 비유하는 바, 본 구절은 외적 형태로 보여진 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말이다(Delitzsch). 나의 모사들과...다시 세움을 입고 - 여기서 '조회하니'(* , 예바온)의 문자적 의미는 '찾다', '구하다', '요청하다'이다. 따라서 본 구절은 자신이 병을 앓은 동안에 국정을 대신 맡아 수행하던 모든 관리들이 다시 이전처럼 모든 국사를 보고하고 결재를 요청했다는 뜻으로서 다시 바벨론의 왕으로 세워졌다는 감사의 고백이다.
=====4:37
하늘의 왕 - 하나님의 위대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성경에서 유일하게 이곳에만 쓰여진 표현이며 다신론적인 이방 신관에서 유래되었다. 한편 칼빈(Calvin)은 이러한 표현과 하반절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낮추심니라'는 고백을 볼 때, 느부갓네살이 자신에게 임한 징계를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면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에 이르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결국 본절에 드러난 느부갓네살의 회개는 생명에 이르는 참된 회개로 인정하기가 어렵다(Delitzsch). 그의 일이...의로우시므로 - '진실하고'(* , 케쇼트)는 히브리어 '에메트'(* )와 동의어로 '분명하고 확실한 진리'를 가리킨다. 또한 '의로우시므로'(* , 딘)는 히브리어 '미쉬파트'(* )와 동의어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를 가리킨다. 따라서 '그의 행위'는 인간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섭리와 간섭이 온전히 공의롭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전장(3장)의 분위기는 돌변적이었다. 절박한 환경에 처해 있었는가하면(3:19-23)
다시 환희의 순간을 맞이하는 상황(3:26-30)이 전개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돌연적인
사건은 주 축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이방인이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느부갓네살
왕과, 하나님 백성들의 대표로 볼 수 있는 다니엘의 세 친구가 긴장관계를 형성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생동감 있게 그려내고 잇다. 이러한 동적인 분위기를 보이고
있는 전장과는 달리 본장은 다시 정적인 분위기로 바뀌게 된다. 왜냐하면 느부갓네살
왕이 두 번째 꿈을 꾸게 되었기 때문이다. 왕은 다니엘의 해몽대로 7년 동안 미친 자
되어 들짐승과 같이 생활하다가 급기야 회개하고 회복되었다. 그 후에 왕은 인생의
섭리자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조사를 통해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1)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해석하기 위한 노력이 불가능함을 보여주는
부분(1-7절), (2) 왕이 다니엘에게 자신의 꿈을 소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부분
(19-27절), (4) 꿈이 왕에게 그대로 성취된 사실을 묘사하고 있는 부분(28-37절) 등으
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본장은 인간이 자신의 위치로 인하여 교만하
면 결국 수치를 당하게 되고, 회개하면 다시 회복될 수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한편, 본장에 나타난 두 번째 꿈은 전에 꾸었던(2장) 꿈과 여러 가지 측면에서 비교
될 수 있다. 이를 도표로 만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구 분 2:31-45 4:10-27
꿈의 성격 이 세상 전체의 미래에 관한계시 왕 자신의 미래에 관한계시
꿈의 배경 큰 신상(2:31) 나무(4:10)
꿈의 해석자 다니엘 다니엘
꿈의 실현여부 미래의 약속에서 이루어질것임 왕 당대의 이루어짐
꿈을 통한 교훈 세상나라의 허구성과 하나님나라 모든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의 여원성을 계시하기 위함(2:44) 비롯된 것임을 깨우치기위함
(4:26)
또한, 본장의 내용은 느부갓네살 왕 개인에게 집중되어 있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이방인에게도 미칠 것임을 암시하는 동시에 이 세상의 역사가 하나님의 주권
아래있음을 밝히려는 것이다. 그래서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의 회심과 구원의 초점
을 맞추어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결국 이제까지의 내용 속에서 나타난 느부갓네살
의 하나님 체험이 주로 주변적인 사건과 관련된 간접적인 체험인 반면, 본장에서 체험
은 개인적으로 간섭하신 직접적인 성격이라 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은 본장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사상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내용이다(17, 25, 32절). 이러한 사상은 예레미야의 예언(렘 27:15-18). 욥의 고백
(욥 12:13-25), 시편 기자의 고백(시 145편), 바울 서신(롬 13:1) 등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 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왕들에게 권위를 부여해 주실 뿐만 아니라, 교만하
고 방자히 행동할 때 왕위를 폐하기도 하신다. 그러므로 왕은 자기 마음대로 나라를
다스리는 절대 권력의 소유자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권위를 위임받은 대리 통치자
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망각한 느부갓네살 왕은 7년 동안 정신병자가
되어 이리저리 방황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본장에서 절대자의 위치를 넘보는 인간의
반역을 절대로 간과하지 않으심을 보여주셨다. 아울러 회개하고 돌아오면 다시 받아
주심도 보여주신다.
1. 왕의 선포와 꿈의 내용(4:1-18)
본 단락은 앞 부분(1-3절)에서 본 기록의 목적이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 왕에게 행
한 징계와 기적을 알리기 위함임을 밝힌 후에 이어서 느부갓네살의 두 번째 꿈의 내용
을 소개하고 있다. 왕은 큰 나무에 대한 꿈을 꾼 후에 여러 술사들을 불러 해몽하려
고 했으나 불가능해지자, 마지막으로 다니엘을 불렀다. 왜냐하면 이전에 다니엘이 큰
신상에 관한 자신의 꿈을을 정확하게 해석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꿈이 다니
엘에 의하여 희석되어진다는 사실은 왕의 꿈이 단순한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가
담긴 것임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본문은 (1) 하나님에 대한 느부갓네살의 고백이 드러나는 전반부(1-3절), (2)
느부갓네살이 다니엘을 부르는 중반부(4-9절), (3) 왕의 꿈의 내용이 기술된 후반부
(10-18절)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본 단락의 초두에 나오는 느부갓네살의 고백은 전장(3장)에 연결된 것으로 이
해하는 견해도 있다. 왜냐하면 여기에 나타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이적과 기사'
(2절)는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불에서 구원받은 사건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대 역본들처럼 새로운 사건의 시작인 4장에 연결시키는 것이 더욱 자연스
럽다.
또한, 본 단락에서 뛰어나는 두드러진 신학적인 특징은 '영'에 대한 안급이다(8, 9,
18절 ; 5:11, 14). 특히 그 영을 왕이 '거룩한 신들의 영'이라고 밝힘으로써, '영'의
존재에 있어서의 독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언급은 구약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
의 영, 즉 성령의 역사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민 24:2 ; 삼하 23:2
; 대하 15:1 ; 20:14 24:20). 그런데 이전에 '성령의 역사는 계시를 깨닫게 하는 사
역과 밀접한 관련리 있는 정적인 사역임을 보여주고 있다(요 16:13). 그러므로 구약
의 역사에서 성령의 역사를 과소 평가하는 것은 정당한 이해가 아니다. 이제 구약의
역사 속에서 나타났던 성령의 역사와 신약에 나타난 성령의 역사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구 분 구약 성경 신약 성경
계시의 해석적인 사역 단4:8,9,18;삼하23:2 요16:13;딤후3:16
사람에게 임재하는 사역 대하15:1 ;20:14;24:20 마16:13;딤후3:16
공동체를 인도하는 사역 사 63:10-14 행 13:2, 4
출31:3;민11:25;삿3:10; 눅1:15;4:1 행2:4;4:8;7;
성령 충만에 대한 표현 6:34;14:6,19;삼상10:10 55; 11:24 ; 13:9
;16:13;19:20
이상과 같은 본 단락의 중심 사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은 이방인도 구원하신다. 느부갓네살 왕은 이방인의 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부갓네살 왕의 고백(2, 3절)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그러한 고백이었다. 뿐
만 아니라 이후의 내용은 왕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이방
인에 대한 구원은 오래전부터 하나님의 계획계획 속에 있었다(창 12:1-3 ; 룻
4:18-22). 그러나 구약의 역사속에서는 이방인의 구원이 현저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주로 개인에 관한 것이었지 공동체적인 회심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신약에서
도 예수님의 사역 속에서는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다가 성령의 강림(행 2:1-13) 사건
이후에 이방인의 구원의 역사 속에서 중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
한 사실은 이방인의 구원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
다.
(2) 하나님이 세상 나라를 다스리신다(13-18절). 세상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능력으
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통치권자들에게 일시적으로
다스리시는 권세를 위임하신 것뿐이다. 피상적으로 보면 인간들이 세운 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 같으나, 본질적으로는 하나님의 통치권 아래 존재하에 된다(롬 13:1).
이런 점에서 하나님은 꿈을 통해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린다'고 계시
하셨다(17절). 사실 인간 세상은 잠정적으로 주어진 체계일 뿐(계 21:1) 하나님 나라
가 완성되면 사라지게 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역사가 오직 하나님의 주권 아래
레 있음을 자각하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해야 한다.
2. 꿈에 대한 해석과 역사적 성취(4:19-37)
느부갓네살의 꿈의 내용을 소개한 전 단락(4-18절)에 이어 본문은 꿈에 대한 해석
(19-27절)과 현실(28-37절)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다니엘은 처음에 꿈을 해석하는
것에 대해 주저하지만(19절) 왕의 간청과 하나님의 계시라는 판단으로 인해 해몽한다.
이 꿈은 그대로 역사속에서 성취된다. 저자는 왕의 꿈이 실현되는 장면을 간결한 필
체로 묘사하면서, 하나님께서 인간의 역사를 운행하시는 분임을 강조하고 있다. 아울
러 1장부터 전개된 느부갓네살 왕의 이야기가 행복한 결말로 마무리됨으로써 매우 희
망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잇다.
이러한 본장은 (1) 꿈에 대한 해석이 드러나고 있는 전반부(19-27절), (2) 꿈의 역사
적 실현이 언급되고 있는 후반부(28-37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좀더 세분하
면, (까) 왕의 번성에 대해 예고하는 부분(19-22절), (다) 왕의 폐위와 회복을 나타내
는 부분(23-27절), (따) 왕의 당대에 꿈이 성취되었음을 알리는 부분(28-33절), (마)
왕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병에서 회복되어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부분
(34-37절) 등과 같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본문은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섭리자이심을 강력하게 제시하고 있다.
한편, 본 단락에 대해 비평학자들은 쿰란 제4동굴에서 발견된 아람어 파편 '나보니두
스의 기도'의 초기 형태라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본문에 기록된 느부갓네살 왕이 바
벧론 마지막 왕 나보니두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느부갓네살 사건과 '나보니두스 기
도'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나보니두스의 피부병은 느부갓네살의 정신 착란보
다 증상이 훨씬 가볍고, 서술 배경도 테에마 시이며 익명의 유대인 조언자는 나보니두
스에게 충고를 했다기보다는 편지를 썼으며, 통치 범위도 앗수르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나보니두스 파편은 단지 후대의 전설적 형태일 뿐
다니엘서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성경을 역사적으로 문서에 의거하여 재편한
다는 사실을 대단히 불경스럽고 위험한 사상이다.
이제 본 단락의 주도적인 사상을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공적으로 인해 자만에 빠
졌다(28-30절). 현재 느부갓네살은 심판을 피하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그
러나 일시적으로 교만을 절제했을지라도 자신을 신뢰하는 죄된 마음이 근본적으로 치
료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세운 아름다운 수도에 대해 깊은 경외심을 가지고 있었
고, 방어 요새의 철저함에 대해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능력과 권세로써 바벧
론에 군림했다고 자랑했다(30절). 이러한 사실은 느부갓네살에게 놀라운 능력을 드러
내사신(2, 3장) 하나님께 대한 배은 망덕이요 반역이다. 또한 그가 이전에 드렸던 여
호와에 대한 감사와 찬양과도 배치된다(2:47 ; 3:28). 하나님은 이처럼 자신의 능력
을 과대하게 신뢰하는 느부갓네살에게 공의에 입각하여 보응하실 것이다.
(2)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으로부터 징벌을 받아 비참한 지경에 놓이게 되었다(31-33
절). 다니엘은 풀무불에 던져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벱느고의 구원을 보고도(3:28) 깨
닫지 못하고 여전히 교만에 빠진 느부갓네살 왕에게 7년 동안 폐위되어 들판과 짐승과
동일한 상태에 놓여질 것임을 예언하였다(32절). 백성들도 왕의 모습을 보고 경멸과
혐오의 시선을 보내게 된다. 이처럼 하나님의 주권에 순복하지 않고 자시 고집대로
행동하는 자는 처절한 심판을 경험하게 된다.
(3)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의 은혜로 정신이 회복되었을 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반응
을 보였다. (까) 하나님을 전우주의 가자원하고 전능한 통치자로 찬양하였다(34a절).
한때 자신의 능력을 과대 평가했던 왕은 오직 하나님만을 무한한 권능을 가진 우주의
통치자임을 인정하였다. (다) 하나님을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 왕국의 통치자로 찬양
했다(34b절). 아무리 강대한 나라일지라도 반드시 멸망한다. 오직 역사의 주관자이
신 하나님이 세우시는 나가만이 영원하다는 것이다. (따)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보잘
것 없는 존재에 불과함을 고백했다.(35절). 당시 세게 최강대국의 통치자로서 왕의
위세는 당당했엇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진노를 경험하고 나서 하나님의 절대 주
권을 깨닫고(롬 9:20) 인생의 연약함과 허무함을 철저히 드러내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본장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겨훈을 깨닫게 된다. (1) 하나님은 세계의 주인이시며 통치자이시다. (2)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징계하신다(잠3:34). (3)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통하여 영광받으시기를 기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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