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마 주석, 다니엘 0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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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본장은 다니엘서 전체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밝혀주는 동시에 당시의 정황을 근거로 본서의 중심 인물인 신실한 신앙의 사람 다니엘의 자전적인 인물 소개가 기술된 본서의 도입부이다. 한편 7절까지는 당시의 역사적 정황, 곧 제1차 바벨론 유수 사건을 통해 되어진 다니엘의 바벨론 거주 이유가 제시된다. 바벨론 유수 사건은 모두 3차에 걸쳐 일어났는 바, 2차는 B.C. 597년(왕하 24:10-17)에 3차는 유다 왕국이 멸망한 B.C. 586년(왕하 25장)에 발생했다.
유다왕 여호야김이...에워쌌더니 - 이는 선왕 요시야의 아들로서 자신의 동생 여호아하스(왕하 23:30)에 이어 애굽의 바로느고에 의해 유다 18대 왕극으로 등극한 여호야김 즉위 3년(B.c. 605)에 일어난 제1차 바벨론 유수 사건이다(왕하 24:1, 2;대하 36:6). 곧 B.C. 605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갈그미스 전투에서 애굽의 바로느고를 격퇴시키고 그 동맹국이던 유다까지 침공하여 여호야김을 포로로 잡은 사건을 가리킨다. 이 사건 직후 느부갓네살은 선(先)왕 나보폴라살의 뒤를 이어 바벨론의 왕으로 등극하여 B.C. 562년까지 43년간 통치하였다. 한편 본 구절과 동일한 기사가 언급된 렘 25:1, 9;36:1;46:2에서는 이 사건을 여호야김 4년으로 언급함과 동시에 이때를 느부갓네살의 즉위 원년으로 말하고 있어 본 구절의 기록과 일치하지 않는다. 따라서 일부 학자들은 이러한 점을 들어 본서의 진실성과 정경성 여부에 회의를 표시하기도 한다(Lenormant, Hitzig). 그러나 본서의 많은 부분이 바벨론의 관습과 규례를 기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본 구절의 연대 또한 이스라엘과 바벨론의 서로 다른 연대 구분법 때문에 발생한 문제로 볼 수 있다(Baldwin, 본장 강해 참조).

=====1:2
주께서...그의 손에 붙이시매 - 1차 바벨론 유수 사건의 결과이다. 여기서 여호야김의 포로 기사는 대하 36:6에 더욱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한편 '하나님의 전 기구 얼마를'에서 '얼마'(* , 미크차트)는 원어상 '끝', '극단'이란 의미로서 '끝에서 끝까지'(* ,미카체 아드 카체)란 말의 단축형으로 볼 수 있는 바(창 47:21;렘 25:33), 개역 성경의 '약간'이란 의미와는 달리 거의 대부분의 성전 기물들이 탈취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Delitzsch, Zockler).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미'(* )를 부분 전치사 '민'(* )으로 보고 약간의 성전 기물만 탈취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Gesenius, Hitzig).
시날 땅...신의 보고(寶庫)에 두었더라 - '시날 땅'은 창 10:10;11:2;14:1, 9;사 11:11;슥 5:11 등에서 바벨론을 지칭하는 것으로 등장한 바 있다. 한편 '자기 신'은 바벨론의 주신인 '벧'(Bel), 곧 '말둑'(Marduk)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는 그들이 섬기던 여타신들의 우두머리격이 되는 신이다(사 46:1;렘 50:2;51:44). 또한 '자기 신의 묘'에서 '묘'에 해당하는 원어 '바이트'(* )가 '집', '나라', '신전' 등의 다양한 뜻을 함축하고 있는 바, 여기서는 '신전'의 의미로서 '벧의 신전'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듯하다(Delitzsch). 혹자는 이를 호 8:1;9:15에 의거해 '땅'으로 해석하나(Hitzig) 그 곳에서는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시적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본 구절의 용례와는 차이를 가진다. '그 신의 보고'에서 '보고'(* , 베이트 오차르)는 국가의 중요 기물이나 귀한 전리품 등을 보관하는 일종의 보관 창고로, 여기서는 그 창고가 신전에 속해 있음을 알게 한다. 특별히 하나님 성전의 기물들이 바벧론의 신, 벧의 신전에 보관되었다는 사실은 삼상 4-6장에 걸쳐 언급된 블레셋의 법궤 탈취 사건과 그로 인한 재앙의 기사를 연상시키는 바, 동일한 행위를 저지른 바벧론의 파멸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5장).

=====1:3
본절은 당시 느부갓네살의 유다 침공이 성전 기물 탈취와 왕을 비롯한 몇몇의 귀족들만을 포로로 잡은 제한된 침공으로 유다의 국가적 패망을 의미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시사해 준다.
환관장(* , 라브 사리사이우) - '환관'을 가리키는 '사리사이우'는 '거세하다'란 뜻의 어근에서 파생된 말이나 성경의 용례상 단순하게 거세당한 '내시'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시종'을 일컬을 때도 사용된 말이다(삼상 8:15). 따라서 여기서의 '환관장'은 왕궁에 거하는 모든 신하나 시종들의 책임자를 가리킨다.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의 몇 사람 - '왕족'(* , 미제라 하멜루카)의 문자적 의미는 '왕의 씨'이다. 따라서 선발 대상이 왕족 모두가 아닌 왕가의 젊은이들이었음을 아루 수 있다. 또한 데오도숀(Theodotion)역과 LB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안에 '포로'라는 말을 삽입시켜 '이스라엘 포로들의 자손 중에서'로 번역한다. 또한 혹자는 본 구절의 '이스라엘'을 북이스라엘 열 지파에 대한 제한적인 의미로 해석하나, 이는 '이스라엘'이란 명칭이 '유다'를 포함한 신정국 이스라엘에 대한 보편적인 명치이라는 점과, 본 구저르이 문맥이 유다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 비추어 타당하지 않다(Hitzig, Delitzsch, Pulpit Commentary). 한편 느부갓네살이 왕족과 귀족을 끌어간 이유는 자신의 승리를 과시하고 지배 집단을 포로로 잡아감으로써 본토에 남아있는 유다인들의 바벨론에 대한 충성심을 유지시키고, 포로들의 교화를 통해 유다의 신앙과 문화를 바벨론화 시키려는 의도에 기인된 것이다.

=====1:4
흠이 없고...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 '흠'(* , 무움)은 원어상 육체적, 도덕적 결핍 상태를 의미하는 말이므로(레 21:17) '흠이 없고'는 육체적, 정신적인 온전함을 가리키며, '아름다우며'(* , 토베 마르에)는 '보기에 좋다'란 문자적 의미로, 외적 용모의 준수함을 가리킨다. 또한 '모든 재주를 통달하며'(* , 마스킬림 베칼 호크마)는 문자적으로 '모든 지혜 안에서 사려깊게 행동하며'란 뜻으로 각 방면에 걸친 포괄적인 이해 능력을(NIV, LB), '지식이 구비하며'(* , 요드에 다아트)는 문자적으로 '지식을 알며'란 뜻으로 이해 능력을 통해 얻어진 실제적인 지식의 습득을, '학문에 익숙하여'(* , 메비네 마디)는 문자적으로 '지식을 분별하며'란 뜻으로 실제적 지식을 습득함에 있어 유용성이나 효용성을 분별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킨다. 이러한 조건을 구비한 유대 청년들은 바벨론 왕립 학교에서 교육을 받게 되었다.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방언을 가르치게 하였고 - 바벨론이 유능한 유대 청년들을 왕궁으로 데려 온 이유는 교육과 부양(5절)을 통해 궁극적으로 전유다의 바벨론화를 시도하려는 것이다. 여기서 '갈대아 사람'이란 말은 본래적으로 바벨론을 정복하여 갈대아 왕조를 세운 바벨론 남서쪽에 위치했던 바벨론의 지배 계층을 의미한다(5:30;9:1;사 13:19;합 1:6). 그런데 본 구절에서는 그 중에서도 특별한 지식층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그들은 특히 점성술과 천문학 등에 능통하였으며, 전통적인 학문을 가리치고 보존하는 역할을 담당했었다(2:2, 4, 5;4:7;5:7, 11). 한편 '학문'(* , 세페르)은 원어상 학문의 매개로서의 '책'이란 뜻이다. 또한 '방언'이 구체적으로 어떤 언어를 가리키는가에 대해서는 당시 외교용어, 상용어에는 '아람어', 특별한 기념비에는 '앗수르어', 종교적 의식에는 '아카드어' 등이 통용되어 있었던 점으로 보아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지만, 본 구절의 정황과 문맥을 고려할 때(2:4) '아람어'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Hitzig, Rosenmuller, Thomson).

=====1:5
왕이 지칭하여...그들의 날마다 쓸 것을 주어 - 바벨론 왕은 여호와에 대한 신앙을 버리고 오직 자신의 명령에 충실한 신복을 만들기 위해 왕의 음식을 먹도록 규정하였다. 이러한 음식 규정법은 하나님과 왕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는 일종의 시험(test)이었다. 여기서 '지정하여'(* , 예만)는 '할당하다'란 뜻으로, '매일의 분깃(몫)'이란 뜻의 '날마다 쓸 것'이란 말과 조화를 이룬다. 한편 '진미'(* , 파트 바그)는 그 어원의 모호함 때문에 '우상의 음식'등 다양한 해석이 보여지나, 여기서는 단순하게 '음식', 특별히 채소가(12절) 아닌 고기로 만들어진 음식이나 곡식으로 된 음식으로서 왕의 식탁에 놓여졌던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Delitzsch). 혹자는 이러한 점과 왕하 25:29을 들어 소년들이 왕의 식탁에서 왕과 함께 식사를 한 것으로 이해하나 8절 이하의 내용으로 볼 때 타당하지 않다.
삼 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 고대 사가 플라톤(Plato)은 페르시아에 있어서 궁중에 들어간 소년들은 14-17세까지 보통 3년간 교육을 받았다고 말하는 바, 바벨론 또한 동일한 관습이 시행되었으리라고 유추된다. 한편 이러한 교육과 양육의 목적으로 제시된 '왕의 앞에 모셔서게'란 소년들의 나이와 포로라는 신분을 고려해 볼 때, 이 말의 통상적 의미인 왕의 고문이나 자문관이 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점성가나 박수 집단의 하위직에 임용되리란 의미로 볼 수 있다.(Thomson).

=====1:6,7
이러한 개명(改名)은 일반적으로 정복자들이 피정복민들의 문화와 민족성을 말살 시키기 위한 의도에서 행해지던 동화 정책의 일환이었다. 특히 본문에 나타난 네 명의 유다 소년의 바벨론식 개명은 그 이름의 변화된 의미에서 볼 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 신앙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 내용을 도표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유다 이름 의미 바벧론 이름 의미
-------------------------------------------------------------
다니엘 하나님께서 벧드사살 벧이여 그의 생명을
심판하신다 보존하소서

하나냐 하나님은 사드락 태양의 영감
자비로우시다

미사엘 하나님과 같 메삭 '아쿠'신 같은
으신 분이 누 분이 어디 있으랴?
구인가?

아사랴 하나님께서 아벱느고 느고의 종
도우신다.


=====1:8
전체적인 정황 설명에 이어 본장의 내용은 세 친구와 함께 다니엘의 신앙에 대한 묘사로 집중된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 '뜻을 정하여'(* , 야셈 알 리보)는 원어상 '마음을 결정하여'란 뜻이다. 이는 히브리 개념상 '마음'이 전인격의 좌소라는 점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의 '더럽히다'(* , 가알)가 신적 모독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그들의 전인격을 다해 하나님께 전적인 신뢰와 순종을 결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본문의 내용에 비추어 이들에게 주어졌던 왕의 음식들이 율법의 음식 규례(레 11:2-8)에 어긋나는 피를 뿌려 잡은 고기이거나(신 12:23, 24), 부정한 동물의 고기(레 11:10-12) 또는 우상에게 바쳐졌던 음식(호 9:3;고전 10:27-29) 등이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Delitzsch).


=====1:9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 '은혜'로 번역된 '헤세드'(* )는 매우 포괄적인 의미에서의 '자비'나 '사랑'(왕상 8:30;느 1:11;시 106:46)을 나타내는 말이나 본 구절에서는 '(애정어린) 친절'이나 '호의'(favor, KJV, NIV)의 의미로 쓰여졌으며, '긍휼'(* , 라함) 또한 유사한 의미로 '인간적 연민'이나 '동정'(sympathy, NIV, LB;compassion, RSV)을 가리킨다. 다니엘이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었다는 사실은 왕의 명령에 저래적으로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는 환관장에게 있어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는 바, 본절은 문장 초두에 그러한 기적적인 내적 변화의 수여자가 하나님이심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1:10
환관장은 다니엘에 대한 호의을 보이면서 그의 청을 즉시로 거절하지 않고, 단지 그일의 시행으로 자신에게 닥칠지도 모를 개인적인 위험성만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이미 환관장의 마음이 다니엘의 청을 수락하는 쪽으로 기울어졌음을 암시하는 것이다(Delitzsch).
너희의 얼굴이 초췌하여 - '초췌하여'(* , 조아핌)는 원어상 '초조한', '슬픈', '분노한'이란 뜻인 바(창 40:6;대하 26:19), 여기서는 심성에서 비롯되는 나쁜 안색을 영양 결핍의 결과에 대한 표현으로 차용하였다(Delitzsch). 70인역(LXX)은 이를 영양의 결핍에서 파생되는 '정신적인 혼란 상태'(* )나 '신체적인 유약함'(* )이란 이중의 의미로 번역했다.


=====1:11
감독하게 한 자(* , 하멜차르) - 이 말은 페르시아어인 '멜'(독한 술)과 '차르'(머리)의 복합어로서 술 맡은 관원장을 가리키는 바, 그는 환관장 수하에 있는 하급 관리로 생각된다. 혹자는 이를 고유 명사 곧 감독관의 이름(Melzar, KJV)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나(Thomson), 그 단어 앞에 정관사 '헤드'(* )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관직명('하랍사게', 사 36:2)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Delitzsch). 본절을 통해 다니엘에 대한 호의가 환관장뿐 아니라 여타 관리들에게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12
열흘 동안 시험하여 - 이 말은 그들의 청원이 환관장의 개인적인 책임만 면할 수 있게 하면 수락되리란 다니엘의 기지에서 발로한 것이다. 한편 본 구절의 '열흘'은 현재적인 시간 개념에서의 '10일'이라기보다는 '10'이란 수의 의미가 '완전', '결론'이란 점에서 시행된 일의 완전한 결론을 관측할 수 있는 비교적 짧은 기간을 가리키는 것이다(Delitzsch). 곧 열흘이란 기간은 그들의 식생활에 대한 결과를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기간일 뿐 아니라 그로 인해 발생할지도 모를 잘못된 결과를 쉽게 만회할 수 있는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채식(* , 제로임) - '씨를 뿌리다'란 뜻의 '자라'(* )에서 파생된 말로 씨를 뿌려 수확한 채소류로 만든 음식들을 가리키는 바, 고기가 주원료인 '왕의 진미'(5절)와 극단적인 대조를 이룬다. 하반절의 '물' 또한 '왕의 포도주'와 대조적 의미를 가진다.

=====1:13,14
하나님을 신뢰하며 선한 결과를 확신하는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신앙이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아울러 환관장이 관용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써 하나님의 초자연적 능력이 극명하게 드러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게 되었음을 밝힌다. =====1:15,16
여호와에 대한 신앙을 고수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승리가 드러난다.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 이는 10절에 언급된 '초췌하여'란 말과 극적인 대조를 이루는 말이다(10절 주석 참조). 먼저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 마르에헴 토브)는 문자적으로 '용모가 좋고'란 뜻이며, '살이 윤택하여'(* , 베리에 바사르)는 '살이 찐'이란 뜻으로서, 그들의 전체적인 모습이 어느모로 보나 다른 사람보다 심히 좋은 상태임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건강하고 안색이 좋았으므로, 자신들의 신앙을 따라 왕의 진미를 먹지 않아도 되도록 허락되었다.

=====1:17
위의 기사로 보아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이 다른 소년들보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탁월하게 된 사실은 결코 바벨론의 교육이나 그들의 부양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 속에서(시 37편) 되어진 것임을 이하의 내용 속에서 재삼 주지시키고 있다. 이 네 소년에게...명철하게 하신 - 여기서 '이 네 소년'은 문자적으로 '이들 소년들 중 네 명'이란 뜻으로, 이 네 소년을 여타 소년들과 특별하게 구별시켜 준다. 곧 그들은 철저하게 여호와만을 신뢰하였으므로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었던 것이다. '지식, 학문, 재주'는 4절 주석을 참조하라.
외에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異像)과 몽조를 깨달아 알더라 - 앞 문장과 접속된 '~외에'(* , 웨)는 여타 소년과 구별된 네 소년 중에서 또다시 특별하게 다니엘을 구별짓는 말이다. 여기서 '이상'(* , 하존)은 원어상 '꿈'이나 '환상'을 뜻하나, 성경의 용례상 하나님의 계시 또는 예언의 의미로 자주 사용되었다(민 12:6;삼상 28:6;겔 7:13). 또한 '몽조'(* , 할롬)는 '꿈'이란 뜻으로 여기서는 '꿈의 의미'를 가리키는 듯하다(the meanings of dreams and visions, LB). 한편 고대 바벨론 또한 환상이나 꿈의 해석이 중요한 학문의 일과였다는 점에서 다니엘의 이러한 능력을 이방적 요소와 연관짓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곧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비록 갈대아의 학문을 배우긴 했으나, 이방적 요소에 빠져들지 않았으며, 다니엘의 이러한 능력 또한 본절의 초두에서도 언급된 바 있듯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능력이었다. 이는 본 구절의 '깨달아 알더라'(* , 헤빈)의 문자적 의미가 '구별하여 이해하다', '분별하다'로서 다니엘의 능력이 철저하게 이방적 요소를 분별할 줄 아는 것이었다는 사실에서도 암시된다. 특별히 이러한 사실은 모세가 애굽의 지혜에 능통하였던 것과 같은 이치로 이해할 수 있다(행 7:22, Delitzsch).


=====1:18
기한이 찼으므로 - 3년의 교육 기간이 끝났음을 보여준다(5절 주석 참조).


=====1:19
그들로 왕 앞에 모시게 하고 - 5절 주석에서도 언급된 바 있듯이 거대한 바벨론의 관료 조직 속에서 그들은 나이나 포로된 신분상 하급 관료(왕의 시종, Bevan)에 임용되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단지 20절의 내용에 비추어 이들이 속한 관료 집단이 왕궁의 박수와 술객 집단(20절 주석 참조), 곧 왕이 매사에 정책을 의논하는 일종의 자문관 계열의 관료 집단으로 유추해 볼 수 있을 뿐이다(Thomson).

=====1:20
그 지혜와 총명이...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 본 구절에서의 '지혜와 총명'은 피상적 개념에서의 지혜를 가리킨다기보다는 국정 전반에 관한 지식이나 판단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다(information and blanced judgment, LB). 한편 '박수'(* , 하르톰)는 문자적으로는 '마술사'나 '점성술사'를 뜻하나 바벨론에 있어서 이러한 자들이 국정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점에서 특수한 관료 집단을 형성하고 있는 바벧론의 지혜자들로 볼 수 있다(창 41:8;출 7:11 참조). 또한 '술갯'(* , 아솨프)이란 말은 원어상 본서에서만 등장하는 말로 '점성가'라는 문자적 의미를 가지나 여기서는 '박수'와 마찬가지로 지식 계층의 관료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곧 이 '박수와 술객'은 바벨론의 모든 학문과 지혜를 대표하는 관료 계급을 일컫는 것이다. '십 배'는 12절의 '열흘'과 같은 의미로 쓰여졌는 바(12절 주석 참조), 그 수의 상징적 의미대로 여타 박수와 술갯에 대한 네 소년의 완전함과 탁월함을 극적으로 강조하는 표현이다. 특별히 70인역(LXX)은 본절과 함께 '그리고 왕이 그들을 영화롭게 하고 통치자로 임명하였다'란 부가적인 해설을 덧붙여 번역하고 있다.

=====1:21
본장의 결론부는 다니엘의 재임 기간에 대한 일반적인 진술로 마무리되고 있다.
다니엘은 고레스 왕 원년까지 있으니라 - 본 구절은 다니엘이 여호야김 3년 곧 B.C. 605년부터(1절) 페르시아의 초대 왕 고레스 즉위 원년 곧 B.C. 536년까지 약 70년간을 정부의 관료로서 바벨론에서 지낸 사실을 보여준다. 즉 다니엘은 바벨론과 메대 시대를 거쳐 페르시아 시대까지 왕궁의 관료로서 일했었다. 특별히 다니엘이 포로로 잡혀간 시기가 느부갓네살에 의한 1차 바벨론 유수 사건 때로서 이때부터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수가 시작되었으며(1절), 본절에 언급된 '고레스 왕 원년'은 곧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수가 끝나고 그들이 고토로 귀환하던 때를 가리키는 바, 다니엘이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 전기간 동안 바벨론에서 활동한 사실을 알게 된다. 한편 '있으니라'(* , 예히)란 말이 고레스 왕 원년까지 '살았다'란 의미로 쓰인 것이 아니라 관료직에 계속적으로 머물러 있었다는 것(held this appointment as th king's counselor, LB)을 의미하느 바(Delitzsch), 혹자는 이를 '살다가 죽었다'란 의미로 해석해 본 구절을 10:1의 '고레스 왕 삼 년'과 모순된다고 주장하나 그러한 견해는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본 구절은 다니엘의 죽음 기사와는 무관한 것으로 단지 그의 70년간의 관료 재임 기간이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수 기간과 동일하다는 사실에 중점을 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곧 다니엘의 비애와 기쁨이 이스라엘의 역사와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한편 하나님 백성의 궁극적인 승리를 암시한다.



'구약의 계시록'이라고 불리워지는 본서는 하나님 나라의 최종적 승리에 대해 집중
적으로 예언하고 있다. 예루살렘이 철저히 파괴되는 현장을 지켜본 다니엘은 바벧론
포로 생활 속에서 하난미의 언약으로 인하여 종말론적으로 완성될 나라를 기대하며 투
철한 신앙심을 유지하다 보니 낙관적인 역사관을 소유하게 되었다. 특별히 유다의 멸
망으로 인해 여호와의 주권이 의심받는 상황에서 묵시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절대 통치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본서는 동일한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에스겔서와 조금도 다른 시각을 소
유하고 있다. 즉, 에스겔서가 제사장적 관점에서 성전의 회복에 집중하는 반면 본서
는 선지자적 관점에서 국가적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 있
는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로하고 이방 나라를 통치하는 하나님의 주권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이제 본서의 특징을 좀더 확실히 알기 위해 4대 선지자의 중요
사항을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구 분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주제 하나님의 새로운 유다의 패역에 대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주권
나라건설 경고 다시 살리심

대상 유다 안에 있는 유다 안에 있는 바벨론의 유다의 포로
백성들 백성들과 포로지에 포로들 들과 이방
있는 백성들 백성들

예언 B.C. 740-681 B.C. 627-580 B.C.593-570 B.C.605-530
기간

주변 앗수르의 위치 바벨론의 위협과 바벨론 포로 바벨론 포로
상황 포로의 상황 (일부)

종교 의식의 영역과 요시야의 개혁이 불순종과 반역 하나님의
상황 일반적인 삶의 있었으나 한시적 주권을
총체적 부패 이었고 다시 우상 불신함
숭배를 함


이와같이 앞으로 전개될 인류 역사의 향방을 구체적이면서도 상징적으로 예언하고 있
는 본서의 도입부에 해당되는 본방은 다니엘의 개입적인 이력 사항이 히브리어로 소개
되고 있다. 다니엘은 유다 왕족(3절)으로 느부갓네살의 1차 침공(B.C. 605) 때 바벧
론으로 끌려와 민족적 주체성을 말살하려는 느부갓네살 왕국의 집중적인 교육을 3년이
나 받고도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율법을 신실하게 지켜다. 하나님은 이러한 다니엘을
축복하셔서 탁월한 신적 지혜를 허락하셨고 이방 국가에서도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있
도록 허락하셨던 것이다.
이러한 본장은 (1) 역사적 배경을 기술하고 있는 전반부(1-7절), (2) 다니엘의 신앙
적 삶을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중반부(8-16절), (3) 느부갓네살 왕과 대면하는 다니엘
과 세 친구의 모습을 묘사하는 후반부(7-21절) 등으로 구성되어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저자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전적으
로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교훈하고 있다(고전 10:13).
한편, 본장의 역사적 배경은 B.C. 605년 왕족과 귀족들의 일부가 포로로 잡혀간 제1
차 바벧론 유수 사건이다. 당시는 아버지와 동생에 이어 유다 18대 왕위에 오른 여호
야김 3년에 해단된다. 이 사건은 유다 백성들에게 엄청난 좌절을 안겨주었다. 지금
까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므로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던 그들은 '과연 하나님께서 역사를 섭리하시는 주권자이신가'에 대한 회의에 빠지
게 되었다. 더구나 이어서 벌어진 제 2차(B.C. 597, 왕하 24:14), 제 3차 바벧론 유
수 사건과 예루살렘의 멸망(B.C. 586)은 더욱 커다란 충격을 초래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다니엘은 하나님의 주권적 토이를 부각시키며,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변함없이
진행되어 나간다는 확신을 중심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본장은 단순한 역사적 기술이 아니라 예언의 성취라는 측면을 함유한다. 이사
야 선지자는 이미 사 39:7에서 왕족들이 사로잡혀 바벧론 왕국의 환관이 되리라고 예
언했다. 이제 예언대로 다니엘이 환관이 되어 바벧론을 동화시키려는 교육을 받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다니엘은 매우 낙관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다. 비록 느부
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유린하고, 성전 기물을 탈취했을지라도 유대 왕족의 완전한 붕괴
와 포로 생활을 허락하신 분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이해한다(2절). 이와 같은
확신은 당면한 고통과 치욕과 상실에 집착하여 고뇌하지 않도록 만들었고, 오히려 하
난미의 구속적 성취를 기대하며 소망을 갖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이상과 같은 본 단락은 포로로 사로잡힌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절개를 지
키는 다니엘과 세 친구의 모습이 인상깊게 드러나고 있다. 그들은 세상 나라에 적응
하여 생명을 연장하고 안락하게 살려는 태도를 버리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 삶
을 영위하기 위해 일체의 타협을 거절했다. 이런 태도는 당시 포로들이 이방 신앙을
숭배하고 하나님을 만홀히 여긴 사실과 비교해 볼 때(겔 3:4-11 ; 18:1-4) 매우 이례
적인 것이다. 하나님은 이처럼 당신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자드레게 지혜를 주시고,
바벧론 백성들을 통치하는 위치에까지 오르도록 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황금 만능주
의와 인본주의가 횡행하는 현 시대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취해야 할 바람직한 자세를
배울 수 있게 된다.

1. 다니엘이 등장하는 배경(1:1-7)
본 단락을 한 인물을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지평 위에 세우기 위하여 빠른 템포로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그래서 다니엘이 성장 배경이나 세 친구들의 자세한 이력에
대해서 침묵하고 바벧론에 포로로 사로잡혀 왕궁에서 교육받게 된 과정만을 간략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본 단락이 단지 한 개인으로서의 다니엘을 부각시키려
는 것이 아니라, 다니엘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밝히려는 의도가 있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유대의 상황을 묘사하는 전반부(1, 2절), (2) 바벧론의
대 유대 정책을 보여주는 중반부(3-5절), (3) 다니엘과 세 친구의 출현을 알리는 후반
부(6, 7절)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본 단락의 역사적 배경을 밝히는 1절의 '여호야김이 위에 있는 지 삼년'이라는
문구는 여호야김 4년이 느부갓네살 원년이라고 하는 예레미야의 기록(렘 25:1)과 모순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햇수로 계산하는 히브리식 역법을, 다니엘은
만으로 연대를 계산하는 바벧론식 영법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연대 측정에
대한 이스라엘과 바벧론의 차이를 도표로 만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바벨론 식 히브리 식

동극 해 원 1년

원년 제2년

제2년 제3년

제3년(단 1:1) 제4년(렘 25:1)


이제 본 단락의 주된 사상적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부정적인 사건도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다(1, 2절). 하나님의 심판의 절정은 예
배 장소인 성전이 수탈당하는 부정적인 모습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경건한 백성들은
이러한 사건을 접하면서 자신들의 죄악이 얼마나 심각하고 하나미의 심판이 얼마나 두
려운가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레서 저자는 이 성전의 기구가 탈취당하는 사건을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기구 얼마를 그의 손에 붙이시매'(2절)라고
묘사함으로써 느부갓네살의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작정된 계획임을 밝히고 있다.
이처럼 아무리 부정적인 사건이라 할지라도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작정과 계획에서 벗
어날 수는 없다. 출애굽 당시 바로의 마음을 여호와께서 갈퍅케 하셨다는 사실(출
7:3)도 이 세상의 역사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하나님의 작정 속에 있음을 나타내주
는 표현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유일한 섭리자이시다.
(2)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 다가신
다(3-7절). 이스라엘이 포로로 사로잡힌 것은 그들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런 일도
수행할 수 없는 형편임을 알려준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구원 역사를 차질없이 진행시키신다. 이와 같은 사실은 당시 고대 근동의 패권을 장
악하고 있었던 느부갓네살 앞에 다니엘과 세 친구를 보낸 사건에서 웅변적으로 증거된
다. 하나님은 세상 나라의 중심부에서 남은 자를 양육시킴으로써 장차 임할 하나님
나라의 근거로 삼으신다. 외적으로 보면 완전히 패배한 상황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
은 누구도 측량할 수 없는 방식으로 구원을 전개하신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의 역
사는 인간의 절망적인 환경 속에서 극적으로 전개되어 왔다. 그 대표적 사건이 출애
굽 사건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뒤에는 애굽 군대가 뒤쫓아오고 있었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었다. 바로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심으로 구원
의 역사를 일으키셨던 것이다(출 14:13, 14).

2. 바벧론 궁에서의 다니엘과 세 친구(1:*-16)
다니엘이 등장하는 배경에 대해 빠른 템포로 묘사한 전 단락(1-7절)에 이어지는 본
문은 바벧론의 동화 정책에 대한 다니엘과 세 친구의 저항이 묘사되고 있다. 당시 느
부갓네살은 바벧론 왕족 및 귀족 중 일부 청년들을 선별하여 왕궁에서 교육시키며, 바
벧론의 사상과 풍습에 동화되도록 유도하여 제국을 동요없이 통치하려고 하였다. 그
런데 다니엘과 세 친구는 바벧론의 명예와 권력과 부귀를 모두 물리치고 오직 신앙과
율법의 규례를 추종하였다. 이들은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거절하고 대신 물과 채식만
을 먹기로 결정하였다. 아마도 당시 왕의 진미에 나오는 고기는 피를 뿌려서 잡은 고
기이거나(신 12:23, 24) 부정한 동물의 고기(레 11:10-12) 또는 우상에게 바쳐졌던 음
식(고전 10:27, 28)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그래서 다니엘과 세 친구는 율법의 규례
(레 11:2-8)를 지키고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왕의 명령을 단호하게 거절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표면적으로는 역사적인 성격을 갖지만, 좀더 근본적으로는 역사의 주
체에 대한 종교적 성격을 예시해 준다. 즉, 이스라엘이 바벧론에 의해 멸망했을지라
도 역사를 주관하시는 유일한 통치자는 오직 하난미임을 강력히 알려주는 것이다. 이
처럼 여호와에 대한 신앙이 드러나는 본 단락의 핵심적인 교훈은 다음과 같다.
(1) 성도의 삶의 원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다(8, 9절). 다니엘은 바벧론 포로라는 절
망적인 환경속에서도 세상적인 삶의 원리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신앙적 자세는 다니엘이 바벧론 왕이 제시하는 음식과 포도
주를 먹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발견할 수 있다. 다니엘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
하여 생활하려는 결단 하에 일체의 타협을 거절한 것이다.사실 이와 같은 원리는 하나
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킨 후 율법을 수여하신 점(출 20:1), 가나안 정복 전
쟁을 앞둔 상황에서 여호수아에게 율법을 지키도록 명령하신 점(수 1:7, 8), 시편 기
자가 의인의 삶의 특성을 묘사하면서 율법에 대한 묵상과 복종을 강조했다는 점(시
1:2) 등에서도 장조되고 있다.
(2)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성도를 높이신다(10-16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물과
채소를 먹으며 성결의 삶을 추구하고 있는 세 친구는 왕의 진미를 먹고 지낸 다른 소
년들보다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윤택하였다(15절). 여기서 '얼굴'이란 단지 신
체의 일부분에 속하는 표면적안 얼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신앙심에서
비롯된 외적인 모습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실은,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궁극적으
로는 존귀한 상태에 도달하게 됨을 알려준다. 실제로 다니엘은 포로민으로서 바벧론
인들을 통치할 수 있는 위치에까지 오르게 된다(2:48, 49).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
었던 이유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기 때문이었다(창 41:40, 41). 예수님도 말씀대
로 성육신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써 하늘과 땅의 모든 이름 위에 뛰어
난 만왕의 왕이 되셨다(빌 2:6-11). 이처럼 하나미의 말씀에 순종할 때 진정한 축복
과 최후의 승리를 맛보게 된다.

3. 다니엘과 세 친구의 발탁(1:17-21)
전 단락(8-16절)에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신앙적 삶에 대하여 묘사하고 난 이후,
본단락에서는 다니엘과 세 친구가 놀라운 지혜와 총명으로 왕의 마음을 사로잡는 장면
을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의 변화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하나님의 비밀
하신 섭리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2장의 내용이 꿈을 통한 일련의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해몽을 통해 존귀한 위치에 오르게 되는 예비 조치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본 단락은 (1) 다니엘과 세 친구의 군원을 밝히는 전반주(17절), (2) 왕과 대
면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 후반부(18-21절)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저자는 다니엘과 세 친구의 지혜가 월등하게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았음을 강조하고 있다(시 37:30). 이 같은 본문에서 나타나는 특성을 정리해보
면 다음과 같다.
(1) 인간의 모든 지혜와 지식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17절). 네 소년들의 지혜와 총
명은 선천적인 재능이나 후천적인 교육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은사의 결과
이다. 잠언은 자식의 근본인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잠 1:7)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지혜는 추구해도 결코 얻을 수 없다. (2) 하나님으로부터 온 지혜는 세상의 지혜보다
우월하다(19, 20절). 다니엘과 세 친구의 지혜는 당시의 바벧론에 있는 박수나 술객
들보다 십 배나 뛰어났다(20절).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문제에 봉착했을 때 정확히 응
답해 주시기 때문이었다. 신적인 지혜는 세상적인 지혜보다 우월하다. 바울은 세상
적인 지혜를 가리켜 없어질 관원의 지혜라고 밝히고 있고, 신적인 지혜에 대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 증거하고 있다(고전 2:6, 7). 헬라인들이 아무리 지혜를
추구했어도 십자가의 지혜를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할 것이다"(고전 1:25).
이상과 같은 본장은 세상의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아래 있음을 보여준다(롬
11:36). 동시에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하는 존재임을 알려준다(시
119:15, 16). 하나님은 절망적인 상황이든 긍적적인 형편이든 간에 당신의 백성을 놀라운 지혜와 풍성한 은혜로 인도하신다(9, 17절). 그러므로 성도는 이 세상에 살면서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며 생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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