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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1
세상 - 원어는 '헬레드'(* )인데 '세상'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곳은 17:14과 사 38:11 두 곳뿐이다. 따라서 그 정확한 의미를 규정하기가 어려우나, 사용된 두 곳의 의미를 생각할 때 이 '세상'이란 그 '모든 실존이 덧없고 일순간적인 곳'을 말한다. 따라서 본 시편은 일시적인 실존 속에 살고 있는 제한적인 인간들을 수신자로 삼고 있다고 볼 수 있다(Perowne, Bar-nes, Driver, Gray).

=====49:2
지혜 - 원어는 '호크모트'(* )로서 복수형으로 언급되어져 있다. 그러므로 어떤학자는 이를 강조형으로 이해하여 '심오한 지혜'로 해석한다(Anderson). 그러나 역시 복수형으로 쓰이면서도 평범한 의미의 지혜를 뜻하고 있는 잠 1:20 ; 9:1 ; 14:1 ; 24:7 등을 고려할 때 그 같은 해석이 절대적인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문맥상으로 볼 때 이 '지혜'는 모든 사람들이 귀기울여 들어야 하는 중요한 내용의 지혜임은 분명하다(Barnes).
내 마음은 명철을 묵상하리로다 - 문자적인 뜻은 '나의 마음의 묵상은 지혜'이다. 이것은 저자가 입을 벌려 말하려고 하는 어떤 문제에 관한 진정한 지혜(이해)는 저자가 오랫동안 묵상하여 터득한 것이라는 뜻이다. 물론 이 통찰은 어떤 노력에 의한 것이나 자생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가능하였다.

=====49:3
지혜 - 원어는 '호크모트'(* )로서 복수형으로 언급되어져 있다. 그러므로 어떤 학자는 이를 강조형으로 이해하여 '심오한 지혜'로 해석한다(Anderson). 그러나 역시 복수형으로 쓰이면서도 평범한 의미의 지혜를 뜻하고 있는 잠 1:20 ; 9:1 ; 14:1 ; 24:7등을 고려할 때 그 같은 해석이 절대적인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문맥상으로 볼 때 이 '지혜'는 모든사람들이 귀기울여 들어야 하는 중요한 내용의지혜임은 분명하다(Barnes).
내 내 마음은 명철을 묵상하리로다 - 문자적인 뜻은 '나의 마음의 묵상은 지혜'이다. 이것은 저자가 입을 벌려 말하려고 하는 어떤 문제에 관한 진정한 지혜(이해)는 저자가 오랫동안 묵상하여 터득한 것이라는 뜻이다. 물론 이 통찰은 어떤 노력에 의한 것이나 자생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가능하였다.

=====49:4
내가 비유에 내 귀를 기울이고 - 선지자의 영감뿐 아니라 시인의 영감도 하늘로부터온다. 그래서 시인은 자신의 생각을 말해서는 안되며, 주 하나님의 말씀하심에 귀기울여야 한다. 본절의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인간 편에서 순종할 준비가 되었다는 의미 신장한 행동이며, 귀를 연다는 것은 초자연적인 지식, 하늘의 지혜, 하나님 편에서의 그 무엇의 전달을 암시한다(사 50:5). 본 구절에서 하나님에 관한 것을 전하는 참백성이 되기를 원하는 하는 자신의 입술을 열어 말하기 전에 먼저 귀를 하나님께 기울여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한편, 본절의 '비유'(* , 마솰)는 비중이 실린 그리고 교훈적인 형태를 취한, 어떤 은유법이 가미된 수수께끼와 같은 숨은 진리 를 뜻한다(78:2 ; 잠 1:6).
수금으로 나의 오묘한 말을 풀리로다 - (* , 에프타 베킨노르 히다티)문자적인 뜻은 '수금(하프)으로 나의 어두운 말 을 공개하라'이다. 여기서 '어두운 말'(* ,히다)이 '어려운 담화'(민 12:8, '수수께끼'(삿 14:12, 13 ; 겔 17:2), '어려운 질문들'(왕상 10:1 ; 대하 9:1), '엄한 얼굴' (단 8:23), '잠언'등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애매하면서도 모호한, 그리고 충분히 이해가 되지 않는 진리의 성격을 대변해 주는 표현으로 판단된다. 이제 그러한 진리를 쉽게 설명하고 풀어냄에 있어서 수금을 사용한다는 말은 그 푸는 과정에 음악을 동반하겠다는 뜻이다. 즉, 시가(詩歌) 형태로 그것을 들려주겠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학자의 반박과 같이 성경에서 문자 그대로 음악을 동반해서 교훈을 베푸는 장면을 서술하고 있는 곳은 없다(Anderson). 그래서 그는 성경에서 악기를 사용한 음악이란 황홀상태로 이끌기 위해 사용되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삼상 10:5 ; 왕하 3;15).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시편 자체가 가락을 동반한 노래이기 때문이다. 한편, 수금으로 그 내용을 들려준다는 은유는 연주 전에 자신의 악기를 조율하기 위하여 귀를 악기 가까이 대는 연주가의 태도로부터 빌어 왔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Dio-dati).

=====49:5
죄악이 나를 따라 에우는 환난의 날 - (* ,아온 아케비 예수베니). 직역하면 '나의 발꿈치의 악이 나를 에워싸게 될 때'인데, 개역 성경의 번역은 갈대아역을 풀어쓴 것과 유사한 듯하다. 왜냐하면 갈대아역은 이를 '나의 죄악이 나를 둘러싸는 때'라고 번역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루터의번역, 시리아역, 아라비아역 등은 '나의 대적(원수)의 악이 나를 둘러싸는 때'로 번역하고 있다. 이처럼 해석이 다른 것은 난해한 단어인'아케브'(* ) 때문인데 이 용어는 '발꿈치'(창 3:15 ; 욥 18:9), '부대의 후방'(수 8:13)을 의미하며, 복수로 쓰이면 '발자국들'(77:19)을 뜻한다. 그리고 게제니우스(Gesenius) 따르면 '숨어있는 거짓말쟁이', '잠복하고 있는자'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이 말의 동사'아카브'(* )의 경우는 '뒤에 있다', '뒤에서 오다' 혹은 책략을 써서 '어떤 사람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다'와 같이 의미의 폭이 넓어진다(호 12:3). 이처럼 다양한 이 용어의 뜻을 고려하여 본 구절 전체의 의미를 규정하면, '나를 숨어서 기다리고 있는 자의 교활하고 믿첩한 책략에 노출되어 있어서 언제 갑작스런 공격을 받을지 알수 없는 그러한 때' 이다.

=====49:6
자기의 재불을 의지하고 - 이것은 대적들에 대한 세부적 묘사이다. 아마 대적들은하나님 대신에 자신들의 부(富)를 의존했던 것같다(52:7).
풍부함으로 자긍하는 - 그들의 자랑거리는 자기들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님이어야만 했다(34:2 ; 44:8).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소유를 신뢰하고 거기에 만족해 하였다. 한편, 여기서 시편 기자가 지적하는 바는 부 자체가 악하다는 사실이 아니라 부 를 신뢰하고 믿는 것에 대한 경고이다.

=====49:7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 (* , 아호 로파도 이프데 이쉬). 본 구절은 맨 앞에 놓인'아호'(* )의 격(格)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그 전체 의미가 달라진다. 먼저 주격으로 보는 경우인데 이때의 의미는 '한 형제(즉, 동일한 육과 혈을 가진 자)는 사람을 구속할 수 없다'가 되겠다(Delitzch). 또 다른 경우는 이를 여격(대격)으로 보는 경우인데 이때의 의미는 '형제에게 구속을 베풀 사람은 없다'가 된다. 이 두 경우 중 어느 쪽을 택하느냐를 결정함에 있어 중시해야 할 것은, 본 구절의 두 번째 단어인'로'(* )와 동일한 단어로 하반절이 시작되고 있는데 그 하반절에는 대격 목적어가 생략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상반절과 하반절로 구성되어 있는 본절은 강조사인 '아흐'를 맨 앞으로 내놓은 경우의 절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할 때 '아흐'를 무리하게 주격으로 보는 것보다는 상 .하반절이 공히 강조사로 취하는 대격으로 보는 것이 무난하다 하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호'를 주격으로 보든 또는 대격으로 보든 간에 본 구절이 의미하는 바는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죽음으로부터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Perowne).
속전 - 사람의 생명을 구속하는 일 외의 합법적 속전 규례에 관해서는 출 21:30 ; 30:12 ; 민 35:31, 32을 참조하라.

=====49:8
저희 생명의 구속이...못할 것임이라 - 여기서 '생명'(* , 네페쉬)의 문자적인 뜻은 '혼'이지만 문맥에 비추어 볼때 개역 성경처럼 '생명'으로 번역해도 무난하겠다. 그런데 일부의 시편 독자들이 너무 흔히 본절과 앞절에 대하여 완저히 그롯된 해석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큰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즉, 본 구절들이 인생을 구속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시자 또한 인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부분으로 해석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 시편에는 이에 대한 털끝만한 암시도 없다. 여기서는 죽음이라는 절대적 한계 상황 앞에서 돈의 무가치함을 가르치고 있을 뿐이다. 즉, 부(富)는 인간을 죽음으로부터 구원할 수 없는데 그 까닭은 인간의 생명이 하나님의 손안에 달려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49:9
저로 영존하여 - (* ,위히 오드 라네차). 직역하면 '그가'계속하여 살것'이다. 이 구절만 따로 떼어 내어 단독적으로 해석하면 부자가 다른 형제를 위하여 속전을내어 그로 하여금 오래 살게 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이것은 문맥에 어긋나기 때문에 본 구절은 7절의 부정사 '로'(* )에 걸려 있는 구절로해석해야 한다.

=====49:10
죽고...망하고 - 각각 '야무투'(* ), '요베두'(* )로서 '죽다', '소멸되다'를 뜻한다. 이 단어들은 지혜자와 우둔한자의 각각의 종말을 강조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선택된 것 같다(Perowne).

=====49:11
그 전지(田地)를 자기 이름으로 칭하도다 - 부자들은 자신들의 이름이 미래에 전수되리라는 소망 때문에 자기 땅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 놓는다는 것이다. 이는 땅 위에서 불멸하리라는 우둔한 부자들의 소망이 엿보이는 표현이다.

=====49:12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長久)못함이여 - (* , 아담 비카르발 얄린). 직역하면 '인간은 존귀할지라도 머물지 않는다'이다. 말하자면 그가 어떤 지위를 누리고 있든지, 얼마나 많은 재물을 추적했든지 혹은 그 지위나 재물의 안전이 얼마나 확보되어 있든지 간에 인간은 그것들을 영원히 누릴 수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얄린'(* )은 '밤을 보내다', '밤새 남아 있다', '머물다' 등을 뜻하는데 그 밤 동안도 머물지 못한다는 것은 아주 신속히 머물던 곳을 떠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주님께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말씀하실 때 아마도 본 구절을 염두에 두셨던 것 같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눅 12:20).

=====49:13
본절은 분명히 11절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어떤 학자들은 본절을 12절뒤에 삽입하여 해석하기도 한다(Hupfeid). 사실 11절은 본절과 아주 자연스러운 사상의 연결을보이고 있다. 즉 본절은 부자들이 죽은 후에 그들을 모범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있음을 보임으로써 11절에서 의도한 사상과 아주 적합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저희의 이 행위'라는 표현은 11절에서 말했었던 사실의 요약과도 갈은 것이다. 또한 12절 후에 놓이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이는 후렴구 '셀라'가 바로 본절 뒤에 놓인사실은 배열상의 부조화가 있었던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저희의 이 행위는 저희의 우매함이나 - (* , 제 다르캄 케셀 라모)''제 다르캄'(* )의 의미와 문장의 구조는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이 구절은 '이러한 그들의 방식(예을 들면 삶의 방식, 행동의 과정따위)은 그들의 어리석음이다' 혹은 '이러한 그들의 번영 상태는 그들의 열중함(맹목적 확신)을 끌어내고 있다'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케셀'(* )이 '주제넘은 확신', '우매 완고함'뿐아니라 '어리석음'도 뜻하기 때문이다. 한편, 문장 구조로 볼 때 본 구절은 두 개의 독립 문장들의 결합으로 볼 수 있는데, 이럴 경우 본 표현은 '이것은 그들의 방식이다. 그들은 확신 갖고 있다'로 이해된다(Menderis).그리고 이와는 달리 본 문장을 하나의 관개적 문장으로 볼 수도 있는데, 이럴 때는 '이것은 어리석은 자들의 방식이다'(Ewald)라고 해석되어진다.
저희 말을 칭찬하리로다 - 직역하면 '그들의 입에서 즐거움을 발견하다'이다. 그들의 표본과 말은 그들을 계속 보존시킨다는 것이다. 즉, 그들의 입으로 내놓은 일종의 금언은 세상 속에서 아주 인기있게 퍼져 다니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본절 전체를 다시 풀어 번역하면 '이것은 어리석은 자들과 그들을 좇아 그들이 취했던 동일한 방식으로 말하기를 즐거워하는 자들의 방식이다'이다.

=====49:14
저희 아름다움 - (* , 치람). 문자적인 뜻은 '그들의 모습(형태)'이다. 이 '형태'란 인간의 외관 전체를 가리킨다. 이 인간의 외관 전체는 스올(sheol)에서 소멸될 것으로 작정되어 있다(Gersenius) .

=====49:15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 (* , 이카헤니). 본 구절은 짧지만 저자의 의도를 읽게 해주는 비중있는 부분이다. 본 구절의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다른 곳에 이와 동일한 대목이 있느냐를 조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73:24 ; 창 5:24 이 두 곳에서 하나님이 그의 나라로 인간을 취해 가신다는 의미의 '라카'(* )가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이카헤니'는, 이 단어를 사용하는 자가 하나님과 영원히 살 수 있다는 믿음의 소망을 가졌음을 짐작케 해준다. 한편, 앞절(14절)에서 불경건한 자의 암울한 종말을 묘사했던 시인은 본절에서 음부의 권세로부터 당당히 해방된 경건한 자의 찬란한 영생의 기대를 그리고 있다. 이것이 바로 신약의 교회뿐 아니라 구약의 언약 공동체에 힘을 북돋워 주었던 소망이다. 영생에 대한 소망이 없는 자는 비록 교회 속에 있다 할지라도 참성도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한다(고전 15장).

=====49:16
영광 - (* , 카보드). '영광'보다는 '부'(富)가 적절한 해석으로 보여진다. 왜냐하면 창 31:1 ; 사 10:3 ; 66;12 ; 나 2:9 등에서 이 용어는 '부'의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49:17
가져 가는 것이 없고 - 10절에 묘사된 대로 이러한 표현은 부자의 비극을 나타낸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부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했던 재물을 잃어야만 하기 때문이다(욥 1:21 ; 전 5:15 ; 딤전 6:7).

=====49:18
자기를 축하하며 - ( ,나프쇼 예바레크). 직역하면 '그의 영혼을 축복하며'이다. 신 29:19의 '심중에 스스로 위로하여'에 나타난 동일한 동사 '예바레크'가 사용된 것으로 보아 부자가 자신을 스스로 행복한 자라고 말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해도 무리가 없다. 한편, 이러한 말은 눅 12:19을 연상시킨다.

=====49:19
그 역대의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 -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그의 선조들의 시대(족보)로 돌아가리니'이다. 좁게는 그 조상들의 묘로 돌아간다는 뜻이지만(창 49:29), 넓게는 그리고 문맥적으로는 죽은 자의 영역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Anderson).
영영히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 - 스올은 끝없는 암흑의 장소이다(88:12 ; 욥 17:13). 따라서 그곳에 머무는 자들은 영원히 암흑 가운데 지낼 수밖에 없다.

=====49:20
깨닫지 못하는 - (* , 로 야빈). 직역하면 '이해(지혜)가 없는'이다. 시인은 본 시편을, 12절의 내용과는 유사하지만 후렴구는 다른 단어를 넣어 결론을 짓고 있는데, 그 단어가 바로 '로 야빈'이다. 이 말은 격언적인말로서 '지혜가 없다면'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겠다. 즉, 본절은 일반적으로 말 못하는 소와는 다른 존재인데 본 시편이 가르치는 참지혜를 소유하지 못한다면 그는 소처럼 소멸되어 버리고 말 존재라는 것이다. 결국 본 시편의 가르침은 땅 위의 소유물을 믿고 사는 자는 세상을 떠난 후 영원한 암흑 속으로 들어가버릴 것이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고 사는 자는 하나님 손에 이끌리어 영원한 빛의 안식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악인의 번성에 대한 성경적 교훈을 제시하고 있는 본시는 전체적으로 욥기의 신학적
문제와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본시의 전반부(1-4절)에는 교훈의 대상과 그 진지함
에 대하여 서론적으로 언급되어 있고,중반부(5-12절)에는 악인의 번영은 한계가  있음
을 죽음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으며, 후반부(13-20절)에는 영원히 변치 않는 소망에 대
한 격려가 들어있다.
  본 시편의 시대적 배경에 대하여 포로 후 시대의 작품으로 보려는 경향도 있으나 대
체적으로 다윗 시대에 저술된 작품으로 이해한다. 저작자에 관해서는 고라 자손이  직
접 쓴 작품이라는 견해와 다윗이 본시를 지어 고라 자손에게 노래하도록 맡겼다는  견
해가 있다.
  한편 본시는 역사적 상황이나 사건에 관한 문제를 다룬 것이 아니라 주로 인생을 살
아가는 지혜에 관하여 교훈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시로 37편과 73편이 있는데 이  세
편은 모두 악인의 일시적인 영광과 거짓된 보장 그리고 의인의 소망은 영원한 데 비해
악인의 패망은 확실하다는 사실을 취급하고 있다. 특히 본 시편은 사람들이 물질 때문
에 교만하여 하나님을 떠나며, 범죄하며, 급기야 멸망하게 되고,  참구원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인간이 물질의 노예가 되지 않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
할 때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15절). 시인은 재물이 아무리 좋다 하여도
인간의 생명이 소멸되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음을 밝히며, 영원을    사모하도록  지음
받은 인간은 결코 물질을 통해 완전한  만족을  얻을  수  없음을  호소하고  있다(전
3:11). 그러므로 본시는 황금 만능주의나 이기주의에 하몰되어 있는 인간에게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교훈적인 '지혜시'로 분류된다. 시인은 본시를 통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이 세상에 집착하는 어리석은 미몽(迷夢)에서 벗어나 보다 더 나은 미래의 영원한  세
계를 지향하도록 설득하고 있다.
  우리는 본시를 통하여 의인이 핍박받고 악인 형통하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하여 위로
를 받을 수 있다. 아무리 악인이 현실적이고 성고하는 것 같을지라도 결국은 패망하게
될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본시를 단순히 하나의 교훈을 전달하는 격언으로만 접근해서
는 안 되며 반드시 하나님의 공으리운 심판과 그 가운데서도 사랑과 은혜를    베푸시는
구속사적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합 3:2). 이러한 영적 안목에서 본시를 이해할 때
우리는 물질적인 풍요로움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무시하는 영적 마취 상태에서  깨어나
오직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님만을 의뢰할 수 있다.
  이제 재물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악인과 하나님을 신회하며 살아왔던 시인에 대한 비
교가 이루어지고 있는 본시를, 세단락으로 나누어 가각의 내용과 교훈에 대하여  자세
히 고찰해 보고자 한다. 우리는 이러한 연구를 통하여 지상에서의 부귀 영화는 일시적
이고 잠정적인 것이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랑과 순종만이 영원하다는 사실을
좀더 확실하게 인식하게 될 것이다.

  1. 지혜에 대한 각성 촉구(49:1-4)
  인생의 난제(難題)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지혜를 제시하고 있는 본연은 (1) 교
훈의 대상에 대한 언급(1, 2절), (2) 교훈 전달의 진지한 자세(3, 4절) 등으로 구성되
어 있다. 시인은 교훈의 내용에 대하여 무한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세상에 대하여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영적 자가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며 모든 계층의 사람이 반드
시 통과해야 할 요소이다. 영적 각성 없이는 결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지 않는다. 시
인은 이러한 사실을 절감하면서 빈부 귀천(貧富貴賤)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
의 진리 앞에서 부복해야 함을 천명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본성적인 지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되는 신적 지혜를 통해서 살아가야 한다(약 1:5).    범우주적
이고 초시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거해서만 인간은 진정한  인생을
향유할 수 있다.
  이러한 시인의 외침은 당시 이스라엘의 편협한 민족주의적 색채를 고려할    때  매우
충격적인 내용이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이 선택된 백성이라는 교만에 빠져 우
월 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진지하게 자신을 성찰하지 못했다. 시인은 본연에서  인종
과 계급을 초월하여 모든 인간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묵상되며 전파되어야 한다고 주장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명철은 결코 경박하지 않으며 심령을  윤택하고    올바르게
이끌어 줄 것이다.
  이러한 시인의 관점은, 영적 각성은 오직 지혜의 공급자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
리스도와 성령의 조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신약의 내용을 미리 보여준다(요  14:6;
엡 1:17). 결코 인간 스스로에게 내재된 지식을 통하여서는 하나님의  지혜에  도달할
수 없다. 또한 복음은 민족과 사상과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전파되어야 함
을 자각할 수 있다(마 28:19).

  2. 악인의 번영의 한계(49:5-15)
  만민에게 영적 각성을 촉구한 내용에 이어지는 본연은 죽음의 문제를 언급하면서 악
인들의 우매함을 조소하고 있다. 이같이 부유한 자의 헛된 안전을 논리적으로  공박하
고 있는 본연은 (1)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재물의 한계(5-9절),  (2)  새로운
거주지로서의 무덤(10-12절), (3) 악인의 소멸과 의인의 영광  대조(13-15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인은 본연에서 세상을 의지하는 악인과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신
을 대조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는 죽음이란 한계 상황 속에서 돈의 무가치함을 철저
하게 파헤친다. 재물은 결코 생명을 구속하거나 연장시킬 능력이 없다. 죽음이라는 실
존적 문제에 직면하며 모든 인간은 차별이 전혀 없다. 그런데도 악인은  물질에  대한
집착과 대단한 자긍심을 소유하고 있다. 재물 축척을 유일한 삶의 목표로  두고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재물을 축적
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그들의 유일한 소망은 물질이며(욥 31:24) 그들의  하나님
도 물질이 된다. 그들은 자신이 모은 재물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은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노력의 대가로 생각하여 스스로 교만하게 된다(눅 12:16-19). 그들은  돈
을 사용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돈의 노예가 되어 돈의 지배를 받으며 산다.
  그러나 인간이 아무리 많은 재물을 소유한다고 해도 결코 자신의 생명 문제에  관해
서는 조그마한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한다(14절).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결코 죽음에
서 탈출할 수 없다(욥 36:18, 19). 죽음은 어떠한 방법과 지혜가  동원된다    할지라도
기어코 찾아온다. 그러므로 시인은 썩어져 가는 재물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생명의 주
인이신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신앙을 가질 것을 촉구한다. 인간이 한번 죽는 것은 피랗
수 없는 절대적인 현실이다(히 9:27). 이와같이 죽음앞에서 무기력한  인간은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마음을 두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부자가 하나님 나
라에 들어가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고 말씀하시며 물질을 의지하는 어리석은 자를 경고
하셨다(막 10:24, 25). 시인은 우리가 적신(赤身)으로 왔다가 적신으로 돌아가는 인생
임을 기억하고 헛된 망상에 빠져 물질에 지나친 애착을 갖지 않도록 친고한다.
  시인은 이제 전지(田地)를 자신의 이름으로 칭하는 현실에 대하여 개탄한다(11,  12
절). 사람들은 자신의 집이 영영히 있고 그 거처가 대대에 미칠 것으로 알고 있기  때
문에 전지를 자신의 이름으로 명칭한다.이러한 행동의 배후에는 자신들이 항상 세상에
존재하며 자신들의 소유를 마음껏 즐기고 생활할 수 있다는 착각이 은연중 배어 있다.
그들은 토지의 소유권을 명확히 하여 영구히 차지하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여기서 시인은 또 한번 사람은 이 땅에서 영구히 거하지 못함을 강조한다(12절). 인
간은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고, 풀의 꽃과 같다(약 4:14). 인간은 죽엇 무덤
에 장사되고 죽음이 그들의 목자가 되어 울타리 안에 있는 양과 같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지킬 것이다(14절). 인간은 죽음과 함께 자신의 소유를 모두 상실하게  되며
그 소유는 타인의 손으로 이전되고 만다(눅 12:16-21).
  그러므로 시인은 잠정적인 이생에 미련을 가지고 집착하는 사람이 가장  어리석다고
말한다(13절 상반절). 사람의 육신 생활은 어느 정도 유익하게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을 유익하게  만들지  못하며  전인격을  몰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눅
12:20). 그런데도 어리석은 자는 마치 짐승과 같이 허망한 대상을 추구한다. 뿐만  아
니라 후대 사람들도 그러한 어리석음을 칭찬하며 추종할 것이다(13절 하반절).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도래할 때 의인들이 그들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14절 중반절).
  시인은 마짐가으로 종말론적 완성의 날에 이루어질 심판 장면을 통해 악인의 영원한
멸망과 의인의 영원한 행복을 묘사한다. 시인은 악인의 멸망 속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완전한 구속에 대한 깊은 확신에 도달한다(15절). 하나님께서는 의인의 죽음
을 간과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나라로 그 영혼을 인도하신다(요 14:3). 하나님께서는
에녹과 엘리야를 죽음을 경험하지 않게 하고 하늘로 옮기우신 것처럼(창  5:24)  모든
의로운 자들의 영혼을 하늘 나라로 영접하실 것이다. 이처럼 시인은 현세와 내세에 대
한 차이점을 분명히 인식한 상태에서 현실적인 형통의 문제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음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신자는 모순된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공의
로움을 의심하지 않으며, 어떠한 환난과 핍박을 당할지라도 평안과 휴식을 누릴 수 있
다.

  3. 하나님을 향한 변치 않는 소망(49:16-20)
  죽음 앞에서 지니는 악인의 물질적인 풍요의 한계에 대해서 다시    한번  결론적으로
권면하고 있는 본연은 (1) 악인의 현세적인 치부와 영광의 허상(16, 17절), (2)  하나
님을 모르는 악인의 멸망(18-20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시인은 풍요로운 불신자들의 죽음이 확실함으로 그들으 시기할 필요가  없다
고 말한다. 그들이 이생에서 영광과 번영을 누릴지라도 그들은 결국 흑암에 묻혀 버릴
것이다(전 5:15). 그들의 모든 재물은 결국 다른 사람의 손으로 들어가 버리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부러워하거나 원망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물질적 번영을 과대    평가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물질적 번영을 과대  평가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해서는 안된다. 재물만을 토대로 구축한 영화와 행복은 허무한 것이며  진
정한 축복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시인은 빈한한 의인의 운명이 부요한 악인의 영광보다 결과적으로 나음을 지적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복된 일은 하나님의 은총을 깨닫는 일이다. 만약 인간이 하나님
으로부터 부여받은 자신의 존귀한 위치를 자가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훌륭한    외부적인
조건을 소유한다 할지라도 짐승같은 존재가 될 뿐이다(20절). 그러므로 인간은 얼마나
세상적인 관점에서 만족스러운 위치에 도달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오직 내적으로  고
상한 지혜와 훌륭한 인격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잠언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
이 인생의 지혜의 근본이라고 말한다(잠 1:7). 인간은 죽음을 기억하면서 현세적인 성
곡에 매달리지 않고 영원을 지향하는 삶을 살아갈 때 진정한 만족에 도달할 수  잇다.
우리는 지상에서의 모순된 현실에 지나치게 회의하지 말고 오직 더욱 큰 상급과  위로
를 바라보며 생활해야 할 것이다.
  이상의 내용을 통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 세상의 영화는
순간적이고 영원하지 않다. (2) 인간은 죽음을 통해서 이생의 모든    조건들을  상실한
다. 그러므로 (3) 우리는 재물이나 명예 등을 의존하지 말고 오직 영원한 삶을 제공해
줄 수 있는 하나님만을 신뢰해야 한다.

  * 신자의 육체적 죽음의 의의.    본시는 죽음의 보편성을 통하여 악인의 번영과 성고
의 허망함을 입증하고 오직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만 희망이 있음을  제시하고  잇
다. 원래 죽음은 '죄의 값'으로 세상에 들어왔다. 그러나 신자는 이미 죄책에서  벗어
났으므로 정죄하에 있지 않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신자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죽음의 공포스러운 경험을 통과케 하는 이유에 대하여 질문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
서는 왜 죄에서 완전히 해방된 신자들에게 육체적 죽음을 맛보게 하시는가? 그들은 어
찌하여 에녹과 엘리야처럼 하늘로 직접 이전되지 않는가?
  우리는 그리스동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이미 죄와 사망의 지배에서 벗어났음을  확신
한다(롬 8:1, 2; 고전 15:55). 그러므로 신자의 육체적 죽음은 궁극적 파멸이나  소가
멸을 의미하지 않고 하나님이 정하신 훈련과 징계의 정점으로 이해할 수 있다(116:15;
히 12:6). 사망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자연적 고악(苦惡)으로 남아 있으며 공포의 적
이 되지만 동시에 은혜의 경륜에서 보면 영적 진보와 성숙에 커다란 도움이 된다.  사
망의 관념, 사망으로 인한 영별(永別), 질병과 수난으로 인한 죽음의 공포 등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 훈련의 방법이다. 죽음을 통하여 신자는 교만에서  벗
어나 겸손을 회복하여 육욕을 억제하게 되고 인간적인 욕망을 방지하며 더욱 영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사망은 또한 신앙의 능력을 완벽하게 성퓌하는 순간이다(벧전 4:12, 13). 이것은 가
장 암담한 시간에 승리를 의식하는 신앙의 극점을 보여준다. 사실 그리스도인에게  죽
음은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인한 영적 행복이 완전히 성취되는 시간이다. 칭의(稱義)받
은 신자의 육체적 죽음은 영혼은 성화(聖火)하여 천국으로 인도하는 준비 작업이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죽음에 대하여 더 이상 공포심을 갖지 말고 오직 영적
진보를 위한 징계로 기꺼이 받아 들이여 감사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자주 자신의  죽
음을 묵상함으로 인하여 좀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수준으로 향상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 돈의 속성에 대한 고찰.  현대는 황금 만능주의 시대이다. 돈은 세상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되었으며 하나님이 받으실 경배를 대신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경
향은 교회에도 침투하여 하나님의 공동체를 오염시키고 있다. 이제 본 강해에서는  현
세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돈의 성격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1)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눅  16:13).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돈과 하나님을 병립적 존재로 제시하면서 재물이 인간의  주인이
될 가능성을 보여주셨다. 이것은 단순히 돈에 대한 윤리적 차원에서의 경계를  넘어서
서 사단의 도구로 인간의 주인으로서 둔갑할 수 있는 돈의 위력을 간파하신 계시적 교
훈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돈이 단순히 비인격이고 중립적인 사물이 아니
라 모조 하나님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지닌 유혹의 대상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먼저
돈의 위력을 과소 평가하지 말고 우상의 가능성을 지닌 미혹의 대상으로 이해해야  한
다.
  (2)돈은 모조 하나님으로서 경배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는 여러가지 속성을  지닌
다.
  (까)절대성: 돈은 어디든지 침투할 수 있는 독특한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인간의
특수한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수단으로 등장한다. 돈은 대립된 파벌과 사상 속에서도
똑같이 봉사한다. 돈은 불가능한 것들을 서로 밀접하게 결합시키는 괴력을  소유한다.
물론 돈은 절대자와 비교해 보면 불완전하지만 모든 외부적 사물 중에서는 절대적  능
력에 가장 가까이 접근해 있는 대상이다.
  (다)일반성: 사물들이 모두 경제적인 대상이 될 필요는 없지만 경제적인 대상이  되
려면 그것들은 돈에 의해 구체화된 가치 평가 법칙에 복종해야 한다. 돈은 경제적  대
상들의 보편적, 추상적 개념이다. 동시에 돈은 중력의 법칙이 물체의  크기와  다양한
운동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처럼 경제적 재화들의 흐름을 초월하여 존재한다.
  (따)거룩성: 모조 하나님으로서의 돈은 아이러니칼(ironical)하게도 거룩한  일면을
지니고 있다. 인간 관계에 있어서 돈은 가장 중요하면서도 정작 화제의 대상으로 삼기
에는 불편한 느낌을 준다. 어느 좌석이든 돈 문제만 나오며 엄숙해진다. 부부는  자녀
들 앞에서 돈에 대하여 말하기를 꺼려한다. 돈은 의외로 사람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소중하게 간지되어 있다.
  (마)우상성: 유사 하나님으로서의 돈은 인간에게 숭배를 강요한다.  돈은    인간에게
믿음의 대상이 되고 신앙과 사랑의 대상으로 존재하려고 한다. 예수님께서도 사단, 즉
부귀영화롤 끊임없이 추구의 대상으로 등장하여 인간의 최고선이 되려고 하나님께  도
전한다.
  (2) 이러한 힘을 소유한 가짜 하나님으로 행세하려는 돈은 또한 익명성과    비밀성의
특징을 가진다. 돈은 한 장의 종이로 압축되어 표현할 수 있으며, 무정형성과  추상성
때문에 이웃의 눈을 피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돈은 다른 많은 소유물들에 비해  자신의
움직임을 효과적으로 은폐하고 위장할 수 있다. 더구나 돈은  객관적이고  무특징적인
성격을 진니다. 교환의 대표자요 그 표현인 돈은 가장 비개성적인 사물로서 모든 사물
들은 돈과 교환되면서 개별성을 상실한다. 돈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고상함을 유지할
수 없으며 돈의 차가움 앞에는 모든 것이 무차별적으로 객관화된다. 이러한    속성으로
인하여 돈은 심지어 소유와 존재의 차이까지 제거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돈은 단순한 중립적인 대상이 아니라 강력한 힘을 소유한  사단의 도구로 변신할 수 있다. 돈은 단순한 중립적인 대상이 아니라 강력한 힘을  소유한 사단의 도구로 변신할 수있다. 돈은 타락한 세상과 인간 속에 무한한 욕망을  촉발시킴으로써 사단이 추구하는 세상의 혼돈과 왜곡을 무한정으로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돈의 위험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신앙을 통하여 맘몬(mammon)의 우상화를 극복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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