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대제사장 엘리아십 - 이 사람은 스룹바벨과 함께 최초로 팔레스틴에 귀환했던 대제사장 '예수아'의 손자이다(12:10). 그런데 나중에 그의 손자가 산발랏의 딸과 결혼했고(13:28), 또한 그는 이방인 도비야(2:10)에게 성전의 방을 내어줄(13:4, 7) 만큼산발랏 일당과 깊은 관계를 맺게 된다. 그렇다면 엘리아십이 처음에는 느헤미야를 도와 헌신적으로 재건 사업에 참여하다가 나중에 산발랏 일당에게 매수당했거나 아니면처음부터 불온한 마음을 가진 채 단지 백성들의 눈을 의식하여 형식적으로 재건 사역에 참여하였을 뿐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어쨌든 보다 분명한 것은, 백성들의 모범이되어야 할 대제사장이 재건 사역에 협력하였음을 느헤미야가 부각시키려 했다는 사실이다.
그 형제 제사장들 - 이들을 '엘리아십'의 친형제들로 볼 수는 없다. 다만 '엘리아십'처럼 아론의 후손들로서의 '제사장들'을 가리킨다(스 3:2).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聖別)하고 - '양문'은 예루살렘의 북동쪽 모퉁이에 위치했었다. 희생 제사에 소용되는 양과 염소들은 바로 이곳을 통해서 들어갔다. 이 '양문'을통해 들어간 희생 제사용 짐승은 이 문옆의 못에서 씻겨진 후 성전으로 옮겨갔던 것같다. 요 5:2의 '양문'은 바로 이곳을 가리킨다. 한편, 혹자는 '성별하고'에 해당하는히브리어 '키드슈후'(* )를 '들보를얹다'는 뜻인 '케루후'(* )가 잘못 표기된 것으로 본다(Rudolph). 그러나 굳이 그러한 견해를 취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이 말이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의 재건 사역에서만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보아 그들이 대표 자격으로 하나님께 바쳤음을 나타낸다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Fensham, Kidner). 이것은 마치 이방 여인을 취한 사실로 인하여 회개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명단을 제시하면서 그 중 유독 제사장들만이 속건제를 드린 사실을 언급한 것과 같다(스 10:18, 19).
성벽 함메아 망대에서 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 '함메아망대'는 '양문'의 서쪽에,'하나넬 망대'는 '어문'(3절)의 서쪽에 각각 인근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 두 망대 사이에는 짧은 성벽과 그중간에 '어문'이 있었다. 이처럼 제사장들이 북쪽 성벽의재건을 담당한 것은, 그곳이 그들의 활동 무대였던 성전과 가까운 곳이기 때문이었다.
=====3:2
본절에서 부터 5절까지는 '하나넬 망대'의 서쪽 성벽 약 210m의 건축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 다음은 여리고 사람이 건축 - '그 다음'은 '엘리아십'(1절)을 위시한 제사장들이 건축한 성벽에 '연이어서'의 의미이다. 한편, 본절의 '여리고 사람'은 자신들의조상이 포로로 끌려가기 전에 '여리고'에 살고 있었음은 알았으나, 자신들의 족보에대해서는 알지 못했던 자들로 추측된다(Rudolph, 스 2:34).
이므리의 아들 삭굴 - 이 사람에 대해 별 달리 밝혀진 바는 없다. '삭굴'은 '염두에 두는'의 의미이다.
=====3:3
어문(魚門)은 하스나아의 자손들이 건축 - 예루살렘 북쪽 성벽의 좌측에 위치한 문으로서, 갈릴리 바다 및 요단 강에서 잡힌 물고기들이 바로 이곳을 통해서 들어왔다고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진 듯하다(Rawlinson). 이 문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구절들은본서 12:39과 대하 33:14 그리고 습 1:10 등이다. 한편, '하스나아'(* )는'스나아'라는 지명(地名) 앞에 정관사 '하'(* )가 붙은 것으로 봐야한다(Kidner , 스2:35 ). 따라서 '하스나아의 자손들'도 2절의 '여리고 사람들'처럼, 자신의 조상이'스나아'라는 곳에 살고 있었음은 알았으나 그 족보를 밝히지 못함으로 인하여 조상의이름 대신 지명을 통하여 구별되고 있다(스 2:35).
그 들보를 얹고 - 지붕을 올림으로써 건축을 마무리하는 것을 의미한다(Fensham).
자물쇠와 빗장 - 여기서 '자물쇠'(* , 만울)는 오히려 '빗장'을 가리키며, '빗장'은 앞의 '빗장'을 물고 있는 '소켓'(sockets)을 뜻한다(Rawlinson).
=====3:4
학고스의 손자 우리아의 아들 므레못이 중수하였고 - '므레못'은 '말기야'(11절)와함께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사역에 모두 관계되는 자로서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귀환하면서 가져온 물품들을 인수했던 제사장이었다(스 8:33). 한편, '학고스'의 자손은그 종족과 보계가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 증거할 수 없는 자들이었다(스 2:59, 61).
므세사벨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므슬람 - 이 사람은 자신의 딸을 '도비야'(2:10,19)에게 며느리로 주는 등 사마리아 사람들과 밀착된 관계를 맺었던(6:18) 제사장이다(30절). 그가 성벽 재건에 참여한 이유는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경우와 유사할 것이다(1절 주석 참조). 한편, '므술람'이라는 이름은 '동맹한'이란 뜻이다.
바아나의 아들 사독 - '사독'은 에스라가 제안한 언약문에 인친 자로만 알려졌을뿐이다(10:21).
=====3:5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 6절의 언급으로 미루어 볼 때, '드고아사람들'의 작업 몫은 '옛 문'과 인접한 동쪽 성벽의 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한편, '드고아'는 예루살렘 동남쪽 약 14.5Km 지점의 불모지에 자리잡았던 성읍으로서, '아라비아 사람 게셈'(2:19)에 의해서 공격받기 쉬웠던 입지 조건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이'드고아 사람들'은 출신지역에 따라 분류된 포로 귀환자 명단(스 2:20 - 35)에 나오지않음을 볼 때, 자신들의 족보를 잊어버린 사람들은 아닌 듯하다. 느헤미야는 다만(1) '드고아'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의 공격을 쉽사이 받을 수 있는 지역이며, (2) 그곳의 귀족들은 오히려 성벽 재건에 참여치 아니했다는 등의 특별한 상황 때문에, 조상의 이름을 통한 가족 분류 방식을 포기하고 이같이 동리의 이름을 통해 이들을 분류하고 있다고 본다.
그 귀족들은 그 주의 역사에 담부(擔負)치 아니하였으며 - 이것은 문자적으로 '그들의 귀족들은 자신들의 목들을 자신들의 주(主)들의 역사에 가져오지 않았다'의 뜻으로서, 멍에 메기를 거절하는 황소의 모습에 빗대어서(렘 27:12) 성벽 재건 사역에 동참치 않은 귀족들을 암시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한편, 여기서 '그 주'는 누구를 가리킬까? 본절의 '주'(* , 아도네이헴)가 복수라는 점에서 하나님으로 볼수 없으므로 느헤미야를 도와서 일을 하던 감독자들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Kidner).그 문자적 의미는 '높임을 받는자'이다. 한편, '귀족들'이 성벽 재건에 참여치 아니했던 이유는 (1) 이들이 '아라비아 사람 게셈'의 보복을 두려워했으며, (2) '게셈'과 상당히 깊숙한 밀착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때문으로 이해될 수 있다(Fensham).
=====3:6
본절에서부터 11절까지에서는 약 600m 가량의 성벽 재건 작업에 대해서 엄급한다.
옛문 - 왕하 14:13과 램 31:38의 '모퉁이 문'과 동일시 되며(Edwin Yamauchi) 예루살렘 북쪽 약 30Km 지점에 있던 '여사나'(대하 13:19)라는 곳으로 향하는 도로로 통하는 문이었다(Albright).
요야다 - '여호와께서 알고 계시다'의 뜻이다. 다른 곳에서는 일체 언급되지 않고있다.
므술람 - '동맹한'의 뜻이다.
=====3:7
기브온 사람 믈라댜 - 여기의 '기브온사람'은 출신 지역에 따라 분류된 포로 귀환자명단(스 2:20 - 35)에 들어 있다(7:25). 이 '기브온'은 예루살렘 북쪽 약 9Km 지점에 위치했다. 한편, '믈라댜'는 여기서만 나오는 이름으로, '여호와께서 자유케하셨다'의 뜻이다.
메로놋 사람 야돈 - '메로놋'은 '기브온 북동쪽약 5Km 지점이었을 것이다(M.Newman, 대상 27:30). 그리고 '야돈'은 '여호와께서 지배하신다'의 뜻이 있는 '여도니야'의 단축형이다.
강서편 총독의 관할에 속한 기브온 미스바 사람들 - 이것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견해들이 제시되었다. (1) 기브온과 미스바가 당시 강 서편 총독의 직접적 영향력아래 있었다고 보는 견해(Rawlinson, Keil, Schultz, Kidner). (2) 강 서편총독이 유다를 방문할 때마다 임시로 머물던 곳이 미스바에 있었다는 견해(Willamson), (3) 유다총독(5:14)이 필요할 때마다 임시로 머물던 곳이 미스바에 있었다는 견해 등이 있다. 그러나 첫째, 여기의 '관할에 속한'(* , 키세)이라는 단어가 일차적으로 '좌석' 혹은 '보좌'를 의미하며 둘째, 유프라테스 강 서쪽 전부가 '강 서편총독'의 영향아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미스바'와 '기브온'만을 직접 관할했다고 말하기는힘들며 셋째, '강 서편 총독'이라는 말을 유다 총독과 동일한 개념으로 보기도 어렵다는 사실(2:7; 스 8:36) 등으로 미루어 위의 세견해 중 (2)의 것이 가장 타당한 듯하다.
=====3:8
금장색(金匠色)..향품 장사..중수하되 - 7절에서는 가까운 지방 사람들끼리 힘을합하는 모습이 언급된 데에 이어서, 여기서는 특별한 직업의 소유자들끼리 협력하는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고대 중근동 사회에서는 '금장색'은 순금이나 금박으로 장신구와 우상등을 만드는 일에 주로 종사했었다(사 40:19; 41:7; 46:6; 렘 10:9, 14; 51:17). 그러나 포로 귀환후의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우상 숭배가 엄격히 금지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본문의 '금장색'은 장신구 등의 제조에만 관계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본절과 31, 32절은 이 '금장색'들이 자신들 끼리의 동업자 조합을 형성하고 있었을 가능성을 짙게 풍기고 있다. 더구나 여기의 '금장색'(* , 초르핌)이라는단어가 복수라는 사실은 그 가능성을 더욱 높게 한다. 한편, '향품장사'는 애굽이나인도 등지에서 완제품을 수입해서 팔거나 혹은 식물에서 '향품'을 직접 추출해내는 자들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이런 직종에 종사했던 인물로 성경에 최초로 언급되는 자는 브사렐이다(출 37:1, 29). 이러한 '향품'은 '분말' 혹은 '액체'의 형태였고, 조그만 용기에 보관되어 여인들에 의해서 지참되었다(사 3:20). 이 같은 향품의주된 용도는 몸의 냄새를 상쇄시키는 것이었고 장례용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아무튼'금장색'이나 '향품 장사'는 (1) 시간 할애가 용이하였으며, (2) 다른 직업의 소유자보다 수입이 많은 관계로 경제적으로 넉넉했기 때문에, 성벽 재건 사업에 적극적일수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이들은 그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보통 중류계급으로 분리되었다고 한다(Fensham).
저희가 예루살렘 넓은 성벽까지 하였고 - '넓은 성벽'은 B.C. 7세기 초에 히스기야왕에 의해 건축된 벽으로서 B.C. 722년에 사마리아가 함락된 이후 북이스라엘의 피난민들을 수용하기 위해 넓힌 것이다(M. Broshi). 1970,71년에 아비갓(N. Avigad)은성전 서쪽 방향 270m 정도 지점에서 6.7m 정도되는 두께의 성벽을 발굴한 바 있으며이것은 본문의 '넓은 성벽'과 동일한 것으로 짐작된다.
=====3:9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 여기서 '지방'(* ,펠레크)은 원래 '주위'나 혹은 '물레가락'의 뜻을 지니며 한계가 명확하지 않은 주변지역을 가리킨다. 따라서 여기의 '예루살렘 지방'은 예루살렘 시내 지역이 아닌 예루살렘과 붙어있는 변두리 지역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Fensham, Rawlinson). 그리고 '다스리는 자'(* ,사르)는 본서에서 보통 '방백'으로 번역된 단어로서(스 10:14) 그 당시의 유다 지역이조그만 단위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었음을 시사해준다. 한편, 본절은 해당 지역의 책임관리자 혼자서만 재건 사역을 감당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마 그의 주도하에 해당 지역내의 주민들이 이 일에 협력하였을 것이다.
=====3:10
자기 집과 마주 대한 곳 - 이곳은 예루살렘 서쪽의 급경사지로 추측된다.
=====3:11
하림의 아들 말기야 - '하림'은 스룹바벨과 함께 최초로 귀환했던 한 가족의 조상이었다(스2:32). 따라서 여기의 '아들'(* , 벤)은 '자손'으로 번역됨이 타당하다.한편, '말기야'는 '여호와는 왕이시다'의 의미를 가지는데 23절의 '베냐민'과 형제인듯하다(스 10:31, 32).
바핫모압의 아들 핫숩 - 본절의 '바핫모압'도 최초로 귀환했던 한 가족의 조상(스2:6)이다.
한 부분(* , 미다 쉐니트) - 이것은 문자적으로 '두번째 부분'으로서, 이미 배정됐던 몫 이외의 또 다른 부분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말기야'와 '핫숩'은 여기 이외에 다른 부분의 축성(築城)작업도 부여받았던 셈이다(23절).
풀무 망대 - 이는 12:38; 대하 26: 9등으로 볼때 '골짜기 문'과 '넓은 성벽'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였던 곳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이 같은 명칭이 붙여진 것은, 그곳에서 빵이 구워졌기 때문인 듯하다(Williamson).
=====3:12
그 다음 - 이는 '풀무 망대'와 '골짜기문'(13절) 사이의 성벽 부분을 말한다. '일자형'(一字型)에 길이 약 450m 정도이다.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었던 지역의 한부분을 다스리던 사람을 가리킨다(9절 주석 참조).
할로헤스의 아들 살룸과 그 딸들이 - '할로헤스'라는 이름은 '속삭이는자'(M. Newman). 혹은 '마술사'(Batten)라는 의미를 갖는다. 바로 이점 때문에 학자들은, 이 이름이 '사람의 이름' 곧 고유명사가 아니라 '직업명' 곧 보통명사라고 주장한다(M. Newman, Batten). 그러나 이와 동일한 이름이 에스라의 언약문에 인친 자들의 명단중에나온다는 사실은, 이 이름이 구체적인 개인명임을 입증해준다(10:24). 한편, 여기의 '아들'(* , 벤)은 오히려 '자손'의 의미로 봐야할 필요가 있을것이다(Schultz). 그리고 '그 딸들'(* ,베노타이우)은 (1) '딸'이 큰 도시에 인접해서 성장하고 있는 성읍에 대한 일상적 용어로 사용된 사실(겔 16:53)에 근거해서 '마을 사람들'을 뜻할 것이라는 견해(Batten, Rawlinson, Fensham, Kidner), (2) 여자는 성벽 쌓는일에 종사할 힘이 없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그 딸들'(베노타이우)은 '그 아들들'(베나이우)의 오기(誤記)라는 견해(JB, Vimcent), (3) 히브리 원문의 문자적 의미를 그대로받아들여야 한다는 견해(Williamson, Schultz, Keil)등으로 그 해석이 구분된다. 그러나 첫째, 고대 아테네에서는 무너진 성벽의 재건을 위해서 여자들도 동원 됐으며 둘째, '딸'들은 남자 형제가 없을 경우 아버지의 이름과 재산을 상속받으며(민 36:8) 셋째, 본서의 3장은 성벽 재건에 대한 백성들의 열심을 강조하는(8절) 문맥적 특색을 갖고 있다는 점 등으로 볼때, 위의 세 견해 중 (3)의 것이 가장 타당성이있다.
=====3:13
하눈과 사노아 거민 - '하눈'은 30절에서는 '살랍의 여섯째 아들'로 묘사되고 있으며 그 이름은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다'의 의미를 갖는 '하나니엘', 혹은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다'의 뜻을 갖는 '하나니야'의 단축형으로 짐작된다. 또한 '사노아'는 예루살렘 남서쪽 약 22Km 지점에 위치한 작은 성읍이다(수 15:34).
본문까지 성벽 일천 규빗을 중수 - '일천 규빗'은 약 450m의 길이이다. 북쪽 성벽약 200m 정도를 네 집단에서 담당했던 것(2-5절)과 비교해보면 매우 작은성읍 '사노아'의 거민들이 이렇게 많은 분량을 담당하였다는 사실은 특이하게 보인다.이 점에 대해서는 (1) 사노아 거민들이 큰 열심을 냈었다는 측면, (2) 그들이 담당했던 성벽의파괴가 극심하지 않았었다는 측면 모두가 인정될수 있을 것이다.
=====3:14
벧학게렘 지방을 다스리는..말기야 - '벧학게렘 지방'은 '벧학게렘'이라는 성읍과전혀 다르다. 여기서 '지방'은 어떤 성읍과 인접해 있는, 혹은 둘러싸고 있는 지역을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이다(9절). 한편, '벧학게렘'은 예루살렘 남쪽 약 5Km 지점에 위치했다.
=====3:15
샘문 - 이에 대해서는 2:14 주석을 참조하라.
미스바 지방 - 이것도 '미스바'와는 전혀 다르다(14절 주석 참조). 한편, '미스바'는 예루살렘 북쪽 약 12.8Km에 위치했다.
왕의 동산근처 셀라 못가의 성벽 - 여기서 '왕의 동산'은 기드론 골짜기 남단, 즉그 골짜기가 힌놈의 골짜기와 만나는 곳에 위치했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성벽 바깥에있었다는 결론이 나온다(IDB, 왕하 25:4; 렘 39:4; 52:7). 한편, '셀라못'은 '실로암못'과 동일시되는 것으로서(사 8:6; 요 9:7). 그 물이 넘쳐 흘러서 기드론 골짜기와힌놈의 골짜기가 마주치는 곳에 위치했던 '왕의 동산' 쪽으로 흘러갔다. 결국 이 '셀라 못'은 '왕의 동산'의 수원(水源)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 못이 예루살렘 본성(本城)의 바깥 쪽에 위치했었다. 이런 점 때문에 그 못과 그 물을 이용하는 자들의 보호를 목적으로 별도의 성벽이 쌓아졌었으므로 '셀라 못'은 성벽에 둘러싸여 있게 된 셈이다. 그렇다면 본 문구의 '성벽'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루살렘의 동쪽 성벽의 가장남쪽부분 약 100m를 가리키며 '셀라 못'의 동쪽성벽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이것은'셀라 못가의 성벽'이라고 할 만하다.
다웠 성에서 내려오는 층계 - '다윗성'은 예루살렘의 동남쪽의 한 구릉지대로서,기혼 샘의 북서쪽에서부터 남쪽까지 뻗어 있었다(삼하 5:7, 8). 그리고 '층계'는 기드론 골짜기로 내려갈 수 있었던 계단이었다.
=====3:16
벧술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느헤미야 - '벧술 지방'은 예루살렘 남쪽 약 21Km지점에 위치한 '벧술'이라는 성읍(수15:58) 그자체를 뜻하지 않고 다만 그 성읍의 인접 지역을 가리킬 뿐이다(9절). 한편, 본절의 '느헤미야'는 본서의 저자인 '느헤미야'와 동명 이인이다.
다윗의 묘실과 마주 대한 곳에 이르고 - '다윗의 묘실'은 '묘실'(* , 키브레이)이 복수라는 점에서 다윗 왕 한 사람만의 무덤이 아니라 다윗부터 시작해서 그후예들의 공동 묘지였음이 분명하다(대하 28:27). 그 위치는 '다윗 성'(15절)의 남쪽곧 시온산 어디였을 것이다(Myers, 왕상 2:10).
파서 만든 못을 지나 용사의 집까지 - 히스기야 왕이 산헤립에 의해서 포위됐을때,히스기야는 기혼의 샘 물을 막은 후 고랑을 파서 그 물이 다윗 성 안쪽으로 흘러 들어오도록 해서 식수(食水) 문제를 해결했었다(왕하 20:20; 대하 32:3, 4). 그때 그 흘러들어온 물이 한 곳에 모이도록 해놓은 시설이 곧 여기의 '파서 만든 못'이었다(사 22:9 - 11). 한편 '용사의집'은 다윗의 충실한 부하들이었던 '용사들'(삼하 23:8; 대상11:10)이 사용했던 병사(兵舍)였다(Rawlinson).
=====3:17
레위 사람 바니의 아들 르훔 - 이처럼 성전 봉사에 바빴을 '레위 사람'이 성벽 재건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다. 이는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 운동에 대한 백성들의 호응이 적극적이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 하겠다. 혹자는 본절의 '레위 사람'이 (1) 포로로 끌려가지 않았던 레위 사람의 후예이기 때문에 성전 봉사에 참여치 못했고 그래서 성벽 재건에 동참할 여유가 있었거나, (2) 포로 귀환후에는 레위인의 일부가 성읍의 행정에만 관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벽 재건에 동참하였을 것이라고 주장한다(Williamson). 그러나 (1)의 견해는, 저자가 단순히 '레위 사람'이라고만언급했다는점에서 타당치 않다. 반면 (2)의 견해는 그 당시의 상황에서 볼 때 어느 정도 타당하다.
그일라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 '그일라 지방'은 예루살렘 서남쪽 약 24Km지점에 위치한(삼상23:1 - 13) '그일라'와는 전혀 다르다(9, 12, 14절).
하사뱌 - '여호와께서 참작하셨다'의 뜻이다.
그 지방을 대표하여 - 그곳 주민들을 통솔하는 등 그성벽 재건 공사의 주체(主體)가 된 것을 가리킨다. 이 같은 역할은 한 지역을 다스리는 자로서 성벽 재건에 참여한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었을 것이다(9절).
=====3:18
그 형제..헤나닷의 아들 바왜 - 여기의'바왜'(* )는 '빈누이'(* )의 오기(誤記)로 간주될 수 있다. 그 이유는 (1) '바왜'라는 이름은 구약 성경이나그밖의 문헌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으며, (2) 9절의 '한 부분'은' 이미 배당된 몫 이외의 또 다른 부분'(11절)을 가리키므로, 본장 어디에든 '빈누이'가 느헤미야로부터할당받은 작업 몫에 대한 언급이 있어야하나 그렇지 못하며, (3) 더구나 10:9에는 '빈누이'라는 레위 사람이 '헤나닷의 자손'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본절의 '바왜' 를 '빈누이'로 고치고, 이 '빈누이'가 느헤미야로부터 두 몫의 성벽 공사를할당받았다고 결론지어야 할 것이다. 한편, 이 '빈누이'는 에스라의 언약문에 인을 치기도 하였다(10:9).
=====3:19
미스바를 다스리는 자..에셀 - '미스바'는 예루살렘 북쪽에 위치했던 한 성읍 '미스바'를 가리킨다. 한편, '에셀'은 '도움' 혹은 '구원'의 뜻이다.
한부분 - 배당된 몫 이외에 또달리 배당된 별도의 작업 몫을 가리킨다(11절). 따라서 본절의 '에셀'은 본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작업 몫 이외에 이미 또 다른 부분을 배당받았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에셀'이라는 이름은 본장 어디에도 안 나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브온 사람들과 미스바 사람들이 함께 한 재건 사역이 본문의 에셀이 감당한 또다른 한 부분이었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7절).
성 굽이에 있는 군기고 맞은편 - 이것은 문자적으로 '모퉁이에 있는 군기고로 오르는 곳 앞'의 뜻이다(Schultz, Fensham). 여기서 '모퉁이'는 '성벽이 날카롭게 꺾어지는 곳'을 의미한다(대하 26:9). 본절에서 느헤미야가 '성 굽이에 있는 군기고'라고 '군기고'를 한정적으로 표현한 까닭은 예루살렘에는 여러 군데에 군기고가 있었던때문이었다(사 22:8).
=====3:20
삽배의 아들 바룩이 한 부분을 힘써 - '삽배'는 스 10:28에서 이방 여인을 취했다가 회개한 자로 언급된다. 그리고 '바룩'은 본서 10:6, 8을 볼 때, 제사장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 같은 사실은 여기의 '한 부분'에 대한 중요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있다. 즉, '바룩'은 다른 제사장들과 함께 성벽 재건에 동참했었고(1절) 이제 그와는별도로 또 다른 '한 부분'을 맡아서 공사를 했던 것이다. 한편, '힘써'(* ,헤헤라)는 '맹렬하다', '타오르다' 혹은 '진노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하라'(* )의 사역형으로서 '뜨겁게 되다'(Fensham) 혹은 '열심을 품다'의 의미이다(Davidson). 이 같은 단어는 앞의 '한 부분'이라는 말과 매우 잘 조화된다. 즉, 그는 열심을 품어서 이미 자신에게 맡겨졌던 공사를 재빨리 완료하고, 또다시 새로운 부분에대한 공사에 뛰어 들었던 것이다.
성 굽이에서부터..엘리아십의 집 문에 이르렀고 - '성 굽이'는 '군기고'가 있는 성의 모퉁이를 가리키며 '집문에'는 '집 문 맞은편'의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Batten,16, 19절). 만일 본절의 '집 문에'를 여자적(如字的)으로 받아들인다면, '엘리아십의집'이 성벽과 붙어있었다는 오해를 낳게 될 것이다.
=====3:21
학고스의 손자 우리야의 아들, 므레못 - '학고스'는 스 2:61에서 자신들의 계보를증명치 못하여서 성전 봉사에 참여치 못했던 제사장 가문의 조상으로 언급되고 있다.따라서 여기의 '손자'는 '자손'으로 번역함이 타당하다. 그리고 '므레못'은 스 8:33에서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가져온 물품을 인수했던 제사장으로 언급된다.
한 부분을 중수하여 - '므레못'도 20절의 '바룩'처럼 자신에게 맡겨졌던 최초의 작업 몫을 재빨리 마치고, 본절의 또 다른 성벽 공사에 뛰어들었음이 분명하다(20절). 엘리아십의 집 문에서부터..
모퉁이에 이르렀고 - 이것은 (1)므레못의 공사량(工事量)이 비교적 적었다는 사실(Rawlinson, Batten), (2) 엘리아십의 집이 매우 컸다는사실(Keil) 중 하나를 시사할 것이다. 그러나 첫째, 느헤이야 귀환 당시의 예루살렘은그 경제형편이 좋지 못했으며(1:3) 둘째, 대제사장 그 당시 행정적 측면을 관장했었던총독보다 권한이 비교적 적었음(5:9)을 미루어 볼 때, 위의 두 가지 추측 중 전자가보다 타당할 듯하다. 그런데 '므레못'이 이처럼 적은 몫 만을 담당했던 까닭은, 그 부근의 공사 조건이 심히 나빴기 때문일 것이다(Batten, 2:14). 아무튼 '므레못'이 대제사장 집 앞의 성벽 공사를 담당했었다는 사실은, 그가 그 당시 신실한 제사장으로 인정되고 있었다는 좋은 증거라 하겠다(Scultz).
=====3:22
평지에 사는 제사장들 - '평지에 사는'(* , 안쉐이 키카르)은문자적으로 '평지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한편, '평지'(키카르)는 (1) 예루살렘의 주변지역(Fensham, Williamson), (2) 요단강 유역의 여리고 지역(Keil, Rawlinson, Scultz, Batten) 등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여기의 '평지'라는 단어가 여러 차례에 걸쳐 요단강 유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된 것은 사실이지만 첫째, 이것이 에브라임 산지에대해서도 적용됐으며(삼하 18:23 ) 둘째, 특히 본서에서 예루살렘 주변을 나타내는 데사용됐다(12:28)는 점 등으로 볼 때, 위의 두 견해 중 (1)의것이 보다 타당한 듯하다.따라서 본절의 '평지에 사는 제사장들'은 예루살렘 시내에 살며 성벽재건에 최초로 나섰던 제사장들(1절)과는 분명히 구별된다(Williamson).
=====3:23
베냐민과 핫숩 - '베냐민'은 '하림 자손'으로서 11절의 '말기야'와는 형제 혹은 근친인 듯하다(11절; 스 10:31, 32). 그리고 '핫숩'은 '바핫모압 자손'으로서 '베냐민'의 형제 '말기야'와 함께 '풀무 망대'를 재건했던 사람이다. 그렇다면 본절의 '핫숩'은, 한 곳에서는 '하림자손'의 '말기야'와 함께, 또 다른 곳에서는 그형제 '베냐민'과 함께 공사를 하는 등 두 몫을 담당했던 셈이다(11절).
아사랴가 자기 집에서 가까운 부분을 중수 - '가까운 부분'(* , 에첼)은 구약 성경에서 대부분 '옆에' 혹은 '곁에'로 번역되는 단어(창 39:16; 삼상 5:2; 왕상10:19)이지만 문맥상 19절의 '맞은편'과 동일한 의미로 이해된다. 아무튼 이 문구나앞에 '자기집 맞은편 부분'이라는 문구는, 느헤미야가 성벽재건 사업의 추진과 관련해서 공사 담당자의 편의를 최대한으로 고려해주었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라고 할만하다. 한편, '아사랴'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도우셨다'의 뜻이다.
=====3:24
헤나닷의 아들 빈누이가 한 부분을 중수 - '빈누이'는 18절에 나오는 '헤나닷의 아들 바왜'와 동일 인물이다(18절). 이 사람은 동쪽성벽의 남쪽 부분을 건축한 다음 여기서 또 다른한 부분의 성벽 건축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아사랴의 집에서부터 - 이것은 '아사랴의 집 끝 모퉁이에서 부터'로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아사람의 집 근처, 곧 아사랴의 집 맞은편 쪽은 아사랴 자신이 직접 성벽 공사를 하였기 때문이다(23절).
성 굽이를 지나 성 모퉁이에 이르렀고 - '성굽이'는 '성벽의 처음 꺽여진 부분'을뜻한다(19절). 한편, '모퉁이'(* ,피나)도 '굽이' 와 거의 같은 뜻으로서, 여기서는 성의 꺾여진 부분이 원래의 방향대로 다시 꺾여진 부분을 가리킨다.
=====3:25
우새의 아들 발랄 - '발랄'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셨다'의 의미로서 구약 성경 중본절에만 나오는 이름이다. '우새'도 오직 여기에만 나오는 이름으로 '여호와께서 들으셨다'의 뜻이다.
왕의 윗 궁에서 내어민 망대 - 여기의 '윗'은 '높은'의 의미로서 '왕궁'을 수식한다기보다는 '망대'를 수식한다고 봄이 더 무난하다(Rawlinson). 한편,'왕의 궁'에 대해서는 (1) 솔로몬의 왕궁(Schultz), (2) 다윗의 왕궁(Rawlinson), (3) 포로로 끌려가기 직전의 왕의 임시 대피소(Fensham) 등의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있다. 그러나 이'왕궁'이 이미 언급된 남쪽의 '다윗 성'(15절)과 다른 이름으로 구별되어 나타나고 있다는 점 등으로 볼 때 위의 (1)과 (3)의 견해 중 (1)의 것이 보다 타당성이 있다. 그리고 '내어민 망대'는 솔로몬의 왕궁 외곽을 경비하기 위하여 세워진 망대의 하나임이분명하다.
시위청에서 가까운 부분 - 이것은 시(市)외곽을 감싸는 성벽의 일부가 아니라 솔로몬 왕궁 외곽의 '내어민 망대'와 연결된 내성벽(內城壁)의 일부이다. 한편,'시위성'은 영역본 흠정역의 번역대로 '감옥'으로 봄이 타당할 것이다(12:39; 롑 32:2).
바로스의 아들 브다야 - '바로스'는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했던 한 가족의 조상이었다(스 2:3). 따라서 여기의 '아들'은 '자손'으로 고쳐야 한다. 한편, '브다야'는 '여호와께서 속량하셨다'의 뜻이다.
=====3:26
때에(* , 웨) - '그리고' 혹은 '그런데'의 뜻이다.
느디님 사람은 오벨에 거하여 - '느디님 사람'에 대해서는 스 2:43 주석을 참조하라.
동편 수문과 마주 대한 곳 - '수문'은 기혼 샘 반대편에 위치한 듯하다. 그렇다면이문은 동쪽 성벽의 남쪽에서 북쪽에 이르는 중간지점에 채 못미치는 곳에 해당될 것이다. 이 문앞에는 넓은 광장이 있어 공중 집회시 이용되었다(8:1). 한편, '마주 대한곳'은 '동편 수문'과 '내어민 망대' 사이의 성벽 부분이다.
=====3:27
드고아 사람들이 한 부분을 중수 - '드고아 사람들'은 자신들의 방백의 협조나 지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쪽 성벽의 한부분에 대한 공사를 담당했었다(5절).
=====3:28
마문 위로부터 - '마문'은 동쪽 성벽에 있었던 한 문으로서(롑 31:40), 말(馬) 혹은 말을 탄 사람들이 시내로 들어갈 때 이용됐었다. 아무튼 이 '마문'은 솔로몬의 옛왕궁으로 연결되는 문이었던 것 같다. 한편, '위'는 마문 북쪽성벽을 가리킨다.
제사장들이 각각 자기 집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 - 이것은 이미 북쪽 성벽공사에참여했던 '므레못'이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집 근처를 별도로 공사했었던 것과 유사한경우이다(21절). 즉, 본절의 '제사장들'도 이미 '므레못'처럼 북쪽 성벽 공사에 참여했었고(1절), 다시 또 다른 몫의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3:29
임멜의 아들 사독 - '임멜'은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했던 제사장 가족의 한 조상이었다(스 2:37). 따라서 본절의 '아들'은 '자손'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또한 '임멜'은다윗이 세운 제사장 조직 중 '열 여섯째'반차에 속한 사람이었다(대상 24:14).
동문 지기 스가냐의 아들 스마야 - 여기의 '동문'은 외성벽과는 상관 없이, 성전건물에 속했던 문이었던 것 갈다(겔 40:6, 10). 그 문은 스룹바벨 성전 재건 때에 복구되지 못했다가 금번에 성벽의 한 부분으로서 복구된듯하다(Fensham). 이처럼 '동문'이 성전 건물에 속했다는 사실은, '동문 지기'가 레위인이었다는 사실에 대한 분명한증거가 된다. 혹자는 본절의'스마야'를 대상 3:22의 '스마야'로 보고, 그가 다윗의 후손이라고 주장하지만 근거가 희박하다.
=====3:30
하나냐..한 부분을 중수 - '하나냐'는 8절에서 '향품 장사'로 묘사되는 '하나냐'와동일한 인물임이 분명하다. 즉, 본절의 '한부분'은 '하나냐'가 다른 부분의 성벽 공사도 담당했었음을 시사하며(11절), 이것은 곧 여기의 '하나냐'가 8절의 '하나냐'와 동일 인물임을 입증한다.
살랍의 여섯째 아들 하눈 - '여섯째 아들'이라는 수식 문구는 '살랍'의 많은 아들중에서 오직 말째에 가까왔을 한 아들인 '하눈' 만이 성벽 재건에 참여했었음을 강조하려는 것인 듯하다.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 - 4절의 '므술람'과 동일 인물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본절의'므술람'도 두 곳의 성벽을 재건한 셈이다.
자기 침방과 마주 대한 부분 - '침방'(* , 니쉬카토)은 일반적인 의미의 '방'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특별하게는 성전에 속한 여러 방들에 대해 적용되는 단어이다(Fensham, 12:44; 13:7). 따라서 본절의 '자기 침방'은 '므술람'이 제사장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자기 침방과 마주 대한 부분'은 성전과 가까운 성벽을 가리킨다.
=====3:31
금장색 말기야 - 본절의 '금장색'(* , 초르피)은 8절의 '금장색'과는달리 단수이다.
함밉갓 문과 마주 대한 부분 - '함밉갓 문'(* , 솨아르 하미프카드)의 '하미프카드'는 삼하 24:9에서는 '인구 조사'의 의미로 사용된다. 따라서본절의 '함밉갓 문'은 히브리 단어의 음역을 그대로 따르기 보다는 차라리 의미적으로번역해서 '소집문'(RSV, the Muster gate ; the Inspection gate)으로 옮겨질 수 있다(Fensham, Williamson). 이는 백성들이 특별한 일이 발생했을 경우에 그 문 앞으로 소집되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문의 위치는 '동편 수문'과 연결된 성벽에서 북쪽으로 약 90m 지점이다. 따라서 이 '함밉갓문'의 '마주 대한 부분'은 동쪽외성벽의 거의 북쪽 끝부분이 되는 셈이다.
느디님 사람과 상고들의 집 - '느디님 사람의 집'은 그들이 성전 봉사를 하는 동안에만 사용했던 거처로 받아들여야 한다(Fensham, Williamson). '느디님사람'의 집은'오벨' 근처에 있었다(26절). 한편, '상고들'(* , 라칼림)은 '돌아다니다'의 뜻을 갖는 동사 '라칼'(* )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활동 반경이 상당히 넓은상인을 가리킨다. 아들은 먼 곳에서 물건을 구입해서 팔거나 혹은 자기의 고향 물건을먼 곳까지 가져가서 팔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금장색'이나 '향품장사'처럼 동업 조합(guild)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여기의 '라칼림'이라는 복수명사는 이들이 동업 조합을 구성하고 있었으리라는 주장을 뒷받침해 준다.
성 모퉁이 누(樓) - 성벽의 북동쪽 부분에 있었던 '다락방' 종류였던 것 같다. 마치 망대와 같은 기능을 했을 것이다.
=====3:32
성벽 공사의 마지막 부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여기서도 특수한 직업에 종사했던 사람들의 열심을 강조하고 있다(8절).
양문 - 제사장들에 의해 복구된 바 있다(1절).
본서 전반부(1-7장)의 내용 중 그 핵심을 이루는 본장은 성벽을 재건한 자들의 명
단이 나타나 있아. 즉, 본장은 성벽 재건을 위해 철저히 줌비한 사실(2장)과 건축에
대한 방해자들의 공작(4:1-6:14) 사이에 있는 대목으로 성벽 재건 공사에 참여했던 자
들의 명단과 그들이 맡았던 작업에 대해 기술한 대목이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장은 (1)북쪽의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참여행아던 자들의 명단과 그들이 한 일(1-5
절), (2)서쪽의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봉사했던 무리들의 이름과 그들이 한일(6-13
절), (3)남동쪽의 성벽 재건 작업에 헌신했던 자들의 명단(14-19절), 그리고 (4)동쪽
성벽 재건에 함께한 자들의 이름(23-32절)이 언급되어 있다.
그런데 본장은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참여했던 자들의 명단과 함께 그들이 한 일을
대표적으로 지명과 함께 기술해 본서 저자가 예루살렘 성의 지정학적 위치에 관심을
두고 기록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뿐만 아니라 본서 저자는 자신의 귀환 과정
을 설명하지 않고 아닥사스다를 향한 간청(2:1-8)을 언급해 그것을 대신 한 것과 같
이, 본장에서는 성벽 재건 공사의 개요나 작업 과정 그리고 작업 현장 들을 언급하지
않고 단순히 이일에 참여했던 자들의 명단과 업무 분야만을 기술해 그것을 대신한다.
예루살렘의 성벽 재건 사업은 비록 예견되는 문제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추진
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예루살렘이 이방인들의 침략에 대해 고속 무방비 상태로 있을
경우, 그 결과는 너무나도 심각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이 유다 총독으로
부임한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의 필요성을 역설하였으며, 백성들의 상당수는 성벽 재건
의 당위성을 절감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성벽 재건 사업은 느헤미야가 성벽을 조사한
후 얼마 안 되어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성벽 재거에 대한 백성들의 반대는 없었지만(2;17,18), 그렇다고 해서 유다
의 모든 백성들이 거기에 적극 호응하지도 않았다. 유다 사람들 중의 상당수는 예루살
렘에 살지 않았었고 몇몇 중요한 가문이나 장소, 즉 베들레헴에 거주하고 있던 밸성들
은 동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예루살렘렘 살고 있지는 않았지만 성벽 재건이 이
스라엘 공동체 전체를 위해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함을 느낀 밸성들만이 그 사업에 참
여하였던 것이다. 이같은 성벽 재건 사업에의 참여 인원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느헤미
야가 취했던 사업 추진 방식은 대단히 적절한 것이었다. 즉, 느헤미야는 동참자들에게
작업 몫을 적절히 할당함으로써 일의 효율성을 높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기도의
사람이었던 그가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성벽 파괴 정도를 살핀 후, 하나님으로부터 받
은 지혜에 따라 그 같은 방식을 택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물론 그는 성벽 재건에 참
여한 사람들 공동의 책임으로 성벽을 차례대로 쌓게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같은 방식은 사업 참여자의 작업 의욕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컸다. 따라서 어떻게
해서든지 빨리 마무리져야 했을 그 재건 사업의 추진 방식으로는 적절하지 않았다.
한편, 예루살렘의 성벽 재건이 갖는 의의는 다음과 같이 집약될 수 있다. 즉, 바벧
론에 포로로 잡혀 있다가 유다로 귀환한(대하 36;22,23)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떳떳이 살기 위해서는 파괴된 성전과 무너진 성벽을 재건해야 했다. 그런
데 성전은 재건하였으나(스 6:15) 성벽은 이방인들의 방해로 인해 재건하지 못하고 있
었다(스 4:12, 13, 21,23). 이런 상황에서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성벽을 재건하게 되었
으니 실로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보호하심에 대해 새삼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기
에 성벽 재건은 하나님께서 언약의 백성을 징계하시고(왕하 25:1-21) 다시 회복시켜
주신 사실을 역사적으로 증명한 사건인 것이다. 이러한 의모 볼 때 성벽 재건은 성전
재건과 함께 으스라엘의 회복을 상징하는 역사적 의의가 있다.
또한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렘 31:38)이 성취된 이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은 죄로
인하여 무너졌던 우리의 생명이(롬 3:23;6:23)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다시 살아난다는
사실을 예표한다. 그러기에 이 성벽의 재건은 당시 유다 백성들에게 뿐만 아니라 오늘
날의 우리 성도들에게도 의미가 깊은 것이다.
우리는 이 같은 본장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교훈받을 수 있다. 즉, (1)성도의 하
나님 나라에의 헌신은 개인적 희생를 통해서만 가능하며(행 14:22), (2)하나님의 특별
은총은 그 은혜를 사용하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 그 효율성이 중대될 수 있음(출
18:13-26)을 깨닫게 된다.
1. 북쪽 성벽에서 작업한 자들(3:1-5)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한 사람들의 명단과 그들이 분담해 맡았던 공사 장소를 자세
히 언급하는 본장에서, 본문은 그 서두격으로 북쪽에서 작업한 자들을 기술한다. 즉,
본문은 양문에서부터 어문(魚門) 사이, 그리고 어문에서부터 옛 문까지 공사한 사람들
을 서술하는 바, 제사장의 무리들이 맨 처음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작업 구역을
서술하고 있는 본문은 (1)양문과 그 주변을 대제사장 엘리아십과 제상장들이 맡았음을
드러내는 구절(1절), (2)양문과 어문 사이를 맡았던 여리고 사람들과 삭굴을 기록한
구절(2절), (3)어문을 맡았던 자를 증거하는 구절(3절), 그리고 (4)어문과 옛 문 사이
를 맡았던 자들을 언급하는 구절(4, 5절)로 구성되어 있다.
사실 대제사장을 포함한 제사장의 무리들이 성벽 재건 사업에 동참했다는 사실은
그 사업을 주도한 느헤미야에게 대단한 격려가 되었을 것이다. 비록 느헤미야가 하나
님의 능력을 절대적으로 믿었던 신앙의 소유자였지만, 그는 성벽 재건 사업과 관련하
여 예견되던 여러 가지 난점 때문에 적잖은 염려를 하던 차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러던 차에 제사자들은 자원하여 북쪽 성벽의 일부, 즉 양문과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
나넬 망대까지 담당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만링 제사장들이 성벽 재건을 등한시하고
그 일에 동참하지 않았다면 그 결과는 심가하였을 것이 뻔하다. 백성들은 종교 지도자
들인 제사장들도 참여치 않는 성벽 재건 사업에 동참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
라서 제사장들의 성벽 재건 사업에의 참여는 본 사업의 성패를 가를 만한 중요한 요소
였다.
그런데 실상 제사장들이 성벽 재건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거의 기적과도 같은 일이
었다. 왜냐하면 대제사장 엘리아십을 포함한 유력한 제사장들이 느헤미야 총독 부임을
적극 못마땅하게 여긴 것 같으며 또한 성벽 재건을 방해하던 산발랏고 도비야 일당과
깊은 유대 관계를 갖고 있었던 듯하기 때문이다(6:10-12;13:4).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
교 지도자들인 제사장들이 성벽 재건에 참여한 것은 백성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제사장들 중에서 그야말로 순수한 신앙적 동기에
서 성벽 재건에 참여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당수는 그렇지 않았을 가능
성이 있다. 대제사장이 산발랏과 내통했을 정도라고 한다면 다른 제사장들의 경우는
말할 나위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사장들이 성벽 재건에 참여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하나님의 강권적 역사
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음이 분명하다. 사실 백성들의 눈치를 보는 일은 성벽 재건
을 자신과 무관한 일로 보던 방관자적 자세의 소유자들에게 해당될 것이다. 이 같은
자세의 소유자보다도 더 나쁜, 즉 심지어 느헤미야를 대적했을 가능성이 컸던 대제사
장 에리아십 등의 경우는 하나님의 강권적 역사 없이는 결코 그 사업에의 참여가 불가
능하였을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당신 앞에 놓인
모든 장애물들을 제거하신다. 왜냐하면 당신의 작정하신 바는 반드시 성취되가어야만
하는 당위성을 갖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이 담당했던 지역이 양문과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였다
는 점이 또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양문은 예루살렘 성의 북동편에 자리잡
고 있었는데 그곳은 성벽 전체 가운데서 지형적인 조건에 비추어 볼 때 적과 가장 근
접해 있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뿐만 아니라 이 문은 다른 여타
의 문들과 비교해 볼 때 성전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같이
중요한 곳에 위치해 있는 문과 그 지역을 제사장의 무리들이 재건했다는 것은 매우 의
미있는 사실이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느헤미야는 이 지역이 성별된 곳이라고 1절을
통해 두 번씩이나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본문에는 성 북쪽의 끝을 담당했던 드고아 사람들이 나오는데 그들은 지도자
없이 평민들만이 성벽 재건에 참여한 경우이다. 왜냐하면 추측컨대 그들의 지도자는
'아라비아 사람 게셈'(2:19)과 밀착 관계를 유지한 듯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지도
자들은 '게셈'과의 관계를 고려해서 성벽 재건에 참여하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드고
아 사람들은 지도자들의 그와 같은 태도와는 달리 성벽 재건에 힘슴으로써 하나님의
사업에 동참한 것이다. 실로 그들은 지도자들의 솔선 수범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어
려운 사업에 참여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본 단락에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즉, (1)성도는
자신의 비협조가 지도자와 교회 전체에 미칠 악영향에 대해서 생각하여야 하며(딤후
4;10), (2)하나님께 장애가 되는 요인은 아무것도 없으며 그 모든 것이 전부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한 도구들임(사 10:5,6)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3)드고아의 귀족들
이 재건 사업에 참여하지 않은 사실을 통해, 역설적으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행함에 있어서 권세 있고 부유한 자들일수록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더 크고 많은
일을 감당하여야 함을 배울 수 있다(딤전 6:17-19).
*느헤미야 시대의 대제사장 신분. 이스라엘은 바벧론에게 멸망당한 사건을 계기
로 하여 국가로서의 주권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따라서 이스라엘 공동체는 포로
이전 시대와는 달리, 국가적 요소는 사라져 버리고 다만 교회적 요소만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바로 이 같은 현상은 결국 대제사장의 신분적 위치를 강조하고, 혹으 상승시
키기에 적절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포로에게서의 귀환 직후 대제사장 예수아가 총독
스룹바벧과 나란히 이스라엘 공동체의 중요한 인물로서 활약했던 모습(스2:2;3:2;4:3:
학 1:1)을 통해서 분명해진다.
그러나 대제사장의 위치가 그 정도로 높았던 것은 오직 포로 귀환 초기 시대에 국
한되었다. 느헤미야 시대에망 해도, 대제사장이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특별히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본서가 익히 증명해 주고 있다. 그렇다면, 대제사장의 위치
가 그처럼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한 원인은 무엇일까? 우리는 그
원인 중의 하나로,그 당시에 언약궤 및 우림과 둠밈이 없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사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물이었던 언약궤가 없는 성전의 책임자인 대제사장이 포로
시대 전, 즉 언약궤가 있었던 시대의 대제사장보다 백성들의 단순하 안목과 생각으로
는 무언가 부족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또한 우림과 둠밈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계시
받을 수 있었던 포로 전의 대제사장(삼상 23;2, 6, 9-11)보다 그렇기 못한 대제사장은
백성들에 의해서 열등하게 느껴졌을 것이 분명하다. 물론 구속사적으로 볼 때, 포로
귀환 시대의 대제사장이 그 전의 대제사장보다 열등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스 3:
8-13 강해, '스룹바벧 성전의 구속사적 위치' 참조).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현상적인
관찰 능력밖에 없는 백성들은 이러한 원인들을 마음속에 담아 차츰 대제사장의 위치를
격하시켰던 것이다.
그렇지만 대제사장의 신분이 격하된 데는 반드시 '언약궤' 및 '우림과 둠밈'의 부
재(不在)에 기인한다고만은 볼 수 없다. 오히려 '언약궤' 및 '우람과 둠밈'의 부재는
지극히 부차적 원인었음이 분명하다. 이 같은 단정은, 예수아도 '언약궤' 및 '둠밈'이
없었던 시대에 살았지만 중요한 인물로서 활약했던 사실로 그 정확성이 입증된다.
따라서 대제사장의 신분이 유다 사회에서 격하된 것은 대제사장으로서의 지도자적
역량의 부족 및 도덕성 결여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만 한다. 만일 대제사장이라는 신분
을 소유한 엘리아십이 도덕적으로 무흠(無欠)한 상태에서 지도력을 행사하였다면, 과
연 어떤 백성이 그를 대적했겠는가? 그러면 대제사장 엘리아십은 대제사장으로서의 자
신의 신분적 위치를 유지하면서, 당시 이스라엘 공동체의 중요한 인물로서 인정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또한 느헤미야도 그의 활동 영역을 충분히 인정해 주었을 것이다. 그
러나 불행하게도 엘리아십은 자신의 여러 부족한 점(13:4,5,28)을 극복하지 못함으로,
성경에서 이처럼 무능한 인물로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같은 사실을 통해 우리는 (1)교회의 영적 지도자는 지도자에게 필수적인
자격을 소유함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고정시킬 수 있어야 하며, (2)지도자에게 필수적
인 자격 요건중 중요한 것은 도덕적 성결(딤전 3:1-7)임을 깨닫게 된다.
2. 서쪽 성벽에서 봉사한 자들(3:6-13)
북쪽 성벽 재건 작업에 참여했던 자들의 명단과 그 작업 영역을 언급한 전단락(1-5
절)에 이어지는 본문은 서쪽 성벽의 재건 공사에 참여했던 자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
다. 그런데 본문은 옛 문부터 시작해서 시계 왼쪽 방향으로 돌아 골짜기 문까지의 성
벽을 재건한 사람들의 명단을 기록한 것으로 그 어느 부분의 재건 공사자들보다 남다
른 특징을 갖고 있다.
본문은 (1)옛 문부터 시작하여 예루살렘 넓은 성벽까지 중수한 자들의 명단(6-8절
0, (2)그 다음부터 풀무망대까지를 복원한 자들의 이름(9-11절), 그리고 (3)그 다음부
터 골짜기 문까지의 성벽을 재건한 사람들의 이름(12, 13절) 등에 대한 언급으로 구성
되어 있다. 그런데 본문에 언급된 공사에 참여한 자들의 구성이 조금은 특이하다. 그
참여자 중에는 온갖 계층의 신분들이 총망라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간접
적으로 시사하고 있는 본 단락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이 지역의 공사에는 금 세공업자들 뿐만 아니라 향품을 파는 상인들도 참여
했다는 것이다(8절). 본문에서 뿐만 아니라 31,32절에도 이들의 작업 구역과 그 일이
언급되는데 이는 특수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조차 하나님의 일에 참여했음을 나타낸다.
또한 이러한 언급은 당시 유다 사회의 구성 요원을 추측하는 데 좋은 단서강 되기도
하고 당시 특수한 기술이나 직업을 가진 자들이 동업 조합(guild)의 형태을 이루고 살
았음을 드러낸다.
둘째, 또 하나 특이한 것은 본문에 나타난 바와 같이 서로 다른 두 지역의 주민들
이 힘을 합하여서 성벽의 한 부분을 재건했다는 사실이다(7, 13절). 그들은 힘을 합하
지 않을 경우에도 조금씩은 일을 맡아 어느 정도의 진척을 보일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서로 힘을 합해 재건 사역에 참여한 사실은 하는마
나라의 확정과 건설을 위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서로 힘을 합해 협력해야 함을 암시하
는 듯하다.
셋째, 그러나 이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벽 재건에 여자들까지도 참여했다는
사실이다(12절). 물론 구약 성경에도 여자들의 활동이 언급되기는 한다. 그러나 그것
은 그야말로 특이한 경우들이었다. 따라서 그 당시의 상황에서 여자들이 이와 같은 사
역에 참여했다는 것은 가히 획기적인 사건이라 할 만하다.추측컨대 그녀들의 아버지는
성벽 재건 사업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만한 일생 일대(一生一代)의 중요한 일임을 믿
음으로 깨달은 듯하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직접 참여했을 뿐만 딸들까지도 성벽
재건에 참여시킴으로써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했던 것 같다.
우리는 바로 이 같은 본 단락을 통하여 (1)힘과 뜻을 모으는 신앙 공동체 위에 하
나님의 능력은 보다 크게 나타나며(삿 20:11; 빌 1:27), (2)하나님 나라 건설에 참여
할 기회는 모든 신자에게 차별없이 동등하게 주어짐(딤후 4:8)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3)하나님 나라의 일에는 빈부(貧富)와 지위의 고하(高下), 남녀와 직업의 귀천을 막
론하고 다 함께 참여해다 함을 더불어 배울 수 있다(롬 12:4-8).
*고대 중근동 사회의 동업 조합(guild). 고대에도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동종(同
種)의 기술이나 직업의 소유자들끼리 함께 모여서 이루는 동업 조합이 있었다. 이 같
은 사회 현상은 중근동 지역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 동업
조합은 오늘날의 노동 조합과 비교해 볼 때 자신들의 이익 보호를 위해 결성되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그 기능에 있어서는 조금 달랐다.
동업 조합의 초기 형태는 그 응집력이 대단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포로 귀환 시대
에 들어와서는 그 응집력도 대단해졌다. 왜냐하면 이 조합도 하나의 조직체였기 때문
에 최고의 통솔자, 즉 조합장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조합은 조합장의 주도
아래 다른 지역 출신의 기술자, 혹은 업자의 자신들의 구역 내의 출입을 금지시키기도
하였다. 또한 동업 조합은 특정 구역 내에서 기술 독점권을 행사할 수도 있어 심지어
는 시장을 독점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동업 조합의 주요 기능은 어떤 회원이 자신들의 직업과 관련하
여 사용하는 연장 혹은 동물, 그리고 배 등을 상실하엿을 경우 부주의에 의한 것이 아
닌 한, 그것을 다시 살 수 있도록 비용을 대주는 공제(共濟) 기능이었다고 할 수 있
다. 추측컨대 이러한 공제 기능은 상(喪)을 당한 조합원에게 장례비를 대주던 초기 기
능의 발전된 형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동조 조합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발
전을 거듭하여 자체의 요지와 회당을 소유할 만큼 성장하였다. 그리고 이 같은 현상은
농경 사회부터의 탈피와 함께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자연스러운 것이었기에 계속해서
발전된 듯하다.
3. 남동쪽 성벽에서 일한 사람들(3:14-19)
북쪽과 서쪽의 성벽을 재건한 사람들의 이름과 그들의 작업 영역에 대해 언급한 전
단락(1-13절)에 이어지는 본문은 남동쪽 성벽의 재건 사업에 동참한 자들의 명단을 기
록한 대목이다. 본문은 분문(糞門)에서부터 성굽이에 있는 군기고 맞은편에까지 이르
는 성벽을 재건한 자들의 이름을 기술한 부분으로 예루살렘 성의 남동쪽 돌출부를 공
사한 장면이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문은 (1)분문을 재건하 자들의 명단(14
절), (2)샘문을 증수하고 다윗성의 내려오는 층계까지 공사한 자들의 이름(15절), 그
리고 (3)그 이후부터 군기고 맞은편까지 재건에 참여한 자들의 이름(16-19절)으로 구
성되어 있다. 이같이 본서 저자는 앞 단락에서와 마찬가지로 예루살렘의 당시 지형을
세밀하게 나타낼 뿐만 아니라 그 공사에 참여했던 자들을 증거하고 있다.
이 같은 의도로 기록된 본문은 성벽 약 480m 정도의 작어베 대해 서술하는 바, 본 단락에 소개도닌 무리는 모두 일곱의 작업단(作業團)이었다. 그런데 그중에서 여섯은 지방 행정관에 의해 주도된 작업임을 밝히고, 나머지 하나(17절a)는 레위 사람에 의해 공사가 진행되었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특히 여섯 지방 가운데서 다섯이 터전이 굳건치 아니한 성읍, 즉 성 주변지역에 살던 무리임을 감안할 때 이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그 인근 지역의 사람들까지 공사에 참여했음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여기에 언급된 대부분의 성벽 재건에의 참여자는 공히 직접적으로 예루살렘 성벽이 있든 없든 상관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예루살렘 성벽이 계속 훼파된 채 방치될 경우, 경우 심한 해(害)가 자신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판단하였을 것이다(본장 장강해), 그리고 이에 따라 그들은 성벽 재건 사업에 적극 참여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지도자를 중심으로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성벽 재건에 참여하였다. 그야말로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할 만하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본문에 나타난 또 다른 특징은 그들 대부분이 중요한 성읍 주민들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당시 팔레스틴 땅에는 초기 이스라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만큼 오래된 성읍들이 많았다. 분명히 그런 도시들은 오래된 만큼 여러 가지로 발달된 상태였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의 남동쪽 성벽 재건에 참여한 무리들은 그 같은 부유한 성읍 출신들이 아니었다. 단지 그들은 포로 귀환 후 그러한 성읍들의 변두리 지역에 새로 새워진 성읍의 주민들과 그 지도자들에 지나지 않았다. 이처럼 그들을 기타의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일념으로 성벽 재건에 참여하였던 것이다.
한편, 본문에는 앞 단락에서도 간헐적으로 언급된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3, 6, 13절)라는 글귀가 문(門)의 중수 사실 속에 의도적으로 나타난다914,15절). 이는 성벽을 재건하는 주요 목적 중 한 가지를 드러내는 것으로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고, 그 침략으로부터 보호받으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본문에는 '다스리는 자'라는 표현이 전(全) 구절에 의도적으로 언급되어 있다(14-19절). 이는 바벧론 포로로부터 귀환한 유댜 백성들이 거하던(스 2:1) 여러 지방을 다스리던 사람을 나타낸 것으로 그들을 중심으로 재건 사역이 이루어졌음을 나타낸다.
우리는 이 같은 본 단락을 통하여 (1)지도자와 회중이 한 마음이 되는 교회가 하나님의 능력을 보다 크게 드러낼 수 있으며(행 1:13,14;2:1), (2)하나님께 대한 봉사는 형편이 좋을 때 보다 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고후 8:2)을 깨닫게 된다.
4. 동쪽 성벽을 재건한 사람들(3:20-32)
본문에는 동쪽 성벽 약 650m 정도의 재건 작업이 분담 시행되는 모습이 기록되오 있다. 그런데 이 구간의 재건 작업에 많은 작업단들이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공사 구간의 길이도 길었지만 무엇보다도 성벽의 파괴 정도가 극심하였기 때문이다(2:14). 따라서 동쪽 성벽 재건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열심이 있어야만 하였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문은 (1)군기고 맞은편 이후부터 성 모퉁이까지 재건에 참여한 자들의 명단(29-24절), (2)성 굽의 맞은편과 그 이후부터 오벧 성벽까지 재건한 자들의 이름(25-27절), 그리고 (3)마문(馬門)위로부터 양문에 이르기까지의 공사에 참여한 자들의 명단(28-32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처럼 느헤미야는 북.서.남동(1-19절)쪽 뿐만 아니라 본문을 통해 동편에서 공사한 자들을 언급하므로써 성전을 중심으로 사방의 성벽이 재건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본문에 언급된 동쪽 성벽 재건에의 참여자들이 특별한 열심의 소유자들이었다는 사실은 본 단락의 명쾌한 증거로서 더우더 분명해진다. 즉, 본 단락은 동쪽 성벽 재건에 참여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다른 작업 몫을 마치고 다시 여기의 이 부분을 또 맡았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본서 저자는 바로 이 같은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그들의 작업 모습을 '힘써'라는 단어로써 생생히 묘사하고 있다(20절). 이러한 본문을 어떻게 보면 본서 저자는 이처럼 뛰어난 열심의 소유자들을 의도적으로 나타내려고 했던 듯하다. 그래서 본문에는 개인 이름을 중심으로 나오는 것이다.
사실 그들은 자신들에게 할당된 작업 몫만을 완결졌어도 칭찬받기에 합당하였다. 왜냐하면 성벽 재건에 일체 참여치 아니한 다수(多數)를 생각할 때, 성벽 재건에 참여하여 이미 한 몫을 끝낸 그들이 칭찬의 대성이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그 같은 칭찬에 말족할 수 없는 불 같은 열심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은 한 몫을 끝낸 뒤 또 다른 한 몫을 더 담당했던 것이다. 당시 참여 인원이 얼마 되지 않았던 절박한 상황에서 그들의 열심은 하나님을 능히 기쁘게 할 만하였다. 만일 그들의 열심이 없었다면 성벽 재건은 지연되었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한편, 이러한 본문에는 '한 부분'이라는 말이 여러 번 언급되어 있는데(20,21,24
절), 이것은 당시 각 사람들이 자신의 맡은 영역에 책임감을 가지고 봉사하였음을 가리킨다. 또한 본문에는 '자기 집 맞은 편 부분', '자기 집에서 가까운 부분'이라는 표현이 있은데 이는 각자가 자신의 집 주위의 성벽을 재건하였음을 의미하는 듯하다.
우리는 이러한 본 단락을 통하여 (1)신앙적 열심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모든 성도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며(롬 12:11), (2)성도들은 체면 유지나 비난 모면을 위해서가 아닌, 하나님의 뜻을 실현키 위해 봉사해야 함(골 3:23)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3)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는 억지로 해서는 안 되며 자신의 힘을 다해 충성해야 한다(고전 4:2)는 사실을 교훈받는다.
*예루살렘 성벽 재건 공사에 참여한 자들. 본장에 나타난 성벽 재건 공사에 참여
했던 자들의 이름과 뜻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 이 름 | 출신(지파, 지역) | 금 세공업자 | 이름의 뜻 |
+----------------+-----------------------+---------------+---------------------|
|엘 리 아 심|레위, 예수아의 손자 |대제사장 | 하나님께서 회복하심 |
+----------------+-----------------------+---------------+---------------------|
|삭 굴|여리고, 이므리의 아들 |여리고인의 |염두에 두는 |
| | |지도자 | |
+----------------+-----------------------+---------------+---------------------|
|하스니아의후손들|하스나아(스나아, 스2:35| |뽀족한 |
+----------------+-----------------------+---------------+---------------------|
|므 레 못|레위, 우리아의 아들 |제사장(10:5,8) |높아짐 |
+----------------+-----------------------+---------------+---------------------|
|므 슬 람|베레갸의 아들 |제사장 |동맹한 |
+----------------+-----------------------+---------------+---------------------|
|사 독|바아니의 아들(7:7;스2:2| |의로움 |
+----------------+-----------------------+---------------+---------------------|
|요 야 다|바세아의 아들(스2:49 | |하나님께서 아심 |
+----------------+-----------------------+---------------+---------------------|
|므 술 람|브소드야의 아들 | |동맹한 |
+----------------+-----------------------+---------------+---------------------|
|믈 라 다|기브온 |유력한 지도자 |여화와께서 자유를 |
| | | |주심 |
+----------------+-----------------------+---------------+---------------------|
|야 돈|메로놋 |유력한 지도자 |여호와께서 지배하심 |
+----------------+-----------------------+---------------+---------------------|
|웃 시 엘|할해야의 아들 |금 세공업자 |하나님은 강하심 |
+----------------+-----------------------+---------------+---------------------|
|히 나 냐| |항품 장사 |여호와는 은혜로우심 |
+----------------+-----------------------+---------------+---------------------|
|르 바 냐|후르의 아들 |예루살렘지방 절|예호와께서 치료해 |
| | |반을 다스리느자|주심 |
+----------------+-----------------------+---------------+---------------------|
|여 다 야|하루맙의 아들 | |여호와께서 아끼심 |
+----------------+-----------------------+---------------+---------------------|
|핫 두 스|하삽느야의 아들 | |대적자 |
+----------------+-----------------------+---------------+---------------------|
|말 기 야|하림의 아들(7:35,42) | |여호와는 나의 왕이심 |
+----------------+-----------------------+---------------+---------------------|
|핫 숩|바핫모압의 아들 | |명철한 |
+----------------+-----------------------+---------------+---------------------|
|살 룸|할로헤스(10:24)아들 |예루살렘지방 절|보상 |
| | |반을 다스리느자| |
+----------------+-----------------------+---------------+---------------------|
|하 눈| | |하나님은 자비로우심 |
+----------------+-----------------------+---------------+---------------------|
|말 기 야|레갑의 아들 |벧학게렘 지방 |여호와는 나의 왕이심 |
| | | | |
+----------------+-----------------------+---------------+---------------------|
|살 룬|골호세의 아들 |미스바지방통지자 보상 |
+----------------+-----------------------+---------------+---------------------|
|느 헤 미 야|아스북의 아들 |벧술 지방 절반 |여호와께서 위로 하심 |
| | |의 통치자 | |
+----------------+-----------------------+---------------+---------------------|
|르 훔|레위, 바니의 아들 | |인자함 |
+----------------+-----------------------+---------------+---------------------|
|하 사 뱌| |그일라 지방 |여호와께서 참작 하심 |
| | |절반의 통치자 | |
+----------------+-----------------------+---------------+---------------------|
|바 왜|헤나닷의 아들 | " |희망자 |
+----------------+-----------------------+---------------+---------------------+
|에 셀|예수아의 아들(스2:40) |미스바 통치자 |도움 |
+----------------+-----------------------+---------------+---------------------+
|바 룩|삽배의 아들 |제사장(10:6,8) |복됨 |
+----------------+-----------------------+---------------+---------------------+
|베 냐 민| | |오른손의 아들 |
+----------------+-----------------------+---------------+---------------------+
|아 사 라|마아세야의 아들 | |여호와의 도우심 |
+----------------+-----------------------+---------------+---------------------+
|빈 누 이|헤나닷의 아들 | |여호와께서 만드심 |
+----------------+-----------------------+---------------+---------------------+
|발 랄|우새의 아들 | |여호와께서 심판하심 |
+----------------+-----------------------+---------------+---------------------+
|브 다 야|바로스의 아들 | |여호와께서 속량하심 |
+----------------+-----------------------+---------------+---------------------+
|사 독|임멜의 아들 | |의로움 |
+----------------+-----------------------+---------------+---------------------+
|스 마 야|스가냐의 아들 |동문지기 |여호와께서 들으심 |
+----------------+-----------------------+---------------+---------------------+
|하 나 냐|셀레먀의 아들 | |여호와는 은혜로우심 |
+----------------+-----------------------+---------------+---------------------+
|하 눈|살랍의 여섯째 아들 | |하나님은 자비로우심 |
+----------------+-----------------------+---------------+---------------------+
|말 기 야| |금 세공업자 |여호와는 나의 왕이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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