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편 1장 1-2절)
시편은 복있도다는 말로 시작한다. 즉 시편을 읽는 자는 먼저 복있는 자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이것은 또한 우리가 시편을 읽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깨닫게 해준다. 시편을 읽는 자세는 바로 복있는 자의 삶의자세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복있는 자는 어떻게 사는가... 시편은 우리에게 복있는자가 살아가는 가장 기초적인 원리를 제공한다. 사람이 복이 있으려면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이다.
시편이 말하는 복있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즐거워하고 그것을 묵상하는 자다. 즉 하나님 말씀이 좋아서 낮이나 밤이나, 밤낮 주야로 묵상하는 자다. 즉 깨어있을 때나 잘 때나 하나님 말씀이 너무 좋아서 하나님 말씀을 깊이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깊이 생각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행하게 된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즐거워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사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악인의 꾀에 좇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게 된다. 악인과 죄인과 오만한자는 바로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기는 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은 언제든지 악을 행하기에 담대하고 악을 행하면서도 항상 자기가 옳다고 주장한다.
시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내용이 세상에 넘치는 악을 탄식하면서 악인에게 겪는 의인의 눈물과 설움과 그 오만한 악인과 죄인으부터 건져내는 하나님을 구원을 바라는 간절한 기도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그 말씀을 묵상하는 자의 삶이 그렇게 간단하고 쉬운 일이 아님을 직감하게 된다.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 그 복있는 자들이 세상에서 받는 억압과 눈물과 아픔과 기도가 바로 시편이다. 복있는 자는 세상에서 당하는 모든 불의한 환난과 고난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고 그 말씀을 따라서 밤이든 낮이든 살며 그래서 그들은 의인이다. 우리는 복있는 자의 삶을 지나치게 쉽고 편안한 것으로 내지는 그냥 단순히 복이 좋다는 식의 비현실적이고 낭만적인 것으로 변질시켜서는 안된다. 시편은 복있는 자들의 눈물과 견디기 힘든 아픔과 생명의 위협을 당하는 절박한 기도로 가득 차있다.
하나님을 말씀을 즐거워하여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들이 왜 그렇게 핍박과 억압을 당하며 세상에서 늘 쫓기고 무시당하고 탄식과 눈물로 세월을 보내며 오직 하나님의 구원만을 간절히 사모하며 살아야 하는가? 그건 한마디로 말해서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의인의 터를 흔들어 대는 악인과 죄인과 오만한 자들 때문이다. 그래서 시편은 복있는 자는 오직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말한다.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여 악인의 꾀에 좇아 연합하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있지 않고 오만한 자리에 더불어 앉지 않는다.
복있는 자의 행동은 즐거워하고 묵상하는 것 즉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는 것이다. 그럼 즐거워해서 묵상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세상과 멀리 떨어진 수도원이나 기도원에가서 그곳에서 조용히 기도하는 것이나 아니면 세상이야 어떻게 되든지 오직 나는 성경만 열심히 읽으며 기도하면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세상을 버리고 세상과 분리되어서 오직 말씀만 읽으면서 세월을 보내는 것이 복이라면 그건 아주 쉬운거고 그렇게 쉬운 일로 인해서 복있는 자들이 시편에서 그렇게 눈물과 아픔을 하나님 앞에 호소한다는 것은 아주 비현실적이다. 우리는 복있는 자들의 삶의 자세에서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묵상한다는 것에만 집중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묵상한다는 그말이 가지는 참된 의미는 앞에 나온 '좇다/서다/앉다' 라는 세가지 동작에 연결되어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인생은 앉고 서고 가는 동작으로 축약된다. 누워서 앉고 앉아서 서고 서서 가고 반대로 가다가 서고 서서 앉고 앉아서 눕고 이것이 바로 사람이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동작이다. 이런 기본적인 동작에 악인의 꾀와 죄인의 길과 오만한 자의 자리를 연결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지 않고 그 말씀을 안중에, 마음에 두지 않는 일반적인 세상의 삶이 상징적으로 이해된다. 즉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목적과 이익을 따라 악한 꾀와 죄를 행하면서 바쁘게 움직이는 인생의 가고 서고 앉는동적인 행위와 즐거워하여 묵상하는 복있는 자들의 정적인 행위를 서로 대비시켜 그 차이를 극대화 하는 효과가 주어진다. 악인, 죄인, 오만한 자의 삶은 시끄럽고 다투고 북적거리지만 복있는 자의 삶은 즐겁고 조용하고 평화롭다. 이러한 대비를 통해서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는 자들과 오만한 죄인과 악인 사이에 삶의 기본적인 자세와 그들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질서에 있어서 궁극적이고 극명한 대비가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축약되고 집중된 대비를 풀어서 현실적으로 읽는다면 이러하다: 복있는 자들은 악인의 꾀를 따라 가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 이것은 복있는 자는 가고 서고 앉는 행위를 하지 않는게 아니라 그 행위의 내용이 다르다는 것을 말하므로 바로 읽으면 복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가고 하나님의 율법에 서고 하나님의 율법에 앉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따라 가며 서며 앉는 삶이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해서 그 율법을 묵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한다는 것은 복있는 자의 삶은 언제 어디서는 무엇을 하든지 항상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삶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삶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면서 목숨을 걸고 자기 이익과 목적만을 위해서 아귀 다툼을 하는 삶과 현장에서 필연적인 충돌을 하게 되고 이러한 충돌에서 복있는 자들의 삶은 악인과 죄인과 오만한자들에 의해서 처참하게 짓밟히고 유린되고 억압되고 나아가서 복있는 자들의 하나님이 악인의 횡포에서 복있는 자들을 구원하는가 보자는 식의 하나님을 향한 패역이 서슴없이 자행된다. 그리고 이러한 악을 목도하는 복있는 자들이 하나님을 향해서 올리는 눈물과 기도가 바로 시편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억울하고 억압당하고 짓밟히고 눌려진 사람을 구원하는 능력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예수께서 산위에서 가르칠때에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을 생각하게 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마태복음 5장 3-10절)
위 팔복에 나타난 여덟가지 모습은 바로 복있는 자들 즉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들의 삶의 당양한 계기들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이 여덟가지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가르친 율법의 내용의 핵심을 이루는 조항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복있는 사람은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해 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고 온유하고 긍휼히 여기며 화평케하는 자들이고 의를 위해서 핍박받는 자들이다. 이는 복 있는 자의 삶이 현실세계에서가지는 다양한 역동성을 생각하게한다. 즉 하나님을 율법을 즐거워하며, 묵상하며 사는 삶 좀더 풀어서 이야기하면 하나님의 율법대로 가고 서고 앉는 사람들은 바로 위의 여덟가지의 대표적인 영적, 심적, 육체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고 여러가지 모양으로 억울하고 아프고 슬픔을 겪게 된다. 세상에서 다른 위안을 얻을수없는 그들은 오직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고 살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들의 수고에 합당한 복을 준비하고 마련하는 것이다. 그들을 위해서 하나님이 준비한 풍요롭고 평화롭고 즐거운 삶의 터전이 바로 하나님 나라다. 예수께서는 복있는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알려주고 그들을 그 나라에 살게 하기위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보낸바 된 메시야요 구세주다. 예수의 삶은 시편이 가르치는 복있는 자의 삶의 전형이며, 그래서 그는 시편처럼 바로 복있는 자들의 삶에 대해 말하면서 가르침을 시작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복있는 자들과 반대로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지 않고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지 않는 자들은 악인의 꾀를 따라가고 죄인의 길에서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다.그렇게 사는 자들은 다름 아닌 악인이요 죄인이요 오만한 자들이다. 그래서 복있는 자로 살려면 악인을 꾀를 따라가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않지 않도록 부지런히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주었던 이스라엘의 삶의 대원칙 신명기의 쉐마를 생각하게 된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신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신명기 6장 4-9절)
이 말씀의 가르침은 첫째 들으라는 것이다.들으라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라는 것 즉 순종하라는 뜻이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사랑하란 것은 다름아닌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행위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듣고 마음에 새기라는 것은 묵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은 가르치라는 것 그것도 그냥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앉았을 때나 갈 때나 설 때나 언제든지 가르치라는 것이다. 누울 때나 일어날 때나 즉 주야로 가르치라는 것이다. 악인의 꾀를 따라가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앉을 때나 설 때나 갈 때나 주야로 가르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마음에 새기고 즉 묵상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즉 그이 말씀을 다른 어떤것 보다 더 즐거워하며 악과 죄를 버리고 오만을 떠나 이렇게 살아가는사람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이 바로 복있는 사람이며, 복있는 사람의 삶이 바로 이스라엘을 부르신 하나님의 뜻이요 이스라엘은 복있는 자들로 이루어진 집단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스라엘이 바로 오늘날 교회인 것이다.교회는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복있는 자들의 모임이요 그래서 세상에서 환난이 많은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러기에 교회는 기도에 절박하고 눈물이 많고 슬픔과 아픔이 많다. 그러나 그만큼 하나님의 은혜도 많아서 우리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주께서 말씀하신대로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한복음 16장 33절) 주께서 세상을 이기신 것처럼 성도들도 하나님 안아세 말씀 안에서 교회 안에서 세상을 이긴 사람들이다
이제 시편을 읽는 자는 시편이 어떤 책인가를 잘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그 말씀을 즐거워하고 묵상하여 즉 마음에 새겨 악인의 꾀를 따라가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는 책이며 동시에 그러한 삶속에서 당하는 아픔과 눈물로 쓰여진 기도의 책이며 또 그 아픔을 위로하고 우리를 그러한 어둠에서 건져내어 빛의 나라로 인도하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책 그것이 바로 시편이다.
오늘 날 우리 시대에 복있는 자들이여 이제 시편을 읽고 복있는 자의 삶을 살도록 하세요. 그리고 그 복을 많이 받으세요. 예수께서 우리에게 가르친 8가지 복을 깊이 생각하세요. 신명기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삶을 깊이 새기세요 그리고 이 혼탁한 우리 시대를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시키고 만들어가는 하나님의 사역에 적극 동참하는 개혁자들이 되세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같이 무능하고 못난 죄인을 불러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그 음성을 듣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게 하시며 복있는 자의 삶으로 인도해 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지 오직 하나님읠 말씀들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평화와 화목을 이루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증인으로 모든 일에 부족함이 없게 도우시며 그리스도의 날까지 오직 거룩하고 흠없이 보존하여 나로 복있는 자의 삶을 살게 하소서. 아멘
이 글에 대한 권리는 '은능사'님에게 있습니다.
시편은 복있도다는 말로 시작한다. 즉 시편을 읽는 자는 먼저 복있는 자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이것은 또한 우리가 시편을 읽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깨닫게 해준다. 시편을 읽는 자세는 바로 복있는 자의 삶의자세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복있는 자는 어떻게 사는가... 시편은 우리에게 복있는자가 살아가는 가장 기초적인 원리를 제공한다. 사람이 복이 있으려면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이다.
시편이 말하는 복있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즐거워하고 그것을 묵상하는 자다. 즉 하나님 말씀이 좋아서 낮이나 밤이나, 밤낮 주야로 묵상하는 자다. 즉 깨어있을 때나 잘 때나 하나님 말씀이 너무 좋아서 하나님 말씀을 깊이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깊이 생각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행하게 된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즐거워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사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악인의 꾀에 좇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게 된다. 악인과 죄인과 오만한자는 바로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기는 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은 언제든지 악을 행하기에 담대하고 악을 행하면서도 항상 자기가 옳다고 주장한다.
시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내용이 세상에 넘치는 악을 탄식하면서 악인에게 겪는 의인의 눈물과 설움과 그 오만한 악인과 죄인으부터 건져내는 하나님을 구원을 바라는 간절한 기도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그 말씀을 묵상하는 자의 삶이 그렇게 간단하고 쉬운 일이 아님을 직감하게 된다.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 그 복있는 자들이 세상에서 받는 억압과 눈물과 아픔과 기도가 바로 시편이다. 복있는 자는 세상에서 당하는 모든 불의한 환난과 고난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고 그 말씀을 따라서 밤이든 낮이든 살며 그래서 그들은 의인이다. 우리는 복있는 자의 삶을 지나치게 쉽고 편안한 것으로 내지는 그냥 단순히 복이 좋다는 식의 비현실적이고 낭만적인 것으로 변질시켜서는 안된다. 시편은 복있는 자들의 눈물과 견디기 힘든 아픔과 생명의 위협을 당하는 절박한 기도로 가득 차있다.
하나님을 말씀을 즐거워하여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들이 왜 그렇게 핍박과 억압을 당하며 세상에서 늘 쫓기고 무시당하고 탄식과 눈물로 세월을 보내며 오직 하나님의 구원만을 간절히 사모하며 살아야 하는가? 그건 한마디로 말해서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의인의 터를 흔들어 대는 악인과 죄인과 오만한 자들 때문이다. 그래서 시편은 복있는 자는 오직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말한다.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여 악인의 꾀에 좇아 연합하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있지 않고 오만한 자리에 더불어 앉지 않는다.
복있는 자의 행동은 즐거워하고 묵상하는 것 즉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는 것이다. 그럼 즐거워해서 묵상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세상과 멀리 떨어진 수도원이나 기도원에가서 그곳에서 조용히 기도하는 것이나 아니면 세상이야 어떻게 되든지 오직 나는 성경만 열심히 읽으며 기도하면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세상을 버리고 세상과 분리되어서 오직 말씀만 읽으면서 세월을 보내는 것이 복이라면 그건 아주 쉬운거고 그렇게 쉬운 일로 인해서 복있는 자들이 시편에서 그렇게 눈물과 아픔을 하나님 앞에 호소한다는 것은 아주 비현실적이다. 우리는 복있는 자들의 삶의 자세에서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묵상한다는 것에만 집중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묵상한다는 그말이 가지는 참된 의미는 앞에 나온 '좇다/서다/앉다' 라는 세가지 동작에 연결되어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인생은 앉고 서고 가는 동작으로 축약된다. 누워서 앉고 앉아서 서고 서서 가고 반대로 가다가 서고 서서 앉고 앉아서 눕고 이것이 바로 사람이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동작이다. 이런 기본적인 동작에 악인의 꾀와 죄인의 길과 오만한 자의 자리를 연결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지 않고 그 말씀을 안중에, 마음에 두지 않는 일반적인 세상의 삶이 상징적으로 이해된다. 즉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목적과 이익을 따라 악한 꾀와 죄를 행하면서 바쁘게 움직이는 인생의 가고 서고 앉는동적인 행위와 즐거워하여 묵상하는 복있는 자들의 정적인 행위를 서로 대비시켜 그 차이를 극대화 하는 효과가 주어진다. 악인, 죄인, 오만한 자의 삶은 시끄럽고 다투고 북적거리지만 복있는 자의 삶은 즐겁고 조용하고 평화롭다. 이러한 대비를 통해서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는 자들과 오만한 죄인과 악인 사이에 삶의 기본적인 자세와 그들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질서에 있어서 궁극적이고 극명한 대비가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축약되고 집중된 대비를 풀어서 현실적으로 읽는다면 이러하다: 복있는 자들은 악인의 꾀를 따라 가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 이것은 복있는 자는 가고 서고 앉는 행위를 하지 않는게 아니라 그 행위의 내용이 다르다는 것을 말하므로 바로 읽으면 복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가고 하나님의 율법에 서고 하나님의 율법에 앉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따라 가며 서며 앉는 삶이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해서 그 율법을 묵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한다는 것은 복있는 자의 삶은 언제 어디서는 무엇을 하든지 항상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삶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삶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면서 목숨을 걸고 자기 이익과 목적만을 위해서 아귀 다툼을 하는 삶과 현장에서 필연적인 충돌을 하게 되고 이러한 충돌에서 복있는 자들의 삶은 악인과 죄인과 오만한자들에 의해서 처참하게 짓밟히고 유린되고 억압되고 나아가서 복있는 자들의 하나님이 악인의 횡포에서 복있는 자들을 구원하는가 보자는 식의 하나님을 향한 패역이 서슴없이 자행된다. 그리고 이러한 악을 목도하는 복있는 자들이 하나님을 향해서 올리는 눈물과 기도가 바로 시편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억울하고 억압당하고 짓밟히고 눌려진 사람을 구원하는 능력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예수께서 산위에서 가르칠때에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을 생각하게 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마태복음 5장 3-10절)
위 팔복에 나타난 여덟가지 모습은 바로 복있는 자들 즉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들의 삶의 당양한 계기들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이 여덟가지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가르친 율법의 내용의 핵심을 이루는 조항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복있는 사람은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해 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고 온유하고 긍휼히 여기며 화평케하는 자들이고 의를 위해서 핍박받는 자들이다. 이는 복 있는 자의 삶이 현실세계에서가지는 다양한 역동성을 생각하게한다. 즉 하나님을 율법을 즐거워하며, 묵상하며 사는 삶 좀더 풀어서 이야기하면 하나님의 율법대로 가고 서고 앉는 사람들은 바로 위의 여덟가지의 대표적인 영적, 심적, 육체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고 여러가지 모양으로 억울하고 아프고 슬픔을 겪게 된다. 세상에서 다른 위안을 얻을수없는 그들은 오직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고 살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들의 수고에 합당한 복을 준비하고 마련하는 것이다. 그들을 위해서 하나님이 준비한 풍요롭고 평화롭고 즐거운 삶의 터전이 바로 하나님 나라다. 예수께서는 복있는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알려주고 그들을 그 나라에 살게 하기위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보낸바 된 메시야요 구세주다. 예수의 삶은 시편이 가르치는 복있는 자의 삶의 전형이며, 그래서 그는 시편처럼 바로 복있는 자들의 삶에 대해 말하면서 가르침을 시작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복있는 자들과 반대로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지 않고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지 않는 자들은 악인의 꾀를 따라가고 죄인의 길에서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다.그렇게 사는 자들은 다름 아닌 악인이요 죄인이요 오만한 자들이다. 그래서 복있는 자로 살려면 악인을 꾀를 따라가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않지 않도록 부지런히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주었던 이스라엘의 삶의 대원칙 신명기의 쉐마를 생각하게 된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신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신명기 6장 4-9절)
이 말씀의 가르침은 첫째 들으라는 것이다.들으라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라는 것 즉 순종하라는 뜻이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사랑하란 것은 다름아닌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행위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듣고 마음에 새기라는 것은 묵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은 가르치라는 것 그것도 그냥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앉았을 때나 갈 때나 설 때나 언제든지 가르치라는 것이다. 누울 때나 일어날 때나 즉 주야로 가르치라는 것이다. 악인의 꾀를 따라가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앉을 때나 설 때나 갈 때나 주야로 가르치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마음에 새기고 즉 묵상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즉 그이 말씀을 다른 어떤것 보다 더 즐거워하며 악과 죄를 버리고 오만을 떠나 이렇게 살아가는사람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이 바로 복있는 사람이며, 복있는 사람의 삶이 바로 이스라엘을 부르신 하나님의 뜻이요 이스라엘은 복있는 자들로 이루어진 집단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스라엘이 바로 오늘날 교회인 것이다.교회는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복있는 자들의 모임이요 그래서 세상에서 환난이 많은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러기에 교회는 기도에 절박하고 눈물이 많고 슬픔과 아픔이 많다. 그러나 그만큼 하나님의 은혜도 많아서 우리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주께서 말씀하신대로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한복음 16장 33절) 주께서 세상을 이기신 것처럼 성도들도 하나님 안아세 말씀 안에서 교회 안에서 세상을 이긴 사람들이다
이제 시편을 읽는 자는 시편이 어떤 책인가를 잘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그 말씀을 즐거워하고 묵상하여 즉 마음에 새겨 악인의 꾀를 따라가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는 책이며 동시에 그러한 삶속에서 당하는 아픔과 눈물로 쓰여진 기도의 책이며 또 그 아픔을 위로하고 우리를 그러한 어둠에서 건져내어 빛의 나라로 인도하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책 그것이 바로 시편이다.
오늘 날 우리 시대에 복있는 자들이여 이제 시편을 읽고 복있는 자의 삶을 살도록 하세요. 그리고 그 복을 많이 받으세요. 예수께서 우리에게 가르친 8가지 복을 깊이 생각하세요. 신명기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삶을 깊이 새기세요 그리고 이 혼탁한 우리 시대를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시키고 만들어가는 하나님의 사역에 적극 동참하는 개혁자들이 되세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같이 무능하고 못난 죄인을 불러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그 음성을 듣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게 하시며 복있는 자의 삶으로 인도해 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지 오직 하나님읠 말씀들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평화와 화목을 이루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증인으로 모든 일에 부족함이 없게 도우시며 그리스도의 날까지 오직 거룩하고 흠없이 보존하여 나로 복있는 자의 삶을 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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