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17:1-3
"소고"는 유다 지방인데 현대의 슈바이케(Shuweikeh)란 곳이다. 그곳은 베들레
험에서 가깝다. 블레셋 군대가 이곳까지 침입한 것은 이스라엘을 멸시하고 짓밟는
침략 행위였다. "아세가"에 대하여는 수 10:10, 15:35; 넴 34:7을 참조하라.
"에베스담밈"아린 땅 이름은 피의 경계선(boundary of blood)이란 뜻인데, 거기서 블
레셋 전쟁이 일어났기 대문에 그런 이름이 그 땅에 붙여진듯하다. 대상 11:13 참조.
삼상 17:4-11
이 부분에서는 블레셋 장군 "골리앗"의 위엄과 그의 교만에 대하여 말한다. 그는
"여서서 규빗 한뼘"(9피드)이나 되는 키 까큰 사람이었고, 놋 갑옷을 입었는데 그무게
가 "오천 세겔"(126파운드)이었다. "어린갑"(* )은 철로 고기 비늘 같이
장식한 갑옷을 말한다. 그리고 그가 든 "단창"의 창날은 "육백 세겔"(16파은드)쯤 되
는 무거운 것이었다. 본서의 저자가 골리앗의 무장(武裝)에 대하여 이렇게 자세히 말
한것은 그의 이와 같은 튼튼한 무자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자 앞에서는 무력(無力)
함을 지적하려는 데 있다.
나는 블레섯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아니냐(8절 상반). "나는 블레셋
사람"이라는 골리앗의 말은 자기가 블레셋의 힘을 대표하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Delitzsch), "사울의 신복"이란 말은 이스라엘이 사울의 노예, 곧 비파천한 자들이라
는 뜻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멸시하는 교만한 말이다. 이 말이 바로 이스라엘 군대
를 모욕하는 교만이다.(10절 하반).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잠 16:18). 교만하였던
암몬 족속은 이스라엘에게 패배를 당하였다(11:2,11).
내가 오늘날 이스라엘의 군재를 모욕하였으니(10절 중간). 여기서 그가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였다고 노골적으로 말함은 재가 더 심한 모욕이다. 여기"모욕하였다"는
말(* )은 스토에베( H.J. Stoebe)에 의하면 이중 의미를 가졌으니, 곧 수
치스럽게 함과 멸시함이다.(Die kann doppelte Bedeutung denken; 2 Sam.
21:21;23:9 darf man wohl an Beschimpfung, Beleidigung denken.- Kommentar Zum
Altem Testament, Das erste Buch. Samuelis, 1973, s.320)
삼상 17:12-14
다윗이 이 때에 그 부친의 심부름으로 전장(戰場)에 나가 있는 형들에게 식물을 가
지고 갔다가 전투에 참가하게 되었고, 마침내 승리를 거두었다. 다윗의 이번 걸음은
우연한 것이 아니었고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된 것이었다. 다윗의 생애의 이 한 토
막은, 요셉이 부친의 부탁으로 형들에게 찾아갔던 사건(창 37:12-17)과 유사하다. 하
나님께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어떤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여 그 성취를 보도록 경륜
하시기도 하지만, 떠로는 그들로 하여금 전효 목표하지 않았던 일을 갑자기 이루도록
하시는 경우도 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그런일도 미리 정하시고 준비하셨다가 이루
어 나가시는 것이다. 다윗은 블레셋전쟁 이전에 양을 칠 때에 주님을 믿고 사자나 곰
으로 더불어 싸워 이긴 경역이 있다934-36). 요셉도 일찍부터 자기도 잘 모르는 기이
한 꿈을 꾸었던 것이다.(창 37:5-11).
여덟 아들(12절 끝). 대상 2:13-15을 보면 이새의 아들이 모두 일곱명으로 기록되
었다. 이 나제는 다음과 같이 해결된다. 이새의 여덟 아들 중 어느 한명이 조사(早死)
한 경우에 후대인이 기록할 때에 그 조사한 다들의 이름은 빼고 일곱 아들만을 기록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제삼은 삼마며(13절 끝). 대상 2:13에는 이새의 세째 아들의 이름을 "시므아"(*
) 라고 한다. 이 차이점은 히브리 사람들의 이름이 어떤때에 약식으로 불리운 탓이기
도 하겠고, 혹은 다소 변경된 음으로 불리운 관계일 것이다.
다윗은 사울에게로 왕래하며(15절 상반). 곧, 다윗이 사울에게 봉사하기 위해 그
집으로 왕래하였다는 뜻이다.(16:23)
증표를 가져오라(18절 끝). 곧, 전장(戰場)에 나가 있는 아들들의 살아 있는 증겨
를 받아오라는 뜻이다.
삼상 17:20-37
다윗은 아버지의 부탁을 받고 그의 형들을 만나고자 블레섯 군대와 대진(對陣)하고
있는 이스라엘 진영(陣營)으로 갔다. 마침 그 때에 그는 블레셋 장군 골리앗이 하나
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교만한 말을 들었다. 의분을 참을 수 없었던 어린 다윗은 골리
앗과의 일전(一戰)을 각오한 듯 거기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던 것이
다. 그는 그들에게서 골리앗을 죽이는 자에게 베풀어질 왕의 상급에 관한 말을 듣고
(25절) 그것을 다시 확인하엿다(26-27,30). 디 때 사울왕의 부름으로 그의 앞에 선 다
윗은 골리앗과 싸워 이길 것을 장담하였다. 이것은 그가 어디까지나 하나님을 배경하
고 확신한 신앙적 장담이었으니, 곧, (1)"사시는 하나님의군대를 모욕한" 자(36절)는
하나님을 모욕한 죄를 범한 자니 하나님께서 그를 벌하실 것이라는 것과 (2) 과거에
하남께서 "사자의 발콥과 곰의 발톱에서" 구원해 주셨으니 이번에도 하나님을 대적하
는 골리앗의 손에서 자기를 구원해 주신다는 것이다.(37절). 우리는 이 부분(20-37)
말씀에서 또 다시 소년 다윗의 신앙 인격을 몇가지로 살표볼 수 있다. (1) 그의 겸손.
그는 왕궁에 출입하는 귀한 직책을 맡고 있으면서도 아버지를 도와서 양치는 이릉 게
속해 왔다.(15절). (2) 그의순종. 그는 자기 부친의 명령을 따라서 위험한 전쟁 지역
에도 서슴지 않고 갔다(17-24).(3) 그의 지조. 그는 억울하게도 맏형에게서 오해를 받
고 책망까지 받았지만 낙심하지 않았으며, 의(義)를 위하여 나아가던 걸음을 돌이키지
않았다.(4) 그의 믿음. 기가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모욕하는 골리앗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죽일 수 있음을 확신하였다. 그는 과게에 맹수를 이긴 체험이 있는 신앙
의 용장이다. 이 때에 그는"사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의분(義憤)을 품었으니
만큼 그것은 혈육에 속한 민족 감정이 아니고 하나님 중심한 성결(聖潔)인것이다. 이
부분 말씀에는"이스라엘"(하나님의 백성)이란 말과 "사시는 하나님"이란 말이 그 요점
으로 강조되고 있다.
삼상 17:38-40
다윗은 사울이 입혀준 "군복"과"놋투구"와 "갑옷"을 자기의 호신(護身)방편으로 삼
지 않고 그것들을 벗어버린후, 들에서 양을 칠때에 여화와를 의지하고 행했던 것처럼
"매끄러운 돌 다섯"을 취한 것 뿐이었다(40절 상반). 다윗이 "시내에서" 그 돌들을 취
했다고 하였는데 오늘날 그 지방을 관광한 이들의 말에 의하면, 이 때에 이스라엘 군
대가 진 쳤던"엘라 골짜기"에 작은 계곡이 잇고 거기에 지금도 "매끄러운 돌"이 많다
고 한다. 다윗이 사울왕이 제공한 모든 무장을 벗어버린 것 같이, 산지들도 영적 행사
에 있어서는 인간적 지혜에 대하여 불편을 느낄 수 있어야 된다. 그들이 그렇게 되려
면 하나님의 말씀과 그 능력 속에서 깊은 체험을 하게 하는 순종과 신뢰의 생활을 가
져야 된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 능력을 의지하고 행하는 걸음만이 우리의 안전보장이
다.
삼상 17:41-47
"블레셋 사람" 골리앗을 대항하기 위해"다윗"이 그에게로 나아갈때에 그 승부(勝
負)는 그들의 도전적 언사(桃戰的言辭)에서 각각 판가름된다. 골리앗은 여호와 하나님
의 원수로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동을 악담으로 나타냈고, 다윗은 전적으로 영화와
편에 서서 여화와의 영광을 위주하였다.
그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43절 하반). "그신들"이란 문구의 히브리어(*
)는 복수로 번역될 수도 있고 단수로 번역될 수도 있다. 복수로 번역하는 경우에
는 블레셋 신(神)들의 이름을 가리킬 수 있고 그것을 단수로 번역하는 경우에는 이스
라엘의 하나님을 가리킬 수도 잇다. 뒤의 것을 채택한다면 골리앗이 여호와의 이름으
로 저주하였다고 하게 되는데 그것은 역시 여호와를 모욕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9Delitzsch).골리앗은 분명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화아를 모욕하면서 도전하였다.
45절 하반 참조.
그 반명에 다윗은 철저히 여화와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도전하엿다. 그는(1) 여화
와를 의지하고 3전쟁에 임하였으며(45절), (3) 온세상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에 하나님
이 계신 줄을 알도록 하겠다고 하엿다(46절 하반). 위의 세 가지는 결국"전쟁은 여화
와께 속한 것"이라는 그의 주장과 같은 내용이다.(47절). 전적으로 여호와만을 믿는
다윗은 온전히 하나님편에 속하였던 것이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하나님의 편이 될 수
있다.
삼상 17:49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취하여 물매로 던져 블레섯 사람의 이마를 치매돌이 그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이말 씀에 대한 어떤 학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
다. "이 때 다윗이 사용한 매끄러운 돌은 시내에서 골라 잡은 것이 만큼 흐르는 물에
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여기 시내의 물은 성령을 비유하고, 거기서 이루어진 매끄러운
돌은 산돌들, 곧 신자들을 비유하는데, 이것은 영원히 있을 교회를 이루는 재료로서
무너진 바벧탑의 재료였던 벽돌과 반대된다"(Numerical Bible, Loizeux
Brothers,1932, p.356).그러나 이 해석은 자연스럽지 않다. 다윗이 물매와 돌로 골리
앗을 거꾸러뜨린 것은, 단 2:34-35의 말씀을 생각하게 한다. 꼴,"사람의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큰신상(神象)을 쳐서 부숴뜨리고 그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상
에 가득하였다는 말씀이다. 여기서 돌의 승리는 그리스도의 승리를 상징한다. 그의
역사는 반석과 같고(고전 10:4)또 산 돌과 같다(벧전 2:4)고 할수 있으며, 특별히 원
수를 부서뜨리는 돌과 같다.(마21:44하반)
삼상 17:51 상반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머리를 베니. 결국 골리앗은 자기 칼에 죽임이 된 것이다.
이런 일은 죄악이 극도에 달한 자들이 벌받는 방식이다. 시 9:15-16에 말하기를"열방
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여 그 숨긴 그물에 자기 발이 걸렸도다 여호와꼐서 자기
를 알게 하사 심판을 행하셨음이여 악인은 그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혔도다"고
하였다. 시 7:14-15 참조.
삼상 17:51 하반
이 부분에서는 블레셋 군대가 전면적으로 패배하는 광경을 진술한다. 그들은 골리
앗의 죽음을 보고 사기(士氣)가 떨어져서 도망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상 블레셋의
승부(勝負)는 골리앗 한 사람에게만 달려 있었던 것이다.(8-9). 인간에게 소망을 두는
단체나 개인은 이처럼 패배하는 날이 온다.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치기를, "무릇 사람
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다(렘 17:5).
삼상 17:55-57
이 부분에 소개된 내용은 다윗이 블레셋 진(陣)을 향하여 도전(桃戰)해 나갈 때 그
용감한 모습을 보던 사울이 그의 내력을 물어본 것을 소급해서 진술한 것이다. 사울이 일찌기 다윗의 내력을 알았을 터인데(16:18-22, 17:15), 이 때에 새삼 그의 내력을 물어본 것은 무슨 이유일까? 다윗에게 관한 사울의 이와 같은 탐문은 그의 담대한 전투행동에 놀라서 그의 가문의사회적 지위를 알아보려고 그리하였을 것이다.(Delitzsch). 이전에 사울이 다윗을 접촉했을 때에는, 그가 악신에게 괴로움을 받고 있던 처지에서 정신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으니 만큼 다윗의 내력을 들었을지라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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