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21:2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서원하여 가로되 주께서 만일 이 백성을 애 손에 붙이시면 -
여기 이스라엘이 "나"라는 대명사로 말한 것은 이상한 표현이다. 그러나 이것은 모세
가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서원한 말이다.이 시점에 이르러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
의 뜻을 순종함에 있어서 모세와 동조한 것이 드러난다.
민 21:4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 그들이 호르산을 더나 홍해 길을 경유하여
에돔 땅을 돌아서 가기 때문에 (신 2:1)피곤하여졌다. 마음이 "상하니라"란
말(* )은 짧아졌음을 의미한다. 곧, 단기적(短期的)이 되었다는 뜻이다.
민 21:5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
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두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하매 - 이 때에 그들이 원망하는 말을 한 것은 옳지 않다. 그들의
말이, 모세가 저희를 광야로 인도한 것은 저희로 하여금 죽도록 만든 것이라고 하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이때까지 그들을 기적적으로 살려 오셨다. 그들이 또
말하기를,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고 하였으니,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만나를 좋지 않게 여긴 말이다. 그러나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매우 좋은 식교품이
었다(민 11:7-9).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식료품을 싫어하는 것은 배은망덕 하는 죄악
이다.
민 21:6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 "불뱀"은 그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여행하던 광야에 많이 있었
다. 그 뱀은 붉은 반점이 있으며, 사람을 물면 그 상처에 불과 같이 뜨거운 열이 오른
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을 물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도록 하셨기 때문
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자연물을 가지시고 사람들을 벌하신다.
민 21:7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
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 이스라엘 백성이
이 때에 회개가 심각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그들이 그 이후에도 거듭거듭
모세를 원망한 사실로 보아 알수 있다.
민 21:8,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애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사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무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
즉 살더라 - 이 말씀에 대하여 우리는 몇 가지 생각할 것이 있다. (1) 이 말씀은, 예
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을 예언함(요 3:14). (2) 그것을 쳐다보는 자
가 구원을 얻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내신 제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할 때에 초인적인 효과를 볼수 있다. (3) 쳐다보기만 하므로 구원을 얻
음. 쳐다보는 것은 쉬운 일이다. 이렇게 쉽게 구원을 받도록 하신 제도는, 그 받아지
는 구원이 하나님의 능력에 달렸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그레이(Gray)는 말하기
를, 여기 놋뱀 기사 (記事)가 왕정시대(王政時代)의 어떤 저자의 기록이라고 하면서,
그 목적은 놋뱀 우상화(偶像化)에 대한 말은 전연 없고, 그 때에 놋뱀 시설을 명하신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처사만 말하였다.
놋뱀에 대하여 자유주의자들은 여러가지 그릇된 해석으로 설명한다.
(1) 토템(Totem) 곧, 종족의 표상으로 생각되는 자연물을 숭배하는 사상에서 놋뱀 시
설이 유래되었다고 함(W.R.Smith).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여호와 외에 다른 것
숭배함을 금하셨으니(출 20:4), 이런 학설은 성립될 수 없다.
(2) 해로운 동물을 축출하기 위한 고대 국가들의 풍습에서 유래되었다고 함(Frazer).
이 경우에 있어서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따른다. 어떤 나라에선 우물에 거머리가 성하
므로 놋거머리를 만들어 우물에 넣으므로 그것을 없앤다고 하며, 블레셋 사람들은 쥐
의 재앙을 축출하기 위하여 금쥐를 만들어 그것을 운반하여 국외에 내보낸 것 같은 것
이다. 그러나 놋뱀 설치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졌으니 만큼 이방미신과 다르다. 1.
우리 본문에 놋뱀을 장대 위에 달았다는 것은, 어는 지점(地點)의 사람이든지 그것을
쳐다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여기 "장대"란 말(* )은 특별한 장대를
의미하는데, 오늘날의 국기 게양대와 같은 높은 것으로서 될 수 있는데로 높이 쳐들어
보이도록 한 것이다. 그러므로 에수님도 이 덤에 유의하시고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라고 하셨다(요 3:14). 예수님이 들리우신다 함은, 그의 복음이 높이 들리어 만바에
아려짐을 말함이다. 2. 하나님께서 하필 불뱀에게 물린 자들로 하여금 뱀의 형상을 바
라보도록 하신 것은, 그들의 병세를 증가시킬 듯한 일이었다. 뱀에게 물린 자가 뱀을
보기 좋아할 리 없다. 이와 같은 방법은 해롭게 하는 자연물을 축출하려고 그 모조
((模造物)을 다른 곳으로 이송(移送)하는 이방 풍습과는 다르다. 하나님께서 불뱀에게
물린 이스라엘로 하여금 그 끔찍한 불뱀을 연상시킨는 놋뱀을 쳐다보게 하신 것은, 하
나의 역리적(逆理的)인 처사이다. 사람에게 신앙을 발생시키려는 계시의 원린는 어떤
때에는 이렇게 사람의 이성(理性)을 거스린다. 병세를 더 할 우려 있는 행동(놋뱀을
쳐다봄)이라도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의미에서 취해진 것은 신앙이다. 이렇게 놋
뱀 설치는 이방 풍습과 달라서 피해자를 상대한 것이며, 또 그들의 신앙을 위한 것이
다. 3.그 뿐 아이라 놋뱀은 그리스도를 상징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죄를 알지고 못하
시는 분으로서 죄로 삼으심이 죄셨다(고후 5:21; 롬 8:3).
(3) 그레이(B. Gray)는, 여기 놋뱀에 대한 말씀을 전설(혹은 신화)이라고 하였다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Numbers, 1903, p,275). 그레이(Gray)의 이와
같은 말은, 근거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사람들의 신앙 교육을 목적했다는 것이다. 이
와 같은 견해는 하나님의 계시 성격을 무시한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는 도리어 신화주
의(神話主義)를 파괴하기 위한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은 성경의 기적들을 모두 신화라고 하여, 그 역사성(歷史性)을 부인함이
그 일반적 경향이다. 예를 들면, 그들은 여호수아기6장에 기록된대로 하나님의 권능으
로 여리고성이 무너진 사실을 신화라고 한다. 칼스탕(Garstang 1930-1936)은, 고고학
적 발굴에 의하여 여리고송(주전 1400 년에 무너짐)의 고적을 찾아냈다고 하였으나,
오늘날에 와서 카다린 켄욘(C.Kenyon)은 역시 고고학에 의하여 다른 말을 한다. 곧,
발견된 바 그 무너진 성은 여호수아 시대보다 훨씬 이전의 것이라고 한다. 그는 여호
수아기의 이 부분 기사를 신화 (神話)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안다. 곧, 고
고학도 변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켄욘(Kinyon)의 말도 틀린 것으로 드러날 날이 온
다.
민 21:10-13
여기서는 이스라엘의 여행 중에 그들이 머물렀던 지명들 넷이 나오고, "진행하여"
란 말도 네 번 나온다. 이런 자세한 지리적 묘사는 민수기 저자가 후대의 전기적(傳奇
的) 작가가 아님을 증명한다. 이런 묘사는 이스라엘의 광야 여행에 동참했던 자만이
기록할 수 있다.
민 21:14,15
여호와의 전쟁기 - 이것은 어떤 전쟁들에 대하여 기록한 것인지 확실히 알 수 없으
나 , 멜리취(Dilitzsch)의 해석대로 이스라엘을 위한 전쟁에 있어서 하나님의 도우신
사실을 말하는 모세 시대의 시가집(詩歌集)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 기록된 지리(地
理)에 대한 노래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향하여 전진하는 승리의 행군을 찬송하는 것
이다. 이것이야말로 목격자의 감상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만일 민수기
가 후대 왕정 시대 기자의 저술이라면, 이 노래가 내포하는 지리적 감상을 그가 어떻
게 여기 기록하였을까 함이 문제이다. 순전히 지명들로써 읊어진 이 짧은 노래는 사실
상 목격자가 아니고는 그 진미(珍味)를 제대로 감상하기 어렵다. 이것은 개선(凱旋)하
는 행군의 기쁜 감상을 풍기는 인상 깊은 노래이다. 이 노래야말로 승전케 하시는 하
나님의 은혜를 지리적으로 느끼면서 나타낸 것이다. 이 노래를 읽는 자는, 그 문자들
의 배후에 담겨 있는 그 때의 이스라엘의 기쁨을 감상할 줄 알아야 한다.
민 21:16-18
여기서는, 그 때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은혜로 발견한 우물에 대하여 말한다. 이
스라엘은 그 우물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의미에서 노래를 적었다. 이 노래 가운데
"홀과 지팡이로 판 것이로다"라고 한 말씀은, 모세의 권위 있는 지도 하에서 파게 되
었다는 것이다. "홀"이나 "지팡이"는 여기서 권위(權威)를 의미한다. 여기 "족장들의
귀인"이란 말은 그 때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백성을 지도하여 우물을 파게 하였다. 광야에는 샘물을 발견하고 또 파게 하였다. 요
4:6의 "야곱의 우물"이란 말도 야곱의 지도에 의하여 판 우물을 가리킨다(요 4:12).
16-18절도 역시 하나님의 인도를 감사하게 생각하는 노래이다. 이런 노래는 그 때에
친히 목격한 자 외에는 기록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은 그 때의 목격자
가 친히 지내본 사실들을 그대로 전하기 위한 서술(敍述)이라고 생각된다.
민 21:18-20
여기 또 다시 이스라엘의 행진에 대하여 자세한 말이 나온다. 여섯 개의 지명이 나
오고, 다섯 번 "이르렀다"는 말이 나온다. 이런 기록을 보아도 우리는 목격자 이외에
특별히 후대 왕정 시대의 사람으로서는 기록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레이(Gray)가
말한대로 왕정 시대의 어떤 기자가 이 부분 말씀을 기록하였다면 이것으로 무엇을 가
르치려고 하였을까? 그의 말대로는, 저자가 자기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을 회개케 하려
는 목적으로 썼다는 하는데, 이와 같은 지리적 묘사가 그 목적 무슨 필요가 있을까?
민 21:21-24
여기서는 이스라엘이 아모리 왕 시혼을 이긴 사실에 대하여 자세히 말한다. 이스라
엘은 처음에 될 수 있는대로 전쟁을 피하려 하였다(21-22). 그들이 그렇게 행동한 이
유는, 그 땅이 약속한 땅 곧 가나안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만큼 하나님
의 약속에 의해서만 행동하였다. 그런데 아모리 사람들이 그 때에 이스라엘을 향하여
도전(挑戰)해 오므로 이스라엘은 부득이하여 그들과 싸워서 이겼다. 이스라엘이 그 때
에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을 이긴 것은, 그야마로 하나님의 권능으로 된 것이었다. 시
혼의 왕국은 매우 강하였다. 이 사실을 지적하기 위하여 여기 시인의 노래가 들어 있
다. 이 노래의 내용은, 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이 일찌기 모압을 정복하여 이겼다는 것
이다. 그랬음대로 불구하고 이제 이스라엘이 시혼을 이겼다고 한다. 그런 승리는 하나
님의 능력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승리에 의하여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의 위엄을 떨쳐 가나안 땅의 민족들로 하여금 우선 공포에 사로잡히게 하였다
(수 2:8-11). 이 부분에 나온 자세한 내용은 목격자 아닌 후대의 어떤 저자로서는 기
록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 만일 자기 시대의 민중의 가르치기 위한 후대의 저자가 기
록하였다면, 그가 정신 교육에는 필요 없는 이런 자세 한 재료들을 기록하였을 이유가
없다.
민 21:33-35
여기서는 이스랑엘이 바산 왕 옥으로 더불어 싸워 이긴 사실에 대하여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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