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에 등용된 다니엘 (다니엘 6:1-5)
여기서 다니엘에 대해 알아보자.
Ⅰ. 그는 "위대한 사람" 이었다. 다리오가 바벨론을 정복한 후 새로운 정부를 수립했을 때, 그는 다니엘을 국무총리로 임명하였다. 그를 전 영토의 조정석에 앉힌 것이다. 다리오의 영토는 광범위한 것이었다. 다리오가 정복하고 취득한 것은 너무 많아서, 그가 다 돌볼 수도 없었을 만큼이었다. 한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해야 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을 그의 아래 고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방백 일백 이십 명을 세워" (1절), 전국에 임명하였고, 그들을 통해서 질서와 평화를 유지하고, 세금을 징수하게 하였다. 통치자와 마찬가지로 하급 치리자들도 우리에게 선을 행하는 데 쓰이는 하나님의 일군이라는 것을 주목하자. 그러므로 우리는 최고의 권력자인 왕과 왕에 의해서 구성되고 명령받은 행정자들에게 복종해야 한다(벧전 2:13, 14). 이 방백들 위에 "세 명의 총리" 가 있어서, 민중의 청원을 받으며, 방백들의 요구를 듣고, 악정에 대한 진정을 들어서 "왕에게 피해가 없도록" (2절)하는 일을 맡았다. 즉 국고의 손실이 없도록 보살피고, 방백의 권력의 악용됨을 막아야 했다. 이런 일은 본인들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왕이 피해를 입는다. 이들 가운데서 다니엘이 가장 직위가 높았다. 왜냐하면 다니엘은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에 있어서 그들 모두를 능가하는 자였기 때문이었다. 다니엘이 "총리들과 방백들 위에 뛰어났고" (3절), 왕은 그의 행정적 능력에 아주 놀랐다. 그래서 "왕은 다니엘을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려고 생각했다."
1. 우리는 다리오왕이 그토록 순전히 인격적인 자질에 따라서 행정에 적합한 사람을 발탁했다는 사실로 인해서 그를 칭찬해야 하리라. 또한 훌륭하게 섬김을 받기 원하는 국왕들은 바로 이러한 법칙에 의해서 사람을 등용해야 한다. 다니엘은 다리오가 정복한 나라의 높은 지위에 있었던 자이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다리오는 다니엘을 원수로 여겨서 감금하거나 추방시켰어야 했으리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다니엘은 외국의, 피지배국의 태생이었다. 그런 이유로 다니엘은 낯선 사람으로서, 포로로서 업신여김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다리오왕은 인간의 능력을 판단하는데 아주 재빨랐고 곧 다니엘은 보통 이상의 어떤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 새로운 점령지에 등용될 것을 기대하는 다리오왕의 신복들이 많이 있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다리오는 민중의 복지를 중히 여긴 나머지 다니엘이야말로 가장 적임자라고 생각하며, 자기의 오른팔로 삼았던 것이다.2. 다니엘은 비록 매우 늙었었지만(그때는 다니엘이 바벨론으로 잡혀온 후 70년 정도가 되었었다), 여전히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일을 할 수 있었고, 계속되는 이방인의 통치하에서도 신실하게 신앙을 지킬 수 있었다는 사실을 주목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그는 새로운 정부의 많은 유혹 속에서도 자기의 신앙을 지켜나갔다. 다니엘은 버드나무처럼 흔들린 것이 아니라 떡갈나무처럼 꼿꼿이 섰다. 악덕에 휘말리지 않고, 덕을 고수했다. 그러한 정직함이 최선의 정책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명성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도 영광을 이처럼 베푸시기 때문이다.
Ⅱ. 다니엘은 참으로 선한 사람이었다.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했다" (3절). 그리고 모든 신용에 있어서 신실하였고, 통치자와 백성들 사이를 공정하게 다루었으며, 아무런 편견없이 돌보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에게서 "아무 틈이나 아무 허물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4절). 다니엘은 어떤 변절이나 거짓으로 뿐만 아니라, 실수나 경솔함으로도 비난받지 않았다. 그는 한 번도 큰 실수를 저지르지도 않았고, 그의 부주의를 변명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한 다니엘의 태도는 공적인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게 하기 위해서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Ⅲ. 다니엘의 위대함과 선함에 대하여 시기가 일어났다. 총리와 방백들은 다니엘이 자기들보다 우수했기 때문에 질투하였다. 또한 아마도 다니엘이 그들에 대하여 주의깊게 살펴보면서, 그들이 자신들을 살찌게 하면서 국가에 대해 나쁜 일을 하는 것을 못하도록 하였기 때문에 다니엘을 미워하였을 것이다.
1. 질투의 원인을 살펴보자. 선한 모든 것이 그 원인이 되었다. 솔로몬은 "사람이 모든 올바른 수고와 선한일로 인하여 이웃에게 시기를 받는다" 고 불평했다(전 4:4). 사람이 선할수록 그의 적수들은 그를 나쁘게 본다는 것이다. 다니엘은 그가 그의 이웃들보다 더 탁월한 정신을 가졌기 때문에 시기를 받았다.2. 시기의 결과를 살펴보자. 그것은 온전히 나쁜 일뿐이었다. 다니엘을 시기한 사람들은 그의 죽음만을 바라고 있었다. 그가 치욕을 당하는 것으로는 성이 차지 못했다. 그들이 열망했던 것은 바로 다니엘의 죽음이었다.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거니와 투기 앞에야 누가 서리요" (잠 27:4). 다니엘의 적들은 다니엘의 행정을 감시하기 위해서 첩자를 내보냈다. 왕국에 대해 어떤 비난을 하는지, 혹은 중요한 일을 간과하는지 등을 조사하기 위해서 보냈을 것이다. 만일 그들이 티끌 만한 실수라도 발견했었다면, 그 실수는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비행으로 입증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다니엘에 대해서 아무런 나쁜 점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다니엘은 언제나 정직하게 행동했다. 그리고 "그 첩자들 때문에" (시 27:11) 다니엘은 더욱 더 공정하게 행동했다. 우리들은 모두 언제나 사려깊게 걸어가야 한다는 것을 주목하자.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많은 눈이 주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들의 머뭇거림을 살펴보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가득찬 잔일수록 더욱 조심스럽게 운반할 필요가 있는 법이다.
결국 그들은 다니엘에 대해서 "그의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흠을 얻지 못하면 그를 고소할 수 없다(5절)는 결론을 발견하였다. 그 당시 다니엘은 그의 신앙을 고수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두려움 없이 신앙을 지키고 있었다. 다니엘에게 다리오왕의 종교를 믿도록 요구했던 법은 당시에 없었다. 또 다니엘이 왕의 궁전에서 그의 직무를 신실하게 잘하는 한에 있어서, 다니엘이 어느 하나님께 기도하든 왕에게는 마찬가지 일이었다. 다니엘은 제단에 이르기까지는 왕에게 봉사하였지만, 거기서부터는 왕을 떠났다. 그러므로 다니엘의 적들은 이 사건을 기화로 다니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다. "반역죄가 적용될 수 없게 되자, 불경죄로 고소되었다" 그로티우스(Grotius).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모든 생활에서 악의 없이 행동하여, 악의에 찬 적들도 그들을 비난할 근거를 찾지 못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이며, 하나님께도 많은 영광이 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다니엘 적들이 다리오의 왕국에 관한 다니엘의 비위 사실을 발견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그대로 정의감이 상당히 남아있어서, 뇌물 따위를 주어서 다니엘을 고소하는 거짓 맹세를 시키지도 아니했고 다리오왕에 대한 반역을 거짓으로 하지도 아니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유대인들이나 기독교인들은 그런 식으로 많은 수치를 당했다.
기도를 금하는 포고 (다니엘 6:6-10)
다니엘의 적들은 이미 있는 법을 가지고서는 다니엘을 모함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다니엘을 함정에 빠뜨릴 수 있기 위해서 새로운 법을 궁리했다. 결국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다니엘의 신앙을 더 견고하게 하였다.
Ⅰ. 다리오의 불경한 법령. 나는 그 법령을 "다리오의" 법령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그 법령에는 다리오의 어인이 적혔기 때문이다. 달리 해서는 그 법령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본래는 왕의 법령이 아니었다. 다리오가 그 법령을 궁리하지 않았다. 감언이설로 속아서 그 법령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총리와 방백들은 법령을 초안하였고, 국무회의에서 가결을 보았다. 그리고 이 초안은 충분한 토론의 결과로 꾸미려 했다. 또한 왕국의 모든 총리와 방백들, 그리고 제후들이 서로 그것에 대해서 회합을 가진 것으로 꾸미려 했다. 그래서 "모든 총리와 수령과 방백과 모사와 관원이 의논했다." 거기에 의견이 일치했을 뿐 아니라, 여러 이유를 붙여 그것을 충언했다. 그들은 "법령을 세우고자" 할 수 있는 일을 다했다. 아니 그들은 왕에게 나아가 그 법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고 했다-" 모든 총리들도 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세 총리 가운데 우두머리였던 다니엘은 그 법안에 승인하지 않았으며, 또한 많은 방백들은 그 법안이 비합리적이고 애매한 것이라고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국민의 여론으로 된 듯이 내세우는 것도 실은 전혀 그렇지 아니한 것이 있음도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또 별로 신임 할 수도 없는 것을 만장일치인 양 말하는 것도 드문 일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과 귀를 보고 들어야 할 왕이 그렇게 속임을 당한다는 것은 정말 불쌍한 일이다! 왕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 같지만 사실은 왕의 파멸을 도모하는 이 속 검은 사람들은 그 법령을 통과시켜 금령으로 만들 것을 강요했다. 그 금령은 바로 "이제부터 삼십 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한다" (7절)는 것이었다. 이 법령은 그들이 계획하여 왕에게 내놓고, 금령으로서 통과시킬 것을 요구한 것이다.
1. 그 금령에는 선한 것이라고 모양도 없었다. 다만 왕에 대한 찬양만이 나타나 있을 뿐이었다. 그가 대단히 위대하고 백성에게 자비로운 자인 양 보이게 했다. 그들이 이것이 새로이 즉위한 이 왕에게 대단히 큰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모든 사람은, 왕이 대단히 부유하므로, 그리고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백성들의 불평과 요구에 귀를 기울이는 일에 조금도 애로가 없다고 믿게 되었다. 그 30일 동안은 왕에게 대한 모든 청원이 수락되는 기간이었다. 실로 백성에게 귀를 기울이는 왕이 있음은 대단히 존귀한 일이다. 그러나 만일 왕들이 유일한 은혜자처럼 자처하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주장하게 된다면, 그것은 그들의 명예가 아니라 치욕이 된다.2. 그러나 거기에는 분명히 악한 것이 많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인간에게 대한 모든 탄원을 금할 만큼 악한 것이었다. 거지가 동냥을 요구해서도 안 된단 말인가. 또 이웃 사람이 다른사람의 친절을 구할 수도 없단 말인가? 만일 어린이가 빵이 먹고 싶을 때 그의 부모에게 빵을 요구할 수 없던 말인가? 그럴 때는 그를 사자굴에 던져야 하는가? 그 법령은 아주 악한 것이었으며, 모든 종교를 모욕하는 건방진 것이었다. 또한 "어떠한 신" 에게 대한 탄원도 금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자비를 구하는 것은 기도에 의해서이다. 또한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를 지속시키는 것도 기도에 의해서이다. 그리고 삼십 일 동안이나 기도를 금하는 것도, 하나님이 인간에게서 받는 헌신을 빼앗는 것이며, 동시에 인간이 하나님 안에서 얻은 만족을 빼앗는 것이다. 자연의 빛이 하나님의 섭리는 모든 일을 경룬하고 계심을 가르치는데, 자연의 법은 우리가 기도에 의해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찾지 못하게 막는단 말인가? 하나님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다. 그리고 도대체 사람이 기도없이 삼십 일을 살 수 있겠는가? 왕도 과연 그렇게 오랫동안 하나님께 기도하지 아니할 것인가? 자기에게는 허용되더라도 백성들에게는 그렇게 요구할 것인가? 일찍이 어느 나라도 이렇게 자기들의 신을 경시한 적은 없다. 그러나 어리석음이 사람들을 얼마나 악의로 이끌어 가는지를 보라. 그들은 다니엘이 하나님께 기도하지 못하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자기들과 자기의 동료들이 기도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금하는 일을 하였다. 그들이 유대인들만은 자기네 신에게 기도하지 못한다고 했더라면, 다니엘을 효과적으로 함정에 빠뜨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왕이 그런 법령을 통과시키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그 법령을 일반화시킨 것이었다. 이 법령이 자기를 신으로 세우는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혔던 다리오왕은 "그의 모자에 깃털" (그러므로 "그의 왕관의 꽃" 은 아니다)을 좋아했고, 메대와 바사에 규례에 따라서 "조서에 어인을 찍었다" (9절). 이것은 변경이나 면제나 위반이 일체 용서되지 않는다는 표시였다.
Ⅱ. 이 조서에 대한 다니엘이 경건한 불순종(10절). 그 법령이 다니엘 자신을 겨냥한 것임을 알았지만, 다니엘은 숨지도 않았고, 도망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을 여러 사람 앞에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아주 좋은 기회로 생각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았을 때" 왕에게서 가서 항의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 "모든 총리들" 이 동의한 것은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그것은 그릇된 정보에 입각한 것이므로 철회되어야 한다고 항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 집으로 갔다." 이 일에 대해서도 하나님을 즐거이 믿고, 자기의 임무에 임했다.
1. 다니엘하여금 끊임없는 기도. 이런 기도는 이 사건 전에는 들은 적이 없다. 그러나 이 경건한 유대인의 일상적인 관례였을 것이라고 생각할 몇 가지 이유가 있다.(1) 다니엘은 때로는 혼자서, 그리고 때로는 그의 가족과 함께 "그의 집에서 기도했다." 고넬료도 "자기의 집에서 기도했던" 사람이다(행 10:30). 모든 집이 기도하는 집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또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거처가 있는 곳 어디나 하나님의 제단이 있어야 하며, 그 제단에서 우리는 영적 제사를 드려야 한다.
(2) 모든 기도에서 그는 감사드렸다. 우리가 원하는 하나님의 자비를 구할 때, 우리는 우리가 이미 받은 은혜에 대해 먼저 감사해야 한다. 감사는 모든 기도에 들어가야 한다.
(3) 기도와 감사에서, 다니엘은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서 바라보면서, 계약관계 속에서 생각했고, 그를 향하였다. 다니엘은 "그의 하나님 앞에서, "그를 염두에 두고 기도하였다.
(4) 다니엘은 기도와 감사를 드릴 때 "무릎을 끓었다." 이것은 기도할 때의 가장 적절한 자세이며, 겸손과 하나님에 대한 복종을 가장 잘 나타내는 자세이다. 무릎 끓음은 구걸하는 자세다. 그리고 우리는 구걸하는 자로서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것이다.
(5) 다니엘은 "그의 방의 창문을 열었다" 그래서 앞에 보이는 하늘이 아마도 하늘 위에 계실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을 더욱 가슴을 충만하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는 이제는 파괴되었지만, 거룩한 도성인 "예루살렘을 향해서 창을 열었다." 그것은 날마다의 기도에서 그의 관심이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과 예루살렘의 돌 하나 먼지 하나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었다(시 102:14). 비록 지금은 바벨론에서 높은 자리에 앉아 있지만, 그는 자기의 포로 동료들과 한가지임을 의식하면서, 예루살렘을 기억하고 "큰 즐거움"으로 삼는 것이었다(시 137:5, 6).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자기의 이름을 지정해 준 곳이었다. 또한 예루살렘 성전이 봉헌되었을 때, 하나님에 대한 솔로몬의 기도는, 만일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 적들의 땅에서" 살지라도 예루살렘, 곧 하나님자신이 선택하신 도성을 향해서 기도할 때는,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옵소서" 하는 것이었다(왕상 8:48, 49). 다니엘은 지금 그것을 기억하면서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6)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 씩" 기도하였다. 다니엘은 다윗의 예를 본받아서(시 55:17), "아침과 저녁, 그리고 정오에 기도하였다." 맹목적으로 아닌 의식적(意識的)인 기도를 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만일 우리의 몸이 하루에 세 끼의 식사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영혼을 위해서는 몇 번이나 시간을 내는 것이 좋겠는가? 이서도 "항상 기도하라" 는 명령에 대한 응답이 되기에 부족한 것이리라.
(7) 다니엘은 모든 사람이 그의 기도를 알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그리고 공공연히 기도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를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고, 다만 그가 기도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비록 다니엘은 지위 높은 사람이었지만 그의 창조주 앞에서 하루 세 번 씩 무릎 끊는 것이 자기를 낮추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비록 다니엘은 늙은 사람이었지만, 그 자신은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늙었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비록 다니엘은 공적인 일에 봉사하기 위한 직무를 가진 사람이었지만, 그 일이 매일의 헌신을 면제시키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세상의 일 때문에 자기 영혼과 하나님께 대해 봉사할 수 없다는 사람들은 변명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다니엘은 기도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의 기도는 응답을 받기 때문이었다(겔 14:14). 그리고 그는 기도하는 일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기도를 매일의 일과로 삼았다. 그리고 그런 일을 통해서 하나님은 다니엘을 놀라울 만큼 축복하셨다.
2. 법이 기도를 사형에 해당하는 죄로 지정하였을 때에도, 다니엘은 기도를 쉬지 않았다. 그는 "법령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았을 때에도 "이전에 하던 것처럼" 기도를 계속했다. 많은 사람들은 생명을 해치지 않고서는 안 될 때라면 삼십 일 동안은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했으리라. 그 위험이 지난 후에 더욱 자주 기도할 수도 있었으리라. 또 그는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기도함으로써 그의 적들이 다니엘이 기도하는 것을 알 수 없게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다니엘은 그의 마음에 만족하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계속할 수 있었으리라. 법을 피해가면서 자기의 일을 다할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만일 그가 그렇게 했더라면, 그의 친구와 적들은, 그가 겁이 나서 기도하는 직무를 소홀히 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더 큰치욕이 되고 친구들에게 사기를 저하시켰을 것이다. 낮은 신분의 사람들은 주의하면서 행동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은 용기를 가지고 행동해야 했다. 그에게는 수 많은 눈이 있었다. 특별히 그 법령은 다니엘 자신을 목적한 것이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아니 의무를 게을리하는 것처럼 보여서도 안 된다. 시련이 올 때에는,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마 10:32). 그럴 때에 신중을 기한다는 핑계로, 하나님께 대해 비겁관 죄를 범해서는 안 된다. 다니엘의 경우가 우리로 하여금 그와 같이 행동하도록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음을 확신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런 다니엘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의무 이행에 대한 철저성을 통해 보건대, 그는 결코 기도의 의무를 빼먹을 구실을 붙이는 법이 없었던 것 같다. 만일 그런 구실이 필요하다면, 지금이야말로 좋은 구실이 될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그것이 그의 주인 왕이 금했기 때문이요, 또 그 왕을 위해서 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사람에게 보다도 하나님께 복종해야 한다는 법칙이다.
(2) 그것이 다니엘의 생명을 잃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에 대한 우리의 답변은, 살기 위해서 자기들의 영혼을 내던지는 자들은(기도없이 사는 자들은 분명히 이런 식으로 한다)자신들을 위해서 손해보는 거래를 한 것에 불과하다는 법칙이다. 그리고 두로의 왕처럼, "다니엘보다" 자기들의 "더 현명한" 척해도, 그들은 결국 바보가 될 것이다.
사자굴의 다니엘 (다니엘 6:11-17)
1. 여기에는 최근의 금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이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사실이 증명된다(11절). "그들은 모였다." 문자대로 하면 "그들은 떠들썩하게 모였다." 6절에 나온 말은 시편 2편 1절에서 빌어온 것이었다.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는가?" 에서 사용된 같은 단어이다. 아마도 그들은 직무를 핑계로 다니엘이 기도하고 있을 시간에 함께 다니엘을 방문하였으리라. 그리고 만일 그들이 다니엘이 기도하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면, 오히려 그들은 다니엘이 비겁하고 자기 하나님을 불신한다고 비난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다니엘이 무릎을 끓고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을 발견하였다(오히려 그들은 이것을 원했을 것이다)." 그의 사랑이 있음으로써, 그들이 그의 대적이 되었도다." 그러나 그의 조상 다윗처럼, 그는 "기도할 뿐이었다" (시 109:4).2. 왕에게 다니엘에 대한 비난이 보고되어진다. 그들은 다니엘을 "자기 하나님의 법" 에 관한 일로 고소거리를 찾아내자, 즉시 왕에게 나아갔다(12절). 그래서 어떤 법령이 만들어졌으나 그것이 변개 될 수 없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다니엘을 고발한다(13절). 그들은 마치 다니엘이 왕을 본격시킨 것처럼 사건을 서술했다. "그는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의 하나입니다. 그는 경멸할 민족 유다의 자손이며, 지금은 보잘 것 없는 포로입니다. 오직 왕의 은혜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오 왕이여, 그는 당신과 당신의 어인이 찍힌 금령을 돌아보지 아니하나이다. "가장 양심적인 자가 가장 악랄한 자처럼 비난받는 것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을 경외하였다. 그러므로 기도했던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다니엘이 다리오왕과 그의 나라를 위해서 기도했으리라. 그러나 이것이 왕을 무시한 일로 해석된다. 다니엘이 받은 탁월한 영(우리 성경에는 "민첩한 마음")과 그가 얻은 명성도 이러한 독화살로부터 그를 보호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다니엘이 그의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다리오가 그것을 알고 그를 칭찬할까봐서였다. 다만 그들은 법령을 어기고 "간구했다" (우리 성경, "기도했다")고 했다.
3. 여기에서부터 왕이 큰 근심이 빠진다. 왕은 그들이 어떤 핑계를 대더라도 그것이 왕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니엘을 해치려는 것임을 알았다. 그들이 이 법을 제안했었었다. 그래서 이제는 왕이 그들의 뜻을 들어 준" 자기를 심히 불쾌하게 생각하였다" (14절, 우리 성경과는 다름). 사람들이 교만하고 쓸데없는 말에 빠지고, 그것을 만족스럽게 여기에 될 때, 그들이 자신들을 위해서 무슨원통한 일을 준비하고 있는지를 모른다. 그들의 아첨군들이 결국에는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들임을 알 것이다.
이제 왕은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을 쓴다." 논증을 펴고 권위를 이용함으로써 "다니엘을 구하기 위해서 해가 질 때까지" 고심한다. 즉 다니엘의 적들에게 다니엘의 고발을 취하하라고 설득한 것이다. 우리는 때로 무심코 일을 저지른 후, 나중에 가보면 그것이 수천가지의 화근이 됨을 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발걸음을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 그런 후에야 "우리의 모든 길이 든든히 설 것이다."
4. 고발자들은 잔인한 심판을 요구했다(15절). 다니엘이 무엇이라 이야기했는지는 모른다. 왕 자신은 다니엘의 변호자이다. 다니엘이 자기의 이유를 변명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정의로운 심판에 자기를 맡긴다. 그러나 고발자들은 법령을 시행해야 한다고 고집한다. 당시에 세계적인 제국이 되엇던 메데와 바사의 법률의 근본적인 계율은, "왕이 제정한 법령은 변경할 수 없다" 는 것이었다. 똑 같은 것을 에스더 1장 19절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갈대아 사람들은 왕에게 법률을 그의 마음대로 정하고 폐지할 수 있는 권한을 줌으로써 왕의 의지를 찬양했다. 바사 사람들은 왕이 법령을 비준하기만 하면 아무도 그것을 반대하거나 면제될 수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왕의 지혜를 찬양했다. 그러나 만일 이 계율이 다니엘의 경우에 정당하게 적용된다면(내 생각으로 그렇게 될 것 같지 않다) 그것이 왕의 입법권을 높이는 반면, 왕의 행정권을 방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나라를 튼튼히 해 준 자에게 자비를 베풀 권한은 부여하지 않게 된다. 또 불필요한 법을 폐기할 통치자의 권력도 허락하지 않게 된다. 불필요한 법을 제거할 권력을 인정하지 아니하는 자들도 왕이 형법을 어긴 자들을 사면해 줄 권력을 가지고 있음을 문제시하지 않는다. 그런데 다리오는 이 권력을 가지고 있음을 문제시하지 않는다. 그런데 다리오는 이 권력을 거절당했다. 어떤 필요에 의해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왕에게 지혜를 주시도록 기도해야 하는 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아무리 지혜롭고 신령한 왕이라도 종종 곤경에 빠진다.5. 다니엘에게 그 법령이 시행된다. 왕은 원치 않았지만 다니엘의 처형건에 대한 영장에 서명을 한다. 그리고 존경할 만큼 용감한 자, 또 위엄과 예민성이 넘치는 용모를 지닌 자, 국무회의 석상에서는 그렇게 존경스럽게 보이던 자, 하나님과 인간에게 대한 권능을 지닌 자, 다니엘이 하나님 예배에 정직했다는 이유로 마치 가장 나쁜 죄인인 것처럼," 사자굴에 던져졌다" (16절). 사람들은 이 훌륭한 수난에 대한 지극한 동정심과 악질적인 박해자들에 대한 지극한 분개심 없이는 이 일을 생각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일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돌을 굴려 사자굴의 입구를 막았고," 왕은 그 돌에 "왕자신의 인을" 치고 말았다(17절). 그 인은 다니엘을 함정에 빠지게 한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다리오왕의 방백들은 자기들도 인을 치지 않고는 왕을 신뢰할 수가 없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가 무덤에 묻히셨을 때에도, 적대자들은 무덤문을 "큰 돌로 봉하였다."
6. 다리오왕은 다니엘에게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권면한다.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16절).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1) 다리오왕은 다니엘의 죄를 변호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죄가 될 때일지라도 하나님을 계속 섬긴 것이 죄의 전부임을 시인했다.
(2) 다리오왕은 다니엘을 이 형법에서 구원하는 일을 하나님께 맡겼다. 왜냐하면 다리오 자신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던 때문이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는 것을 다리오는 믿었고, 또한 풀무불에서도 그를 구원하셨다는 소리를 들어서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실 것을 확신했다. 또한 다니엘을 포함해서 하나님께 신실한 모든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은 신실하다는 것을 그는 믿었다. 끊임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을 하나님은 끊임없이 보호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주목하자.
구출받는 다니엘 (다니엘 6:18-24)
Ⅰ. 다니엘 사건으로 왕은 우율한 밤을 맞았다(18절). 다리오왕은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위험에서 구출하시리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다니엘을 위험에 던진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는 없었다. 다리오는 자기가 행한 일을 괴로워하면서, "궁전으로 갔다." 그는 자기가 한 일을 하나님과 본성(인간)의 법에 어긋나며, 지혜롭지 못하며, 메데와 바사의 법에도 반대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저녁을 먹지는 않았지만, "밤은 빨리 지나갔다." 그의 마음은 벌써 슬픔과 공포로 가득 찼다. 그는 기악을 그치게 했다. 근심된 자에게는 음악처럼 불쾌한 것이 없다. 그는 침상으로 갔지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새벽까지 그는 몸을 "뒤척이었다." 가장 좋은 밤을 맞이하는 길은 좋은 양심을 지키는 것이고, 그 때에야 우리는 평화스럽게 잠자리에 들 것임을 주목하라.
Ⅱ. 이튿날 아침, 다리오는 다니엘을 염려하며 묻는다(19,20절). 다리오왕은 "아주 일찍" 일어났다. 어떻게 그가 다니엘에 대한 생각과 꿈 때문에 편히 잠잘 수 있었겠는가? 그는 일어나자 마자 "급히 사자 굴로 달려갔다." 왜냐하면 그는 종을 보내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고, 그 종이 줄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만큼 인내심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자 굴에 갔을 때, 다리오는 자기가 악하게 잘못한 짓을 하나님의 은총으로 잘 바로잡아 놓으셨으리라는 약간의 희망을 품고서, "슬피 소리 질러" 다니엘아, 네가 살아 있느냐" 고 말하였다. 다리오는 혹시 사자들의 울부짖음이 답변으로 외쳐질까봐 두려워하면서 물었다. "다니엘아! 살아계신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 다리오가 하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 이라고 불렀을 때, 그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했더라면, 다니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스스로 안에 생명을 지니고 있는 자라면 자기가 원하는 자에게는 생명을 줄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때에 그 같은 권능이 발휘되리라고 제대로 생각했겠는가? 그는 의심했지만 우리가 확신하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종들" 은 능히 자기들을 보호하고 입증해 주실 주님을 모시고 있다는 사실이다.
Ⅲ. 다리오는 기쁜 소식을 듣는다. 다니엘이 살아있으며, 사자굴 속에서도 하나도 마치지 않고 안전하다는 소식을 듣는다(21,22절). 비록 목소리가 슬픈 목소리였지만, 다니엘은 왕의 목소리임을 알았다. 그리고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라고 경의의 말을 한다. 다니엘은 다리오의 불친절을 비난하지 않고, 진심으로 그를 용서했음을 보여 주었다. 우리는 우리에게 불친절한 사람들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에 주의하자.
다니엘에 왕에게 해 준 설명은 매우 기쁜 것이었다. 그것은 승리였다.
1. 하나님은 기적으로 다니엘의 생명을 보호하셨다. 다리오왕은 하나님을 다니엘의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이에 대해 다니엘은 "그렇습니다. 그는 나의 하나님, 내가 인정하며, 나를 인정해 주는 하나님이요, 그가 내게 천사를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라고 대답하는 것 같았다(" 네가 섬기는 네 하나님"). 풀무불에 다니엘이 던져졌을 때" 하나님의 아들의 형태로" 나타난 바로 그 희고 광채나는 존재가 다니엘을 방문하였다. 아마도 천사들은 눈에 보이게 나타나 어두운 사자 굴을 밝히고 밤새 같이하며, "사자들이 입을 막아 조금도 다니엘을 해치지 않게" 했으리라. 천사가 함께 있으면 사자 굴도 요새, 궁전, 낙원이 된다. 다니엘은 그의 생애에서 이와 같은 밤을 한 번도 맞이한 적이 없었을 것이다. 사나운 맹수를 능가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라! 그리고 "삼킬 자를 찾아 울부짖는" 사자들의 입을 봉하는 그의 힘을 믿으라. 그리고 하나님에게 신실하게 자기를 예배하는 자들, 특히 하나님께서 자기 위해 받는 고난을 당하도록 부르신 자들을 어떻게 돌보시는가를 보라! 하나님이 죄로부터 그들의 영혼을 지키시며 평화로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며, 그들의 영혼을 영접하신다면, 하나님은 사실 "사자들의 입을 막아" 저들을 해치지 못하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천사들이 준비하고 있는지를 보라! 천사들도 하나님의 백성을 자기들의 "동력자" 로 시인하기 때문이다.2. 하나님은 이로써 자기의 명분을 세우셨다. 다니엘은 왕과 그의 나라에 대해 해를 끼치지 않았음이 왕에게 밝혀졌다. 우리는 다니엘이 자신을 위해서 어떤 변명을 하는 것을 발견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정직을 밝혀 주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하나님은 기적을 통해서 실제로 그렇게 해 주셨다. 다니엘은 그가 행한 일을 통해서 하나님에게도 다리오왕에게도 아무런 과오를 저지르지 않았다. 내가 기도한 하나님, "그 앞에서 나의 무죄함이 드러났나이다." 다니엘은 칭찬받을 만한 탁월성이 있는 체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신실성에 대한 자기의 양심의 증거가 위로가 되었을 뿐이다. "왕이여, 나는 왕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않았나이다."
Ⅳ. 사자 굴로부터 해방된 다니엘. 다니엘의 박해자들은 자기들은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그 법은 충족되었음을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또 그 법이 변경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메데와 바사의 권능 이상의 더 높은 권능에 의해서 되어진 일임을 인정해야 했다. 그러므로 다니엘을 사자굴에서 끌어내지 말아야 될 이유를 전혀 댈수가 없었다.(23절). "다리오왕은 다니엘이 살아있는 것을 발견하고 심히 기뻐하였다." 그리고 곧 바로 다니엘을 "사자굴에서 내 오도록" 명령하였다. 마치 예레미야가 지하 감옥에서 나온 것처럼..., 그리고 그들이 "다니엘에게 아무런 해도 가해지지 않았음을" 발견하였다. 다니엘은 아무 곳도 상하지 않았다. 그가 완전하게 지켜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키실 것임을 용감하게 믿는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을 믿는 일 때문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며 언제나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다는 것을 확신할 것이다.
Ⅴ. 다니엘의 적대자들이 바로 그 굴에 던지도록 명령된다(24절). 다리오왕은 다니엘에게 일어난 기적에 의해서 힘을 얻었고, 용기를 가지고, 다니엘처럼 행동하기 시작한다. 다니엘에게 자비를 보이기를 거절했던 자들은 다리오의 분노를 맛보게 된다(하나님은 다니엘에게 자비를 보였었다). 그리고 그는 다니엘에게 자비를 베푸셨던 하나님을 위해서 정의를 행하는 것이다. 다니엘의 무죄함이 선언된 지금, 다니엘의 고발자들은 위증자들에 대한 보복의 법에 따라서(신 19:18, 19), 그들이 가하려고 했던 똑 같은 심판을 받게 된 것이다. 그들도 이제는 다니엘이 무죄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 일은 사실이었지만, 잘못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 다니엘의 고발자들은, 바로 그들 자신이 새로 고안해낸 심판이었던 "사자굴에 던져졌다." 그것은 그 적대자들이 다니엘에 대해서 악의를 가지고 창안한 것이었다. "야만적인 법을 고안한 사람을 바로 그 법에 의해서 심판하는 것보다 더 정당한 법은 있을 수 없다" (시 7:15, 16; 9:15, 16). 그래서 솔로몬의 결론이 입증된다(잠 11:8). "의인은 환난에서 구원을 얻고, 악인이 와서 그를 대신하느니라." 이러한 처벌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알 수 있다.
1. 다니엘의 비난자들의 처자까지도 사자굴에 던져 넣으라는 왕의 가혹성을 엿본다. 열방의 법규보다 하나님의 법규는 얼마나 의로운가! 하나님은 어떤 이는 아버지의 죄 때문에 죽을 수는 없다고 명령했다(신 24:16). 그러나 그들은 아간과 사울과 하만의 경우처럼 예외적인 경우로서 사형을 당하였다.2. 사자들의 포악성을 본다. "그들이 굴 밑에 닿기 전에 사자들은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숴뜨렸다." 여호와는 그가 행하시는 심판을 통해서 알려진다.
다리오의 포고 (다니엘 6:25-28)
다리오왕은 여기에서 그가 다니엘을 사라 굴에 던짐으로써 행했던 하나님과 다니엘에 대한 불명예를 수정한다. 그는 하나님과 다니엘에게 영광을 돌림으로써 그의 과실을 수정할 것이다.
Ⅰ. 다리오왕은 모든 나라에 하나의 법령을 선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그것은 모든 나라들이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법령이야말로 메대와 바사의 규례에 따라서 변경할 수 없는 것으로 선포되기에 마땅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지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된 "영원한 복음" 이기 때문이다(계 14:7).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다음과 같은 사실을 고찰해 보자.
1. 다리오왕은 이 법령을 누구에게 보냈는가? 다리오왕은 이 법령을 "지상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나라와 방백들에게" 보냈다.(25절). 이 법령은 위대하며 진실하기 때문에, 지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은 여기서 선포된 법령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의 그 모든 나라들은 다리오가 "지배하는 왕국" 그 이상의 것이 아니다. 비록 그 나라들은 많은 나라들을 포함하고 있었지만, 결코 모든 나라는 아니었다. 그러나 많이 차지한 자들은 모두 차지한 것처럼 생각하기가 일쑤다.2. 이 법령의 내용은 무엇인가? 그것은 "모든 사람은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하고 떨어야 한다" 는 것이었다. 이 법령의 내용은 이와 유사한 경우에 선포되었던 느부갓네살의 법령보다도 훨씬 더 진보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느부갓네살왕의 법령은 하나님에 대해서 "나쁘게 말하지" 말라는 것만 명령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리오왕의 법령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며," 하나님에 대해 두렵고 경건한 생각을 표하도록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법령은 그 서론이 아주 잘 되어 있다. 즉" 많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라는 인사가 있기 때문이다. 진리와 넘치는 평화의 유일한 근거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만이 참된 지혜이기도 하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살고, 그런 규칙을 따라서 살아간다면, 평화는 분명히 우리에게 축복되고, 배나 증가될 것이다. 그러나 다리오의 이 법령은 충분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제대로 하고 그의 현재의 신념에 맞게 하려면,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 떨라고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하라고 말했어야 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우상 숭배를 금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명령해야 했다. 그러나 우상 숭배는 아주 오랫동안, 그리고 아주 깊이 뿌리박혀 있었기 때문에 왕의 법령에 의해서도 근절되지 못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복음이 오기까지는 어떤 권능으로도 될 수 없는 일이었다.
3. 무엇이 다리오로 하여금 이 법령을 생각하게 했는가? 그 이유는 우상 숭배의 전면 폐지를 명하는 조서를 내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왜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해야만 하는가 하는 좋은 이유가 있다.
(1) 하나님의 존재가 초월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만이 신으로써 살아계신 분이시오, 우리가 섬기는 신들은 죽은 것, 동물만큼의 생명도 지니지 아니한 것이로다."
(2) 하나님의 통치는 무저항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의 "나라" 와 "지배권" 을 가지고 예신다. 하나님은 살아계실 뿐 아니라, 절대적 주권을 가지고 통치하신다.
(3) 그의 통치와 존재가 불변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원히 견고하시며," 그에게는 회전하는 그림자(변화의 기미)가 조금도 없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 또한 "어떠한 외적 힘에 의해서도 파괴되지 않으며," 그의 "권세" 도 결코 멸망의 위협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 끝날까지도" 있을 것이다.
(4) 하나님은 그런 그의 권위를 유지하기에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27절). 하나님은 그의 신실한 종들을 고통으로부터 구출하시고 치유하신다. 하나님은 자연의 힘을 초월하며 "기적과 표적을 하늘과 땅에서 행하신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하늘과 지상의 영원한 주님이심이 나타난다.
(5) 하나님은 그의 신실한 종 "다니엘을 사자의 입에서 구출하심" 으로써 이 모든 것에 대해 새로운 증거를 주신다. 이 기적과 3청년의 구원의 기적이 세상에 드러났고 알려졌으며, 최대의 두강대국의 왕에 의해서 공포되었으며 유대교라는 좁은 도식에서 나온, 신앙의 제 1원리들을 분명히 확증했고, 이방 종교의 모든 오류들을 여지없이 파괴했으며, 이제 순수히 세계적인 기독교 신앙을 위한 훌륭한 터를 닦은 것이다.
Ⅱ. 다리오왕은 다니엘에게도 영광을 돌렸다(28절). 하나님이 어떻게 그에게 화가 변하여 복이 되게 했는지를 살펴보자. 다니엘의 적들이 다니엘에게 행했던 야만적인 타격은 오히려 그들과 그들의 가족의 생명을 잃게 하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계속 다니엘을 방해하고 괴롭혔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니엘이 "이전보다 더 잘되었다." 왕과 더 친할 수 있었고, 백성의 더 존경을 받았다. 이것은 그가 자기 동포들에게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더 큰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이리하여 먹는 자(사자도 그렇다)에게서 먹을 음식이 나왔고, 강한 자에게서 꿀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