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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메뚜기 재앙에 대한 경고(출애굽기 10:1-11)

Ⅰ. 모세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았다.

모세는 아마도 바로의 고집과 하나님의 냉혹하심이라는 두 가지 사실에 대해 매우 놀랐을 뿐만 아니라, 또한 애굽이 황폐해지는 것에 대해 동정을 금치 못했을 것이며, 또한 이 싸움의 결국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하여 당황해 하였으리라고 우리는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그에게 이스라엘은 해방될 것이며 하나님 자신의 이름이 널리 전파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일러 주신다. "너로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들 곧 내가 그 가운데서 행한 표징을 네 아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게 하려 함이라" (1,2절). 열 가지 재앙은 반드시 임해야 한다. 그들의 행적을 자자 손손의 후대에까지 부인하지 못할 증거로 전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 부정 못할 증거란 무엇인가?

1. 자연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권이다. 곧 모든 피조물을 선하신 뜻대로 그들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그의 선하신 뜻에 따라 정의의 봉사자나 재난의 사자로 쓰시는 그의 권위에 대한 증거이다.

2. 사탄의 왕국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하시는 권능이다. 즉 악을 억제하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교회의 적들의 하나님의 위대하심, 교회의 행복, 그리고 죄악의 심각성을 나타내는 영구적인 기념비들이며, 모든 세대의 자손들에게 "여호와를 노하게 하여 질투하게 하거나 창조주와 무모하게 다투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확고부동의 충고자들인 것이다. 이 세상에 대한 이들 교훈의 혜택을 그 재난이 준 희생과 능히 상쇄될 수 있다.

Ⅱ. 바로는 책망을 받는다(3절). 가난하고 멸시받고 박해를 받는 히브리인의 "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느 때까지 내 앞에서 겸비하지 아니하겠느냐?" 고 하셨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들이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자신을 낮추어야 하는 것이니, 그들이 만일 그렇게 하기를 거부한다면 곧 위험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하나님이 열왕들과 싸우신 이래로 이 사실은 더욱 분명해졌다. 벨사살 왕은 자신의 마음을 낮추지 아니했고(단 5:22), 시드기야왕은 예레미야 선지자 앞에서 겸비치 아니했다(대하 36:12). 자신을 낮추지 아니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낮추시는 법이다.

바로는 때때로 겸비한 체하였을 뿐 그것을 중하게 생각지 아니했다. 왜냐하면 이는 그가 성실치도 못하고, 그에게 한결같은 마음씨도 없었던 까닭이다.

Ⅲ. 메뚜기 재앙에 대해 경고가 내려졌다(4-6절). 우박이 땅 위의 초목을 꺾어 넘어지게 하였으나, 이제 메뚜기들이 와서 그들을 삼켜 버리게 되었다. 또한 먼저번 재앙 때의 벌레들은 그들의 지역이 한정되었으나, 이 메뚜기들은 애굽의 온 집들을 버렸다.

이것은 이제까지 알려졌던 어떠한 재앙보다도 더욱 지독서런 것이었다. 모세는 그의 메시지를 전달하고는 바로에게서 전보다 더 만족할 만한 대답도 기다리지 않은 채 곧 "몸을 돌이켜 바로에게서 나왔다" (6절).

그리스도는 그의 제자들에게 그들을 영접치 아니하는 "반대자들이 있으면 너의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고" 말씀하시어, 그의 제자들을 불신자와 따로 구별해 세우셨다. 여호와의 종들에게서 정당히 버림을 받는 자들에게는 멸망이 그리 멀지 아니한 것이다(삼상 15:27 이하).

Ⅳ. 바로의 수행원들, 즉 대신들과 비밀 보좌관 등이 모세와 협상을 벌이도록 설득시켰다. 그들은 바로에게 애굽 왕국의 비참한 상황(애굽은 멸망되었다)을 보고하고, 어떻게 해서든 이스라엘인들을 해방시켜 주자고(그들을 가게 하라) 그에게 충고하였다. 이 일이 성취 될 때까지는 모세가 그들에게 올가미가 될 것이며, 나중에 가서 결국 강요당해 마지못해 하기보다는 처음에 동의해 주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그들은 알았던 때문이다.

이스라엘인들은 애굽인들에게 무거운 돌이 되어 마침내 애굽의 왕들은 이들을 기꺼이 쫓아 버리고자 하는 것이다(슥 12:3). 전 국가가 그 나라 왕들의 교만과 고집으로 인하여 멸망받는다는 것은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음을 기억하자(가능 하다면 방비가 되어야 한다). Salus populi suprema lex 즉 국민복지 제일 원칙을 생각하자.

Ⅴ. 이리하여 새로운 협상이 바로와 모세 사이에 시작되었다. 바로는 이스라엘이 광야에 가서 희생을 드리는 것을 허락하였으나, 어떤 사람이 갈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로 제기된다.

1. 모세는 이스라엘인들이 자기들 온 가족들과 전 소유물을 함께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한다(9절).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그들이 가지는 있는 모든 것으로 하나님께 봉사하여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모세는 "우리가 제사를 드리려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온 가족이 다 제사에 참여해야 하며 우리의 가축들은 그 제사의 제물이 되어야 한다" 고 간청한다.

2. 바로는 결코 이것을 수락하지 않으려 한다. 앞에서의 협상에서 한 번도 이런 조건을 모세가 요구한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바로는 장정들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고 허락하려 한다. 그들이 구하고 있던 바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냐고 시치미를 뗀다. "연소자들을" 볼모로 잡아 둠으로써 그들이 다시 돌아오게 만들자는 심산이었다(10,11절).

바로는 크게 성이 나서 그들을 질책하고, 만일 이스라엘들이 그들의 어린 것들을 데리고 가기를 고집한다면, 그것 때문에 그들이 생명이 위협해질 것이라고 협박하였다. 사탄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그들의 자녀를 하나님께 봉사하도록 하는 일을 방해하기 위해서 전력을 다한다는 것을 기억해 두자. 사탄은 어릴 적 신앙이 얼마나 자기 왕국의 세력에 치명적인 것이 되는가를 잘 알고 있으므로, 사탄은 어린 신앙인에게는 철천지 원수 노릇을 한다. 그것에 대해서는 이를 갈며 방해를 놓는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방해가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께 봉사하는 일을 가로막는다면, 우리는 그 방해가 사탄의 손길이 미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아야 한다.

3. 때문에 협상은 갑자기 결렬되고 말았다. 전에는 바로 앞에서 자기 발로 걸어나가던 모세인 아론이(6장) 이제는 쫓겨나게 되었다. 자기들의 임무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들의 파멸의 운명이 오는 소리를 곧 듣게 될 것이다(대하 25:16 참조). Ouos Deus des truet eos dementat-즉 하나님은 그가 그처럼 멸망시키고자 하는 자들을 어리석음에 버려 두신다. 바로처럼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 한 큰 어리석음에 빠졌던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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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뚜기의 재앙(출애굽기 10:12-20)

Ⅰ. "하나님의 위대한 군대" 메뚜기 떼의 침입이다(욥 2:11). 하나님은 "모세에게 손을 펴라" 고 명하신다(12절). 말하자면 메뚜기 떼를 부르기 위함이다(그들은 부른 때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그의 지팡이를 들었다" (13절). 9장 22절과 비교해보라. 모세가 그 지팡이를 뻗친 것은 자기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팡이" 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의 가시적 표시였다.

메뚜기 떼는 그 부름에 복종하여, 동풍을 타고 날아 왔고 "그 수는 헤아릴 수 조차 없었다" (시 105:34, 35). 아마 무서운 기병이나 보병도 이 곤충의 병력보다는 막기가 쉬웠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 감히 설 자가 누가인가?

Ⅱ. 메뚜기 떼들은 황폐를 가져왔다. 메뚜기들은 "온 지면을 덮었으며 땅 의의 소산을 다 먹어 버렸다." 땅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자녀들에게 주신"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그들의 소유를 피폐케 할 수 있으며, 메뚜기와 황충으로 소유물을 빼앗아 낼 수도 있다. 채소들은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쓰여지기 위해서" 자라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하찮은 곤충들이 채소의 공동 소유인이 되게 하실 뿐 아니라, 그것들을 인간에게서 약탈하여 인간의 빵을 제거시켜 버리기도 한다. 우리는 소모되고 없어져 버릴 먹고 사는 일을 위해서만 수고할 것이 아니라 침해받지도 않고 부패하지도 않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수고하자.

Ⅲ. 바로의 승낙(16,17절). 바로는 모세와 아론은 쫓아 내 버리면서(11절) 아마 다시는 너희들과 상종하지 않으리라고 말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는 다시 그들을 급히 불러서, 전에 그들을 쫓아 내면서 경멸하였던 만큼 더욱 큰 예절과 친절으로 그들의 비위를 맞추려 드는 것이다.

자기의 조언자들을 무시하고 그들의 책망을 경멸하던 자에게는 그들의 혜택을 바라고 자기의 행동을 지도해 달라고 그들에게 부탁하게 되는 때가 온다는 것을 주목하자. 어리석은 처녀들은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그들의 기름을 나누어 달라고" 간청했다(시 141:6 참조).

1. 바로는 자기의 잘못을 고백하였다. "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와 너희에게 범죄하였노라." 그는 지금 그가 이제껏 하나님과 그의 사자들에게 가했던 경멸과 반항은 오직 자신의 어리석음이라는 것이었을 발견하고 그것이었을 좀 후회하는 것 같이 보인다. 주의 종들과 그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모욕하던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 죄를 깨닫게 하시고 그들을 낮추실 때에는, 지기들을 돌이키게 되고 그일이 그들에게 양심의 무거운 짐이 되고 말 것이다.

혹자는 바로가 "너희 하나님 여호화" 라고 한 말은 결국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 아니다" 라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은 힘센 대적이라고 생각하여 그와 싸울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충성심을 가지고 기꺼이 순종해야 마땅한 저들의 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참회자들은 하나님 곧, 자기들이 감사를 돌려야 하는 그 하나님께 대하여 저지른 죄를 통회한다.

2. 바로는 참회자들이 마땅히 해야 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 용서를 빌지 않고, 자기를 보다 쉽게 용서해 주리라고 생각한 모세에게 용서를 구했다. 실상은 특수한 임무로 말미암아 모세는 "바로에게 신" 이 되었으므로 "그가 용서하는 죄마다" 용서함을 맏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가 "나의 죄를 이번만 용서해 달라고" 구했을 때는, 그가 다시는 더 이상 같은 방법으로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것을 약속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겠다는 약속이나 그에 대한 어떤 특별한 언질조차도 주기를 싫어하는 듯하였다.

거짓 참회는 대개 막연한 약속으로 사람을 속이고, 특정한 죄를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기 싫어한다는 것을 주의하자.

3. 그는 모세와 아론이 자기를 위해 기도해 주기를 빌었다.

불행 가운데 빠져서 다른 사람의 기도의 도움은 간청하면서도 자신은 기도할 생각을 하지 않는 자들이 있다. 그것은 저들이 하나님에게 참 사랑을 갖지 못한 자이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쁨조차도 느껴보지 못한 자들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바로는 "죄" 가 아니라 단지 "죽음" 이 자기에세서 떠나도록 그들에게 기도해 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는 보다 더 위험스러운 자신의 마음이 완악함보다는 메뚜기 재앙만 없어지기를 탄원했다.

Ⅳ. 모세의 기도로 재앙이 물러갔다(18,19절).

1. 그것은 심판자로서의 하나님 능력 그 자체의 위대하심을 보여 주는 한 본보기였다. 동풍이 메뚜기 떼를 몰고 왔으나, 이제는 서풍이 그들을 다시 몰아가 버렸다.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오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것이며, 그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그 방향을 바꾼다는 것을 기억해 두자. "바람이 임의로 분다는" 것은 우리들이 바람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통제하고 계심을 나타내는 말이다. 하나님은 온 하늘 아래 어느 곳에 있는 바람이든 인도하신다.

2. 그것은 모세의 권위에 대한 위대한 증거요 "평와와 환난을 만드시는" 하나님에게서 받은 그의 사명과 특권에 대한 확고부동한 인준이었다(사 45:7). 모세의 요청에 따라 심판이 임했으며, 이제는 그가 기도하여 재앙이 물러감으로써 그는 존경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애굽인들의 호의도 받게 되었다. 그는 재앙의 날을 경고하면서도 결코 그 재앙의 날이 임하기는 원하지 아니하였다.

그의 사명은 분명 애굽인들의 의사에는 반대되는 것이었지만, 그의 중재 기도는 애굽인들을 위하는 일이었다. 이것은 그들이 그를 두려워하면서도 그를 사랑하게 된 좋은 이유이기도 했다.

3. 이것은 역시 심판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회개에 대한 강경한 요청이었다. 왜냐하면, 그 때문에 하나님은 용서하신 준비가 되어 있고 자비를 나타내시기에 빠르시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우리가 참회와 고백을 하고 겸손의 기미를 보일 때는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번번이 그랬던 것과 같이 특정한 심판을 돌이키시거나 아합의 경우와 같이 심판을 연기해 주신다. 이것을 볼 때 우리가 만일 회개에 성실하다면, 그는 얼마나 기쁘게 은혜를 베풀 것이며, 참된 회개자들을 하나님은 얼마나 반가이 맞이할 것인가! 오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우리를 회개로 이끄시리라!

Ⅴ.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겠다는(20절) 불경한 결심을 다시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손이 그에게 미치사 그의 마음이 완악해지고, 그의 고집이 더하여졌기 때문이다. 종종 자신의 양심의 가책을 짓밟아 버리는 또 틀림없까지 그것에 저항하는 자들은 양심의 가책이 줄 혜택을 상실할 것이며(양심의 가책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그들은 양심의 가책보다 훨씬 더 강력한 자기마음의 정욕에 빠지게 되고 만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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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암의 재앙(출애굽기 10:21-29)

Ⅰ. 흑암의 재앙이 애굽을 뒤덮었다.

그것은 가장 두려운 재앙이었다. 그러므로 시편 105편 28절에는 그것이 마지막 재앙중의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 열 재앙 중에 첫 번째로 꼽았던 것이다. 또한 그것은 "짐승의 보좌" (계 16:10)에 쏟아진 다섯 번째로 대접에서 생긴 애굽의 영적 멸망이었던 것이다. "그의 왕국은 암흑으로 가득 찼다." 이 재앙에 관하여 자세히 관찰해 보자.

1. 그것은 철저한 어두움이었다. 하늘의 모든 빛이 구름으로 가리워졌을 뿐만 아니라, 모든 불과 등불이 습기나 칙칙한 수증기에 의하여 꺼져서 이 흑암이 발생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23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그들은 서로를 알아 볼 수가 없었다."

불빛이 비추이지 아니할 것이요, 비록 그들은 "불빛 가운데로 들어가라" 는 부름을 받지만(사 50:11) "그 빛이 장막에서 어둡게 되리라" 는 것이 악인들에게 경고된 것이다(욥 18:5, 6). 지옥은 철저한 암흑이다. "등불빛이 결코 네 가운데서 비추이지 아니하니라" (계 18:23).

2. 그것은 "손으로 더듬을 수 있는" 흑암이었다(21절). (안개가 너무나 짙어서) 손가락 끝으로 그 원인을 감촉할 수 있을 정도며, 눈으로 그 결과를 감지할 수 있었으므로 안개 때문에 눈은 몹시 쓰라리고 문지르면 더욱 심하게 아팠다고 혹자는 생각한다. 흑암 때문에 큰 고통에 온다고 것이는 계시록 16장 10절의 말씀은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3. 그것은 분명히 그들을 놀라게 하고 공포를 느끼게 하였을 것이다. "그 땅을 어둡게 하였던" 구름 떼 같은 메뚜기 떼(15절)도 이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유태인의 전설에 의하면 이 흑암 가운데는 악령이 출몰하여 소름끼치는 소리와 웅성대는 소리가 났기 때문에 그들이 공포에 떨게 되었고, 한편 그들 자신의 양심의 소리에 더 큰 무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악령들을 그들 가운데 보내사 그의 맹렬들을 그들 가운데 보내사 그 맹렬한 노를 그들 위에 퍼부으셨다" (시 78:49)고 하는 것은(그렇지 않았다면, 전혀 이런 언급이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재앙을 두고 한 말이라고 혹자는 생각한다. 악마의 속임을 받은 자들은 마침내 악마에게서 공포를 맛보게 되기 때문이다.

4. 흑암이 3일 동안 계속되었다. 할(Hall) 주교는 그렇게 오랫동안 그들이 흑암의 사슬에 갇혀 있었으며, 가장 밝았던 궁전도 토굴 감옥으로 변했다고 했다. "아무도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었다" (23절). 그들은 모두 그들의 집에 갇혀 있었다. 무서운 공포가 그들을 사로잡았으므로, 감히 의자에서 침대로 혹은 침대에서 의자로 왕래할 수 있는 용기조차 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흑암 중에서 잠잠할 수밖에 없었다" (삼상 2:9). 이제 바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생각할 시간을 갖지 않으면 아니되었다. 영적인 어두움은 영적인 속박인 것이다. 사탄이 인간의 눈을 가리어 보지 못하게 하는 반면에, 그들의 수족을 묶어 하나님을 위해 일할 수도 없게 하며, 하늘을 향해 나아갈 수도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들은 "다만 어둠 가운데 앉아" 있을 뿐이다.

5. 그들을 이런 식으로 처벌한 것은 하나님께는 합당한 일이었다. 바로와 그의 백성들은 모세가 그들에게 전한 하나님 말씀의 빛을 배신했다. 그러므로 그들이 흑암으로 벌을 받았던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빛보다는 흑암을 더 사랑하고 그것을 택했던 때문이다. 그들 마음의 어두움이 그들에게 이러한 대가의 흑암을 가져왔던 것이다. 바로의 마음처럼 그렇게 어두웠던 마음은 일찍이 없었으며, 그때 애굽의 흑암처럼 그렇게 캄캄했던 대기도 결코 없었다.

애굽인들은 잔악함으로써 이스라엘의 등불을 꺼버렸고 그들의 숯불을 꺼버렸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어야 애굽인들에게 불빛을 꺼버렸던 것은 당연한 처사이다. 이것을 소돔 사람이 받은 벌과 비교해 보라(창 19:11).

죄의 결과를 두려워하자. 단 3일 동안의 암흑이 그와 같이 가공할 것이었다면 영원한 어두움은 오죽하랴!

6. 그러나 같은 시각에도 이스라엘 자손이 "거하는 곳에는 광명이 있었다" (23절). 곧 이스라엘인들이 대부분 살고 것이는 고센 땅 뿐만 아니라 애굽인들 사이에 흩어져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거주지에도 빛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흩어져 살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후일 애굽인과 구별하기 위하여 그들의 문설주에 표를 했다는 점에서 밝혀진다(12:7).

(1) 이것은 다음과 같은 것을 보여 주는 실례이다. 자연의 일상적인 능력보다 뛰어난 하나님의 능력의 실증이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자연의 과정을 하나님의 자비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자연 과정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에게 베푸시는 것을 우리에게는 보류하실 수도 있으며 두드러지게 하실 수도 있다. 하나님은 불의한 자나 의로운 자에게 똑같이 해를 비춰주시나, 그것을 다르게 하실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구별을 하시지 않고 내리시는 그러한 자비의 은혜를 받고 있음을 고백해야 한다.



(2) 또한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 베푸신 특별한 은총의 실증이다. 다른 사람들이 "캄캄한 어두움 속에서" 끝없이 "방황하고" 있을 때에, 그들은 "빛 가운데서 걸었던 것이다." 비록 어두운 세상일지라도 이스라엘인이 있는 곳에는 어디에나 빛이 있으니, 그곳은 "빛의 자녀" 가 있는 곳이요, 여명이 거기서 시작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애굽인을 이렇게 구별하신다면, 어느 누가 애굽인의 가장 화려한 궁전보다 이스라엘인의 가장 초라한 오두막을 더 좋아하지 않겠는가? 분명히 눈에 띄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저주받은 악인의 집과 축복받은 의인의 집 사이에는 여전히 실질적 구별이 있는 것이다(잠 3:33). 우리는 이러한 구별이 있음을 믿고, 이에 따라 우리 자신을 삼가야 한다.

시편 105편 28절 "여호와께서 흑암을 보내 어둡게 하셨고, 그들은 그의 말씀을 어기지 아니하였도다" 는 말씀에 근거하여 보면, 이 흑암의 3일 동안에 이스라엘인들은 앞으로 다가올 유월절 축제를 대비하여 할례를 받았던 것이요, 그들은 이 사건을 발동시킨 그 명령의 말씀을 어기지 아니한 것이라고 혹자는 추론한다. 또 가나안에 들어갈 때에 받은 할례는 그들의 다음 세대가 받은 할례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수 5:2).

하나님께서 원하셨다면, 애굽인들에게 내렸던 이 흑암의 3일 동안 이스라엘은 바로의 승낙 없이도 빛 가운데에서 도망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성급히 도망치게 하시기를 원치 않으셨고 오직 "그의 위대한 손으로" 그들을 인도해 내시기를 원하셨다(사 52:12).

Ⅱ. 바로가 이 재앙에서 느꼈던 감명은 그 이전의 재앙의 때와 거의 마찬가지였다.

1. 이 재앙은 바로로 하여금 모세와 아론을 불러 새로운 협상을 벌이게 하였다. 그러나 이제 마침내 바로는 이스라엘인들은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희생을 드리려 가도 좋다고 하였다. 다만 그들의 가축만을 담보물로 남겨 두고 가기를 원하였다(24절). 사람들은 흔히 전능하신 하나님과 흥정을 하려 들기가 일쑤다. 그들이 어떤 죄는 버리려 하나, 모든 죄에서 떠나겠다고는 아니하며, 잠시 동안은 죄악에서 떠나려 하나 영원히 떠나려고는 아니하려한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을 그들의 마음의 한 구석에 모시려 하나 세상과 욕정도 함께 모시려 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조롱하는 자요, 자신을 속이는 자들이다. 모세는 바로의 조건에 누그러지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의 생축은 우리와 함께 가야 하리라" (26절)고 했다. 화해의 조건은 변동할 수 없으므로 사람들이 아무리 오랫동안 그것을 변경시키려 할지라도 그것을 변경할 수도 없고 낮출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 두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요구하시는 대로 따라가야만 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욕심의 조건을 채워 주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자들은 다음의 원칙에 의하여 항상 활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그들이 너희에게로 돌아오게 하거니와 너희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지니라" (렘 15:19)는 것이다. 모세는 그들이 왜 그들의 생축과 같이 가야만 하는가를 매우 타당성 있는 말로 설명했다. 그들은 희생을 드려야 하므로 생축을 가지고 가야 했으며, 얼마 만한 수와 어떤 종류의 희생을 드려야 될지 그들은 아직 모르므로 그들이 소유한 모든 것을 다 가지고 가야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 자신과 우리자녀들과 우리의 가지고 있는 세상의 모든 소유물도 하나님의 사업에 바쳐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어떻게 쓰실지, 또한 우리가 무엇을 드려 하나님께 영광 돌리도록 명령받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2. 그러나 바로는 매우 격노하여 갑자기 회담을 파기시키고 더 이상 협상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였다. 진노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그는 완전히 자제력을 상실하였던 것이다(28절). 바로는 진노하여 모세를 쫓아냈고, 죽음으로 위협하면서 다시는 궁전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으며, 그가 지금껏 강가에서 모세를 만나러 왔던 것과 같이 그런식으로는 결코 바로의 얼굴을 보는 것조차도 모세에게는 금지되었다.

" 네가 나의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 이 얼마나 허튼 소리인가! 그는 모세가 자기 얼굴을 보지 않고서도 그에게 재앙을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단 말인가! 아니면 그렇게 번번이 자기를 치료해 주고 또 재앙을 없애 주는 의사처럼 모세를 불러 오던 사실을 잊었다는 것인가? 이제는 모세가 더 이상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가? 그와 같이 강한 힘으로 무장해 있고, 또 이제까지 그렇게 번번이 그에게 자비를 빌어 오던 그를 죽이겠다고 위협한다는 것은 용서될 수 없는 악의이다! 마음이 완악하고 하나님의 마음과 계명을 업신여기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는가?

모세는 그에게 "나는 더 이상 곧 이후로는 당신의 얼굴을 보지 않겠노라" 고 하였다(29절). 그러나 아직은 그 회담이 완전히 결렬된 것이 아니었다(11:8). 모세는 "화를 내며" 나가면서, 바로는 앞으로 곧 마음이 변할 것이고 그의 교만한 마음은 꺽어질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실현되었다(12:31). 또한 그 때 바로는 모세에게 "부디" 떠나 달라고 간정하지 않을 수 없게끔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면담이 있은 후 모세는 바로가 와 달라고 사람을 보내기 전에는 바로 앞에 더 이상 나가지 아니하였다.

인간이 자기들의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쫓아낼 때에는, 하나님은 그들을 미혹 속에 빠지게 버려 두시며, 그들이 섬기는 우상의 정도에 따라서 그들을 징벌해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자.

거라사인들이 그리스도께서 떠나 주기를 원했을 때에, 그리스도는 즉시 그들을 떠나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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