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에 죄를 더하도다. 본문은 여러 가지로 해석된다. (1) 이전에 유다가 앗수르와 연합해서 이 땅에 그를 불러들였는데 이제 다시 애굽과 결탁하여 그를 몰아내려 하는 행위를 가리킨다(Calvin). (2) 하나님을 버린 죄에 더하여 인간에게 도움을 구걸한 행위를 가리킨다(Hitzig). (3) 애굽과 동맹한 죄에 더하여 그것을 하나님께 숨긴 행위를 가리킨다(Skinner). 그러나 이보다는 더 포괄적인 의미로서 ‘계속적으로 죄가 누적되고 있음’을 뜻하는 말로 보는 것이 더 무난하다(Alexander).
30:2 없음.
30:3 바로의 세력이 … 너희의 수욕이 될 것이라. 애굽으로부터 그들이 기대하였던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주어질 것이라는 말이다. 애굽은 그들에게 ‘힘’(세력)과 ‘그늘’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수치’와 ‘수욕’이 될 것이다. 당시의 애굽은, 랍사게가 ‘상한 갈대 지팡이’(36:6)라고 비웃을 정도로 무력하기 그지없었다.
30:4 그 방백들이 … 이르렀으나. 본문만 가지고서는 언급된 ‘그 방백들’과 ‘사신들’이 애굽 사람을 가리키는지, 유다 사람을 가리키는지 명확하지 않다. ‘에발트’(Ewald), ‘히찌히’(Hitzig), 노벧(Knobel) 등은 전자를 지지한다. 그러나 문맥을 고려할 때-2절에 유다 사신들이 이미 애굽으로 내려간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후자가 더 적절한 듯하다(Delitzsch). ‘소안’(타니스)은 애굽 북부 델타 지역의 동쪽에 자리한 도시(19:11, 민 13:22)이며, ‘하네스’는 중앙 애굽의 나일 강 상류에 있는 도시로, 후에 ‘헤라클레오폴리스’(Heracleopolis)라 불렸다. 유다 사신들은 ‘소안’을 거쳐 심지어 ‘하네스’까지 이르는 먼 길을 힘들여 여행해야만 했던 것이다.
30:5 수치를 당하리니 … 수욕이 되게 할 뿐임이니라. ‘수치를 당하리니’로 번역된 ‘호비쉬’는 ‘악취를 풍기다’는 뜻의 동사 ‘바아쉬’에서 파생한 말로서(Maurer, Knobel), 여기서는 ‘부끄러움을 당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Delitzsch). ‘수욕’으로 번역된 ‘헤레파’는 역시 같은 말로 번역된 ‘켈리마’(3절)보다 강한 표현으로서 ‘멸시’, ‘조롱’을 뜻한다.
30:6 남방 짐승에 관한 경고라. 본문의 요가지는 애굽으로 파송된 사절들이 자기들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키 위해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심지어 생명의 위협을 감수하면서까지 수고했다는 것이다. 언급된 ‘남방 짐승’(바하모트)은 ‘사자와 독사’(Hitzig), 혹은 ‘애굽을 상징하는 하마와 같은 짐승’(Delitzsch)이 아니라 ‘남쪽 방향으로 짐을 싣고 가는 짐스, 곧 나귀와 약대’를 가리킨다 : ‘오! 남방으로 향하는 짐승들에게 지워진 무거운 짐이여’(Alexander). ‘나귀’와 ‘약대’는 광야를 지날 때 짐 운반용으로 흔히 사용되는 짐승들이다(창 37:25, 42:26).
30:7 가만히 앉은 라합. ‘라합’은 찬조 질서에 대적하는 혼돈의 세력을 상징하는 바다 괴물인데, 하나님께서 출애굽 당시 애굽 군대를 바다에서 물리치신 사건과관련하여 애굽에 대한 시적 동의어로 사용되었다(51:9, 욥 9:13, 26:12, 시 87:4, 89:10). 이 괴물은 지금-태만함에서건 무력함에서건-바다에서 꼼짝도 않고 부동 자세롤 앉아 있다(G.E. Wright, Martin). 그러니 어찌 유다를 도울 수 있겠는가?
30:8 이제 가서 백성 앞에서 … 책에 써서. 선지자를 통해서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려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을 글로 남겨서 그들의 불순종과 패역함에 대한 증거를 삼으로 하신다. 한편, 서판 혹은 책에 기록하고자 한 그 내용에 대하여 크게 두 가지 해석이 대립된다. (1) 돌 위에 끌로 새긴 형태로 ‘라합’(7절)이라는 애굽 별명을 기입했다(Delitzsch, O, Kaiser). (2) 두루마리에 적은 형태로 애굽에 대한 비난의 주요한 대목들을 기록했다(Skinner, Scott). 후자가 더 적절한 듯하다.
30:9 패역한 백성이요 … 자식이라. 선지자가 지적한 바, 백성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밖’이 아니라 ‘안’에 있다. 즉 그들의 마음 자체가 이미 패역해 있어서 하나님의 법을 듣기 싫어할뿐 아니라 거짓말을 능사로 하고 있는 것이다. ‘패역한 백성’(암 메리)은 문자적으로는 ‘반역의 백성’인데, 모세의 인도하에 이스라엘이 광야를 통괄할 때 저들이 상습적으로 나타내었던 그 불순종과 완악함을 상기시키는 말이다(민 17:10).
30:10 그들이 선견자에게 이르기를 … 거짓된 것을 보이라. ‘선견자’(로에)와 ‘선자자’(호제)는 평행하는 두 문장에서 동의어로 사용되었는데, ‘선지자’를 뜻하는 구약의 대표적인 명칭은 ‘나비’과 다른 점은, 후자가 주로 메시지의 전달이라고 하는 능동적인 기능를 강조한 반면, 전자는 메시지를얻게 된 수동적 경험이 더 강조되고 있다는 것이다(G. Vos, Bilical Theology). 하나님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백성들은 바른말 하는 선지자의 입을 막고 오히려 자기들의 뜻에 맞는 ‘부드러운 말’(할라코트)과 ‘거짓된 말’(마하탈로크)만을 전해 달라고 한다. ‘할라코투’는 ‘뺀들뺀들한 아침’을 뜻하며, ‘마 하탈로트’는 ‘미혹’, ‘기만’, ‘사기’를 뜻한다 할 수 있다.
30:11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로 … 떠나시게 하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1:4), 곧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하여지는 교훈과 훈계를 제발 그만 듣게 해달라는 말이다. 악으로 치닫는 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오하며, 주의 종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지 못하도록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협박하고 방해한다. 이러한 예에 대하여는 왕상 22:8-13, 렘 11:21, 암 2:12, 7:13, 미 2:6 등을 참조하라.
30:12 압박과 허망을 믿어 그것에 의로하니. ‘압박’(오쉐크)은 ‘억압’, ‘상해’를 뜻하니, 애굽에 보낼 재화(財貨)를 마련하기 위해 백성들에게 취한 강제적인 수탈을 가리킨다(왕하 15:20, Delitzsch, Skinner, Rawlinson). ‘허망’(날로즈)은 ‘왜곡됨’, ‘뒤틀어짐’, ‘사악함’을 뜻하니, 애굽에 의존하는 외교정책을 가리킨다(Leupold).
30:13 이 죄악이 … 무너짐 같게 하리라. ‘이 죄악’은 122가의 ‘이 말’과 대조되는데(Oswalt), 구체적으로는 애굽과의 동맹을 지칭한다. 애굽과의 동맹은 유다를 구원하기는 커녕 오히려 멸망의 전조로 작용하게 된다.
30:14 그가 이 나라를 훼파하시되 … 파쇄하시리니. ‘무너지는 벽’의 비유에서 ‘파쇄되는 토기 그릇’의 비유로 바뀐다. 벽의 비유에서 그 초점이 멸망의 급속함에 놓였다면, 여기서 그 초점은 멸망의 철절함에 맞추어진다. ‘훼파하다’(솨바르)는 ‘깨뜨리다’, ‘박살내다’, ‘갈기갈기 찢다’는 뜻으로서 ‘파쇄하다’(카타트)는 말과 동의어이다. ‘아낌이 없이’(으로 야흐몰)는 문자적으로는 ‘동정심도 없이’이다. 그릇을 깨뜨리는 토기장이 곧 유다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무서움이 여기에 암시되고 있다.
30:15 너희가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유다 백성들이 마땅히 취했어야 할 올바른 신앙 자세는 ‘돌이킴’(슈브)과 ‘쉼’(나하트)이다. ‘돌이킴’은 보통 회개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는데, 여기서는 유다가 애굽에 대하여 취하고 있는 정책을 철회하는 것을 의미한다. ‘쉼’은 인간의 조바심에서 비롯되는 헛된 수고를 버리고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함으로써 맛보게 되는 휴식(안식)과 평화를 의미한다. 동일한 메시기가 아하스 왕에게도 주어졌었다(7:4).
30:16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 너희를 쫓는 자가 빠르리니. 그들은 하나님은 구원과 힘 대신에 (애굽의)말과 기병을 선택하였다(31:1). 선자자는 말을 되받아 치는 기법(언어 유희)을 이용하여 악인들이 의지하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올무에 빠짐을 재치있게 묘사한다.
30:17 한 사람이 꾸짖은즉 천 사람이 도망하겠고. 이전에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에 충시했을 때, 그들은 ‘한 사람으로 천을 쫓으며 두 사람으로 만을 쫓을 수 있었다’(레 26:8, 신 32:30:수 23:10). 그러나 이제 하나님으로 힘을 삼기를 거부하고 애굽을 의지하는 유댜 백성들은 이와는 정반대의 경험을 겪게 된다.
너희 남은 자는 … 영(嶺)위의 기호 같으리라. 전재의 참화에서 겨우 살아 남게 될 패잔병들의 모습을 선지자는 산꼭대기의 ‘깃대’(토렌)와 영 위의 ‘기호’(네스)에 비유한다. ‘토렌’은 ‘전나무’(Augusti), ‘소나무’(Rosenmuller) 혹은 ‘신도를 보내는 깃대’(Gesenius, Ewald), ‘등대’(Gataker) 등으로 해석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단순히 높이 솟은 깃대의 기둥’이라는 의미로 취함이 무난하다(Alexander).
30:18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선지자는 하나님을 잠잠히 신뢰하며 기다리지 못하는 유다 백성들의 조급함(15절)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인내를 대조시킨다.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본문에 대해서 크게 두 가지 해석이 대립된다. (1)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그 공의는 충족되어야 하며 그때까지 그의 은혜는 보류되지 않으면 안 된다(Young). (2)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여호와는 징께를 베푸시는 동안에도 절제하시며 자비를 베푸셔서 그 백성을 진멸치 아니하신다(렘 10:24, 30:11, 합 3:2, Calvin). 전자의 해석을 따를 경우 본문은 앞절의 연속 심판으로 이해되나, 후자의 경우는 사랑의 근거로서의 공의 혹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완벽한 조화를 표현한 말로 이해된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공의는 그의 자비의 근거로 말해지고 있다. 더욱이 여호와를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음을 권면하는 다음 구절과의 상관 관계를 생각할 때, 후자의 해석이 더 낫겠다.
30:19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않을 것이라. 본문은 ‘울다’는 뜻의 ‘바카’ 동사의 부정사와 미완료형이 결합되어 강조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관용적 중복어’(an idiomatic pleonasm, De Wette)이다. ‘너는 울되 울지 않을 것이다’(원문직역).영어성경 KJV는 이 말을 적절하게 ‘너는 더 이상 울지 않을 것이다’로 번역하였다.
30:20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리니. 한 때 핍박을 당하여 몸을 숨겨야 했던 선지자들이 다시 세상에 나와 자유롭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며 가르치게 된다는 말이다. ‘네 스승’으로 번역된 ‘모레카’은 단수(하나님)로도 번역 가능하나(Valgate, G.E Wright,Ewald),대부분의 주석가들은 그것을 복수(선지자들)로 번역한다(Alexander, Delitzsch, Lange).선지자들에게 가해진 갖가지 비난과 위협들에 대하여는 8:12, 왕상18:17, 렘38:4, 암7:10, 마23:37 등을 참조하라.
30:21 너희가 … 이리로 행하라. 여기서 뒤에서 말하는 이는 선지자이며, 앞에서 듣는이는 백성들이다. 가르치는 자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오는 것과 관련하여, 선지자들는 양무리의 뒤를 따라가며 갈 길을 이노하는 목자의 모습에서 이 표상을 취했을 수도 있고(Delitzsch), 짐승을 모는 사람이 뒤에 앉아서 짐승에게 방향을 지시하는 모습에서 빌려왔을 수도 있다(Leupold). 여기서 ‘우편’과 ‘좌편’은 인간 생활의 모든 활동을 가리키는 말이며(신 5:32, 17:20), 이로써 선지자는 우리 모든 행동에 있어서 하나님을 참된 인도자로 삼고 그의 말씀에 따라 우리의 행위를 조정해 나가야 할 것을 교훈하고있는 것이다(Calvin)
30:22 또 너희가 … 이르기를 나가라 하리라. 말씀에 대한 순종은 우상의 파기로 이어질 것이라. 말씀이 고갈되고 불신앙이 팽배한 시대에 우상숭배는 큰 유행이 된다. 그러나 선지자의 입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힘있게 선포되고 백성들의 영적인 눈과 귀가 열리게 될 때, 우상은 그 즉시로 존재 가치를 상실한다. 그 백성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참된 임재로 말미암아 우상이라는 인공적인 상징 자체가 불필요하게 된다(31:7, 호14:3, 미5:13,14,J. Watts).
30:23 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 … 풍성케 하길 것이며. 농부의 수고에 화답이라도 하는 듯이, 하늘에서는 때를 따라 비가 내리고 그 결과 땅에서는 곡식이 영글어 넘친다. 팔레스타인의 농업은 거의 전적으로 비에 의존하였으며 이런 자연 환경 아래서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을 ‘비를 내리게 하실 수도, 막으실 수도 있는 분’으로 신앙하였다(5:6:신11:14, 28:12, 왕하8:1, 암4:7).
30:24 밭 가는 소와 어린 나귀도 … 먹을 것이며. 비옥한 땅에서 풍성한 소산을 내는 한편, 가축들은 광활한 목초지 위에서 마음껏 먹이를 뜯는다. ‘맛있게 한 먹이’(베릴 하미츠)는 문자적으로는 ‘발효된 혼합물’이니,’(귀리,보리,살갈퀴등의 여러 곡식들을 섞은) 혼합물’에다 ‘(소금 혹은 향료를) 조미한’것을 말한다.
30:25 크게 살륙하는 날 … 개울과 시냇물이 흐를 것이며. ‘물의 공급’과 ‘망대의 붕괴’라는 두 주제가 혼합되어 나타난다. ‘망대’는 유다 백성들의 자기 교만을 상징하는 요새를 의미한다. 이 망대가 무너질 때, 즉 교만에 찬 무리들이 제거된 후에야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풍성한 축복의 날은 허여된다:2:15, 미5:9,10).’메마름’과 ‘비옥함’은 하나님을 의뢰함과 관계가 깊다(1:30, 3:1, 12:3, 15:6, 19:5, 32:2,20, 33:16, 35:6,7, 41:17,18, 43:19,20, 44:3,4, 48:21, 49:10, 55:1,10, 58:11, 65:10, 66:14, Delitzsch, Oswalt)
30:26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 일곱날의 빛과 같으리라. ‘달’은 ‘흰 것’(할레바나)으로, ‘해’는 ‘뜨거움’(하하마)으로 각각 형상화되었다. ‘일곱날의 빛’은 ‘일주일의 빛이 하루에 집중됨’(DRECHSLER)을 의미하니,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밝기로 빛나는 것을 뜻한다. 그렇지만 여기서 그 강조점은 눈을 멀게 할 정도의 빛의 강렬함에 있지 않고 상처입은 당신의 백성들을 치유하는 빛의 영화로움과 그들이 누리게 될 축복의 영속성에 놓인다. 여호와의 치유하심에 대하여는 1:6, 욥5:18, 겔34:16, 호6:1, 말4:2등을 참조하라.
30:27 보라 여호와의 이름이 원방에서부터 오되. 앗수르에 대한 심판 에언이 이어진다(27-33절).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대적인 앗수르를 심판하시는 행위를 통하여 그 백성에 대한 사랑을 거듭 확인시켜 보여주신다.’여호와의 이름’(쉠-야훼)은 그 말씀과 사역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뜻하는 말이다. 여기서는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는 ‘영광’(겔1:28)과 같은 의미로 쓰였다(J.Watts).
그 입술에는 분노가 찼으며 … 하수같은 즉. 천둥, 번개를 통한 폭풍의 표상에 무섭게 분노하는 사람의 표상이 뒤섞여 하나님의 위협적인 심판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맹렬한 불(에쉬 오칼레트)은 혀에 닿는 모든 것을 삽시간에 먹어치우는 탐욕스런 불의 성질을 나탄낸 말이다(30절, 29:6, 3:14, 출24:17, 신4:24, 9:3, 욜2:5). ‘창일하는 하수’는 평상시에는 큰 물로 돌변하는 사막의 ‘와디’를 가리킨다(Oswalt).
멸하는 키 … 미혹되게 하는 자갈. ‘키’와 ‘자갈’의 비유가 첨가된다. 하나님께서는 ‘열방들’ 곧 이민족들로 구성된 앗수르군대를 키로 흔들어 멸망시키실 것이며(마3:12), 또 마부가 자갈을 눌려 야생마를 제어하듯이, 그들을 인도하여 파멸의 심연속으로 몰아 넣을실 것이다.
30:28 없음.
30:29 거룩한 절기를 지키는 … 마음에 즐거워할 것이라. 앗수르 구대의 멸망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큰 기쁨과 환호를 가져다 줄 것인데, 선지자는 이 기쁨을 절기를 맞이하여 저(피리)를 불며 예루살렘을 향하여 순례의 길을 떠나는 자들의 가슴 벅찬 희열에 빗대고 있다. 여기서 ‘절기’는 아마도 유월절을 가리킬 것이다.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두가지이니, 첫째 그것이 밤에 시작되었고(출 12:42), 둘째 대적으로부터의 구원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Delitzsch).’이스라엘의 반석’은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서(삼하23:3) 자신을 의뢰하는 모든 이들에게 여호와께서 진실로 안전한 피난처요 견고한 요새가 되심을 함의하고 있다(Alexander, Leupold).
30:30 여호와께서 … 우박을 하시리니. 앗수르에 대한 심판 묘사가 계속된다. ‘그 목소리의 장엄함’, 곧 하나님의 음성과 같고(시18:13, 29:3-9, 77:18), ‘그 팔의 치심’, 곧 하나님의 진노하심은 폭풍과 같다.
30:31 앗수르가 낙담할 것이며. ‘낙담하다’로 번역된 ‘예하트’은 ‘깨뜨리다’,’무섭게 하다’는 뜻의 ‘하타트’동사의 니팔(수동), 미완료형이니, 공포로 인해 혼비백산함을 의미한다.
30:32 예정하신 몽둥이를 앗수르 위에 더하실 때마다 … 그들을 치시리라. 하나님이 몽둥이를 들어 앗수르를 치실 때마다 그것에 맞추어 음악이 연주된다. 29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유다 백성은 즐거운 방관자이다, 원수와의 전쟁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몫으로 돌려지는데, 이 사실이 ‘전쟁 떠에 팔을 들어 그들을 치시리라’는 말에서 명시되고 있다. 하나님은 칼과 창같은 무기들을 쓰지 않으신다. 단지 팔을 들어 흔드시는 것만으로도 그는 능히 대적들을 제압하신다(19:16 참조, Delitzsch).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전쟁을 수행하시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승리와 영광을 즐거이 찬미하고 노래부른다.
30:33 대저 도벳은 이미 설립되었고 … 이를 사르시리라. ‘도벳’(토프테)은 ‘(혐오의 표시로) 침을 뱉다’는 뜻의 ‘투프’동사에서 파생한 명사로, 예루살렘의 남서쪽 힌놈 골짜기에서 불타고 있는 화장터를 가리킨다. 이곳은 이전에 어린아이를 불태워 몰록신에게 제사를 드린 곳으로 유명하였는데(왕하 23:10, 렘 7:31, 19:6,11), 여기에서 자행되었던 끔찍한 살륙으로 인하여 ‘지옥’을 뜻하는 ‘게헨나’(마 5:22, 10:28)란 이름을 얻기도 하였다. 이 ‘도베’은 이제 ‘몰록신’ 대신 ‘멜렉’, 곧 앗수르 왕을 위해 ‘이미’(옛적부터) 마련되었다. 악인들이 불바다에서 쓰레기더미처럼 태워질 것이라는 끔찍한 예언과 더불어 본 장은 마감되었다.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애굽을 의지하는 사실을 책망하며 앗수르
와 애굽의 심판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 전장(30장)에 이어 본장은 애굽을 의지하는 이
스라엘 자손들의 불신앙을 재차 지적하면서 동시에 하나님만이 유일한 보호자이심을
부각시키고 있다. 즉 전장이 애굽 동맹에 대한 책망과 함께 애굽과 앗수르에 대한 외
부적인 심판을 보여주는 반면에 본장은 동일하게 애굽 동맹에 대한 죄를 지적하면서
주로 내부적이며 영적인 부분에 치중하여 묘사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방식으로 논
리를 전개함으로써 이스라엘의 범죄 행위가 내부적인 오염에 기인하고 있음을 드러내
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본장은 애굽과의 동맹에서 드러난 이스라엘의 불신앙을
지적하는 전반부(1-3절), 시온의 구원을 선포하는 중반부(4, 5절), 이스라엘 자손들의
회개와 그 결과를 묘사하는 후반부(6-9절)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본장은 짧게 9절로 구성되어 있으나 그 내용의 중대함이나 표현 기교에 있어
서 결코 다른 장과 비해 뒤지지 않는다. 본장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정체와 동시에 이
스라엘의 궁극적인 미래에 대한 예언을 암시적으로 발견할 수 있고(5절)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신약시대의 교회가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통
일적인 원리를 찾을 수 있다(6, 7절).
또한, 표현 방식에 있어서는 히브리 시의 평행법이 부분적으로 다음과 같이 나타난
다.
+-------------------------------------------------------------+
| 2 절 하 반 절 |
+-------------------------------------------------------------+
| A 악행하는 자의 집을 B 치시며 |
| A' 행악을 돕는 자를 B' 치시리니 |
+-------------------------------------------------------------+
아울러 당시 이스라엘의 형편을 주로 동물이나 식물 또는 목자에 비유하여 나타내
고 있다(4, 5절). 특히 하나님께서 당신을 백성들을 돌보심에 대하여 '새의 보호'로
서 비유하고 있는데 이는 히브리 비유의 압권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이상과 같은 특징을 담고 있는 본장을 몇 단락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이스라엘의 근본적인 죄(31 : 1-3)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앗수르에 대한 심판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 속에 이미 예정되
어 있던 사건임을 밝히는 전 단락(30 : 27-33)에 이어서 본 단락은 애굽의 도움을 의
지하려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저의를 신랄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이미 전
장(30 : 1-7)에서도 언급된 바 있는데 본 단락과 약간의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
다. 그 차이점에 대하여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 내 용 | 전장(30 : 1-7) | 본 단락(31 : 1-3) |
+----------------+-----------------------------+----------------------------+
| 책망의 강도 | 매우 강함(1절) | 강함(1절) |
| | ('패역한 자식들') | ('화 있을진저') |
+----------------+-----------------------------+----------------------------+
|표현의 세밀성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을 열거함| 역사적 상황에 대한 언급이 |
| | (2-5절) | 없음 |
+----------------+-----------------------------+----------------------------+
|결과에 대한 묘사|허무함을 비유적으로 지적함 | 허무함을 근본적으로 지적함 |
| | (7 절) | (3 절) |
+----------------+-----------------------------+----------------------------+
이렇게 애굽을 의지하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죄를 지적하고 있는 본 단락은 애굽의
도움을 구하려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습과 징계를 묘사하는 전반부(1, 2절), 이에 대
한 결과를 근본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후반부(3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제 본 단
락의 주된 내용상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세상의 힘과 하나님을 동시에 의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1절) : 당시 앗수르는
마병이 심히 많았던 반면 이스라엘은 상대적으로 마병이 부족하였다. 그래서 이스라엘
은 애굽의 마병과 병거를 의지하고 싶은 생각이 절실해졌고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의지
하지 않게 되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렘 17:5)라고 표현함으로써
'세상을 의지하는 것'과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 것'을 동일시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
은 신약의 교훈에서도 발견된다. 야고보 사도는 직설적으로 '세상과 벗됨이 하나님과
원수됨을 알지 못하느뇨'(약 4:4)라고 밝힘으로써 '세상의 벗됨'과 '하나님과 원수됨'
을 동일시하고 있다.
(2) 이스라엘 자손들의 잘못은 의지하는 대상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3절) : 저
자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죄악이 근본적으로 세상과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기
인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스라엘은 마치 애굽을 신처럼 의지하고 하나님을 무기력한
존재로 취급함으로써 많은 오류를 낳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선지자 이사야는
'애굽은 신이 아니고 사람이며 말들은 영이 아니라 육'이라고 표현한다. 결국 이스라
엘은 나약한 육체를 신뢰함으로써 참된 구원으로 가는 데 실패하게 된 것이다.
2. 시온의 구원(31 : 4-5)
애굽을 의지하는 유다 백성들의 근본적인 죄악을 지적하는 전 단락(1-3절)과는 달
리 본 단락에서는 남은 자의 구원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다. 저자는 하나님께서 어떠한
위기 상황속에서도 끝까지 예루살렘을 보호하신다는 확신을 피력하고 있다. 이와같이
심판에서 구원으로 극적인 분위기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본 단락은 이스라엘의 처한 상
황을 비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전반부(4절), 시온을 구원하시는 여호와의 모습을 묘
사하고 있는 후반부(5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저자는 예루살렘이 안전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가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4, 5절). 특별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보호하심에 대해 '사자
가 식물을 지키는 모습'(4절), '새가 새끼를 보호하는 모습'(5절) 등과 같이 조금 생
소한 비유를 사용하여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는 새끼를 품은 어
미 새와 같이 인자하실 것이지만, 원수들에게는 먹을 것을 움켜쥐고 단숨에 삼켜버리
려는 사자와 같다. 이러한 표현은 역사적 격동기에 동요하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나
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관심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특히 '넘어와서'(5절)라는 표현은
첫 유월절을 언급하는 출애굽기에서 사용된 바로 그 동사로서(출 12:13) 지금 처한 상
황 속에서 예루살렘을 보호하시는 것이 출애굽 사건에 버금가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는 사실을 알려준다.
3. 회개의 촉구와 그 결과(31 : 6-9)
여호와의 주권적인 보호를 통한 시온의 구원을 묘사하는 있는 전 단락(4, 5절)에
이어서 본 단락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회개에 대한 요구와 그 결과들을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는 본 단락은 회개와 함께 수반되는 성결함에 대하여 묘사
하는 전반부(6, 7절), 회개 이후에 있을 결과들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는 후반부(8, 9
절)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많은 주석가들은 본 단락이 내용 전개의 패턴상 이사야의 작품으로 보기가
어렵다고 하면서, 특히 6, 7절은 저자가 다른 사람이거나 필사자가 후대에 첨가한 부
분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용서(5절) - 회개(6절) - 우상 숭배에 대한 탄핵(7절)'의
구조는 30:19 이하에도 나타나는 패턴이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없는 것이
다. 이제 반복된 메시지를 통해서 철저한 회개와 개혁을 호소하는 본장의 핵심적인 사
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여호와의 구원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참된 회개가 동반되어야 한다(6, 7절) :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시온의 구원을 성취할 수 있는 유일한 분임을 근거(5절)로 하여
유다 백성들이 회개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즉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고 이 구원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회개가 필수적으로 뒤따라야 함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러한 회개는 그 동안 백성들이 섬기던 우상들을 버리고 돌아서는 결단으로 연결된다.
우상 숭배에 대한 단절없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삼을 살 수 없다.
(2) 참된 회개는 주변의 환경을 변화시킨다(8, 9절) : 저자는 회개가 단순히 개인
적인 삼의 변화뿐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앗수르의 멸망에까지로 확대된다고
말한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참되신 하나님께로 돌아온 이스라엘에게는 앗수르의
강력한 힘이 더 이상 위력이 없으며 오히려 멸망을 재촉하는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8
절). 이와같이 하나님과의 영적관계의 회복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된다.
이상과 같은 본장에서 우리는 세상을 의지하고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된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애굽과 동맹을 맺은 이스라엘은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다(1절). 그러나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들에게 언제든지 은혜를 베푸신다. 우리는 이러한 두 가지 측면을 명심하고 하나님께 배역하지 않도록 노력함과 동시에 잘못이 발견되었을 경우에는 즉각적으로 회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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