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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하나님께서 사울의 왕위를 배척하셨다는 언급은, (1) 사울이 선지자 사무엘의 제사 행위를 침해했을 때(13:8, 9, 13, 14), (2) 그리고 사울이 이기적 욕심에 따라 아말렉에 속한 것을 멸절하지 아니했을 때(15:23, 28) 나타났었다. 그러나 첫 번째의 경우에만 해도, 사울은 자신의 이후 행위에 따라 자신의 왕위를 계속 유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두 번째의 거역 행위로 인하여 사울에게 선언되었던 폐위(廢位) 선고는 완전히 확정되었다.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사무엘의 이같은 깊고 오랜 슬픔은 단순히 개인 사울의 비극에 대한 사적(私的) 심정 때문만이 아니라, 사울의 폐위로 인하여 이스라엘 사회 전반에 나타날 부작용을 염려한 때문이었다(Keil, Smith). 사실 그 때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사울의 군사적 능력만은 분명히 인정하고 있었다. 이러한 점은 후일 사울의 죽음을 슬퍼한 다윗의 애가(삼하 1:19-27) 속에서도 분명히 나타난다. 한편 여기의 ‘슬퍼하겠느냐’(히, 미트아벧)는 특별한 원인에 따라 심히 애통하는 행동을 가리킨다(사 3:26, 암 1:2, 8:8). 그런데 여기서는 특히 강조적 재귀형으로 사용되어, 그 슬픔을 밖으로 강력하게 표출시킴을 가리킨다(15:35, 삼하 14:2, 대하 35:24, 스 10:6).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신령한 책망과 더불어 사무엘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심으로써 그의 슬픔을 소망으로 승화시켜 주셨다.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여기서 ‘뿔’(히, 케렌)은 양의 뿔을 가리킨다.그런데 왕의 기름 부음을 위해서는 ‘병’(히, 파크)이 사용되는 경우도 있었다(10:1). 그러나 ‘뿔’이 사용되는 경우와 ‘병’이 사용되는 경우는 분명 어떤 대조점이 암시되고 있는 듯하다. 즉 ‘뿔’이 사용될 경우에는 주로 그 왕의 정통성 및 긍정적 성격이 암시되며(왕상 1:39). 반면 ‘병’이 사용될 경우에는 그 왕의 비정통성 및 부정적 성격이 암시되는 듯하다(10:1, 왕하 9:1-13). 성경이 이처럼 의도적으로 ‘뿔’의 사용을 보다 긍정적 차원에서 보는 것은, 성경의 여러 문맥상 ‘뿔’이 왕권(王權)을 상징하고 있다는 사실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2:10, 겔 29:21, 단 8:3, 21).

내가 너를 … 보내리니. 여기서 ‘보내다’(히, 샬라흐)란 말은 ‘가기를 강요하거나 허락하다’라는 의미 보다는, 오히려 ‘사명을 주다’란 의미로 봄이 더 타당하다(민 14:36, 신 19:12, 삿 6:14).

베들레헴 사람 이새. ‘베들레헴’은 ‘떡집’이란 뜻으로, 이곳은 사무엘의 고향인 라마 남서쪽 약 16 km, 그리고 예루살렘 남서쪽 약 10 km지점의 해발 690m에 위치한 유다의 작은 성읍이다(룻 1:1). 한편 ‘이새’는 부호 보아스와 모압 여인 룻 사이에서 태어난 오벳의 아들로서(룻 4:17, 22, 대상 2:12, 마 1:5-6, 눅 3:32).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의 사람’이다(Klein). 이새는 그의 할아버지가 부자였으므로, 당시 그 역시 부유했음이 분명하다(룻 2:1). 그러므로 사무엘은 인근 마을의 유력한 가문인 이새의 집에 대해 대략 알고 있었을 것이다(Fay, Smith). 그러나 그가 당시 이새의 막내 아들 다윗에 대해서는 몰랐음이 분명하다.

그의 아들 중에서. 당시 이새에게는 여덟 명의 아들이 있었다(6-11절).

한 왕을 보았느니라. 여기서 ‘보았다’(히, 라아)는 문자적으로 ‘보다’란 의미이다. 그런데 성경 전반에서 이 단어는 ‘선택하다’란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17절, 창 22:8, 41:33, 왕하 10:3). 그리고 여기의 ‘왕’(히, 멜렉)은 사울에게 적용되었던 단어 ‘지도자’(히, 나기드)와는 그 의미에 있어 다르다(9:16). 즉 ‘방백’의 의미인 ‘지도자’와는 달리, ‘왕’은 명실공히 한 나라의 군주를 뜻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여기 여호와에 의해 왕으로 선택된 자는, 이미 ‘여호와의 마음에 맞는 사람’(13:14), ‘사울보다 나은 사울의 이웃’(15:28) 등의 표현으로 암시되어 왔던 다윗을 가리킨다. 즉 사울은 인간적인 기준에서 백성들에 의해 선발된 왕이었으나(8:5, 20, 11:15), 다윗은 오래전부터 신적인 기준에서 하나님에 의해 선택되고 예비된 왕이었다(7절, 행 13:22). 이런 점에서 진정한 이스라엘의 신정적(神政的) 왕정 체제는 사울의 때가 아니라, 다윗의 때에 이르러서야 이루어졌다고 봄이 옳을 것이다(신 17:15).

 

16:2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비록 사울은 하나님께로부터 최종 폐위 선언을 당함으로써(15:23, 26) 영적 왕권은 이미 상실된 처지였지만, 그래도 당시 사울은 정치 군사적으로는 여전히 이스라엘의 공식적인 왕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만일 사무엘이 다른 사람을 왕으로 기름 부을 경우, 그 일은 당연히 반역 행위로 몰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사무엘은 일이 그런 식으로 전개된다면 자신의 죽음이나 추방이 문제가 아니라, 이새 가문까지 화를 면키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사무엘은 그러한 현실적인 문제를 솔직히 하나님께 아뢰었다(Smith, Fay). 따라서 사무엘의 이같은 반응은 불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오히려 우려되는 불행한 상황을 방지하고, 보다 나은 방법을 하나님께 아뢴 선지자의 사려깊은 기도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의 그러한 반응을 전혀 책망하지 않으시고, 즉시 지혜로운 방법을 그에게 알려 주셨다(Keil).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왕을 속이고 그의 생명을 보존하라고 하신 말씀인가? 성경에는 다른 사람에게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로 믿게 하거나(창 12:10-20), 일부러 거짓말을 했을 때(행 5:1-6) 그것을 죄로 여긴다. 그렇다면 본 절의 말씀은 그러한 죄에 해당하지 않는 것인가?

이 난제에 대하여 어떤 학자들은 다름과 같은 결론들을 내렸다. (1) 거짓말이나 속임수에 대한 금령은 성경에서 절대적 표준은 아니다. 거짓말은 약한 편이 더 강한 세력에 대항하여 성공하는 데는 용납할 수 있고 일반적으로 칭찬할 만한 수단으로 여겨지며, 하나님 역시 피해자를 위해 일을 처리할 땐 발뺌하는 것을 권장하기도 한다. (2) 상대가 거짓말쟁이일 때 그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묵과된다. 그래서 야곱이 라반에게 한 거짓말은 간접적으로 정당화된다. (3) 더 높은 규준이 더 낮은 규준들을 폐지하진 않고 다만 그것들보다 나을 뿐이다. 그래서 생명을 구하는 의무가 진실해야 하는 의무보다 더 크다(수 2:5). (4) 거룩한 속임수는 더 높은 목적에 기여한다면 용납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성경의 증언은 위의 견해들에 도전한다.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하지 않으심이니이다”(삼상 15:29, 참조 시 89:3, 딛 1:2, 히 6:18). 하나님은 인간 존재의 중심(시 51:6)에서뿐만 아니라 행동(출 20:16, 계 14:5)에서도 진실을 기대하신다. 이것이 없으면 인간의 삶과 운명은 위험에 처한다(레 19:11, 참12:22, 계 21:8, 27, 22:15). 그러므로 본 절을 이해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들은 다음과 같다.

1. 실로의 성소가 훼파된 당시 상황에서, 제사장들은 제사를 드리기 위해 그리고 이어서 특정 지역의 장로들을 주빈으로 초청하는 특별한 잔치를 위해 이곳 저곳을 순회했다. 그러므로 선지자이자 제사장이었던 사무엘이 어디에서든지 제사를 백성들과 함께 드리는 일은 지극히 정당하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므로 그 때 사무엘은 여호와의 명령대로 실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서, 아울러 그곳에서 기름 붓는 일도 수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Calvin, Keil and Delitzsch, Fay).

2.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거짓말을 하라고 지시하지 않으셨다. 다만 제사를 드리러 왔다고 말하라고 하셨다.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제사를 드리러 가라는 말씀이었기 때문이다. 혹시 다른 사람이 사무엘에게 그의 의도를 물었더라면 제사만 드리러 왔다고 말함으로써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진실만 말해야 하고 듣는 자가 거짓을 진실로 믿지 않도록 진실을 말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상황에서 진실을 다 털어놓을 의무는 없다. 진실을 숨기는 것이 거짓말은 아니며, 어떤 경우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의무일 수도 있다

3. 예수의 모본이 교훈을 준다. 두 번 이상의 경우에 예수께서는 그의 적들을 피하셨으며(요 8:59, 12:36), 두 번 이상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막 14:61, 15:5, 눅 23:9). 지혜자는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전 3:7)다고 말한다.

한편 여기의 ‘제사’(히, 자바흐)는 화목제를 가리킬 때 종종 사용된 단어라는 점(1:3)과 제물이 암컷이라는 점(레 3:1-5)등으로 미루어 볼 때 화목제를 가리키는 것 같다.

 

16:3 이새를 제사에 청하라. 여기에 언급된 ‘제사’는 제사 후 함께 나누어 먹는 잔치가 동반되는 화목제였기 때문에, 사무엘이 제사에 그 지방의 사람을 칭하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9:22). 그러므로 사무엘에게 있어서 사실상 이새를 청하는 것은 그의 아들에게 기름을 붓는 일이 주된 목적이었지만, 그러나 그 소식을 듣게 될 사울에게는 전혀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지니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기름 붓는 것은 사울에게 기름 부은 것과는 그 성격, 목적에 있어서 전혀 다름을 암시하고 있다. 즉 사울에게 기름을 부었던 목적은 백성들의 요청에 따라(8:5, 20) 다만 이스라엘의 군사 정치적 독립을 위한 것이었지만(9:16, 17), 다윗에게 기름을 붓는 일은 ‘하나님의 일’로서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임을 보여 주고 있다.

 

16:4 성읍 장로들이 떨며 … 영접하여. 베들레헴 성읍 장로들의 이같은 태도는 (1) 당시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서 가장 권위있고 존경받는 인물이었으며, (2) 또한 사무엘은 사사로서 그 직무상 종종 죄 범한 성읍을 방문하여 책망하고 징벌하는 일을 하는 자였기 때문에, 성읍 장로들은 갑자기 방문한 사무엘을 불안한 마음으로 맞이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Klein, Keil, Fay, Smith).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 “언짢은 일로 오신 것은 아니겠지요”(공동번역), “어쩐 일로 오셨는지요? 혹 무슨 잘못한 일이라도 있습니까”(what is wrong? why have you come? - Living Bible). 베들레헴 장로들의 이같은 질문은 사무엘이 자신들의 잘못을 징계하기 위하여 오지는 않았나 하고 걱정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준다(Mauchline, 왕상 2:13, 왕하 9:17, 19).

 

16:5 스스로 성결하게 하고. 부정한 상태에서 벗어나 몸과 의복을 깨끗케 함으로써,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에 합당하도록 준비하는 것을 뜻한다(출 19:10, 수 3:5, 7:13, 욥 1:5, 요일 1:7-10).

 

16:6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여기서 ‘보고’(히, 야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울을 선택할 때 그의 탁월한 신체를 중시했던 것처럼(9:2, 10:23-24), 여기서 지금 사무엘도 그같이 외모를 중시했음을 암시해 준다. 한편 ‘엘리압’은 ‘하나님은 아버지이시다’란 뜻이며, 그는 블레셋의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침공했을 때 사울을 따라 종군하였다(17:13, 28).

 

16:7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처음 외모를 중시하여 왕을 선택했던 일이 결국 실패로 돌아갔던 사실을 사무엘로 하여금 회고케 함으로써 그같은 실수의 재발을 방지하려고 하신다.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여기서 ‘용모’(히, 마르에)는 ‘보다’란 의미를 갖는 동사 ‘라아’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곧 얼굴 생김새나 풍채 등 내면은 관계없이 겉으로 보이는 모습(appearance) 자체를 가리킨다(창 2:9, 12:11, 민 8:4). 따라서 본 문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 머리에 기름부을 자를 택할 때 결코 외적인 모습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말이 용모나 신장은 무조건 배격하고 무시하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러한 것이 결코 하나님의 일꾼이 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사람은 외모를 …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여기서 ‘외모’(히, 아인)는 직역하면 ‘눈’(eye)이란 뜻으로서, 곧 ‘육신의 눈’(안목)을 가리킨다. 그리고 ‘중심’(히, 레브)은 직역하면 ‘마음’(heart)이란 뜻으로서, 곧 ‘마음의 눈’(영안)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러한 원문의 뜻에 맞추어 본 절을 해석하면, “사람은 (육신의) 눈으로 보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의 눈)으로 보느니라”란 뜻이 된다(Klein). 즉 이것은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에 있어서 인간의 척도와 하나님의 척도가 전혀 다름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는 비록 인간은 육신의 눈을 가지고 사람의 외적 용모, 신장, 배경 등을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눈을 가지고 사람의 내적 겸손, 신앙, 인격, 진실성 등을 감찰하신다는 의미이다(대상 28:9, 시 7:9, 눅 16:15).

 

16:8 8-10절. 사무엘은 이새의 여러 아들들 중 누가 하나님에 의해 왕으로 선택되었는지를 몰랐기 때문에 이새의 아들들을 차례로 자기 앞으로 지나게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물었으나, 이새의 일곱 아들들 중에는 왕으로 선택된 자가 있지 않았다. 아마도 사무엘은 그러한 사실을 하나님께서 주신 내적 음성 또는 내적 확신을 통해 알았을 것이다(Fay).

아비나답 … 삼마. 이 두 사람은 모두 형 엘리압과 함께 블레셋의 골리앗이 침범했을 때 사울을 따라 종군했었다(17:13, 28). 한편 여기서 ‘아비나답’은 ‘아버지는 훌륭하시다’란 뜻으로서, 이새의 둘째 아들이다. 그런데 사울 왕의 둘째 아들 이름도 ‘아비나답’이었다(31:2). 그리고 ‘삼마’는 ‘황무지’란 뜻으로서, 삼하 13:3, 대상 2:13에서는 ‘시므이’로 표기되어 있다.

 

16:9 없음.

 

16:10 이새가 그의 아들 일곱을 … 지나가게 하나. 대상 2:13-15에 기록된 다윗의 가계에 따르면, 이새의 아들은 다윗까지 포함하여 도합 7명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다윗까지 포함하면 이새의 아들은 도합 8명이 된다. 이러한 차이는 분명 이새의 여덟 아들들 중 한 사람이 어려서 일찍 죽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Smith, Fay).

 

16:11 막내가 남았는데. 여기서 ‘막내’(히, 하카탄)는 ‘가장 어린’이란 의미 외에 ‘가장 작은’이란 의미도 있다. 당시 다윗의 모습은 사울의 ‘큰 키’와는 매우 대조적이었다(9:2, 10:23).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이것은 그 당시 이새의 가족들이 다윗을 아직 성인으로 생각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왜냐하면 당시의 풍속으로 볼 때, 성인만이 제사의 초청에 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왕은 고대 중근동에서 종종 ‘목자’로 인식된다는 점에서(De Vaux), 여기서 다윗이 양무리 가운데 있는 것으로 언급된 것은 다윗의 미래를 상징적으로 예시하려는 저자의 의도가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Klein).

앉지 아니하겠노라. 이 말은 그 때까지 사무엘이 앉아 있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말이 아니다. 여기의 ‘앉지’(히, 사바브)는 ‘둘러싸다, 에워싸다’란 의미로서(삼하 22:6, 대하 33:14, 시 17:11, 전 9:14), 곧 식사하기 위하여 식탁에 둘러앉는 것을 가리킨다(Keil, Smith, Fay). 따라서 사무엘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은 후 식사를 하겠다고 한 것이다.

 

16:12 그의 빛이 붉고. ‘빛이 붉고’는 머리털 색깔이 붉음을 뜻한다(Klein, Keil, Lange). 대부분 검은 머리털 색깔을 지닌 중근동에서 이 붉은 색 머리칼은 귀한 것으로서, 그 지역에서는 아름다움의 한 조건이었다(Keil).

눈이 빼어나고. 여기서 ‘빼어나고’에 해당하는 원어 ‘야페’는 ‘아름답고’, 또는 ‘반짝이고’란 뜻이다. 따라서 이 말은 총기 있는 아름다운 눈을 말한다. 이것도 뛰어난 얼굴 모습의 소유자가 갖추어야 했던 한 조건이었다(창 29:17).

얼굴이 아름답더라. 이것은 단지 외적 아름다움만을 의미치 않고, 내면에서 풍겨나오는 아름다움을 뜻한다(25:3, 창 41:5, 신 1:25, 9:6, 삼하 18:27, 행 7:20). 그러나 여기 ‘얼굴’(히, 로이)은 분명 ‘겉모양’ 혹은 ‘외모’란 의미도 있으므로 이는 또한 그 외적 얼굴도 아름답게 잘 생겼다는 사실을 시사한다(Klein).

 

16: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 부었더니. 다윗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기름 부음을 받았다. 즉 여기 첫 번째 기름 부음은 비공식적으로 이새의 가족만 참석한 가운데 은밀히 부어졌고, 두 번째는 헤브론에서 유다 족속의 왕으로 올랐을 때(삼하 2:3-4) 기름 부음 받았다. 그리고 세 번째는 마침내 다윗이 전체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했을 때(삼하 5:3) 받았다.

그의 형제 중에서. 이것은 형제들이 목격하는 가운데서 다윗이 기름 부음 받았음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 때 이새의 가족 이외의 사람들은 그 장소에 아무도 없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다윗의 형제들은 사무엘의 엄중한 부탁과, 그리고 사울의 보복 등을 우려해 그 사실을 비밀로 유지한 듯하다(Leon Wood).

이 날 이후로. 이것은 여호와의 영이 다윗에게 즉각적으로 임했고, 또한 영속적으로 임재하고 계셨음을 시사한다(Fay).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신정 국가의 왕으로서 이스라엘의 정치적 도덕적 영적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역량과 은사를 허락하셨음을 뜻한다. 그 결과 다윗의 행동과 말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18절). 한편, 이처럼 기름을 붓는 객관적 의식의 결과로 여호와의 신이 주관적으로 임했다는 이 사실은 사울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10:1, 10).
그러나 사울의 경우와는 달리, 다윗의 경우는 이같은 일이 (1) 기름 부음의 의식 직후에 있었으며 (2) 임재하신 여호와의 영이 끝까지 떠나지 않으셨으며 (3) 여호와의 영이 임할 때 발작적이지 않았다는 점에서(10:9-12, 11:6-7) 사울의 경우와는 구별된다(Klein). 따라서 본서 저자는 위의 두 경우를 암시적으로 비교함으로써, 사울에 대한 다윗의 우월성을 강조하려고 한 듯하다.
한편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여호와의 신(神)을 부어주신 까닭은 (1) 다윗이 왕의 신분에 합당한 도덕성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하며, (2) 왕의 고유한 직무를 감당할 능력을 소유토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삼하 5:4에 의하면, 다윗은 그의 나이 30세에 전체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한다. 그러나 여기서 처음 다윗이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 받을 때, 그의 나이를 레온 우드(Leon Wood)는 15세 가량으로, 그리고 카일(Keil)은 20세 가량으로 추정한다. 아무튼 당시 다윗이 제사 의식에 공식 참여치 못했다는 사실은 그가 만 20세 이상의 성인 남자가 되지 않았음을 시사하므로(11절),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할 때까지 약 10-15년 가량을 예비 왕으로서 연단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혹자는 사무엘의 생전에 다윗이 라마의 선지자 학교에서 일정 기간 동안 훈련받았다고 추정하기도 한다(R. Payne Smith, F. R. Fay).

 

16:14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사울에게 임했던 ‘여호와의 영’은 그가 이스라엘의 왕직을 제대로 수행토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11:6). 따라서 이제 사울의 왕위가 폐위된 이상,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더 머물 이유가 없었다.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원문은 ‘여호와께로부터 온 악령’(an evil spirit from Jehovah)이란 뜻이다. 여기서 이 ‘악령’(히, 루아흐 라아)은 인간의 도덕적 영적 생활을 고양시키는 하나님의 거룩한 영과는 본질상 뚜렷이 대조되는 사탄의 영으로서, 곧 인간의 정신과 마음을 억누르고 파괴하는 사탄의 사악한 영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사탄의 영은 하나님의 허락과 지배하에서만 활동할 수 있다(욥 1:12). 따라서 이것은 선악 간의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주재권 아래 있다는 구약의 전반적 사상과 잘 조화된다(신 13:2-4, 삿 9:23, 삼하24:1, 왕상 22:19-22, 대상 21:1, 욥 1:6-12).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이같은 악령이 활동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그것은 (1) 사울의 왕위가 폐위되었다는 사실을 가시화하여, (2) 새로이 영호와의 영을 받은 다윗과 대조시키며, (3) 또한 악령에 시달리는 사울로 인해 다윗이 수금 연주자로 성경의 무대에 공식 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인 듯하다. 한편 여기서 ‘번뇌하게 한지라(히, 바아트)는 ‘두렵게 하다, 놀라게 하다’란 의미이다(삼하 22:5, 욥 18:11, 사 21:4). 즉 이것은 극심한 정신적 고통 혹은 정신병적 우울증이나 착란증 현상을 가리킨다(Pulpit Commentary).

 

16:15 본 절은 사울 주변의 신하들에게도 사울의 폐위가 가시화되고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16:16 수금. [히, 킨노르] 이 악기는 음량을 크게 하기 위한 소리통 곧 본체에서 뻗은 두 개의 가지가 달린 현악기로서(10:5), 이 두 개의 가지 사이를 가로지른 막대기와 본체의 끝에 동일한 길이의 현(絃)들이 여러개 연결되어 있었다. 한편 약 B.C. 1400년 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바로 이와 같은 모양의 악기가, 최근에 일단의 성서 고고학자들에 의하여 므깃도에서 발굴되었다(Klein).

악령이 왕에게 이를 때에. 이것은 사울에 대한 악령의 활동이 간헐적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가 …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 당시 사울이 당하던 고통은 원인의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정신 심리적 현상의 하나였다는 점에서, 고대 사회에서 흔히 사용되던 음악을 통한 심리적 치료 요법이 어느 정도 통할 수 있었을 것이다(10:5, 왕하 3:15). 그러나 사울에게 나타난 현상은 근본적으로 영적인 원인에 따른 것이었다는 점에서, 음악을 통한 심리적 요법은 임시 방편에 불과할 수 밖에 없었다.

 

16:17 여기서는 장차 왕위에 오를 자로서, 다윗의 여러 뛰어난 자질이 주위 사람들에게서 이미 어느 정도 인정되기 시작하였음을 보여준다.

 

16:18 소년 중 한 사람. 이 소년(히, 네아림)도 사울의 신하 중에 있었다는 점에서, 사울의 신하였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의 연소함은, 또한 연소했던 다윗에 대하여 잘 알 수 있었던 한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 다윗에 대한 이같은 호칭은 하나님께서 1절에서 직접 사용하셨던 것으로서, 다윗을 소개하려고 한 그 소년 신하가 다윗에 대하여 매우 긍정적 시각을 갖고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

용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 다윗에 대한 저자의 이같은 언급은 사울에 대한 다윗의 탁월성을 강조하려는 의도에 따른 것이었다. 여기서 ‘용기’는 문자적으로 ‘능력있는 용사’(a mighty valiant man, KJV)란 뜻이다. 이것은 말할 나위없이 다윗이 자신의 가축을 해치려던 사자나 곰 등을 쳐죽였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 말이다(17:33-37). 그리고 ‘무용’은 ‘전사’(戰士, a man of war, KJV, RSV)란 뜻이다. 이것도 위의 ‘용기’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듯하다. 또한 ‘구변’은 ‘매사에 분별력 있는’(prudent in matters, KJV), ‘말을 신중하고 현명하게 하는’(prudent in speech, RSV)이란 뜻이다. 특히 이러한 자질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매우 귀중히 평가되던 덕목(잠 23:9, 25:9, 11, 15, 29:20)인데, 이것은 시편 기자로서의 다윗의 작시(作詩) 능력을 염두에 둔 말일 것이다. 그리고 ‘준수한’(히, 토아르)은 ‘잘 생긴 미남자’(a finelooking man, NIV / a man of good presence, RSV)를 가리키는 말로서, 특히 이 점에 대한 묘사는 이미 12절에 언급되었었다(25:3, 창 29:17, 39:6, 신 21:11, 에 2:7).

여호와께서 … 함께 계시더이다. 기름 부음 받은 결과 하나님의 영에게 크게 감동된(13절) 다윗은, 이후 그의 행적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증거가 되었다. 즉 내적으로는 겸손, 성실, 진실함으로, 그리고 외적으로는 사자나 곰을 맨손으로 물리치는 용기와 무용으로 그 증거를 나타내었다. 아무튼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게신다는 이 사실은 이후 모든 면에서 다윗에게 승리가 보장되어 있음을 가리키는 어구이다(3:19, 10:7, 18:12, 14).

 

16:19 사울이 … 다윗을 … 보내라 하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경고하셨던 것처럼(8:11-18), 사울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백성들을 징집하는 일을 거침없이 시행하고 있었다.

 

16:20 이새가 … 보내니. 당시 이새는 왕의 권위를 존중하였으며 또한 자신의 아들이 왕실의 일에 종사케 되었음을 명예롭게 여겼기 때문에(Klein), 자신의 아들을 기꺼이 사울에게 보냈을 것이다. 특히 이 때 이새는 자신의 아들이 미래의 왕으로서 기름 부음을 받았던 사실(13절)을 상기하고, 자신의 아들이 왕실에서 일하게 됐다는 사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을 것이다.

떡과 한 가죽부대의 포도주와 염소 새끼. 이와 같은 예물은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1) 상대방에 대한 존경심을 표명하거나(9:7-8), (2) 또한 상대방에게 감사를 나타낼 때(창 14:18), (3) 그리고 상대방을 진정시킬 목적(25:18) 등으로 사용되었다. 여기서는 왕에 대한 예의라는 점에서 첫 번째의 경우에 해당될 것이다.

 

16:21 그 앞에 모셔 서매. 이것은 (1) 분부를 받기 위하여 가까이서 기다린다(왕상 3:16), (2) 또는 본격적으로 신하의 한 사람이 되어 일을 하다(창 41:46) 등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분명 다윗은 사울이 악신으로 고통당할 때 수금을 타 그의 마음을 위로함으로써 봉사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이 사울의 마음을 매우 흡족하게 하였고, 또한 사울에게 크게 사랑받는 요인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23절).

자기의 무기를 드는 자로 삼고. 처음 수금 연주자로 사울에게 봉사한 다윗은 얼마 후 사울의 무기 드는 자(armor - bearer, RSV)로 승격되었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시사한다. 즉 (1) 다윗에 대한 사울의 사랑과 신임이 더욱 두터워졌으며, (2) 또한 사울이 다윗의 무예를 어느 정도 인정하였음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무기 드는 자’는 주인의 창 칼이나 방패 등을 가지고 다니는 일종의 부관으로서(Smith, Keil), 주인으로부터 가장 신임받는 정예군 중에서 임명되었기 때문이다(14:1, 17:41, 31:4-6, 삼하 18:15). 이처럼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로 말미암아, 마치 모세처럼 다윗도 사울이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상황 가운데서 왕실의 보다 고상한 직책을 감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로써 하나님께서는 다윗으로 하여금 왕궁의 여러 법도와 국사를 익히게 하셨는데,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장차 이스라엘의 왕으로 착실히 준비시켜 나가셨다(Keil & Delitzsch, Vol. II-ii. p. 172).

 

16:22 본 절에서 사울은 다윗을 계속적으로 자신의 곁에 두겠다고 이새에게 고지(告知)함으로써, 다윗에 대한 자신의 사랑과 신임을 강력히 표명하고 있다.

그가 내게 은총을 얻었느니라. 문자적으로는 ‘그가 나의 눈에서 은총을 발견하였느니라’란 뜻이다. 이것은 결국 다윗이 사울 자신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을 가리킨다(21절). 이처럼 사울은, 다윗에 대한 시기와 질투심이 생기기 전에는 그를 진정 사랑했다. 그러나 다윗에 대한 백성들의 칭송이 자신을 앞지르자(18:7), 이후로 사울은 이전에 다윗을 사랑한 것 이상으로 그를 적대하게 되었다.

 

16:23 본 절은 다윗이 사울에게서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21-22절) 중요한 이유를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 이는 하나님의 허락과 지배하에서 주로 악인들에게 활동하는 사탄의 영을 가리킨다. 14절 주석 참조.

다윗이 수금을 … 탄즉 사울이 … 낫고. 굳이 현대 의학적으로 사울의 병명을 분류하자면, ‘심한 우울증으로 인한 정신 착란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심리학상 좋은 음악을 통한 치료법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사울을 번뇌케 한 원인은 사탄의 활동이므로 일반 음악 요법으로는 결코 그를 치료할 수 없었다. 다만 여기서 다윗의 수금연주가 효과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의 영에 감동된(13절) 다윗이 수금을 통한 음악으로 그것을 표현했기 때문에, ‘악령’ 곧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사탄의 영이 사울에게서 일시적으로 떠나간 결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16절 주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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