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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 때에. 17:6 및 18:1과 유사한 구절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그 때에’라고 한 것은 본 장의 배경이 17, 18장과 동일한 시대임을 암시해 준다. 그런데 본서 기자가 이미 왕정 제도에 대하여 알고 있는 점으로 보아 본 장의 사건을 기록한 시기는 사사기 시대 이후로 상당 기간이 지난 때임을 알 수 있다(Goslinga).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거류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전장(前章)에 이어 본 장에 등장하는 주인공도 레위인이란 점은 당시 극도로 타락한 이스라엘의 사회상을 분명히 증언해 준다. 한편 여기서 ‘에브라임 산지 구석’이란 에브라임 산지의 북쪽 끝 실로의 인근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측된다(Keil). 그런데 레위인이 그곳에 거류했다는 것으로 보아 이 레위인도 전장(前章)에 나오는 게르솜의 아들인 요나단(18:30)처럼 에브라임 산지를 떠도는 나그네였음이 틀림없다(Pulpit Commentary).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이하였더니. 17:7에 나오는 레위 청년도 유다 베들레헴에 있었던 것으로 보아 당시 그곳에는 레위인들의 거주지가 따로 있었던 것 같다. 한편이 레위인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맞이했는데, 고대 사회에서 첩을 들이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한 첩 때문에 기드온의 가정이 파멸된 것처럼(8:31) 본 장에서도 이 레위인이 첩으로 인하여 당하는 고통을 보여 주고 있다.

 

19:2 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여기서 ‘행음하다’에 해당되는 원어 ‘자나’는 주로 창기와 같은 직업적인 음란 행위나 또는 그와 같은 성향의 행음을 가리킨다. 그런데 히브리 원문에는 ‘자나’ 뒤에 ‘그에게 대항하여’라는 뜻의 전치사 ‘알라이우’가 있어서 이 여인이 남편에 대한 불만으로 그같은 행음을 하였음을 보여 준다. 아마 이 레위인이 먼저 동일한 행음을 범함으로 첩도 그렇게 행음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Moore). 다음으로 여기서 ‘남편을 떠나’라는 말은 그러한 이유로 양자 간에 불화하여 서로 헤어진 것을 가리킨다(Cassel). 한편 레 21:7에 따르면 여호와의 집에서 봉사하는 모든 레위인은 기생이나 부정한 여인을 취하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도 이 레위인이 이같이 행한 것은 당시의 성직자들의 타락상을 잘 보여 준다.

 

19:3 그의 남편이 그 여자에게 다정하게 말하고. 이에 해당하는 원문을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그녀의 마음에 말하고’이다. 이것은 레위인이 진정으로 그녀와 다시 화해하고자 했음을 보여준다(Wycliffe). 한편 율법상으로 살인죄(민 35:31), 간음죄(레 20:10) 부모를 치는 죄(출 21:15) 등은 어떠한 제믈로도 속량할 수 없다. 그런데도 본문의 레위인은 자기 첩이 넉 달 동안(2절)이나 집으로 돌아오지 않자 오히려 그녀를 연모하므로 다시 데려오고자 했다. 이로 볼 때 당시에는 하나님의 율법이 거의 무시되고 있어 사회의 기강이 무너져 있었음이 분명하다(Matthew Henry).

하인 한 사람과 나귀 두 마리를 데리고. 나귀 두 마리 중에 한 마리는 그의 첩을 태워 데리고 오기 위한 것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그 여자가 다시 남편을 따라 나서게 된 것도 그 같은 남편의 세심한 배려에 마음이 동해서였을 것이다(Hervey).

 

19:4 그 여자의 아버지가 그를 머물게 하매. 여기서 ‘머물게 하다’에 해당하는 ‘하자크’는 ‘붙잡다’, ‘제지하다’는 뜻으로 강권의 의미를 담고 있다. 즉 레위인의 장인은 금방 그를 돌려보내지 아니하고 강권하여 몇 일 처가댁에 머물도록 종용한 것이다. 이렇게 자기 집에 머물도록 권하는 것은 대단한 예우이며 친절의 표시이다(창 18:5). 이로 볼 때 레위인은 처와 화해하는 일 뿐만 아니라 장인의 사랑을 얻는 데도 성공하였음이 틀림없다. 그래서 그는 삼 일 동안 그녀와 함께 먹고 마시며 편히 쉴 수 있었다.

 

19:5 그대의 기력을 돋운 후에. 이에 해당하는 원문을 직역하면 ‘당신의 마음을 쾌활하게 한 후에’가 된다(창18:5). 여기서 ‘쾌활하게 하다’에 해당하는 원어 ‘세아드’는 ‘(마음을) 신선하게 하다’라는 뜻의 동사 ‘사아드’의 명령형으로서, 여기에는 강한 권고의 뜻이 담겨 있다. 한편 고대 근동에서는 일반적으로 신부를 데려올 때 일정 기간 처가댁에서 머문 후에 데려오는 풍습이 있었다(창 24:55). 따라서 레위인의 장인이 어떻게든 레위인을 그의 집에서 더 유숙하게 하려한 것은 아마 이같은 풍습에서 였을 것이다.

 

19:6 두 사람이 앉아서 함께 먹고 마시매. 이처럼 레위인의 장인이 그를 붙잡아 두고 잔치를 베푸는 이면에는 사위에게 자기 딸을 부탁하는 당부의 마음이 크게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 혼인한 딸이 아버지의 집에 계속 머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근심거리 중의 하나임이 분명하다. 더구나 레위인의 첩은 행음하고 남편과 헤어진 상태였으니(2절)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그의 장인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사위가 자기 딸을 버리지 아니하고 잘 살아주기만을 바랬을 것이다.

 

19:7 다시 유숙하더니. 레위인 장인의 과한 선심과 레위인의 우유 부단한 성격을 보여 주고 있다. 즉 레위인의 장인은 아직도 자신이 사위의 환심을 살 정도로 충분히 대접하지 못하였다고 생각하였기에 계속 사위를 집에 머물게 하려 했을 것이다. 반면 레위인은 장인의 호의틀 떨쳐 버릴 정도로 심지가 강하지 못하였기 때문예 계속 장인에게 설득 당했을 것이다.

 

19:8 해가 기울도톡 머물라. 여기서 ‘해가 기울도록’이란 말은 ‘한낮이 지나도록’이라는 뜻이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대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한낮의 더위를 피하려고 아침 일찍이 떠나는 법이다. 그런데도 레위인의 장인은 낮 동안 층분히 휴식한 후 오후에 길을 떠나라고 말한다. 추측컨대 그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베들레헴에서 레위인이 거주하는 에브라임 산지까지는 반나절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이기 때문에 늦게 출발해도 괜찮았기 때문일 것이다.

 

19:9 이 밤도 유숙하라 보라 해가 기울었느니라. 오후에 출발하기로 되어 있던 레위인은 그의 장인과 먹고 마시는 동안 너무 시간이 지체되어 밤이 되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가라. 문자적 뜻은 ‘장막으로 돌아가라’이다. 한편 ‘장막’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일반적인 주거 형태였다(20:8, 왕상 12:16).

 

19:10 일어나서 떠나. 이처럼 레위인이 밤중에라도 집으로 돌아가려 한 것은 아마 그 다음날 저녁부터 안식일이 시작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더욱이 그는 종교적인 직무를 수행하는 자였으므로 안식일에는 성소에서 봉사하여야 했을 것이다(Lang).

여부스 맞은편에 이르렀으니. 여기서 여부스 맞은편은 예루살렘의 서쪽을 가리킨다. 베들레헴에서 예루살렘 까지는 걸어서 약 1시간 반 거리이다. 그리고 베들레헴에서 세겜 쪽의 에브라임 산지로 가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의 서쪽에 있는 도로틀 반드시 지나야 한다. 한편 여부스라는 이름은 여부스 족이 다윗 시대까지 예루살렘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붙여졌다(삼하 5:6).

 

19:11 이 성읍에 들어가서 유숙하십시다. 레위인 일행이 예루살렘 근처에 이르렀을 때 이미 날이 어두워졌다. 그러자 레위인의 종은 이처럼 레위인에게 여부스 사람의 성읍에 들어가 밤을 지내자고 청한다. 왜냐하면 밤에는 들짐승이나 도적때의 공격을 받기가 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주인은 이방인의 성읍에 들어가기를 원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로부터 해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종의 요청을 거부했다.

 

19:12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하지 아니한 이방 사람의 성읍. 이스라엘 백성이 비록 가나안을 정복하였지만 아직 미 정복지가 남아 있었듯이(1:19-21, 27-36) 예루살렘 역시 다윗시대까지 가나안 후기 원주민인 여부스족의 성읍으로 남아 있었다. 1:21 주석 참조.

기브아로 나아가리라. 기브아는 예루살렴 북쪽 약 6.4 km 지점에 위치해 있는 베냐민 지파의 지역이다(수 18:28). 또한 이곳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의 고향이기도 하다(삼상 10:26).

 

19:13 라마. 기브아에서 북쪽으로 약 3.2 km 떨어진 곳이다(수 18:25). 현재의 엘람(er-Ram)으로서, 과거 여 사사 드보라의 고향이자(4:5) 사무엘의 활동 중심지이기도 했다(삼상 7:17).

 

19:14 해가 진지라. 레위인 일행이 기브아에 도착했을 때 해가 완전히 져서 더 이상 여행을 계속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라마까지 가지 못하고 베냐민 땅 기브아에 머물게 되었다.

 

19:15 성읍 넓은 거리에 앉아 있으나. 레위인 일행이 앉아 있던 거리는 성문 안쪽에 있는 넓은 광장으로서,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여 공회를 열거나 재판을 행하기도 하며 장사도 하는 그런 곳이었다. 창 19:1 주석 참조.

집으로 영접하여 유숙하게 하는 자가 없었더라. 레위인 일행이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곳에 앉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그들을 환대하는 기본적인 예절을 보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은 기브아 사람들의 성품의 상태를 잘 보여준다(창 18:3-8, 19:2-3, 마 25:43, 벧전 4:9). 즉 나그네를 사랑하고 대접하라는 것이 율법의 가르침이었지만(신10:19) 그들은 이를 철저히 무시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레위인과 그의 첩과 하인은 이방인의 성읍인 여부스에서 머물기를 마다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는 성읍까지 오면서 가졌던 기대가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19:16 본 절에서 본서 기자는 레위인 일행에게 친절을 베푼 에브라임 출신의 노인 한 사람을 소개하면서, 기브아 성읍에는 타지에서 온 이 한 사람 외에는 선한 사람이 없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거류하는 자. 이에 해당하는 원어 ‘게르’는 ‘나그네(손님)로서 체류(거주)하다’는 뜻의 ‘구르’에서 온 말로, 타지에서 온 사람을 가리킨다.

 

19:17 없음.

 

19:18 이제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인데. 노인이 어디로 가며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을 때 레위인은 이처럼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이라고 대답을 했다. 당시 ‘여호와의 집’ 즉 ‘회막’은 실로에 있었다(수 18:1, 삼상 4:3-4). 그런데 실로는 레위인의 집이 있던 에브라임 산지(1절) 내에 위치하고 있었다. 때문에 본 절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하여서는 학자간에 서로 견해가 다르다. 먼저 혹자는 본 절을 ‘여호와의 집이 있는 방향으로’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Keil). 그러나 다른 사람은 이 레위인이 그의 첩과 화해하였기 때문에 화목제를 드리러 실제로 ‘여호와의 집’으로 가고 있었음이 분명하다고 말한다(Cundall). 반면, 또다른 사람은 이 레위인이 단지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고 말함으로써 그 노인에게 좋은 대우를 받기를 원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Cassel). 그런데 70인역(LXX)에서는 이를 ‘나의집으로’로 번역하고 있어서 카일(Keil)의 주장이 옳음을 증명해 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레위인이 ‘여호와의 집이 있는 방향’으로 간다고 말함으로써 그 노인에게 좋은 대우를 받고 싶어하는 의도를 가졌음을 부인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실제로 레위인 일행은 그 노인으로부터 크게 환대를 받았기 때문이다(19-20절).

영접하는 사람이 없나이다. 여기서 ‘영접하다’에 해당하는 원어 ‘아사프’는 ‘받아들이다’는 뜻으로. 가벼운 선심을 쓰거나 계산에 의하여 일정한 혜택을 베푸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는 ‘뜨거운 마음으로 열렬히 환영하는 것’을 가리키는 ‘카라’와는 엄연히 구별된다. 이로 보아 레위인 일행은 기브아에서 숙박비를 제공하려 해도 유숙할 장소를 얻지 못했던 것 같다(15절).

 

19:19 우리에게는 … 부족함이 없나이다. 레위인은 노인이 마음에 부담을 갖지 않도륵 하기 위하여 나귀 두 마리와 자신과 자기 첩과 종이 먹을 양식과 짚은 충분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그의 말 속에는 기브아 사람들에게 단지 하룻밤 묵고 갈 숙소만을 요구했는데도 그들이 받아주지 않았다는 탄식이 내포되어 있다(Pulpit Commentary).

 

19:20 그대는 안심하라. 이 노인은 레위인의 염려를 이해하고 안심시켰다. 여기서 ‘안심하라’에 해당하는 원어는 ‘샬롬’으로서, 평안을 기원하는 히브리인의 인사이다. 이러한 히브리 인사에서 우리는 지난날 애굽의 종살이나 광야의 방황 생활 중에서 히브리인이 얼마나 평안을 갈구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대의 쓸 것은 모두 내가 담당할 것이니. 옛부터 거리에 있는 나그네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 후히 대접하는 것이 히브리인의 관습이었다(창 18:1-8, 19:1-3). 만일 그렇지 않을 때는 공회 앞에서 처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신 10:19, 욥 31:32). 따라서 그 노인은 전통적 관습대로 나그네가 양식을 가지고 있는 것에 상관없이 자기 양식으로 그들을 대접하려고 했다.

 

19:21 이 노인은 레위인 일행을 자기 집으로 데려가 환대하였을 뿐만 아니라 나귀도 먹였다. 이는 곧 그가 진정한 마음으로 나그네를 사랑하고 대접하였음을 보여준다.

발을 씻고. 고대 근동에서는 여행자들이 주로 샌달을 신고 흙먼지 길을 다녔다. 그러므로 손님을 영접하는 주인은 반드시 발 씻을 물을 주는 것이 예의였다(창 18:4, 24:32, 43:24, 요 13:5-14).

 

19:22 레위인과 노인의 만남(16:21절)을 다룬 본 장의 이야기는 룻이 소돔 성에서 천사를 만난 이야기(창 19장)와 유사하다. 특히 본문 22-24절에 기록된 기사는 창 19:4-8절의 기사와 매우 유사하다. 그래서 혹자는 본서 기자가 창 9장의 기사를 인용하여 본문 속에 삽입한 것이라고도 주장한다(Wellhausen). 그러나 전후 문맥이 엄연히 다를 뿐 아니라 또한 시대에도 큰 차이가 있으므로 본문의 사건을 결코 삽입한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Cassel).

그 성읍의 불량배들. 이에 해당하는 원어는 ‘베네 벨리알’로서 ‘벨리알의 자손들’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벨리알’은 ‘무익한’, ‘무가치한’이라는 뜻의 형용사로서 사람과 결합되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삼상 1:16에서는 ‘악한 여자’로, 삼상 25:25에서는 ‘불량한 사람’, 삼하 16:7에서는 ‘비루한 자’로 번역하였다. 이것은 유대 묵시 문학에서 벨리알을 사탄이나 거짓 예언자로 언급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여기서 ‘두들기며’에 해당되는 원어 ‘미테두페킴’은 강조행 동사로 ‘스스로 흥분하여 매우 세게 문을 두드리는’ 모습를 가리킨다. 그래서 혹자는 본 절을 이렇게 번역했다. “그 불량배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갈 모양으로 문에 달려들어 두들기고 있었다”(G. R. Driver). 이와 같이 기브아 불량배들이 온건한 태도로서가 아니라 노골적으로 레위인을 끌어내리려 했기 때문에 집 주인은 문을 열고 그들을 설득하지 않을 수 없었다(23-24절). 그런데도 그들은 이를 듣지 않았는데(25절), 이런 일이 후에 기브아와 통치자들에 의해 어떠한 정죄함이나 처벌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기브아 성읍 백성들 전체가 암묵적으로 이 일에 동참했음이 분명하다.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 여기서 ‘관계하다’에 해당하는 원어 ‘야다’는 분명 ‘성관계를 가지다’는 뜻이다. 즉 기브아 불량배들은 레위인을 끌어내어 남색하려고 한 것이다. 이는 소돔 사건의 재현인 듯한 인상을 준다. 과거 소돔인들의 음란한 행실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멸망을 초래하였고, 그로 말미암아 사해가 형성되었다(창 19:4-26). 한편 이 사해는 기브아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였다. 그래서 기브아 사람들은 자주 그곳을 지나다녔을 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과거의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아무런 교훈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소돔보다 더 악하게 행하려 하였다(Matthew Henry’s Commentary).

 

19:23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여기서 ‘망령된 일’에 해당되는 원어 ‘하네발라’ 역시 남색(sodomy)과 같이 수치스러운 일(창 19:5, 7)이나 비 정상적인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어리석은 행위(창 34:7, 신 22:21)들을 가리키는 말로서, 주로 성적 범죄를 가리킨다(삼하 13:12).

 

19:24 여기 내 처녀 딸과 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 노인은 기브아의 불량배들이 워낙 완악하여 말로 설득할 수 없음을 깨닫고 그 레위인을 보호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자기 딸과 그 레위인의 첩을 그들에게 내어 주겠다고 말했다.이는 이스라엘 사회의 가부장적 권위를 잘 반영해 준다. 당시에는 남성의 권위로 말미암아 여성이 학대받거나 능욕을 당한다 해도 여성은 말없이 순종하여야 했다(11:39-40). 그러나 노인이 취한 방책은 최선의 것이 아니었다. 즉 하나의 악을 막기 위해 또다른 악을 범한 것이다. 그가 진정 하나님의 공의에 충실한 사람이었다면 상황논리에 급급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신뢰하며 끝까지 불량배들을 대항했어야 했다.

 

19:25 무리가 듣지 아니하므로. 자신의 딸을 내어 놓겠다는 노인의 제안은 불량배들에 의해 거절되었다. 아마도 그들은 같은 경내에 살고 있는 노인에게는 해를 끼치려 하지 않은 것 같다. 아니면 그들은 남녀간의 성 행위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비정상적인 남색 행위에만 관심을 두었을 수 있다.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붙잡아 그들에게 밖으로 끌어내매. 많은 학자들이 여기서 ‘그 사람’은 노인을 가리킨다고 본다(Keil, Goslinga). 그러나 전후 문맥을 살펴볼 때 여기서 ‘그 사람’이란 분명히 ‘그 레위인’을 가리킨다. 그 레위인은 노인의 제안이 거절되는 것을 보고 그들이 요구하는 것이 자신과 자기의 첩 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일단은 자기 첩을 그들에게 내어 주었다. 즉 비록 사랑을 고백하며 설득하여 장인에게서 데려온 첩이었지만(3-10절) 이 레위인은 자기의 안전을 위하여 아내를 불량배들에게 내어주고 말았다. 여기서도 우리는 인간들의 극한적인 이기적 성향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와 반대로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그 보다 더 큰 사랑은 없을 것이라고 교훈하셨다(요 15:13).

그들이 그 여자와 관계하였고. 기브아 불량배들이 요구한 것은 레위인의 첩이 아니라 레위인이었다(22절). 그런데 어떻게 그들이 그의 첩에게만 만족하였는지 의문시 된다. 아마 그 불량배들은 그의 첩의 빼어난 미모에 만족하였을 지도 모른다(Cassel).

능욕하다가. 이에 해당하는 원어 ‘알랄’은 ‘지나치게 하다’, ‘철저히 실행하다’는 뜻이다. 한 영역본(Living Bible)은 이를 ‘교대로 겁탈했다’(taking turns raping her)로 번역하였다.

 

19:26 주인이 있는 집 문에 이르러. 밤새도록 불량배들에게 능욕을 당한 그 첩은 거의 죽게 된 된 자신의 몸을 이끌고 남편이 있는 집 문 앞에까지 와서는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비록 이 여인이 남편에 대한 분노때문에 행음하였으나(2절 주석 참조), 여기서 볼 때 그녀가 그 레위인보다 더 진실한 사랑을 소유하였음을 알 수 있다. 즉 비록 자신을 내어버린 남편이지만 그 여인은 자기 주인에게로 돌아오기 위해 이같이 사력을 다했다(Hervey).

 

19:27 그의 주인이 일찍이 일어나. 자신의 아내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이 비정한 레위인은 간밤에 당한 공포스런 일을 생각하며 일찍이 그 성읍을 떠나 위험을 피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아내의 행방이나 생사여부를 확인해 보려는 최소한의 관심 조차도 기울이지 않았다. 이로 볼 때 이 레위인에게는 그의 첩에 대한 육적인 사랑은 있었을지 모르나 진정한 사랑은 전혀 없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앞서 그의 장인이 계속해서 그에게 자기 집에 하루라도 더 머물도록 한 것도 아마 자기 딸에 대한 이 레위인 사위의 사랑을 의심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5-8절).

그의 두 손이 문지방에 있는 것을 보고. 새벽 미명에 홀로 떠나려고 하던 레위인은 그의 아내가 엎드러져 그 두 손을 문지방에 올려 놓은 것을 보게 된다. 여기서 문지방에 손을 올려 놓는 행위는 당시 고대 근동의 미신적 풍습을 반영한 것이다. 즉 당시 가나안 인들은 문지방 밑에 그 집안 사람들을 보호하는 여러 종류의 신들이 살고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이런 미신을 잘 알고 있던 레위인의 첩은 거의 초죽음이된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두 손을 문지방 위에 올려놓으면서 자신이 소생하기를 바랬을것이다. 삼상 5:4 주석 참조.

 

19:28 아무 대답이 없는지라. 레위인은 눈으로 보아 그의 아내가 죽은 것을 금방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역시 아내와 동일한 미신적 사고 방식에서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그녀를 계속해서 깨웠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아내가 비참한 모습으로 완전히 죽은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 레위인은 기브아 사람들에 대한 증오심에 불타 자기 아내의 시신을 나귀에 싣고 집으로 돌아간다.

 

19:29 그 마디를 찍어 열두 덩이에 나누고. 집에 도착한 레위인은 즉시 아내의 시신을 열두 덩이로 나누어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보냈다. 이같이 시체를 절단하여 지파들에게 보내는 것은 일종의 상징적 행위로서 기브아 사람들의 범죄를 온 이스라엘 앞에 공개하여 응당한 징벌을 가하기 위한 것이었다(Keil & Delizsch). 사울의 경우에도 이와 유사하게 소 한 겨리를 각을 떠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각성을 촉구한 적이 있다(삼상 11:7). 이와 같이 이것은 당시 중앙 통제 기구가 없었던 시절에 본문과 같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방책이었다. 당시는 지파 간의 결속이 느슨해지고 중앙 통제 기구가 없던 상태였기 때문에 본문의 사건을 해결해달라고 호소할 만한 대상이 없었다. 따라서 그 레위인은 첩의 시체를 12등분하여 각 지파에게 보내었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불량배들의 죄상을 강력히 고발하고 전 민족적 차원의 징계를 호소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레위인의 이같은 끔찍스러운 행동은 자가당착에 불과하였다. 왜냐하면 그가 스스로 하나님의 공의와 율법을 저버리는 죄악을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상대방의 허물에 대한 적개심만 불타고 있었기 때문이다(마 7:3-5).

 

19:30 그것을 보는 자가 다 이르되. 레위인이 전한 기브아 사람들의 범죄는 전 이스라엘에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아마도 이런 엄청난 죄악은 소돔 성에서 일어난 사건(창 19장)과 유사하였기에 더욱 큰 충격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 일에 보다 신중하고 강력하게 대처하기 위해 온 이스라엘의 총회를 소집하기에 이른다.

상의한 후에 말하자. 혹자는 이 구절을 레위인이 이스라엘 각 지파에 사자들을 보낼 때 그 사자들이 한 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같은 해석은 본문과 잘 맞지 않는다. 따라서 본 절은 어디까지나 레위인의 사자들에게서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말로 보아야 한다. 한편 여기서 ‘말하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다베루’는 복수 명령형으로서 권고의 뜻이 있다. 그리고 이것의 원형 동사 ‘다바르’의 기본 의미는 ‘말하다’이지만 파생적인 의미로 종종 ‘파괴하다’, ‘인도하다’라는, ‘심판’의 뜻도 가진다. 따라서 여기서의 ‘말하자’는 베냐민 사람에 대한 거국적 차원의 대처 방안을 강구하자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아무튼 기브아 사람들의 범죄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민족적 차원에서의 회개 운동을 일키지 않으면 안 되었다(20장). 훗날 선지자 호세아는 기브아 사람들의 범죄를 타락의 극치로 설명하고 있다(호 9:9,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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