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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사사기 서론

(1) 제목
유대인들은 본서의 제목을 ‘쇼페팀’이라 칭하였다. 이는 ‘지도자’, ‘재판관’을 뜻하는 ‘쇼페트’의 복수형으로서, 곧 본서의 주된 인물인 ‘사사들’을 가리킨다.

(2) 저자
유대인들의 탈무드에 의하면 사무엘이 사무엘서를 기록할 때에 룻기와 더불어 본서를 기록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전승에 의한 것이므로 확실한 증거는 아니다. 본서의 저자는 사무엘이거나 그와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익명의 선지자였을 가능성이 높다.

(3) 기록 연대
기록 연대는 적어도 솔로몬 이전의 왕정 시대, 곧 사울 또는 다윗이 왕으로 재위하던 시대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그 연대는 B.C. 1050-1000년 경으로 본다.

(4) 주제
중심 사상은 다음과 같다. (1) 인간의 나약성과 하나님의 신실성이 드러나 있다. (2)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이 나타나 있다. (3) 하나님께서는 인간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진정으로 헌신한 자들을 사용하신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것은 본서의 서론적 표현으로서 사사기의 시대적 배경을 나타낸다. 이와 유사한 표현은 “모세가 죽은 후에”(수 1:1)라는 말로 시작되는 여호수아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곧, 전에 모세가 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제 여호수아의 죽음으로 인해 한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의미한다.
한편 여호수아는 110년을 향수하였는데(수 24:29), 그동안 모세의 후계자로서 이스라엘의통치권과 지휘권을 행사하였다. 특히 그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나안 땅 분배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다(수 14-21장). 자신의 직임을 성공적으로 마친 여호수아는백성들에 대한 권면을 마지막으로 평안히 죽음을 맞이하셨다(수 23:1 - 24:31).
그런데 문제는 막상 여호수아가 죽고나자 그를 이을 적당한 후계자가 없다는 점이었다. 사사기는 바로 이와 같은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기록되었다. 즉 여호수아 사후 강력한 통치자가 없던 이스라엘은 주변 열강들과 미처 정복치 못한 가나안 원주민들로부터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하였다. 그러한 때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등장한 이들이 곧 사사인 바, 사사기는 이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기술되고 있다.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이는 곧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표현은 사사기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많이 나타난다(18:5, 20:18, 23, 28, 삼상 10:22, 22:10, 23:2). 구약시대에는 주로 대제사장들이 우림과 둠밈으로 여호와의 뜻을 구했는데(출 28:30, 민 27:21, 삼상 28:6), 아마 이때에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여호와께 물었을 것이다(Keil, Delitzsch). 한편,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 사후 하나님의 뜻을 물은 이유는 여호수아가 남긴 유업을 마저 성취하기 위해서였다. 즉 비록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이스라엘에 안식을 가졌다 주었지만(수 11:23, 21:44, 23:1) 아직도 가나안 땅에는 미정복지와 잔존 원주민들, 그리고 그들의 우상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때문에 가나안 땅을 마저 정복하고 그것들을 제거하는 것은 여호수아의 사후 이스라엘이 당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였다(수 24:22-24). 따라서 이스라엘의 각 지파들이 이 일을 의논하기 위해 모였고 하나님께 그 뜻을 물은 것이다.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 싸우리이까. ‘올라가서’에 해당하는 원어 ‘알라’는 단순히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나아가는 것’을 뜻하는 단어가 아니다. 대신 이는 수 8: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싸움터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Lange, 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II, p. 250) 때문에 Living Bible은 이를 ‘전쟁에 나가다’(go to war)로 분명히 번역하고 있다. 아무튼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러한 질문 속에서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즉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던 모세나 여호수아와 같은 지도자가 없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아직도 여전히 미정복 상태로 남아 있는 많은 지역(수 13:1-7 등)을 정벌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민족적 대과업이었다. 따라서 누가 먼저 가나안 족속의 정벌에 나서서 백성들의 사기를 복돋워 주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때문에 이스라엘은 이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물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유다 지파가 선봉에 나서라고 하셨다(2절).

가나안 족속. 정확히 말하면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당시 그곳에 거주하고 있던 ‘가나안 후기 원주민들’을 의미한다. 이들은 아브라함 당시 가나안에 거주하던 ‘초기 원주민들’(창 2: 5-6)과는 구별된다.

 

1: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즉시 이스라엘 족속들의 질문에 응답하셨다는 사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먼저 여호와께 물은 행위가 옳았음을 가리킨다. 이것은 사사 시대 전반에 걸쳐 되풀이 되던 극심한 타락상과는 달리 사사 시대 초기에는 그래도 여호와 신앙이 유지되었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사실은 백성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 뿐만 아니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다는 기록에 의해서도 뒷받침 된다(2:7).

유다가 올라갈지니라. 여기서 ‘유다’란 ‘유다 지파’를 가리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가나안 미정복지 정벌 전쟁에 이스라엘 여러 지파 중 유다 지파가 먼저 출전토록 명하신 까닭에 대하여서는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1) 우선 이스라엘 지파들 중 유다 지파의 수효가 가장 많았기 때문(민 1:27, 26:22)일 것이다(Mathew Henry’s Commentary, Vol. II, p.121). (2)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이미 하나님께서 야곱의 예언(창 49:8-12)을 통해 유다 지파가 이스라엘 중 가장 탁월한 지위를 차지하리라 축복하셨기 때문이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II, p. 251). 그러므로 본 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유다 지파에서 우선 출전 명령과 함께 과거 여호수아에게 주셨던 것(수 13:1)과 같은 승리의 약속도 함께 주고 계시는 것이다.

이 땅. 이미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각 지파들에게 기업으로 분배해 주었으나 그들이 미처 정복하지 못한 탓에 아직 남아 있는 가나안 미정복지를 가리킨다(수 13:1-7). 그런데 혹자는 이를 유다 지파에게 기업으로 분배되었던 땅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하나(Bertheau), 그 것은 지나치게 의미를 축소시킨 견해이다.

그의 손에 넘겨 주었노라. ‘넘겨 주었노라’에 해당하는 원어 ‘나탄’은 ‘넘겨 주다’ 또는 ‘양도하다’는 뜻이다. 이는 곧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이미 하나님의 작정하에 가나안 땅이 이스라엘의 소유가 되도록 계획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한편 성경에는 비단 민족간의 전쟁 뿐아니라(민 21:2) 개인의 생명(16:23)도 하나님께서 상대방의 손에 넘기는 것으로 나와 있다. 이는 개인의 생명과 더불어 모든 국가의 장래도 곧 하나님의 주권하에 놓여 있음을 보여 준다.

 

1:3 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에게 이르되. 이처럼 유다가 그의 형제 시므온에게 가나안 미정복지 정벌 전쟁에 함께 출전할 것을 요구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시므온 지파는 유다 지파의 기업 중에서 자신의 분깃을 나누어 받았기 때문이다(수 19:1-9). 그러므로 시므온 지파는 유다 지파와 행동을 같이 하여 자신들의 기업을 얻을 필요성이 있었다. 한편 시므온 지파가 유다 지파의 기업 가운데서 분깃을 나누어 받게 된 까닭은 야곱 당시에로 거슬러 올라간다. 즉 과거 시므온은 자기 누이 디나가 세겜 추장에게 강간당하자 그에 대한 복수로 과도하게 세겜 사람들을 멸한 일이 있었다(창 34:25-29). 그러자 야곱은 이에 대한 징벌로 시므온 자손들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흩어질 것을 예언하였다(창 49:5-7). 이 예언은 그대로 성취되었는바, 시므온 지파는 가나안 정복 직전에 실시한 인구조사(민 26:14) 때 그 수가 가장 적었을 뿐만 아니라 모세의 축복 명단에서도 제외되었다(신 33장). 그리고 그 결과 시므온 지파는 독립된 기업을 얻지 못하고 유다 지파의 기업 중 일부만을 자신의 몫으로 차지하게 되었다(수 19:1-9). 하지만 본 절 이하에 의하면 이처럼 열세한 상황에 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므온 지파는 불평 불만에 빠져 있지 않고, 유다 지파와 협력하여 가나안 미정복지를 성공적으로 정벌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유다 지파는 가장 수가 많고 강한 지파였으나(민 1:27, 26:22) 미약한 시므온 지파를 무시해 버리지 않고 유기적인 협력 관계를 잘 유지했음도 알 수 있다. 이로 보건대 사사 시대 초기 당시는 아직 말기적 현상(20장)과는 달리 각 지파간의 관계가 돈독했을 뿐만 아니라 가나안 정벌에 대한 열망으로 서로의 마음도 합하여 있었다고 하겠다.

제비 뽑아 얻은 땅. 일전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각 지파들에게 가나안 땅을 분배해 줄 때 제비 뽑기를 통하여 실시한 것을 가리킨다. 이는 곧 각 지파에게 분배될 땅의 상태가 좋고 나쁜 데 따르는 시비를 사전에 방지할 뿐 아니라 제비로 결정된 땅은 곧 하나님께서 지정해 주신 기업이란 점을 일깨워주기 위함이었다.

 

1:4 가나안 족속. 1절에도 같은 말이 나오지만 그것과는 조금 의미가 다르다. 즉 이 말은 성경에서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의 두 가지 경우로 사용되고 있다. 그중 넓은 의미로는 1절에서와 같이 가나안에 거주하는 모든 족속을 가리킨다(창 10:19). 그러나 좁은 의미로는 시돈과 두로의 베니게 지역 해변가와 요단 강 계곡 및 평원에 살았던 가나안 후기 원주민 중 한 종족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좁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브리스 족속. 이 역시 가나안 후기 원주민 중 하나이다(수 3:10, 11:3, 17:15, 24:1). 한편 ‘브리스’에 해당하는 원어 ‘페리지’는 ‘성벽도 없고 문이나 빗장이 없는 장소’라는 뜻의 ‘페라조트’와 어원이 같다(겔 38:11). 이로 보아 브리스 사람이란 요새화된 성이나 성벽이 없는 성읍, 또는 작은 마을에 살았던 가나안의 한 종족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들이 성벽을 세우지 않은 것은 그들의 거주지가 주로 산지였으므로(수 17:15) 그 지형 자체가 충분한 요새 역할을 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Kalisch).

베섹. 이 지명은 본 절 외에 삼상 11:8에 딱 한 번 언급되어 있다. 그에 따르면 베섹은 기브아와 길르앗의 야베스 사이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곳은 유다 지파의 땅과는 멀리 떨어진 곳이다.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베섹’과 동일한 곳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유다와 시므온 지파가 올라간 베섹은 유다 지파의 기업 내에 위치한 곳이기 때문이다(Rosenmüller). 따라서 여기서 오늘날의 ‘베즈카’(Bezqa)일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혹자(Lange, P. Cassel)는 ‘베섹’이라는 지명의 뜻을 ‘빛’(겔 1:14에는 ‘번개’로 번역되어 있음)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베섹’이란 모래가 많아 태양 빛에 반사되는 지역을 통칭하는 지명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비약적인 논리에 불과하다.

 

1:5 아도니 베섹. ‘베섹의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개인 이름이 아닌 베섹 성읍 통치자의 칭호이다. 이같은 칭호로는 애굽 왕을 가리키는 ‘바로’(출 1:11), 그랄 왕을 가리키는 ‘아비멜렉’(창 20:2) 등이 있다. 창 26:1 주석 참조. 한편 혹자(G.E. Wright)는 이 아도니 베섹을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수 10:1)과 동일 인물로 보기도 하나 분명치 않다.

 

1:6 엄지 … 자르매. 고대 근동에서는 전쟁 포로를 다룸에 있어서 이처럼 불구로 만들거나 눈을 뽑아 버리는 경우가 흔히 있었다(민 16:14, 삼상 11:2, 왕하 25:7). 이러한 형벌은 상대방에게 수치를 주기 위함이었음은 물론, 무기를 잡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고 엄지 발가락을 자르는 것은 도망칠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Matthew Henry’s Commentary, Vol. II, p.122).
그리고 눈을 뽑는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방의 활동에 제약을 가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었다. 이러한 역사적 실례로는 일찍이 페르시아 제국이 망하여(B.C. 331) 헬라의 포로가 되었을 때, 헬라인들이 포로들의 수족과 귀 따위를 잘랐던 사건을 들 수 있다(Lange). 아무튼 본 절에서 아도니 베섹이 이같은 형벌을 당한 까닭은 일찍이 그가 동일한 방법으로 70명의 군왕들을 능욕했기 때문이다(7절). 비록 단편적이기는 하나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는 진리를 여기서도 발견할 수 있다.

 

1:7 칠십 명의 왕들. 이들이 정확히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왕’에 해당하는 ‘멜레크’는 종종 일개 성읍의 통치자를 가리키기도 한다(창 14:1-2, 수 10:3, 12:9-24). 따라서 이들은 아도니 베섹 당시 각기 가나안의 군소 성읍을 관장하던 군왕들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상 아래에서 먹을 것을 줍더니. 마치 개처럼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주워 먹는 행위(마 15:27)를 가리킨다. 이는 인간이 맛볼 수 있는 가장 비참하고 굴욕적인 대접 중 하나이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II, p. 253).

하나님이 내가 행한 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 타인에게 가한 손상만큼 가해자에게도 동일한 형벌이 주어지게 하는 동해 보복법(Rex Talionis)은 모세 율법 이외에 함무라비 법전에도 언급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아도니 베섹의 이 한탄의 말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서 진실로 회개한 말이라기 보다는 당시에 널리 알려져 있었던 인과 응보적 사상에 따라 자신이 처한 곤고한 상태를 한탄한 말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를 끌고 예루살렘에 이르렀더니. 유다와 시므온 연합군이 아도니 베섹을 사로잡아 예루살렘으로 끌고 간 사실은 아도니 베섹이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과 동일 인물이라는 주장(5절)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즉 라이트(G.E. Wright) 같은 학자는 예루살렘이 아도니 베섹의 왕도(王都)였기 때문에 유다 연합군이 그를 그곳으로 끌고 간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이 역시 어디까지나 추측적 견해일 뿐 객관적 증거가 없다.

 

1:8 유다 자손이 예루살렘을 쳐서. 예루살렘은 이미 여호수아 군대에 의해 많은 피해를 입었으나(수 10:23, 26) 이스라엘 백성이 완전히 점령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본 절에서도 유다 자손이 그 성읍을 치고 불살랐으나 역시 완전히 정복되지는 않았다(21절). 이러한 미정복 상태는 한동안 계속되었는데, 다윗이 이를 정복함으로 비로소 끝이 났다(삼하 5:6-9). 그런데 혹자는 이와는 약간 다른 견해를 표명하기도 한다. 즉 이 시점에서 예루살렘은 유다 연합군에게 완전히 점령되었으나 유다와 시므온 두 지파의 인구가 전지역을 장악할 만큼 충분치 못했기 때문에 곧 다시 여부스 족속들이 예루살렘을 차지해 버린 것이라고 주장한다(A.E. Cundall). 그렇지만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가 없다. 오히려 19절의 기록에 의거하여 여부스 족속 중 평지 거민이 철 병거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유다 지파가 그 성을 완전히 점령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아무튼 예루살렘은 다윗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완전히 정복되었으며, 그곳에 성전이 건립됨으로 명실 공히 이스라엘의 수도로 부상하였다(삼하 5:9).

 

1:9 내려가서. 유다 지경의 북단 경계에 해당하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남쪽 경계인 네겝(Negeb)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산지와 남방과 평지. 유다 지파가 기업으로 받은 가나안 땅 지경(수 5:1-12)의 지형상 특징 및 구조를 나타내 주고 있는 말이다. 이 중 산지, 즉 유다 산지는 해발 약 800m에 달하는 예루살렘을 포함한 유다 지경 내의 산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남방’은 헤브론과 가데스 바네아 사이의 반사막(semi-arid) 지대로서, 일명 ‘네겝’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평지’는 히브리어로 ‘쉐펠라’라고 불리는 저지대로서, 곧 지중해변의 해안 평야와 팔레스타인 중앙 산맥 사이에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는 지역을 가리킨다.

 

1:10 헤브론.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30 km 정도 거리에 위치한 해발 910 m 정도의 고도(古都)이다. 오늘날 ‘엘 칼릴’(el-Khalil)로 불리우는 도시인데 상공업으로 유명하다. 한편 일찍이 헤브론은 아브라함이 여호와께 제단을 쌓았던 곳이며(창 13:18) 아브라함과 사라가 매장된 곳이기도 하다(창 23:19, 25:9). 그리고 후에는 다윗의 통치 초기 7년 동안 유다의 수도가 되기도 했다(삼하 5:5). 또한 ‘연맹’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이 고대 도시는 이스라엘에 정복된 후 이스라엘의 여섯 도피성 중 하나가 된다(수 20:7). 한편 헤브론은 갈렙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20절, 수 14:6-15), 그 이유는 아마 헤브론이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탐 때에 갈렙의 책임 지역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민 13:22 이하).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 헤브론에 거하던 거인족 아낙의 세 자손이다(20절, 민 13:22, 수 15:14). 이 중 ‘세새’는 ‘애굽 왕 시삭’(왕상 14:25)처럼 ‘태양’을 의미하고 ‘아히만’은 이방 신인 ‘므니’(Meni)의 친구(사 65:11)를 의미한다. 그리고 ‘달매’는 밭고랑을 각각 의미한다. 한편 일찍이 헤브론은 여호수아에 의해서 파괴되고 헤브론왕 호함도 죽임당했었다(수 10:1-27, 36, 37), 그리고 드빌(11절), 아납 및 기타 산지의 성읍들도 헤브론과 마찬가지로 파괴되었었다(수 11:21-23). 그러나 본 절에 따르면 그 후에 아낙 자손으로 된 이 세 씨족이 헤브론을 재탈환했던 것 같다. 때문에 이스라엘은 이를 다시 정복해야 했었는데, 유다 지파 갈렙의 군대가 이를 재정복한 것으로 나와 있다(수 15:13-14). 한편 이 세 씨족의 이름들은 당시 그들이 섬기던 우상들의 이름에서 본딴 것으로 가나안 땅에 우상 숭배가 얼마나 만연했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기럇 아르바. 헤브론의 본래 이름으로 ‘넷으로 된 성읍’(Tetrapolis)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이름은 당시 서로의 필요에 의하여 네 성읍이 하나로 연합한 데서 유래된 듯하다(Lange). 그래서 아브라함 때에 이 기럇 아르바는 ‘연합’ 또는 ‘연맹’이란 뜻의 ‘헤브론’이란 명칭으로 바뀌었다(창 23:20).

 

1:11 드빌의 본 이름은 기럇 세벨이라. ‘드빌’은 헤브론의 남서쪽 약 20 km 지점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이다.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븍 당시 이곳에는 아낙 자손들이 거주하고 있었다(수 11:21). 이곳은 오늘날 ‘히르벳 라붇’(Hirbet Rabud)으로 불려지는 지역과 거의 동일시되고 있다. 1968년부터 모쉐 코카비(Moshe Kokhavy) 탐사반이 이곳을 발굴한 결과 가나안 정복 당시의 상황을 추정할 수 있게 해주는 유물들이 대량 발견되었다 한다. 한편 ‘드빌’의 본명인 ‘기럇 세벧’은 ‘책의 도시’ 또는 ‘기록의 도시’란 뜻이다. 드빌이 본래 이러한 이름으로 불리웠던 까닭은 그곳에 큰 도서관이나 문서 보관 창고 따위가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수 15:15 주석 참조.

 

1:12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갈렙이 이처럼 드빌을 정복하는 자에게 자기 딸을 아내로 주겠다고 약속한 것은 고대의 포상 관습(삼상 17:25, 18:17, 27)을 따른 것이긴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신앙의 용사를 사위로 맞이하려 한 갈렙의 신앙제일주의 사상이 작용하였던 것 같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수 15:16 주석을 참조하라.

 

1:13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 본 절을 그대로 번역할 경우, 옷니엘은 갈렙의 동생이 되며 갈렙은 그나스의 아들이 된다. 이러한 견해는 KJV, NIV, RSV과 같은 영어 성경도 따르고 있다. 그러나 공동번역은 본 절을 ‘갈렙의 동생 크나즈의 아들인 오드니엘’로 번역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옷니엘은 갈렙의 조카가 되며 그나스는 갈렙의 동생이자 옷니엘의 아비가 된다. 이는 Living Bible이 취하고 있는 견해이기도 하다. 이러한 서로 다른 해석은 성경의 원문이 그 어느쪽으로도 번역할 수 있는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나왔다. 때문에 학자들 간에는 옷니엘이 갈렙과 정확히 어떠한 관계인지에 대하여 의견이 분분하다. 이 중 대표적인 견해를 들자면 곧 다음과 같다. (1) 옷니엘은 갈렙의 이복동생이라는 견해(Bertheau): 이는 갈렙이 ‘여분네의 아들’(민 13:6, 수 14:14)인 데 반해 본 절에서 옷니엘은 ‘그나스의 아들’인 것으로 나와 있는 점에 근거하고 있다. (2) 옷니엘은 갈렙의 조카라는 견해(De Wette, Ewald, Pulpit Commentary): 이는 갈렙과 옷니엘 간의 현격한 연령 차이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즉 옷니엘이 드빌을 정복하고서 갈렙의 딸을 아내로 맞이할 때, 갈렙의 나이는 85세였다(수 14:10). 그러나 당시 옷니엘은 혈기 왕성한 젊은 용사였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두 사람은 형제간이 아니라 숙부와 조카 간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3) 옷니엘과 갈렙은 다같이 그나스 집안의 사람들로서 친척이라는 견해(Lange): 이는 민 32:12에 갈렙이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로 나와 있으며 본 절에선 옷니엘이 ‘그나스의 아들’인 것으로 나와 있는 점에 근거한 주장이다. 이상과 같은 세 견해 중 오늘날 대체적으로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견해는 두 번째 것이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수 5:17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성경에는 그나스란 이름과 관련하여 동명 이인으로 에돔 사람 ‘그나스’(창 36:11)가 나온다.

 

1:14 악사가 출가할 때에 … 아버지에게 밭을 구하자. 이는 이스라엘의 ‘모하르’ 풍습을 보여 주는 장면이다. 여기서 ‘모하르’란 시집가는 딸에게 아비가 주는 결혼 선물, 또는 남자가 처녀를 아내로 데려갈 때 장인에게 치르는 ‘대가’를 가리킨다. 성경에선 대개 이 둘 중 전자를 가리켜 ‘빙물’이라 하고 후자를 가리켜 ‘빙폐’라 한다. 물론 부모가 결혼하는 딸에게 ‘모하르’를 주는 경우는 이스라엘 사회에서 그리 흔하지 않다. 하지만 악사는 옷니엘에게로 출가하면서 이 ‘모하르’ 관습에 따라 아비에게 밭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악사가 요구한 밭이 어느 곳의 어떠한 밭인지에 대해서는 성경에 언급이 없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수 5:8 주석을 참조하라.

 

1:15 아버지께서 나를 남방으로 보내시니. KJV는 이를 ‘당신께서 내게 남쪽 땅을 주셨으니’로 번역하고 있다. 이는 곧 악사가 밭을 요구한 데 대하여(14절) 갈렙이 ‘남방’, 즉 ‘네게브’(Negeb) 땅을 준 것으로 이해하고서 한 번역이다. 어쨌든 악사가 출가하여 옷니엘과 한 가정을 이루게 된 곳은 네게브 지역이었는데, 그곳이 ‘드빌’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12절).

샘물도 내게 주소서. 남방(Negeb)은 거의 사막과 같은 곳이었다(9절 주석 참조). 때문에 급수(給水)는 그곳에서 생활하는 자들에게 있어 절대 중요한 문제였다. 이 점을 잘 알고 있던 악사였기에 그녀는 현명하게 아비에게 샘물도 요구한 것이다.

갈렙이 윗샘과 아랫샘을 … 주었더라. 이 샘들의 위치에 대해서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으나 혹자는 헤브론 부근에 있었다고 한다(Robinson). 그곳은 아마 옷니엘이 싸워 정복한 드빌 땅과 헤브론 지역의 일부였을 것이다. 이는 헤브론 남방 약 9 km 지점에 위치한 오늘날의 ‘텔 베이트 미르심’(Tell Beit Mirsim)에서 두 샘이 발견되었다고 하는 사람들의 주장과도 어느 정도 일치한다(Wycliffe). 아무튼 재치있고 현명한 악사로 말미암아 본래 가난한 자였던 옷니엘은 넓은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고 후에 이스라엘의 사사로 그 위치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 같다(3 : 9)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수 15 : 19 주석을 참조하라.

 

1:16 본 절은 모세의 장인이 속했던 겐 족속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가나안 땅으로 들어왔음을 보여 준다. 민 10:29-30에 따르면 모세가 그의 장인 이드로(또는 르우엘)와 처남 호밥에게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자고 요청했으나 호밥은 처음에 이를 거절했었다. 그러나 본 절을 통해서 볼 때 호밥은 후에 이같은 청을 수락하고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가나안 땅으로 들어온 것 같다.

모세의 장인은 겐 사람이라. 모세의 장인 이드로와 그의 처남 호밥은 원래 가나안 원주민이 아니라 미디안 족속 중 하나인 겐 족속(Kenites)이다. 이 겐 사람에 대한 최초의 성서 기록은 창 15:19에 나타나며 발람의 신탁 속에 등장하는 ‘가인 사람’도 역시 겐 족을 가리키는 말이다(민 24:21-22). 이들은 주로 홍해 부근, 즉 엘란(Elan) 만 동부 지역인 아카바 만 일대에 거주했었는데 점차 모압 경계선 북부(민 21:4), 팔레스타인 남부 산악 지대에까지 북상하였다. 아무튼 모세 이후부터 이들 겐 사람은 히브리인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고(출 2:15-22) 다윗 시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언급되고 있다(삼상 15:6, 30:29). 그리고 본 절에서는 이 겐 족이 유다 지파의 지경내에 거주하므로 이스라엘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음을 보여 준다.

종려나무 성읍. 일명 ‘향기의 도시’, ‘달(月)의 도시’로도 불리웠던 여리고를 가리킨다(신 34:3, 대하 28:15). 예루살렘 동북쪽 약 27 km 지점에 위치한 성읍인데, 종려나무의 산지로 유명하였기 때문에 ‘종려나무 성읍’으로 불렸다.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당시 최초로 정복한 성읍이기도 한데, 이에 대하여서는 수 6장을 참조하라. 한편 혹자들은 겐 족속이 유다 지파와 처음부터 함께 아랏 남방의 헤브론과 드빌로 갔다고 보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종려나무 성읍은 헤브론에서 상당히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여리고를 가리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Cundall). 그러나 본 절에 보면 겐 족이 처음에 머문 곳은 분명히 종려나무 성읍인 여리고이며 그 후에 유다와 시므온이 남방을 정벌할 때 아랏 남방으로 내려가 유다 백성과 함께 거주한 것임을 알 수 있다(Hervey).

아랏 남방. 아랏은 헤브론 정남쪽 25 km 지점에 위치해 있는 성읍이다. 넓고 완만하게 경사진 황무지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이곳은 아브라함 당시 이미 문명이 발달했었음을 알 수 있다(N. Glueck). 한편 아랏과 여리고는 약 85 km 가량 떨어진 먼 거리이므로 겐 족의 이주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렸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백성 중에 거주하니라. 혹자는 ‘백성’에 해당하는 원어 ‘암’이 ‘아말렉’과 첫 두 자음이 일치하며, 겐 족속이 아말렉과 깊은 연판이 있는 족속이라는 사실을 들어(삼상 15:6), 여기서 ‘그 백성’이란 아말렉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Cundall). 그러나 이미 앞에서 유다가 언급되었고 ‘암’이라는 단어에 정관사가 덧붙어 있으므로 ‘그 백성’이란 유다 지파를 가리키고 있음이 틀림없다. 역사적으로도 겐 족이 다윗시대까지 이스라엘 백성들과 관련하여 자주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처음의 주장은 분명히 옳지 않다(삼상 30:29).

 

1:17 스밧 … 이름을 호르마라 하니라. 스밧의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오늘날의 ‘텔 엘 밀’(Tell-el-Milh)이거나 ‘텔 에쉬세리아’(Tellesh-Sheriah)인 것으로 추정된다. 전자는 브엘세바에서 약 10 km 정도, 후자는 약 20 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성읍이다. 한편 유다와 시므온 연합군은 스밧을 진멸한 뒤 ‘호르마’라 칭하였는데, 이는 ‘완전히 파괴하다’는 뜻이다. 이것은 성읍의 파괴가 신들에게 언약의 맹세를 표하는 하나의 종교적 예식임을 암시하는 말로서 당시 고대 근동에서 널리 행해지던 것이다. 이러한 완전한 진멸은 잔인한 면도 있으나 전쟁에 뒤따르기 쉬운 것들, 즉 예를 들면 강간, 약탈 등의 추한 행위들을 미리 예방해 주는 이점도 있었다. 특히 유다 지파의 이러한 철저한 도륙은 그 땅에 뿌리박고 있던 우상과 이방 종교의 척결이란 점에서 오히려 의미가 깊다. 한편 호르마라고 불리우는 이 스밧은 시므온 지파가 유다 지파의 지경내에서 얻은 시므온 지파의 기업이었다(수 19:4).

 

1:18 가사 … 아스글론 … 에그론. 아스돗, 가드와 더불어 블레셋의 5대 성읍으로 꼽히던 도시들이다(수 13:3). 이 중 가사는 예루살렘 남서쪽 80 km, 지중해에서 내륙쪽으로 약 5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였다. 그리고 아스글론은 가사 북쪽, 아스돗 남쪽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였다. 마지막으로 에글론은 블레셋의 다섯 성읍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하였다. 따라서 유다와 시므온 연합군은 남쪽에서부터 점차 북쪽으로 북상하면서 블레셋 성읍들을 정복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때 그곳의 거민들을 완전히 진멸하지 못하였는 바, 이들 성읍들은 다시 블레셋의 장중에 들어갔으며 이후 이스라엘을 고질적으로 괴롭히는 대적이 되었다(14:19, 삼상 5:1, 10, 7:7-8).

 

1:19 본 절에서는 두가지 대조적인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하나는 유다 지파가 신앙적으로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을 믿음으로 산지(9절) 거민들을 쫓아낼 수 있었던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불신앙적으로 철 병거를 두려워하여 골짜기의 거민들을 쫓아 내지 못한 사건이다.

철 병거가 있으므로. 인류가 철을 생산하여 사용한 것은 헷 족속(Hittites)에 의해서 였다. 그들 중 일부는 일찍부터 가나안 땅에 이주해 온 듯하며(창 23:3, 26:34) 합금 기술의 개발을 통해 다른 어느 부족보다 더 막강한 무기를 소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이 철재 무기는 사울 왕 시대에 블레셋의 기술에 의존하여 사용한 것이 고작이었으므로 당시 철 무기는 매우 구하기 힘들었다(삼상 13:22).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이 철 병거로 무장한 가나안 족속을 두려워한 것은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산지 거민을 쫓아내었던 그들이 철 병거를 두려워하여 골짜기 거민들을 쫓아내지 못하였다는 사실은 불신앙이라는 말로 밖에 설명할 수 없다. 이전에 여호수아는 가나안족들에게 철 병거가 있다 하더라도 틀림없이 그들을 쫓아낼 수 있다고 요셉 지파에서 주지시켰던 적이 있었다(수 17:16-18). 그리고 실제로 사사 시대에 드보라와 바락은 철 병거 9백승을 가진 야빈 왕을 무찌르고 승리를 거둔 적도 있다(4:13-16). 따라서 유다 지파가 철 병거를 가진 적에 대해 미리 겁을 먹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은 불신앙으로 인하여 정복 사업을 완수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이에 해당하는 원어 ‘로 레호리쉬’는 능력이 없어서 쫓아내지 못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는 능력이 있으면서도 쫓아내지 아니한 직무 유기 내지는 고의적 회피 행위를 의미한다. 족 유다 지파는 골짜기 거민들을 쫓아내 보려고 시도도 하지 않은 채 미리 겁을 먹고 포기했던 것이다(Lange).

 

1:20 모세가 명령한 대로 헤브론을 갈렙에게 주었더니. 일찍이 모세의 가나안 정탐꾼 파송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구절이다. 즉 과거 가나안 땅을 탐지하고 돌아온 정탐꾼들은 모세에게 회의적인 보고를 하였었다(민 13장).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 만은 이스라엘이 능히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다고 보고하였다(민 14:6-9). 그러자 모세는 갈렙에게 축복하기롤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수 14:9)고 하였다. 그같은 약속에 근거해 갈렙은 여호수아 생존 당시 헤브론을 요구, 기업으로 받았다(수 14:13-15).

아낙의 세 아들. 이미 10절에서 언급된 아낙 자손의 세 씨족인 세새, 아히만, 달매를 가리킨다. 한편 갈렙을 대장으로 한 유다 자손이 이들을 무찌른 기사는 수 15:13-14에 나와 있다.

 

1:21 본 절에는 베냐민 자손이 예루살렘 거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수 15:63에는 유다 자손이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이 두 기록은 서로 상충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베냐민과 유다의 경계는 벤 힌놈 골짜기와 예루살렘 남쪽 지역에서 서로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수 15:8, 18:28). 그러므로 여부스 사람을 예루살렘에서 쫓아내지 못한 책임은 이 두 지파 모두에게 있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수 15: 63 주석을 참조하라.

여부스 사람. 가나안 일곱 족속 중 한 족속으로서(창 10:16) 예루살렘 산악 지대에 거주하던 원주민들이다. 그래서 고대에는 예루살렘을 ‘여부스’라고도 불렀다(19:10, 수 15:18, 18:28, 대상 11:4 등). 한편 베냐민 지파와 유다 지파의 이같은 공격 실패로 인하여 예루살렘은 사사 시대 동안 이스라엘로부터 독립되어 있었다(19:10-12), 그러다가 다윗 시대에 와서야 비로소 완전히 정복된다(삼하 5:6-10). 그러나 다윗의 정복 이후에도 부분적이나마 여부스 사람의 예루살렘 거주는 계속 허용된 듯하다 (삼하 24:16).

오늘까지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 예루살렘이 완전히 정복당하고 여부스 족이 축출 당한 때는 다윗 시대이다. 따라서 여기서 가리키는 ‘오늘’이란 B.C. 1050-1000년경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연대는 본서의 기록 연대를 추정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는 바, 본서의 기록 연대 역시 이 시기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1:22 본 절은 요셉 지파가 믿음으로 정복 사업에 나아갔음을 보여주고 있다.

요셉 가문. 여기서 ‘요셉 가문’이라 함은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를 통틀어 칭하는 말이다(수 17:17). 그들은 유다와 시므온처럼 기업을 함께 할당받았기 때문에(수 16:1-4) 연합하여 벧엘 정복에 나섰음이 틀림없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II, p. 258).

벧엘.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19 km 지점에 위치한 오늘날의 베이틴(Beitin)이다. 이곳에는 좋은 샘들이 많아 고대로부터 유목민들의 각광을 받았다. 본래의 이름은 ‘루스’(23절)인데, 야곱에 의해 ‘하나님의 집’이란 뜻의 ‘벧엘’로 바뀌었다(창 28:16-19). 한편 이 벧엘은 본래 베냐민 지파에게 분배된 땅(수 18:22)이었으나 요셉 족속의 남쪽 경계선과도 서로 맞물려 있었다(수 16:1-2). 따라서 요셉 족속도 벧엘에 거주하고 있는 가나안인들을 다 쫓아내지 아니하고는 자신의 영토를 보호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므로 본 절에서 요셉 족속이 벧엘 정복에 나선 것이다. 한편 벧엘 정복에 관한 기사는 성경상에 상세히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추측컨대 여호수아가 아이 성을 정복한 후(수 8장) 곧 이어 벧엘도 일시 정복했던 것 같다(수 12:16). 그러나 벧엘은 다시 가나안 원주민들의 수중에 넘어갔으며 이에 본 절에서 요셉 족속이 재차 정복에 나선 것 같다(Goslinga). 아무튼 이러한 벧엘은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하지만 ‘하나님의 집’이란 뜻의 이름에 걸맞지 않게 벧엘은 왕정 시대 당시 우상 숭배의 중심지가 되었다(왕상 12:26-33, 왕하 17:27-33, 렘 48:13).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라. 요셉 족속이 벧엘을 성공적으로 정복하게 된 동인이 근본적으로 여호와께 있었음을 상기시켜 주는 구절이다(삼상 17:47).

 

1:23 벧엘을 정탐하게 하였는데. 여기서 ‘정탐하다’에 해당하는 원어 ‘투르’는 ‘경비가 엄한 지역을 몰래 살피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는 모세가 가나안에 정탐꾼들을 보냈던 것(민 13:1-20)과 비슷한 행위임을 알 수 있다. 즉 요셉 족속의 이런 신중한 태도는 그들이 참으로 믿음 가운데 서 있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루스. ‘벧엘’의 본명이다. ‘하나님의 집’이란 뜻의 ‘벧엘’이란 이름은 야곱이 처음 붙인 것이며(창 28:19) 가나안 족들은 그곳을 ‘루스’라 했다. ‘루스’란 ‘왜곡되다’, ‘떠나다’라는 뜻인데 벧엘의 우상 숭배 역사와 잘 부합되는 이름이다. 한편 수 16:2에는 “벧엘에서부터 루스로 나아가”라는 언급이 있다. 이는 마치 벧엘과 루스는 서로 인접해 있는 지역인 것처럼 생각케 해준다. 때문에 혹자는 루스의 남쪽을 ‘벧엘’로 보고 있기도 하다(Cassel). 그러나 ‘루스’와 ‘벧엘’은 동일한 지역이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수 16:2 주석을 참조하라.

 

1:24 본 절에 기록된 사건은 여리고 정탐시에 기생 라합에게 일어났던 사건과 유사하다(수 2장). 이는 요셉 족속이 어떻게 견고한 요새였던 벧엘을 정복하게 되었는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또 벧엘 정복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요셉 족속과 함께 하셨음(22절)도 잘 보여 준다.

성읍의 입구. 이것은 성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벧엘 사람들이 요셉 족속의 성문 출입을 허용할 리 만무하다. 따라서 이는 요새화된 벧엘에 침입해 들어갈 수 있는 비밀 루트나 방법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II, p. 259).

선대하리라. 원문을 직역하면 ‘자비를 보이겠다’. ‘은혜를 베풀겠다’는 뜻이다. 여기서 ‘자비’, ‘은혜’에 해당하는 원어 ‘헤세드’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긍휼’ 또는 인간과 인간 간의 ‘변함없는 신뢰’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창 19:19, 삼하 16:17, 시 59:17). 여기서는 정탐꾼이 벧엘 거민에게 제시한 ‘약속을 어기지 않고 반드시 이행하겠다’는 강조적 의미로 쓰였다.

 

1:25 그 사람이 성읍의 입구를 가리킨지라. 이 벧엘 사람은 요셉 족속의 정탐꾼으로 말미암아 신변의 위협을 느꼈으므로 이처럼 성읍의 입구를 가르쳐 주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탐꾼이 그에게 정중히 도움을 요청한 점으로 보아(9절) 자발적인 행동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즉 그는 여리고 성의 라합처럼(수 2:8-11). 이미 하나님께서 요셉 족속과 함께 하심(22절)을 감지했기 때문에 정탐꾼의 요청에 협조했을 것이다.

그 사람과 그 가족을 놓아 보내매. 라합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은 신실하게 약속을 지켰다(수 6:17). 이와 같이 한 사람의 행동에 따라 전가족의 구원과 멸망이 좌우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대표 원리’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과거 한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 같이 오늘날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구원받게 된 것이다(롬 5:18). 물론 구원은 최종적으로 개개인과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어떤 사람이 타인의 구원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사람이 주변 사람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쳐 구원에로 인도할 수는 있으므로, 성도의 힘쓸 의무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후 2:15-16, 딤후 4:2).

 

1:26 헷 사람의 땅. 헷 족속은 인도 유럽 족이다. 이들은 B.C. 1800-1200년 사이에 소아시아와 시리아 지역에 거대한 왕국을 건설했다. 고고학자들은 이스라엘의 족장 시대나 모세 율법 시대에 일어난 사건들과 헷 족속의 법률이나 관습들, 특히 이들의 종주권 계약 사이에 많은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했다. 한편 시리아 지역은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당시 ‘헷 족속의 온 땅’으로 불리워졌다(수 1:4). 따라서 본 절에서 벧엘 거민이 이주하였다는 ‘헷 사람의 땅’은 시리아의 어느 한 지역이었음이 분명하다.

그것의 이름을 루스라 하였더니. 이 사람은 자신의 새로운 정착지에 벧엘의 옛이름인 ‘루스’라는 칭호를 붙였다. 이곳의 위치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으나, ‘떠나다’라는 뜻 외에도(23절) ‘편도나무’(almond)라는 뜻을 지닌 ‘루스’라는 이름에 근거해 추정해 볼 수는 있다. 즉 편도나무로 유명했던 고대 헷 족속의 땅으로는 북부시리아의 ‘쿠프로스’가 있으므로 이곳이 곧 루스였을 가능성이 있다(Cassel).

 

1:27 본 절은 벧엘의 운명과는 대조적으로 므낫세의 영토내에 있는 많은 가나안 인들의 성읍들이 그대로 존속되었음을 보여 준다. 이들 성읍들은 ‘돌’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스르엘과 에스드렐론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었다. 한편 이 도시들 중 몇몇은 여호수아에 의해 정븍되었으나(수 12:21-23), 나머지 성읍들에 대한 정복기사는 아무 데도 없다. 아마 그들은 철 병거를 소유하고 있었으므로 쉽게 이스라엘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었을 것이다(Goslinga). 그리고 여호수아에 의해 정복된 성읍들까지도 곧 독립하였을 것이다. 이에 대한 증거로 본 절의 끝 부분에 나오는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더니”라는 말을 들 수 있는데, 이것은 그들의 저항이 막강하였음을 의미한다.

벧스안. 요단 계곡과 이스라엘 골짜기의 교차 지점, 곧 요단 강 서쪽 약 10 km 지점에 위치한 주요 요새이다. 라암세스 3세 때(B.C. 1175-1144)까지 이곳에 애굽 수비대가 상주했었으며, 그 후 블레셋이 이곳을 점령했었다.

그에 딸린 마을들. 즉 큰 성읍을 중심으로 하여 주변에 형성되었던 촌락이나 위성 도시를 가리킨다.

다아낙. 므깃도 남동쪽 8 km 지점에 위치한 가나안의 주요 성읍이다. 역사상 이 성읍은 당시 에스드렐론 계곡에서 샤론 평야에 이르는 남서 통로를 지배했던 것으로 나와 있다.

돌. 가이사랴 북방 약 13 km 지점의 갈멜 산 남쪽, 팔레스타인 해안에 위치한 요새화된 성읍이다. 이곳에는 그 해안을 따라 자주빛 물감의 원료가 되는 조개가 많이 났기 때문에 고대로부터 페니키아인들이 정착해 살았다. 한편 솔로몬 당시 돌과 그 인근지역은 솔로몬 왕국의 제4행정 구역에 편입되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블르암. 샤론 평야 동쪽, 이스르엘 골짜기 남쪽에 위치한 가나안의 주요 성읍이다. 오늘날의 ‘길벳 빌 암메’(Khirbet Bill ameh)와 동일시 되는데, 이는 므깃도 남동쪽 약 16 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므깃도. 하이퍼 남동쪽 약 30 km 지점의 이스르엘 평원에 위치한 고대 도시이다. 이곳은 B.C. 12세기 중반까지 애굽의 지배 하에 있었다. 고고학자 스트라툼(Stratum) 7세는 므깃도가 갑자기 멸망당했음을 밝혀냈는데, 그것은 5:19에서 암시하고 있는 드보라의 승리에서 기인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Albright).

 

1:28 본 절에서 사사기 기자는 므낫세 뿐만 아니라 다른 지파까지 포함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오랜 세월 동안 가나안인들을 그 땅에서다 쫓아내지 못하였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강성해져 충분히 가나안인들을 쫓아낼 수 있을 즈음에는, 가나안인들을 쫓아내기 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부려먹기 시작했음을 보여 준다. 즉 강성한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명령을 수행하기 보다 가나안인들의 사역을 통하여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기를 시작했다.

이스라엘이 강성한 후. 정확히 어느 때를 가리키는지 분명치 않다. 물른 이스라엘의 국력이 최고로 신장된 때는 다윗과 솔로몬의 통일 왕국 시기(B.C. 1005-931)이다. 그러나 사사 시대 동안에도 이스라엘은 꾸준히 국력을 길러 왔던 것이 사실이다. 아무튼 이때는 이스라엘이 충분히 가나안 인들을 다 쫓아낼 수 있을 만큼 국력이 신장된 때임을 가리킨다.

가나안 족속에게 노역을 시켰고. 이처럼 이스라엘이 가나안인들을 노역시킨 경우는 이미 여호수아 당시에도 있었다. 즉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을 속여 화친 조약을 맺었던 기브온 거민들을 이스라엘의 노예로 삼았다(수 9:22-27). 또한 솔로몬은 자신의 건축 사업에 가나안인들을 동원, 인부로 사용하기도 했다(왕상 9:19-22).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셨던 것은 가나안 땅에서 모든 원주민들을 멸하고 쫓아내는 것이었지(신 20:16-18) 결코 그들을 남겨, 이용하라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여기에 이스라엘의 근본적인 잘못이 있었는 바, 이후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이방 우상 숭배 종교와 사악한 풍습에 점차 물들어 가고 말았다.

 

1:29 게셀. ‘쉐펠라’, 즉 가나안 평지(9절)의 돌출부에 위치한 전략 도시로서 예루살렘 서쪽 30 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특히 에브라임의 영토 중 최남서쪽 경계와 맞물려 있는 이곳은 지중해변에서 예루살렘으로 나아가는 주요 길목이기도 하다. 한편 이 게셀은 애굽의 문서들에서도 여러번 언급되고 있는데, 애굽의 바로가 솔로몬에게 결혼 선물로 이 성읍을 줄 때까지(왕상 9:15-17) 이 성읍은 이스라엘의 지배 아래 들어오지 않았다.

 

1:30 스불론의 영토에 있는 두 성읍 기드론과 나할롤의 위치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기드론. 예루살렘과 감람 산 사이를 흐르는 시내인 ‘기드론’(삼하 1:23)과는 다른 곳이다. 하이파(Haifa)의 남동쪽에서 12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오늘날의 텔 엘 파르(Tell el-Far)인 듯하다.

나할롤. 또는 ‘나할랄’으로도 불리던 성읍이다(수 19:15, 21:35). 아크레 평원 남단, 하이파 동쪽 8 km 지점에 있는 오늘날의 텔 엔 나흘(Tell en-Nahl)로 추측된다(Albright).

 

1:31 본 절에 언급된 성읍 중에서 악고, 시돈, 알랍, 악십은 모두 갈멜 산 북쪽 해안에 위치해 있었다. 이곳 거민들은 다른 지역의 가나안 인들과는 달리 커다란 세력을 지니고 있었다. 후에 이곳은 중요한 해양 국가인 베니게로 발전하였고,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는 이스라엘과 서로 연합 관계에 있기도 했다(삼하 5:11, 왕상 5:1-12). 그런데 베니게의 공주 이세벨이 아합과 결혼하여 이스라엘에 바알 우상을 들여옴으로써(왕상 16:31-34) 이스라엘에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1:32 그 땅의 주민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으니. 가나안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 증에 거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에브라임과 스불론 지파의 경우(29-30절)와는 대조되는 기록이다. 즉 위의 두 지파는 가나안 거민들을 완전히 쫓아내지는 못하였으나 그들이 점령한 땅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 나오는 아셀 및 납달리 지파(33절)는 오히려 그들이 가나안 사람 가운데 거주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곧 아셀과 납달리 지파의 지경 내에서는 오히려 가나안 사람들이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아마 그 까닭은 가나안 사람들이 숫적으로 우세하며 아셀 지파나 납달리 지파가 그들에게 대하여 어떤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었기 때문인 듯하다.

 

1:33 벧세메스. ‘태양의 집’이란 뜻, 이것은 이곳에 태양 신을 섬기던 신전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갈릴리 고원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될 뿐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한편 성경에는 ‘벧세메스’란 이름은 같으나 서로 다른 지역인 곳이 몇 군데 더 나온다. 그중 하나는 법궤 사건으로 유명한 유다 지파의 북쪽 경계(수 15:10)인 벧세메스이고(삼상 6:10-16) 다른 하나는 잇사갈 지파의 경계지인 벧세메스이다(수 19:22).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애굽의 성읍인 벧세메스이다(렘 43:13) 따라서 본 절에 나오는 납달리 지파의 벧세메스를 이들과 혼동해서는 안 될 것이다.

벧아낫. ‘아낫의 집’이란 뜻이다. 이로 보아 이곳에는 풍요의 여신이며 바알의 아내인 ‘아낫’에게 바쳐진 신전이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이 ‘아낫’은 우가릿(Ugarit)의 전쟁의 여신이었다. 한편 이곳 역시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고 다만 벧세메스 부근에 위치하였던 것으로만 추정할 수 있다.

 

1:34 본 절에서는 단 지파가 아셀 지파나 납달리 지파와는 달리(31-33절) 가나안인 가운데 거하지도 못하고 아모리 족속에 의해 산지로 쫓겨난 일을 기록하고 있다. 이때 단 지파의 일부는 아모리 족속을 피해 유다의 영역이나 팔레스타인 최북단 지역의 라이스(Laish)로 이주해야만 했다(18:1-31).

아모리 족속.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기 이전까지 그곳에 거주하던 모든 가나안 족속들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창 15:16). 그러나 엄격히 구분하면 주로 팔레스타인 계곡이나 해안에 거주하던 사람들을 ‘가나안인’이라 일컬은 데 반해 팔레스타인 산지에 주로 거주하던 자들을 ‘아모리인’이라 했다. 이들은 본래 팔레스타인, 시리아, 바벨론 등지에 널리 흩어져 살았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내에서는 당시 에게 해 연안 출신으로서, 가나안 남서부 지역으로 대거 이주해 오던 블레셋에게 쫓겨 골짜기나 산지로 밀려나고 말았다. 따라서 단 지파가 산지로 쫓겨나게 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단 자손을 산지로 몰아넣고. 단 지파가 본래 기업으로 받은 땅은 가나안의 서부지역 산간과 해변에 이르는 비옥한 땅이었다(수 19:40-46). 그러나 이들은 아모리 사람들에게 밀려 산지로 쫓겨났고 급기야는 그곳에서조차 정착치 못하고 결국 ‘라이스’에까지 이주해야만 했다(수 18장).

 

1:35 헤레스 산. ‘태양의 산’이란 뜻으로서, 이곳 역시 우상 신전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암시해 준다. 이곳은 수 19:41에 나오는 ‘이르세메스’(태양의 성읍)와 동일한 곳으로 추정되는데 오늘날 ‘아인 세메스’(Ain Shemes)라 불리우고 있다(Keil, Goslinga 등). 한편 이스라엘이 정복하는 데 실패한 도시들의 이름이 대부분 우상과 관련된 것으로 볼 때(33절). 이스라엘의 실패는 단지 세력이 부족하였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신앙의 부족으로 설명이되어야 할 것 같다.

아얄론. 여리고와 지중해 사이의 고지에 위치한 성읍. 오늘날의 ‘얄로’(Yalo)인 것으로 추정된다. 여호수아가 아모리족을 격퇴할 당시 야얄론 골짜기에 달이 머문 사건으로 유명하다(수 10:12).

사알빔. 예루살렘 서쪽 약 24 km 지점, 아얄론 부근에 위치한 성읍이다. 오늘날의 ‘셀비트’(Selbit)로 추정된다. 솔로몬 당시 이곳은 식량 공급을 위한 행정중심지였다(왕상 4:9).

요셉의 가문의 힘이 강성하매 아모리 족속이 … 녹역을 하였으며. 단 자손들은 대부분 평야로 이루어져 있는 자신들의 영토에서 쫓겨나고 산지에서 조차 아모리인들의 공격으로 고난을 받았다. 그러나 훗날 요셉 족속, 엄밀히 말하면 에브라임 지파는 단 지파의 영토에까지 세력을 확장, 아모리인들로 하여금 녹역케 했다. 이것은 아모리인들이 비록 단 지파의 지경에서 단 지파를 쫓아 내긴 했으나 그 지역이 결국에는 다시 이스라엘의 영토로 회복되었음을 보여 준다.

 

1:36 아모리 족속이 단 지파의 영토를 차지한 것(34-35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직도 팔레스타인 전역에 널리 잔존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즉 이를 위해 본 절은 당시 아모리 족속이 거주하던 땅의 남쪽 경계를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곧 유다 족속이 기업으로 분배받은 가나안 땅의 최남단 경계와 일치한다(수 15:1-4).

아그랍빔 비탈의 바위부터 위쪽. ‘아그랍빔’이란 ‘전갈’이란 뜻이다. 아마도 이 지역에 전갈이 많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진 듯하다(Pulpit Commentary). 이 곳의 위치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민 34:4과 수 15:3에 의거하면 사해 남쪽지역에서부터 브엘세바, 즉 유다 남부 구릉 지역의 평지까지 이르는 가파른 절벽 지대로 추정된다. 다음으로 ‘바위’에 해당하는 원어 ‘하쎌라’는 헬라어로 ‘페트라’(Petra)에 해당된다. 민 34:3과 수 15:1에 의거할 때 이는 온통 바위로 이루어진 에돔 지경(地境)의 산악 지대를 가리키는 듯하다(Lange, Wycliffe). 그러나 혹자는 ‘하쎌라’를 에돔 지경의 산악지대를 가리키는 고유 명사가 아닌 그냥 바위가 많은 지역을 가리키는 보통 명사로 이해하기도 한다(Keil). 마지막으로 여기서 ‘위쪽’이란 서쪽 지중 해변을 가리키는 바, 이는 민 34:5, 수 15:4에 의거할 때 지중해로 흘러드는 ‘애굽 시내’ 부근을 의미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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